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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동화’의 근대적 채록 과정과 변용 전략 -해방 전 아동 잡지 및 신문 매체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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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의 중점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 한국(조선)인에 의한 ‘조선동화’의 근대적 채록 과정과 그 독자적 위치 조명, 둘째, ‘조선동화’의 변용 전략과 식민지 이데올로기의 탐구 등이다.

      1. ‘조선동화’의 근대적 채록 과정과 독자적 위치 조명

      1910~20년대에 이루어진 ‘조선동화’ 개념 형성과 우리의 주체적 ‘조선동화’ 모집 운동의 역사와 성격을 밝히고, 해방 전 근대 매체에 나타난 ‘조선동화’의 특징과 독자성을 분석한다.
      1910년대 최남선 시기에는 ‘이약이’ 개념이 사용되다가, 1920년대 방정환 시기에 접어들면 ‘동화’라는 개념이 활발해진다. 이 때 ‘아동’의 발견으로서 ‘동화’의 발생과 ‘조선’이라는 민족기획이 결합되어 보편화되었다.
      최남선의 ‘전래 이야기’ 모집 운동에 대해서는 그 동안 조명이 적었다. 최남선은 『아이들보이』 2호(1913. 10)에 ‘전래 이야기’를 모집한다는 현상 공모를 내는데, 다수 이야기 유형이 조사되었고, 조사 지역은 함남, 경성, 선천, 정주, 창, 용천 등 전국 각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 시기에 「장자늪」과 「금방망이 은방망이」가 거론된다. 이러한 모집 운동이 아동 잡지 발간 내내 지속되었던 점을 새롭게 평가한다.
      해방 전 근대 매체에 나타난 ‘조선동화’의 특성(성격)을 고찰함에 있어서는, ‘한국인 채록’과 ‘일본인 채록’을 이원화시켜 대비적 관점으로 살펴본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한국인 채록’ 과정에서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해와 달’은 조선의 밝은 빛을 상징하는 모티프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일본인 채록’에서는 ‘해와 달’ 형상을 축약시키는 방식으로 채록하고 있어, 흥미로운 주제의 하나이다.
      한편, 일본인 채록 ‘조선동화’에서는 효자담, 보은담이 적다. ‘천벌받은 호랑이’ 등 조선의 부정적 이미지를 담는다. ‘조선동화’의 채록 과정에 나타난 한국(조선)인과 일본인의 관점 비교, 시기별, 언어적 측면, 매체별로 나타나는 변별적 특징을 구분해서 다룬다.

      2. ‘조선동화’ 변용 전략과 이데올로기의 내면화

      ‘조선동화’의 기록화 과정에서 ‘피지배/지배’, ‘反식민/식민’의 대립적 관계에 놓인 조선과 일본은 각기 서로 다른 변용 전략을 택한다.
      얼핏 한국(조선)인에 의한 채록에는 변용이 없을 듯하지만, 우리의 ‘조선동화’ 채록 과정에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습합되어 내면화된다. ‘조선’ 정체성을 탐구하며 함흥, 평양, 등 조선의 지명, ‘조선’의 음식물과 의복, 또는 강자(일본)에 대한 강한 응징, 심판 등을 볼 수 있다.
      일본인의 ‘조선동화’ 변용 전략은 권력을 강탈한 지배자의 위치에서 보다 광범위하며 보다 치밀하게 전개되었다. 이들의 작업은 한국(조선)인에 의한 ‘조선동화’ 채록에 비해 수적으로 우세하며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인 채록의 ‘조선동화’에서는 인물조차 일본인화하며, 음식물도 ‘과자’, ‘전병’ 같은 일본 음식물로 대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보스럽고 비천한 인물 유형이 빈번하게 등장하여 ‘우등/열등’ 구도의 식민 전략을 ‘조선동화’라는 이야기 속에 투영시킨다.
      특히 ‘한일 공통설화’로 조사되고 있는 ‘조선동화’에서는 일본인의 ‘조선동화’ 변용이 구체적 전략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경성일보』 1939년 6월 21일부터 30일까지 10회 연재된 기획 ‘조선동화집’은 특히 한일 공통설화를 연재하고 있다. 1)賢愚二人の兄弟(日本童話「花笑爺」に似てゐる), 2)狐と蟹との競走(日本童話「兎と龜」に似てゐる), 3)天女とほとときる(郭公)(日本童話「天の羽衣」に似てゐる) 등, 우선 명명된 제목에서 일본 그들의 동화와 유사성을 표출시킨다.
      일본은 그들의 내선일체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미 1914년도에 ‘한일 공통설화 연구’를 시도했다. 공통 설화 연구에 역점을 둔 일본인의 태도는 궁극적으로 ‘내선일체’ 논리와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유사성’이 강조될 수 있도록 ‘조선동화’의 기술이 이루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무꾼과 선녀’는 우리나라 ‘조선동화’의 근대적 채록 과정에서는 ‘수탉 유래담’이 우세하다. 정인섭은 이 이야기 유형을 ‘1913년’에 채록한 것으로 자신의 영어판 『조선동화집』에 기록하였다. 일본은 유독 이 이야기를 일본동화에도 있는 ‘날개옷’(羽衣) 설화라는 점에 방점을 둔다.
      우리의 독자적 기록에 의한 ‘조선동화’가 일본인이 채록한 ‘조선동화’ 류와 어떤 점에서 편차가 두드러지는지, 가령, 선호 이야기 유형, 등장 인물의 배치, 특정 장면의 삭제·추가·재화의 양상 등, 미시적이고 밀도 있는 텍스트의 비교 분석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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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연구의 중점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 한국(조선)인에 의한 ‘조선동화’의 근대적 채록 과정과 그 독자적 위치 조명, 둘째, ‘조선동화’의 변용 전략과 식민지 이데올로기의 탐구 등이다...

      본 연구의 중점 내용을 요약하면, 첫째, 한국(조선)인에 의한 ‘조선동화’의 근대적 채록 과정과 그 독자적 위치 조명, 둘째, ‘조선동화’의 변용 전략과 식민지 이데올로기의 탐구 등이다.

      1. ‘조선동화’의 근대적 채록 과정과 독자적 위치 조명

      1910~20년대에 이루어진 ‘조선동화’ 개념 형성과 우리의 주체적 ‘조선동화’ 모집 운동의 역사와 성격을 밝히고, 해방 전 근대 매체에 나타난 ‘조선동화’의 특징과 독자성을 분석한다.
      1910년대 최남선 시기에는 ‘이약이’ 개념이 사용되다가, 1920년대 방정환 시기에 접어들면 ‘동화’라는 개념이 활발해진다. 이 때 ‘아동’의 발견으로서 ‘동화’의 발생과 ‘조선’이라는 민족기획이 결합되어 보편화되었다.
      최남선의 ‘전래 이야기’ 모집 운동에 대해서는 그 동안 조명이 적었다. 최남선은 『아이들보이』 2호(1913. 10)에 ‘전래 이야기’를 모집한다는 현상 공모를 내는데, 다수 이야기 유형이 조사되었고, 조사 지역은 함남, 경성, 선천, 정주, 창, 용천 등 전국 각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 시기에 「장자늪」과 「금방망이 은방망이」가 거론된다. 이러한 모집 운동이 아동 잡지 발간 내내 지속되었던 점을 새롭게 평가한다.
      해방 전 근대 매체에 나타난 ‘조선동화’의 특성(성격)을 고찰함에 있어서는, ‘한국인 채록’과 ‘일본인 채록’을 이원화시켜 대비적 관점으로 살펴본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한국인 채록’ 과정에서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해와 달’은 조선의 밝은 빛을 상징하는 모티프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일본인 채록’에서는 ‘해와 달’ 형상을 축약시키는 방식으로 채록하고 있어, 흥미로운 주제의 하나이다.
      한편, 일본인 채록 ‘조선동화’에서는 효자담, 보은담이 적다. ‘천벌받은 호랑이’ 등 조선의 부정적 이미지를 담는다. ‘조선동화’의 채록 과정에 나타난 한국(조선)인과 일본인의 관점 비교, 시기별, 언어적 측면, 매체별로 나타나는 변별적 특징을 구분해서 다룬다.

      2. ‘조선동화’ 변용 전략과 이데올로기의 내면화

      ‘조선동화’의 기록화 과정에서 ‘피지배/지배’, ‘反식민/식민’의 대립적 관계에 놓인 조선과 일본은 각기 서로 다른 변용 전략을 택한다.
      얼핏 한국(조선)인에 의한 채록에는 변용이 없을 듯하지만, 우리의 ‘조선동화’ 채록 과정에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습합되어 내면화된다. ‘조선’ 정체성을 탐구하며 함흥, 평양, 등 조선의 지명, ‘조선’의 음식물과 의복, 또는 강자(일본)에 대한 강한 응징, 심판 등을 볼 수 있다.
      일본인의 ‘조선동화’ 변용 전략은 권력을 강탈한 지배자의 위치에서 보다 광범위하며 보다 치밀하게 전개되었다. 이들의 작업은 한국(조선)인에 의한 ‘조선동화’ 채록에 비해 수적으로 우세하며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인 채록의 ‘조선동화’에서는 인물조차 일본인화하며, 음식물도 ‘과자’, ‘전병’ 같은 일본 음식물로 대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보스럽고 비천한 인물 유형이 빈번하게 등장하여 ‘우등/열등’ 구도의 식민 전략을 ‘조선동화’라는 이야기 속에 투영시킨다.
      특히 ‘한일 공통설화’로 조사되고 있는 ‘조선동화’에서는 일본인의 ‘조선동화’ 변용이 구체적 전략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경성일보』 1939년 6월 21일부터 30일까지 10회 연재된 기획 ‘조선동화집’은 특히 한일 공통설화를 연재하고 있다. 1)賢愚二人の兄弟(日本童話「花笑爺」に似てゐる), 2)狐と蟹との競走(日本童話「兎と龜」に似てゐる), 3)天女とほとときる(郭公)(日本童話「天の羽衣」に似てゐる) 등, 우선 명명된 제목에서 일본 그들의 동화와 유사성을 표출시킨다.
      일본은 그들의 내선일체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미 1914년도에 ‘한일 공통설화 연구’를 시도했다. 공통 설화 연구에 역점을 둔 일본인의 태도는 궁극적으로 ‘내선일체’ 논리와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전략에 따라, ‘유사성’이 강조될 수 있도록 ‘조선동화’의 기술이 이루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나무꾼과 선녀’는 우리나라 ‘조선동화’의 근대적 채록 과정에서는 ‘수탉 유래담’이 우세하다. 정인섭은 이 이야기 유형을 ‘1913년’에 채록한 것으로 자신의 영어판 『조선동화집』에 기록하였다. 일본은 유독 이 이야기를 일본동화에도 있는 ‘날개옷’(羽衣) 설화라는 점에 방점을 둔다.
      우리의 독자적 기록에 의한 ‘조선동화’가 일본인이 채록한 ‘조선동화’ 류와 어떤 점에서 편차가 두드러지는지, 가령, 선호 이야기 유형, 등장 인물의 배치, 특정 장면의 삭제·추가·재화의 양상 등, 미시적이고 밀도 있는 텍스트의 비교 분석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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