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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反양명학 문헌 조사 및 추출을 통한 ‘양명학 비판 내용의 성향 분석과 反양명학 사조의 흐름에 나타난 특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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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 조선시대는 ‘유교의 나라’로 표현된다. 조선의 사상사는 ‘儒學’의 역사이고 유학 중에서도 ‘朱子 性理學’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조선의 개국과 함께 國敎의 자리를 점하였던 주자학은 조선의 역사와 함께 정착되고 발전되며 다시 쇠퇴하고 또 회복을 기하는 등, 사상적 노정을 거쳤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기의 역사와 사상이 주체적 반성과 검증 그리고 학문적 평가를 거치지 못한 채 근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한국사회는 과거 조선시대를 이어 받은 그 토대 위에 서 있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선시대 사상사에 대한 해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주체적 반성을 결여했다는 이유 때문에도 지금 한국 학계는 조선시대 사상사를 포함한 인문학 전반에서 정립된 적확한 연구결과를 제시하지 못하는 부분을 餘題로 안고 있다. 여기에다 학문 인프라의 미비로 인하여 연구자들의 연구 동기를 약화시키고, 대중의 흥미를 미리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학문 후속세대들은 앞으로 한국사상에 대하여 다양한 프리즘을 통한 새로운 면모들을 밝혀줄 필요성을 책임으로 안고 있다. 한국철학 연구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우선 기득권 세력을 점유했던 주자학의 자료집을 통하여 그의 철학적 소견 및 당대를 활동했던 역사적 정황에 대한 연구를 대표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 그러면, 왜 이러한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그 방향성을 조선의 ‘反양명학 문헌 추출’에 포커스[Focus]를 맞추게 되었는가? 이는 조선시대 유학의 주류가 주자학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조선 유학사의 한 부분에는 분명히 ‘양명학’이라는 사조가 자리하고 있었고, 한국 양명학의 존재는 오히려 주자학과 양명학의 논쟁과 비판 속에서 더욱더 발전의 여지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역설적으로 표현한다면, 한국에서의 양명학 발전 이면에는 양명학을 비판하는 부분이 오히려 적지 않은 역할을 제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양명학과 양명학 비판에 관한 연구는 한국 사상계의 諸분야들을 새로이 이끌어내고, 또 한국유학에서의 독창적 성격을 만들어냄으로써 한국 철학의 가치를 풍부하게 조성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韓國思想에 대한 패러다임[paradime]도 많이 변화되어 가고 있다. 사상이나 문화를 막론하여 주류만 의미가 있고 나머지는 백안시하는 전근대적인 발상에 더 이상 머무를 수만은 없다는 의미다. 전체와 부분의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는 걷어내야 옳기 때문이다.
      ○ 따라서 한국철학 인프라 구축을 조성하기 위해서 그 일련의 방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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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는 ‘유교의 나라’로 표현된다. 조선의 사상사는 ‘儒學’의 역사이고 유학 중에서도 ‘朱子 性理學’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조선의 개국과 함께 國敎의 자리를 점하였던 주자...

      ○ 조선시대는 ‘유교의 나라’로 표현된다. 조선의 사상사는 ‘儒學’의 역사이고 유학 중에서도 ‘朱子 性理學’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조선의 개국과 함께 國敎의 자리를 점하였던 주자학은 조선의 역사와 함께 정착되고 발전되며 다시 쇠퇴하고 또 회복을 기하는 등, 사상적 노정을 거쳤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기의 역사와 사상이 주체적 반성과 검증 그리고 학문적 평가를 거치지 못한 채 근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한국사회는 과거 조선시대를 이어 받은 그 토대 위에 서 있다. 따라서 오늘의 한국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선시대 사상사에 대한 해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주체적 반성을 결여했다는 이유 때문에도 지금 한국 학계는 조선시대 사상사를 포함한 인문학 전반에서 정립된 적확한 연구결과를 제시하지 못하는 부분을 餘題로 안고 있다. 여기에다 학문 인프라의 미비로 인하여 연구자들의 연구 동기를 약화시키고, 대중의 흥미를 미리 봉쇄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학문 후속세대들은 앞으로 한국사상에 대하여 다양한 프리즘을 통한 새로운 면모들을 밝혀줄 필요성을 책임으로 안고 있다. 한국철학 연구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우선 기득권 세력을 점유했던 주자학의 자료집을 통하여 그의 철학적 소견 및 당대를 활동했던 역사적 정황에 대한 연구를 대표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 그러면, 왜 이러한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그 방향성을 조선의 ‘反양명학 문헌 추출’에 포커스[Focus]를 맞추게 되었는가? 이는 조선시대 유학의 주류가 주자학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조선 유학사의 한 부분에는 분명히 ‘양명학’이라는 사조가 자리하고 있었고, 한국 양명학의 존재는 오히려 주자학과 양명학의 논쟁과 비판 속에서 더욱더 발전의 여지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역설적으로 표현한다면, 한국에서의 양명학 발전 이면에는 양명학을 비판하는 부분이 오히려 적지 않은 역할을 제공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양명학과 양명학 비판에 관한 연구는 한국 사상계의 諸분야들을 새로이 이끌어내고, 또 한국유학에서의 독창적 성격을 만들어냄으로써 한국 철학의 가치를 풍부하게 조성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韓國思想에 대한 패러다임[paradime]도 많이 변화되어 가고 있다. 사상이나 문화를 막론하여 주류만 의미가 있고 나머지는 백안시하는 전근대적인 발상에 더 이상 머무를 수만은 없다는 의미다. 전체와 부분의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는 걷어내야 옳기 때문이다.
      ○ 따라서 한국철학 인프라 구축을 조성하기 위해서 그 일련의 방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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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我写本论文的目的就是抽出有关韩国阳明学的资料,进行其资料的分类化,分析具体内容。到今,韩国阳明学的研究情况以根据先行研究成果,树立新的假设,进行论证为主,文献调查和考证的研究比不上它。可是考虑到韩国阳明学在朝鲜时代儒学史上的位置很难确定的情形,广泛精细分析朝鲜儒者的个人文集,进行精细具体的研究,此在研究朝鲜阳明学上不可缺少的工作。
      因此本论文着眼于文献的考证,分析朝鲜时代对阳明学发生的关心和儒者的批判性认识,此种途径可以叫为逆推论的研究方法。为此,对于从阳明学的传入到朝鲜后期有一些对阳明学表明观点的性理学者,进行分类他门主见所载的文献,分析具体内容,在随着时代的变化出现不同情形和特征中,要找到批判性认识的内在脉络。
      此种研究的范围非常广泛,无能一时完成,故本论文限于从阳明学的朝鲜传入到李滉和他的弟子刘成龙,分析朝鲜初中期对阳明学的批判性认识。
      在退溪以前对阳明学的批判,仅往复诗句的形式,主张阳明学是近于禅学,此只不过带着异端排斥的论调,无有理论性论辩。且有关阳明学的资料,如《传习录》,还没有刊行分布,而批判阳明学的书籍已在刊行分布的情况下,对阳明学的批判不是学术性的批判,而是起于社会上的流风,此真可叹的情况。
      退溪李滉他是称为朝鲜性理学的鼻祖,他提示对阳明学的批判性论辩,开源精通的理论性批判的先河。他对阳明的“心即理”,“亲民说“,“知行合一”,进行逐条批判,涉及到阳明思想的主要内容。可惜的是,分量少,论据简单,且他评价为阳明学近似于禅学,未免浮浅的认识。
      最后谈退溪高足的刘成龙对阳明学的认识。我们可以评价为刘成龙比以前的儒者比如退溪,更为客观地对待阳明学,因为虽然他不同意阳明学的主要学说,可是他怀疑朱子学偏于科举之途,流于俗学之窠臼,强调尊德性的心之重要性。此可以评价为他的观点接近于阳明学的精神。
      总之,从阳明学的朝鲜传入到16世纪末,由于朝鲜对内外的情况和退溪李滉的影响,对阳明学积极表示否定的态度。可到退溪的高足刘成龙,他不同于既往的性理学者的一般立场,通过主体性的自觉,强调心悟,此算是他开导韩国式的心学的一个传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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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写本论文的目的就是抽出有关韩国阳明学的资料,进行其资料的分类化,分析具体内容。到今,韩国阳明学的研究情况以根据先行研究成果,树立新的假设,进行论证为主,文献调查和考...

      我写本论文的目的就是抽出有关韩国阳明学的资料,进行其资料的分类化,分析具体内容。到今,韩国阳明学的研究情况以根据先行研究成果,树立新的假设,进行论证为主,文献调查和考证的研究比不上它。可是考虑到韩国阳明学在朝鲜时代儒学史上的位置很难确定的情形,广泛精细分析朝鲜儒者的个人文集,进行精细具体的研究,此在研究朝鲜阳明学上不可缺少的工作。
      因此本论文着眼于文献的考证,分析朝鲜时代对阳明学发生的关心和儒者的批判性认识,此种途径可以叫为逆推论的研究方法。为此,对于从阳明学的传入到朝鲜后期有一些对阳明学表明观点的性理学者,进行分类他门主见所载的文献,分析具体内容,在随着时代的变化出现不同情形和特征中,要找到批判性认识的内在脉络。
      此种研究的范围非常广泛,无能一时完成,故本论文限于从阳明学的朝鲜传入到李滉和他的弟子刘成龙,分析朝鲜初中期对阳明学的批判性认识。
      在退溪以前对阳明学的批判,仅往复诗句的形式,主张阳明学是近于禅学,此只不过带着异端排斥的论调,无有理论性论辩。且有关阳明学的资料,如《传习录》,还没有刊行分布,而批判阳明学的书籍已在刊行分布的情况下,对阳明学的批判不是学术性的批判,而是起于社会上的流风,此真可叹的情况。
      退溪李滉他是称为朝鲜性理学的鼻祖,他提示对阳明学的批判性论辩,开源精通的理论性批判的先河。他对阳明的“心即理”,“亲民说“,“知行合一”,进行逐条批判,涉及到阳明思想的主要内容。可惜的是,分量少,论据简单,且他评价为阳明学近似于禅学,未免浮浅的认识。
      最后谈退溪高足的刘成龙对阳明学的认识。我们可以评价为刘成龙比以前的儒者比如退溪,更为客观地对待阳明学,因为虽然他不同意阳明学的主要学说,可是他怀疑朱子学偏于科举之途,流于俗学之窠臼,强调尊德性的心之重要性。此可以评价为他的观点接近于阳明学的精神。
      总之,从阳明学的朝鲜传入到16世纪末,由于朝鲜对内外的情况和退溪李滉的影响,对阳明学积极表示否定的态度。可到退溪的高足刘成龙,他不同于既往的性理学者的一般立场,通过主体性的自觉,强调心悟,此算是他开导韩国式的心学的一个传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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