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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沈壽官家의 기억, 그 변화와 활용 = A Reserch on Change and Application of Memory about Shimsoogwan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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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27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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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Japanese ShimSoogwan is one of the most famous potters in Korea. In particular, he kept his Korean name and tradition for 400 years and became one of the best ceramic masters in the world. As Simsoogwan family was recognized as a symbol of national spirit or patriotism, the Simsoogwan Pottery Pavilion was established in Namwon and Cheongsong. However, there are some controversies in academia because the story about the Simsoogwan family is not a historical fact. However, the lack of historical record makes it difficult to clearly determine the authenticity. Rather than jumping into this controversy, I analyzed the memories of the Shimsoogwan family through historical newspaper materials and looked at the changes in their memories. Through this, I looked at how the Shimsoogwan family started and how its roots were made. It also shed light on the aspect that the memory of Shimsoogwan family was used as a logic of ‘Korea and Japan are One policy(內鮮一體)’ in Japanese colonial era and again as a symbol of national spirit in Korea. And finally, I looked at the process of memory fixing due to the contents of the novel and recalled the publicity and danger that the descriptions recorded in the public exhibition hall h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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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Japanese ShimSoogwan is one of the most famous potters in Korea. In particular, he kept his Korean name and tradition for 400 years and became one of the best ceramic masters in the world. As Simsoogwan family was recognized as a symbol of nationa...

      The Japanese ShimSoogwan is one of the most famous potters in Korea. In particular, he kept his Korean name and tradition for 400 years and became one of the best ceramic masters in the world. As Simsoogwan family was recognized as a symbol of national spirit or patriotism, the Simsoogwan Pottery Pavilion was established in Namwon and Cheongsong. However, there are some controversies in academia because the story about the Simsoogwan family is not a historical fact. However, the lack of historical record makes it difficult to clearly determine the authenticity. Rather than jumping into this controversy, I analyzed the memories of the Shimsoogwan family through historical newspaper materials and looked at the changes in their memories. Through this, I looked at how the Shimsoogwan family started and how its roots were made. It also shed light on the aspect that the memory of Shimsoogwan family was used as a logic of ‘Korea and Japan are One policy(內鮮一體)’ in Japanese colonial era and again as a symbol of national spirit in Korea. And finally, I looked at the process of memory fixing due to the contents of the novel and recalled the publicity and danger that the descriptions recorded in the public exhibition hall h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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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일본인 심수관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예가 중 한 명이다. 특히 400년 동안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한국 이름과 전통을 지키며 세계 최고의 도자기 명인 중 한 명이 되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큰 관심과 애정을 받는 다. 심수관가가 민족정신이나 애국심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남원과 청송에 심수관 도예전시관이 건립되었다. 이러한 세간의 관심을 반영하여 학계에서도 심수관 가문에 대한 적지 않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심수관의 행적 중 대부분이 검증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되었지만 여전히 심수관 가문의 인기는 사그라들 지 않는다. 아마도 이를 증명할 결정적인 자료가 없어서 정확한 진위여부를 판명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본고에서는 충분한 선행연구가 존재하는 이 논란에는 뛰어들지 않았다. 새롭게 밝혀진 결정적인 증거없이 단편적인 시각만으로 이 논쟁에 참여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1910년대 부터 출간된 신문자료를 통해 심수관 일가에 대한 기억들을 분석하고 그 기억이 변화하는 양상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심수관 가문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뿌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 서 심수관가에 전승되어오던 기억이 일제강점기에는 내선일체의 논리로, 해방 이후에는 한국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조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 소설의 내용으로 인해 기억이 변화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공립 박물관에 기록된 서술이 가지고 있는 공공성과 위험성을 제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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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 심수관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예가 중 한 명이다. 특히 400년 동안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한국 이름과 전통을 지키며 세계 최고의 도자기 명인 중 한 명이 되었다는 점에서 국민들...

      일본인 심수관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예가 중 한 명이다. 특히 400년 동안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한국 이름과 전통을 지키며 세계 최고의 도자기 명인 중 한 명이 되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큰 관심과 애정을 받는 다. 심수관가가 민족정신이나 애국심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남원과 청송에 심수관 도예전시관이 건립되었다. 이러한 세간의 관심을 반영하여 학계에서도 심수관 가문에 대한 적지 않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심수관의 행적 중 대부분이 검증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되었지만 여전히 심수관 가문의 인기는 사그라들 지 않는다. 아마도 이를 증명할 결정적인 자료가 없어서 정확한 진위여부를 판명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본고에서는 충분한 선행연구가 존재하는 이 논란에는 뛰어들지 않았다. 새롭게 밝혀진 결정적인 증거없이 단편적인 시각만으로 이 논쟁에 참여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1910년대 부터 출간된 신문자료를 통해 심수관 일가에 대한 기억들을 분석하고 그 기억이 변화하는 양상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심수관 가문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뿌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 서 심수관가에 전승되어오던 기억이 일제강점기에는 내선일체의 논리로, 해방 이후에는 한국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조명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 소설의 내용으로 인해 기억이 변화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공립 박물관에 기록된 서술이 가지고 있는 공공성과 위험성을 제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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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沈壽官, "鹿兒島縣下伊集院村苗代川の沿革について" 조선사회사업협회 10 (10): 1932

      2 심수관, "한일 도자기문화의 교류와 심수관"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26 : 2002

      3 심수관, "한국혼을 지켜온 재일 400년 ‒ 심수관가 400년제에 즈음하여 ‒" 한국민족연구원 1 : 1998

      4 "청송심씨 족보"

      5 윤지인, "조선도공 심수관의 히바카리 다완을 통해 본 420년의 맥" 원광대학교 한국예다학연구소 3 : 2016

      6 이상균, "조선 도공들의 일본 이주 ‒ 일본 薩摩도자기와 관련하여 ‒" 한국선사고고학회 6 : 1999

      7 방병선, "임란 전후 피랍 도공 연구- 가고시마 나에시로가와지역을 중심으로" 한국학연구소 (67) : 109-138, 2018

      8 구태훈, "일본에서 꽃핀 조선의 도자기문화 -진왜란 당시 납치된 조선인 도공 이야기" 역사문제연구소 (85) : 168-201, 2008

      9 이동민, "일본 문학에 재현된 조선계 도공의 고향에 대한 문화지리학적 접근 - 시바 료타로의 소설 『고향을 어이 잊으리까(故鄕忘じがたく候)』를 중심으로 -"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31 (31): 98-115, 2019

      10 김정호, "사료(史料)를 통해 본 조선피로인(朝鮮被虜人)의 일본 나에시로가와(苗代川) 정착과정 연구(2)" 한국정치외교사학회 37 (37): 165-200, 2015

      1 沈壽官, "鹿兒島縣下伊集院村苗代川の沿革について" 조선사회사업협회 10 (10): 1932

      2 심수관, "한일 도자기문화의 교류와 심수관"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26 : 2002

      3 심수관, "한국혼을 지켜온 재일 400년 ‒ 심수관가 400년제에 즈음하여 ‒" 한국민족연구원 1 : 1998

      4 "청송심씨 족보"

      5 윤지인, "조선도공 심수관의 히바카리 다완을 통해 본 420년의 맥" 원광대학교 한국예다학연구소 3 : 2016

      6 이상균, "조선 도공들의 일본 이주 ‒ 일본 薩摩도자기와 관련하여 ‒" 한국선사고고학회 6 : 1999

      7 방병선, "임란 전후 피랍 도공 연구- 가고시마 나에시로가와지역을 중심으로" 한국학연구소 (67) : 109-138, 2018

      8 구태훈, "일본에서 꽃핀 조선의 도자기문화 -진왜란 당시 납치된 조선인 도공 이야기" 역사문제연구소 (85) : 168-201, 2008

      9 이동민, "일본 문학에 재현된 조선계 도공의 고향에 대한 문화지리학적 접근 - 시바 료타로의 소설 『고향을 어이 잊으리까(故鄕忘じがたく候)』를 중심으로 -"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31 (31): 98-115, 2019

      10 김정호, "사료(史料)를 통해 본 조선피로인(朝鮮被虜人)의 일본 나에시로가와(苗代川) 정착과정 연구(2)" 한국정치외교사학회 37 (37): 165-200, 2015

      11 김정호, "사료(史料)를 통해 본 조선피로인(朝鮮被虜人)의 일본 나에시로가와(苗代川) 정착과정 연구(1)" 한국정치외교사학회 33 (33): 5-30, 2011

      12 노성환, "만들어진 도공의 신화"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12) : 273-296, 2008

      13 "동아일보(1999년 이후):"

      14 정병설, "도공 후예 심수관의 허상과 실상" 문헌과 해석사 2014

      15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1 규슈" 창비 2013

      16 심수관, "나와시로가와(苗代川)에 살며"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연구소 5 : 1990

      17 노성환, "나에시로가와의 조선도공 마을에 관한 일고찰" 대한일어일문학회 (35) : 331-346, 2007

      18 "경향신문, 동아일보(1965~1998년), 한겨레"

      19 大武進, "薩摩苗代川新考" 村尾印刷 1996

      20 "皇城新聞, 매일신보, 조선신문, 마산일보, 동아일보(1965년 이전):"

      21 三谷十夏, "朝鮮陶工の望郷と祖国観‒ 司馬遼太郎 『故郷忘じがたく候』 に関連して‒" 경북대학교 국제대학원 2016

      22 沈壽官, "日本の中の韓國文化の紹介とこれからの日韓文化交流のありかた" 경상대학교 일본문화연구소 35 : 1995

      23 司馬遼太郞, "故鄕忘じがたく候" 文藝春秋 1968

      24 이미숙, "400년 전의도자기전쟁 ‒ 임진왜란과 조선사기장" 명경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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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3-06-1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Oriental Studies KCI등재
      2013-03-13 학회명변경 한글명 : 동양학연구소 -> 동양학연구원
      영문명 : Dankook University Institute of Oriental Studies -> Academy of Asian Studies, Dankook University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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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 0.7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4 0.63 1.457 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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