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리비는 의결집단과 집행집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왕이 분쟁해결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있는 점, 분쟁해결방식 체계가 다소 복잡하다는 점, 실제 집행은 현지인에게 독자적으로 맡긴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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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리비는 의결집단과 집행집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왕이 분쟁해결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있는 점, 분쟁해결방식 체계가 다소 복잡하다는 점, 실제 집행은 현지인에게 독자적으로 맡긴점 등 통해 냉수리비와의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중성리비는 냉수리비와 시간적 격차가있었을 것이라 판단되며 441년에 건립된 것으로 보았다. 냉수리비 단계에서는 왕이 직접공론에 참여하여 분쟁에 관여하고 있다. 또한 분쟁해결방식은 왕이 직접 참여한 교집단에서공론을 하고 바로 그 결과를 전달하여 보다 행정적으로 간결해졌지만, 왕이 참여했다는 점에서그 판결의 권위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즉, 부체제 내에서도 국정운영의 변화양상을 확인할수 있는데, 그 변화 시점은 5세기 중반 이후일 것으로 보인다. 중성리비가 세워진 눌지마립간대는 고구려와의 관계가 소강상태 혹은 우호관계에 있었기때문에 흥해 지역에 대한 신라의 영향력은 꽤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한편 5세기 전반에는 지방관을 파견하는 직접 지배보다는 그 지역 유력자를 통한 간접지배로 지방을 관리했는데, 이 간접지배 방식은 6부에 의해 행해졌다. 즉, 6부 체제 동안에는 부별로 정복지역을 나눠서관리했을 것이고, 중성리비에 나오는 牟旦伐喙는 간거벌 이하 4개의 촌을 관리하면서 그 지역의 노동력을 소유하였다고 볼 수 있다. 牟旦伐喙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宮이 자신들의 노동력을 무단으로 탈취한 것을 단독으로 해결하지 않고, 중앙에 있는 부들 간의 공론으로 해결한것을 보면 당시 6부 체제는 공론의 원칙 아래 중앙과 지방을 관리했음을 알 수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Jungseongribi(中城里碑) is different from the Nangsuribi(冷水里碑) due to the composition of the decision-making group(議決集團) and the enforcement group(執行集團) and the fact that the king does not directly participate in resolv...
The Jungseongribi(中城里碑) is different from the Nangsuribi(冷水里碑) due to the composition of the decision-making group(議決集團) and the enforcement group(執行集團) and the fact that the king does not directly participate in resolving the dispute, the dispute resolution system is somewhat complicated, and the actual enforcement is left to locals. Therefore, it is believed that the Jungseongribi was built in 441 because there was a time gap between the Nangsuribi. During the stage of the Nangsuribi, the king participated in the public debate and was involved in the dispute. In addition, the dispute resolution method became more administratively concise by collective discussion(共論) and delivering the results directly from the Gyo group(敎集團)in which the king participated, but the authority of the judgement was increased in that the king participated. In other words, changes in state administration can be seen even within the Bu-system(部體制), which is expected to occur after the mid-5th century. The influence of Silla on the Heunghae area must have been quite stable because the relationship with Goguryeo was in a lull or friendly relationship with Maripgan-Nulji(訥祗麻立 干), when the Jungseongribi was built. In the first half of the 5th century, local governance was managed through indirect control through influential people in the region rather than direct control of local government officials, which was carried out by the six-bu(6部). The six-part system at that time managed central and provincial governments under the principle of collective discussion, rather than solving the unauthorized seizure of their labor by individuals such as palaces(宮).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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