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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東谿 趙龜命 遊記 연구

      박희수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5 국내석사

      RANK : 247807

      본고는 東谿 趙龜命(1693~1737)의 遊記에 대한 연구이다. 유기 텍스트를 연구하기 위해 우선 배경 사항을 먼저 정리하였다. 벌열가의 병약한 자제로서 문학에 매진한 그의 생애를 먼저 살피고 나서, 양명학적 지향을 보인 그의 사상과 개성과 주체성을 강조한 그의 문예론이 가진 특성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기 창작에 큰 영향을 준 만명 소품문에 대하여 정리하였다. 이어서 이를 바탕으로 조귀명 유기의 주제적 특성을 네 가지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우선 조귀명의 유기에서 신이한 세계에 대한 관심을 나타난다는 사실을 조선 유기들과 만명 소품문 유기와 비교함으로써 확인하였다. 그리고 예술적 매개를 통하여 자연의 심미성이 인식되는 양상을 살폈다. 다음으로는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의식이 나타남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자아가 抒情化되는 양상을 탐구하였다. 앞선 분석에 이어 조귀명 유기의 표현적 특성을 네 가지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우선 유비와 상상력에 의한 의론화 경향이 나타남을 밝혔다. 그리고 다양한 비유법과 낯선 보조관념 이용의 구체적 방식을 살폈다. 다음으로 생략과 함축을 통한 암시적 묘사가 사용됨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追記東峽遊賞」의 독특한 문체가 원굉도와 왕사임의 유기 그리고 『山海經』 등 여러 전범들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종합하여 만든 독창적인 결과물임을 밝혔다. 조귀명의 유기에 대한 이러한 분석에 바탕하여, 조귀명 유기의 문학사적 의의를 세 가지 점에서 살폈다. 우선 조귀명 유기가 앞선 유기들의 탈주자학적 상상력을 계승하는 측면이 있음을 보였다. 다음으로 단양 산수유기 중에서 처음으로 일기체를 벗어나 小節化의 양식을 채용한 「추기동협유상」의 형식이 지닌 의의를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19세기 유기 작가들에게 「추기동협유상」의 표현들이 변형된 채 받아들여지거나 인용되거나 인용표지 없이 표절되었던 양상과 의미를 분석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조귀명의 유기가 지닌 독특한 주관성과 자연관의 의미를 파악하였다. 아울러 조귀명의 유기에서 인간과 자아가 교감하는 특별한 순간이 지니는 미적 가치의 의미를 밝혔다. This thesis examines Jo Guimyeong's travel writing. I preceded the actual explanation of the texts with an investigation on biological, philosophical, and cultural background of the author and the creation of texts. As an result I confirmed that the author himself was a high aristocrat who suffered from innate illness and concentrated on literature very seriously. Also it has been found that his philosophical thinking has shown relevance to that of Yangmingxue, one of the most prominent Neo-confucianist schools in Ming Dynasty, and his literary opinion strongly advocated individuality, all of which are very closely related with Late-Ming 'Informal Essay(Xiaopinwen)' movement, a cultural phenomenon in Joseon Dynasty at the time. Then I undertook the actual examination of Jo Guimyeong's travel diaries, Yugi in Korean, where I identified these four main characteristics in theme: curiosity toward the mysterious, aesthetic perception mediated by art, consciousness on mortality, and lyrical transformation of the ego. These thematic characteristics reverberated in those in expression, namely: argumentation through analogy and imagination, various modes of figures of speech and unfamiliar vehicles, and syntactic anomalies and distinctive style. In doing so I have applied a comparative analysis in order to ascertain the influence of other works in Jo Guimyeong’s texts, especially of those from Informal Essay movement, Yuan Hongdao and Wang Siren, and of those of a more distant origin, Classic of Mountains and Seas(Shanhaijing). Finally, the meaning of Jo Guimyeong's travel writing in light of literary history was discussed under these three points of view: Deploying unorthodox imagination, Introducing a new form, and Setting up a new standard. Through the process above I reached to a conclusion that the distinctive characteristics of Jo Guimyeong's travel writing lie in its anthropocentric subjectivity, which is unusual in East-Asian travel writing, and its continuous attempts to create one's own style from the influence of previous eminent writers. I also argued that despite its artificialness and abstruseness, Travel Account of a Previous Trip to Eastern Canyon(Chugidonghyeopyusang) displayed one of those rare moments when a man and nature sympathized with each other.

    • 동계(東谿) 조귀명(趙龜命) 산문 연구 : 일대기류 산문을 중심으로

      문미애 전북대학교 일반대학원 2023 국내박사

      RANK : 247807

      본고는 동계(東谿) 조귀명(趙龜命)의 일대기류 산문을 대상으로 구성 방식과 서술 특성을 살펴보았다. 일대기류 산문이란 주로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그의 일생을 재구성하는 산문으로, 비지⋅전장⋅애제류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 산문들은 상장례(喪葬禮)에 관계되고 후대에 남길 목적으로 짓는다는 특성상 꽤 견고한 투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기에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난점이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약간의 변화도 쉽게 감지된다는 이점도 존재한다. Ⅱ장에서는 조귀명 산문의 구성 방식을 살펴보았다. 조귀명은 비지류의 구성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서로 다른 슬픔이 쌓이거나 불우가 확산되거나 한이 드러나는 등 정서가 표출되게 하였다. 또 구성 요소를 재배치하고, 의론과 특정 요소를 대폭 확대하고, 가상 인물의 일화를 배치하는 등 대상의 대표적 특성이 드러나도록 편장을 구성하였다. 조귀명의 산문은 특히 앞뒤를 종횡하며 몇 번을 곱씹어 보아야만 진의(眞意)를 파악할 수 있도록 구조화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Ⅲ장에서는 조귀명 산문의 서술 특성을 살펴보았다. 조귀명은 일대기 산문의 세부 갈래 특성을 활용하여 하나의 대상에 대해 두 갈래의 작품을 짓되, 두 작품을 서로 연결되게 함으로써 함께 읽을 때 주제적으로 더 깊이가 있게 하였다. 또 작가 자신과의 친소나 관계에 따라 서술의 태도나 대상, 서술의 주체를 차별화하였다. 그러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글을 짓다 보니 친밀하지 않은 사람조차 최대한 자신과의 연결점을 찾아서 거기로부터 글을 쓴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Ⅳ장에서는 조귀명 산문 전체를 대상으로 언어 표현 양상을 살펴보았다. 먼저 조귀명은 기존의 언어를 수용하되 자기만의 조어(造語) 방식을 통해 기존 언어가 주는 미감을 전환시켰다. 다음으로 문장 안에서 연결사나 종결사 등을 지나치게 줄이거나 과도하게 사용함으로써 문장을 낯설게 하고 독해를 어렵게 하였다. 이러한 언어 표현은 자신만의 개성 있는 언어 창출일 뿐만 아니라, 독자를 세밀하게 독서하게 함으로써 意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의지였음을 확인하였다. Ⅴ장에서는 조귀명 산문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를 살펴보았다. 먼저 조귀명은 조선 후기 고문론의 세 갈래를 각각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자신만의 개성적인 글을 지은 작가라는 것을 밝혔다. 다음으로 조귀명의 일대기류 산문이 조선 후기 일대기류 산문의 전범으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밝혔다. 이 연구를 통해 조귀명은 산문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 아래, 갈래와 편장, 문장, 어휘뿐만 아니라 표현의 독창성까지 깊이 생각하면서 자신만의 산문을 지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趙顯命과 趙龜命 散文의 정치적 성격과 의미

      최두헌 고려대학교 대학원 2021 국내박사

      RANK : 247756

      본 논문은 정치적 맥락 속에서 한문 산문 작품 이면의 정치적 의도와 의미를 파악하는 분석 방법을 모색하고, 이를 적용하여 歸鹿 趙顯命과 東谿 趙龜命 산문의 정치적 의도를 구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기존의 한문학 연구에서는 사대부와 정치, 그리고 정치사상으로서의 성리학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저자의 정치관이 실제 창작에 반영되는 양상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본 논문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면의 정치적 의도를 파악하는 산문 분석 방법을 모색하고, 이를 조현명과 조귀명의 산문 분석에 적용하였다. 조현명과 조귀명은 삼종형제로서 평생 깊은 친분을 유지했으며, 가문과 당파의 영향으로 비슷한 정치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입지와 문학에 대한 태도, 개성 등의 차이로 뚜렷이 구별되는 삶의 행적과 작품 세계를 보였다. 조현명은 무신란이 일어났을 때 사로도순무사 오명항의 종사관으로서 참전한 것을 계기로 오명항 사후 그의 행장을 저술하였다. 소론과 남인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무신란으로 인해 소론은 정치적 위기에 처했고, 오명항이 갖는 討逆의 상징성을 지키고 자기들 것으로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조현명이 쓴 오명항의 행장은 이런 정치적 맥락 속에서 저술된 것으로, 무신란으로 인해 정치적 위기에 처한 소론의 명분과 입지를 보호하면서 한편으로는 탕평 정치 추진의 기반을 닦기 위한 의도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현명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관찰사로 있을 때 많은 공적 건축물의 건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고 이에 대한 글을 써서 남겼다. 조현명은 정치적 수단으로서 공적 건축물이 갖는 유용함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공적 건축물에 대한 글을 저술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 작품들에서 조현명은 표면적으로는 건축물의 修築 경위를 서술하고 장소가 갖는 의미를 부연하면서, 이면에는 자신이 관찰사로서 벌인 사업을 선전하고, 정치적 동지들의 유능함을 부각시키며, 당시의 관료들을 비판하는 등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를 담아냈다. 경신처분 이후 자신과 가문·당파가 逆으로 몰리는 정치적 위기 속에서 조현명은 자신에게 있어 진실인 역사를 기록하여 올바른 기억을 보존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이에 따라 그는 우선 서문·기문 등을 통해 소론의 주요 인물과 가문이 보인 忠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逆과 싸웠던 소론 인물의 공로를 현양하고 기억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이러한 현양과 기억의 영향이 계승의 구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문, 나아가 소론 전반으로 확장되도록 의도하였다. 또한 조현명은 스스로 자신의 연보인 「자저기년」을 썼다. 「자저기년」에서 조현명은 자신의 형상을 공평하고 중립적인 태도로 탕평 정치를 위해 헌신한 정치가, 임금의 심성을 계도하기 위해 간언하는 강직한 신하, 경세제민의 능력과 치적을 갖춘 실무 관료로 그려내는 데에 주력하였다. 이는 조현명이 역사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기록되기를 바랐는지 잘 보여준다. 조귀명은 관직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통치 행위에 직접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다만 정치적 식견과 문장력으로 인해 젊은 시절부터 부형의 정치 활동을 보좌하는 글쓰기를 빈번하게 수행했다. 조귀명은 이른 시기부터 집안사람들의 글을 대작했는데, 본 논문에서는 이중 조문명을 대신하여 쓴, 왕이 직접 지내는 제사를 위한 제문과 수령인 조준명을 대신하여 쓴 기우제문을 각각 살펴보았다. 영조의 영릉 친제를 위해 쓴 제문에서 조귀명은, 영조가 효종의 능에 행차하는 조치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효종과의 동일시로 해석하여 작품에 반영하였고, 영조의 스승이었으며 심학을 권면하였던 조문명·조현명에게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효종의 정치에 대한 송시열의 영향력을 서술하였다. 조준명을 대신하여 쓴 기우제문에서는 제사의 대상인 신령을 설득하는 논리의 기저에 명과 실의 관계에 대한 조귀명 특유의 인식이 깔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일반적인 기우제문과 달리 화자인 수령이 가뭄의 원인으로 자신의 잘못된 정사를 들며 자책하지 않고 오히려 수령의 헌신을 강조한 것을 통해 조준명의 치적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귀명은 조준명이 무신란 직후 청주 목사로 부임했을 때 따라가 조준명의 정사를 보좌하는 글쓰기를 수행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공적 건축물에 대한 기문과 상량문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조준명이 수축에 직접 관여한 청주 향교와 삼충사는 모두 건축물의 실용적인 기능과 역할보다는 건물의 상징성과 건물의 수축에 내포된 정치적 함의의 측면에서 중요했다. 조귀명은 이러한 상징성과 함의를 부연하여 탕평파의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전환하고, 한편으로는 또한 무신란의 수습 과정에서 조준명이 이룬 치적을 선전함으로써 안정적인 탕평 정치의 기반을 다지려고 하였다. 조귀명은 선비들의 도덕적·학문적 기초 소양을 닦는 교육을 중시하였고, 교육의 방편으로서 역사 서술을 활용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조귀명의 역사서술을 실제의 역사에 대한 서술과 가상의 역사 서술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조귀명은 역사서의 학습을 통해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지식과 통찰을 얻었고 이를 유비관계에 기초하여 현실 정치를 인식하고 비판하는 데에 적용하였으며, 자신의 작품에 반영함으로써 정치 참여 계층의 교육에 활용하고자 했다. 조귀명은 역사 서술을 통해 단순히 정치에 대한 일반론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지을 수 있는 상징적인 인물과 사건을 선택하여 서술하였다. 「장공예백인설」이나 「매분구옥랑전」에서 조귀명은 왕실내부의 권력다툼이나 세자 교체 시도 등 예민한 정치적 사안을 환기할 수 있는 부분은 작품의 본론에서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작품을 마무리하면서 한두 문장으로 간단하고 모호하게 서술하였다. 조귀명의 가상의 역사는 책문 등 다른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서술한 현실 정치 비판과 대안 제시, 역사 서술과 역사 비평 등을 허구적인 설정에 기반한 우화의 형식으로 재조직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가전인 「오원자전」은 능력을 기준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군주, 뛰어난 능력과 충성심으로 국가·군주에게 헌신하는 신하의 형상이 부각된 작품이었으며, 이러한 이상적 정치가의 형상에 어긋나는 현실을 비판하는 의도도 담고 있었다. 이는 책문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된, 實 중시의 정치관 안에 포괄된다는 점에서 조귀명의 정치관의 특징과 일관성을 보여준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두 사람의 산문에서 정치적 격변이라는 역사적 맥락, 상징 조작을 통한 명분의 획득이라는 의도, 상징 조작을 위한 자기중심적 역사 서술·해석으로 정리될 수 있는 전형성과 풍양 조씨 가문 소속의 소론 탕평파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특수성을 도출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가문과 당색이 다른 노론 문인 산문에 나타나는 정치적 의도를 분석함으로써 조현명·조귀명 산문에 나타나는 정치적 성격의 특징과 의의를 재확인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정치적 관점에서 본 산문 연구의 확장 가능성도 살펴볼 수 있었다.

    • 18세기 전반 羅州 林氏 家門 文人의 散文 硏究 : 林象鼎, 林象德, 林象元을 중심으로

      정하정 고려대학교 대학원 2020 국내박사

      RANK : 247595

      본고는 18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羅州 林氏 가문의 문인인 林象鼎(1681~1755), 林象德(1683~1719), 林象元(1709~1760)을 대상으로 그들의 산문 세계를 분석하여 특징을 규명하고, 그들의 문학사적 위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들은 종형제ㆍ재종형제 간으로 서로의 학문과 문학 형성에 영향을 주었고, 당대 산문 작가로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남겼던바, 소론계 나주 임씨 가문을 대표하는 산문 작가이자, 이 시기 문학사를 이해하는 데에 유의미한 연구 대상이라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18세기 전반의 문학을 이해하는 접근 방법으로서 ‘가문’을 활용하되, 그간의 연구와 달리 ‘동시대성’을 중시하여 같은 시기에 활동한 한 가문의 세 인물이 문학사에 남긴 족적을 추적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들은 당대 소론계 유력 가문과의 혼맥을 통해서 교분을 쌓고 세의를 다졌으며, 그들과 함께 문학적 교유 활동을 벌였다. 그만큼 세 인물에게 주어진 환경은 비슷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각기 다른 삶의 지향을 가졌고 그에 따라 삶의 양태도 다르게 나타났다. 학문에 있어서도 똑같이 사학의 조예를 바탕으로 史書를 편찬하였지만, 역사서의 편찬 의식에는 차이를 보였다. 게다가 老佛에 대해서는 이들이 보이는 인식의 층차가 보다 크게 나타났다. 산문 세계 역시 각기 다른 개성적 모습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그들의 다른 삶의 지향과 생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선 세 인물은 공통적으로 성리학적 道文觀을 견지하면서도 문학에 대한 독자적 가치를 중시하고 문학 학습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여기에서 나아가 임상정의 경우는 嗜好와 自娛의 문학을 지향하고 특히 蘇軾 애호하였으며, 임상덕은 문학 창작에서 ‘實’과 ‘意’를 중시하였다. 임상원은 神妙不惻함과 意ㆍ氣ㆍ法이 조화를 이루는 活法을 추구하였다. 각각 다른 삶의 지향과 문학관은 그들의 실제 산문 작품에도 일부 반영되었다. 먼저 임상정은 비록 중앙 조정과 떨어진 재야에서 지냈지만 사대부의 사회적 실천 의식이 투철했던바, 名實相符의 강조를 통한 사대부의 허위의식을 비판하는 작품을 남겼다. 여기서 그는 가상의 일화를 구성함으로써 사대부의 허위를 고발하거나 자신이 첩을 들인 일에 해명하는 등 작품의 소재와 구성에 있어서 독특함을 발현하였다. 또한 한미한 인물의 일화를 재구성하면서 서사의 확장을 통해 현장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처사의 삶 속에서 학문에 침잠고자 했던 임상덕의 경우는 讀書窮理와 觀物察理를 바탕으로 한 보편적인 주제의 산문을 다수 남겼다. 그런데 그 보편적인 주제를 구현하는 과정, 다시 말해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작품의 구성과 표현 방식에 있어서 보편성을 탈피하였다. 예컨대 꿈의 다층적 의미를 활용한 독서궁리의 다짐을 표현한 記文, 수탉과 병아리의 싸움을 재현하여 인간 세상의 경계와 교훈을 전하는 寓言은 주제를 표현해 내는 立意의 방식에서 특징을 보였다. 게다가 임상덕은 논변류 산문에서 자신의 특장을 드러냈다. 통념에 비켜서는 독창적 입론을 수립하는가 하면, 전대 작가의 논의를 반박하면서 그의 논리를 차용하여 논파하기도 하였다. 특히 후자는 논리의 전개 방식은 물론이고, 가상의 논적을 등장시켜 논박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전대의 논의를 비판하는 일반적인 논변류 산문과 대별되었다. 이는 그의 務實과 主意의 문학관이 반영된 결과였다. 임상원의 경우 탄핵ㆍ삭직ㆍ유배를 경험하고도 끊임없이 出仕를 선택한 삶의 행적이 산문에서도 드러났다. 신하로서의 경세 책무 의식을 강조하는 주제의 산문과 정치적 불우 속에 초연한 삶을 종용하는 내용의 산문이 중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삶과 연관되어 있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문학의 특성으로 인식한 神妙不惻함을 문학적으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韓愈의 「送窮門」을 차용하되 다양한 서사의 변주를 보이거나, 序文에서 익살스럽게 서술 대상의 행위에 회의를 표하거나, 한 곳의 유람지를 대상으로 3편의 연작 산수유기를 지으며 󰡔장자󰡕의 인식론을 기반으로 자연합일의 즐거움을 표현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산문에서 보이는 발상의 전환과 관습적 서사의 변주는 그가 가진 문학관의 실천적 결과물이었다. 한편, 각자의 개성 있는 산문 세계를 보인 이들은 산문 작품의 내적 성취만 외에도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문학적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소론계 문풍과 학풍의 계승이다. 임상정은 산문이론, 임상덕은 역사 저술과 사론 산문, 임상원은 탕평론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당대 노론과 상이한 노선을 구축한 소론계의 문학적ㆍ학문적 흐름을 잇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정 그 흐름을 주도하고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 인물이 갖는 당대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둘째, 산문 창작 과정의 소통과 교섭 양상이다. 이들은 산문 창작 과정에서 조귀명ㆍ최홍간ㆍ양득중 등과 소통하고 교섭하면서 보다 다채롭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당대 뛰어난 문인ㆍ학자들과 함께 소통과 교섭을 바탕으로 한 문학 창작 활동을 영위했다 점과 아울러 이를 통해 특징적 산문을 산생했다는 점은 당대 그들이 갖는 문학사적 위상을 대변해 주는 것이었다.

    • 東谿 趙龜命 文章論의 變貌와 散文 연구

      김민학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2014 국내석사

      RANK : 247391

      The literary theory of jea-do-gi-ki was declared as the Chosun dynasty emerged itself on a page of the history. All throughout the dynasty, literacy was merely considered as a container which only served its purpose by containing Neo-Confucianism within. This somewhat rigorous theory functioned as a cartel that caged literacy until the end of the dynasty. However, in the earlier days of 17th century, a movement which aimed to divide literacy from Neo- Confucianism ideology was observed. The tendency was finally theorized and established when it came to Jo gwi myoung, which he named Do-mun-boon-li. Jo gye myoung stressed the beauty of literacy itself. Thereby, he produced each unique works which were not shackled to any ideas. It was possible due to the fact that he laid Ju-ui-ron literary theory on the very foundation level. This thesis firstly examined where Jo gye myoung‘s rather distinctive works derive its origin from. The criticism towards Su Dong Po can be seen here and there in ‘Dong-gye-jip’. After some analyzing took place, it was revealed that the main ideas of Dong-gye’s literary theory such as Gyeon-sik and Hea-o were roughly based on Su Dong Po‘s literary theory. In addition, Dong-gye drastically criticized Ming dynasty Ui-go-pa Jeon-hu-chil-ja’s classical literary theory but displayed a favorable relation to Song dynasty’s literary circles. Presumably, it resulted from Dong-gye having well-read Gong-an-pa and Jeon-gyeom-ik’s work. Moreover, Dong-gye’s association with Chosun literary circles were studied, mainly with such literates as Kim-chang-hyeop, Kim-chang-heup, Li-ha-gon. After the fall of Ming dynasty, Dong-gye asserted that the essence of East Asian literacy was in Chosun. He also commented that by the contribution from Kim Nong Am brothers, Chosun’s literacy was elevated and now roughly at the same level as Ming’s. It seems that Dong-gye’s unique literary theory was established upon the solid ground that Kim Nong Am brothers have stomped with anti imitation of ancient style logic. In ‘transfiguration of syntax’, the transformation of the two main ideas of Dong-gye, ‘Do-mun-boon-li’ and ‘Bang-go-chang-sin’ along with his life was contemplated. Dong-gye in his 20s defended himself concentrating solely on producing works without Neo-Confucianism, but him in 30s revealed a strong will to engage in writing with his very own view by establishing the logic that expressions and Neo-Confucianism are not related. Same goes for the Bang-go-chang-sin. By the age of 21, Dong-gye was only able to compromise between Bang-go and chang-sin. However, 20 years later he re-established the idea ‘Jeok-ui’ with the new standard of compromising ‘Ui’. Not only distributing them in a row, but uniformly practicing them in ‘Ju-ui-ron’ suggests a great significance. Lastly in ‘reality of the Dong-gye prose, ‘Dong-gye-jip’‘s biography and rhetorical writing were extracted and analyzed, not to mention how above Dong-gye’s theory were actually applied.

    • 東谿 趙龜命 散文 硏究

      박상영 高麗大學校 大學院 2003 국내석사

      RANK : 247390

      본고는 東谿 趙龜命(1693-1737)의 산문에 대한 작품론을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동계는 조선후기를 이해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작가이다. 그는 당대에 八文章의 一人으로 지목되었던 인물로, 農巖 金昌協(1651-1708)과 燕巖 朴趾源(1737-1805) 사이에 놓이는 그의 생존 시기의 중요성을 차치하고라도, 그가 당시 文士들과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내세웠던 독특한 주장들은 개성론을 강조하는 국면을 지니고 있어 이후 문예적 흐름의 예비단계로서 연구자들에게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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