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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Kim, Hye-Su) 한국양명학회 2015 陽明學 Vol.0 No.41
본 연구는 장횡거(張橫渠) 기론(氣論)과 왕양명(王陽明) 양지설(良知說)의 구조적 유사성을 기초로 장횡거 기론에 대한 양명학적 변용을 해명하는데 있다. 여기서 필자는 송명유학의 본질이 도덕형이상학의 구축에 있으며, 이런 관점에서 왕양명의 양지설은 장횡거 기론을 토대로 발전된 이론이라고 파악했다. 사실 장횡거의 기론은 객관적 현상세계를 구성하는 ‘기(氣)’를 바탕으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고 그 도덕적 의미를 제시하려는 시도이고, 왕양명의 양지설은 도덕실천주체로서 인간의 도덕본심에 초점을 두고 ‘양지(良知)’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양지’로써 만물일체를 이루는 도덕이론을 구축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장횡거와 왕양명의 학문체계는 그 방법론적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송명유학의 본질과 도덕형이상학의 구축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장횡거는 ‘기’를 본체와 작용으로 구분하여 천도가 유행하는 우주생성변화의 자연법칙이 인간 본성의 도덕법칙과 동일함을 강조하면서, ‘천도(天道)’와 ‘성명(性命)’이 하나로 관통하여 만물일체가 되는 도덕형이상학을 구축했고, 왕양명은 ‘양지’를 인간의 도덕본체로 삼고 그 도덕본체의 작용을 통해 나와 만물이 ‘양지’로써 일체가 되는 도덕형이상학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장횡거와 왕양명이 바라보는 송명유학의 본질은 서로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필자는 왕양명이 양지설을 확립할 때, 장횡거의 ‘태허(太虛)’와 ‘기’, 그리고 체용(體用)관계의 이론구조를 수용하여 전개했다는 점에서 왕양명의 양지설을 장횡거 기론의 양명학적 변용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왕양명이 자신의 독창적인 양지설을 확립하는 데 장횡거의 기론은 왕양명에게 적지 않은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This study’s purpose is to explain the transformation of Yang-ming studies based on structural Similarity of the Qi-theory(氣論) of Zhang Heng-qu(張橫渠) and the Liang-zhi theory(良知說) of Wang Yang-Ming(王陽明). This study understood that the essence of Song-Ming Confucianism is to build a Moral Metaphysics. In this respect, this study judged that the Liang-zhi theory of Wang Yang-Ming had improved with the help of the Qi-theory of Zhang Heng-qu. Actually, the Qi-theory of Zhang Heng-qu explains human nature based on ‘Qi (氣)’ which composes objective the Phenomenal World and tries to suggest it’s ethical meaning. Meanwhile, the Liang-zhi theory of Wang Yang-Ming develop Liang-zhi theory with focusing the moral real intention as subject of moral practice and tries to build moral theory which form the Unity as Liang-zhi(良知). In this regard, the study system of Zhang Heng-qu and Wang Yang-Ming shows some methodological differences. But in essence of Song-Ming Confucianism and building of Moral Metaphysics view, Zhang Heng-qu built a moral metaphysics which became the unity by going through ‘Tian-dao(天道)’ and ‘Xing-ming(性命)’ with a emphasis on the same of the universe creation’s law of nature and human nature’s moral principles. Wang Yang-Ming made an human’s moral original substance of a Liang-zhi and built of Moral Metaphysics which made oneself and all creation into a Liang-zhi through the effect of moral original substance. In this respect, the essence of Song-Ming Confucianism of Zhang Heng-qu and Wang Yang-Ming could say that it have concurred with each other. Also, this study understood that the Liang-zhi theory of Wang Yang-Ming is a Psychological variant the Qi-theory of Zhang Heng-qu in that accepting the Zhang Heng-qu’s ‘Tai-xu(太虛)’, ‘Qi(氣)’ and ‘Ti-yong(體用)’ when Wang Yang-Ming established the Liang-zhi theory. So, this study concluded that the Qi-theory of Zhang Heng-qu have a strong influence on Wang Yang-Ming in establishing his creative Liang-zhi theory.
김혜수(Kim, Hye-Su) 한국양명학회 2015 한국양명학회 학술대회 논문집 Vol.2015 No.10
본 논문은 주자(朱子)와 왕양명(王陽明)의 공부론(工夫論) 비교를 통해 공부론의 측면에서 주자와 왕양명이 주장하는 마음과 인성의 의미를 해석한 연구이다. 주자와 왕양명은 모두 인성은 본래 지극히 선(善)한 천리(天理)이지만, 현실의 인욕(人欲)에 의해 그 선한 인성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송명 유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인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은 제거한다(存天理去人欲)’는 사유를 공부의 핵심명제로 삼고,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제거함으로써 인심(人心)으로부터 성인의 마음, 즉 도심(道心)에 도달하는 공부론을 제시하였다. 주자는 몸소 체험해 온 도덕적 지식과 그 실천을 병행하는 공부를 바탕으로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라는 공부론을 확립하였고, 왕양명은 도덕적 지식은 곧 실천을 수반한다는 도덕적 본체, 즉 천리에 대한 체득을 바탕으로 치양지(致良知)의 공부론을 주장하였다. 주자의 거경궁리(居敬窮理)는 불완전한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된 천리를 자각하여 마음의 도덕실천 역량을 발휘하는 공부로써, 주자는 바로 이 공부를 통하여 선한 본성은 마음이 아닌 이치, 즉, 성즉리(性卽理)라는 심성론(心性論)과 청명한 마음을 제한하는 기질의 인욕을 도덕적 본체와 구분한 이기론(理氣論)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왕양명의 치양지는 도덕실천능력을 갖춘 도덕직관이자 천리 그 자체인 양지를 기르고 확충해 나가는 공부로써, 왕양명은 자신의 공부를 통하여 마음은 천리, 즉 이치라는 심즉리(心卽理)의 심성론과 양지본체론을 주장한다. 특히 필자는 본 논문에서 주자와 왕양명 공부론은 『대학(大學)』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기반으로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왕양명의 공부론이 비록 주자의 공부론과 외형적으로 상이한 방향이지만, 본질적 측면에서 도덕적 인격, 혹은 인성을 완성하려는 목적과 그 취지는 서로 일치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왕양명의 치양지공부는 왕양명 활동 당시 인식적인 앎을 위주로 하는 격물치지 혹은 궁리공부가 본질적인 천리의 역량강화를 중시하는 함양성찰의 거경공부 보다 선행되었던 상황에서 본질적인 본체공부에 힘써야 한다는 의미를 갖으며, 아울러 단일한 방향으로 간결해진 공부형태를 보인다. 따라서 왕양명의 치양지는 주자의 공부론 보다 좀 더 간결하고, 도덕주체로서의 마음을 더욱 부각시킨 공부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하지만, 왕양명의 치양지공부는 객관적으로 천리를 인식할 수 있느냐의 측면에서 볼 때, 오직 내 자신의 주관적인 마음에 의지하여 직관적으로 천리를 체인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 부분은 주자 후학들이 왕양명 공부론을 불교의 선학(禪學)이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This article is a study interpreting the sense of heart and personality alleged by Zhu Xi and Wang Yangming in terms of studying theory through comparison of studying theory of Zhu Xi and Wang Yangming. Zhu Xi and Wang Yangming thought that the personality is inherently very natural laws but does not reveal the good of personality by the desire of reality because of the desire of reality. Therefore, they thought a reason is the core proposition of studying as ‘preserve the natural laws and eliminates human desire’ of common recognition of confucian scholars in Song and Ming Dynasty. In addition, they proposed studying theory to become an adult as a moral personality to preserve natural laws and eliminate human desire. Zhu Xi established studying theory of Ju-jing(居敬) and Qiong-li(窮理) based on the study, which combined personally experienced moral and practical knowledge. And Wang Yangming argued studying theroy of Qi liang-zhi(致良知) based on the mastery about the natural laws as a moral body that the moral knowledge is accompanied by practice. Zhu Xi’s Ju-jing Qiong-li(居敬窮理) is the study to demonstrate the moral and practical competency of mind to awaken the inherent principles in incomplete human minds. Through this study, Zhu Xi proposed Theory of Xin-xing(心性論) of Theory of ‘Human Nature is Principle’(性卽理) that good nature is not the mind but the reason and the Theory of Li-qi(理氣論) that divides the Human Desire of the temperament to restrict the clear mind and the moral body. And Wang Yangming’s Qi liang-zhi is a study going to expand to raise the understanding of natural laws itself as well as moral intuition with moral practice ability. Through this study, Wang Yangming argued Theory of Xin-xing of Theory of ‘Human Nature is Principle’ as the reason that the mind is natural laws and the theory of original substance of mind with innate moral knowledge(良知本體論). In particular, I have the following views in this paper. The studying theroy of Zhu Xi and Wang Yangming was formed based on theory of Ge-wu-zhi-zhi(格物致知) of 『The Great Learning(大學)』. Although the studying theory of Zhu Xi and Wang Yangming are different in appearance but, the purpose and intent to complete the toughness essentially coincide with each other. In other words, the study of Qi liang-zhi of Wang Yangming has the meaning that it strive to study of the intrinsic body in the preceding situation than the study of Ju-jing of cultivation and reflection that theory of Ge-wu-zhi-zhi mainly to cognitive awareness at the time of his activity or the study of Gungri focuses on the empowerment of essential natural laws. Furthermore. Thus, I thought Wang Yangming‘ Qi liang-zhi is more concise than studying theory of Zhu Xi and a study which highlighted even more the mind. But, the study of Qi liang-zhi of Wang Yangming flows to the direction to chain instinctive the natural laws only by relying on my own subjective mind in terms of whether to recognize objective the natural laws. Because of this part, the junior scholars of Zhu Xi received criticism that the studying theory of Wang Yangming is the dogmatic of Zen Buddhism.
왕양명의 용장오도 다시 읽기 - 용장의 생활을 중심으로 -
이우진(李偶賑) 한국양명학회 2020 陽明學 Vol.0 No.59
이 글은 ‘왕양명의 용장오도(龍場悟道)’가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실존적 결단에 의해 촉구된 해답’이라 전제하고, 용장오도 직후에 왕양명이 취한 일련의 사건들을 ‘성인으로 살겠다는 그의 결단이 구현된 모습들’로 규정하였다. 과연 용장이라는 한계상황에서 ‘양명학의 성인 즉 왕양명’은 어떻게 삶을 헤쳐나갔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이 글의 문제의식이다. 용장오도 이후의 왕양명이 시행한 주요활동은 ‘『오경억설』의 저술, 원주민과의 관계개선, 용강서원에서의 교육활동’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오경억설』을 살펴보면, 왕양명의 소해(疏解)는 이제까지의 유학 전통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자적인 ‘심체(心體)와 심학(心學)에 입각한 소해 방식’이었다. 또한『오경억설』의 소해에는 심즉리와 지행합일의 아이디어가 담겨 있었다. 다음으로, 원주민과의 관계 개선 부분을 살펴보았다. 왕양명은 ‘이상적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일’은 장소의 문제와 결코 결부되지 않는다고 파악하였다. 특히 왕양명은 중원(中原)의 사람들이 화려한 문명을 지녔지만 내외(內外)와 표리(表裏)가 부동(不同)하다는 점에서 비루하다고 여겼다. 반면 소박한 문명을 지녔지만 내외와 표리가 일치하는 용장의 원주민들은 비루하다고 여기지 아니하였다. 또한 그는 용장의 원주민들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본성의 선함과 교육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용강서원(龍岡書院)의 교육활동을 살펴보았다. 왕양명은 교육기관의 목표가 ‘덕의 완성[成德]’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입장에서 입지(立志)ㆍ근학(勤學)ㆍ개과(改過)ㆍ책선(責善)이라는 네 가지 교육의 조목인 ‘교조시용장제생(教條示龍塲諸生)’을 수립하였다. 무엇보다 왕양명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선(善)으로 이끌어 주는 관계 중심적인 행복을 추구하였다. 이는 왕양명이 구상한 이상적 인간은 노불(老佛)이 말하는 자기 독존적인 선(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선(善)을 이루려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This paper presupposed that Wang Yangming’s ‘the Sudden Enlightement in Longchang(龍場悟道)’ was the answer urged by his existential decision of ‘to become a Sage’, and defined that the series of his actions after ‘the Sudden Enlightement in longchang’ as ‘the embodiment of his determination to live as a Sage’. The central problem of this papere was to find out how ‘the sage of Wang Yangming School’ managed to endure in the critical situation of Longchang. After the Sudden Enlightement in Longchang, The three main activities implemented by Wang Yangming can be summarized as ‘Writing of The conjectural annotation of Five Classics (五經臆說)’, ‘the Improving relations with indigenous people’ and ‘The educational activities at Longang private Confucian academy.’ First, Wang Yangming’s annotation way in The conjectural annotation of Five Classics was an independent method of annotation based on ‘heart/mind’s substance (心體)’ and ‘Learning of the heart/mind(心學)’. His method of annotation is hard to find in the tradition of Confucianism. In addition, The conjectural annotation of Five Classics contained ideas of ‘Heart/Mind is the Principle(心卽理)’ and ‘The Unity of Knowledge and Action(知行合一).’ Next, I looked at the improvement of Wang Yangming’s relations with indigenous people. He thought that “the task of living like an ideal human being” was never related to the problem of the place. In particular, Wang Yangming insisted that although people in ‘Main China(中原)’ had splendid civilizations, but they were dirty because they were ambidextrous. On the other hand, he believed that although the natives in Longchang had a simple civilization, they were not shabby because they didn’t speak with a forked tongue. In addition, his relationship with the natives also ensured the goodness of human nature and the infinite possibilities of education. Finally, I looked at Wang Yangming’s educational activities in Longang private Confucian academy(龍岡書院). He defined the goal of education as ‘fulfillment of virtue(成德).’ For this purpose, he established ‘The doctrines for educating students in longchang(教條示龍塲諸生)’, which have an four-discipline: Tremendous determination, Studying hard, Reforming errors, Encouraging good doings. Above all, he pursued relationship-oriented happiness in which all students led each other to good. This showed that the ideal human being envisioned by Wang Yangming was not made up of what self-exclusive good perosn emphasized by Taoism and Buddhism, but rather to achieve good with the community.
김윤경(金允景) 한국양명학회 2010 陽明學 Vol.0 No.27
왕양명의 ‘四句敎’는 양명학의 分岐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교의이다. 기존 鄭齊斗의 ‘四句敎’ 연구가 『霞谷集』의 「大學說」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면, 필자는 『霞谷集』의 「善惡無定形」이 四句敎’에 대한 정제두의 견해가 농축된 장으로 보았다. ‘四句敎’는 양명학의 本體와 工夫에 대한 논의로서 ‘無善無惡心之體’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학파적 이해를 달리한다. 王龍溪가 ‘心體’를 ‘無善無惡’으로 보고, 도덕본체를 깨닫는 공부법을 말했다면, 錢德洪은 ‘心體’를 ‘至善無惡’으로 보고 爲善去惡하는 공부의 필요성을 말하였다. 이상과 같은 왕용계와 전덕홍의 견해차는 원래 왕양명부터 노정된 문제이다. 왕양명은 ‘心體’를 ‘無善無惡’과 ‘至善’ 두 가지로 정의하였다. 도덕본체인 ‘心體’를 ‘無善無惡’하다고 정의한다면, 心體는 배양할 善도 제거할 惡도 없다. 반면에 ‘심체’를 ‘至善’하다고 정의한다면, ‘爲善去惡’ 의 공부법을 통해 도달할 ‘至善’한 ‘심체’가 요청된다. 왕양명은 根機에 따라 ‘心體’의 ‘無善無惡’함을 깨닫는 ‘無’의 공부법과, ‘爲善去惡’을 통해 ‘至善’한 본체를 회복하는 ‘有’의 공부법이 모두 필요하다고 보았다. 왕양명의 견해에 대해 鄭齊斗는 ‘四句敎’의 핵심이 ‘無善無惡心之體’에 있다고 보고, 왕양명이 ‘心之體’를 ‘無善無惡’과 ‘至善’으로 동시에 보는 견해를 계승하면서, 모순된 두 논의가 가능한 근거를 제시하였다. 鄭齊斗는 두 가지로 ‘善’을 구분하여 心體가 ‘無善’이자 ‘至善’임을 밝혀 양명이 말한 ‘無善無惡’과 ‘至善’이 심체의 양 측면임을 주장하였다. 鄭齊斗도 王陽明처럼 心體의 ‘爲善去惡’을 통해 ‘至善’함을 회복하는 有의 공부법과 심체의 ‘無善無惡’함을 깨닫는 無의 공부법을 동시에 인정하고 있다. 정제두의 四句敎에 대한 논의를 통해 볼 때 그는 왕용계의 ‘四無說’과 전덕홍의 ‘四有說’ 모두를 수용하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정제두가 ‘良知現成論’과 ‘四無說’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양명우파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그는 왕양명의 ‘四句敎’ 공부법의 핵심을 이해하여 ‘四無說’과 ‘四有說’ 어느 한 측면에 치우치지 않았으며, 나아가 왕양명의 ‘四句敎’를 논리적으로 보완하고자 하였다.
홍성민(洪性敏) 한국동양철학회 2011 동양철학 Vol.0 No.36
이 논문의 목적은 주자철학에서 灑落의 의미를 조명해보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주자는 戒愼恐懼의 엄숙한 수양을 강조했기 때문에 그의 철학에서는 쇄락의 경지가 인정되지 못했다고 평가되어 왔다. 한편 왕양명은 그와 반대로 자유분방한 쇄락의 경지를 적극 추구했다고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이 논문은 이러한 일반적인 견해에 반대하면서, 주자 철학 내부에서 쇄락의 경지를 탐색하고 아울러 주자의 쇄락론이 왕양명에게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글은 다음과 같이 세부적인 논증을 진행하고 있다. 첫째, 우선 쇄락이란 실제로 어떤 상태이며 그것은 도덕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이 논문은 曾點의 氣象에 대한 주자와 왕양명의 해석을 비교하고 있다. 주자는 曾點의 기상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고 쇄락을 도덕적 자유와 도덕 행위의 자재함으로 규정하였는데, 이점은 왕양명도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주자와 왕양명은 공통적으로 도덕 원칙을 충실히 따를 때만 쇄락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둘째, 쇄락에 이르는 공부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주자는 쇄락의 공부로 敬畏를 강조하고 쇄락을 경외의 효험으로 설정하였는데, 이 점에서도 왕양명은 주자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셋째, 쇄락의 심리적 사태에 대한 주자와 왕양명의 설명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왕양명의 쇄락은 ‘無善無惡心之體’라는 마음 이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것은 불교의 지혜를 적극 흡수하여 융합한 것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쇄락의 심체에 관한 이러한 왕양명의 생각은 오히려 주자의 正心論을 계승한 것이었음을 밝혔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이 논문은 주자에게 쇄락의 경지가 분명히 존재했었으며 그것이 왕양명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这篇文章的目的在於照明朱子哲学之洒落的意义. 从一般的观点来说, 因为朱子修养论的倾向是理智的和严肃的, 所以那个哲学里没有洒落的境界. 但是这篇文章反对这样观点, 而试图发见朱子哲学洒落的境界. 并且根据这样研究, 证明朱子之洒落连系到王阳明之洒落思想. 这篇文章的细节论证如下. 第一, 为了照明洒落与道德之关系, 比较朱子和王阳明对曾点气象的评价. 依照这研究, 他们都把洒落规定为道德的自由与道德行为的自在性. 第二, 朱子将敬畏视为洒落的功夫, 而且把洒落看成敬畏的效验. 王阳明也披沥了和朱子一样的想法. 第三, 按照陈来的说法, 王阳明洒落说的地盘是‘无善无恶心之体’的心体论. 可是王阳明的这样想法是继承朱子的正心论. 总的来说, 这篇文章主张, 不但朱子具有洒落的境界, 而且朱子和王阳明具有同一的洒落轨道.
왕양명(王陽明)의 정체성 찾기와 제사(濟事)의 유학 정립
신정근 인문예술학회 2019 인문과 예술 Vol.- No.6
This paper covers the process of Wang Yang-ming wandering 20 years, and then getting out of 五溺(five weaknesses) and going abroad to study Confucianism. At this time, the mainstream Confucianism disturb rather than faithfully and successfully guide through Confucianism. Wang Yang-ming thought that mainstream Confucianism could not save the original spirit of confucianism. Eventually, Wang Yang-ming establishes the new identity of Confucianism and enters into Confucianism and summarizes his long journey of wandering. In this article, we will look at the limitations of mainstream Confucianism at the time that Wang Yang-ming found out and try to track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 identity of confucianism from the viewpoint of the new Realist School’s point. Wang Yang-ming tried to make it clear the relation of zhixing 知行(real knowledge and acting) that knowing thing does not end with knowing thing and can/must lead to practice. Through this, the scholar-gentry class 士大夫 can solve the problem of reality and achieve the ideal community that is said in confucianism. If all peoples are suffering from a misery and does not know that it is, and does not reach out to salvation, scholarship and thought will abandon its role. Wang Yang-ming felt this pain more sensitive than anyone else, so he set up the extension of innate knowledge 致良知 of empathy and salvation. 이글은 왕양명이 20년 방황을 보내다가 오닉(五溺)을 벗어나 유학에 입문하는 과정을 다룬다. 당시의 주류 유학은 왕양명이 유학으로 입문을 충실하고 성공적으로 안내하기보다 오히려 방해하는 특성을 보였다. 왕양명은 주류 유학이 유학의 본래 정신을 살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왕양명은 유학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고서야 유학에 입문하며 자신의 기나긴 방황의 여정을 정리하게 된다. 이글에서 우리는 왕양명이 찾아낸 당시 주류 유학의 한계를 살펴보고 신실학의 관점에서 유학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과정을 추적하고자 한다. 왕양명이 아는 것이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져서 지행(知行)의 관계를 풀고자 했다. 이를 통해 사대부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여 유학에서 말하는 이상적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다. 사람이 도탄에 빠져 고통을 겪고 있는 데도 그런 줄 모르거나 알고 구원의 손길을 뻗지 않는다면, 사상은 제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 이에 왕양명은 누구보다도 이 고통을 민감하게 느꼈기 때문에 공감(共感)과 제사(濟事)의 치양지(致良知)를 내세웠던 것이다.
현재우(Hyun Jae-woo) 한국양명학회 2008 陽明學 Vol.0 No.21
이 논문은 왕양명(王陽明: 1472-1528)의 종교적 경험을 윌리엄 제임스 (W. James)의 시각에서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종교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방법론적 틀로 본 논문은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에 대한 이론을 사용할 것이다. 제임스는 ‘급진적 경험론’을 통해 경험을 단지 심리학적 대상이 아니라 형이상학과 결합시킴으로써 그 이해의 폭을 넓혔다. 일반적으로 경험은 주체들이 겪는 주관적인 체험(體驗)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타당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모종의 객관성이 필요하다. 제임스는 경험이라는 용어를 ‘의식의 흐름’으로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객관성을 확보한다. 곧 주관적 체험은 의식의 흐름(경험) 안에서 만나게 되는 일시적인 사건인 셈이고, 경험은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식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근거이다. 왕양명의 종교적 경험을 살핌에 있어서는 그가 제자들과 함께 성인의 길을 지향하던 과정을 잘 담고 있는 『전습록』을 중심으로 탐구한다. 이를 해석하고 설명함에 있어서는 왕양명의 삶과 사상에서 중요하게 간주되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해석을 수용하면서도 제임스의 시각으로 새롭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들을 드러나게 하는데 초점을 둔다. 이를 통해 기존의 연구가 신비경험만을 종교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이성주의와 대립시키는 시각을 가진 것과 달리, 왕양명이 ‘보이지 않는 것의 실재성’인 천리와 그것이 주체에 내재된 양지를 어떻게 경험하고, 이 과정 안에서 영적 훈련을 통해 ‘자기중심성’을 넘어서 ‘보다 넓은 자아’와 합일을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을 살폈다. 이때 양지를 제임스가 제안한 잠재의식으로 설명함으로써 기존의 선험적 성격을 부여한 연구와는 다른 시각으로 양지가 갖는 내재적이고 보편적 의식의 성격을 종교적 경험과 연결시켰다. 왕양명의 종교적 경험의 특징은 일상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명에게 모든 영적 수련은 매일 겪는 일에서 하는 것이며[사상마련 事上磨煉], 그 결과 갖게 되는 삶의 열매로서 모든 관계에 조화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종교적 천인합일 경험의 증표이며, 이 수양방식에는 감성적 요소와 지성적 요소가 잘 결합되어있다. 요컨대 양명은 자기 존재의 불안감인 인욕을 자각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치양지’라는 구원의 길을 끊임없이 걸어가면서 ‘세상 속에서 종교적’으로 살아간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This paper purports to explore religious experiences of Wang Yang-ming(王陽明: 1472-1528) from the perspective of William James. As a methodological tool to explore ‘religious experience’, this paper will use James’ theory on ‘religious experience’. Through ‘radical empiricism’, James combined experiences with metaphysics, expanding people’s understanding on them. They are no longer a mere psychological object. Generally, experiences are understood as personal ones. However, there must be a certain objectivity if they can be accepted properly to others. James achieved objectivity by defining “experience” as “stream of consciousness”. That is, a personal experience is a temporary case encountered in the ‘stream of consciousness’ and in a broader term, an experience is on an epistemological and metaphysical basis. It mainly explores Instructions for Practical living which well shows his journey with his followers to find the way of “being a Sage”. In understanding and explaining it, this paper accepts conventional explanation on important themes in his life and philosophy, while focusing on revealing some pans which can get new explan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James. Previous studies believe only mysterious experiences are religious and place them in a confronting position with rationalism However, this paper investigates how Wang Yang-ming experienced “Heavenly Principle - Reality of the Unseen”, and liangzhi which is embedded in subject and finds out that through spiritual training, he experienced the unity with “Wider-self”, overcoming egocentrism. By explaining liangzhi as subliminal consciousness self suggested by James and with different viewpoint from transcendental, conventional studies, it connects the intrinsic and universal characteristic of liangzhi with religious experiences. A characteristic of religious experiences of Wang Yang-ming is thar they always happen in the daily life. To Yang-ming, every spiritual exercise should start from things people experience daily[shishang molian : 事上磨煉]. The exercise bears a life fruit of living a harmonious life in every relation, which is “religious unity experience” and this cultivation well combines emotional elements and intellectual elements. In short, Wang Yang-min was well aware of “human desire - uneasiness” and in order to deal with this matter, he walked on the way to salvation, zhi liangzhi. In that sense, he can be considered a man living ‘religiously in the world.’
최재목(崔在穆) 한국양명학회 2008 陽明學 Vol.0 No.21
이 논문은 崔南善의 『少年』誌와 東敬治의 『陽明學』誌를 중심으로 近代 韓國ㆍ日本의 「陽明先生肖像」에 나타난 思想 戰略을 살펴본 것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로서의 王陽明 사상이 일본의 明治期에서 재평가되어 근대적 학문의 맥락에서 朱子學, 古學이란 용어와 더불어 新造語인 ‘陽明學’이란 개념이 탄생하여 중국으로 進輸出되고, 한국은 일본과 중국 양방향에서 그 개념 수용의 시간적 편차를 보이면서도 근대 학술로 서서히 편 입해간다. 이 속에는, 近代知의 領有와 交信이, 동아시아 내부에 제국주의의 확산과 맞물려 진행된 遊學生 및 지식인의 교류, 텍스트 流通網을 통해서 긴밀히 이루어진다. 이 가운데서 「陽明先生肖像」은, 근대적 정신을 고취시키는 하나의 주요 記號로서, 아울러 실천적 사상을 전하는 미디어 역할을 하는 형태로 유통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기본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것이긴 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맥락 속에서 그것을 복제 혹은 재생산하는 형태로 잡지나 저술 등에 편집하여 넣는 형태로 활용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王陽明 생전과 逝去 후에 여러 종류의 초상화가 나온다. 이들의 일부가 한국과 일본으로 유입되어 활용된다. 일부는 복제되고, 일부는 모사되고, 또 일부는 중국에서 유출되어 일본에만 남아있기도 하다. 이러한 복잡한 정황은 동아시아 근대사의 복잡한 궤적과도 맞물려있다. 주자학이 주류를 이룸으로써 양명학 유통망에 장애가 있었던 한국에서는 「陽明先生肖像」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거의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崔南善의 『少年』誌、 終刊號에 들어있는 「陽明先生肖像」일 것이다. 이 號에는 특집으로서 讓谷 朴殷植(l859~ 1925)의 『王陽明先生實記』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특집호의 口繪로서 실린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東敬治(호는 正堂, 敬治는 이름 1860- 1935)가 주간하는 「陽明學會」 발행의 『陽明學』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잡지와 학술서를 통해 다량의 「陽明先生肖像」이 유통된다. 여기서는 모든 것을, 지면 관계상 모두 다루지 않고 그 가운데 朴殷植에게 영향을 주었던 『陽明學』을 대상으로 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여기에만여러 건의 「陽明先生肖像」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이것은 대부분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중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동아시아 근대기에 「陽明先生肖像」은 일반 대중 그 가운데서도 청년 및 소년(=청소년)을 계몽하는 하나의 ‘실천적 정신’을 전달하는 새로운 미디어로서 등장하고 있었으며, 또한 肖像의 선택에는 나름대로의 의미부여가 있었다. 그렇다면 肖像은 근대적 사상을 전달하는 전략으로서 하나의 미디어 역할을 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王陽明 생전 및 逝去 후에 나타난 肖像畵를 살펴보고, 한국의 「陽明先生肖像」은 崔南善의 『少年』誌를 통해서, 일본의 그것은 東敬治의 『陽明學』誌를 통해서 각각 살펴보고 그 近代的 의의를 思想 戰略的 자원에서 짚어본다.
申承勳(Shin Sheung-Hun)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04 동양한문학연구 Vol.20 No.-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양명학을 異端의 學說이라 규정하고 배척하였는데, 이는 양명학이 독립적이며 온전한 체계를 가진 학설로서 대접받기 이전부터 이미 학설로서 거론되는 자격을 박탈당하는 선입관으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학문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성리학자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문장가들의 저술에 나타나는 양명학 내지 왕양명에 대한 언급이 당대의 사상계나 학술계에 양명학이 미쳤던 영향을 오히려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왕양명의 學說은 학설의 分岐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지만, 학문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기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장의 피력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왕양명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학자로서의 부응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왕양명은 한 사람의 학자로서 또 역사 속의 한 시대를 살아간 자연인으로서 나름대로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했던 인물이다. 조선에 전해진 王陽明의 저술과 양명학에 관련한 서적을 읽은 當代의 文人ㆍ學者들은 새로운 사상에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정주학적 입장에서 이단으로 보아 배척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 시기의 문장가들은 學說과 思想의 차원에서는 양명학에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文章과 事功의 차원에서는 매우 우호적인 시각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문장가들이 왕양명과 양명학에 관심을 가지고 수용한 의미는 고착화되지 않은 학문계의 유연한 생동감과 활기를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기에 이르는 이 시기에서 찾을 수 있다는 데 있다고 하겠다. 그 수용의 양상은 兼採ㆍ?用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주자학에 대한 존숭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사상에 대한 관심을 외면할 수 없었던 當代人들의 고뇌가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The scholars of the doctrine of Chu-tzu(朱子學) in Chosun dynasty regarded the Philosophy of Wang, Yang-Ming(陽明學) as a teaching that did not confirm to Confucianism, and they rejected it. This fact acted on preconception that the Philosophy of Wang, Yang-Ming(陽明學) was deprived of qualification in doctrine, before the Philosophy of Wang, Yang-Ming(陽明學) was regarded as a theory that had a independent and sound system. Therefore the literary work of writers can show the influence on the society of scholarship realistically in those days. The doctrine of the Philosophy of Wang, Yang-Ming(陽明學) is deeply meaningful not only scientifically but also socially. That"s why Wang, Yang-Ming(王陽明) lived not only as a great scholar but also as a natural human at that time. He did his best to live his significant life as a natural human, and put his theory in practice. By the way, the doctrine of the Philosophy of Wang, Yang-Ming(陽明學) that was transmitted in Chosun, was not received ideologically, but it was received literally and in Sa-gong-hak(事功學). That appeared in the phase of Combined Choice(兼採) and Combined Use(?用).
김세정(金世貞) 한국양명학회 2009 陽明學 Vol.0 No.24
王畿와 錢德洪 사이에 전개된 四句논변은 물론 사구교에 대한 양명의 본의와 함의를 밝히는 작업은 중국양명학파 분화의 주요 원인과 특성을 밝히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연구이다. 대부분의 사구교 관련 연구는 왕기와 전덕홍의 논변에 집중되어 있고, 양명의 입장이라는 것도 대부분 왕기 또는 전덕홍의 입장에서 조명되고 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양명의 철학사상 전반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사구교에 대한 양명 자신의 본의와 함의를 밝혀보았다. 사구교가 수록된 자료 가운데 양명의 『年譜』와 『傳習錄』 315조목에 기록된 내용이 비교적 두 사람의 입장을 온전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天泉問答’은 ‘사구교 제출 배경 및 전덕홍과 왕기의 사구논변’, ‘양명의 절충적 입장 표명’, ‘양명의 四句宗旨에 대한 강조와 두 사람의 입장에 대한 우려 표명’, 이상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양명의 철학사상 전반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양명 사구교를 ‘無善無惡한 心本體의 함의’, ‘有善有惡한 意念의 이중성’, ‘知善知惡과 爲善去惡의 필요성’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고찰하였다. 인간은 천지만물과 一體이며 천지만물의 마음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천지만물과 올바른 감응을 위해서는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無善無惡是心之體”란 心本體는 是非善惡에 대한 판단 규범 또는 준칙을 고정된 형태로 미리 마음속에 설정해두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본체는 마주하는 대상과 상황에 따라 감응하는 과정에서 시비선악의 준칙을 새롭게 창출한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하나의 개체생명체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과 안위에만 집착하는 私欲이 있다. 이로 인해 의념의 단계에서는 심본체에서 직발한 誠意뿐만 아니라 사욕에서 기인한 私意라는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하기 때문에 “有善有惡是意之動”이라고 말한다. 有善有惡한 의념의 이중성으로 인해 인간은 항상 惡으로 흘러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良知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념이 善(是)한지 惡(非)한지를 스스로 알 수 있으며, 이 양지로 인해 惡의 경향성을 차단할 수 있다. 양지가 천지만물과 감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념은 물론 천지만물의 생명의 온전성에 대한 시비선악 여부를 자각적으로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 “知善知惡是良知”이다. 의념의 선악 상태를 아는 것만으로 인간의 생명본질(良知)은 실현되지 않는다. 반드시 부정한 의념으로 고정私意는 철저하게 제거는 (去惡) 심본체를 회복하고 善한 의념을 미진함 없이 실천으로 이행(爲善)해야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爲善去惡是格物”이다. 양명의 사구교는 인간이 천지만물과 하나 됨의 토대이자 진정으로 하나가 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