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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레미야의 순교적 신앙에 관한 연구 : 다섯 고백을 중심으로

        안병철 서울장신대학교 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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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앞에서 예언자 예레미야가 살았던 시대와 그 주변상황, 특히 기울어져가는 남왕국 유다에서 야웨의 부르심을 받아 유다의 멸망을 지켜보며 예언했던 예언자의 생애와 예언활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예레미야의 탄식 중에서 다섯 고백들을 살펴보았다. 예레미야는 주전 7∼6세기 남왕국 유다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 야웨의 부르심을 받아 유다가 야웨의 심판으로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였는데(21:10, 32:39, 34:2, 37:8∼10, 38:23), 이러한 회개를 촉구하는 심판 메시지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지지를 받을 뿐 대부분의 지도자들, 동료 예언자들, 심지어 가족과 고향 사람들에게까지 거부를 당하게 되었다(20:1, 26:7, 36:25, 37:14, 38:4). 이로 인하여 예레미야는 여러 가지 고난과 박해를 당하게 되었는데, 이는 야웨께서 맡기신 예언사역의 결과였다(20:1∼2, 26:8∼9, 37:17∼19). 이러한 고난과 박해의 상황 가운데서 예레미야는 여러 차례 탄식을 쏟아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탄식행위 혹은 탄식현상은 야웨의 명령을 거부하거나 외면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겪었던 외적인 압박과 박해로 시작된 내적인 갈등의 문제들 속에서 고뇌하고 번민하는 중에 나온 신음과도 같은 것이다. 처절한 무너짐 속에서 예언자는 절규하며 신음했지만, 그런 중에도 야웨에 대한 신뢰만큼은 놓지 않았다. 자기의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껴지는 현실의 한계로 인하여 흘러나온 탄식들은 야웨의 응답의 말씀으로 인한 새로운 소명(소명의 재확인)을 경험하게 되면서 다시금 야웨께서 맡기신 예언자의 직무 앞에 당당히 서도록 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예레미야는 절망의 최저점을 통과하면서 ‘마골-밋사빕’(사방의 두려움)이라는 별명이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 더욱 강하게 연단되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야웨의 말씀을 대언하며 예언자로서의 직무를 온전히 감당한 예레미야의 신앙은 그야말로 순교를 각오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견주어 본다 할지라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오히려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때부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 오직 야웨만을 위하여 살아간 그의 순교적 신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신앙의 한 요소이다. 한 개인으로서, 야웨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언자로서 세상 사람들 누구나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것을 오직 야웨를 위하여 버려야 했던 예레미야는 때때로 그의 예언자 직무를 포기하고 싶었으나 야웨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야웨께서는 이런 예레미야를 다시 세우시고 소명을 재확인 시키시며 연약한 상태의 예레미야를 통하여 끝까지 야웨의 말씀과 뜻을 유다 백성들에게 알리셨고, 예레미야는 죽음을 각오한 순교자적인 신앙으로 그의 예언자 직무를 감당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예레미야 29장에 나타난 예언 선포 의미에 관한 연구

        반세호 한국성서대학교대학원 2006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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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예레미야 29장에 나타난 예언 선포 의미에 관한 연구이다. 예레미야 예언의 실질적 성취로서 야웨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바벨론에 유배된 유다 백성들에게 보낸 예레미야의 서신을 통해 예언 선포의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위의 논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내포한다. 예레미야는 서신을 통해 줄곧 강포와 멸망을 외치며, 동시에 회개를 촉구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예언의 양면성이 아닌가? 지울 수 없는 ‘심판’의 결과를 초래한 유다 백성들에게 예레미야가 촉구한 ‘회개’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다. 이 질문의 대답을 위해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논문을 형성하고 있다. Ⅱ장에서 연구자는 예레미야 29장을 살피기에 앞서 예레미야의 시대적 상황과 생애와 사역을 고찰함으로 유다 백성들이 국외·국내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이르렀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예레미야 27-28장 사이에 일어난 거짓 예언자와의 갈등을 통해 예레미야의 예언 속에 민족과 바벨론 포로 민들에 대한 태도를 언급했다. Ⅲ장에서 연구자는 예레미야 29장에 대한 본문 분석을 위해 두 가지 방법으로 접근하였다. 첫째는 본문의 구조연구이다. 예레미야 29장을 구분하는 단서 세 가지를 제시함으로서 통일된 단락의 구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예레미야 29장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어졌으며, 첫째 단락은 서론과 본 서신의 주제를 담고 있었다. 본문에 해당하는 두 번째 단락은 앞 단락의 주제를 설명하기 위한 소 단락을 이루었고 각 소 단락은 대칭 구조를 형성하여 구조적으로 통일성을 이룬다. 두 번째는 수사적 표현들에 대한 연구이다. 예레미야 29장에 사용된 문학적 장치들을 발견함으로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밝히는데 주목했다. Ⅳ장에서 연구자는 Ⅲ장의 연구결과를 기초하여 예레미야 29:1-23에 나타난 예레미야 예언 선포의 신학적 의의를 고찰하였다. 예레미야 입술에 허락하신 메시지는 강포와 멸망이다. 예레미야는 철저하게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을 소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심판은 야웨 하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회복의 메시지를 포함시킴으로 구원자로서의 하나님을 소개한다. 셋째, 일련의 바벨론 유배 사건을 통해 유다 역사의 중심은 야웨 하나님의 주권임을 밝히고 있다.

      •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새 계약의 기능에 대한 연구

        임창수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1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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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예레미야서 31:31-34의 새 계약과 그 기능에 관한 연구이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고대 근동의 계약에 대한 많은 정보의 습득이 가능해졌다. 계약의 어원학적 연구를 통해 계약의 정의가 무엇인지, 계약의 체결방법은 어떠한지, 계약의 유형 연구를 통해 계약이 어떤 성격들을 지니고 있는지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새 계약을 하나님 편에서의 일방적인 계약이라고 하며, 그것을 은혜의 계약이라고도 칭한다.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를 맺으실 때 항상 계약을 체결하시는데, 새 계약도 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기 위해 체결하는 계약이다. 그러나 새 계약이라 부르는 것은 옛 계약과 차이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레미야서 31:33, 34에 나타난 새 계약의 내용에서 나타나는데, 31:33은 마음에 두는 법을 말하고 있고, 31:34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일반화와 완전한 죄 사함을 말하고 있다. 이밖에 최근에 새 계약의 여러 특징들에 관한 연구가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그렇다면 이 새 계약이 예레미야서 전체에서 갖는 기능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필자는 ‘위로와 희망’그리고 ‘완전한 죄 사함’이라고 생각하며 연구를 진행했다. 예레미야 당시의 국제적인 정세는 매우 혼란스러웠고, 국내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지도자들로부터 백성들까지 모두 부패한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는 심판을 외칠 수밖에 없었지만, 한편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새 계약이라는 한 줄기 빛을 전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새 계약은 완전한 죄 사함의 기능을 갖는다. 새 계약은 예레미야서 안에서 나타난 모든 죄들을 사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 완전한 죄 사함은 예레미야서 전체에서 유일하게 새 계약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새 계약은 예레미야서 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핵심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

      • 예레미야 32장에 나타난 '희망' 연구

        오강일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1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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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32장은 예레미야서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큰 희망의 메시지가 선포 되었던 부분이다. 소위 위로의 책이라 불리는 예레미야 30-33장 안에 편집된 32장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전했던 공허한 희망이 아니라 현실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되어 질 수 없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희망이었다. 예레미야가 말하고 행동한 희망의 예언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지나온 암울한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에 얽매여 다가 올 미래의 소망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닥쳐 올 심판을 회피하거나 미루지 않으며 심판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백성들을 향해 질책하거나 회개를 요청하지도 않는다. 예언자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희망하며 그 희망의 근거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본 연구는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희망’의 메시지가 포로기에 외쳐진 메시지라기보다 포로기 이후 새롭게 시작하는 성전 공동체의 형성에 기여한 바를 밝히고자 한다. 예레미야의 전승은 이스라엘 역사 전체에 걸쳐 가장 큰 범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일정 시대에 한정 된 것이 아니라 포로기 이전 요시야의 종교개혁과 포로기에 직면한 재앙의 상황까지도 예레미야의 전승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전승이 포로기 이후에도 활발하게 백성들에게 전해졌다는 연구는 그 중요성에 비해 크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본 연구는 예레미야 전승의 포로기 이후 적용에 대해 살피고자 한다. 우선 Ⅱ 장에서는 예레미야서의 전체 연구사와 예레미야 32장의 연구사를 간략하게 살핀다. 예레미야의 연구사를 통해 편집비평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편집비평의 장점과 한계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최근에 학자들에 의해 대두되는 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수사비평 방법론과 구르는 전집 모델의 적용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다. Ⅲ 장에서는 본문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한다. ‘위로의 책’이라 불리는 30-33장 안에서 32장의 위치를 확인하고 예레미야 32장의 사역을 통해 얻어낸 결과로서 본문비평과 사역풀이, 본문주석을 시도한다. 이때 본문의 주석은 예레미야 32장이 예레미야서의 대표적인 ‘상징행위 본문’임을 염두에 두고 이 상징행위의 메시지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Ⅳ 장에서는 본격적인 ‘예레미야 32장의 편집비평’ 연구를 한다. 이 편집 비평은 ‘소위 신명기 역사’와의 관계가 그 중심을 이루는데 먼저 신명기 역사 연구에 대한 개괄적 이해를 통해 예레미야서와 신명기 역사의 관계를 살핀다. 그리고 예레미야 32장에 나타난 신명기적 표현들을 살피며 예레미야 32장의 편집층을 구분하고 편집의 과정과 편집의도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예레미야 32장에 나타난 신명기적 특징을 파악하고 이 전통이 포로기 이후에 어떻게 확장되고 적용되었는지 확인한다. Ⅴ 장에서는 예레미야 32장에 나타난 ‘희망’의 구조적인 측면을 살핀다. 이는 Ⅳ장에서 확인한 포로기 이후의 최종 편집자가 어떤 문학적 구조를 통해 ‘희망’이라는 주제를 강조하였는지 확인한다. 이러한 연구방법을 통해 최종적으로 얻고자 하는 결론은 예레미야 32장을 통해 드러난 예레미야의 행동과 메시지가 당시의 시대 속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상징행위가 이후 계속적인 편집을 거치면서 어떻게 확장되었으며 또 그 확장을 통해 얻고자 했던 신학적인 메시지는 무엇인지 살핀다. 그 희망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심판 뒤에 따르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 예언자의 탄원에 반드시 응답하는 하나님을 봄으로서 오늘날 우리 시대에 외쳐질 희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긴다.

      • 예레미야를 통해 본 예수의 성전 행위의 의미 분석 : 렘 7:1-15, 막 11:15-19를 중심으로

        김명년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201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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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와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실천되지 않았던 시대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이다. 두 예언자의 시대는 공통적으로 힘없던 이웃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억압과 착취를 당하던 때였다. 그들은 각기 다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일치를 보였다. 그들이 선포한 일치된 내용이란, 바로 사회적 사랑을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렘 7:1-15과 막 11:15-19는 마가의 신학적인 의도에 따라 상당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마가는 예수의 성전 행위가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의 맥락 아래에서 읽혀지도록 의도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성전에 들어가서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남유다 백성들의 십계명 위반을 비판한다(렘 7:9). 이 십계명 언급을 통해 예레미야는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첫째, 남유다로 하여금 그들의 초기 소명이 무엇인지 상기하도록 만든다. 초기 소명이란 이스라엘이 핍박하는 애굽을 떠나 이웃 사이에서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약속의 땅을 정의와 사랑이 실천되는 장소로 만들지 못하였으며 옛 애굽과 같이 이웃을 핍박하는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므로 그들의 초기 소명은 상실되었다. 둘째, 십계명은 이스라엘이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기초적인 사회 질서였다. 예레미야가 범죄한 남유다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언급한 이유는, 십계명이 애굽처럼 변해버린 남유다를 심판하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실천되는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 안에는 이웃 사랑의 실패와 새로운 공동체 탄생 암시가 들어가 있다. 이 두 가지의 내용은 마가에 의해 예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도 예레미야 때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억압과 착취를 당하였다. 그들은 로마 제국과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극심한 수탈을 경험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은 극빈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으며, 결국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선택은 노예가 되거나, 일용직 노동자가 되거나, 도적떼에 가입하는 것뿐이었다. 예수는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구조에 저항하였으며 착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 당국자들과 대립하였다. 여기에서 마가는 구약 성서 인용문을 예수의 말로 첨가하였다(막 11:17). 이 인용문을 통해 마가는 두 가지를 설명한다. 첫째, 예수는 옛 예언자들의 전통 위에 서있으며 성전을 파괴하려는 예수의 시도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둘째, 억압을 일삼는 기존 체제를 거부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 예수의 행동 역시 합당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를 통해 예수의 성전 행위를 보았을 때, 예수는 불합리한 성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더해, 예수는 억압이나 착취가 없는 새로운 공동체를 구축하였다. Jeremiah and Jesus were prophets who worked in times when the Word of God was not fully practiced. In common, the days of the two prophets were at the time of social, political and economic oppression and exploitation of the weakest neighbors. They preached the word of God in different times, but they were consistent in their content. The unified content they proclaimed was God's word to practice social love. Jer 7:1-15 and Mark 11:15-19 have a significant connection according to Mark's theological intent. Mark intends that the temple work of Jesus be read in the context of Jeremiah's temple preaching. Jeremiah enter the temple and criticizes the violation of the Ten Commandments by the southern people of Judah who oppress the weak(Jer 7:9). Through this mention of the Ten Commandments, Jeremiah points out two aspects. First, it reminds Southern Judah of what their early calling is. The early calling means that Israel leaves Egypt where they are persecuted and creates a new nation among its neighbors, full of love and justice. However, they did not make the land of promise a place where justice and love were practiced, and they turned into persecuting their neighbors like the old Egyptians. Therefore, their initial call was lost. Second, the Ten Commandments were the basic social order that Israel received from God to make a new nation. The reason why Jeremiah mentioned the Ten Commandments to the Southern Jews who sinned is to give the implication that the Ten Commandments could judge South Judah, who have turned like Egypt and create a new nation where the Word of God is to be practiced. In other words, in Jeremiah's temple sermons, there are a failure of neighborly love and a hint of the birth of a new nation. Both of these are equally applicable to Jesus by Mark. During the days when Jesus lived, the weak were oppressed and exploited, as in Jeremiah’s times. They experienced serious economic, social and political exploitation from the Roman Empire and the Temple of Jerusalem. The result was that the poor were in a state of extreme poverty, and in the end their choices were only to be slaves, to become daily workers, or to join gangs. Jesus resisted he unprotected structures of the weak, entered into the temple, which was regarded as a symbol of exploitation, and opposed against the authorities of the temple. Here Mark referred to the Old Testament in the words of Jesus (Mark 11:17). Through this quotation, Mark explains two things. First, Jesus stands on the tradition of the old prophets and Jesus' attempt to destroy the temple is justified. Second, it means that the actions of Jesus, who rejected the existing system of oppression and created a new community, are also reasonable. As a result, looking at the temple work of Jesus though Jeremiah’s temple preaching reveals that Jesus actively rejected the temple which had become unjustified. In addition, Jesus established a new community where neither opposition nor exploitation existed.

      • 예레미야에 나타난 윤리사상과 바울윤리와의 연관성 연구 : 예레미야 9장 23-24절 중심으로

        이영식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1919

        예레미야서 9장 23-24절의 본문과 그 본문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고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면서 그 단어들이 어떤 뜻이 있고, 그 단어들이 가지는 하나님의 성품으로서의 의미가 무엇이며, 예레미야에서는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 열방의 선지자 예레미야에 대한 연구

        위현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2017 국내석사

        RANK : 1919

        열방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민족의 극악한 타락을 적당히 넘어가지 않고 전력을 다하여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가 자신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때, 백성은 예레미야에게 고통과 핍박으로 응대하였다. 그들은 죄악에서 돌이키기는커녕 더욱더 가증스러운 일들을 자행하였다. 하나님께서 언약백성으로 이스라엘을 구별하셨건만, 말씀을 깨닫지 못한 백성은 바벨론 포로를 불가피하게 하고 죄악의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향해 숨도 쉬지 않고 달려간다.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심판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올 수 밖에 없는 죄악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진노의 잔을 연기하셨다. 또한 회개를 촉구하시며 부지런히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권고한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도 유다의 남은 자를 통한 회복에 대한 소망을 말씀하시고, 이방에게도 장차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짐을 알려준다.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의 파기로 말미암아 다시 새롭게 태어날 언약백성을 계획하셨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 언약 안에 있는 영적인 언약백성을 이루시기 위해 예레미야를 열방의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의로운 가지에 의해 이스라엘이 구원될 날이 올 것이며, 참 이스라엘은 혈육의 관계에 있지 않은 새 언약백성으로 이루어 질것을 선포하고 있다(렘 23:5-6).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혈통적인 이스라엘 백성만의 하나님이 아닌, 온 우주적인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이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심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우주적인 계획아래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므로 열방을 구원으로 안내하는 제사장적 역할을 감당하라는 분부이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교회들에게 필자는 ‘열방의 선지자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몇 가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레갑 족속처럼 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레미야서 35장에 나오는 레갑 족속과 같은 행함 있는 믿음의 자녀로 살아내기 위해 세상의 소욕에 가치를 두지 말아야 함을 본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 선조의 유언을 따라 어떠한 유혹에도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집도 짓지 아니하고 장막생활을 한다. 그들처럼 이 땅의 소욕을 위해 쌓아 둠이 아닌 정결한 마음과 정결한 행동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이 땅이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가 아님을 깨닫고, 우리의 나아갈 본향을 바라보며, 이 땅의 소유에 집착하지 말고, 열방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참된 일꾼으로서,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히 여기며,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기 위해 열심히 나아가는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진 참된 감람나무의 역할을 감당했으면 좋겠다. 둘째, 장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재림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도적처럼 임한다(살전 5:2). 성도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마 25:1-13)와 같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며 올바른 신앙의 자세로서 장자의 역할을 역사의 오고 오는 세대를 향해 대표성을 가지고 나가야 할 것이다. 셋째, 성경 교육을 바르게 실현해야 할 것이다. 죄악으로 무너진 세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깨어서 성경 교육을 바르게 실현해야 하며 바른 기독교인들의 삶으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넷째, 인간을 지으신 분의 목적에 맞게 살아가야 하겠다.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백성답게 살지 못함으로 결국 그들은 심판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신앙의 큰 부분을 구성하는 실제적인 의무에는 무관심하였다. 종교의 도덕적이고 영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고 시대적인 종교적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해 오직 의식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그들의 삶이었으며, 자신의 기질에 맞추어 자신에 맞게 고안한 형태의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 가는 양식인양 행하였다. 20세기 후반부터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지식의 폭발은 놀라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교회생활은 어떠한가? 흡사 유다 말기의 신앙생활보다 더 외식적인 신앙생활이 아닌가 돌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는 결코 쉽지만은 않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분의 목적에 맞게 세상 안에서 구분된 삶이 아닌 구별된 삶으로 그리스도인의 본분에 맞는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인식하며 열방의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 예레미야 30-33장에 나타난 구원신탁 연구

        김 현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2022 국내석사

        RANK : 1919

        예레미야서는 바벨론의 침략 직전의 상황과 바벨론의 침략의 상황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다. 그리하여 예레미야 선지자의 메시지와 삶은 철저하게 바벨론의 침략과 관련된다. 그의 메시지의 핵심을 정리하면, ‘바벨론에 항복하고, 바벨론의 왕을 섬기고,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사는 것이 야훼의 뜻이라’는 것이다. 철저하게 예레미야는 남유다 백성들에게 임할 심판을 선포하였다. 이러한 메시지로 인해 2가지의 현상이 발생했다. 하나는 당시 남유다를 지배하던 왕과 지도자와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핍박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하여 예레미야 선지자의 메시지가 거짓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에는 심판의 말씀만 나타나지 않는다. 특별히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희망의 말씀을 전하였다. “이 민족들은 70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 70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렘 25:11-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70년 이후에는 남유다를 침략했던 바벨론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이 폐허가 되며, 고난을 당했던 남유다 백성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심판의 말씀뿐만 아니라 희망의 말씀도 선포하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러한 희망의 말씀이 예레미야 30-33장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더 특이한 것은 희망의 말씀이 귀환 + 회복의 구조로 형성되어 6번이나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구체적으로 귀환의 내용과 회복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로 귀환의 내용으로는 귀환의 주관자(야훼-1인칭 표현을 통해 강조됨), 귀환의 대상(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포로들), 귀환의 장소(야훼가 주신 땅), 귀환의 모습(감사와 즐거움), 귀환의 이유(언약 관계)가 강조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둘째로 회복의 내용으로는 내면적인 회복(마음의 회복, 영성의 회복), 외면적인 회복(생활의 회복, 경제의 회복, 통치의 회복), 총체적인 회복(언약 관계의 회복으로 인한 내적이고 외적인 회복)이 강조됨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특이한 것 중의 하나는 예레미야가 시대적으로 바벨론과 관련하여 포로들의 귀환과 회복을 처음으로 선포한 선지자라는 것이다. 바벨론 침략의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귀환과 회복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예레미야는 바벨론과 관련하여 희망의 말씀을 선포한 최초의 선지자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레미야의 귀환과 회복에 대한 말씀은, 비록 학자들이 의구심을 가지지만, 예레미야 이후에 등장한 에스겔, 제2이사야, 제3이사야의 희망에 관한 말씀의 모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Jeremiah had a status of the situation before the Babylon invasion and the invasion of Babylon as a historical background. Thus, the messages and life of Jeremiah are thoroughly related to Babylon's invasion. The core of his message is to "surrender to Babylon, serve Babylon's king and to be attracted to Babylon". Jeremiah declared his judgment thoroughly to the people of Judah. There were two phenomena due to these messages. The first is that the kings and leaders and people who dominated Judah at the time persecuted Jeremiah, and the second is that false prophets blamed that the message of Jeremiah is false. So Jeremiah was called "the prophet of tears". However, Jeremiah does not show only the words of judgment. Specifically, Jeremiah conveyed the words of the following hope: "These nations will serve the king of Babylon for 70 years ... When 70 years are fulfilled, I will punish the king of Babylon and his nation, the land of the Babylonians, for their guilt, declares the Lord, and will make it desolate forever"(Jer. 25:11-12). "This is what the Lord says: When 70 years are completed for Babylon, I will come to you and fulfill my good promise to bring you back to this place"(Jer. 29:10). After 70 years, the King of Babylon who invaded Judah, the land of his kingdom, and the land of the Chaldean are ruined, and Judah who suffered is to return to the home country. Like this, Jeremiah declared not only the words of judgment, but also the words of hope. In particular, the word of this hope is focused on Jeremiah 30-33. More unusual is that the word of hope is that it is formed in the structure of return + restoration and repeated six times. Therefore, this thesis focuses on the contents of return and those of restoration, and the following conclusion was obtained. First, the contents of return are emphasized as follows: host of return (Yahweh, emphasized through first person expressions); object of return (captives of northern Israel and southern Judah); place of return (the land Yahweh has given); atmosphere of return (thanks and joy); reason for return (covenant relationship). Second, the contents of restoration are emphasized as follows: internal restoration (restoration of mind, restoration of spirituality); external restoration (restoration of life, economic restoration, restoration of government); total restoration (internal and external restoration through restoration of covenant relationships). One of the unusual things in Jeremiah is a prophet who first proclaimed the return and restoration of prisoners in relation to Babylon. Jeremiah was the first prophet to proclaim the word of hope in relation to Babylon in that he proclaimed the return and restoration while witnessing and experiencing firsthand the circumstances of the Babylonian invasion. In this respect, the words of Jeremiah's return and restoration can be seen as a model for the words of hope of Ezekiel, the Second Isaiah, and the Third Isaiah that appeared after Jeremiah, although scholars doubt it.

      • 고독의 예언자 예레미야의 고백록 분석 : 다섯 번째 고백(예레 20,7-18)을 중심으로

        정병진 광주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22 국내석사

        RANK : 1919

        본고는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예언자로서의 소명과 평범한 인간 실존 사이에 존재하던 내적인 갈등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는 다섯 가지의 고백록 중 다섯 번째 고백록(예레 20,7-18)을 연구하여 거기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밝혀보고자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런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면, 더 나아가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탄원하고 울부짖었지만 대답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신다면, 우리들은 마치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 같은 체험, 곧 하느님 부재 체험을 하게 된다.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예레미야 역시 온갖 고통으로 가득 찬 자신의 삶에 대해 하느님께 탄원하였지만, 침묵하시는 하느님에 의해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마치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된 예레미야는 고백록을 통해 고통과 실패 속에서 하느님께 소리 높여 탄원도 하고 울부짖으며 불평도 해본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깊은 절망과 심연 속에서 하느님께 울부짖으며 불평할 지라도, 결국에 그는 유일한 구원의 길인 주님을 자신과 함께 찬양하도록 고백록을 통해 우리를 초대한다. 죄를 짓지 않았지만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된 예레미야의 삶 역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곧, 그의 삶은 무죄하지만 고통을 겪는 의인들의 모습과, 자신의 죄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죄를 위해 하느님께 부르짖는 중재자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의인과 중재자의 모습은 신약에 이르러 무죄하셨지만 고통을 겪으시고, 우리들의 죄를 없애기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수렴된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의 삶은 적대자들로부터 배척받아 고통을 당하며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실패의 삶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관점에서 그분의 삶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희망이 되었다. 예레미야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통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인간적인 관점으로는 실패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통스러운 삶과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 고백록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우리는 구원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thesis aims to analyze the fifth confession of Jeremiah(20,7-18) and to examine its theological significance. This confession is one of his five confessions appeared in the book of Jeremiah. It honestly expresses his internal conflict between his prophetic vocation and his existential realities followed from his mission. Jeremiah’s confession raises a theological question. We know that God loves us. But if God does nothing when we suffer, and furthermore, if God keeps silent and does not give any answer to our supplications, it is natural that we should doubt his presence. That is what Jeremiah experienced. He cried out and complained to God his pains swallowing his life, but God seemed to be silent. Jeremiah, felt abandoned by God, entreats, cries, and complains to God in the depth of despair through his confessions. His fifth confession discloses his complaint about God’s silence and his desperation. Notwithstanding, Jeremiah invites us to praise the Lord, the only way of salvation in the end of his confession. The life of Jeremiah, who suffered much, but did not commit any capital sins, also has a symbolic meaning in the sense that it bears the characteristics of the innocent but suffered righteous and of the mediator intervening God not for his sins, but for the sins of others. Such traits of the righteous and mediator are found in the person of Jesus Christ in the New Testament who was innocent but suffered and sacrificed his life to take away our sins. From a human point of view, Jesus’ life seems to be a failure since he was rejected and killed miserably by his adversaries. From a divine perspective, however, his life appears paradoxically to be true hope bringing us eternal life. This line of interpretation can be applied to the life of Jeremiah. His life, filled with sufferings, looked like a sheer failure from a human perspective. However, we are able to discover the hope of salvation from his painful life and his confessions. It is a paradox.

      • 예레미야와 요시야 개혁 : 정치적 관점으로

        이우찬 한세대학교 영산신학대학원 2019 국내석사

        RANK : 1919

        예레미야는 긴 기간 동안 활동한 예언자이다. 그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눈으로 목격한 예언자였으며, 모든 예언자가 그랬듯이 그가 활동하는 기간 동안 그의 메시지는 늘 외면 받았다. 하지만 그의 예언은 나라가 멸망한 후에 주목을 받았고, 그는 신약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정경화 작업을 거친 후에 그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신학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그의 메시지는 당대의 거짓예언자, 성전설교, 왕가에 대한 예언과 이방에 대한 예언 그리고 구원의 메시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메시지들은 그 이후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그렇게 모인 예레미야서는 많은 신학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예레미야서가 갖고 있는 신학적인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크게 네 가지로 바라볼 수 있다. 첫 번째, 예레미야는 요시야 개혁 기간에 침묵 했는지의 여부이다. 이것은 연구사를 통하여 논의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예레미야의 활동 연대와 요시야의 개혁의 연대가 겹친다면, 예레미야서와 열왕기하의 보고들은 요시야의 개혁에 대하여 혹은 예언자로서 예레미야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두 번째, 요시야 개혁 당시에 활동한 예언자가 스바냐, 예레미야가 있었는데, 요시야는 왜 그들에게 가지 않았는지 의문이 있다. 오히려 정말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던 여 예언자 훌다를 왜 등용했을까? 마지막 세 번째는 예레미야의 친족 혹은 친구들은 왜 예레미야의 선포를 거절 했는지에 대해서이다. 이 이야기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예레미야의 고향은 솔로몬 이후로 등용 받지 못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만한 사람이 없다. 지역주의와 더불어 이념적인 갈등이 충분하다. 네 번째, 요시야를 세운 ‘암 하아레츠’가 왜 요시야 개혁 때 등장하지 않았던 것인가? 요시야의 개혁의 목적은 무엇이었던가? 요시야가 개혁을 시작한 목적이 제의중앙화만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목적에 대한 여지는 얼마나 가능한가? 위에서 언급한 4가지의 문제는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나는 본 논문에서 여기서 위에서 제시한 문제들에 대하여 논의할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두 가지를 통해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한다. 첫 번째, 예레미야는 시대적인 대세 혹은 권력보단, 하나님께서 나아가라고 지시하신 방향이 자신의 삶에서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의 사명이 어떠한 조건보다 우위에 두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는 사람들, 친구들, 가족들에 어떠한 이야기에도 굴복하지 않았던 예언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친인척관계와는 무관하게 선포한다. 두 번째, 정치적인 문제로 인하여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한계성을 갖고 있었음을 깨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요시야의 개혁이 단순히 종교적-제의적인 문제로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주장했던 개혁은 정치적인 의도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들이 처한 국제 정세는 혼란스러웠고, 그러한 혼란스러웠던 상황에 맞추어서 변화를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본 논문은 다음의 주제에 대하여 논할 것이다. 요시야 개혁기간 동안 ‘암 하아레츠’가 왜 등장하지 않았으며, ‘산당’ 파괴의 목적은 순수하게 제의개혁인가? 예레미야의 가문이 이 개혁에 동참하고 있다면, 어떤 의의가 있겠는가? 그것을 통하여 요시야의 개혁이 흥미로운 주제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Jeremiah is the prophet who gave prophecies for a long period of time. He was the prophet who observed the fall of Jerusalem. As same as all prophets, his messages were always neglected during his time of ministry. However, his prophecies received attention after the fall of Jerusalem, and he and his prophecies affected to the new testament. After the canonicalization, his message theologically affected the Jewish community a lot. His message is composed of the prophecies for the contemporary false prophets, the royal family and foreign nations, sermon at the temple, and the message of salvation. These messages have allowed many influences after fall of Jerusalem. However, the book of Jeremiah, which have gathered in various way, have many theological issues. There are four perspectives toward the thelolgical issues of the book of Jeremiah. First, If Jeremiah remained silence during the period of Josiah’s reform. This is the most important subject discussed through the research history. If Jeremiah’s period of ministry overlaps with the period of Josiah’s reform, On the book of 2Kings didn’t refer to Jeremiah as a prophet and on the book of Jeremiah didn’t refer to about Josiah’s reform. It is not a problem that can be resolved easily. Second, why Josiah never visit the prophets who have actively doing the ministry during Josiah’s reform; Zephaniah, and Jeremiah? rather, why did he appoint indeed unheard, unseen prophetess Huldah? Third is about why the family and friends of Jeremiah rejected the proclamation. Some scholars have doubts about those things. No one would deny that Anathoth, the home of Jeremiah, is in position not to be appointed after King Solomon. With Regionalism, there is big ideological conflict. Lastly, Why didn't ‘Am Ha-arez’, who nominated Josiah, emerge during Josiah's reform? What was the purpose of reform of Josiah? Is the purpose of the reform of Josiah only for the centralization of cult. Then, what are the chances of other aims? It is not easy to find a direct correlation of four issues mentioned above. I will discuss the issues proposed above on this paper. So with these problem, I want to solve them with two things. First of all, following the lead and direction of God was more crucial and important than following the political power to Jeremiah. It shows that Jeremiah put priority on the mission as a prophet to any other condition. He was a messenger who did not submit to gossip of people, friends, and family. He declared the word of God irrelevant to relatives. Second, it appears that Jeremiah realized the limit of the problems because of the political issues. Josiah’s reform was not simply confined to the religious-cultic issues. We must recognize that the reform they insisted had a political intention. The national situation they faced was confusing, and through that confusion they tried to make a change according to the situation. This paper will be discussed on next topic. Why didn’t ‘Am Ha'arez’ appear during the period of Josiah’s reform? Is the purpose for destruction of ‘High place’ purely for reform of cult system? If Jeremiah’s family participates in this reform, what significance can it have? Through this issue, Josiah’s reform can be an interesting to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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