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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주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1999 국내석사
본회퍼의 교회론은 철저하게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고 했다. 교회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대리적인 죽음이며, 여기에서 기초한 교회의 본질은 더불어 있음과 서로 위함인 것이다. 이것이 곧 제자됨의 교회요, 남을 위한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본회퍼는 이러한 삶으로 예수의 부름에 즉각적인 순종으로 따르는 행동의 삶을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 그리스도의 제자됨에서 주장한 전부인 것이다. 사도신경 중에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이 두 가지 말은 교회의 본질적인 면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나 단체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교제 그 자체인 것이다. 본회퍼는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위하여 사람이 되셨고, 다시 사셨고, 그를 위하여 죄사함을 먼저 받으셨고, 그를 위하여 영생을 마련해 주신 그런 사람으로 만나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의 모습은 외형적인 교인수, 성전의 크기, 교회 예산등의 물량주의에 깊숙히 빠져있다. 또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현세의 건강, 축복등의 그리스도의 값싼 은혜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이기적인 개인주의적 인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교회는 그리스도적 인간상을 제시하고 그러한 모습을 모범으로서 실천해 보여야 한다. 교회는 교회공동체의 회복을 위하여 성도의 훈련을 새롭게 시작해야한다. 공동체에 근거한 기도훈련, 전체성 속에서 성경의 진리를 발견하는 성경공부, 섬김의 훈련, 형제 사이의 고백과 용서의 훈련, 성만찬의 재발견이 이루어 져야 한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교회됨을 위해 세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써의 실제적인 훈련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임은 거룩한 목적이 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니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신앙고백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 사실을 재확인하고, 세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총에 보답하고자 새롭게 다짐하는 공동체(communio)인 것이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약 100여개 이상의 교단으로 나뉘어 있다. 이제는 분열이 아닌 하나됨이 필요할 때이다. 신학적 주제(복음, 삼위일체, 구원, 교회, 부활…)과 세례, 성만찬, 직제의 일치를 통하여 교단이 하나가 되고,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하겠다. 이처럼 교회가 하나 될 때에 비로소, 교회에 몸담고 있는 성도들은 지역적, 학연, 재산의 유무로 인한 차별이 없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공의는 세상에 실현될 수 있다. 교회는 사람이 영광받는 그런 곳이 아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곳이다. 교회는 내가 받은 끝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세상에 나눠주기 위해 배우며, 섬기는 곳이다.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교회는 이웃을 섬겨야 한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경제적으로 매우 윤택하지만 이웃을 돕는 일은 소홀히 하고 있다. 수십억의 교회 건물이나, 수양관을 짓는 것도 좋지만 조금씩 규모를 축소하여, 사회의 실직자나, 소년소녀 가장을 돕는 사회봉사에 투자하여야 한다.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 병든 자, 갇힌 자들의 친구이셨기 때문이다.
김형익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2014 국내석사
개혁주의 신학의 원리 : 삼위일체론적 관점에서 본 논문의 목적은 바빙크에게서 나타난 신학의 원리가 칼빈과 뚤레틴에게서 전개된 것으로 찰스 핫지와도 내용적으로 동일한 신학의 원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바빙크의 신학의 원리와 칼빈에게서 나타나는 신학의 원리, 뚤레틴에게서 나타나는 신학의 원리가 모두 삼위일체적 기독론적 접근을 취하고 있음을 연구하였고, 찰스 핫지의 신학방법론과 신학의 원리를 내용적으로 파악하여 바빙크의 신학의 원리와 같은 내용임을 파악하였다. 바빙크는 신학이 가능한 근본적인 원리, 곧 신학의 원리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하고 있다. 존재의 원리(principium existendi) 외적인식의 원리(principium cognoscendi externum), 내적 인식의 원리(principium cognoscendi internum)이다. 첫 번째 신학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이며 존재적인 원리는 하나님 존재이시다. 두 번째 외적 인식의 원리는 성경이다. 성경은 신학의 "유일한 원리(principium unicum)"인 동시에 "도구적 유효원인(causa efficiens instrumentalis)"이다. 세 번째 내적 인식의 원리는 성령이다. 외부적으로 객관적으로 계시된 말씀은 성령께서 조명하심으로 신앙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내부적으로 주관적으로 역사한다. 이런 신학의 원리는 공히 삼위일체적이다. 곧 계시하시는 성부 하나님, 중보하시는 성자 하나님, 조명하시는 성령하나님이시다. 또한 바빙크의 신학의 원리는 기독론적이다. 성부의 계시는 성자에게 동일하게 중보되고, 바로 그 계시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 우리 내부에 적용되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말씀 자체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자신의 중보하심으로 우리 맞추어서 말씀하신 말씀이시고, 또한 그리스도의 영은 조명으로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조명하신다. 이런 신학의 원리는 칼빈에게서 시원적으로 발견된다. 칼빈의 신학의 원리를 정립한다면 다음의 네 가지 원리를 살펴볼 수 있는데, 첫째로 객관적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신지식을 알 수 있고, 둘째로 계시의 확실성과 확신을 주시는 성령을 통해서 신지식을 알 수 있고, 셋째로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지식을 알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믿음을 통해서 신지식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뚤레틴에게서도 더욱 전개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는 신학의 원리를 이미 존재의 원리와 인식의 원리를 이미 정립하고 있었고, 신학의 원리로 성령에 의해 조명된 이성을 통하여, 유일한 원리가 되는 성경을 통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을 통하여 신학함을 말하고 있다. 핫지도 표면적으로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칼빈, 뚤레틴, 바빙크와 같은 신학의 원리를 인지했다. 내용적으로 핫지의 신론이나 기독론, 구원론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는 동일하게 계시하시는 성부 하나님, 중보하시는 성자 하나님, 조명하시는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고, 말씀자체이시고, 성육신 이전과 이후 모두 말씀과 성령을 통해 계속적으로 계시하시는 계시 중보자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바빙크에게도 핫지가 주장하는 체계성과 성경적 귀납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삼위일체적이고 더 구체적으로 기독론적인 신학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위르겐 몰트만의 자연의 신학에 관한 연구이다. 자연의 신학이란 중재되고 간접적인 하나님 인식을 자연에서 발견하였던 전통적인 자연신학과 달리, 하나님의 철저한 계시의 빛에서 자연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몰트만의 자연의 신학은 생태계의 위기라는 현실 상황에 대한 몰트만의 신학적 응답으로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자연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과 창조의 관계를 형성하며, 인간과자연의 관계 및 인간의 자기이해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오늘날 생태계의 파국에 직면해, 인간이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의식과 태도를 정립해야한다는 요청에상응한다. 본 논문의 연구 방법은 몰트만의 저작 내재적인 분석적 접근이며 본 연구의 중심 텍스트는 주로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과 몰트만의 후기 저술들이다.본 논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몰트만의 자연의 신학 연구에 대한 배경으로서, 생태계 위기의 전 지구적 상황과 초기 몰트만 신학에 나타난생태적 주제이다. 몰트만의 초기 신학에도 생태적 주제는 부분적으로 함의되어 있으며 후기 신학에서 좀 더 발전되고 강조된다. 창조의 종말론적인 전망, 창조 안에 있는하나님의 내주 및 상호 관계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본 논문의 두 번째 부분은 몰트만의 자연에 대한 이해이다. 몰트만은 자연세계를하나님의 창조로 이해한다. 하나님의 무로부터의 창조는 자연세계가 하나님의 소유인것과 창조의 우연성을 드러낸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창조를 삼위일체적인 과정으로파악하는데, 하나님은 성령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 안에 내주하시고 창조와 더불어 상호 침투와 상호 내주의 사귐 속에서 창조를 갱신한다. 시간과 함께 창조된 자연은 완료된 체계가 아니라 종말론적인 메시아적 개방성 속에서 하나님의 미래를 향해열린 역사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창조를 궁극적으로 자신의 본향과 집으로 삼는다.따라서 하나님과 창조는 범재신론적인 관계이다.몰트만은 올바른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지배적 이원론 극복을 주장하고 페리코레시스적인 사귐을 제안한다. 이것은 인간 안에서 영혼과 몸 전체를 포함하는 통합적 인간학으로 나타나고, 창조 공동체 안에 있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관계로 표식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통점을 나타내는 세계의 형상과 인간의 독특성인 상징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상호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인권은 자연의 권리 안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몰트만의 자연의 신학은 자연의 종말론적인 목적을 포함한다. 이것은 현재의 창조 뿐 아니라 태초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창조 전반에 관한 하나님의 기획인데 이것은한 마디로 ‘자연의 궁극적인 완성’이다. 몰트만이 주장하는 자연의 완성이란 단지 현상태의 발전이 아니라 창조의 기초적인 모든 조건들의 근본적인 변형을 의미한다. 즉창조의 시간과 공간의 완성이다. 이런 창조의 완성은 오로지 하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는데, 자연은 우주적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되고 우주적 성령의 쉐히나로 말미암아자연은 새롭게 창조된다.하지만 생태여성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몰트만의 자연의 신학은 한계가 있다. 이것은 몰트만이 보다 전통적인 신학의 맥락에서 자연의 신학을 개진하는 바에서 오는결과이다. 본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생태여성신학에서 본 몰트마느이 자연의 신학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여기는 세 가지 주제로 나뉘는데, 먼저 우리는 맥페이그의하나님의 몸으로서의 세계 모델과 몰트만의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세계 모델을 고찰한다. 두 모델은 하나님과 창조세계의 관계를 범재신론적으로 그려낸다. 몰트만의 집의모델은 몸의 모델에 비해 하나님과 창조를 확실히 구분하지만 하나님의 친밀한 내재성의 강조와 정신/물질의 이원론 극복에는 다소 소극적이다. 두 번째 주제는 성차별극복의 관점에서 류터의 새로운 하나님 이름, God/ess와 몰트만의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고찰한다. 사회적 삼위일체론은 비-성적인 구도에서 페리코레시스적 사귐을 제안하여 모든 왜곡된 관계에 대한 평등한 사귐을 제시한다. 하지만 아버지, 아들 그리고성령이라는 남성중심적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가부장제의 현실을 교묘히 은폐할 수있고, 억눌린 여성성과 지배적 남성성이 해소되지 못한 채 ‘상호교류’만을 강조하는경향은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이런 의미에서 남신도 아니고 여성신도 아니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포괄적으로 함축한 비-인격적 류터의 근원모체로서 God/ess는 보완적일 수 있다. 전통과 해방의 두 관점의 대안적 신론은 교회 공동체에서 공존하며 각자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세 번째 주제, 종말론적인 공동체의 논의에서 류터는 인간의 죽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수용하고 이 땅에 관심하며 구체적인 좋은 사회건설을 제안하지만 몰트만은죽음을 극복의 대상으로 이해하고 오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변혁과 변화를 희망한다. 하지만 두 가지 견해는 대치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 즉 인간의책임과 하나님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본 것으로 지구 치유의 한 가지 사명의 두 가지측면으로 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웨슬리 신학의 다양한 해석 연구 : 한국의 장로교, 감리교의 경우를 중심으로
진정근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지금까지 웨슬리 신학과 비교하여 감리교와 장로교의 다양한 해석들을 서술해 보았다. 웨슬리 학자인 아우틀러(Outler)는 웨슬리가 위대한 신학자로 인식되지 못한점을 두 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는 감리교가 자유주의에 빠진 점이며, 둘째는 칼빈주의 학자들이 웨슬리를 깊이 공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첫째로 한국 감리교는 미국의 자유주의 물결에 물든 신학이 들어옴에 있어서 웨슬리 신학이 웨슬리가 의도한 바와 많이 다름을 볼 수 있었다. 웨슬리 신학은 가장 중요한 것이 웨슬리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감리교 신학자들은 자신의 다원주의, 신비주의, 자유주의 신학적 해석을 가지고 웨슬리를 해석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류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오류가 웨슬리의 ‘선행의 은혜’와 ‘이신칭의 사상’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볼 수 있었다. 웨슬리의 선행의 은혜 개념의 잘못된 해석으로 자유의지의 회복을 말하고, 또한 이신칭의가 잘 안됨에 있어 더욱 회개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으로 나아갈려는 잘못된 해석을 해 왔다. 그러므로 웨슬리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하기 위해서 먼저 한국 감리교의 신학자들이 자신들의 신학을 버리고 웨슬리가 말하려한 의도를 정확히 깨닫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둘째로 칼빈주의 학자들이 웨슬리를 깊이 공부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웨슬리와 칼빈에 대한 오해가 생기게 되었다. 이 점에서 한철하 교수님을 통해 웨슬리와 칼빈에 대한 오해의 해결에 한걸음 다가선 것이 사실이며, 웨슬리와 칼빈이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함에 있어 칼빈주의 자들과 웨슬리안들의 설명이 달랐음을 볼 수 있다. 웨슬리와 칼빈은 공히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말하고 있으며, 또한 성화에 있어서도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칼빈과 웨슬리의 해석에 있어서 칼빈과 웨슬 리가 말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의 신학을 발전시켜 나아가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해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웨슬리 신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웨슬리가 자신의 신학을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찾았다고 말함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우리의 삶을 더욱더 성경의 말씀대로 살아나아가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며, 성경과 배제되는 것들을 제거함으로 인하여 더욱더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가까이 갈 수 있음을 확신한다.
신학 전공 학문 목적 한국어 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요구 분석
본 연구는 신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제 단위 요구 분석을 진행하여 신학 전공 학문 목적 한국어 교육의 기초 연구 및 자료로 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먼저 1장에서는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을 정리하고 선행 연구들을 살펴보았다. 점점 증가하는 한국어 학습자 규모와 학습자의 다양한 학습 목적에 맞게 전공별 연구가 선행되어야 함을 언급하였고 신학 전공자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과정 개발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그 후 학문 목적 한국어 교육의 연구 동향을 연도별, 주제별로 살펴보고 학문 목적 한국어 교육에서 요구 분석의 연구와 신학 전공 유학생을 위한 선행 연구들을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 본격적인 연구에 앞서 이론적 배경을 정리하였다. 언어 교육에서 요구분석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ESP 개발의 역사를 통해 요구 분석의 개념과 방법을 살펴보고 본 연구에 적용하였다. 또한 언어 교육의 선행 연구로부터 ‘과제(task)’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신학 전공 유학생의 과제를 도출하였다. 3장과 4장에서는 연구 대상과 방법 및 절차를 소개하고 연구 결과를 해석하였다. 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3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으며 4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후속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또한 신학 전공 한국인 교수와 신학 대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가르치는 교사를 대상으로 각각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설문지는 학습자에게 총 다섯 가지의 항목을 묻는 것으로 설계되었고 그중 네 번째 학업 과제 부분에서는 학습자가 느끼는 신학 전공 학업 과제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리커트 척도로 측정하였다. 연구 결과 신학 전공 외국인 학습자들은 교회 생활하기, 강의 수강하기, 시험 보기, 세미나 및 토론 참여하기, 보고서 쓰기, 참고자료 수집하기, 발표하기 순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며 보고서 쓰기, 시험 보기, 발표하기, 강의 수강하기, 세미나 및 토론 참여하기, 참고자료 수집하기, 교회 생활하기 순으로 어렵게 인식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중 교회 생활하기는 중요성과 어려움의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났으며 이를 통해 응답자들은 교회 생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크게 어렵지 않게 느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각 과제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부 과제에서 그 연관성을 알 수 있었는데 응답자들은 성경 읽고 이해하기, 성경을 해석 후 적용하기, 설교문 작성하기, 설교하기 등 실제적인 목회 활동에 지속적으로 도움이 되는 과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후속 인터뷰를 통해서는 한국의 문화, 특히 교회 문화에 대한 요구와 필요를 확인하였다. 따라서 신학 전공 유학생들을 위한 교수요목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반영되어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으로 본 연구는 신학 전공 학문 목적 한국어 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기초 단계인 요구 분석을 진행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본 연구가 앞으로 신학 전공자들을 위한 교수요목 설계 및 교육과정 개발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어 보다 실제적인 자료 구축과 함께 교재 개발 연구까지 확대되리라 기대하는 바이다. This study used a task-based needs analysis on foreign students majoring in Theology to be used as the basic study and data to develop curriculum on Korean language education for theology majors. In Chapter 1 outlines the purpose and the need for this study, followed by the previous studies. The continuously growing number of Korean language learners and the need for pre-emptive studies on each major with the varied educational purposes of the learners were mentioned, along with studies for developing a curriculum on Korean language education for Theology majors. After that, the status of the studies on academic-purpose Korean language education was examined with the year and topic, within the context of academic-purpose Korean language education, and reviewed studies on the needs analysis as well as preceding studies on foreign students majoring in Theology. Chapter 2 presents the theoretical background of this study. By examining the background of the emergence of needs analysis in language education and the history of ESP development, the concept and method of the needs analysis were analyzed and applied. Also, the definition of ‘task’ in the preceding studies on language education was clarified, and the tasks of foreign students majoring in Theology were presented. In Chapters 3 and 4, introduce the study subject, method and process, followed by the analysis of the study result. A total of 30 students studying Theology at a theological university were the survey subjects, and 4 students participated in the follow-up interview. In addition, interviews were conducted on Korean professors of Theology major and the teachers of Korean language courses at the theological university. The survey has 5 questionnaire sections for the students, and in the fourth section on study tasks, Likert scale measured the importance of and difficulty of the task Theology students felt. The study results showed that the foreign students majoring in Theology placed the highest importance on church activity, followed by listening to lectures, taking tests, participating in seminars/debates, writing reports, collecting reference data, and making presentations. However, the students felt the highest degree of difficulty in writing reports, followed by taking tests, making presentations, participating in seminars/debates, collecting reference data and church activity. Among the tasks, church activity showed the biggest difference in its degree of importance and difficulty, meaning that the respondents felt the highest importance for church activity but did not find it difficult. Moreover, for the each detailed tasks deemed important, the respondents placed importance on detailed tasks that were continuously helpful for their pastoral activities such as reading and understanding the Bible, analyzing and applying the Bible, writing sermons and delivering sermons. Through the follow-up interview, the request and need for learning Korean culture, and especially church culture, were identified. Thus, such details should be reflected and devised in the syllabus for foreign students majoring in Theology. This study is significant due to the needs analysis, which is the basic step for developing a curriculum on academic-purpose Korean language education for Theology majors. This study should serve as the basic data for developing the syllabus and curriculum for students majoring in Theology, which should lead to the accumulation of more practical data and the expansion of studies on textbook development.
존 웨슬리 신학의 알미니우스주의적 요소에 대한 연구 : 올바른 평가와 오해의 시정을 위하여
문시환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12 국내석사
웨슬리 신학의 위치는 어디인가? 웨슬리의 신학적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웨슬리 신학에 대하여 오해만 할 뿐이다. 고로, 본 논문에서는 웨슬리에게 영향을 준 알미니우스와 알미니우스주의를 살펴보려한다. 뿐만 아니라 웨슬리 본연의 신학 역시 연구하려한다. 본 연구자는 웨슬리의 신학적인 위치를 다시 점검하여 확고히 함으로 웨슬리의 신학을 보다 더 정확히 이해하고, 웨슬리 신학에 대한 오해를 풀어, 웨슬리안뿐만 아니라 더 넓은 기독교에 긍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에 본 논문의 목적을 둔다.
김선영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12 국내석사
본 논문은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이머징 교회 운동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신학적인 토대들을 정리하고 확인하고자 했다. 그 이유는 우선, 기존 이머징 교회를 소개하는 글이나 책에서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이머징 교회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없었던 점, 그동안 이머징 교회에 대한 신학적인 논의가 계속 진행되어 왔지만, 곳곳에 산재되어 있었던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이머징 교회 운동을 한국적 상황에 도입하고 접목시키고자 할 때, 도입 시의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었던 점 때문이다. 교회 부흥을 위해 어머징 예배 혹은 이머징 영성을 선별적으로 도입하려는 시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머징 예배, 이머징 영성 이면에는 나름대로 그것을 뒷받침하는 신학적 바탕이 있다. 이머징 교회 운동의 신학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예배, 영성만 따로 떼어서 도입할 경우 시행착오를 겪게 될 가능성이 크고, 일회성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 같이 큰 효과를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이다. 우선 이머징 교회의 정의와 특징을 간단하게 다루었다(본문 Ⅱ장). 그 이유는 이머징 교회 운동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교회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고, 한국교회에는 아직 잘 알려진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머징 교회를 조직신학적 틀 위에서 분석하기 전에, 먼저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이머징 교회에 대한 큰 그림을 가지고 세부항목들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뒤이어 다음 부분에서는 하나님 나라, 기독론, 교회론, 영성이라는 조직신학적 틀거리를 이용해서 이머징 교회를 설명했다(본문 Ⅲ장). 결론 부분에서는 이머징 교회의 신학을 평가하고 한국교회를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언급한 후에 논문을 마치려고 한다.
권혁규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7 국내석사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무엇을 얻기를 바라는가?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오늘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또한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은 사회에서 어떠한 위치를 가지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제기하게 되는 이유는 신앙이 가진 다양성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신앙 안에서, 그리고 복음 메시지 안에서 위의 질문들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얻어내지 못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에 관심이 전혀 없거나 일부러 회피하는 태도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교회 안에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선택적 신앙생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마음에 드는 내용으로 선택적으로 취득하여 자신의 삶을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만드는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에 신앙은 삶의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신앙이 인간의 어떠한 영역들에 영향을 미치며 어떠한 삶의 태도를 요청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하였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교회 안에 분열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교회는 영혼구원과 관련된 영성적인 것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그 외의 역할은 교회 밖의 사회에서 담당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고 있는 ‘역할 분담’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안전장치로서 적절하고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인가? 오늘날 ‘정교분리’라는 용어를 보면 교회와 사회, 교회와 국가, 교회와 정치의 명확한 역할분담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김용해 신부는 “정교분리와 영적투쟁”이라는 아티클에서 ‘정교분리’는 교회와 국가의 무간섭주의나 배제주의를 뜻하거나 교회의 정치적 중립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둘의 창조적 조화를 이루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논자는 김용해 신부의 글을 통해 교회와 사회·국가·정치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될 필요성을 느끼고, 양자의 관계 정립은 결국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이를 위해 적절한 해답을 줄 수 있는 신학자를 모색하였고, 페루의 해방신학자인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에게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구티에레즈는 라틴아메리카의 불의한 구조가 만연한 상황에서 신앙이 가진 사회변혁적 요소를 부각시켜 드러냈으며, 신앙과 삶의 간극을 메우는 신앙의 실천적 측면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을 확립하였는데, 이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들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구티에레즈를 연구하면서 난관에 부딪힌 것은 해방신학에 대한 연구가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그 이유를 찾아보니, 일부 해방신학에 대하여 발표한 신앙교리성성의 훈령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회의 정통 신학을 근거로 해방신학의 일부 우려되는 점을 비판한 훈령은 마치 해방신학이 더 이상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1970~1980년대의 우리나라의 상황은 해방신학의 출발점인 제3세계의 불의에 따른 극도의 빈곤이 만연한 환경과도 비슷하였기에 해방신학의 메시지가 더욱 와닿았을 것이나, 개발을 통한 가파른 성장을 이룩한 뒤로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해방신학의 연구가 극적으로 감소한 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해방신학이 유신시대에 금서로 지정되었던 것을 보면 마치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서적 중에 하나로서 국가를 전복하려는 사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오늘날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기존의 이러한 인식과의 대화를 요구한다. 본 논고에서는 신앙교리성성에서 선포한 「해방신학의 일부 측면에 관한 훈령」을 중심으로 그의 신학이 정통신학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또한 현 신앙교리성성의 장관인 뮐러 추기경이 구티에레즈와 함께 책을 공동으로 집필하였으며, 구티에레즈의 사상이 정통신학과 온전히 부합한다는 발언을 했던 것을 보면 오늘날에 새롭게 그의 사상을 재조명해야할 가치가 있음이 드러난다. 구티에레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이미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해방운동에서 신앙의 실천적 측면을 추출해낸다. 그가 『해방신학』에서 여러번 언급하듯이 해방신학은 해방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해방운동이 먼저 존재하고 그 안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그가 신앙의 실천과 영성적 측면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오히려 『해방신학』 전체에서 신앙이 좁은 의미의 ‘영성화’되는 문제와 싸우고 있다. 때문에 논자는 『해방신학』에 나타난 구티에레즈의 통합적 신앙 이해를 분석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찾는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하여 『해방신학』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변증법적 관계(교회와 세계, 구원사와 인간사, 현세적 진보와 그리스도 왕국의 성장, 하느님과의 친교와 타인과의 친교, 현재와 미래)들을 통해 신앙의 온전한 의미를 찾고 신앙이 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를 연구하였다. 연구를 통해 도출된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의 두 측면의 온전한 일치를 발견할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도 그의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논자는 이 연구를 통하여 구티에레즈의 신학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오늘날에 낡은 것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신앙 안에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려는 유혹은 결국 신앙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고, 이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게 된다. 저자의 신학 안에서 발견한 ‘이원성 안의 일치’는 신앙의 두 측면의 경계를 허물어트려 둘의 구분을 없애는 것도 아니고, 한 가지 측면으로 흡수통합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양자의 역할을 각각 부각시키고 보존하며, 하나의 목표로 수렴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도출된 결과들은 오늘날 한국 교회와 사회에 커다란 의미를 가져다준다. 교회는 자신이 본성상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비판적 기능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되며, 사회는 종교가 가진 이 특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전례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전례에 참여하듯이,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학부1학년 때 사회참여에 대한 성직자들의 상반된 의견들을 바라보았던 경험을 통해 던진 ‘교회의 사회참여는 정당한가’라는 질문은 연구과정 속에서 신앙과 삶의 괴리 극복,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문제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구티에레즈의 신학을 연구하면서 신앙의 영성적 측면과 실천적 측면의 올바른 관계를 모색하게 되었고, 결국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이르렀다. 또한 본고를 작성하기 위해 구티에레즈를 연구하면서 인간적인 것, 정치적인 것, 현실적인 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이것들을 하느님의 것과 대비시킴으로서, 무언가 불완전하고 불분명하며 벗어나고 극복해야 할 어떤 것으로 이해해왔다. 때문에 사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신앙 행위보다 낮은 차원의 것으로 이해되었고, 불의한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개입을 원칙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신앙이 오히려 불의에 대한 적극적인 투쟁을 요청하고,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구원과정의 일부라는 저자의 신학사상은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나타나는 신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준다. 구티에레즈의 사상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길 위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더러워지고 넘어지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이는 불의와 압제에 대한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거나, 영성적 측면을 경시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풍성한 의미를 이해하는 확고한 길임을 단언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가 신앙의 온전한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게 활력을 불어넣는 신학이 태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오늘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임을 보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구티에레즈의 신학이 성경의 메시지를 더욱 풍성하고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로테 죌레(D. Solle)의 정치신학연구 : 신론의 비판적 이해를 중심으로
박근식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이 논문은 D.죌레의 신학을 정치신학으로 규정하고, 이를 구성함에 있어 다음의 세 가지의 독특한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이 마주한 고난이라는 현실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다. 둘째로 가부장적이고 남성적 하나님 표현에 대한 여성신학적인 비판적 이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신비주의 신학의 적용과 평가이다. 그리고 이 요소들의 종합을 통해서 드러나는 특징인 전통적인 하나님 이해에 대한 그녀의 비평과 새로운 하나님 말하기를 살펴보는 것, 다시 말해 죌레의 정치신학을 ‘신론’을 중심하여 살펴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종모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12 국내석사
20세기 최고의 신학교부이자 신정통주의 대표적인 조직신학로 알려진 칼 바르트의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트의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초로 완성시킨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트는 자신의 신학함의 의미는 오직 설교를 위해서라고 할 만큼 그는 설교가이기도 하다. 현대 시대와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교회의 설 자리는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되고 결국 교회에 말씀의 영광이 회복되기 위하여 칼 바르트의 설교신학에 나타난 설교를 거울삼아 오늘에 적용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