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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의 위치 제어 동작연습이 소뇌질환 환자의 운동학습과 운동전이에 미치는 영향
소뇌(cerebellar)는 사지 움직임 제어와 운동학습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뇌 영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뇌질환 환자들의 경우 발 위치 제어력(control of lower limb`s distance ability)에 장애가 발생하여 보행의 어려움과 낙상사고를 유발시킨다. 안전한 보행과 낙상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발 위치 제어 운동학습에 관여하는 소뇌의 역할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량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소뇌질환 환자들의 발 위치 제어력 동작연습을 통해 발 위치 제어력의 운동학습과 운동전이에 어떠한 효과가 나타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소뇌질환 환자들의 발 위치 제어 동작연습이 소뇌질환 환자의 하지 운동학습과 운동전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소뇌질환 환자 12명과 일반인 12명을 대상으로 5cm, 10cm, 15cm 거리조건 동작과제 운동학습을 실시한 결과, 소뇌질환 집단과 일반인 집단 모두 연습시행이 증가할수록 거리오차값의 감소가 나타났으며, 일반인 집단의 경우 파지, 전이검사에서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소뇌질환 환자들의 파지검사 결과,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의 영향으로 운동학습의 효과가 나타났으며. 운동전이 검사 결과, 반복된 동작연습을 통해 형성된 운동도식(motor schema)에 의해 새로운 거리조건에 대한 운동전이 효과가 나타났으나, 과제특수성(task specific)으로 인해 새로운 방향 조건에 대한 운동전이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소뇌질환 환자들의 안전한 보행과 낙상예방을 위한 발 위치 제어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난이도와 적합한 운동방법으로 구성된 반복된 동작연습이 이루어져야 하며 더불어 과제특수성을 고려한 동작과제 운동학습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ABSTRACT The effects of Motor Learning and Transfer for Distance control of Lower Limb Movement in Patients with Cerebellar Ataxia. Yun, jung eun Department of Physical Education Graduate School Korea University Degenerative cerebellar ataxia is characterized by a slow walking speed, irregular steps, difficulties with inter and intralimb coordination, and reduced postural stability, resulting in a high risk of falls. In particular, disorders in distance control of lower limb movement are often major causes of handicap in patients with cerebellar ataxia. The aim of this study was to investigate motor learning for distance control of lower limb`s movement and generalizability of motor learning in patients with cerebellar ataxia. Twentyfour participants were divided into two groups: twelve individuals with motor impairments due to cerebellar ataxia, and noimpairment control group. Both group reached to targets presented at three distances(5, 10, 15cm) with right lower limb for acquisition of motor skill. Kinematic data were used to determine scaling of movement accuracy from start position to target. Performance was tested pre and posttraining for retention effect of motor learning and two learning transfer conditions: (1) horizontal direction learning transfer (new distance transfer) (2) vertical direction learning transfer. With respect to learning of motor skill, both practice groups showed significant improvement for 5cm, 10cm and 15cm respectively, even thought these distance errors of cerebellar patients appear to be higher than normal group. In addition, there was significant learning transfer effects to new distance transfer condition, but vertical direction transfer condition didn’t show significant improvement in ataxia group. Interestingly, even though the cerebellum is damaged, motor learning effects for low limb movements were occurred in cerebellar patients. These results showed that motor learning for distance control of lower limb movement can contribute not only to motor learning, but also to motor generalization in cerebellar ataxia. The results of this study suggested that effects of motor learning for lower limb can be attributed to the effect of repeated practice of the taskspecific training in patients with cerebellar ataxia.
이문재 경기대학교 예술대학원 2021 국내석사
근현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격동기에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과, 해방과 함께 찾아온 전쟁의 참화 속에서 피폐해진 우리나라 서화계의 발전을 위해 많은 족적을 남긴 소전 손재형의 생애를 알아보고, 그가 그린 문인화의 연대 생애주기별 분포도와 문인화 작품의 화제 분석 및 구도의 조형성 등을 조명해보았다. 소전 손재형은 남도 문인화의 본 고장인 진도에서 출생하여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家學으로 서예와 한학을 공부하며 지냈다. 그는 일찍이 서울에 상경하여 양정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성당 김돈희의 상서회에 입문하여 여러 가지 서체를 배우고 서예 문인화 등을 공부하여 우리나라 근 현대 서화계에 크나큰 역할을 하였다. 소전은 일찍이 조선미술전람회, 약칭[국전]에서 입상하는 등 서예에 두각을 나타내며 篆隷體를 가미한 독창적인 소전체를 개발하여 후학들에게 지도하였으며, 진도 벽파진에 세워진 이 충무공 벽파진 전첩비는 소전체의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글 서예에서도 궁체와 판본체위주의 서체에서 전서체의 筆意를 가미한 독특한 한글 서체를 개발하여 후세에 남겼다. 소전은 문화재 수집에도 탁월한 재주를 보여 많은 작품들을 수집 하였으며 특히 국보 180호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의 <새한도>를 전쟁의 참화를 무릅쓰고 일본에 건너가 각고의 노력 끝에 찾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한국전쟁 중에는 국립 박물관의 문화재들을 지켜내기 위하여 애쓴 일화들도 전하고 있다. 소전은 정치에도 입문하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문화예술정책 분야에도 많은 일을 하였다. 또한 1949년에는 대한민국미술전, 약칭[선전]의 창립에 중추적인 역할로 참여하기 시작하여 국전이 폐지될 때까지 30여 년 동안 관여하여 많은 功過를 남겼다. 소전은 書의 명칭을 조선시대에는 중국에서 쓰던 書法과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서 쓰던 書道라는 명칭을 우리만의 주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書藝로 쓸 것을 주창하여 오늘 날에도 우리만의 서예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이렇듯 소전은 일제강점기에 청년 시절을 학습기로 보내고 해방이후 국전시대와 정치인으로서 줄곧 서화계의 중심에서 있었다. 이에 서예 발전과 문예중흥에 이바지한 공적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하기도 하였으며 그가 지병으로 사망하기까지 서화계에 수많은 공과를 남기고 1981년 6월 15일 영면하여 대한민국 예술원장으로 삶을 마쳤다. 소전은 문인화 작품을 다수 남겼는데 본 논문에서는 문인화를 중심으로 생애주기별 청년기, 중‧장년기, 노년기로 나누어 연대별로 작품을 수록 분석 하였으며, 소전 문인화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의의 등을 알아보았다. 소전의 청년기(1920〜1942년)의 작품은 그가 젊은 시절 학습기의 작품으로서 소전 문인화의 특장 이라기보다는 글방그림·사계산수도·소나무·석란도·탁족도·초충도·청공도 등 비교적 여러 종류의 화목을 시도하는 단계의 작품들로 보여 진다. 그러나 청년기에 제작된 작품의 채색화의 색채는 강하게 보이는 특징이 있다. 구도나 묵색의 농담은 무리가 없다. 작품 화제의 서체는 소전의 전성기의 서체와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전 문인화 작품의 대부분이 중‧장년기(1943〜1966년)에 제작되었으며 이 시기의 작품은 난·죽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소나무·연·포도 등의 군자류의 화목과 기명절지 형태의 글방그림 청공도, 수묵산수 등이 다수 있다. 중‧장년기 작품 77점 중 난 그림이 21점으로 가장 많고, 군자도 16점 등의 순으로 다양한 화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전의 노년기(1967〜1981년)는 그가 지병으로 병석에 있던 기간이 많아 작품이 많지 않다. 이 시기의 작품은 난화 3점, 대나무 그림 1점, 산수화 2점 합작도 2점이 전할뿐이다. 소전 문인화의 전체적인 작품의 제작은 사군자 중에서 난과 대나무 그림이 가장 많고 군자도 기명절지형태의 청공도 등 다양한 군자류의 화목들로 구성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소전 문인화의 화제는 주로 古人들의 묵시를 인용하여 題를 한 것이 많고 내용은 후세에 교훈이 될 수 있는 글을 적은 것이 많다. 작품의 구도적인 특징은 종축형태의 작품보다 횡축형이 대부분이다. 횡축형의 구도는 화면의 중심부 우측에 그림의 중심을 이루고 방향이 좌측으로 향하는 형태의 구도를 취하고 있다. 소전의 모든 군자류의 작품들은 거의가 괴석을 함께 그린 것이 특징적이다. 이것은 소전이 괴석 그림을 무척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소전은 이미 ‘소전체’라는 서체의 개발로 서예에서 일가를 이루었으며 예술 문화 행정가로서도 잘 알려져 있으나, 문인화는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잘 조명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여 미약하나마 소전 문인화의 새로운 조명이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데에 본 논문의 의의를 두고자한다. The life of Sojeon Sohn Jae-Hyung, who left many marks for the development of the impoverished Korean calligraphy and painting field, which was devastated with the policy of exterminating Japanese culture and amid the ravages of war that came with liberation in the modern Japanese colonial era and during the turbulent period of Korean War, was recognized. Also, the distribution chart of his literary paintings by chronological life cycle, subject analysis of literary paintings, and the formability of composition were examined. Sojeon Sohn Jae-Hyung was born in Jindo, the home of Southern literary paintings, where he spent his childhood studying calligraphy and Chinese classics that passed down from generations. He moved to Seoul at an early age and attended Yangjeong High School. He entered Sangseo Association of Seongdang Kim Don-Hee to learn different handwriting and study calligraphy and literature paintings; he played a notable role in the modern Korean calligraphy and painting field. Sojeon showed prominence in calligraphy, such as winning an award at Joseon Art Exhibition, known as “Seonjeon”. He developed a unique Sojeon calligraphic style that laced with Jeonlye calligraphic style (篆隷體) and instructed younger students; Chungmugong Byeokpajin Battle Victory Monument, located in Jindo Byeokpajin, is known as the best masterpiece of Sojeon calligraphic style. In Hangeul calligraphy, specifically in Gung calligraphic style and Panbon calligraphic style, a unique Hangeul typeface was developed in the typeface that contains the meaning of Jeonseo calligraphic style and left to posterity. Sojeon showed outstanding talent in collecting cultural properties and gathered many works. In particular, the anecdote of bringing Saehando by Chusa Kim Jeong-Hee, which is designated as National Treasure No. 180, is famous; he went to Japan after suffering the tragedy of the war and put efforts to bring the artwork back. Also, there are anecdotes to protect cultural properties of the National Museum during the Korean War. Sojeon entered politics and worked in the culture and art field policies as a congressman. Moreover, in 1949, he participated as a pivotal role in the founding of the Korea Art Exhibition, known as “Gukjeon”, and involved for about 30 years until Gukjeon was abolished, leaving many merits and demerits. Sojeon advocated that to find own subjectivity, the names of the books, which was called as Seobeob (書法) in Joseon Dynasty, originated from China, and as Seodo (書道)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should be written as Seoye (書藝, calligraphy). Even today, we still use our own name of calligraphy. Like this, Sojeon spent his youth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after the liberation, he had been in the center of calligraphy and painting field in Gukjeon era as a politician. Hence, he was awarded the National Medal of Merit, Mugunghwa, for contribution to the development of calligraphy and literature restoration. Until his death from a chronic disease, he left numerous achievements in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field; he died on June 15, 1981, as the head of the director of National Academy of Arts of Republic of Korea. Sojeon left numerous literary paintings. In this thesis, the works were included and analyzed by chronological order: youth, middle-age, and old-age, based on his literary paintings; the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s of Sojeon literary paintings were recognized. Sojeon’s youth works (1920 to 1942) were from his learning period. Rather than a forte of Sojeon’s literary paintings, he created various types to harmonize such as paintings of a writing room, geographical paintings of hills and water in four seasons, pine trees paintings, paintings of rock and orchid, figure drawings of a scholar dipping their feet in river or valley water, paintings of grass and bugs, and still-life paintings. However, the colors of the paintings done in the youth are solidly visible. The composition or and shade of ink is not unreasonable. It is noticeable that the typeface of the topic is very different from the typeface of the heyday. Most of Sojeon’s literary paintings were created during his mid-ages (1943 to 1966). The works of this period mainly consisted of orchids and bamboos. There are numerous paintings of noble paintings with natural subjects such as pine trees, lotus, and grapes; still-life painting in a writing room in a gimyeongjeolji (flowers and fruits painting) form; and landscape painting with ink. Among the 77 artworks of mid-ages, paintings of orchids are the most with 21 pieces, and there are 16 noble paintings; his artworks have consisted of numerous natural subjects. In the old-age of Sojeon (1967 to 1981), he was mostly in bed with a chronic disease; there aren’t many paintings. In this period, his works only have three orchid paintings, one bamboo painting, one landscape paintings, and two composite paintings. It can be seen that overall production of Sojeon literary paintings is composed of various types of noble paintings, including specifically orchids and bamboos of four noble painting topics, still-life paintings in gimyeongjeolji form, and various natural subjects in noble paintings. The title of Sojeon literary paintings are based mainly on implied poems from deceased people, and the many written contents that can give lessons for future generations. The compositional features of work are mostly horizontal axis type rather than a vertical axis type. The horizontal axis type composition is centered on the right side of the painting, and the direction is taken to the left. All of the noble paintings by Sojeon are characterized with oddly shaped stones. Sojeon seemed to like to draw oddly shaped rocks. Sojeon has already achieved in calligraphy with development of a typeface called ‘Sojeon calligraphy style’, and well known as an art and culture administrator. However, although he created excellent literary paintings, they have not been well acknowledged. Therefore, this paper would like to place the meaning, hope it will bring a new opportunity to Sojeon literary paintings.
정자경 조선대학교 일반대학원 2010 국내박사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develop the Gayageum-Byungchang stepwise instructional program utilizing Sori Simimsae to provide Korean traditional music instructors with a guided instructional material, and to provide students with a self-study instructional material. The program was developed with the following steps. First, K-12 music textbooks and instructional materials used in traditional Korean music education institute were collected and analyzed. Second, 20 of Korean traditional songs were selected to develop the instructional program. Third, as a result of analyzing 20 songs, 17 styles of Sori Sigimsae were drawn. Fourth, Jeonggangbo with Sori Sigimsae were developed. Fifth, Gayageum-Byungchang scores utilizing Sori Sigimsae were developed. Sixth, the scores were developed in 3 levels(basic, intermediate, advanced) by the difficulties and complexities of the music and Sori Sigimsae. Finally, total of 90 hours of the lesson plans were developed. The Gayageum-Byungchang scores are consisted of song staff notation, Gayageum staff notation, and Saseol Jeonggangbo with Sori Sigimsae. As a result it can be easily read by the musicians who play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students who want to learn the music. It is suggested that following research needs to be done in the near future. First, patterns of Sori Sigimsae might be related with the songs, so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m needs to be explored. Second, melody of Korean traditional music might be related with styles and patterns of Sori Sigimsae, so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m needs to be investigated. Third, it is worth to see if there are differences in styles and frequencies of Sori Sigimsae between Pansori and Gayageum-Byungchang. 우리 전통 고유문화의 보전과 발전이 강조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 국악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갖고 교육하고 전승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통음악 교육은 구전심수의 방법으로 도제적 교육 방식으로 전해 오고 있다. 이 도제적 교육은 직접 체험할 수 있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일대일 유대 관계 형성뿐만 아니라 전승 보전하는데 있어 이러한 방법은 매우 중시되어 왔다. 즉, 스승의 시범(선창)과 제자의 따라하기(후창) 그리고 반복적인 연습에 따른 암송활동으로 이루어진다. 제자는 스승과 함께 일정기간 생활을 같이하면서 관찰 → 모방 → 지도 중심의 구전심수 과정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학습교재와 교수방법이 성문화 되어 있지 않아 자칫 소중한 우리의 무형문화재가 실전될 우려조차 있다. 그나마 국악 여러 장르 중 기악곡들은 많은 서양 악보를 활용할 뿐만 아니라 5선보로도 거의 모든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 국악기 중 가야금의 악보는 특히 많이 개발되어 있다. 그러나 가야금병창은 가야금과는 달리 악보, 교재 및 교육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는 가야금병창은 소리 시김새를 구사하여 노래를 부르면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형태로서 두 가지를 동시에 악보로 표현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야금병창은 가창곡으로서 가창자의 소리 시김새에 따라 다르게 불려지기 때문에 표준화된 악보를 채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소리 시김새는 소리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서 창법에서 소리를 치켜 올렸다, 끌어 내렸다, 꺽었다, 목을 떨었다 하여 소리의 흐름에 다양한 유동성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소리 시김새는 배우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사하는 방식은 각 창자마다 다르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전공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배우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우선 첫째로, 국악 교재 연구에 관한 교재 개발 및 국악 가창곡 지도에 있어 사용되는 정간보와 시김새에 관한 연구, 가야금병창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여러 선행 논문 등 학술지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국악교육 현장에서 국악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기 위한 교재나 교육방법이 매우 미비한 실정이고, 최근 들어 가야금을 중심으로 한 국악기는 성문화된 악보자료가 개발되고 있으나, 판소리나 가야금병창은 아직도 거의 개발되지 않고 있다. 국악교육을 위한 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교육기관 자체에서 제작한 사설보 및 단순 정간보가 대부분이다. 또한 오선보로 기보되었다 하더라도 주음만을 표기하여 정확한 장단 및 시김새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교재가 없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마다 다르게 가르치고 있으며, 배우는 사람은 표준화된 악보가 없어 배우는데 혼란스러움이 따른다. 또한 가창곡 교육에 있어 가장 핵심적 요소인 시김새 표현의 문제인데 시김새란 서양음악의 꾸밈음으로만 오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진도아리랑의 남도민요로 꺽는음과 떠는음 등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오선보에는 그런 표시를 상세히 할 수 없어 본래의 곡의 맛을 표현하기 어려움이 따른다. 이와 같은 시김새 표현 문제점은 국악교육을 체계화하고 활성화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소리 시김새를 활용한 가야금병창 악보를 개발하고, 개발된 병창악보를 활용하여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수․학습 과정안을 개발함으로써 가야금병창을 배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화된 교재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많은 부분이 성문화되어 있지 않은 소리 시김새에 따른 가야금병창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난이도에 따라 단계별로 지도할 수 있는 교수․학습 과정안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첫째, 현재 사용되고 있는 초, 중, 고, 국립 일반 문화학교에서 국악 가창곡 교재로 사용하는 현황을 정리하여 분석한 후 전래/창작동요포함 5곡, 민요(경기민요, 남도민요) 5곡, 단가/ 판소리 포함 5곡등 20곡을 선정하였다. 둘째, 선정된 20곡에 따른 소리 시김새 유형및 빈도수를 파악하였고, 기존의 곡들을 중심으로 가야금병창곡으로 편곡하였다. 셋째, 소리 시김새 유형및 빈도에 따른 난이도를 설정하여 초급- 중급- 고급의 3단계로 90차시의 가야금병창 프로그램 설계및 개발을 하였다. 설계 및 개발과정에서는 전문가의 검토를 받아 구성하였다. 넷째, 본시 학습 과정안에는 18개의 유형의 소리 시김새를 익힌 후, 제재곡에 따라 학습 주제, 학습 목표를 제시하여 구분하였다. 학습단계로는 도입- 전개- 정리, 세 단계로 나누어 그에 따른 학습 차시 구분과 지도 방법시 유의점등을 제시하고, 과정안 지도를 한 후에 학습 정리를 통해 배운 부분을 정리 복습하여 다음 시간에 그 내용이 연장 될 수 있도록 하였다. 다음 시간에 배울 부분의 차시 예고를 통해 예습함으로써 보다 가야금병창을 소리 시김새를 살려 효과적으로 교육 할 수 있도록 과정안을 만들었다. 이와 같이 본 연구에서는 기존의 교재 방식과 새로운 오선보 + 정간보 + 소리 시김새 + 가야금병창보를 한눈에 보여줌으로써 가야금병창을 교육하는데 있어 새로운 방식의 국악 교육 교재 개발을 시도하였는데 의의가 있겠다. 이러한 시도는 매우 단편적인 연구로서 가창곡을 가야금병창으로 실제 지도안을 제시해 주었다고 저절로 국악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소리 시김새 부분에 있어서는 부르는 사람마다 약간에 차이가 있는것을 인식을 하고, 앞으로 이러한 작업이 계속 수정, 보완하여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작게는 가야금병창 레파토리 확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고 크게는 서양음악에 익숙해져 있고 길들어져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 음악의 우수성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아울러 우리의 민족의식을 고취 시킬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소리 내어 읽기를 활용한 한국어 교육 연구 : - 중국인 중급 한국어 학습자 대상으로 -
본 연구는 중국인 학습자의 발음 향상을 위한 효과적인 발음 교육 방안을 제시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중국인 학습자의 한국어 발음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조사한 후, ‘소리 내어 읽기(Reading Aloud)’ 과제를 이용하여 중국인 학습자와 한국인 원어민 화자의 발음 차이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인 학습자의 발음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교육 방법을 검증하고자 한다. 따라서 1장에서는 연구의 배경과 필요성을 제시하였으며 현재 한국어 교육 분야에서 이루어진 ‘소리 내어 읽기’를 활용한 선행연구를 검토하였다. 2장에서는 ‘소리 내어 읽기’의 개념과 유형, ‘소리 내어 읽기’의 교육적 효용성을 제시하였다. 대조분석의 방법으로 ‘소리 내어 읽기’를 한 후 한국어와 중국어의 차이를 억양, 끊어 읽기, 발음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한국어 모어 화자와 중국인 학습자의 ‘소리 내어 읽기’에 존재하는 차이를 보기 위해 읽기 텍스트를 선정하고, 한국어 모어 화자와 중국인 학습자가 텍스트를 읽고 녹음하였다. 중국인 학습자의 ‘소리 내어 읽기’ 음성 파일을 채점하여 점수가 낮은 하위 집단 학습자의 ‘소리 내어 읽기’ 양상을 한국어 모어 화자와 비교하였다. 그 결과, 중국인 학습자는 평서문보다 의문문과 명령문에서 억양 오류를 많이 나타냈다. 동시에 중국어 성조의 간섭으로 인해 하위 집단에 속한 학습자의 음 높낮이 변화가 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어와 중국어의 끊어 읽기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학습자들이 끊어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발음 정확성 오류는 주로 음운 변화가 일어나는 음절에서 많이 보였으며 자음의 경음화와 비음화 규칙을 적용해서 발음하는 데에 어려움을 보였다. 4장에서는 ‘소리 내어 읽기’의 교육적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하위 집단에 속한 학습자를 다시 통제반과 실험반으로 나누었다. 통제반은 일반적인 읽기 교육을 실시하였고 실험반은 ‘소리 내어 읽기’ 교육을 실시하였다. 교육을 실시한 후에 ‘소리 내어 읽기’를 녹음하고 다시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소리 내어 읽기’ 교육은 발음 정확성 제고에 현저한 효과가 보이지 않았으나 억양, 끊어 읽기에 모두 유의이한 효과를 보였으며 향상 비율이 통제반보다 현저히 높게 나타났다. 5장에서는 연구의 결과와 의의, 한계점을 밝혔다. 연구의 결과를 활용하여 중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발음 교육에 다음과 같이 제언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인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발음 교육에 반드시 대조적인 관점을 도입하여 대조 분석의 결과를 교육 현장에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둘째, ‘소리 내어 읽기’ 활동이 언어 지식 습득과 읽기를 비롯한 언어 기능 향상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학습자의 정의적 요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꼭 실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정의적인 요인은 학습 흥미와 학습 자신감과 관련되어 성공적인 한국어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셋째, 학습자들의 자기주도 학습 능력을 인정하며 ‘소리 내어 읽기’ 활동에서 교사보다 학습자가 언어 학습의 주체가 되어야 더 유의미한 학습과 습득이 이루어질 것이다.
債權者取消權에 관한 硏究 : 프랑스법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성덕근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2022 국내박사
1. Cette thése a pour objet de comparer l’action paulienne en droit français et coréen. En droit civil coréen, l’action paulienne est définie comme une action permettant au créancier de révoquer l’acte juridique du débiteur en fraude de ses droits et de rétablir ses biens dans le patrimoine du débiteur. Elle est par conséquent traitée dans le cadre de la protection des droits de gage général des créanciers. En Corée, la jurisprudence et la doctrine se sont mises d’accord sur le fait que l’acte frauduleux est privé d’effet à l’égard du créancier lésé et qu’il est nécessaire de le laisser maintenir pleinement à l’égard de tous les créanciers, sauf lui. Mais ce point de vue est incompatible avec l’article 407 du Code civil coréen. Afin d’identifier une origine de cette contradiction et de chercher une interprétation juridique plus cohérente, il est nécessaire que une approche historique et comparative soit prise sur l’action paulienne. 2. D’abord, selon les analyses historiques, l’action paulienne a son origine dans le droit romain. À cette époque-là, il a été considéré que le fait de soustraire intentionnellement ses biens aux poursuites de ses créancier, fraus creditorum, en passant avec un tiers un acte juridique, constituait un délit, réprimé par une action pénale. Les sanctions en droit romain sur fraus creditorum sont divisées entre l’époque de l’ancien droit romain et au-delà de cette époque. La promulgation Corpus Iuris Civils se sert de repère. Dans l’époque de l’ancien droit romain, le créancier lésé était protégé par les voies suivantes; lex Aelia Sentia, interdictum fraudatorium, in integrum restitutio, actio in factum et exceptio. Puis, en vertu de Corpus Iuris Civils, ces voies ont été regroupées sous le nom de 《actio pauliana》et utilisées comme un gage général pour tous les créanciers. L’ancien droit coutumier français a conservé l’action paulienne dans les diverses régions, mais l’utilité de cette action était médiocre parce que tous les actes étaient passés devant notaires. En raison du développement économique de la France, lors de la promulgation du Code Napoléon, il fallait faire des articles pour protéger créanciers contre des actes frauduleux du débiteur. Malheureusement, les rédacteurs du Code civil se sont bornés à énoncer le principe dans l’article 1167, sans donner de solution précise sur aucun point. Une simple mention de l’action paulienne reste dans cet article. C’est la raison pour laquelle la jurisprudence a été concrétisée par la théorie de l’action paulienne. Les chercheurs français étaient divisés sur la base, la nature et les effets de cette action depuis sa promulgation. De nos jours, la majorité des doctrines françaises trouvent sa base aux articles 2284 et 2285 du Code civil français. En plus, elle considère que sa nature juridique est personnelle et son effet est l’inopposabilité. L’action paulienne en droit civil japonais tire son origine du‘Projet de Code civil pour l’Empire du Japon’de Gustave Boissonade. Il a élaboré cinq articles relatifs à l’action paulienne en adoptant les doctrines et la jurisprudence françaises dans ce projet. En particulier, il a inseré son avis sur les effets de l’action paulienne dans l’article 363 de ce projet, 《……, elle profite à tous les créanciers indistinctement, à moins qu’il n’existe entre eux des cause légales de préférence.》. Ce n’était ni la position jurisprudentielle, ni la doctrine majoritaire, mais celle minoritaire en France à son époque-là. Cela a causé du problème incompatible avec l’effet relatif à l’action paulienne au Japon et en Corée du Sud. Alors qu’il existait de nombreux arrêts et doctrines japonais sur la nature juridique et l’effet de l’action paulienne après la promulgation du Code civil japonais, il semble que la plupart des problèmes ont été résolus par la réforme du Code civil japonais de 2017. Ce sont les articles 424, 425 et 426 qui ont pour la première fois traité de l’action paulienne dans l’ancien Code civil coréen. Ces articles sont similaires aux articles du Code civil japonais et du Code civil mandchourien à cette époque-là. C’est la raison pour laquelle le problème qui s’etait produit au Japon et en Mandchourie a été répété en Corée du Sud, jusqu’à maintenant. Pendant plus de 60 ans après la promulgation du Code civil coréen, de nombreux recherches et arrêts sur l’action paulienne ont été menés. Et sur cette base, un avant-projet de réforme du Code civil coréen contenant les dispositions relatives à l’action paulienne a été préparé en 2013, mais il n’a pas finalement été déposé. Néanmoins, on s’attend à ce que la réforme soit bientôt apportée avec les recherches antérieures. 3. Ensuite, les conclusions des analyses comparatives de l’action paulienne entre le droit civil français et celui coréen sont les suivantes. Traditionnellement, l’action paulienne a été seulement ouverte aux créanciers de somme d’argent à l’encontre de leur débiteur en France, mais également en Corée. Mais de nos jours, la jurisprudence et la doctrine françaises se sont mises d’accord sur le fait que l’action paulienne est ouvert aux créanciers qui ont droit de créance ayant force obligatoire. On outre, le créancier qui prétend exercer l’action paulienne doit être titulaire d’in droit antérieur ou tout au moins concomitant à l’acte qu’il veut critiquer. En revanche, cette condition de l’antériorité est assouplie par la jurisprudence française qui accueille l’action paulienne dès lors qu’il est constaté que la fraude a été organisée à l’avance pour porter préjudice à un créancier futur. L’action paulienne ne peut être exercée que par le titulaire d’une créance certaine, liquide et exigible au jour de l’exercice de l’action. Ces conditions sont très atténuées aussi. Il n’est pas nécessaire que la créance soit exigible et liquide au moment de l’acte frauduleux. Il suffit que la créance soit certaine voire qu’elle existe simplement en germe. Et la certitude, l’exigibilité et la liquidité de la créance peuvent n’exister qu’au moment où le juge statue. Cette évolution théorique et jurisprudentielle est également observée en droit civil coréen. En droit civil français, la fraude du débiteur est une condition de l’action paulienne. Elle est composée en deux éléments: l’acte frauduleux et l’intention frauduleuse. D’abord, la jurisprudence et la doctrine françaises ont considéré que l’acte frauduleux est un acte d’appauvrissement qui a causé au créancier un préjudice en provoquant ou aggravant l’insolvabilité du débiteur. Cette condition est conforme à la jurisprudence et à la doctrine en Coréen. Mais l’on peut définir que l’acte du débiteur est un acte frauduleux lorsqu’il vise à entraver l’exécution du droit du créancier, parce que l’action paulienne est ouvert aux tous les créanciers qui ont droit de créance ayant force obligatoire. Et il suffit que l’acte frauduleux ait pour effet de rendre impossible ou inefficace l’exercice du droit de créancier. Quant à l’intention frauduleuse, il suffit que le débiteur ait accompli l’acte contesté en ayant eu conscience du préjudice causé au créancier en droit civil français. Et le tiers-acquéreur à titre onéreux ne subit l’action paulienne que s’il a été complice de la fraude. Au contraire, le tiers-acquéreur à titre gratuit subit cette action même s’il a été de bonne foi. Selon l’article 406 alinéa 1er du Code civil coréen, si le tiers-acquéreur ou le sous-acquéreur est de bonne foi, il est à l’abri de l’action paulienne. Mais, ce que le résultat dépend du caractère gratuit ou onéreux de l’acte contesté en droit civil français, c’est la différence entre ces deux pays. Concernant la recevabilité de l’action paulienne, le créancier dirige son action contre le tiers qui a bénéficié de l’acte frauduleux, en son nom personnel. Il est donc nécessaire d’établir un intérêt à agir au moment de l’exercice de cette action. Quant à la portée de l’action paulienne, il suffit que l’acte frauduleux soit privé d’effets à l’égard du ou des créanciers lésés, et dans la mesure seulement du préjudice subi. Mais elle peut aussi frapper tous les actes indivisibles. Un tel résultat est également observée en droit civil coréen. Elle se prescrit par cinq ans courant à compter du jour où le titulaire du droit a connu ou aurait dû connaître les faits lui permettant de l’exercer. Selon l’article 406 alinéa 2 du Code civil coréen, le demandeur doit diriger son action dans le délai de 1 an où le titulaire du droit a connu ou dans le délai de 5 ans où l’action frauduleux a conclue. Concernant les effets de l’action paulienne, celle-ci n’a pas pour effet de reconstituer le patrimoine du débiteur, mais il s’agit de l’inopposabilité entre le créancier et le tiers en droit civil français. Elle permet seulement au demandeur ayant obtenu gain de cause de faire comme si l’acte contesté n’avait pas en lieu. Par conséquent, elle ne profite qu’au seul créancier qui l’intente. Au contraire, en Corée, l’action paulienne a pour effet de reconstituer le patrimoine du débiteur, c’est-à-dire la nullité et la restitution. De plus, elle a ses effets erga omnes pour tous les créanciers selon l’article 407 du Code civil coréen. 우리민법상 채권자취소권은 ‘채권자를 해함을 알면서 행한 채무자의 법률행위를 취소하고 채무자의 재산을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채권자의 권리’라고 정의되고 있고, ‘책임재산의 보전’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채권자취소권 행사의 효력에 대해서는 이를 행사한 채권자와 소의 상대방인 수익자 내지 전득자 사이에서만 발생하고 채무자에게는 발생되지 않는다는, 이른바 ‘상대적 효력설’이 우리의 통설과 판례의 입장이지만, 이러한 입장은 사해행위의 취소와 원상회복이 모든 채권자의 이익을 위하여 효력이 있다는 민법 제407조의 내용에 비추어 서로 조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하여 본 논문은 우리민법상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고자 하였고, 바람직한 운용을 위해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채권자취소권에 대한 연혁 및 비교법적인 분석을 시도하였다. 먼저 채권자취소권에 대해 연혁적인 분석을 통해 살펴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의 채권자취소권이 유래했다고 알려진 로마법에서는 채권자를 사해하는 채무자의 행위를 형사적인 불법행위 중 하나인 인격침해의 한 유형으로 파악하여 ‘채권자사해’(fraus creditorum)라는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로마법대전이 편찬되기 전인 고대 로마법시대에는 아엘리우스 센티우스법·사해에 관한 특시명령·원상회복명령·사실소권·항변을 통해 채무자에 의해 침해된 채권자의 권리가 보호되었다. 그리고 이후 로마법대전에서는 이러한 소권들이 ‘파울리아나 소권’(actio pauliana)으로 통합되어 일종의 파산절차로서 모든 채권자들을 위한 책임재산을 보전하려는 제도로 운용되었다. 한편 중세 이탈리아 도시법에서는 사해의 주관적 요소인 사해의사에 관한 요건이 완화되어, 채무자의 재산상태악화라는 객관적인 사정만으로도 채권자가 채무자의 사해적인 행위를 취소할 수 있었다. 프랑스의 고(古) 관습법시대에는 채권자사해에 대한 규율이 여러 지방에서 관습법의 형태로 존재하였지만, 당시에는 거의 모든 법률행위가 공증인 앞에서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제도의 유용성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민법 제정시기에는 사회·경제적 발전으로 인해 채무자의 사해적인 행위에 대응할 수 있는 권리를 민법전에 수록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되어 프랑스민법 제1167조에 관련 내용이 입법화되었다. 그러나 채권자취소권(Action paulienne)에 관한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고 단순한 언급에 그쳤기 때문에 주요 내용들에 대해서는 학설과 판례에 의해 구체화되어야 했다. 그 결과 채권자취소권의 인정근거에 있어서는 일반담보권에 관한 프랑스민법 제2284조와 공동담보에 관한 제2285조를 근거로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 다수의 견해로 보이고, 채권자취소권은 ‘대인소권’으로서 피고인 수익자가 원고인 채권자에 대해서만 대항할 수 없다고 보는 ‘대항불가효’의 효과를 얻기 위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오늘날 프랑스의 통설과 판례의 입장이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일본민법상 채권자취소권은 그 기원을 브와소나드(Boissonade)가 기초했던 일본민법초안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는 모국인 프랑스의 민법전에 단 1개의 조문이었던 채권자취소권에 관한 내용을 일본민법초안에서 5개의 조문으로 구체화시켰다. 한편 그는 당시 프랑스의 판례와 학자들의 견해들을 일본민법초안에 이식하였는데, 채권자취소권의 행사효과와 관련하여 프랑스의 판례와 통설의 입장이 아닌 소수설이었던 본인의 견해를 수록하였다. 그 결과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 효력설과 모든 채권자에게 효력이 미친다는 조문과의 부조화라는 문제와 관련논의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민법제정 이후로 계속되었던 이에 대한 논의들이 2017년 개정을 통해 기존 3개의 조문이 14개의 조문으로 구체화됨으로써 상당부분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채권자취소권이 우리민법상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구민법 제424조 내지 제426조였다. 우리민법상 채권자취소권 관련조문들은 구민법으로 사용되었던 일본민법과 만주국민법에서의 그것과 유사하여 해당조문과 관계된 문제들이 우리에게도 재현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마련되었던 2013년 민법개정안이 비록 무산된 바 있지만 추후 다시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채권자취소권에 대해 프랑스민법과의 비교법적인 분석을 통해 살펴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에서는 채권자취소권의 피보전채권과 관련하여 우리와는 달리 그 대상을 금전채권에 한정하고 있지 않다. 본래 프랑스의 학설과 판례는 전통적으로 피보전채권이 금전채권임을 전제하고 논의해왔지만, 최근에는 채무자는 계약에 구속되고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구속력이 있는 모든 채권은 채권자취소권의 피보전채권이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때 피보전채권은 채무자의 사해행위 당시에 이미 확정되어 존재하거나 적어도 그와 동시에 발생해야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오늘날 시간적 선행성의 요건은 완화되어, 사해가 기획될 때 이미 채권이 존재하고 장래의 채권을 예상하여 사해가 계획되었다면 피보전채권이 사해행위 이후에 발생했다 하더라도 채권자는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채권자취소권이 행사되는 시점에 피보전채권이 존재가 확정되고, 채권의 내용도 확정되어야 하며, 기한이 도래해야 함이 원칙이나, 최근 프랑스의 학설과 판례는 피보전채권이 사해행위가 발생했을 당시에 확실하게 존재하거나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존재와 내용의 확정성 및 청구가능성은 법원의 판결시까지만 존재하면 되는 것으로 완화되었는데, 이러한 입장은 우리의 통설과 판례의 입장과 매우 유사하다고 하겠다. 프랑스민법상 채권자의 권리를 위태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사해’(fraude)는 사해행위와 사해의사로 구성된다. 채권자에게 손해를 야기하는 채무자의 사해행위에 대해 프랑스에서는 우리의 학설·판례와 같이 ‘채무자에게 무자력을 야기하거나 이미 무자력이었던 채무자의 상태를 보다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파악하는 것이 전통적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에는 채권자취소권의 피보전채권을 금전채권에 한정시키지 않기 때문에 사해행위는 ‘채권자의 권리실현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라고 정의되고 있고, 행위의 목적에 따라 ‘채권자의 권리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와 ‘채권자의 권리실현의 효율성을 감소시키는 행위’로 구분될 수 있다. 사해의사와 관련하여 오늘날 프랑스의 통설과 판례는‘채권자에게 손해를 입힌다는 단순한 인식’만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인데, ‘소극적인 인식’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우리의 다수설과 판례와 매우 유사하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채무자와 수익자 간에 이루어진 법률행위의 원인이 유상(有償)·무상(無償)인지에 따라 선의로 유상취득한 수익자는 채권자의 채권자취소권의 행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지만, 만약 그가 채무자로부터 무상으로 취득했거나 유상으로 취득했더라도 공모자로서 채권자를 해한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보호받을 수 없다. 이렇게 수익자의 취득원인에 따라 보호의 결과가 달라지는 프랑스식의 접근은 우리민법상 논의와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채권자취소권의 행사와 행사범위에 관련해서 양국 민법상의 논의는 유사하지만, 행사기간에 대해서 프랑스민법상 소멸시효에 관한 5년이 적용되는데 반해, 우리민법상으로는 채권자가 취소원인을 안 날로부터 1년, 법률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5년 내에 제기해야 하고, 이를 제척기간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채권자취소권의 행사효과와 관련해서, 프랑스의 통설과 판례는 채권자가 수익자를 상대로 그 재산이 애초에 채무자로부터 일탈하지 않았던 것으로 취급하여 이에 대해 집행을 하더라도 수익자는 채권자에 대해서 대항하지 못한다는 ‘대항불가효’가 상대적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그 결과 채권자는 소를 제기하지 않은 채무자의 다른 채권자들에 비해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지만, 채권자와 수익자간의 관계를 제외한 다른 관련 주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채무자의 사해행위는 여전히 유효한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이에 반해 우리민법상 채권자취소권의 행사효과는 ‘취소와 원상회복’이며, 모든 채권자의 이익을 위하여 효력이 있다. 그 결과 채권자취소판결로 인해 양도된 재산은 채무자의 일반재산으로 원상회복되고 모든 채권자를 위한 공동담보가 되기 때문에, 원고인 채권자는 본인이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칙적으로 우선변제를 받을 수 없고, 별도의 강제집행을 통해 본인 채권의 만족을 얻어야 한다는 점에서 프랑스와 차이가 있다. 생각건대 채권자취소권의 효과에 있어서 상대적 효력과 조화되기 어려운 취소와 원상회복을 결합시키고 채권자평등주의까지 연결시키고 있는 우리민법상 해당조문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논리적 부조화를 방치하지 말고 앞서 살펴본 내용들을 참고하여 입법론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소학(小學)》의 현대 청소년 교육에의 적용 방안에 관한 연구
김유경 仁川大學校 敎育大學院 2003 국내석사
전통은 유구한 역사 아래 살아오는 동안 축적된 삶의 모습이다. 전통윤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공동사회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보존되고 전승되어 오면서 우리의 생활문화를 바로잡아 주고 그 사회의 번영과 발전에 공헌되는 윤리이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윤리에 의하여 도전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전통이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귀중하게 보존되고 전승되어 오는 정신적인 요소이므로 그 속에서 올바른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리시대의 임무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교육은 무가치한 것으로 도외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지금의 교육은 가치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의 관념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관념적인 가치교육은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교육은 몸공부와 마음공부가 분리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분리야말로 현대 교육의 폐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의 대안으로써, 《소학》 교육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학》이라는 책은, 물 뿌리고 쓸며 대답하고 나아가고 물러가는 節度(灑掃應對進退之節)를 밝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방법과 원리를 가르쳤다. 청소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청소는 깨끗하게 해야겠다는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고, 직접 비를 들고 쓸어야 하는 몸의 움직임이 들어가야 한다. 세상사의 자질구레한 일을 배우고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세상을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몸공부 속에 진리가 담겨 있으며 사회의 질서를 익혀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사의 자질구레한 몸공부를 실천함으로써 마음을 바로잡아 정신집중을 시키는 敬을 함양하는 공부이다. 이는 참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인격완성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사람이 되어가기 위해서는 지식만으로 안 된다. 가정에서나 학교, 사회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敬을 통하여 생활 속에서 습관화된 공부이어야 한다고《소학》은 강조한다. 이와 같이 《소학》 교육은 '삶' 그 자체를 가르친다. 다시 말하자면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상의 생활현장에 밀착하여 그 구체적인 행동 요령을 가르치며 삶의 생활 속에서 체험하고 실천하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쓸고 닦는 일과 같은 일상의 생활에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도리를 배우게 하였다. 이러한 도리나 예절은 하나의 형식이기에 앞서 사회 규범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인 것이다. 그냥 효도하라고 하면 너무나 막연하지 않은가?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자식은 부모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효를 실천할 것인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학》에서 강조하는 생활 속에서의 실천이라는 것은 결코 한번의 가르침이나 독서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반복적 학습을 통하여 습관화하는 것이 敬을 함양하는 공부가 될 것이다. 《소학》을 보면 장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 절차를 어떻게 치르는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죽음이라는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주체성을 길러 준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죽음을 실존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레모니 즉 의식의 일환으로서, 그것을 행하는 속에서 감정을 순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소학》 공부는 지식만으로는 안되고 청소나 손님접대등과 같은 세상사의 자질구레한 일과 예의범절을 몸소 실천하는 몸공부를 통해서, 敬을 함양하여 사람다운 사람으로 되어 가는 과정의 공부이다. 이것은 어려서 훈련이 안되면 어른이 되어서도 제대로 실천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항상 《소학》 공부를 함으로써 몸에 배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객관적인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가르쳐 인격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그 밑거름을 제공함으로써 모든 사물에 대해 올바른 가치를 부여할 줄 알고 자신의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어 완전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직 올바른 가치관이 성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가치부여도 해주지 못한 채 스스로 선택하라고 한다면 이는 무책임한 것이다. 훌륭한 성현들의 예들이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기능을 하는 면에서는 부정적이다. 그러나 실천할 수 있는 인간을 기르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토대가 있어야, 보고 따라 배우는 가운데도 가치는 있다고 본다. 이러한 모방 교육면에서는 《소학》 교육은 시사적이다. 《소학》과 같은 근본적인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서구의 문물이나 학문을 그대로 받아들여 절차상의 규범을 전체 사회규범으로 사회화하는 이를테면, 몸따로 마음 따로 분리된 지식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지식은 몸공부와 같이 실천해야 진정한 가치를 얻을 수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나은 세계관을 옹호하면서 시대에 맞는 《소학》 공부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전통을 이끌어 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A tradition is an accumulate figure of our life in everlasting history. It is the traditional ethics that renovate our culture and contribute to the prosperity and development of our society while it is preserved and transmitted for a long time. And it is sometimes challenged by ethics. In this way tradition is the mental element which is preserved and transmitted for its historical values. We have the historical tasks to find out the righteousness in it. Yet the traditional education is neglected as worthless thing in real situation. Especially, today's education is emphasizing only its general idea than real value although importance of value education is admitted. Idealistic value education is not accompanied by practice. In education we cannot separate mind study from physical study. This kind of seperation is a real evil of modern education. As an alternative of this problem, <SoHok> is to be referred. It lighted up the manners to water, answer, go forward and move backward and it teaches us basic methods and principles. Cleaning is important. That's because cleaning need not only our will to clean but also physical movement. The world can be understood by learning how to do with trivial things and doing them. In real physical learning we can find out what truth is and learn social order. And also, it is the study that renovates our mind and makes our mind concentrate to cultivate respect. It contains accomplishment of personality to be a faithful man. Knowlege is not enough to be such a man. <SoHak> emphasizes that it must be a habitually formed study in home, a school, and a social life. It teaches us life itself. In other words, it is not seperated from real life. It teaches that the real way of doing and the attitudes to experience and practise in daily life. It also make us learn reasonable ways of doing something like cleaning and wiping in the routine life. Such a reason or manner is also the way for a harmonious lives with others rather than a typical form. It is too vague to be said to be obedient without any teaching. It is necessary for parents to teach their children how to be obedient to their parents concretely. And it is not possible to carry those precepts into practice after merely they are taught to do that or read only once. The study must be constant repetitive education. A talk about a funeral is said in <SoHak>. It explains funeral procedures after parents death in detail. It is meaningful for children to have the subjectivity to deal with a kind of death. It uses a death as a method to refine feelings. <SoHak> is a serial study to be a man. So it is important to teach the students for the habitual learning for without traing fromyoung ages it is not possible to cultivate respect. By teaching the real ways of living and wisdom and providing them the base of maturing, they're made to be a man with right value and attitudes, moreover with whole personality. It is not responsible if the young people who have not formed correct sense of value yet are told to choose themselves without giving any teaching of right value. It has negative point for its suppressive and powerful function, But it is considerable that imitation education is useful for growing a man of practice. The seperated education from real life which accepts the Western European civilization or an education as it is must be thrown away. As for all knowledges, it is worth being true in real life. We who live in modern age have to reinterpret <SoHak> as a suitable one in these days and try to get a new tradition out of it.
소공동체를 통한 청년사목활성화 방안 연구 : 대구대교구를 중심으로
이철희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2 국내석사
The reasons for this study are presented as follows: It is easy to see numerous young people in a downtown and clubs on weekends, whereas the youth in a church is hardly seen. To make it worse, the number of the youth going to church decreases as time goes by. In the circumstance, thinking about how to make young people go to church, this researcher faced small Christian community for the youth (team structure). Therefore, in the hope that youth ministry will be activated through the small Christian community for the youth as well as that the religious faith of the youth will be enhanced, this researcher determined to write this thesis. Accordingly, this thesis was intended to investigate the issues of youth ministry, which is at a crisis as the time changes, and examine the roles and importance of youth ministry. And, it proposed the future direction of youth ministry, and a ‘team structure’ of small Christian community for the youth as a way to activate youth ministry. The reason for the proposal of the team structure in this thesis is that the team structure is the most practical method to meet the purposes of this thesis-‘activation of youth ministry’ and ‘youth evangelization’. This thesis consists of four chapters, which are briefly presented as follows. In chapter 1, the youth were investigated in multiple ways in order to understand youth ministry comprehensively. And, the definition, target, features, factors, and importance of youth ministry were examined. In chapter 2, previous studies and Daegu Archdiocese’s ‘Statistics of Religious Influence’ were investigated to analyze the current state of youth ministry. Based on the analysis, the issues of youth ministry were divided into two sub categories. Also, the youth’s secession phenomenon was studied in two dimensions. On the basis of the analysis and study, the future direction of youth ministry was proposed in six ways. In chapter 3, the definition and features of small Christian community were investigated. And, as a way to activate youth ministry, the community for the youth (team structure) was proposed. Also, the method to apply small Christian community for the youth (team structure) to each church and the practice of the community were proposed. Along with the proposal, the possibility of the community (team structure) was described. Lastly, in chapter 4, the task of small Christian community (team structure) proposed in this thesis as a way to activate youth ministry was investigated. And, the solution of the task, and the method as to how to settle the community down in a church continuously and systematically were proposed in the dimension of a church, a parish, and an archdiocese. The purpose and direction of youth ministry are to evangelize the youth and make them live like young Christ. For the reason, this thesis proposed small Christian community for the youth (team structure) as a way to activate youth ministry and to meet its purpose. This small Christian community for the youth (team structure) is an outcome of an effort made by the priests in charge of the youth in Daegu, Busan, and Masan Archdioceses under the name of ‘New Vision to Evangelize the Youth’ in 2006. Therefore, small Christian community for the youth (team structure) is intended to ‘evangelize the youth and activate youth ministry in a church’. In the aspect, the community (team structure) will help enhance religious faith of each young people and evangelize them. Furthermore, it is expected that the small Christian community for the youth (team structure) will help preach the gospel to the youth, testify to religious faith, and cultivate living young Christ, and thereby activate youth ministry.
소(素)와 현(絢)으로 본 백묘(白描) 표현 연구 : 연구자의 돈황벽화 재해석 작품을 중심으로
동양 미학에서 ‘소(素)’의 개념은 고대의 전통문화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소’는 본래 염색되지 않은 비단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가 흰색, 본 색, 소박함, 꾸밈없다 등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고, 더불어 자연, 진실, 소 박, 간결에 대한 추구를 나타내는 중요한 미학적 개념이자 가치의 지향으로 간주되어 왔다. 예술 영역에서 ‘소’는 ‘회사후소(繪事後素)’, ‘소이위현(素以為 絢)’을 핵심으로 하는 미학 사상을 형성하였고, 이와 관련된 미학적 개념에 대한 담론은 전통적인 동양회화의 함의를 더욱 확장시켰다. 예술 창작에서 중요한 개념인 ‘회사후소’, ‘소이위현’은 『논어』「팔일(八 佾)」에 나오는 말로, “고운 웃음에 보조개가 어여쁘고, 아름다운 눈에 눈동 자가 또렷하니, 흰 바탕에 채색을 더한 듯하구나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 까?”라는 자하의 물음에 공자는 ‘회사후소(繪事後素)’라고 대답한 데서 유래 한다. ‘회사’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고 ‘후소’는 흰 바탕을 마련한 이후, 즉 흰 바탕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회사후소는 그림 등 예술 창작을 할 때 기초와 바탕색을 잘 갖춘 다음 채색과 장식을 가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 다. ‘소이위현’은 ‘소(素)’로써 ‘현(絢)’을 구현하는 것으로, 흰 바탕이 있어야 화려한 색상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은 일을 할 때 먼저 일정한 기초와 본질을 갖춘 다음 외형적인 수정이나 발전을 도모해 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다시 말해, 기본과 본질에 충실하면서 외적 표현을 추구하되 내적 소양과 품격에 소홀하지 않는, ‘소’와 ‘현’의 조화를 상기하는 말이자 점진적인 발전의 중요성과 내·외부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본 연구는 백묘 표현에서 ‘소’와 ‘현’이 지닌 독특한 미감과 가치를 고찰하 고 연구자의 돈황벽화 재해석 작품을 통해 전통회화 예술이 현대예술에서 갖는 역할과 새로운 의미, 발전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본 연구에서 ‘소’는 간결하고 소박한 미학, 본질에 입각한 예술적 추구를 이르는 말로 풍부한 예술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소’의 창작 개념은 작품의 내적 정신을 발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나아가 예술 창작의 방법, 형 식, 과정뿐만 아니라 창작 태도와도 연관 지을 수 있다. 요컨대 예술가는 피 상적인 화려함이나 기술적 과시가 아닌 ‘소’의 마음가짐, 즉 창작 과정에서 의 기초와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자의 작품에서는 순수한 선 묘, 간소한 재료, 담아한 색채를 통해 소박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 한편, ‘현’은 적정의 장식과 화려함을 의미한다. 예술 표현에서 ‘현’은 과도한 현란 함이나 과장된 표현이 아닌 ‘소’를 바탕으로 한 예술적 매력을 드러내는 역 할을 한다. 선의 굵기, 밀도, 곡직 등 세밀한 변화를 통해 ‘현’의 효과를 연 출하거나 작품에 생동감과 입체감을 부여할 수 있고, 색, 재료, 기하도형 등 을 통해서도 장식적 효과를 낼 수 있다. 연구자는 작품에 자석색(赭石色), 돈황토, 동박 등을 색과 재료로 추가하고, 현대회화의 기하도형 등 요소를 접목하여 ‘현’의 미감을 드러내어 작품의 예술성과 장식성을 높였다. 이렇듯 연구자는 작품에서 ‘소’와 ‘현’의 적절한 배치와 표현을 통해 두 가지 개념의 조화와 통일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백묘 표현 위주의 돈황벽화 재해석 작품을 중심으로 ‘소’와 ‘현’ 의 조화로운 창작 개념과 그 중요성을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입증하는 데 의 의가 있다. 연구자는 ‘소’와 ‘현’에 대한 이론 고찰에서 시작하여, 동양 전통 문화에서 ‘소’와 ‘현’이 지닌 미학적 의미를 정리하고 백묘 기법의 연원과 표 현에 대하여 서술하였으며, 이와 관련된 선행 작가와 대표 작품을 고찰하였 다. 아울러 돈황벽화에 사용된 안료를 분석하여 돈황벽화의 재해석 방법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자 하였다. 오늘날 예술 개념이 진화하고 다문화적 교류와 통합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돈황의 예술과 벽화 또한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되고 있다. 연 구자는 오랜 기간에 걸친 돈황벽화의 심층 연구와 재해석을 통해 전통적인 백묘 기법과 현대예술 개념을 결합하여 ‘이소전형’, ‘이소전질’, ‘이소전의’의 개념을 제시하였고, 이 세 가지 개념을 가시화 한 일련의 작품을 창작하였 다. 작품에서는 ‘소’의 간결함과 소박함, ‘현’의 절제된 화려함을 동시에 표현 하고자 하였으며 이는 전통예술에 대한 이해와 계승의 의지를 담아낸 것이 자 현대예술로서 재해석 가능성을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대중의 미적 기준과 수요가 변화하면서 예술 작품 에 대한 기대치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소’와 ‘현’의 연구는 단 순함과 화려함, 소박미와 장식미 간의 균형을 이해함으로써 예술적 가치와 감화력을 지닌 작품을 창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본 연구의 돈 황벽화 재해석을 통해 돈황예술뿐만 아니라 전통예술의 가치와 의미를 널리 알리고, 나아가 전통문화의 보호와 계승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창작의 가능성에 제시를 목적으로 한 연구로 그 의의가 있다.
김현선 全州大學校 敎育大學院 2003 국내석사
본 연구는 현대 사회 전체에 蔓延되어 있는 個人主義的 思考와, 利己心의 克復과 그리고 점차 상실되어 가는 人間性을 回復(本然之性의 回復)할 수 있는 敎育 方法을 朝鮮時代 倫理 指針書로 인식되고 특히 어린이들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道德規範을 스스로 깨닫고 實踐하게 하려는 의도로 널리 보급된 『小學』에서의 敬의 意義와 그 敎育的 價値를 연구하였다. 『小學』을 구성하고 있는 여섯 편(立敎, 明倫, 敬身, 稽古, 嘉言, 善行篇)은 크게 內篇-外篇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여섯 편의 내용들은 敎育 目標-內容-方法이란 하나의 일관된 敬의 涵養이라는 敎育課程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立敎>는 『小學』의 敎育 目標를 담고 있는데 性理學的 倫理觀, 道學的 人性論, 그리고 理想的 人間象이 제시되어 있다. 性理學的 입장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육체적인 존재인 한 形氣의 사사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고, 人慾의 사사로움에 쉽게 빠지게 되어 道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파악하여 그 명령을 따르기 쉽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本性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人倫을 敬의 마음으로 躬行實踐하는 道學的인 精進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이상적인 인간인 聖人의 언행을 표준으로 삼아, 점차 聖人이나 君子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小學』의 <明倫>에서 五倫은 단순한 契約論的 規範이 아니라, 궁극적인 실재인 '天'으로부터 연역되는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 '人間關係' 규범이다. 五倫을 이러한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 人倫規範으로 인식하면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자연히 규범에 대한 '恭敬心'과 '畏敬心'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明倫>에서 이러한 五倫에 담겨있는 근본 정신은 상대방에 대한 지극한 '섬김'과 '恭敬'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 민주 사회적 공간 관련하여 유의해서 보아야할 점은, 儒家의 五倫 관계를 一方的-主從的 관계 윤리가 아니고, 雙方의 道理와 義務를 규정하고 있는 '雙務的 關係'를 근본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敬身>에서는 다섯 가지 人間關係 영역으로 포괄되지 않는 윤리 영역, 특히 개인의 내외면적 생활을 규율하는 윤리 영역이 다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敬身>篇의 의미는, 개인의 隱微한 생활 영역에서 人慾이 싹트고 자라서, 本性의 덕을 상실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愼獨하는 도덕적 진지성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朝鮮時代 배움에 처음 입문하는 아동들의 책인 『小學』은 敬의 涵養을 목적으로 한다. 『小學』은 灑掃應對와 같은 아이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할 일과 마음과 外面을 바르게 다스리는 일을 행하도록 가르친다. 이와 같은 일은 敬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倫理的 德目을 단순히 반복하여 實踐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灑掃應對와 倫理的 實踐을 통해 겸손하고 방만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배운다. 즉 윤리적 실천을 통하여 아이들은 敬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다. 外面을 단정하고 바르게 갖는 것은 그 자체가 배움으로서 마음을 바르게 한다. 그리고 敬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惡한 것이나 개인적 욕심으로 흐르지 않고 道理에 입각한 실천을 더욱 잘할 수 있다. 敬과 倫理的 德目의 실천은 상호 상승 작용을 가져오는 것이다. 『小學』에서 涵養한 敬은 마음에 깃들어 있는 本然之性의 실마리를 드러내고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良知와 良能이 惡한 것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주고 길어준다. 『大學』 공부는 『小學』에서 익힌 敬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따라서 사물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물의 理致를 탐구하고 그것에 따라 실천하여 『大學』공부의 성과가 있을 수 있다. 또한 『大學』의 공부를 통하여 敬은 더욱 친절해진다. '공부란 인간으로 살아가는 길을 배우는 것이다.'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공부의 근원인 敬을 涵養하는 『小學』공부는 인간됨의 바탕을 형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小學』교육은 배움을 객관적인 사실을 배우는 것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小學』 교육은 실천하는 중에 발현되는 本然之性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그것을 확충하고 자신의 삶의 지표로 삼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知識은 增加하지만 그것이 人格的 成熟과는 무관하고 기술은 발달하지만 마음은 疲弊해지는 현대 교육의 逆說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端緖를 『小學』의 敬에서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