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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어기조사(語氣助詞) 연구(硏究)

        정순영 ( Soon Young Jung ) 한국한문고전학회(구.성신한문학회) 2007 漢文古典硏究 Vol.15 No.-

        본 연구는 우리나라의 史書 가운데 『三國遺事』를 대상으로 하여 『三國遺事』에 나타나는 모든 語氣助詞에 대한 定量分析의 방법을 통해, 단위문장 내의 통사·형태상에서 語氣助詞가 어떠한 문법기능을 수행하는가를 밝히고자 하였다. 기존의 語氣助詞에 대한 연구는 통시적으로 많은 자료를 수집·분석하였으나, 공시적인 연구와 연관해서 어기조사를 규명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해당 어기조사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도 훈고적 해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며, 단위문장 안에서 어기조사가 갖는 기능을 설명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몇몇 기능에 대해서만 설명할 뿐, 통사적 체계 안에서 갖는 구체적 기능에 대한 분석은 매우 소홀히 다루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공시적 시각에서 기존의 연구방법을 보완하고 語氣助詞가 단위 문장 내에서 체계적으로 나타내는 문법기능을 분석·검토하였다. 제 2장에서는 중국의 제가들의 助詞에 대한 정의와 분류기준과 방법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제 3장에서는 語氣助詞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로서, 『三國遺事』에 출현한 語氣助詞로는 者·夫·惟·蓋·也·其·耶·乎·矣·焉·爾·耳·而已·歟·斯·哉·也歟·也哉·矣哉 등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조사를 發語語氣, 提示·停頓語氣, 陳述語氣, 疑問語氣, 反語語氣, 推測語氣, 限定語氣, 感歎語氣, 命令語氣로 나누어 단위문장내의 통사·형태론적 기능과 함께 화자가 청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구체적 의미기능을 분석하였다. 결론에서는 『三國遺事』에 출현한 어기조사에 대한 정량분석 결과를 비교 검토한 결과 『三國遺事』에 나타난 어기조사의 사용 분포는 중국의 『史記』에 비하여 상용화된 어기조사를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三國遺事』는 『三國史記』와 함께 공시적으로 고려시대 한문문장의 표현방식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며, 고려시대의 어법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자료로, 고려시대의 한문구성의 특징과 수준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특징은 통시적으로 중국의 先秦, 漢代의 한문 표현방식에서 변화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공시적 문법체계 연구로서 『三國遺事』에 나타난 단위문장 구성에 있어서 어기조사의 역할과 기능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한 연구이다. Grammar functions of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語氣助詞) syntactical, morphological in the unit sentence wrer studied in this thesis using the method of quantitative analysis for all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語氣助詞) appeared in Samkukyusa(『三國遺事』) which is one of the historical books of Korea. In the previous studies about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語氣助詞), many data were collected and analyzed diachronically. But those suudies failed to examine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語氣助詞) cosely in connection with synchronic study. Besides, in the explanation about relevant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語氣助詞) also, the case which was made centering around exegetic explanation was most. And, in the case to explain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語氣助詞) have in the unit sentence also, explanation only about some functions is made, but the analysis about concrete function to have in syntactical system is being handled negligently. Thus, this study was supplemented existing study method with synchronic view point and analyzed and examined the grammar function that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語氣助詞) show on unit sentence systematically. To arrange by chapters is as follows: In the second chapter, analyzed definition and level of classifications for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語氣助詞) which appeared Samkukyusa(『三國遺事』). In the third chapter, it was clarified that, as for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語氣助詞) which appeared Samkukyusa(『三國遺事』),``者`` ``夫`` ``惟`` ``蓋`` ``也`` ``其`` ``耶`` ``乎`` ``矣`` ``焉`` ``爾`` ``耳`` ``而已`` ``歟`` ``斯`` ``哉`` ``也歟`` ``也哉`` ``矣哉``etc. wree appeared and anayzed these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語氣助詞). The structure particle was anayzed syntactical, morphological function in unit sentence and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語氣助詞) was analyzed the concrete meaning function that narrators try to transmit to listeners with syntactical, morphological function in unit sentence by classifying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 into original linguistic spirit, suggestion, linguistic spirit of arrangement, linguistic spirit of statement, linguistic spirit of doubt, linguistic spirit of irony, linguistic spirit of guess, linguistic spirit of limit, linguistic spirit of exclamation, and linguistic spirit of command again about the linguistic spirit particles. In the conclusion, Samkukyusa shows synchronically the feature abd level of Chinese sentence in Koryo(高麗) period as Samkuksaki. This feature shows that the expression form Koryo was changed diachronically from of Sunjin(先秦) and Han(漢) period China. The pus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how the role and function of linguistic spirit particles are being made in the composition of unit sentence which appeared in Samkukyusa through synchronic grammar system.

      • KCI등재

        《삼국유사》 왕력편ㆍ기이편의 신라 하대 기사와 사회상

        張日圭(장일규) 신라사학회 2014 新羅史學報 Vol.0 No.30

        최근에 새로운 《삼국유사》 판본이 공개되었다. ‘파른본'으로 불리는 이 판본은 왕력과 권1기이편만 남아 있다. 현재 왕력과 권1 기이편만 남아 있는 고판본은 필사 ‘석남본'《삼국유사》이기에, ‘파른본'《삼국유사》는 필사 ‘석남본'《삼국유사》와 비교될 수 있다. 다만 필사 ‘석남본'《삼국유사》의 기이편은 인출 시기가 뒤늦은 ‘순암수택본'을 그대로 轉載하였으므로, ‘파른본'《삼국유사》과 필사 ‘석남본'《삼국유사》의 비교는 왕력만을 다루어야 한다. 이 글은 ‘파른본'《삼국유사》과 필사 ‘석남본'《삼국유사》의 왕력에 대한 비교를 통해 판본간의 차이를 밝히고, 신라 하대기사의 특징을 살피고자 작성되었다. ‘파른본'과 필사 ‘석남본'을 비교하면, 동일점 13건과 차이점 14건을 확인할 수 있다. 13건의 동일점은 대체로 인출 과정이나 간행 과정에서 글자를 잘못 새긴 경우, 글자의 간격을 좁게 새긴 경우, 글자를 빼고서 새긴 경우, 이체자로 새긴 경우, 영인할 때 잘린 경우, 새겨놓은 글자가 뭉개져서 인출할 때 제대로 인쇄되지 않거나 겹쳐 잘못 나타난 경우이다. 이로써 보면, ‘파른본'《삼국유사》와 필사 ‘석남본'《삼국유사》의 신라 하대 왕력은 동일한 판본을 특별한 加筆없이 그대로 이용하여 인출하였다고 할 수 있다. 14건의 차이점은 대체로 판각의 실수나 판각된 글자의 뭉개짐, 이체자의 사용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忠‘圻'대아간이나 [고어본문참조]符‘甲'午六, 그리고 ‘[고어본문참조]'등처럼 명확하게 서로 다른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다르게 새긴 경우도 확인된다. 자연히 ‘파른본'《삼국유사》와 필사 ‘석남본'《삼국유사》에 보이는 신라 하대 왕력은 동일한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인출하였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뚜렷한 차이도 있으므로, 서로 다른 판본을 각각 새겨 인출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신라 하대는 물론 上代와 中代의 왕력을 포함하여 살펴보면, 필사 ‘석남본'의 오류가 상대적으로 더 많기에, ‘파른본' 《삼국유사》가 필사 ‘석남본'《삼국유사》보다 앞서 인출되었다고 보여진다. 결국 ‘파른본'《삼국유사》는 일연이 탈고한 원고를 새긴 《삼국유사》 초간본이 제작되고서 판목의 훼손과 글자의 누락, 이체화, 壞字化가 진행된 뒤에 기존 판본을 바탕으로 重刊된 판본이라고 생각된다. ‘파른본'《삼국유사》 왕력에서 눈에 띄는 점은 희강왕 외조부를 ‘忠‘圻' 대아간'이라고 한 것, 경문왕 아버지 啓明 角干이 ‘義〈혹은 ‘[고어본문참조]'〉恭大王'으로 追封되었다는 것, 874년을 ‘[고어본문참조]符‘甲'午六'이라고 쓴 것, 효공왕의 이름을 ‘[고어본문참조]'라고 한 것, 경순왕 조부가 ‘官角‘[고어본문참조]''이라고 한 것, 궁예가 처음 세력을 일군 곳을 ‘始投‘北'原賊良吉'이라고 한 것 등이다. 이 가운데 ‘파른본'《삼국유사》 왕력만의 특징은 희강왕 외조부가 ‘忠‘圻'대아간'이라는 것과 경순왕 조부가 ‘官角‘[고어본문참조]''이라고 한 것만이 해당된다. 다만 경순왕 조부에 대한 기록과 함께 ‘신덕왕 외증조부가 元? 각간'이라고 한 ‘파른본'《삼국유사》 왕력의 기록도 《삼국사기》에 보이지 않으므로 함께 포함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파른본'왕력의 희강왕 외조부와 신덕왕 외증조부에 대한 기록은 모두 박씨 세력과 관련되었다. 또한 경순왕은 박씨 왕인 경애왕을 뒤이어서 왕위에 올랐으므로, 경순왕 조부에 대한 기록 역시 박씨 세력과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삼국유사》 왕력에서 신라 하대 국왕의 성씨는 신덕왕ㆍ경명왕ㆍ경애왕을 제외하고는 김씨로 기재되었고, 왕비의 성씨는 특별히 기재되지 않았다. ‘파른본'왕력에는 박씨 세력과 긴밀히 연결된 희강왕 외조부와 신덕왕 외가 세력의 모습이 은연중에 기술되었다. 이것은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하였던 고려 말에 이미 신라 왕실의 외척으로서 박씨 세력을 드러내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곧 ‘파른본'《삼국유사》는 《삼국유사》 초간본을 重刊하면서, 고려 사회에 계승된 신라 문화의 영향 때문에 신라 왕실인 김씨 외에 다른 세력을 특별히 기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 KCI등재

        史書로서의 『삼국유사』와 『古記』 연구의 흐름

        박광연 진단학회 2018 진단학보 Vol.- No.130

        This research focused on two characteristics of the Samguk Yusa (三國遺事). First of all, the quotes and evaluation on the Samguk Yusa, from the Joseon dynasty until today, are organized. This study also examined how and where the contents of the Old Record (古記), considered the foundation of ‘Mysterious' tales in the Samguk Yusa, were composed. With this, it was found that the historiography and emphasis points with the Samguk Yusa showed differences depending on the perspective and they were related to the understandings on ‘Wondrous' tales from the Old Record. In the early Goryeo dynasty, various kinds of the Old Record, for example, the Old Record of Samhan, Haedong and Baekje, etc. were transcribed and distributed and the Samguk Yusa quoted contents from them. Accounts in the Old Record might have been collected after the stories descended from the previous periods were modified such as Tales of the Extraordinary (殊異傳) by Inryang Park and Tales of Times Now Past (今昔物語集). Thus, how the contents in the Samguk Yusa were created, modified and recorded should be paid attention. In order to recognize the context of these changes, the understandings on the period and Buddhist culture in East Asia reflected in each account are necessary. If the process of modifications is figured out, forgotten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early Goryeo and Buddhist culture would be better described. 본고에서는 먼저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三國遺事』의 인용 및 평가를 정리해보았다. 이를 통해 『삼국유사』를 통한 역사 서술 및 강조점이 입장에 따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랐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전기의 『실록』에서 『삼국유사』의 지리 고증, 단군, 불교 수용에 관한 내용을 인용하였다. 특히 지리 고증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17~18세기의 유교 지식인들은 대부분 『삼국유사』를 ‘허탄하다'고 비판하면서 철저한 고증 하에 단군 등 고대사의 복원에 활용하였다. 한편 이 시기 불교계에서는 정통성에 대한 관심 속에 『寺誌』 등의 편찬이 유행하는데, 이때 『삼국유사』의 기록을 비판 없이 그대로 사실로 수용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일본 학자들의 ‘단군 부정론' ‘『삼국유사』 비판론'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삼국유사』의 위상이 ‘조선 고대사의 최고 원천'으로 부상하게 되었고, 불교계에서도 여전히 『삼국유사』를 중시하였다. 근대 학문에서의 『삼국유사』 연구는 기본적으로 20세기 전반의 연구 풍토를 배경으로 하여 ‘신이한 이야기들'에 역사적 사실 또는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고 인정하였다. 『삼국유사』는 삼국시대의 역사가 아니라 고려후기 역사의 反映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신이한 이야기들'의 典據인 『古記』 등의 형성 과정을 이해한다면, 『삼국유사』에서 ‘역사적 사실'을 추출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고려전기에 『삼한고기』․『해동고기』․『백제고기』 등의 제목을 단 『고기』들이 필사되어 유통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 『고기』들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박인량의 『殊異傳』이나 일본의 『今昔物語集』처럼,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몇 단계의 변형을 거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창작, 변형 과정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삼국유사』에 의거한 역사 서술은 이야기가 어떠한 역사․문화를 배경으로 창작되었고, 변형되었는가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편"의 저술의도와 고구려 인식

        차광호 ( Kwang Ho Cha ) 단국사학회 2009 史學志 Vol.41 No.-

        삼국유사는 한국사에 있어 중요한 사서중 하나이지만 저자, 저술목적, 저술시기 등 그 서지정보가 모호하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여러 문제 중 `저술목적` 에 관심을 두었고, 그러한 측면에서 삼국유사가 그 구성에 있어 기이편을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삼국유사는 9개의 편목 중에서 기이편을 그 시작으로 하고 있고, 둘째, 기이 편의 분량이 전체 편목 중에서 가장 많고, 셋째, 전체 서문이 없는 삼국유사에서 유독 기이편에만 서문에 해당하는 서(敍)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글은 삼국유사 기이편의 `서(敍)` 에 저자의 저술의 도가 담겨 있다고 보았으며, `서(敍)` 를 분석한 결과, 삼국의 시조가 대업을 이루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성징표, 그리고 출생에 있어서의 나타나는 신이함을 강조하고 하는 저자의 저술의도가 담겨 있음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저술의도를 갖고 삼국유사 기이편의 `삼국의 시조` 관련 조목들을 분석하였는데, 그 중에서 저자의 저술의도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 `고구려` 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저자는 복선과 서스팬스적 서사기법을 사용하며, `고조선`, `북부여`, `동부여`, `고구려` 로 이어지는 조목을 편성하였는데, 그러한 문장적 기교 역시 `고구려` 조목을 부각시키기 위한 저자의 의도가 투영된 것 이었다. 결국 삼국유사 기이 편에서 저자는 `삼국의 시조` 중에서도 `고구려의 시조`를 강조하고자 하였고, 그러한 역사관을 글에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문장적 기교를 활용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삼국유사 기이편에 이러한 고구려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신라사ㆍ불교사 중심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삼국유사의 저술배경에 있어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In this study, I took interest in the literary design. Especially, I examined the literary design for Chapter Kiyi(紀異) of 『Samgukyusa(三國遺事) 』 among 9 chapters. I found that only article about Koguryo(高句麗), satisfies author s literary design. Especially, the author used underplot and suspensive description to emphasize on the article about Koguryo(高句麗) .In this point, I realized that the author s intention was reflected largely on Chapter Kiyi(紀異) of 『Samgukyusa(三國遺事)』

      • KCI등재

        ≪삼국유사≫ 왕력편・기이편의 신라 하대 기사와 사회상-새로 공개된 ‘파른본'을 중심으로-

        장일규 신라사학회 2014 新羅史學報 Vol.0 No.30

        Recently new «SamgukYusa» edition was known. It was called the 'Parun' edition «SamgukYusa». this edition has remained wangryeok and Gii vol1. This article is a 'Parun' edition «SamgukYusa» and 'Seoknam' edition «SamgukYusa» of Silla through a comparison of the inferior wangryeok article was written features can be examined in person. When comparing the two books 'Parun' edition «SamgukYusa» and 'Seoknam' edition «SamgukYusa», the same 14 points in 13 cases and differences can be identified. 13 looking at the same point, two versions of the same edition, without using a special can withdraw. But look at the difference between 14 'Parun' edition «SamgukYusa» is carved originals «Samguk Yusa» after the production is considered to be in the edition. 'Parun' edition «SamgukYusa» wangryeok others have the joy of king heegang carefully and spent king sindeok. Already been taken into account at the end of the Silla royal of Park forces were not exposed to the atmosphere. Silla culture is considered the influence of society inherited, because of the Silla royal family other than Kim did not mention specifically the forces of royal family 최근에 새로운 ≪삼국유사≫ 판본이 공개되었다. ‘파른본'으로 불리는 이 판본은 왕력과 권1 기이편만 남아 있다. 현재 왕력과 권1 기이편만 남아 있는 고판본은 필사 ‘석남본' ≪삼국유사≫이기에, ‘파른본' ≪삼국유사≫는 필사 ‘석남본' ≪삼국유사≫와 비교될 수 있다. 다만 필사 ‘석남본' ≪삼국유사≫의 기이편은 인출 시기가 뒤늦은 ‘순암수택본'을 그대로 轉載하였으므로, ‘파른본' ≪삼국유사≫과 필사 ‘석남본' ≪삼국유사≫의 비교는 왕력만을 다루어야 한다. 이 글은 ‘파른본' ≪삼국유사≫과 필사 ‘석남본' ≪삼국유사≫의 왕력에 대한 비교를 통해 판본간의 차이를 밝히고, 신라 하대 기사의 특징을 살피고자 작성되었다. ‘파른본'과 필사 ‘석남본'을 비교하면, 동일점 13건과 차이점 14건을 확인할 수 있다. 13건의 동일점은 대체로 인출 과정이나 간행 과정에서 글자를 잘못 새긴 경우, 글자의 간격을 좁게 새긴 경우, 글자를 빼고서 새긴 경우, 이체자로 새긴 경우, 영인할 때 잘린 경우, 새겨놓은 글자가 뭉개져서 인출할 때 제대로 인쇄되지 않거나 겹쳐 잘못 나타난 경우이다. 이로써 보면, ‘파른본' ≪삼국유사≫와 필사 ‘석남본' ≪삼국유사≫의 신라 하대 왕력은 동일한 판본을 특별한 加筆없이 그대로 이용하여 인출하였다고 할 수 있다. 14건의 차이점은 대체로 판각의 실수나 판각된 글자의 뭉개짐, 이체자의 사용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忠‘圻' 대아간이나 符‘甲'午六, 그리고 ‘' 등처럼 명확하게 서로 다른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다르게 새긴 경우도 확인된다. 자연히 ‘파른본' ≪삼국유사≫와 필사 ‘석남본' ≪삼국유사≫에 보이는 신라 하대 왕력은 동일한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인출하였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뚜렷한 차이도 있으므로, 서로 다른 판본을 각각 새겨 인출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신라 하대는 물론 上代와 中代의 왕력을 포함하여 살펴보면, 필사 ‘석남본'의 오류가 상대적으로 더 많기에, ‘파른본' ≪삼국유사≫가 필사 ‘석남본' ≪삼국유사≫보다 앞서 인출되었다고 보여진다. 결국 ‘파른본' ≪삼국유사≫는 일연이 탈고한 원고를 새긴 ≪삼국유사≫ 초간본이 제작되고서 판목의 훼손과 글자의 누락, 이체화, 壞字化가 진행된 뒤에 기존 판본을 바탕으로 重刊된 판본이라고 생각된다. ‘파른본' ≪삼국유사≫ 왕력에서 눈에 띄는 점은 희강왕 외조부를 ‘忠‘圻' 대아간'이라고 한 것, 경문왕 아버지 啓明 角干이 ‘義<혹은 ‘'>恭大王'으로 追封되었다는 것, 874년을 ‘符‘甲'午六'이라고 쓴 것, 효공왕의 이름을 ‘'라고 한 것, 경순왕 조부가 ‘官角‘''이라고 한 것, 궁예가 처음 세력을 일군 곳을 ‘始投‘北'原賊良吉'이라고 한 것 등이다. 이 가운데 ‘파른본' ≪삼국유사≫ 왕력만의 특징은 희강왕 외조부가 ‘忠‘圻' 대아간'이라는 것과 경순왕 조부가 ‘官角‘''이라고 한 것만이 해당된다. 다만 경순왕 조부에 대한 기록과 함께 ‘신덕왕 외증조부가 元厸 각간'이라고 한 ‘파른본' ≪삼국유사≫ 왕력의 기록도 ≪삼국사기≫에 보이지 않으므로 함께 포함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파른본' 왕력의 희강왕 외조부와 신덕왕 외증조부에 대한 기록은 모두 박씨 세력과 관련되었다. 또한 경순왕은 박씨 왕인 경애왕을 뒤이어서 왕위에 올랐으므로, 경순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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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 六堂崔南善의 『三國遺事』 인식과 「三國遺事解題」

        고영섭 ( Young Seop Ko ) 한국불교사연구소 2014 한국불교사연구 Vol.5 No.-

        이 논문은 육당 최남선(六堂崔南善, 1890~1957)의 『삼국유사』 인식과 그의 「삼국유사해제」에 대해 검토한 글이다. 최남선은 어린 시절부터 고전과 서양문물을 접하였다. 그는 일본 유학 이전부터 단군에 대한 지식과 인식이 있었고, 일본 유학 이후에는 『삼국유사』를 재발견하여 단군을 복원하고 역사를 복원하였다. 최남선의 민족의식과 문화이식은 일련의 「단군론」기술과 『삼국유사』에 대한 장문의 「해제」서술로 이어졌다. 최남선의 「해제」는 그의 「단군론」과 『불함문화론』을 뒷받침하는 주요한 논설이며, 이후 『삼국유사』 ``해제``의 ``전범``이자 ``전형``이 되었다. 그는 『삼국유사』의 재발견을 통하여 단군을 복원하고 역사를 복원하여 불함문화권을 확충하려 하였다. 최남선이 단군을 우리 역사의 구심으로 삼은 것은 매우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그가 단군을 불함문화권의 원심으로 확산시킨 것은 단군의 초점을 흐리게 한 근거이기도 하였다. 최남선은 우리의 많은 고전 중에서 특히 『삼국유사』에 집중하였다. 그것은 이 텍스트가 머금고있는 민족의식과 문화의식 및 단군의 기록과 신화의 원천 때문이었다. 그는 이들 민족의식과 문화의식을 대립의식으로 제고시켰고, 단군의 기록과 각국의 신화를 일제에 맞서는 정치적 전략으로 활용하였다. 최남선의 고대사에 관한 일련의 집필은 일제의 문화정치에 맞서는 전략이었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전술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그 전략과 전술에 휘둘린 감이 없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근대주의와 민족주의의 대립 구도가 제국주의의 길항구도 속으로 편입되자 친일로 기울어졌고 스스로 친일행위를 정당화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최남선의 역사 복원과 문화 민족의 열망은 『삼국유사』를 통해서 표출되었다. 그리고 여러 편의 「단군론」과 『불함문화론』의 입론을 통해 확장되었다. 그는 대립의식을 통해 문화민족을 자각하려 하였고 역사의식을 통해 신화를 넘어서고자 하였다. 최남선의 민족의식이 수립될 수 있었던 것은 『삼국유사』와 단군과 가야의 발견에 의해서였다. 이 발견을 계기로 그가 쓴 『삼국유사』에 대한 장문의 「해제」는 이후 『삼국유사』 「해제」의한 ``모범``이 되었다. 그 이후 『삼국유사』 번역자들은 저마다 육당의 「해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번역자들은 육당의 「해제」보다 더 길게 쓰거나 또는 더 잘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 혹은 그 「해제」에 전거를 대면서 그에게 위임하려는 태도까지 생겨났다. 결국 번역자들은 『삼국유사』의 전모를 한 눈으로 또렷하게 엿볼 수 있도록 「해제」를 작성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해제`` 간에 상호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남선은 『삼국유사』에 대해 "조선 상대를 혼자 담당하는 문헌"이며 "조선의 생활과 문화의 근원(源頭)와 고형(古形)을 보여주는 것은 오직 이 책이 있을 따름이다"고 하였다. 그의 말처럼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유전인자를 고스란히 간직한 보물 창고이다. 여기에는 민족 동질성의 인자인 언어 문자와 역사 문화로부터 철학 사상 및 예술 과학이 담겨 있다. 이처럼 최남선은 『삼국유사』가 민족공동체와 역사공동체의 근간이자 민족과 역사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이정표이자 길잡이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삼국유사』의 핵심과 특장을 「해제」속에 잘 정리하여 한민족의 정체성을 수립하고 인식틀을 확보해 놓았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review Yukdang Choi Nam-Sun``s recognition over 『Samgukyusa』 and 「Samgukyusa Interpretation」. He experienced the classic and western culture from the childhood. He had the knowledge and recognition about Dangun prior to the study aborad in Japan. After returning from Japan, he rediscovered 『Samgukyusa』 and restored Dangun and history. The national consciousness and cultural consciousness of Choi Nam-Sun was led to the description of 「Dangun Theory」and long 「Interpretation」about 『Samgukyusa』. 「Interpretation」 of Choi Nam-Sun was a main editorial to support his 「Dangun Theory」 and 『Buddhist Culture Theory』, After that, it became the ``standard`` and ``tradition`` of ``interpretation`` of 『Samgukyusa』. He tried to enlarge the baundary of Bulham Culture by restoring Dangun and history through the rediscovery of 『Samgukyusa』. Choi Nam-Sun``s selection of Dangun as the center of Korean history was very meaningful. On the contrary, his intention to enlarge Dangun as the center of the baundary of Bulham Culture was the basis to blur the focus on Dangun. Among many classics, he especially focused on 『Samgukyusa』. It was due to the national consciousness and cultural consciousness, the record about Dangun and the origin of mythology contained in the text. He reconsidered the national consciousness and cultural consciousness as the confronting consciousness and used the record about Dangun and the mythology of each country as the political strategy to fight against Japan. Choi Nam-Sun``s general description about the ancient history was the strategy against the cultural policy of Japan and the one to improve the national consciousness. However, he was shaken by the strategy and tactic. After all, as the conflict composition between modernism and national consciousness is biased to the antagonistic composition of imperialism, he became the pro-Japan collaborator and adhered to the position to justify the pro-Japan activity. Choi Nam-Sun``s aspiration for history recovery and cultural people was expressed through 『Samgukyusa』 and it was enlarged through various arguments of 「Dangun Theory」and 『Bulham Cultural Theory』. He tried to enlighten the cultural people through confronting consciousness and tried to go beyond the mythology through historical consciousness. The national consciousness of Choi Nam-Sun could be founded because of the discovery of 『Samgukyusa』, Dangun and Gaya. Because of the discovery, the long 「Interpretation」about his 『Samgukyusa』 became the standard for 「Interpretation」about 『Samgukyusa』. After that, the translator of 『Samgukyusa』 should pay attention to Yukdang``s 「Interpretation」about 『Samgukyusa』. Translator had the obsession thought to write long or better 「Interpretation」than Yukdang``s one and the attitude to assign it to Yukdang by citing the authority of 「Interpretation」. After all, the translator should prepare 「Interpretation」in the way that he shows the whole story of 『Samgukyusa』 at a glance. It was connected to the mutual effects among ``interpretations``. In 『Samgukyusa』, Choi Nam-Sun said, "Only the book is responsible for the area before Joseon Dynasty and shows the origin and old form of Joseon``s life and culture." As he said, 『Samgukyusa』 was the treasure warehouse containing the gene of Korean people. Here, the factor of people``s homogeneity ranging from linguistic character to history, culture, philosophy, art and science is contained. Like that, Choi Nam-Sun recognized 『Samgukyusa』 as the milestone and guide to go to the recovery of people and history as well as the origin of national community and historical community. He arranged the key and characteristics of 『 Samgukyusa』 in 「Interpretation」well to establish the identity of Korean people and secure the recognition 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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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 : 권상로와 삼국유사

        고운기 한국불교사연구소 2014 한국불교사연구 Vol.5 No.-

        한국의 20세기에 들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문제적 고전으로 재평가되었다. 여기에 관심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권상로(權相老)이다. 권상로는 불교의 권위자로 ..삼국유사..를 국역하였다. 그의 원고는 필사로 있다가 사후(死後)에 출판되었는데, ..삼국유사..가 불교 관계 기사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국역은 장점을 가지고 있고, 이 점이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유고간행(遺稿刊行)이라는 사정 때문에 이 국역본의 간행에는 몇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다. ``삼국유사역강``의 존재 여부와, 1977 년판의 윤문 문제 등이다. ``삼국유사역강``이 1977년판으로 나왔다는 것이지만, 이 원고는 어떤 경위를 거쳐 완성되었는지, 권상로의 문장대로 가감 없이 출판되었는지 여전 미상(未詳)인 상태대로이다. 이런 문제점이 발생한 것은 최초 이 원고가 유고(遺稿) 상태에서 출발한 데 기인하지만, 신뢰성 있는 텍스트가 되는 데에 보다 정교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후대의 책임도 크다. 나아가 권상로 국역본에 실린 ``해제``이다. 권상로 자신이 쓴 것이 아니요 최남선의 해제를 문장만 손질하여 놓았다. 곧 권상로 국역본의 해제는 최남선 해제의 윤문인 셈이다. 누가 했는지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생전 권상로는 ..삼국유사..를 극찬하였다. ..삼국유사..의 구석구석 자세히훑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손길이 거쳐 간 ..삼국유사.. 국역본이다. 발간경위 등을 보다 정확히 밝혀, 이 국역본이 학문적 텍스트의 책무를 다하도록 해야 한다. 韓國的20世紀に入って、『三國遺事』は問題的古典に再評價された。ここに關心を持った代表的な人物的中で一人が權相老だ。權相老は佛敎的權威者で、『三國遺事』を邦譯した。彼的原稿は筆寫的末末で、死後に出版されたが、『三國遺事』が佛敎關系記事をたくさん含んでいるという點で、彼的邦譯は長所を持っているし、こ的點が硏究者たちに多く的書手助けになった。ところで、遺稿刊行という事情的ため、こ的國譯本的刊行にはいくつか解けない疑問が殘っている。<三國遺事譯講>的存在可否と、``年版的潤文問題などだ。<三國遺事譯講>が``年版で出たということだが、こ的原稿はどんな經緯を經って完成された的か、權相老的文章ど書り加減なしに出版された的か、末だ未詳である狀態だ。こんな問題點的發生したことは、最初にこ的原稿が遺稿狀態で出發した的に起因するが、信賴性あるテキス蔔になることに、より精巧な努力を傾けない後代的責任も大きい。ひいては權相老國譯本に載せられた<解題>だ。權相老自分が書いてないで、崔南善的<解題>を文章だけ手入れして置いた。すなわち權相老國譯本的<解題>は崔南善的<解題>的潤文であるわけだ。誰がした的か正確に明らかにしていない。いつ末でも權相老は、『三國遺事』をほめたてた。『三國遺事』的く末なく詳らかに扱いていた。そんな彼的手長さ經て行った『三國遺事』 國譯本だ。發刊經緯などをより正確に明らかにして、こ的國譯本が學問的テキス蔔的 責務を果たすよう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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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 편목 구성의 의미

        신선혜(Sin Sun Hye) 보조사상연구원 2012 보조사상 Vol.37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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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삼국유사』 피은편의 내용 분석과 아울러 『삼국유사』의 편목 설정 과정과 피은편의 설정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히 기존에 논의되지 않았던 중국 고승전류 외의 국내외 불교문헌 및 당대 불교계의 영향 등에 주목하였다. 먼저 피은편의 내용 분석을 통해 피은의 양상이 승려들의 수행을 위한 은둔, 피은 이외에도 晩年이 된 승려들의 入寂을 위한 사례도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즉 피은편은 수행자로서의 피은이라는 대전제하에 피은의 여러 양상을 보여주는 편목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내용 분석을 토대로 『삼국유사』의 편목 설정에 대한 『法苑珠林』의 영향을 상정해보았는데, 특히 『법원주림』의 편목명이 책의 백과사전적 성격 상 불교의 여러 주제를 포함할 수 있게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삼국유사』 편목명과의 영향관계를 상정하였다. 이는 『梁高僧傳』 亡身篇과 『續高僧傳』 遺身篇, 그리고 『法苑珠林』 捨身篇과 潛遁篇, 『三國遺事』 避隱篇을 비교함으로써 더욱 명확해진다. 즉 고승전류의 내용을 참고하고 반영한 『법원주림』은 『양고승전』 망신편의편목 의도를 반영하여 사신편을 설정하고, 『속고승전』에서 다뤄진 ‘명예를 버리는 수행' 내지 ‘은둔을 통한 수행'의 내용은 별도로 잠둔편을 설정하여 구성하였다. 이는 기존 고승전류의 구성 내용을 모두 반영하고자 한 『법원주림』 찬자의 의도일 것이며, 『법원주림』을 접했을 일연은 그 편목 중 잠둔편을 취하여 피은편을 설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삼국유사』 피은편의 설정 의도는 『법원주림』잠둔편과 마찬가지로 은둔 승려들의 전기가 不在하게 됨을 경계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삼국유사』 편제에 영향을 준 국내외 문헌으로 『법원주림』 이외에도 慧諶의 『禪門拈頌』이나 天頙의 『湖山錄』 등을 상정할 수 있는데, 『삼국유사』가 이러한 여러 문헌들을 참고하여 쓰여진 만큼 그 성격 또한 단일하게 규정될 수 없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본고가 『삼국유사』 체제에 대한 종합적 이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This study analyzed the chapter, entitled the ‘Pieun(避隱)' in Samgukyusa(三國遺事), the process of organizing the book's content, and the meaning of including a chapter named Pieun(避隱). The study specifically focused on the effect of old Chinese Buddhist monks' tales, Buddhist books in and out of Korea, and other Buddhists of the time. First of all, through interpretation of the Pieun, it can be concluded that there were various types of ‘Pieun's such as a monk's preparation for death in his later years, other than seclusion for training. In other words, the chapter entitled the ‘Pieun' was to illustrate those various phenomena of Pieun, under the thesis that the Pieun describes monks' seclusion for training. On the basis of this analysis, it is supposed that ‘Fayuanzhulin(法苑珠林)' has a strong effect on Samgukyusa's content, especially considering that Fayuanzhulin is like an encyclopedia covering hundreds of themes about Buddhism. This effect became even more apparent when comparing Lianggaosengchuan(梁高僧傳)'s ‘Mangshin(亡身)' chapter, Xugaosengchuan(續高僧傳)'s ‘Yushin(遺身)' chapter, and Fayuanzhulin's ‘Sashin(捨身)' and ‘Jamdun(潛遁)' chapters with Samgukyusa's chapter, the Pieun. When Ilyeon(一然) read Fayuanzhulin, he possibly drew upon the chapter, Jamdun, of the book and wrote a chapter with similar contents. In this point of view, the purpose of writing the chapter, the ‘Pieun,' was to avoid overlooking secluded monks' biographies, like the ‘Jamdun' chapter in Fayuanzhulin. Additionally, there were many other books which had an impact on the content of Samgukyusa aside from Fayuanzhulin, such as Hyesim(慧諶)'s ‘Seonmunyeumsong(禪門拈頌)' and Chunchaek(天頙)'s ‘Hosanrok(湖山錄)'. Since Samgukyusa referred to various books during the process of compilation, the book's characteristics cannot be summed up into one word. Thus, this study hopefully contributes to the understanding of Samgukyusa's overall stru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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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의 문화사적 가치

        최광식(Choe, Kwang-shik)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17 新羅文化 Vol.49 No.-

        『삼국유사』는 신이사관에 의해 찬술되었다는 견해와 불교사와 불교문화사가 중심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보았다. 특히 고조선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시조신화를 살펴보면서 일연선사가 신화를 천강신화와 난생신화의 융화현상에 주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토착신앙과 불교가 융화하는 면에 주목하였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일연선사는 우리 고대문화의 특징을 문화융화현상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삼국유사』는 신화와 불교에 대한 내용 뿐 아니라 설화와 향가 및 찬시 등을 남겨놓아 우리 고전문학을 집대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전통은 근대문학의 소재로서 활용되고, 범패나 시조창으로 계승되어 현재 한국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천신, 산신, 용신 등 토착신앙과 서민생활에 대한 자료를 남겨 지금은 사라졌거나 흔적이 남아있는 민속문화의 아카이브로서 민족지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달리 삼국뿐만 아니라 고조선을 비롯하여 부여와 고구려, 발해, 가야 등 남쪽과 북쪽의 고대국가들을 망라하여 한국 고대국가의 시간과 공간을 확대하여 기록하였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지배층뿐만 아니라 서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생활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데에도 그 의미가 있다. 따라서 『삼국사기』는 왕명에 의해 정치사를 중심으로 편찬한 관찬사서이며, 『삼국유사』는 개인에 의해 문화사를 중심으로 편찬한 사찬사서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삼국유사』의 내용을 소재로 소설이나 시와 같은 근대문학으로 이어져 왔다. 또한 현대에는 영화나 드라마의 원천 소스로서 활용될 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도 활용되고 있다. 요컨대 『삼국유사』는 우리 문화콘텐츠의 원형,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Generally, there are two theories about the standpoints of the publication of Samgukyusa(三國遺事;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one is that the book was compiled under the perspective of mythology(神異), and the other is that it focused on history of Buddhism and Buddhist culture. Yet, this paper viewed the book contains both of the characteristics. It is assumed that Ilyŏn(一然) paid special attention to aspects of the convergence of the myth about "descendence from heaven(天降神話)" and "birth from eggs(卵生神話)" in origin myths such as the Old Chosŏn(古朝鮮)'s. He, on the other hand, focused on the amalgamation of Buddhism and indigenous religion, which indicates that Ilyŏn understood the amalgamation of the cultures as the ancient Korea"s distinct feature. While it is covering the mythology and buddhism, Samgukyusa"s contents includes folktale, Hyangga(鄕歌; traditional songs), and Chansi(讚詩; praise poems), comprehensively compiling the ancient literature of Korea. This tradition, prevailing through ages, had been used as the source of the modern literature, and descended to Pŏmp"ae(梵唄) and Sichoch"ang(時調唱). Additionally, it is an archive of the folk culture preserving the materials about indigenous religion and lives of commoners such as heavenly spirits(天神), mountain spirits(山神) or dragon gods(龍神; or sea kings). Unlike Samguk sagi(三國史記), covering only the three dynasties, Samgukyusa recorded and expanded the time and space of the ancient Korean states by including the Old Chosŏn, Poyŏ(夫餘), Koguryŏ(高句麗), Parhae(渤海), and Kaya(加耶). Additionally, this book has significance that the illustration of the social life was not limited to the ruling class, but paid attention to the commoners and recorded their lives. Thus, while Samguk Sagi is an official history about politics complied under the order of the king in Koryŏ dynasty, Samgukyusa is a history that an individual compiled to record about the cultural history. Until now, the contents of Samgukyusa had been the sources for modern literature such as novels and poems. Also, the book provides materials for movies and TV dramas, and animation and games often used the contents in these days. To summarize, Samgukyusa could be defined as the original form of Korean cultural contents, and repository of the cultural herit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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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최남선의 『삼국유사해제(三國遺事解題)』에 나타난 기억(記憶)의 문화적 욕망과 신화의 정치적 전략 연구

        표정옥 ( Jung Ok Pyo ) 국제비교한국학회 2013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Vol.21 No.3

        본고는 최남선의 『삼국유사해제』를 이해하기 위해 원천 텍스트인 일연의 『三國遺事』와의 연계성을 고려해 문화적 기억과 신화의 정치적 욕망을 읽어가는 작업이다. 본고는 근대 심상공간에 투사된 신화적 상상력과 지식의 형성과정을 재정립하기 위해 최남선의 『삼국유사해제』를 중심으로 한 근대 공간의 신화성에 대한 논의를 세 가지 측면에서 논하고자 했다. 첫째, 지금까지 최남선이 『三國遺事』에 관심을 가지게 된 문화적 배경과 의의가 적극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간 『三國遺事』를 최남선이 세상에 소개했다고 하는 논의는 간헐적으로 언급이 되어왔으나 전기적인 측면에서 왜 하필이면 『三國遺事』를 근대 초창기에 문화담론의 중심에 두었는지 규명하지 못했다. 둘째, 최남선은 『三國遺事』 중에서도 특히 고조선의 ‘단군'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최남선의 단군 연구는 일본 학자들의 단군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바로잡기 위해 시작된 논의였다. 특히, 일본 학자의 <단군고>는 단군의 역사와 실체를 부정하기 위해 작성된 논문이었다. 최남선은 단군에 대한 기억 구축과 신화화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문화민족을 열망하였다. 단군에 대한 문화적이고 신화적인 공동 환상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살펴볼 것이다. 셋째, 최남선에게 있어서 신화를 기억하는 것은 문화의 정치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해제>의 문화의 정치화 전략을 통해서 신화의 정치적 전략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본 연구는 이 세 가지의 문제의식을 『三國遺事』와 <삼국유사해제>의 비교연구를 통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This article attempts to examine into the cultural desire of the memory and the political strategy of the myth in Ilyeon`s Samgukyusa and Choi Nam-sun`s Samgukyusaheje <The interpretation of Samgukyusa>. To build up the mythical imagination in the modern mental space, Choi published Samgukyusaheje with Samgukyusa. Choi already published in such magazines as Sonyeon(Boys) and Chengchoon(Youth), after he had returned from Japan. This article compares Ilyeon`s Samgukyusa with Choi`s Samgukyusaheje in three points of view. The first, this article researches into the cultural backgrounds of writing Samgukyusa and Samhgukyusaheje. In 1592, Chosun was deprived of Ilyeon`s Samgukyusa to Japan. For 400 years, Samgukyusa was read in Japanese kingdom. Choi published this book with interpretation in 1927. The second, Choi thought the Dangun most importantly. His research into Dangun was a political struggle against Japanese scholars. He wanted the cultural nationality through the Dangun. The Third, Choi`s methods of studying the myth was not only to obtain the cultural modernity and the political modernity. Memorizing the myth was the sign to express his strong will. Through three points, this article researches into Choi`s cultural mythic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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