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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 R. Niebuhr의 책임윤리 연구를 통한 현대 사회의 책임윤리 모색

        강한빛 감리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10 국내석사

        RANK : 248607

        본 논문은 니버의 이론을 고찰하는데 머물지 않고, “책임적 인간”의 문제를 현재 우리가살아가고 있는 지구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현실과 연결하여 자신, 타자, 사회, 그리고 역사와 하나님 앞에서 책임적 인간을 형성하는 것이 현대의 기독교 윤리학의 분야에 매우 중요함에 초점을 둔다. 이는 기독교 윤리학이 탁상공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고 움직이며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인간은 삶의 과정에서 행동할 때, 자신에게 과해지는 행위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형상한 틀을 가지고 해석의 과정을 거쳐 반응하고 응답하므로, 책임적 인간형성을 위한 본 연구에서는 해석적 차원에 강조점을 두었다.

      • H. R. Niebuhr의 교회윤리 연구 : 리처드 니버 입장에서의 한국교회 윤리

        김철호 감리교신학대학대학원 2006 국내석사

        RANK : 232300

        기독교가 차지하는 한국 사회에서의 비중과 역할이 증대함에 따라,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한국교회의 건설적 역할이 더욱 요청되는 때이다. 한편으로 한국교회는 남북한의 통일 사업을 위하여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동시에 세계가 거미줄과 같이 이어져있는 이른바 세계화 시대 속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책임의 영역과 시야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부정의한 사회 구조에 대하여서는 매우 비판적이면서도, 동시에 보다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하여 공헌할 수 있는 책임적인 윤리를 정립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의로움'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자기-나눔'과 '이웃 돌보기'와 '공동체 이루기'라는 삼위일체적 삶의 기초 위에서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정의와 민족적 주체성으로 규정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민족적 주체성'이란 서구화의 과정 가운데에서도 한국 기독교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함을 의미한다. 니버의 공동체 개념은 개인화되고 이기주의화되어 버린 현대 사회에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필자는 본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비인간적인 관계로 전락해 버리고, 사람보다는 자본과 물질이 더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는 이런 사회에 참된 의미의 책임적 인간, 즉 타인에게 올바르게 반응하고 또 타인의 올바른 반응을 기대하며 더 나아가 구체적인 시간과 역사 속에서 공동체에 응답하는 책임적 자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그저 형식적인 신조로 전락해 버린 그리스도교 신앙 역시 신과 예수 그리스도 및 이웃에게 올바르게 응답한다는 의미에서 살아있는 생생한 신앙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니버가 파악하는 바대로의 기독교 윤리는 창조주, 주관자이며 동시에 구속주가되는 하나님의 행위에 기초하여 매우 신중심적인 윤리이다. 이러한 신론에 입각하여 기독교 윤리가 다른 형태의 윤리들과도 대화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니버의 주장이다. 책임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니버는 하나님, 즉 최종적인 원인자가 그 중심에 자리하는 사회적 상호 작용의 과정에 참여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니버의 윤리적 상황은 냉전시대에 미국이라는 장 안에 머물러 있음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책임적 자아가 오늘날의 다양한 상황과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에서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니버의 신학적 윤리가 기독교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윤리로 자리할 수 있는 데에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서구 기독교의 장구한 역사적 관계 덕분이었다. 그러나 과연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내부적 이야기는 무엇이 될 것인가는 그리 쉬운 질문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의 역사가 100여 년밖에 안된 한국의 개신교인들에게는 기독교의 이야기가 아직도 수입된 외국의 이야기로 자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윤리적 행위에 있어서 니버 자신이 강조하듯이 응답의 윤리에서 행위자는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존재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윤리적 결단을 할 때,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우리의 맥락과 니버가 주장하는 궁극적 맥락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의 질문이 제기된다. 이것은 '적절한 응담'(fiting response)으로써 응답함의 기초가 무엇이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혹시 '적절한 응답'이 되기 위한 명시되지 않은 규범적 기준이 있지는 않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즉 목적론적 윤리가 의무론적 윤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듯이 맥락적 윤리로써의 응답의 윤리도 규범적 기준의 도움을 요청하여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 속에서 이 논문의 한계가 명확해진다. 니버의 윤리적 유형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오늘날의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윤리 유형의 철저한 분석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서구적 토양에서 성장한 한국 기독교의 특이한 상격을 통해 니버의 응답하는 윤리는 다시 평가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한국적 상황에 맞는 책임의 윤리를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니버가 말하는 책임적 자아가 한국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우리만의 독창적이고 역사적 상황과 동떨어지지 않고 함께 연결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책임적 자아가 만들어 질 것이다. 그것은 한국적인 것이며, 해방적 자아라고 불려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니버의 윤리와 신학은 새로운 의의를 갖게 될 것이다. 니버는 책임적 자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운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각각의 사람들은 각자 모든 것을 선택할 자유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의 범위는 어느 정도 제한되어있다. 그러한 제한된 선택 안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르는 결과까지 선택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책임적 자아의 알맞은 선택과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다원적 상황에서 요청받고 있는 것은 "나는 나"라고 하는 일자성(一者性)이다. 그것은 주체적인 나를 떠나서 다른 상대적인 것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대적인 것이 동일시에 의해 절대화되고 있는 것을 니버는 책임적 자아를 통해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니버의 윤리를 '신상 만들지 않기'라는 간단한 것으로 정리하고 싶다. 오직 하나님만 향해 가는 그러한 삶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사회와 그 안의 교회는 너무나 많은 신상들이 만들어져 있다. 이젠 그것을 신상으로 구별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일이 곧 신상 만드는 일과 가깝기 때문이다. 나 자신 안에 철저한 유일신이 아닌 신상을깨버리고 나와 이웃과 사회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책임적인 자아로 응답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나로부터의 시작이 되어야 할 것이며 현상적으로 보이는 것을 절대화하지 않는 신중심적 바탕으로 이제는 한국교회의 내부 분열과 윤리성을 극복하는 노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바른기독교세계관을 지향하는 기독교대학에 관한 연구

        김은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1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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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대학은 기독교교회의 성장과 그리스도 복음의 선교를 실현하기 위해 발생하여 발전해 왔다. 서양의 대학이 신학, 의학, 법학을 기초로 발전하였으며 히브리적인 것과 헬라적인 요소가 상호작용하여 미국의 하버드 대학을 낳은 사실도 짚어 보았다. 이를 통해 깨달은 것은 대학의 건립 이념은 지성과 영성, 그리고 감성의 통합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800년데 기독교 교육을 시작했던 여러 학교들은 그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 전도와 함께 우리나라의 계몽을 이끌고 일제 시대에서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또한 문화를 계몽하고 지식과 함께 신앙을 성장케하는 것이 기독교 학교의 의무이자 특권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 대학은 이러한 기독교 내면적 목적만을 고수해야 할 본래적 사명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그것은 현대과학의 문명과 새로운 문화의 발생으로 기독교 대학의 가치를 수정하지 않으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할 시대적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리차드 니버의 문화 유형론을 따라 현대 기독교 대학의 유형을 살펴 본 결과 이분법적인 형태의 대학이 존립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가 서로 보완하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3가지 유형 모델은 우리 나라 기독교 대학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인데, 이것에 따라 일반 대학과의 차별성도 깨닫게 된다. 한국 기독교 대학은 지난 1세기 동안 한국의 고등교육을 선도하며 기독교복음과 선교를 통해 민족 교육과 민주자주정신의 계몽과 각성에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독교대학의 발생 이후 100여년 역사에서 기독교 대학의 현재의 위상과 업적을 비판적으로 고찰해 볼 때 그 건학이념과 정체성을 어디에서 어떻게 발견해야 할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이를 냉철하게 비판하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았을 때 필자는 학제간의 통합과 함께 공동체성 회복, 전인 교육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였다. 독립적인 학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성과 영성, 감성이 통합되는 학문이야 말로 기독교 가치를 고수할 수 있으며 기독교 건립 이념을 이 시대에도 통용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 문화와 종교의 상관관계에서 본 팬데믹 시대 한국교회 위기 연구 : 폴 틸리히 신학을 중심으로

        최요셉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2024 국내석사

        RANK : 232220

        중세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문화를 형성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틀(frame)이었지만, 근대에 이르러 종교를 위협하는 새로운 세계관의 출현으로 인하여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과학과 철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계시의 객관성이 의심받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칸트는 종교를 도덕의 영역으로,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를 감 정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틸리히는 그러한 영역들에 종교를 위치시키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보았고, 종교란 “인간 정신생활의 모든 기능에 있는 깊이의 측면”이라고 정의하게 된다. 이로써 종교의 영역은 넓게 확장되었고, 종교와 문화 사이의 커다란 간격이 좁혀지게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한국교회는 국가와 세속 문화에 크게 대립하는 모습을 빈번하게 보이곤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한국교회는 그토록 갈등하고, 대립할 수밖에 없었을까? 본 연구에서는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적절히 이해하는 능력이 부재했던 교회의 모습 속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코로나19를 통해서 교회는 교회대로, 세상은 세상대로 멀찍이 떨어져 이원화되어 있었음을 확인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급격한 속도로 기술과 지식이 발전하고 다원화되고 있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적극적으로 세상과 교류하고 관계 맺을 수 있는 신학적 기반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던 중요한 이론가들의 주장을 살펴보고, 팬데믹 시대에 한국교회가 겪었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한다. 리처드 니버와 본회퍼는 그리스도론을 중심으로 문화 이해 이론을 전개했는데, 그러한 문화 이해 방식이 과연 기독교 중심의 유럽 국가들이 아닌 다원화된 세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할지 의문이 든다. 그들의 이론에서는 그리스도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데, 그리스도가 낯설거나, 혹은 종교 자체가 낯선 이들에게는 그러한 문화 이해가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서의 종교를 근간으로 문화 이해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어떨까? 트뢸치는 과감하게 기독교를 상대화함으로써 그러한 시도를 해나갔다. 그는 여러 종교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역사적 상대주의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종교의 절대성에 부당함과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신앙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그의 이론에서는 분명히 기독교의 보편적인 진리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했다. 트뢸치가 기독교의 교의적인 내용을 대부분 포기함으로써 기독교 고유의 정체성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트뢸치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베버는 종교의 본질적 내용보다 윤리적 요소에 더 관심을 가졌고, 문화와 종교의 관계를 신학적인 차원이 아닌 사회적인 차원에서 다루었다. 그렇게 종교와 문화의 적절한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틸리히의 이론이다. 그의 독특한 신학 방법론인 상관관계의 방법을 통해 신학은 문화 모든 영역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실존적 질문과 신학적 대답이라는 관계 속에서 신학이 다양한 삶의 영역들과 맞닿게 되고 하나님을 요청하게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때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삶과 신앙이 더 이상 멀찍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회가 바이러스라는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 때로는 세상의 기술과 지식을 빌리고, 심지어는 세상의 요구대로 따라야했던 상황도 발생했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한 번 만 왔다 가리라는 법은 없기에, 교회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여 세상과 긴밀히 교류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길러 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교회가 갖고 있던, 세상과의 교류를 단절하도록 하는 요소들을 버려야 할 것이다. 종교와 문화를 단절시키는 요소들 은 사이비 종교 안에서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반면교사 삼고 새롭게 다가올 미래를 잘 준비함으로써 교회가 다시금 생명력을 되찾기를 바란다.

      • 캐스린 태너(Kathryn Tanner)의 탈근대적 문화신학 : 탈근대적 문화인류학의 신학적 수용

        김성은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2014 국내석사

        RANK : 231965

        본 연구의 구체적인 목적은 캐스린 태너(Kathryn Tanner)의 탈근대적 문화신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데에 있으며, 이를 위해 그녀의 주요 저서인 『문화 이론들: 신학을 위한 새로운 의제』(Theories of Culture: A New Agenda for Theology)을 중심으로 태너가 이끌어내고자 하는 주요 주제를 다룬다. 이 연구의 동기는 ‘탈근대 문화인류학적 개념으로서의 ‘문화’는 과연 신학과의 관계에서 유의미한 공명을 일으키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질문의 보다 근본적인 형태는 ‘과연 신학은 오늘날의 탈근대적 상황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것인가’이다. 이 시작 질문에 대해 필자는 태너의 탈근대적 문화신학을 통하여 ‘스스로 우상된 이들의 겸허한 자기 성찰’이라는 유의미한 대답이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논의를 위해 서두에서 ‘근대’를 이성중심주의로, ‘탈근대’를 탈중심주의로 용어적 의미를 분류한 후, ‘근대’의 관점에서의 문화신학을 기획한 리처드 니버(H. Richard Niebuhr)와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문화신학을 고찰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문화신학은 한국교회의 문화신학의 방향성을 정위시키는 데에 큰 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와 ‘문화’ 사이, 그리고 ‘종교’와 ‘문화’ 사이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구조에 기반하여 양자간의 대화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근대’의 이성중심주의적 산물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러한 근대적 문화신학을 대체할 것으로서 태너의 탈근대적 문화신학을 소개한다. 그녀의 탈근대적 문화신학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본 논문에서는 그녀가 제안하는 ‘문화’의 의미의 탈근대적 이행 과정을 살펴보고, 또한 그러한 문화의 탈근대적 의미에 기반한 ‘신학’의 문제를 살펴본다. 우선적으로 그녀는 문화에 대한 근대적 이해가 야기하는 자문화중심주의와 관련된 실질적인 문제들을 지적하고, 그것이 탈근대 문화인류학 안에서 어떻게 수정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문화상대주의’로서의 탈근대적 문화 개념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재구성 작업은 신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는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는 신학 역시 문화의 한 부분이기 때문인데, 이는 ‘하나님’ 그 자체를 ‘문화’로 규정한다기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학문으로서의 ‘신학’, 그리하여 특정 공동체와 개인에 따라 모두 다른 삶의 양상과 방법을 규범으로 제시하는 것으로서의 ‘신학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문화인류학의 이러한 통찰력은 탈근대적인 접근을 수용하면서 여러 ‘신학들’ 사이에서의 권력 관계의 문제를 주의 깊게 살핀다. 즉 어떤 하나의 특정한 신학이 다른 신학들 위에 스스로 ‘하나님’인 양 군림하는 것을 경계하고, 다양한 신학들의 목소리에 의해 비판적으로 성찰되는 기반을 마련한다. 기독교의 정체성은 더 이상 획일적이고 보편적으로 정해질 수 없고,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됨에 대한 질문만을 과제로 공유하는 ‘논쟁의 공동체’로 남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태너의 문화신학의 궁극적 목표가 ‘스스로 우상된 이들의 겸허한 자기 성찰’에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은 태너의 문화신학이 한국교회에 만연한 ‘팽창중심주의’와 ‘분열 문제’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제안을 던져주며, 또한 한국교회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문화신학’의 위상에 대해서도 더욱 포괄적인 이해를 제공해준다고 주장하면서 논의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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