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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말 한국 기독교의 수난과 대응 : 일제에 의한 한국교회와 대한성공회 탄압을 중심으로

      조종필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6 국내석사

      RANK : 248703

      지금까지 우리는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기독교 정책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본론을 간단하게 요약을 해 보겠다. Ⅱ장에서는 일제 기독교 정책의 변화를 시기별로 구분해 보고 신사참배 강요와 종교단체법의 추진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선 1절에서는 구체적으로 기독교정책의 각 시대별 특징들을 고찰해 보았고, 더불어 각 시기별 선교사들에 대한 정책의 변화도 살펴보았다. 일제의 기독교 정책은 한마디로 식민지 경영의 부속물로써 규정되었다. 선교초기 일제는 자국의 식민지 경영에 특별히 거슬리지 않는다면 종교문제에 개의치 않으려는 이른바 '정교분리' 노선을 폈으며, 선교사들 또한 마찬가지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 후기로 가면서 대(對) 기독교 정책은 '종교보국'의 기치로 선교사와 교회를 철저히 탄압하는 정책을 편다. 2절에서는 신사참배의 강요를 시대적 배경과 함께 서술하였다. 신사참배는 1930년대 들어 대륙침략을 본격적으로 재개하면서 일제의 '국체'사상에 기초한 황민화 운동의 주요 수단으로써 강요되었다. 3절에서는 종교단체법을 통과시켜 전시체제에 적극적으로 부합할 수 있고 기존의 교파적 교회체제를 일본적 교회체계로 대체시켜 철저히 천황제 중심의 종교보국으로써의 교회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일제의 만행에 대해 서술하였다. Ⅲ장에서는 신사참배에 대한 각국 선교사들의 대응과 교회의 대응을 알아보고 신사참배 수용 이후의 교회의 변질과 종교단체법을 시발로 한 교회의 통합을 통해 일제 말 한국 교회가 격어야 했던 고통과 인내의 시기를 알아본다. 1절에서 우리는 기독교계 학교를 시작으로 철저히 강요되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보게 된다. 또 이에 따른 각국 선교부는 순응과 반발의 과정을 겪으며 나름대로의 신학적 견해와 정치적 입장으로 신사참배에 대한 대응을 달리한다. 일찍부터 신사참배를 저들의 입장에 따라 국가적 행사로 받아들인 천주교와 감리교를 비롯해서 1938년 장로교가 마지막으로 신사참배를 모든 교단이 형식적으로 수용하기 까지 많은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이들의 저항은 개인적 저항을 비롯하여 선교부에 의한 학교의 폐쇄도 불사하였으며 한국의 교회는 많은 희생을 감내하여야 했다. 결국 신사참배를 수용한 교회는 일제에 의해 통합의 수순을 밟으며 변질되어 간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도 개인적인 저항은 계속되어 기독교 세력도 항일 운동의 한 줄기를 형성하며 일제의 만행에 저항하게 된다. 2절에서는 전시체제 식민지 병참기지화를 목표로 '종교보국'의 기치에 맞는 교회를 만들고자 종교단체법을 이용하여 일본교파와의 통합을 시작으로 '일본기독교 조선교단'의 결성까지 일제에 의해 강요된 부일협력과 교회 수난을 알아보았다. 일제는 종교를 국가의 통치하에 두고 종교통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하고자 하였다. 이에 방해세력이었던 선교사를 1941년 전면 추방하였고, 교파적 특징인 '재림사상', '종말사상'등을 이유로 회유가 어렵다고 생각된 성결교, 동아기독교회(침례교),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등을 일방적으로 해산해 버린다. 3절에서는 선교초기부터 사회사업 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던 대한성공회 선교사들의 가치관과 신앙관을 살펴보고 신사참배에 대한 대응을 알아보았다 대한성공회는 일제 말기 영국선교부와의 관계로 인해 모든 선교사가 추방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선교시기 내내 중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다른 개신교등과 같은 부일협력을 하지는 않았다. 특히 선교사들에 의해 운영되어지던 학교와 병원과 고아원, 보육원, 교회가 1941년 선교사 추방을 기점으로 큰 타격을 받았고 일본인 주교의 섭정으로 고난을 견뎌내야 했지만 대한성공회는 이렇듯 혹독한 시련을 견디어 냈다. 일제는 처음부터 기독교를 좋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 일제의 식민지 경영의 근간인 '천황중심의 사상'과 근본부터 상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하기에 교회는 처음부터 관리의 대상이었고, 이후로 갈수록 통제와 억압의 대상이었다. 특히 1930년대 후반 일제의 집요하고 강압적인 황민화 정책으로 민족 자체가 말살될 위기에 처하였을 때, 교회 역시 기독교 순수 신앙이 왜곡되고 변절을 강요받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식민지 초기 일제는 '정교분리' 원칙을 강조하며 교회의 정치적 행동을 봉쇄하고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을 막으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었고, 이후 일제는 교회의 계속되는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즉, 교회가 지향하는 하느님 나라는 세상 저편에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울부짖는 백성들 가운데 있는 것이기에 '교회와 국가', '신앙과 정치'는 상호 보완, 책임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후 일제의 종교탄압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동시에 진행된다. 하나는 신사참배 강요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단체법을 통해 이미 국가에 종속되어있는 일본기독교로의 흡수와 교파 통합이었다. 이 둘은 한국의 기독교를 식민지 상황에 맞도록 국가에 복속시켜 '황국신민화'와 '식민지 병참기지화'에 합당하게 되도록 개량하고 천황을 신으로 받드는 일제의 근간사상에 종교를 유용하게 쓰기 위함이었다. 즉 일제는 기독교라는 자체는 인정하지만 기독교는 반드시 국가 체제 내에 속해야하고 국가의 이익에 복무하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일제가 식민지 초기부터 제기해 왔던 종교관으로 일제가 강요했던 신사참배와 종교단체법도 이러한 그들의 사상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결국 일제는 표면적으로는 그들의 정책에 한국의 교회를 꿰어 맞추는 성과를 얻는다. 즉, 일제의 강압과 회유에 굴복하거나 편승해서 친일을 하거나 부일협력을 했던 대다수의 교회 지도급 인사들과 제도권교회와 기관들이 그것이다. 그들은 일제가 주장하는 것처럼 신사참배와 종교통합을 신앙의 관점이 아닌 국가 체제로 받아 들였다 즉, 교회가 신사참배를 하고 각 교단을 통폐합하여 일본기독교에 복속 시키는 것을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라 일제의 주장대로 단지 국가체제에 대한 순응 내지는 제도화의 한 과정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친일을 하거나 부일 협력을 하였던 많은 제도권 교회는 나름대로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주류를 이루었던 기독교 인사들이 변절의 길을 걸을 때 소위 '무명'의 신앙인들은 목숨을 걸고 조직적으로 대응하며 투쟁하게 된다. 이들은 순교를 각오하고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으며, 그 결과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해 투옥된 이가 대략 2천명에 달하고, 200여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50여명이 순교하게 된다. 결국 역사의 흐름은 억압받는 민중이 만들어가는 것이고, 일제의 광폭한 탄압도 기독교 저항세력을 막을 수는 없었다. 특히나 대한성공회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 선교부 선교사의 전원 추방 등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이러한 탄압은 일제가 영국과 맺은 영일동맹이 파기되면서 가해진 정치적 보복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즉, 대한성공회는 그 모태가 영국성공회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대륙침략을 비난하는 영국과 영국성공회에 대한 간접 보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시의 선교사들은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선교부가 퇴진한 것이다. 대한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이 땅의 소외 받는 민중들을 찾아 복음의 터전을 넓힌 성공회였기에 교단의 성장보다는 병원, 고아원, 보육원, 학교등등의 사회복지 시설로 민족의 자립과 자활을 위해 노력하였고, 그러하기에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드러나는 부일협력을 통한 매국행위를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교회를 책임지던 선교사들이 모두 쫓겨나서 모든 시설들과 일부 교회가 문을 닫아야 할 때에도 돈이 끊겨 굶어 죽을 지라도 교회를 지켜 내셨던 선조들의 신앙의 유산을 오늘날에도 이어나가고 있다. 즉, 대한성공회는 세계성공회와의 제도적 연대로 성공회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나갔던 것이다. 결국, 기독교계의 이러한 투쟁은 단순한 신앙수호에 국한된 투쟁이 아니었다. 혹독한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시냇물 아래로 봄을 알리는 물이 흐르듯이 교회는 겨울을 이겨냈으며 이것은 일제에 의해 수탈당하고 억압당하던 식민지 조선의 거대한 항일 투쟁의 한 지류였던 것이다. 신사참배와 동방요배의 강요, 황국신민서사 제장, 창씨개명, 일본어상용등의 민족말살정책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막을 내기게 되지만 해방 직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교회의 제도가 빠르게 복구되고 회복되었던 것은 이러한 교회의 정신이 온전히 이어갔기 때문이다. 결국 일제의 종교정책은 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실패한 것이다. 이제 해방을 맞이한 지도 60년이 되었다. 한국과 일본은 2002년 월드컵을 공동 유치해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날로 좁아지는 양국의 관계에 비해 일본이 보이고 있는 전쟁 등에 대한 반성은 아시아 주면나라에 많은 실망을 남기고 있다. 특히 근래 들어 일본 매스컴이 벌이고 있는 중국 난징 대학살에 대한 조작설 제기는 과연 일본이 과거 전쟁에 대한 진심어린 반성을 하고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한다. 또한 해마다 제기되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와 침략국으로서의 반성을 외면한 일본 각료들의 계속되는 망언들을 봤을 때, 그 실망은 더욱 깊어져 간다. 많은 사람들은 과연 일본이 아시아 속에서 우리의 우방인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우방, 곧 이웃이란 옆에 살거나 일정한 관계를 갖는다고 이웃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 사랑과 신뢰를 주고 받을 때 진정한 이웃이자 우방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전후세대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과거는 과거로써 묻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을 살아가는 나침반으로써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용서와 화해의 종교이다. 양국 간에 넘지 못할 벽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1910년대 일본조합교회가 조선의 선교를 목적으로 일본 기독교를 전파하려 조선에 들어와서 활동한지 근 10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대한 성공회가 일본 성공회의 요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겠다. 신앙적 교류가 작은 줄기를 이루고, 그것이 나중에 큰 강물을 이룬다면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안정에 기독교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두 민족 간의 진정한 화해를 이루는데 기독교가 교두보 역할을 했으면 한다.

    • “Via Media(비아 메디아)” 관점으로서의 성공회 종교공간 계획 : Assemblage(아상블라주)의 다의적 표현을 중심으로-

      정희환 동양미래대학교 2023 국내석사

      RANK : 248702

      “Via Media(비아 메디아)” 관점으로서의 성공회 종교공간 계획 -Assemblage(아상블라주)의 다의적 표현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는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하였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 현재는 다양한 교파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과거에 신권, 왕권 중심의 제도를 기반으로 한 종교였다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종교관의 변 화와 동시대 개인화 문화로 영성 중심의 신앙으로 변화하였다. 이에 종교 공간 역시 동시대의 요구를 반영해 변화하고 있다. 동시대 종교공간은 지역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이 확대되어 사유를 위한 공 간, 교육과 종교적 공간 체험, 여가활동 등 외부인과 지역거주민에게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적 문화 공간으로의 활용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동 시대의 종교공간은 비종교인들에게 공격적인 선교를 하지 않아야 하며, 누구나 부담 없이 방문하여 쉬어가고 심리적인 안정을 경험 할 수 있는 지역사회를 위한 장소로서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지역사회를 위한 공간인 동시에 종교공간만이 지닐 수 있는 영성의 공간을 함께 필 요로 한다. 오늘날 요구되는 종교공간은 좁은 의미의 ‘종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신앙으로 시작해 지역사회로의 확대, 연결하여 종교의 궁 극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하나인 성공회는 가톨릭의 종교개혁의 과정 속에서 ‘비 아 메디아(Via Media)’라는 중용적인 신앙에 근거해, 초대교회의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 전통을 존중하면서 종교적 극단 을 배제하고, 교리적 포용의 폭을 넓혀 갈등보다는 화해와 통합의 정신 을 추구하고 있다. 성공회는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성공회를 이루고 있으 며, 한국에는 1890년 영국인 선교사에 의해 ’대한 성공회‘로서 한국 땅에 자리 잡게 되었다. 초기 대한성공회 선교 당시 영국인 성공회 선교사들 은 서구의 종교공간을 구성하면서 한국적인 건축요소를 포용하려 노력하 였다. 본 연구의 목적은 성공회의 종교관에 기반,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한국 의 일상 속에 정착하고자 했던 영국 선교사의 초기 토착화 정신을 반영 한 대한 성공회의 정체성을 담은 종교공간을 제안하는 것에 있다. 성공 회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정신은 타협과 상호 양보를 통해서 다양한 요소 들 사이의 균형을 이루고자하는 ‘비아 메디아’이다. 양극단의 화해를 이 루고 갈등을 초월하려는 노력으로 균형, 자제, 중용의 자세이다. 다양화, 다문화의 시대에 포용과 균형을 이루고자 하는 ‘비아 메디아’는 동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와 종교의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공회의 이러한 종교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 성공회의 종교공간은 현재 대한 성공회만의 정체성이 담긴 건축물은 보기 어렵다. 선교 초기 선교사들이 펼쳤던 토착화 정책의 일환으로 지었던 한옥성당 의 잔재와 임대를 목적으로 한 상가형 건물의 교회 형식이 혼재되어 있 는 상황이다. 이에 성공회의 정체성이 담긴 성공회만의 종교공간의 필요 하다고 판단되었다. 종교공간을 제안하기에 앞서 동시대 종교의 의미와 그리스도교 공간들 과 성공회와 대한 성공회의 공간 변천과정을 고찰 후에 동시대가 요구하 는 종교공간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비아 메디아’의 종교관을 공간 적 방법으로 적용하여 설계하였다. 성공회가 추구하는 ‘비아 메디아’의 종교적 개념은 대립하는 한 쌍의 긴장과 역설을 그대로 포용하는 포용 성, 다양한 관점들을 수용하며 다층적이고 다중적임을 인정하는 모호(다 의)성, 새로운 사실과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의 개방성을 주요 기질로 보 았다. 이러한 포용성, 모호(다의성), 개방성을 성공회의 정체성을 구현하 는 중요한 개념적 특성으로 보았다. 포용성, 모호(다의)성, 개방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이와 같은 의미 를 가지고 있는 ‘다의성’이라는 공간의 속성으로 연결하였다. ‘다의성’이 내포하고 있는 특성을 미술, 디자인, 건축사에서 이론적 근거를 찾아, 이 를 근거로 다의적인 표현특성을 찾고자 하였다. 첫 번째 근거 개념으로는 모더니즘 초기부터 예술, 문화 분야를 중심 으로 널리 표현되고 있었던 상호텍스트성이다. 상호텍스트성에서 본 공 간의 다의적 표현 특성은 중층구조의 다양성, 공간의 비정형성, 애매모호 성, 예측불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로는 미술 사조인 아상블라주에서 본 공간의 다의적인 표현특성으로 물질성 강조, 형상성 추구, 다의적 함축, 일상성 강조, 사회성 반영, 우연적 미학의 특징이 있다. 위 두 가지의 표 현 특성을 근거 이론으로 고찰 후, 다의적 표현특성을 재규정하였다. 다의적 표현특성으로는 크게 ‘함축성’, ‘다층성’, ‘물질성’으로 분류되며, 함축성은 종교공간의 정체성을 담아내기 위해 종교적 상징을 다의적 요 소로 표현하기 위해 5가지의 세부 요소로 분류하여 ‘비아 메디아’의 공간 화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함축성은 종교공간에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공간 내에 표현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종교적 ‘상징성’의 의미들을 ‘함 축성’이라는 5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각각의 공간 디자인에 적용하였다. 함축성을 구성하는 방식은 상호텍스트적 공간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으로 분류하였던 물리적 층위, 비물리적 층위를 기반으로 물리적 층 위에는 조형적 차원, 기능적 차원으로 분류하고 비물리적 층위로는 감각 적 차원, 인지적 차원, 경험적 차원으로 분류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그리스도교의 상징적 요소들을 다차원적인 아상블라주 의 표현 특성으로 활용하여, 성공회 ‘비아 메디아’의 종교관을 다의적인 공간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다음과 같이 종교적 상징 요소 를 각 특성별로 디자인 구성요소로 전환하여 구체화 적용하였다. 감각적 차원의 요소로는 그리스도교에서 물과 바람, 돌 빛이 의미하는 상징성을 공간적으로 적용하고자 했으며, 조형적 차원의 요소로는 기둥, 문, 아치 등의 건축적 구성요소를 적용하며 이 역시도 각각 그리스도교 의 의미를 내포하고자 했다. 또한 인지적 차원의 요소로는 지역 활성화 를 위한 연계의 의미로서 마당이라는 영역을 주어 신자, 비신자 구분할 것 같이 문화적 활동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인지적 차원의 중요한 요소로 한지를 사용하였다. 한지는 대한성공회의 선교 초기 강화지역의 한옥성당의 주요 재료였으며, 빛을 은은하게 투과하여 포용하는 공간을 만들어주기에 ‘비아 메디아’의 포용성을 공간적으로 구현하였다. 기능적 차원의 요소로는 종교공간이 본질적으로 행해야하는 전례의 공간과 개인 의 기도, 명상공간을 구분하고, 일상과 성스러움의 기능을 구분하여 전체 적인 공간 레이아웃 구성에 반영하였다. 둘째, 다층성은 지면의 레벨차 이동에 따른 연속적 공간적 체험은 동 시대 종교공간의 역할에 대한 강력하고 드라마틱한 함축을 의미한다. 3 개의 레벨 구성에 다른 공간들의 의미는 각각 다르게 설정되었다. 첫 번 째로 진입하는 지면은 일상을 의미하는 ‘속의 공간’으로서 광장과 열주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면 정화의 공간으로 세례를 의미하 는 물의 종교적 상징성을 공간적으로 구현하였다. 마지막으로 지상으로 올라가면 ‘성의 공간’인 전례공간으로 올라가 빛으로 충만한 전례공간에 체험할 수 있다. 이는 종교공간을 경험하기 위한 전이과정을 위한 방법 으로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위한 것이다. 셋째, 물질성은 아상블라주의 특징인 물성의 활용한 통한 새로운 정체 성을 가지는 특성으로서, 일상적 재료를 활용하지만 종교공간에서는 비 일상으로 전환되는 공간화 요소로 적용하고자 하였다. 종교공간에 쓰이 는 건축 재료와 색체에도 그리스도교에서 가지는 의미들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전례공간 매스의 외부 마감 재료는 흰색의 테라코 도장으로서 소금의 텍스처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리스도교에서 ‘빛과 소금’은 그리 스도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인데, 빛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소금은 아 무도 감당하지 않으려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측면을 담고 있다. 이공간화 하기 위하여 전례공간의 천정을 오픈하여 그리스도의 빛이 공간 안으로 투영되게 하였으며, ‘빛과 소금’에서 소금이 상징하는 의미도 반영하기 위하여 소금과 비슷한 텍스쳐를 건축 외부 마감으로 구현하였다. 또한 한국의 전통공간의 재료인 한지를 적용하였다. 한지의 의미는 성 공회의 선교 초기 한국의 땅에 스며들고자 했던 토착화 일환으로 ‘한옥 성당’의 연결하기 위한 은유적인 표현이자, 대한성공회의 정체성을 회복 하고자 하는 건축적 장치이다. 또한 한지의 온화한 빛의 투과성을 이용 하여, 빛으로 충만한 공간 안에 모든 것을 포용하고 열려있는 ‘비아 메디 아’의 정체성을 담고자 하였다. 이는 그동안 선행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성공회 종교공간의 ‘정체성 을 담은 종교공간 디자인 제안’으로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추후 성공회 혹은 다른 종교공간의 건축 및 디자인 계획 시 정체성을 담은 관점으로 의 설계 접근 방식은 동시대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새로운 방향제시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주제어: 비아 메디아(Via Media), 중도, 성공회, 대한성공회, 종교공간, 아상블라주(Assemblage), 다의성. A Proposal on the Anglican Religious Space as the Perspective of “Via Media” -Focused on the Ambiguous Expression of Assemblage- JEONG, HEE HWAN Interior Architecture Curation Meister Course Dongyang Mirae University Christianity started from one root, but in the flow of history, various denominations currently coexist. In the past, Christianity was a religion based on a system centered on theocracy and kingship, but after the Second Vatican Council, it changed into a faith centered on spirituality due to changes in religious views and contemporary individualized culture. Accordingly, religious spaces are also changing to reflect contemporary demands. As the resources that contemporary religious spaces can provide to the local community have expanded, there is a demand for their use as social and cultural spaces that can also be provided to outsiders and local residents, including spaces for private purposes, education, religious space experiences, and leisure activities. Accordingly, contemporary religious spaces should not engage in aggressive missionary work toward non-religious people, and there is a need for a place for the community where anyone can visit without burden, rest, and experience psychological stability. In addition, a space for the local community is also needed, as well as a space for spirituality that only religious spaces can have. The religious space required today is not about ‘religion’ in a narrow sense, but should be a space that begins with individual faith and expands and connects to the local community to realize the ultimate value of religion. The Anglican Church, one of the Christian churches, has a religious view that restores the essence of the faith of the early church based on the moderate faith called ‘Via Media’ during the Catholic Reformation. While respecting tradition, it excludes religious extremes and broadens the scope of doctrinal inclusion, pursuing the spirit of reconciliation and integration rather than conflict. The Anglican Church is a global Anglican Church centered in the UK, and was established in Korea as the ‘Korean Anglican Church’ by ​​a British missionary in 1890.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Anglican Church in Korea, British Anglican missionaries tried to embrace Korean architectural elements while constructing Western religious spaces.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opose a religious space that embodies the identity of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based on the religious views of the Anglican Church and reflecting the essence of Christianity and the spirit of early indigenization of British missionaries who sought to settle in daily life in Korea. The ultimate spirit pursued by the Anglican Church is ‘Via Media’, which seeks to achieve balance between various elements through compromise and mutual concessions. It is an attitude of balance, restraint, and moderation in an effort to achieve reconciliation between extremes and transcend conflict. ‘Via Media’, which seeks to achieve inclusion and balance in an era of diversification and multiculturalism, can become an alternative model for society and religion that our contemporary times demand. However, despite this religious view of the Anglican Church, it is difficult to find buildings that contain the unique identity of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in the religious spaces of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The situation is a mixture of the remnants of the Hanok cathedral built as part of the indigenization policy carried out by early missionaries and the church style of a commercial building for rental purposes. Accordingly, it was judged that there was a need for a religious space unique to the Anglican Church that contained the identity of the Anglican Church. Before proposing a religious space, after considering the meaning of contemporary religion, Christian spaces, and the spatial transformation process of the Anglican Church and the Anglican Church, the religious view of 'Via Media' was applied as a spatial method as a way to realize the religious space required by contemporary times. It was designed. The religious concept of 'Via Media' pursued by the Anglican Church is inclusiveness that embraces a pair of opposing tensions and paradoxes, ambiguity that accepts various perspectives and acknowledges that it is multi-layered and multiple, and new facts and changes. Openness of accepting attitude was seen as the main temperament. Such inclusiveness, ambiguity, and openness were seen as important conceptual characteristics that embody the identity of the Anglican Church. It is a concept that encompasses inclusivity, ambiguous, and open-minded, and is connected to the property of space called ‘ambiguous’, which has the same meaning. We sought to find theoretical grounds for the characteristics implied by ‘ambiguous’ in the history of art, design, and architecture, and based on this, we sought to find ambiguous expression characteristics. The first grounding concept is intertextuality, which has been widely expressed in the fields of art and culture since the early days of modernism. The ambiguous expression characteristics of space as seen from intertextuality include the diversity of multi-layered structures, the irregularity of space, ambiguity, and unpredictability. Second, the ambiguous expression characteristics of space seen in the art trend of assemblage include emphasis on materiality, pursuit of figuration, polysemantic connotation, emphasis on everydayness, reflection of sociality, and accidental aesthetics. After examining the above two expression characteristics through grounded theory, the polysemous expression characteristics were redefined. Ambiguous expression characteristics are broadly classified into 'implicitness', 'multilayeredness', and 'materiality', and connotation is classified into five detailed elements to express religious symbols as polysemous elements to capture the identity of religious spaces. We would like to present the spatialization of ‘Via Media’ in detail. First, because connotation is important in religious spaces to ensure that the symbolism of religion is expressed within the space, the meanings of religious ‘symbolism’ were divided into five dimensions called ‘implicitness’ and applied to each space design. The method of constructing implications is based on the physical and non-physical layers that were classified as a way to understand the diversity of intertextual space. The physical layer is classified into formative and functional dimensions, and the non-physical layer is sensory and cognitive. It was classified into subjective and experiential dimensions. Accordingly, this study seeks to implement the religious view of the Anglican Church ‘Via Media’ as a polysemic space by utilizing the symbolic elements of Christianity as the expressive characteristics of multidimensional assemblage. Accordingly, religious symbolic elements were converted into design components for each characteristic and applied concretely as follows. As elements at the sensory level, we tried to spatially apply the symbolism of water, wind, and light in stone in Christianity, and as elements at the formative level, we applied architectural components such as pillars, doors, and arches, which are also Christian elements. I wanted to imply the meaning of. In addition, as a cognitive element, an area called a yard was given as a link to revitalize the region to provide cultural activities for believers and non-believers alike. Hanji was used as an important element at the cognitive level. Hanji was the main material of the Hanok cathedral in the Ganghwa area in the early days of the Anglican Church of Korea's missionary work, and it spatially embodied the inclusiveness of 'Via Media' by creating an inclusive space by gently transmitting light. As for the functional level elements, the space for liturgy, which is essentially a religious space, and the space for personal prayer and meditation were distinguished, and the functions of daily life and sacredness were distinguished and reflected in the overall space layout composition. Second, multi-layeredness means that the continuous spatial experience resulting from the movement of different levels of the ground has strong and dramatic implications for the role of contemporary religious space. The meaning of the different spaces in the three-level structure was set differently. The first surface you enter is an ‘inner space’ that represents daily life, and you are faced with a plaza and a colonnade. And going underground, the religious symbolism of water, which symbolizes baptism, is spatially implemented as a space of purification. Finally, when you go up to the ground, you can go up to the liturgical space, which is the ‘sexual space’, and experience a liturgical space filled with light. This is a method for the transition process to experience a religious space and is for various experiences at the border between everyday life and non-daily life. Third, materiality is a characteristic of having a new identity through the use of materiality, which is a characteristic of assemblage. Although everyday materials are used, it was intended to be applied as a spatialization element that transforms into the extraordinary in religious spaces. We also tried to give Christian meaning to the building materials and colors used in religious spaces. The exterior finishing material of the liturgical space mass was white terraco painting, intended to express the texture of salt. In Christianity, ‘light and salt’ are important elements symbolizing Christ. Light symbolizes Christ and salt contains the sacrificial aspect of Christ that no one is willing to bear. In order to transform the space into a different space, the ceiling of the liturgical space was opened to allow the light of Christ to be projected into the space, and a texture similar to salt was implemented as the exterior finish of the building to reflect the symbolic meaning of salt in ‘Light and Salt.’ In addition, Hanji, a traditional Korean space material, was applied. The meaning of Hanji is a metaphorical expression to connect the ‘Hanok Cathedral’ as part of the indigenization that the Anglican Church sought to infiltrate into Korean soil in the early days of its mission, and is an architectural device to restore the identity of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Also, by using the gentle light permeability of Hanji, we tried to capture the identity of ‘Via Media’, which embraces and opens everything in a space filled with light. This has important significance as a ‘religious space design proposal containing the identity’ of the Anglican Church’s religious space, which has not been covered in previous research. When planning the architecture and design of Anglican churches or other religious spaces in the future, we hope that a design approach with an identity perspective will be able to provide a new direction as an alternative to respond to contemporary demands.

    • 한국 무교와 신사도 운동의 비교 연구 : 상호 선교의 가능성 모색

      양승우 가톨릭대학교 2018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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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개요(초록) 지금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한국의 모든 종교들은 한국인들의 마음에 위로와 평화를 주고 한국 사회의 통합과 안정을 위해 기여하는 등 종교 본연의 기능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종교적 심성과 종교사적인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은 한국인만의 고유한 종교적 심성을 가지고 있으며, 외래 종교가 한국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과 상호작용하면서 이 땅에 정착하여 서로를 변화시켜 왔다. 한국인들의 종교 경험에서 공통적인 것은 이기적인 삶보다는 이타적인 삶, 분열과 대립의 삶보다는 조화와 일치를 통한 공동체적인 삶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의 핵심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종교는 무교(巫敎, 샤머니즘)이며,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종교도 무교이다. 한국인들의 무교적인 성향은 한국의 각 종교들의 수용과정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그리스도교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 카리스마적 성령 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 안에 있는 무교적인 심성의 영향이 크다. 교리적인 부분에서는 구별할 수 있지만, 체험적인 요소는 유사성이 많으며, 무교에 익숙한 한국인 종교적 심성은 이미 성령 운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성령 운동의 추진은 지금의 한국 종교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좋은 대안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현대 성령 운동의 흐름을 ‘제1의 물결’, ‘제2의 물결’, ‘제3의 물결’ 순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200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 전 세계적으로 급격하게 성장하며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신사도 운동은 ‘제3의 물결’에 해당된다. 신사도 운동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교단 체제의 개혁을 주장하며, 새로운 예배 및 기도회를 시도하고 있는데, 신사도 운동에서는 ‘직통 계시’와 ‘예언’, ‘각종 성령의 은사’, ‘임파테이션’ 등과 같은 강력한 종교 체험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영적 전쟁과 중보기도를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신사도 운동이 기존 그리스도교 전통과 구별되는 특징은 바로 ‘사도’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따라서 신사도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사도에 대한 개념정리가 필요하다. 전통적인 교회에서 말하는 사도 계승은 무교의 세습무와 비슷한 성격을 보이는 반면, 신사도 운동에서 말하는 사도 계승은 강신무와 비슷한 성격을 보인다. 강신무와 세습무가 대립적이며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상호 보완적이고 협력관계를 맺는 것처럼, 전통 교단과 신사도 운동 역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신사도 운동이 현대 한국인들에게 설득력이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 한국갤럽의 조사결과에 나타난 한국인들의 종교의식과 신사도 운동의 세계관을 비교해보면, 신사도 운동의 세계관은 서구의 합리적인 세계관보다는 오히려 동양적인 세계관에 더 가까운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특별히 신사도 운동에서 강조하고 있는 주요 특징들은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존재의 인정’, ‘중간계의 영들이 지상에 주는 영향’, ‘여러 가지 기적과 이사’ 인데,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강하게 믿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신사도 운동은 한국인의 종교적 정서 안으로 쉽게 수용될 수 있으며, 현대 한국인들의 종교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한국의 종교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무교와 상호 선교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신사도 운동과 한국의 무교는 체험적인 요소와 일부 세계관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점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상호 선교의 가능성과 필요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이는 주로 에토스와 파토스 측면에서 바라본 결론이기 때문에, 로고스의 영역에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 정서적인 요소에서는 공통점이 충분히 있지만, 교리와 신학의 영역에서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단지 이론적인 수준에서의 검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교회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연구해 보려고 한다. 적용할 대상으로는 대한성공회를 선택하였다. 이 연구가 과연 대한성공회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대한성공회에 적용가능하다면 대한성공회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살펴보았다. 2012년 교구 진단 결과를 살펴보면, 대한성공회는 한국인의 종교적 심성과 지금 신자들의 종교적 욕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성공회에 한국인의 종교관 및 정서에 알맞은 신사도 운동을 비판적으로 적용하면, 성공회 신자들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교회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In today's situation, all the religions of Korea should provide comfort and peace to people's minds and contribute to social integration and stability, which are the original functions of religion. For this,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Korean people's traditional religious minds and the characteristics of religion history. Korean people have their own religious minds, and while foreign religions were accepted to Korea, they interacted with Korean people's religious minds, settled in this country, and changed each other. The common characteristics of Korean people's religious experiences are they pursue altruistic life rather than selfish life, and communal living rather through harmony and accord rather than life of conflict and opposition. These are the core of Korean people's religious minds. The religion that reflects Korean people's religious minds best is Korean shamanism(巫敎), which also has the most influence on Korean people's religious minds. The inclination of shamanism affected the acceptance process of each religion in Korea, and Christianity is not the exception. The background that charismatic holy spirit movement was growing explosively is the shamanistic minds lying inside of Korean people's religious minds. It is distinctive in doctrines, but there are a lot of similarities in experiential elements. Korean people's religious minds that are used to shamanism were already ready to accept the holy spirit movement. Therefore, the new holy spirit movement can be one of good alternatives to overcome the crisis of today's Korean religions. The flow of modern holy spirit movement can be classified into 'the 1st wave', 'the 2nd wave' and 'the 3rd wave'.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that was started seriously in 2000s and now is rapidly growing in the world having a great influence is 'the 3rd movement'.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claims the reform of religious system with charismatic leadership and is trying new worship and prayer service. In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there are strong religious experiences such as 'direct divine revelation', 'prophecy', 'gifts of holy spirit' and 'impartation'. Based on these, there are active spiritual war and intercessory prayer. The distinguishing characteristic from the existing Christian traditions is the perspective towards apostles. For explanation of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it is necessary to organize the concept of apostles first. The apostolic succession mentioned in the traditional church has similar characteristics to hereditary shamans of shamanism. As hereditary shamans and apostolic succession are conflictual and maintain strained relations, but at the same time they are mutual complementary and cooperative, the traditional religious body and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also need to be mutual complementary. In the comparison between Korean people's religious minds and the world view of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in the result of survey by Gallup Korea to find out whether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is persuasive, the world view of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is rather closer to oriental world view than to the Western rational world view. Major characteristics especially emphasized by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are 'acknowledgment of supernational and spiritual beings', 'the effects of middle earth spirits on earth' and 'various miracles and gifts', which many Korean people still strongly believe in. Therefore,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can be accepted easily to Korean people's religious minds, can satisfy their religious desires and can contribute to abundant religious culture of Korea. For this, mutual mission with shamanism will be helpful. Because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and Korean shamanism share common features in some experiential elements and some parts of world view, and they have elements that can be learned and helped by each other, the possibility and necessity are enough. Nevertheless, this is the conclusion from the aspects of ethos and pathos, so additional research from the area of logos is needed. That's because there are enough common features in the emotional elements, but there is big difference in the doctrine and theology areas. Rather than limiting in theoretical reviews, this study is intended to research how it can be specifically applied to actual church sites.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was selected as the subject for application. It was considered whether this study can be applied to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and if so, how it can be helpful to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According to the result of the 2012' parish diagnosis,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should pay more attention to Korean people's religious minds and current believers' religious desires. If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suitable for Korean people's religious views and minds is critically applied, the religious desires of the Anglican Church believers will be satisfied, and the church can be reformed for the current of the times.

    • 노정빈 선교사(魯貞彬, Agnes Josephine Roberts M.B.E.,1914~1998)의 삶과 사역에 대한 기초 자료 연구 : 구술 자료와 어머니회 회지, 신문 스크랩 자료를 중심으로

      채창완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 2019 국내석사

      RANK : 248687

      노정빈 선교사(魯貞彬, Agnes Josephine Roberts M.B.E., 1914~1998)는 1959년 ‘영국 어머니연합회(Mother’s Union)’ 파송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1984년 영국으로 귀환하기까지 25년 동안 한국성공회와 우리 민족을 위해 헌신과 사랑을 베푼 분이시다. 6·25 전쟁의 상흔으로 극심한 기아와 가난에 시달리던 우리나라와 한국성공회를 위해 ‘구호와 구제’, ‘어머니연합회 재건‘, ‘보건과 교육’, ‘주일학교 교육‘, ‘입양 프로모션’, ‘한국성공회와 한국 근현대사 자료 수집’ 등의 사역을 펼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다. 그녀가 베푼 ‘구호와 구제’ 사역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처지와 상황에 맞는 ‘맞춤형 복지의 원형’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즉 단순한 ‘퍼주기 식‘의 일방적인 도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활이 가능하도록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꼭 필요한 도움을 주는 방식이다. 그녀의 도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치의 병에서 벗어났으며, 교육과 자활의 기회를 가졌다. 특히 전후에 와해된 어머니연합회를 재건하는 사역을 통해 한국성공회 여성들의 교회와 사회적 입지를 더욱 세우고 확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는 오늘날 한국성공회의 가정과 교회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어머니연합회 사역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와 후원 편지를 쓰고, 고통 받는 이웃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 성공회교회들의 어머니연합회를 재건하고 교육시키는 사역을 하면서 좀처럼 쉴 수 없었던 노선교사의 사역은 바로 그녀 안에서 쏫아 나는 ‘감출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 동력이었다. 또한 그녀는 “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은 부족하더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체스터턴(Chesterton)의 말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었다. ‘할 가치가 있는 일’에는 성직자나 평신도의 구분이나 전문성과 비전문성의 차이가 있을 수가 없다. 오직 ‘행함’ 만이 가치 있는 것이다. 그녀는 평신도 사역자로서 자신의 사역을 존 데일리 주교, 리차드 러트 주교, 배두환 주교 등과의 협력관계 속에서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었다. 노정빈 선교사는 자신의 업적을 결코 자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동안 그녀에 대한 평가나 연구가 한국성공회에서 미진한 상태였다. 또한 현재 영국 버밍엄 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있는 그녀의 자료들이 오랫동안 비공개 상태에 놓여 있어 더 정확한 정보에 접근이 어려운 실태이다. 그래서 이 논문은 현재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증인들과 한국에 남아 있는 자료들을 중심으로 그녀의 삶과 사역을 재구성하는 ‘기초 자료 연구’이다. 이를 통해 그녀의 삶과 사역을 선교사적 지평 위에 복원하고, 그녀의 삶과 사역을 통해 오늘날 한국성공회에서 관심이 높아가는 평신도 사역자들의 역할을 재고해보고자 한다. Agnes Josephine Roberts M.B.E.(魯貞彬, Noh, Jeong-bin, 1914~1998) was an Anglican lay missionary who spent 25 years(1959-1984) of her life in Korea. Sent by the Mothers' Union in England, she dedicated her life in sharing the love of Christ with people in Korea suffering from poverty and starvation in the aftermath of the Korean War, by bringing aid and relief, primary healthcare and education to those in need. She also helped building the Mothers' Union and Sunday Schools, finding homes for many war orphans, and collecting data related to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as well as Korea's modern history. Her approach to providing aid and relief can be regarded as a precursor to what is now known as 'customized welfare' in Korea : rather than simply providing standardized relief programs, she focused on identifying and meeting specific needs of each individual and helping their journeys to self-reliance. As a result, many were saved from deadly diseases, given access to education and opportunities to rebuild their lives from the ashes of the war. In particular, she played a seminal role in the development of the Mothers' Union in Korea, which then existed only in name. Under her guidance and supports, the Mothers' Union grew as a grassroots organization within Anglican churches in Korea, empowering women, strengthening families and communities, which in turn laid the groundwork for the growth of today's Anglican Church of Korea. She ceaselessly travelled across the war-ravaged nation, reaching out to people in need, writing countless letters for fund-raising, helping local churches to re-build the Mothers' Union, providing necessary training and education. The secret behind her tireless works was her “ill-concealed love” in Christ and her belief that “anything worth doing is worth doing badly” as Chesterton said: when it comes to 'a thing worth doing,' there is no point of separating the lay and the ordained, the professional and the unprofessional, for what matters most after all, is putting one's faith into 'action'. Being a lay missionary, she was always ready to put her faith into action, thereby serving the Body of Christ in successful partnerships with the ordained clergy, including Bishop John Daly, Bishop Richard Rutt and Bishop Bae, Doo-Hwan. That said, she was not into publicizing her works, and many of her own writings which are archived in the University of Birmingham's library have remained inaccessible to the general public, which explains why there has not been much studies about her life and works to date. Hence, this study is intended as a primary research to collect and compile data with regards to her life and works, mainly based on face-to-face interviews with those who have memories of her while she worked in the mission field as well as on data currently available in Korea. In so doing, it attempts to shed light on her life and works as a lay missionary, which will offer valuable and timely insights as to the role of lay ministry which is becoming increasingly important in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 대한성공회 성직자 복식에 관한 연구 : 대한성공회 성직자 복식의 토착화와 디자인 제안

      김대성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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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유럽의 가톨릭교회와 영국성공회의 역사와 문화의 영향 아래 한국에 정착된 대한성공회의 전례 복식을 한국적 맥락 안에서 토착화 할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례적인 교회에서 고려되는 많은 요소들 가운데 복식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례 공간과 전례 안에서 사용되는 많은 전례적 도구들은 상징적인 의미를 외형적 디자인을 통하여 전달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전례의 복식 또한 이러한 기능을 지니는 바, 전례 안에서 또는 생활 속에서 성직자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성공회가 사용하고 있는 성직자의 복식은 서방교회의 영향 아래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비록 신학적인 의미는 갖추고 있을지라도 그 이면에는 서양문화의 색채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국이라는 상황에 놓여 있는 대한성공회가 한국만의 지역적 신앙색채를 상징적으로 충분히 드러내기에는 현재 성직자의 복식이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대한성공회가 서양의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한국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충분히 드러내기 위해서는 한국적 상황을 고려한 새로운 성직자 복식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서방교회의 복식의 흐름을 살피고, 이와 함께 한국의 전통복식, 특히 근대 이전 조선시대의 복식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틀 안에서 대한성공회는 서방교회의 전통과 한국의 전통적 요소를 결합한 새로운 성직자 복식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 한국개신교 여성의 선교활동과 여성성직에 관한 연구 : 대한성공회를 중심으로

      최승철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5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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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성직 반대자들이 주장하는 성서본문들에 대한 여성신학적 해석과 초대교회 여성들의 선교활동 그리고 한국교회 안에서의 여성성직에 관한 일련의 상황과 대한성공회 여성성직에 관한 상황을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본다. 첫째, 여성성직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성서에 대한 자구적 해석의 결과였다. 여성성직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할 근거를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근거로 특정한 성서구절을 제시했으나 결국 그 근거들은 자구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문제의 본문들은 여성성직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문제의 본문들 중 일부분에서 여성을 비하하거나 폄하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표현들은 시대적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 여성의 절대적인 열등함을 말하거나 여성의 복음전파를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셋째, 사도 바울은 여성성직을 반대했던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들을 동등한 입장에서 처우했다. 여성을 폄하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울의 진술들도 사실은 여성전체를 폄하하는 발언이기보다는 권면을 받아야 하는 특정한 여성을 향한 것이고,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권면의 말씀이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여성들을 언제나 동등한 동역자로 인정했으며, 본질에 있어서는 여성이나 남성이나 동등 됨을 언제나 강조했다 넷째, 성서는 많은 곳에서 여성성직에 대한 증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구약성서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구약의 많은 여예인자, 여지도자들과 신약의 많은 여제자들, 여선지자들은 여성이 실제로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해 왔음을 잘 보여주는 실례라 할 수 있다. 다섯째, 대한 성공회 초기의 여성들의 활동과 현재 성공회 여성성직자의 활발한 활동은 여성이 교회에서 남성들과 동등하게 하느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드러내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대한성공회 초기의 여성들의 활동은 매우 체계적이었고 교회 내에서 중심적인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성직서품이 인준된 이후에 새롭게 서품된 여성성직자의 활동 역시 매우 핵심적이라 할 수 있다. 여섯째, 여정성직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다. 적어도 여성성직을 반대하는 명백한 성서적인 근거는 없기 때문이며, 교회 역사에서도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하게 활동해 왔기 때문이다. 만일 여성 성직이 거부되고, 여성들에게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는 일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그릇된 욕심과 죄 된 본성'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한국 선교초기 여성들의 활동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특히 수녀회와 전도부인의 활동은 한국선교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역할은 항상 선교, 교육, 봉사에 집중되어 있었다. 성직자의 고유한 권한이었던 미사집전권이 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성직자가 서품된 이후에 여성에게도 미사 집전권이 승인되었다. 따라서 이제 제도적으로 여성과 남성 사이에 차별조항은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수도자(수녀)들의 성직서품에 관한 문제는 논의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수녀회의 미사에는 언제나 남성사제들이 참여하여 집전을 해야 한다. 남성수도자의 경우에는 수도회소속 수사신부가 있어, 자체 집전권이 있기 때문에 구태여 교구소속 사제가 필요치 않다. 이는 여전히 여성들에 대해 동등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여성수도자의 성직서품 문제도 논의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성공회의 다른 관구에서는 여성주교가 인준되었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물론 여성성직자가 승인된 이상 대한성공회의 경우에도 여성이 주교가 될 수 있는 자격은 열려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성주교인준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주교직만큼은 남성이 수행해야 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교직 역시 여성에게 동등하게 허용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의미나 가치의 차원에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것은 다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여성(female)과 남성(male)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여성다움'(the feminine)과 '남성다움'(the masculine)으로 구분하여 두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차별을 두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인간, 선택받은 백성인 남성과 여성 모두가 주님 안에서 하나 된 몸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해가는 아름답고 거룩한 모임의 신앙공동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한다.

    • 지구화시대 농민선교 방안에 대한 연구 : '대한성공회 둔포교회'를 중심으로

      국충국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 200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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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지구화 시대 농촌선교의 방안으로 둔포면에 위치한 성공회 둔포교회에서 실천 할 수 있는 선교방안을 논하기 위해서 2장에서 우선 한국 농촌사회의 일반적인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농촌사회가 WTO 자유무역협정 등으로 경제적 측면에서 크게 위협받고 있으며, 이농과 고령화 추세로 인해 농촌사회가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둔포지역의 경우 이러한 문제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특히 벼와 배 재배가 농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WTO의 영향 하에서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둔포지역은 이미 고령화를 지나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는 점과, 둔포지역의 사람들은 교육문제를 가장 큰 문제로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산의 다른 면단위와 비교했을 때, 제조업 사업체가 많이 분포되었으며 그로 인한 외국인노동자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느님의 선교 입장에서 곧 선교의 과제이다. 이러한 선교적 과제를 가지고 있는 둔포교회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교인의 인식을 살펴보았다. 둔포교회는 100년의 역사 속에서 지역사회에 교육적 측면에서 기여하여 왔다는 긍정적인 점이 있으나, 현재는 교세가 약화되어 교회 운영에 대부분의 재정을 사용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3-40대 토박이 교인들이 전체교인의 50%를 차지하고 있어 선교적 역동성이 잠재되어 있다. 3장에서 기존에 연구되어 있는 선교신학 중에서 교회중심형 농민선교, 생태주의적 생명선교, 노기보의 21세기 농촌선교의 개념과 장·단점을 검토하였다. 기존의 선교신학은 나름대로 교세의 확장, 생명신학의 재발견과 생태농업의 가능성, 경제적 사회적 측면의 실제적 필요 충족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세적이고 염세적인 신앙의 위험성, 유기농업의 경제적 장애, 전문적인 시스템 구축의 어려움 등의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본 논문은 4장에서 다문화 네트워크로서 기능하는 선교방안을 제안하였다. 교회 내의 양적 성장 문제는 '100주년 교회발전 방안'을 통해 교회 내의 조직구조를 다변화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교회 밖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역의 자원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선교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 소공동체 지역 네트워크를 제안하였다. 이는 기존에 나눔의 집이나 복지관 등이 교회의 외부에 위치하여 교인들과 이질감을 나타낸 단점을 피하기 위해서 본당 내에서 교인들과 지역주민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또한 비교적 조직이 간소하기 때문에 운영의 부담감이 적다. 그리고 소공동체들은 교인들 뿐 아니라 지역의 이웃종교와 이웃교단, 그리고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하는 네트워크의 연결고리로 활동하기 때문에 비용과 자원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논문은 이러한 소공동체를 이끌어갈 교인들에 대한 지역사목(지역복음화)적 교육이 논외로 되어 있다. 앞으로 성공회 신학에 기반을 둔 지역복음화에 대한 사목적 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지역교회에 네트워킹으로 자리 잡은 소공동체의 다양한 사례가 발굴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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