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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 2021 국내박사
본 연구의 목적은 ‘기독청년의 기독교이단 탈퇴 경험’을 심층적으로 탐색하여 현상학적으로 밝혀내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하위 연구문제는 기독청년의 기독교이단 탈퇴 배경과 기독이단에서 탈퇴한 기독청년의 심리·사회적 경험은 무엇인가? 이다. 이를 위해 정통교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하던 중에 기독교이단에 미혹되어 이단 활동을 하다가 자발적 또는 부모에 의한 비자발적으로 탈퇴한 이후 ○○○교회 기독교이단전문상담소에서 이단상담을 받고 이단교리반증교육에 참여한 2년 이내인 기독청년 10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하였다. 본 연구는 참여자들로부터 수집한 자료를 현상학적 연구 방법 중 Colaizzi 자료 분석 방법을 적용하였으며 118개의 구성적 의미와 35개의 주제 그리고 14개의 주제군을 도출하였다. 본 연구에서 밝혀진 기독교이단에서 탈퇴한 기독청년의 경험은 ‘믿었던 이단에 대한 회의, 혹독한 이단 생활에 숨 막힘, 가족들의 탈퇴 종용에 의한 압박감, 주변 사람들의 탈퇴 권면에 마음이 흔들림, 마음 둘데 없어 허탈함, 가족들의 회심 요구에 번민함, 배교자 낙인에 대한 두려움, 이단 숭배에 대한 수치심,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회한, 탈퇴한 선후배들과 서로 도우며 의지함, 사랑의 재경험을 통한 자기회복, 교회공동체 소중함을 재발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신앙적 갈등 해소, 올바른 신앙을 기반으로 미래에 도전’으로 나타났다. 분석 결과는 첫째, 기독청년의 기독교이단 탈퇴 배경은 ‘믿었던 이단에 대한 회의, 혹독한 이단 생활에 숨 막힘, 가족들의 탈퇴 종용에 의한 압박감, 주변 사람들의 탈퇴 권면에 마음이 흔들림’ 배경이 되었다. 기독교이단의 내부 요인은 이단 교리의 거짓과 허구, 신도들의 혹독한 이단 생활이었으며 기독교이단의 외부 요인으로는 부모와 교회 성도 등 외부의 종용이 이단 탈퇴의 배경으로 나타났다. 둘째, 기독이단에서 탈퇴한 기독청년의 심리·사회적 경험은 탈퇴한 이후에 한동안 마음을 둘데가 없어 허탈하였고, 부모의 회심 요구에 번민하였다. 그리고 참여자들은 기존에 자신이 다니던 교회로 돌아가고 싶어도 배교자의 낙인이 두려워 쉽게 갈 수 없었고, 이단 교리와 교주를 숭배한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꼈으며, 그동안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후회를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먼저 탈퇴한 선후배들과 서로 돕고 의지하였고, 부모와 성도들로부터 사랑을 재경험함으로써 자기회복의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기독교 이단에서 탈퇴한 기독청년은 교회공동체 소중함을 재발견함은 물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신앙적 갈등을 해소하고 올바른 신앙을 기반으로 미래에 도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연구에 대한 의의는 첫째, 본 연구는 기독교이단에서 탈퇴한 기독청년의 심리·사회적 경험을 현상학적으로 분석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기독교이단에서 탈퇴한 기독청년에 대한 편견을 배제하고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학적 자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둘째, 본 연구는 기독청년이 기독교이단에서 탈퇴한 이후의 심리·사회적 경험을 현상학적으로 밝혀냄으로써, 정통 기독교 교회의 목회자와 기독청년의 자녀를 둔 부모 그리고 교회 상담센터에서 종사하는 전문 심리상담사와 이단전문상담소 등 유관기관 종사자들에게 이단에 빠진 기독청년에 대한 기독교상담적 접근과 교회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이단예방교육 교재 제작과 각종 프로그램 개발 시 근거자료로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 셋째, 본 연구는 기독청년이 이단에 미혹되었다가 탈퇴하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로 교회공동체와 부모의 영향임을 알 수 있었으며, 이단에서 탈퇴한 이후 신앙생활의 회심과 적응도 교회공동체와 부모들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넷째, 본 연구는 기독청년이 이단에서 탈퇴한 이후 곧바로 회심하여 신앙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낙인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 등의 부정적인 심리·사회적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가정과 교회공동체를 통한 사랑의 재경험으로 자기회복을 했다는 것을 발견하는 데 의의가 있다. 이에 기독교이단에서 탈퇴한 기독청년이 이단에 미혹되지 않고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정과 교회 등을 포함한 청년들의 신앙 생태학적 관점에서 이들을 도와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는 기독청년이 이단에서 탈퇴한 이후 이단교리상담사와 청년부 동료의 도움을 받아 신앙적 갈등에 해소하며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변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교회 내 전문목회상담사나 이단교리상담사를 통해 회심을 도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밝혀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필리핀의 이단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Iglesia Ni Cristo)’에 대한 비판과 성경적 교리교육의 필요성에 관한 연구
차미정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 2021 국내박사
국문초록 본 논문은 1914년 필리핀에서 자생하여 정치, 사회, 종교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기독교 이단 종파인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Iglesia Ni Cristo: INC)에 대해 연구하였다. INC를 기독교 이단이라고 정의하는 이유는 먼저 신론, 기독론, 구원론 등에서 정통적 개혁주의를 따르는 성경적 교리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적은 수로 시작한 INC는 필리핀을 넘어 아시아, 미국 그리고 유럽 그리고 서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그 교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INC의 발족 이후 그들은 로마가톨릭 신자들을 전도대상으로 삼았으나 이제는 개신교 신자들까지 전도대상으로 삼아 포교활동을 펴고 있다. 문제는 INC가 개신교 신앙의 근간을 흔들 만큼 잘못된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다. 이에 본 연구자는 필리핀에서 영적으로나 사회적 영향력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INC에 대해 조사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동 종파에 대한 선교전략이자 대응책으로서 정통적, 성경적 교리교육의 중요성을 제안한다. 교리교육은 기독교 선교 과정에서 올바른 신앙확립과 이단 구분 그리고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확립에 필수적이다. 또한, 인간 삶의 최고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훈련하는데 필수적인 교육내용이기 때문이다. 본 논문의 연구는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가 발간하는 정기 잡지와 교리교육교재 그리고 기존의 여러 문헌 자료를 통해 필리핀의 기독교 이단인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교의 잘못된 교리와 그 폐해를 살펴볼 것이다. 본 논문의 연구방법은 문헌연구이다. INC의 발생경유, 중요한 성경공부교재와 신조 분석을 통한 동 교단의 중요교리, 동 교단의 전도방법과 그 폐해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선교전략이자 대응책으로서 정통적, 성경적 교리교육의 중요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본 논문의 다음과 같이 진행돌 것이다. 1장에서는 본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을 제시하며, 본 연구를 진행할 연구의 방법과 범위 그리고 INC에 대한 선행연구에 대해 다룬다. 2장에서는 선교지로서의 필리핀의 일반적 현황을 간략히 개관하고자 한다. 또한 로마가톨릭을 비롯 개신교와 비등한 세력을 가지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필리핀의 주 종교들에 관해 서술할 것이다. 3장에서는 개혁교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신앙사상의 핵심인 교리의 중요성과 교리의 선교적 유익과 함께 이를 해치는 기독교 이단이 가지는 위험성을 다루고자 한다. 4장에서는 필리핀 이단종교인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에 대한 일반 이해를 돕고자 동 종파의 교조, 발생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확장경로 외에 동 종파가 자신들의 교인들을 교육하기 위해 주교재로 사용하는 기본성경공부 교재를 토대로 INC의 주요 교리 그리고 INC의 폐단을 살펴볼 것이다. 5장에서는 개혁교회의 주요교리를 토대로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의 교리에 대해 비판하고자 한다. 그리고 필리핀의 기독교 이단인 동 종파에 대한 선교전략으로서의 교리교육과 동 종파로부터 탈퇴를 돕기 위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결론에서는 다섯 장에서 논의한 바를 간략히 요약하면서 필리핀 선교사역에 있어서 필리핀의 기독교 이단 대응과 신자들에게 기독교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신앙교육을 위해서는 성경적 교리교육이 필요함을 재논의함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교리교육은 기독교 선교를 통해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올바른 신앙을 확립하고, 이단을 구분하며, 분명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인간의 우선되는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도록 훈련하며 세우는데 필수적인 교육내용이다. 더 나아가 필리핀의 가장 큰 기독교 이단인 INC 이외에도 필리핀 인구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로마가톨릭에 대응하기 위한 개신교의 선교전략으로서 성경적 교리교육만큼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없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韓國史를 통해 본 기독교 이단 활동 및 그 영향에 대한 연구
황근배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2004 국내석사
지금까지 한국인의 대표적인 전통 종교의 분석과 함께, 이러한 것들이 한국에서 기독교의 뿌리 내림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한 기독교 이단 운동에 직, 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Ⅱ장에서는 먼저 민간 신앙의 뿌리라고 말할 수 있는 무교의 종교사적 뿌리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러한 무속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의 정신적 기반을 이루고 있음을 부인 할 수 없는 사실로서, 민족의 희노애락을 담고 있는 민중의 종교이다. 이어서 나타난 불교는 민족 화합과 국가 이념을 확립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종교가 이용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나라의 번영을 위해 불교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보호하고 옹호하였지만, 점점 사치에 빠져들면서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불교의 신관과 구원관, 윤리관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이어서 조선시대를 지배했던 유교의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았는데, 이 유교는 아무리 그 영향력이 많이 감소되었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 기존적인 틀은 현대 한국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정치 경제체제에 까지 미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바, 이러한 유교의 사상적 배경과 사상적 특징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Ⅲ장에서는 이러한 종교적 뿌리를 갖고 있는 한국 사회에 기독교가 유입되기 시작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부흥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해방 전후로 나누어서 살펴보았다. 먼저는 기독교가 유입될 조선 말 당시, 한국 사회는 어떠한 사회적 변동을 겪고 있는가를 살펴 본 뒤, 기독교의 대(對)사회적 관계는 어떠했으며, 그것이 대중들 속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해방 후 한국 경제의 발전과 함께 기독교의 양적 발전을 가져왔으나, 초기의 한국 교회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인 반면, 해방이후에 보여준 기독교는 사회문제에 대하여 무관심과 자체의 분열은 대중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러한 기존 사회의 엄청난 변화 속에서 기독교의 올바른 교리 정립의 부재(不在)와 사회적인 책임 의식의 결여는 상대적으로 이단의 발흥(發興)을 돕는 꼴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해방 전의 대표적인 이단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비주의 운동과 이것으로부터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자들의 해방 이후의 득세는 전도관과 통일교, 그리고 최근의 사회적 물의를 빛은 구원파와 종말론 그리고 마귀론 논쟁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Ⅳ장에서는 Ⅱ장과 Ⅲ장의 내용을 비교하면서 이러한 이단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전통 종교였던 무교와 불교, 유교가 기독교와 어떤 연관을 맺고, 또한 기독교 이단 조직 속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즉 무교는 오순절 운동과 같은 신비주의 운동과 기복사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 한국에서 유명한 통일교, 영생교, 전도관과 같은 이단 세력들의 발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또한 불교의 탈 세속주의는 기도원 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동시에 업보(業報)사상은 율법적 경건을 강조하는 현상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타계(他界)지향적인 말세 사상의 영향은 다미 선교회와 같은 종말주의 운동에 쉽게 빠져드는 현상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유교는 윤리적인 종교로서 실제 기독교나 이단 집단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드나, 실상은 유교의 위계질서 강조나 천(天)사상에서 오는 절대적 순종 의식은 종교의 권위주의를 낳았고, 또한 유교의 배타적 가족주의와 이기적 당파심은 한국교회의 분열과 이단 정죄(定罪)에 한몫을 하였음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밀라노 칙령 이후 기간이 기독교화의 시대였다면, 12~13세기는 서구 기독교 사회가 종교적ㆍ사회적 재통합을 추구한 시대라 할 수 있다. 새 천년에 대한 기대감과 종교적 열정, 교권과 속권의 투쟁과 연합, 도시와 상업의 발달과 함께 복잡하고 다양해져가는 사회적 욕구 속에서 중세 가톨릭은 교회가 영적ㆍ현실적 지배세력으로 통합의 중심에 선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적으로는 정화작업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재기독교화(re-Christianization)라는 두 가지 중요한 과제에 직면했다. 수도원 운동과 공의회를 통한 수많은 성직자와 교회 쇄신 시도들이 가톨릭의 내적 정화작업이었다면, 재기독교화는 외적 정화작업이자 이를 위한 세속 규율화였다. 또한 세례를 통해 표면적으로는 기독교 사회에 들어왔으나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수많은 평신도들을 완전하게 기독교 사회 구성원으로 만들어 가톨릭의 지배를 공고히 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고자 가톨릭은 교황의 수위권 인정을 전제로 한 상부 두 위계인 교권과 속권의 제휴, 그리고 이 양자의 지배와 특권 등을 재확인하려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과 정신까지 세세하게 규율할 정책들을 마련해 현실에 적용시켜 갔다. 이원론과 복음주의 특성을 함께 갖춘 카타르파 교리는 초대교회의 청빈함과 순수함을 찾는다는 점에서 가톨릭의 내적 정화작업과 일치하는 면이 있었으나, 재기독교화를 위한 가톨릭 정책과는 근본적으로 정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의 창조주가 천상과 지상 모든 것을 직접 창조해냈다는 가톨릭 교리와 달리, 카타르파는 이원론에 근거해 선과 악을 정신과 물질로 나누고, 자연과 인간의 육신을 악마의 작품이라 생각했다. 카타르파의 영적인 신은 <구약>의 신이 아니었으며, 가톨릭교회가 강조하는 맹세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또한 카타르파는 에덴동산의 사건을 신의 말씀을 거역한 불복종의 대가가 아닌 조물주의 계략으로 인한 육체적 타락이라고 여김으로써 가톨릭의 자유의지와 원죄를 부정했다. 신의 법을 어긴 것을 인간의 그릇된 선택으로 보고 죄의식을 상기시키는 가톨릭과 다르게 카타르파는 죄를 세속세계 자체로 보기 때문에 인간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았다. 이러한 카타르파의 이원론적 사고는 가톨릭교회의 세속 참여가 정당한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일원론 교리를 통해 하느님과 사도들에서 교황으로 그리고 그 아래 사제로 이어지는 가톨릭의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를 흔들었으며, 자유의지에 따른 불복종과 원죄, 선천적인 한계를 인간에 대한 외부통치 합리화로 보는 가톨릭의 정치적 논리를 위협했다. 더 나아가 카타르파는 예수의 육화와 부활 그리고 인간의 마지막 구원 또한 영적으로 해석했으며, 성육신에서 파생된 삼위일체 논리와 육체적 구원을 동반하는 종말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려움과 영원한 육체적 삶에 대한 기대감으로 뒤섞인 가톨릭의 최후의 심판과는 달리 카타르파에게 마지막 날은 아예 오지 않거나 인간이 육신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환영할 만한 순간이었다. 또한 가톨릭에서는 한 번의 삶으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지만 카타르파는 천상과 합일을 이루는 구원 전까지는 윤회라는 장치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세상 모든 것들을 순환시킨다고 믿었다. 이러한 카타르파 교리는 예수의 육화를 재현하고 세속 삶의 가치를 되새김으로써 교회의 세속참여와 규율 정책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가톨릭의 구체적 실천들인 세례, 성체성사, 고해, 성인과 십자가 숭배, 연옥, 종말론에 대한 직접적인 거부로 이어졌다. 이는 세속에 대한 교회의 윤리적․경제적 지배 기제들을 무가치하게 만들고, 가톨릭을 중심으로 이루려는 중세 기독교 사회의 외적 내적 단일화 모두에 방해가 될 여지가 있었다. 인성이 배제된 천사 성모 마리아는 이원론, 영적인 육화와 함께 카타르파 교리를 움직이는 주요 축이었다. 따라서 이 역시 인성과 신성의 결합을 통해 가톨릭이 추구하려는 교권의 세속 권력화와 교권과 제권의 결합에 방해가 되었다. 또한 뱀과 조물주를 사탄으로, 선악과를 성행위로 묘사한 카타르파식「창세기」해석과 실제 출산을 하지 않은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이 옹호하는 출산과 결혼의 가치를 찾는 데도, 성과 결혼을 규제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브의 영이 남성과는 다른 형태의 육체에 갇히기 전에는 본래 아담과 같은 천상의 존재였다는 카타르파 교리 해석과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나 성사와 설교의 권한을 모두 갖는 여성사제의 존재는, 가톨릭이 그동안 펼쳐왔던 여성 배제 및 여성을 이용한 성 통제 정책과 맞지 않았으며 사회적 변화 속에서 나날이 높아져 가는 여성 신도들의 종교적 열정을 교회 밖으로 이탈시킬 우려가 있었다. 요컨대, 카타르파 교리는 12~13세기 재기독교화를 위해 가톨릭이 취했던 모든 외적 정책과 대립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러한 교리 갈등과 연결된 현실적 문제들은 알비 십자군, 이단 재판과 같은 카타르파 탄압사건이 발생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결국󰡒초자연적인 투쟁에 대한 초기 기독교도들의 비전은 인간의 갈등을 표현하고 그것을 우주적 차원까지 끌어 올린다”라고 초기 기독교 역사를 평가한 종교 사학자 일레인 페이젤의 관점과,󰡒교의(dogma)란 것은 어느 개인이 순수하게 이론화한 신앙 명제가 아니라 하나의 현실 표현”이라는 기독교 사상사가 폴 틸리히의 지적은 로마 교회의 재기독교화 정책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갈등 속에서 가톨릭과 충돌한 카타르파 교리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