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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금 · 원대시 수용 연구 : 19세기 시론과 시선집을 중심으로
This research cited parts of Collection of Yuan dynasty poems written by Gogyughang in Qing dynasty and housed in library of Catholic university of daegu, Collection of Song, Jin and Yuan dynasty poems written by Ohikbong in Qing dynasty and housed in Yong In University, An anthology of Yuan poems written by Simdeok jam in Qing dynasty and housed in Korea university. This has enabled us to associated collection of Jin and Yuan dynasty poems of late Joseon period with collection of Jin and Yuan dynasty poems of Qing period. And this study will be the basis of a research on the literature of Jin and Yuan dynasty poetry in late Joseon period. List of collection of poems including Jin and Yuan dynasty poetry in late Joseon period was presented. This manuscript tries to lay the foundations to reconstruct acceptance process of Jin-Yuan dynasty poetry by presenting the cases of Joseon in the 19th century including Shinhon and Sinwi. The case of Shinhon, who understand and refer to Hak-Si-Ron of Weng Fanggang – Chusa(Kim Jeong-hui) group and that of Dasan(Jeong Yakyong) group simultaneously allow us to understand how Jin and Yuan dynasty poetry was taken into Hak-Si-Ron of Joseon in the 19th century. This case demonstrated that Jin and Yuan dynasty poetry keep immovable position even when Ming period was dropped out from Hak-Si-Ron. And when trying to discuss so-called comprehensive Hak-Si-Ron and poetics in late Joseon period, Jin and Yuan dynasty poetry acted as mediators between Song Dynasty and Ming & Qing dynasty in the aspect of literary history. Classical works including old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and Hak- Si-Ron of Joseon and those of Qing dynasty combined to comprehensive media in the 19th century Joseon period, and the case of Sinwi, like case of Shinhon, which was also influenced by Weng Fanggang-Chusa(Kim Jeong-hui) group’s criticism on Jin and Yuan dynasty poetry showed that Jin and Yuan dynasty poetry was an indispensable adjunct even in this complex media. This manuscript attempts to examine the case of Hong Han-Ju as the restoration of the acceptance process of Jin-Yuan dynasty poetry. It extracts the similarity between Jin and Yuan dynasty poetry and poetics of the late Ming Dynasty and early Qing Dynasty through a discourse on Jin and Yuan dynasty poetry observed in Jisuyeompil written by Hong Han-Ju. This perspective on Jin and Yuan dynasty poetry was manifested in creative writing; poems using rhyming words in Haeongsigo were studied as an example of this manifestation. Additionally, the framework of Chinese literature that served as the basis for poetry writing using rhyming words in Jin and Yuan dynasty was examined empirically. Particularly, several Jin and Yuan dynasty poems using rhyming words written by Hong Han-Ju indicated how this poetry was read and utilized in literary creative writing in the late Joseon period. Lee Deok-mu is a writer who represents the perception toward Jin and Yuan dynasty poetry shared by Yŏnam group. He has written Chongbirok including the discourse on Jin and Yuan dynasty poetry. This discourse is reviewed in this manuscript as a concrete aspect of acceptance of Jin and Yuan dynasty poetry in late Joseon Period. He showed a liking for Yuan Dynasty poetry and commented favorably on its literary achievements in Chongbirok. And Lee Deok-mu had a contextual understanding of the relation between poetics of Qing Period and Jin and Yuan dynasty poetry. Further, He acquired and read literature on Jin and Yuan dynasty poetry published during Qing period. Sometimes interest in Yuan Dynasty poetry had increased in Chongbirok as an extension of attention to the poetry of Goryeo period which is the same age of Yuan Dynasty. It is passed to Shigajumdeung written by Lee Kyu Kyung, the descendant of Lee Deok-mu, Setting up the domain of Jin and Yuan dynasty poetry in a criticism of poems and relating this discussion with the discourse on Jin and Yuan dynasty poetry by the writers of early Qing dynasty including Wang Shi-zhen. Many of writers in late Joseon period commented favorably on not only poetry written by main authors including Yuan Hao-wen, Woo Jip but also little-known Jin and Yuan dynasty poetry in general. The phenomenon that Jin and Yuan dynasty poetry were given a favorable reception is associated with the aspect that one-size-fits-all criteria were weakened which estimated specific period such Tang and Song dynasty highly. Instead, criticism based on more fundamental literary nature or other standard was established. Writers of late Joseon period and Qing dynasty emphasized that literary achievements of Jin and Yuan dynasty poetry, which has long been ignored, was no worse than that of Tang and Song dynasty poetry and Jin and Yuan dynasty poetry was an indispensable adjunct even in the whole literary history. 금 · 원대시 수용은 조선후기 시학의 총체적 재구에 필요하며, 그 성격은 청대 시학의 영향이라는 인자를 고려하면서 파악되어야 한다. 고려시대 문인들이 원대문학을 동시기에 직접적으로 수용한 것과 달리, 조선후기 문인들이 청대 문화라는 중간항을 거쳐 금 · 원대시에 대한 인식을 변화, 확장시켜 간 양상을 본고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2장에서는 조선후기에 편찬되고 조선 내에서 유통된 금 · 원대 시선집들 중 다수가, 청대 관련 문헌의 유입과 독서에 힘입고 있음을 밝혔다. 즉 대구가톨릭대 도서관 소장 『三朝詩集』의 원대시 부분은 청 顧奎光의 『元詩選』에서 일부를 뽑은 것이고, 용인대학교 소장 『宋金元詩集』은 청 吳翌鳳의 『宋金元詩選』에서 시를 뽑았고, 고려대학교 『四代詩選』의 원시 부분은 청 沈德潛의 『五朝詩別裁集』 중 『元詩別裁集』(張景星)을 재편집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조선후기의 많은 금 · 원대 시선집을 청대의 금 · 원대 시선집과 연관시켜 볼 수 있도록 하며, 이는 조선후기의 많은 금 · 원대시 관련 문학 연구에 있어서의 기초적인 문헌적 출발점이자 시학적 · 학시론적 의미 규명의 단초가 될 것이다. 3장에서는 19세기 조선의 주요 작가 사례들을 제시, 분석하면서 향후의 ‘금 · 원대시 수용사’ 재구를 위한 토대를 놓고자 한다. 우선 옹방강-추사 일파와 다산 계열의 학시론을 동시에 참조, 숙지하고 있었던 신헌의 경우를 통해 19세기 조선 학시론에 금 · 원대시가 어떤 식으로 포섭되어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즉 금 · 원대는 학시론에서 명대가 탈락하는 경우에조차 부동의 선택을 받았으며, 소위 조선후기의 종합적 학시론 및 시론을 논하고자 때, 금 · 원대는 송대와 명청대 사이를 이어주는 문학사적 가교로서 빼놓을 수 없는 시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위의 사례 역시 신헌과 마찬가지로 옹방강-추사 일파의 금 · 원대시론의 자장 위에 있으며, 19세기 조・청간 서화고동과 학시론의 결합이라는 복합적 성격의 매체 안에서도 금 · 원대시는 빼놓을 수 없는 한 인자였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홍한주의 저작인 『지수염필』에 산견되는 금 · 원대시 관련 언술을 통해 그의 금 · 원대시관이 갖는 성격, 즉 명말청초 시론과의 유사성을 추출해 본다. 또 그러한 금 · 원대시 인식이 창작의 장에 발현된 사례로서 홍한주 『해옹시고』 내의 금 · 원대시 대상 차운시를 살펴보고, 금 · 원대시 차운의 토대가 되는 중국 문헌의 개략을 실증적으로 조사하였다. 특히 홍한주가 남긴 다량의 금 · 원대시 차운시는 조선후기 시단의 실제 창작의 장에서 금 · 원대시가 읽히고 활용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덕무는 연암그룹이 어느 정도 공유했던 금 · 원대시 인식을 잘 대표하는 작가로서, 『淸脾錄』에 다수의 금 · 원대시 관련 언술을 남겼다. 따라서 조선후기 금 · 원대시 수용의 한 구체적인 양상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 『청비록』 내에서 이덕무는 원대시에 대한 개인적인 애호를 드러내고, 문학적인 성취 면에서도 대체로 호평하였다. 또한 이덕무는 청대 詩學과 금 · 원대시가 연관되는 맥락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청대에 출간된 금 · 원대시 관련 문헌을 입수하고 독서하였다. 『청비록』에서 때로는 고려 시에 대한 관심의 연장에서 고려와 동시기인 원대시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기도 하였다. 詩話 속에 금 · 원대시의 자리를 마련하고, 또 이런 언술들이 왕사정 등 청초 문인들의 금 · 원대시 관련 언술과 긴밀하게 관련맺는 경향은 이덕무의 후손인 이규경의 『詩家點燈』에서도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볼 때 조선후기 문인들 다수는 원호문, 우집과 같은 금 · 원대의 주요 작가들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금 · 원대의 시 전반을 호평했다. 금 · 원대시가 호평되는 현상은, 당 · 송 같은 특정 시대만 고평가하는 식의 일률적 기준이 약화되는 대신, 보다 근본적인 문학의 내질이나 여타 다른 기준으로 작품을 평가하는 방법이 정립되어 가는 양상과 관련된다. 조선후기와 청나라의 문인들은 그간 무시되어 온 금 · 원대시를 옹호하기 위하여, 금 · 원대시의 수준이 당시 · 송시보다 못하지 않고, 금 · 원대시가 전체 문학사의 일부로서 누락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함을 강조하였다.
진욱벽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2024 국내박사
本文研究是源於碑學興起原因的追問,學界的主流觀點認為,碑學的興起是乾嘉時期金石學發展的結果,然而,從金石到書學的影響是跨學科的影響,这种观点过于简略和笼统,因此,有必要通过具体的案例来完善这些影响的前后联系。翁方綱是碑學前期重要的金石實踐人物,留下了豐富的金石研究资料,翁方纲在本研究中成为典型案例。本研究的主要意义在于细化和具体化金石实践在碑学初期对碑学理论发展的影响和促进作用。本文的研究方法是以“作品”為橋樑,以“人物”為紐帶,在不同章節從不同角度試圖揭示作品背後書學活動的細節: 第二章,由於碑學理論的提出是受經學理論的影響,本章審視了翁方綱的學術定位,縱觀翁方綱一生的學術生涯,他並非清代以來被認爲的僅專注於漢學、考據型的學者,而是同時重視漢學和宋學的學者。 翁方綱雖然認爲書法拓片(金石)是考據的對象,也是經史研究的組成部分。但是,法帖書畫屬於藝術,不應該轉向經史。以經史考證來提升法帖書畫研究之名聲是自欺之舉。將金石和經史排除在藝術大門之外,這也是翁方綱尚未打開碑學理論之門的主要原因。 第三章,聚焦於翁方綱與黃易的書學交流。不僅深入探討了兩人之間的交流細節,還以《三公山碑》《武梁祠》爲案例,深入挖掘兩人在金石學和書學交流中的具體情況和研究細節。 第四章,聚焦於《華山碑》《化度寺碑》《天際烏雲帖》三件作品,深入探討了翁方綱在不同時間對不同版本、不同藏家以及不同觀點之間的交流與碰撞。正是在這些細小且具體的書學活動中,呈現了金石學與書學是彼此互嵌交融的关系。 雖然理論上翁方綱不將金石視為藝術,但是在三四章中,翁方綱將金石結合經史考證的書學實踐,為之後碑學理論的提出做好準備。 第五章,討論了翁方綱對朝鮮書學的影響。本章側重於翁方綱與金正喜、申緯的交遊情況,展示了翁方綱對東國藝術觀念的影響。他不僅在書法實踐和理論上對金正喜的書學產生了重要且積極的影響,並且對東國的書壇產生了深遠的影響。 通過對翁方綱書學活動的研究,我們得出以下結論:第一,儘管金石學和書學如今已成爲不同的學科,翁方綱也同樣將其視為不同的類型。雖然如此,但是在實踐上,翁方綱對金石學的經史考證的同時也取法金石,為接下來金石學和書法藝術的融合打下基礎,也是碑學理論的提出埋下伏筆。第二,翁方綱在複製金石時,特別注重和追求“形準”和“墨色”。這種對金石複製(拓片)的審視態度,進而注重版本的優劣判斷,這也是金石學在書學上的具體化、可視化、圖像化的表現。第三,翁方綱在金石學研究過程中,注重對金石的闡釋,力求恢復古代的真實,秉持“疑古”且“尊古”的“疑古求真”理念。這些都是金石學研究中呈現的經學思想,爲後來的碑學理論提出提供了重要的實踐前提和理論基礎。此外,這種影響還延伸至東國。 본고는 비학의 부흥에 대한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연구가 시작됐다. 일반 학계의 주류 관점에서는 비학의 부흥은 건가(乾嘉)시기 금석학의 발달로 인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금석(金石)부터 서학(書學)에 이르기까지의 영향이 학제 간의 영향이라는 견해는 너무나 간략하고 포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러한 영향의 전후 관계를 구체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옹방강(翁方綱)은 비학 전기에 금석을 몸소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로, 수많은 금석연구 자료들 남겼기 때문에 본 연구의 전형적인 사례로 삼았다. 본 연구의 주요 의의는 금석 실천이 비학의 초기단계에서 비학의 이론적 발전에 미치는 영향과 촉진 작용을 세분화하고 구체화하는 데 있다. 본문의 연구방법은 ‘작품’을 매개로, ‘인물’과의 연결고리로 서로 다른 장과 절에서 서로 다른 각도로 작품의 이면에 나타나있는 서학 활동의 세부사항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제2장에서는 옹방강의 학문적 위치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옹방강은 청대 이래로 한학(漢學), 고거(考據)에만 전념한 학자가 아니라 한학(漢學)과 송학(宋學)을 동시에 중시한 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옹방강은 금석 탁본(法帖)을 고증의 대상이자 경사(經史) 연구의 한 부분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법첩서화(法帖書畫)는 예술에 속하기 때문에 경사(經史)로 옮겨서는 안 된다. 경사 고증을 통해 법첩서화 연구의 명성을 높이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다. 금석과 경사를 예술 분야에서 배제한 것도 옹방강이 아직 비학 이론의 문을 열지 못한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제3장에서는 옹방강과 황이(黃易)의 서예교류에 초점을 맞췄다. 두 사람 사이의 세부적인 교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봤을 뿐만 아니라 <삼공산비(三公山碑)>, <무량사(武梁祠)>를 사례로 들어 금석학과 서학에서 두 사람의 구체적 교류정황과 세부적인 연구 내용을 심도있게 발굴해 냈다. 제4장에서는 <화산비(華山碑)>, <화도사비(化度寺碑)>, <천제오운첩(天際烏雲帖)> 세 작품에 초점을 맞추어, 옹방강이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판본, 서로 다른 소장자 및 서로 다른 관점 간의 교류와 충돌을 깊이 탐구했다. 바로 이러한 소소하고 구체적인 서학 활동에서 금석학과 서학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옹방강은 이론적으로 금석을 예술로 보지 않았지만 3장과 4장에서 금석을 경사 고증과 결부시켜 서학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비학 이론의 출현에 훌륭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5장에서는 옹방강이 조선 서학에 미친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이 장은 옹방강과 김정희(金正喜), 신위(申緯)의 교유에 중점을 두고 옹방강이 조선의 예술 관념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했다. 서예의 이론과 실기에서 김정희의 서학에 중요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 서단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옹방강의 서학 활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오늘날 금석학과 서학이 이미 서로 다른 학문으로 나눠졌기 때문에 옹방강도 마찬가지로 다른 유형으로 간주됐다. 그렇지만 옹방강은 금석학과 경사 고증의 실현에서 모두 금석을 본보기로 삼았기 때문에 금석학과 서법예술의 융합을 위한 토대를 마련함과 동시에 비학 이론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옹방강은 금석을 복원할 때 ‘형준(形準)’과 ‘묵색(墨色)’을 특히 중시하고 추구했다. 이러한 금석[拓片] 복원에 대한 조망태도, 나아가 판본의 우열 판단을 중시하는 것은 금석학이 서학 상에서의 구체화, 가시화, 도상화 된 표현이기도 하다. 셋째, 옹방강은 금석학 연구 과정에서 금석의 해석에 심혈을 기울이고 고대의 실제 상황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의고(疑古)’와 ‘존고(尊古)’의 ‘옛것을 의심해 진실을 구하다[疑古求眞]’라는 이념을 고수했다. 이것들은 모두 금석학 연구에 나타난 경학사상으로, 이후의 비학 이론 출현에 주요한 실천적 전제이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또한 그 여파는 동방의 조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본 논문은 동아시아의 소동파 숭배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수소회 모임의 발전 양상과 문학적 배경, 구체적 모임 형태 등을 살펴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진 수소회에 대해 심층 적으로 분석하고자 한 것이다. 壽蘇會는 청나라에서 성행한 蘇東坡의 생일을 기리는 제 사 활동으로, 18세기 말 조선에 전해졌으며 20세기 초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본고는 청 나라, 조선, 일본 동아시아 삼국의 수소회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현전하는 수소회 문헌 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수소회 기원과 변천, 전파 과정, 발전 양상, 그리고 삼국 수소 회의 상호 연관성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수소회에 대한 논의를 통해 소동파 수용의 양 상도 함께 분석하였다. 총 3장으로 구성해 이러한 과제를 체계적으로 논의하였다. 제2장에서는 만명 문인들의 소동파 숭배 현상이 청나라 수소회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밝혔으며, 만명 유민들의 동파 숭배와 청나라 수소회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였 다. 이어서 동아시아 수소회와 관련된 詩의 실제 용어 변화를 고찰해 수소회 명칭의 기 원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았으며, 청나라⸱조선⸱일본 삼국 수소회 간의 내적 연관성을 발 견하였다. 제3장에서는 동아시아 삼국의 수소회 상황을 논의하였다. 청나라 수소회에 대해서는 宋犖이 주최한 수소회를 고찰하여 청나라에서의 수소회 형식을 확정하였다. 더불어 수 소회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畢沅과 翁方綱의 수소회에 대해 이들의 선후 관계, 송락 수소회와의 비교, 수소회 확산에서의 역할 등을 논의하였다. 이어 수소회와 消寒會의 융합이 수소회 문화 확산에 끼친 영향과 청나라 문인 結社 문화가 수소회 전 파의 원동력으로 작용한 양상을 살펴보았다. 조선 배파회에 대해서는 연행 사신인 申緯, 金正喜, 李祖默 등과 옹방강의 교유를 통 해 옹방강의 수소회가 조선에 전해진 과정과 세부 사항을 고찰하고, 연행 사신을 중심 으로 시작된 배파회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어 옹방강과 연행 사신의 교유에서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했으며 배파회에서 중요한 전시품으로 사용된 〈天際烏雲帖〉을 탐구하였 다. 구체적으로는 이 서첩과 조선 지식인의 관계, 그리고 조선 지식인의 소동파와 옹방 강에 대한 이중적 숭앙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어서 배파회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東坡笠屐圖〉를 중심으로 그 역할 및 배파회 시에서 나타나는 형상을 분석하였다. 마지 막으로 배파회의 확산 양상을 고찰하여, 배파회가 초기 연행 사신의 소수 활동에서 계 층을 초월한 대중적 활동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살폈다. 일본 수소회의 경우, 나가오 우잔(長尾雨山)이 상하이에서 청말 문인들과 교유하며 시 사 활동에 참여한 과정을 고증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나가오 우잔이 일본으로 수소회를 도입하게 된 배경을 분석하였다. 이어서 일본에서 나가오 우잔이 주최한 수소회의 구체 적인 개최 과정과 독특한 특징을 분석하였다. 제4장에서는 수소회를 통한 동아시아 삼국의 소동파 수용 양상을 고찰하였다. 먼저 수소회 시에서 드러난 소동파 관련 내용을 분석하여 문인들이 소동파의 이미지를 수용 하고 재구성한 양상을 탐구하였다. 이어서 수소회 시에서 소동파 시에 대한 次韻과 和 韻의 상황을 통계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문인들이 ‘和蘇詩’를 통해 소동파를 기념하 고 숭앙하는 것 외에도, 문화적 소속감과 정신적 공감을 표현했음을 논의하였다. 이상의 논의과정을 통해 수소회 활동이 청나라⸱조선⸱일본 삼국에서 공통으로 이루어졌 으며, 그 배경과 과정은 나라마다 다른 특색을 띠고 진행되었음을 밝혔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양상으로 확장된 소동파 숭배가 일시적 흥미가 아닌 동아시아 지식인의 교류 와 접촉을 推動한 일종의 문화적 현상이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라나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2024 국내박사
이 연구는 크게 두 가지를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첫째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시인인 申緯(1769-1847)가 唐詩를 선집하여 편찬한 『唐詩畫意』의 체제와 특징을 분석하여 그 의의를 밝히는 것이다. 이 시선집은 唐詩 안에 ‘畫意’가 있는 작품을 뽑아 모은 것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창의적인 발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唐詩의 다양한 詩體를 망라하여 선별하였을 뿐만 아니라 체제와 기록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완결성 높은 시선집이다. 둘째는 『당시화의』가 표방하고 있는 ‘화의’에 주목하여 그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다. 신위가 서문에서 ‘시에는 화의가 있다.〔詩有畫意〕’라고 언급한 것을 근거로, 그가 인식하고 있는 ‘화의’가 무엇인지 唐詩와 신위의 시를 통해 그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당시화의』의 다양한 필사본을 대조하여 서지적 특징을 검토하였고, 아울러 이 선집의 편찬 시기를 추정하였다. 이어서 신위가 『당시화의』를 선집한 목적과 의의를 그의 自序를 통해 확인하였다. 이 선집이 시와 그림의 관계에 관한 신위의 사유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결과물이며, 아울러 繪畫 收藏의 유행 속에서 제기된 문제점에 대응한 하나의 새로운 방법임을 확인하였다. 시선집을 회화의 收藏庫로 대체하려는 발상은 오늘날에도 매우 독창적이고 신선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격적인 연구로 들어가, 신위가 작성한 「例言十五則」의 범례를 바탕으로 『당시화의』에 수록된 唐詩의 양상을 분석하고, 이 선집이 바탕하고 있는 주요 底本과 신위가 선집한 다른 당시 선집과의 비교를 통해 그 성격과 의의를 규정하였다. 다음으로 신위의 시 중에 ‘화의’가 드러나는 시를 분석하고, 『당시화의』에서 신위가 대표적으로 언급한 李商隱의 「錦瑟」과 劉商의 「酬問師」를 분석하여, 시안에 내포된 ‘화의’가 무엇인지 탐구하였다. 이로써 『당시화의』가 신위의 예술 취미가 반영된 단편적인 시선집이 아니라, 신위의 詩論의 중요한 개념인 ‘詩畫意’가 섬세하게 구현된 성과물임을 증명하였다. ‘시화의’ 연구를 통해, 시의 미학적 경계가 ‘화의’라는 함의를 통해 회화의 경계와 교차하며 문예 영역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This study has two. The first is to analyze the system and features of the Tangshihwaŭi 唐詩畫意, an anthology of Tang poetry compiled by Sin Wi 申緯(1769-1847), a prominent poet of the late Joseon Dynasty, and to elucidate its significance. This anthology is a unique collection of works characterized by 'Hwaŭi 畫意; pictorial intention,' embodying a rare creative concept in similar compilations. It represents a comprehensive anthology encompassing a wide range of poetic forms of Tang poetry, adhering to strict standards in its organization and documentation. The second objective is to examine the meaning of 'Hwaŭi' within the Tangshihwaŭi, focusing on its representation. Drawing from Sin Wi's assertion in the preface that “poetry has a 'Hwaŭi'” (詩有畫意), this study seeks to uncover the meaning of 'Hwaŭi' as perceived through Tang poetry and Sin Wi's compositions. To achieve this, I first investigated the bibliographical characteristics of the Tangshihwaŭi by comparing various manuscripts and then estimated its period of compilation. The purpose and significance of Sin Wi's compilation were further examined through his prefaces. The anthology serves as a tangible manifestation of Sin Wi's ideas regarding the relationship between poetry and painting, offering a novel approach to the prevalent issues of art collecting. Replacing an anthology of poetry with a repository of renowned paintings presents an innovative and refreshing possibility even in contemporary contexts. This study analyzes the aspects of Tang poems in the Tangshihwaŭi based on the 15 guidelines provided by Sin Wi. The nature and significance of these aspects are defined through comparisons with the primary sources on which the anthology is based and with other anthologies from the same period compiled by Sin Wi. Subsequently, I analyze Sin Wi's poems that incorporate 'Hwaŭi' and explore the meaning of 'Hwaŭi' in other works, including Li Shangyin 李商隱's "Brocade Zither 錦瑟" and Liu Shang 劉商's "Question and Answers with a Monk 酬問師," which are representative examples of 'Hwaŭi' in the Tangshihwaŭi. This analysis demonstrates that the Tangshihwaŭi is not merely an provisional anthology reflecting Sin Wi's artistic interests in poetry and painting but is a detailed realization of a crucial concept in Sin Wi's poetics, namely 'Shihwaŭi 詩畫意; the Pictorial Intention in Poetry.' Through the examination of 'Shihwaŭi,' this study concludes that the aesthetic boundaries of poetry intersect with the boundaries of painting through an implication of 'Hwaŭi; pictorial intention,' thereby enabling the expansion of literary expre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