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학위유형
        • 주제분류
        • 수여기관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지도교수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결혼 제도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복음주의 신학적 고찰

        박선의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6 국내석사

        RANK : 249663

        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3F의 시대가 될 것이라 예측한다. 앞으로의 사회는 여성(Female)과 감성(Feeling)과 상상력(Fiction)이 중요시 되는 시대가 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남성적인 특성보다 여성의 특성들로 앞으로의 시대를 이끌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사회를 ‘핑크칼라 시대’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적인 예측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종속적인 존재로 냉대를 받으며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살아온 여성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이러한 미래학자의 예측처럼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여성들의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세계적으로 여권운동(feminist movement)이 확산되어 일어났으며,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여권운동과 더불어 신학적으로 해방신학의 한 유형으로 여성신학이 뿌리를 내렸다. 여성신학은 성(性)이라는 인간의 본질적인 범주를 다루고 있으며, 이 성에 대한 사고의 전향은 새로운 역사관, 인간관, 문화관, 세계관을 발전시키고 있다. 여권주의 여성신학자들은 종래의 모든 학문 영역이 남성 중심적으로 이루어왔다는 전제 아래, 신학을 여성 중심에서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1980년대 한국여신학자협회가 결성되도록 하였다. 여성신학의 첫 세대 안상님, 손승희, 이우정, 이화여자대학교를 중심으로 장상, 박순경, 정현경 등에 의해 활발히 여성신학 책들이 기술, 번역되어 오고 있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여권주의 여성신학자들은 가부장제가 남성의 사회적 지배와 여성들의 열등성과 예속성을 가르쳤으며, 성서가 2천 여년의 역사 속에서 교회 안에서 여성들에게 남성에게의 복종을 강조하고 성차별주위를 강화하며, 남성중심 주의를 정당화하고 그 지속을 보장하는 신념으로 작용하여 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가부장제가 남성과 여성의 갈등과 문제를 일으키는 궁극적인 근원이며, 이것을 전복시키는 것만이 여성이 해방되어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이라 주장한다. 여성해방주의자, 여권주의자들 및 여성신학자들의 주장과 이론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여성의 참정권, 교육권,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들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여성의 영향력이 더 증대될수록, 또한 남녀평등이 더 잘 이루어지는 사회로 발전해갈수록 여성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의문을 갖게 된다. 여성에 대해 중요시 하며, 새로운 인식이 확산되어지는 이 시대에 교회는 여성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여권주의적 여성신학자들의 주장처럼 가부장제의 전복을 위해 투쟁하여야 하는가? 성경적 여권주의자처럼 여성안수를 주장하여야 하는가? 이들의 관점과 신학은 여성을 중심으로, 그 존재의 존귀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家庭)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단위 안에서 여성은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자녀의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엄마들, 해마다 증가하는 이혼율, 경제적인 어려움, 갈등과 불신 속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 속에서 교회는 여성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제시와 여성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겨진다.

      • 폴 틸리히의 신학 사상

        김은정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249663

        틸리히 신학은 거대한 종합 즉, 실존론적 사고와 역사적 사고, 철학적, 종교학적 사고와 신학적 사고, 자연신학적 요소와 계시신학적 요소, 초월적 요소와 내재적 요소등이 교묘하고 치밀하게 결합되어 있고 조정신학적 특징 때문에 신(Neo)실재론적 형이상학, 실존주의적 신학 또는 역사주의 신학의 어느 한 학풍에 속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김균진, 「20세기 신학 사상?」(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3), 319-320. 엄밀히 말하면 틸리히의 신학의 입장은 변증법적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중간이다. 전자는 신과 세계의 분리를 주장하고 신의 초월성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신과 세계의 종합을 주장하고 신의 내재성을 강조한다. 틸리히는 양자의 충돌을 극복하는 중재와 종합이라는 제 3의 길을 도모하였다. 목창균, 「현대신학논쟁」, 192. 1. 틸리히 신학의 긍정적 평가 먼저 틸리히가 20세기 신학에서 공헌한 점을 기술해 본다면 다음의 몇 가지로 축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 틸리히의 신학은 교회의 좁은 영역에 머물지 않고, 세속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기독교 진리의 의미와 타당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틸리히는 자신의 신학을 가리켜 “대답하는 신학”, “변증신학”이라고 정의한다. 하나님의 진리가 교회와 온 세계에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김균진, 「20세기 신학 사상?」, 320. 2) 틸리히의 신학은 “영원한 진리”를 일방적으로 던지고자 하지 않는다. 그의 신학은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과 표상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독교의 진리를 기술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신적 본성”(=신성)과 “인간적 본성”(=인성)이라는 개념의 틀로 설명하지 않고, “새 존재”의 개념으로 설명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존재를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전통적 개념들을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또한 오늘의 세계에 대해 타당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Ibid., 320-321. 3) 틸리히의 신학은 기독교의 진리를 교회 전통의 범위를 넘어, 일반 종교사적 지평 속에서 파악한다. 그는 기독교가 종교사의 배경 속에서 등장하였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틸리히는 기독교에 충실하고자 하며, 진리의 중심적 나타남이 기독교에 있다고 생각지만, 타 종교들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적 태도와 고립을 극복하고, 타 종교들과 기독교의 연관성을 추구하며 양자의 만남과 대화를 시도한다. Ibid., 321. 4) 현대의 문화가 세속화됨에 따라 기독교 신앙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세속의 문화에서 분리된 하나의 종교로 끝나서는 안되며, 오히려 기독교는 문화와 연결되어야 하고, 문화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틸리히는 그의 신학을 통해 현대의 문화를 신율적 문화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Ibid., 321. 5) 틸리히의 신학은 실존주의 철학은 그의 도구로 삼아 인간의 실존을 분석한다. 기독교 진리의 역사적 비평과 메시야적 지평을 그의 신학에 과감히 도입하여 인간실존의 문제, 역사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분석하고 이 문제에 대해 기독교의 대답을 제시한다. 그는 역사의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 안에서 지닌 부정의 기능, 정치적, 사회변혁적 기능을 용감하게 드러낸다. Ibid., 321-322. 2. 틸리히 신학의 비판적 평가 그러나, 틸리히 신학이 가진 타당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우리는 그의 신학이 가진 문제점 가운데 몇 가지를 아래와 같이 기술할 수 있다. 1) 먼저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기독교 메시지를 주어진 상황에 상관시켜 재해석하려는 시도에 누구보다도 많은 관심과 정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조정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상관관계의 방법’을 도입하였고 대립된 모든 요소들의 종합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이 상관의 방법에 가장 신랄한 비판을 가한 것은 칼 바르트였다. 상관의 방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상관 방법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인간의 상황에 대한 질문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바르트는 상관의 방법을 인간 중심적인 자유주의 신학에로의 복귀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인간에게 의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둘째 계시가 인간의 실존적 질문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다. 상관 방법은 인간의 상황으로부터 나온 질문의 대답을 계시에서 제시한다. 그러나 바르트는 대다수 질문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전자의 비판에 대해 틸리히는 상관의 방법이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을 인간에게 의존하게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은 본질에서는 인간에게 의존될 수 없지만, 자신을 나타내는 계시에서는 불가피하게 인간이 응답하는 방식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후자의 비판에 대해서는 기독교 신앙이 기초하고 있으며 인간의 실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계시 사건에서 인간의 실존적 질문에 대한 대답이 제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목창균, 「현대 신학 논쟁」, 204. 2) 틸리히 사상 중 논쟁이 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성서를 상징으로 보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틸리히는 신과 인간을

      • 열린 예배를 통한 채플의 가능성과 전망 : 목원대학교를 중심으로

        호대선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49663

        기독교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의무적인 채플에 대해 학생들은 불만을 제기한다. 한번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고 또는 종교가 불교나 천주교인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채플을 신청하게 된다. 조사 결과 10명중 7명의 학생이 이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목원 대학교의 채플은 이 7명의 학생을 위한 채플 준비되어지지 않았고, 나머지 3명의 기독학생을 위한 예배만이 준비되어 있다. 이 논문에서는 전통적인 예배를 통해서 비기독학생들이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효과적이고 영향력이 있는 방법으로의 채플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남서울대학교와 전주대학교의 채플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목원 대학교의 프로그램과 학생들의 반응을 조사해 본 결과 채플에 대한 이미지와 만족도가 남서울대학교와 전주대학교의 학생들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 논문에서는 이 이유를 전통적인 예배를 드리는 목원 대학교와 열린 예배를 드리는 남서울대학교, 전주대학교 와의 차이라고 인식하였다. 분명 남서울대학교와 전주대학교의 무교, 불교, 천주교 학생들도 채플에 대한 이미지와 만족도, 예배의 내용을 전부 만족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10%에서 많게는 20%의 차이의 만족도는 "채플이 누구를 대상자로 삼고 있는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기독학생들은 전통적인 예배이든 열린 예배이든 채플에 대해서 대체로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지만, 비 기독학생들은 열린 예배에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 결과는 채플자체가 무조건적으로 학생들이 피하고 싶은 시간이 아니라 어떻게 다가가느냐에 따라서 채플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배 설문조사에서 알게 된 사실은 무교학생들과 천주교 학생들의 응답 수치는 거의 같게 나왔다. 반면에 불교학생들은 목원 대학교, 남서울대학교, 전주대학교에서 공통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특징이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방안으로 기독학생들을 위한 '부흥 채플'과 비 기독학생들을 위한'열린 채플'을 제시하여 대상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시하였다.'부흥 채플'과'열린 채플'은'열린 예배'를 바탕으로 예배디자인을 하였다.'열린 예배'가 구도자를 위한 · 구도자를 배려하는 예배로, 예배의 대상이 대학 채플의 학생들과 여러 부분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열린 예배가 구도자(seeker)를 위한 예배라면 '열린 채플'은 비기독학생들을 위한 예배로 그들의 기호와 눈높이에 맞는 메시지와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말하였다. 이 '열린 채플'을 통해 학생들이 지니고 있는 삶의 고민을 어루어 만져 주고, 해결의 열쇠를 제시해주어야 한다. '부흥 채플'은 기독학생들을 대상으로 디자인된 예배이다. 이러한 학생 신앙 공동체의 형성은 학교를 위한 기도와 열린 채플을 듣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중보기도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채플임을 말하였다.

      • 지혜의 의인화(擬人化)에 대한 연구 : 잠언 1-9장을 중심으로

        이원목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9647

        잠언에 나타난 지혜의 의인화는 잠언 10장 이하의 더 오래된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성숙하며 독특한 표상을 이루면서 깊은 의미성을 포함하고 있다. 초기의 지혜는 국제적인 지혜운동의 일부로서 인간의 삶과 경험을 토대로 이성적인 사유를 통해 세계의 질서를 탐구하거나 성공적인 삶의 방법을 추구한다. 그러나 역사적 현실 속에서 전개된 상황들은 이런 인간 지성의 축적을 여지없이 무산시키려 들었다. 또 율법의 인과응보 사상과 예언자의 구원 사상은 눈앞의 현실 속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왕정시대에 활발해졌던 지혜운동도 포로 후기에 이르러 같은 위기에 직면하였다. 내적으로는 종교적 사회적 기강이 해이해졌고 외적으로는 이방의 새로운 종교가 끊임없이 유혹해 왔다. 이 위기를 지혜의 의인화에서 극복할 수 있다. 이 지혜의 표상 속에 있는 언어와 표현 그리고 사상은 고대 근동의 지혜문학, 창조 신화들에게 자극되어 그 내용들을 각색하여 이용했는데 아주 복합적이면서도 창의적인 표상을 이룩했다. 그것은 궁극에는 저자의 신학적 목적을 달성해 줄 수가 있었다. 한편, 이 지혜 표상은 여호와의 속성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것은 고도로 세련된 하나의 문학기교였다. 만일 신의 속성이 의인화되었다는 이론을 내세우려면 적어도 여호와의 다른 속성, 특히 율법의 지배적 개념인 의로움이나 공의가 의인화될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포로 후기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신학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얻어낸 이 신학적 도구로서의 지혜의 의인화는 본문을 분석함으로 4가지 주요 사상을 표현하고 있음을 보았다. 의인화된 지혜는 '나 지혜는'으로 시작하여 사람들을 부르고 여호와와 대등한 권위로 신도 부어주며, 계시도 하며, 생명도 약속한다. 청중들, 특히 청년들을 이방 제의와 간음의 유혹에서부터 보호하고 지혜부인을 사랑하고 듣고 따름으로서 생명을 약속한다. 또 지혜를 신적인 은사로 알았을 뿐 신적인 원천에 대해 무관심한 청중에게 창조 이전까지 올라가는 고대성을 보여준다. 지혜가 창조와 결합되는 것은 결정적인 영향을 구원을 베푸는 기능에 미친다. 또 창조신학의 구조 안에서 초기 지혜를 정당화 해 준다. 마지막으로 여호와 경외를 지혜는 말하고 있다. 여호와 경외는 지혜의 의인화 본문 안에서 강조되어 국제적인 지혜를 이스라엘화하여 정착시킨다. 그것은 기존 전승과 마찰음이 없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 바로 이것이 지혜의 의인화가 갖는 제 일차적 달성 목표였던 것이다. 이제 위기 극복의 실마리로서의 의미성은 무엇인가? 첫째, 지혜의 의인화에 사용된 신화적 언어는 비유적, 반사적, 신학적으로 사용된 신학 도구로 의인화 본문을 하나의 신화로 이해하지 않게 하며, 또 철학적인 추상개념으로 이해하지 않게 하는 방어적인 도구였다. 둘째, 여호와 경외와 결합되고 창조 이전의 존재였던 지혜는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가 기다리는 구원관과 맞는 생명을 제안하는 제 3의 계시기관으로 등장한다. 셋째, 이 계시기관은 유배를 통해 위기에 처한 다윗 중심의 왕조신학과 신정론을 신학적으로 이해하는 역할을 한다. 넷째, 잠언 1-9장은 초기 지혜의 무력함을 보완하고 새 해석적 활력을 제공하는 서론이요 프리즘 역할을 함으로써 지혜 신학의 골격을 보여준다. 지혜는 포로 후기의 새로운 계시기관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지혜의 의인화는 지혜신학을 주도하는 머리이며 지표 역할을 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우리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논쟁

        윤영덕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9647

        본 논문은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논쟁을 다루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논쟁의 과정과 교회의 결정사항도 살펴보았다. 또한 각자의 삶이 얼마나 그의 신학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살펴보았다. 펠라기우스의 삶은 자료의 부족을 통하여, 많은 경우 어거스틴의 글을 통하여 조명하게 된다. 따라서 펠라기우스의 삶을 우리가 과연 얼마나 올바로 조명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삶을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본다면, 어거스틴의 삶에 대한 어거스틴의 해석도 펠라기우스의 삶에 대한 어거스틴의 해석도 모두 신학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 당시의 상황은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던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실마리를 찾는다면, 그들의 각 삶이 타락한 시대에서 타락했는지 아니면 타락한 시대에 타락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는지를 살피는데서 단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타락한 시대에 태어난 마음껏 타락했던 사람이지만, 반면에 펠라기우스는 타락한 시대에 태어나 타락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다른 하나의 실마리는 각자가 타락한 시대를 인간이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했는지를 통해서이다. 타락한 시대에 타락을 경험했던 어거스틴은 자신의 의지로 그 나락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다만,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한 후에야 그는 그 속에서 벗어나 은총 안에 거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삶이 변한 후 그는 타락한 시대를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없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펠라기우스는 타락에 외형적으로 타락에 빠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 타락을 개혁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바로 자유의지를 가진 한 인간인 그 자신이 타락한 시대를 변화시키려 노력했다. 이처럼 각자의 삶은 각자의 신학이 은총이냐, 자유의지냐에 대한 강조점의 차이를 유도한다. 기독교 세계가 이전 시대에 형성했던 교리나 고백은 교회의 역사 가운데서, 개개 신학자들의 관점들과는 혼동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 펠라기우스 논쟁에 대한 결정사항들 또한 적지 않게 죄론과 은총론의 역사에서 한 단락을 의미한다. 다만 오늘의 우리가 이 논쟁을 재해석할 때에 우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계승 발전시켜야 할 논점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논쟁은 교회 신학의 중요한 기초를 제시해준다. 왜냐하면 구원신학에 있어 은총과 자유의지의 관계를 핵심 되는 문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원신학의 관계를 본 구도에서 보는 순간, 어거스틴이 교회의 은총신학을 정립시켰다는데서 중요하게 여길 수 있으나, 한편, 구원신학의 중심에 자유의지를 끌어들였다는 데에서 펠라기우스를 더 중요하게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의 신학이 은총 즉 하나님 중심의 하강적인 구도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펠라기우스는 구원에 있어 자유의지 즉 인간의 상승적인 구도를 대두시켰기 때문이다. 431년 7월 22일 에베소회의에서 최종적으로 펠라기우스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끝을 맺었지만 펠라기우스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특히 우리 가운데서도 종파적 운동의 강한 영향을 입고 있는 곳에서는 더욱 펠라기우스주의가 만연된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을 자꾸 우리에게 끌어내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펠라기우스주의가 된다. 그렇게 펠라기우스주의는 지금까지도 일부 기독교회 안에 존속하고 있고 그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며, 자유의지의 선행을 주장한다. 이에 더하여 자유주의를 유발시키기도 한다. 디도서 2장 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미 구원을 얻은 성도라 할지라도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다해 거룩하게 살려는 도덕적 노력을 계속하고 선한 일에 열심을 다하는 친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존 웨슬리의 救援論 硏究 : 웨슬리 성화론의 영성신학적 해석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중심으로

        정한식 牧園大學校 神學大學院 2004 국내석사

        RANK : 249647

        필자는 웨슬리의 구원론을 전반적으로 소개하고 재구성하여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했다. 그래서 구원론의 원인이 되는 인간론을 전제하여 웨슬리의 구원의 순서에 따라 구원론을 서술했다. 본 연구 결과 웨슬리 구원론 중 성화론은 현재 감리교신학에서 통설로 여겨지는 웨슬리 성화론의 영성신학적 해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고 웨슬리신학은 부흥신학과의 연계성을 가지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보면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셨던 세대는 얼마간 영광스러운 신앙생활을 영위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그 세대가 경제발전 속 에서 육신의 안락을 찾으며 그 은혜로부터 스스로 멀어질 때는 다시 영적 침체의 늪에 빠졌다. 그러다가 다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요인들로 신자들에게 영적인 갈급함을 주시어 그들이 순종하여 부흥을 간구하면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들과 함께 불신자들도 구원을 받는 역사를 진행하셨다. 마치 인류의 역사는 사사기에서 나타나는 '환란-회개(간구)-구원(부흥)-평화-타락'의 일련의 과정의 연속인 듯하다. 부흥신학은 그러한 성경의 역사관으로 현 세대를 파악하여 하나님이 부흥의 은혜를 주시는 길만이 살 길이란 사실을 인간들로 하여금 알게 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필자가 파악하기로 웨슬리의 성화론은 우리가 영성훈련만 제대로 하면 성화가 이루어지고 꾸준히 하면 완전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영성신학이 아니라, 왜 신자인 우리가 믿음의 열매인 성화에서 멀어졌는지를 진단하여 회개와 믿음으로써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기대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부흥신학이다. 아울러 웨슬리의 신학을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칼빈의 신학과 비교하여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분명 복음주의적 구원론의 공통 뿌리를 발견될 것이라 기대된다. 또한 웨슬리의 구원론을 웨슬리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fleld),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그리고 웨슬리의 영향을 받아 19세기 미국에서 대표적인 부흥사로 활약했던 찰스 피니(Charles Finney) 등의 인물들에게 나타난 부흥신학과 함께 비교연구해본다면, 무능력해 가는 현대 개신교의 부흥에 공헌할만한 신학적 토대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 신명기사가의 왕국 이해

        오수철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3 국내석사

        RANK : 249647

        신명기 역사서 전체를 살펴보면, 우리는 야웨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동하신 일정한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스라엘민의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하나님의 진노와 심판-그들의 부르짖음과 회개-하나님의 구원 및 축복의 도식이다. 이러한 도식에 근거해서 살펴본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멸망을 경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야웨에 대한 지속적인 그들의 불순종과 율법에 대한 불순종에서도 그들을 회복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명기 역사서를 편집한 역사가들 중 DtrN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멸망과 회복의주된 원인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 즉 도식에 근거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과 멸망의 그 원인이 "불순종"이라면 그럼 가장 큰 불순종은 무엇이었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DtrN은 이러한 역사관을 넘어선 또 다른 원인을 찾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왕국 자체에 대한 부정이었던 것이다. 야웨의 왕권에 도전한 범죄가 아니라면 어떻게 야웨에 의해 세워진 왕국이 완전이 멸망할 수 있겠는가? 야웨의 통치를 거절하고 인간왕을 요구한 이스라엘의 태도는 더 이상 야웨의 백성이 아니었다. DtrN은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을 인간 왕이 다스리는 왕국의 출현에 있다고 보고 야웨의 통치 시대로 돌아가는 것만이 이스라엘이 사는 길이라는 점을 피력하기 위하여 신명기 사가의 친 왕권적 전승들을 편집하여 반 왕권적 문서로 기록하였다. 지금까지 이 논문은 바로 이러한 점을 검증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신명기사가의 상반된 두 입장을 살펴보면서 신명기사가의 DtrN은 반 왕권적 경향과 야웨 정치의 회복이라는 두 가지 기둥을 가지고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인한 백성들의 야웨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필자는 본 논문을 기술하면서 왜 신명기사가의 왕국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서로 다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견해가 어떠하든 시대에 따라 이스라엘의 왕국시대와 왕국의 멸망이라는 큰 위기 속에서 야웨 신앙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신학자들의 새로운 역사이해의 결과로 돌리고 싶다. 즉, 왕국이 존재하고 있을 때는 어찌했든 왕국자체를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왕의 부덕한 모습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왕국은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고백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왕국이 존재하고 있는 한 당연한 고백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반역으로 인한 죽음을 모면키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국이 멸망한 때는 상황이 다르다. 야웨 신앙의 붕괴와 민족의 멸망에 직면한 DtrN의 신학은 오직 야웨의 영원한 통치만이 이스라엘의 미래라는 신념하에 친왕권적 전승들을 편집 수정하여반 왕권적 전승으로 재해석했지만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남겨진 신앙의 전승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까지 신앙의 표본이 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어떠한 시련과 환란에 처한다고 해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담대히 설 수 있도록 하는 역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DtrN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왕국에 대한 긍정적인 본문을 수정하는 작업을 통해 왕국 자체를 부정하고 이스라엘 멸망 원인을 찾으려한 것이다. 즉, 하나님이 원치 않는 왕국을 이스라엘의 출발로 보고, 그 결과 이스라엘이 멸망했으며, 이제라도 야웨의 율법을 지킴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서 꺼져가는 야웨 신앙을 회복하고 이스라엘의 미래를 희망의 나라로 열어놓은 것이 아닐까?

      • 목회상담에서의 신학과 심리학의 통합에 대한 연구

        김영천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49647

        목회에서 상담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목회라는 차원에서 볼 때 상담은 심리학적인 방법만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목회의 커다란 한 부분이며, 목회를 완성시키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러기에 목회상담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목회상담이라는 단어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 신학과 심리학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서로가 많은 부분이 대립되고, 거부되고, 비통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본 연구자는 목회상담의 신학과 심리학의 통합에서 목회상담에 신학적 고찰이 시급한 시기이며 모든 상담에 있어 심리학적 상담기법이나 심리치료가 그 한계선을 넘어 심신을 치료하는 믿음의 대상이 되어 하나의 종교성을 가지게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바로 심리학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종교인도 포함)의 일상생활 가운데 심리학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대부분의 상황에서 심리학적인 통찰과 함께 심리학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만든 원인을 찾자면 사회의 문화를 이끈 기독교 문화가 그 중심의 자리를 세속적 문화에게 내주었고, 그로인해 많은 매체(드라마, 광고, 라디오, 서적 등)들 안에 들어있는 심리학적 영향들이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바꾸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신학(종교)은 잃어버린 자리를 찾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상담을 배우게 될 때 신학적, 철학적 근거에 대한 고찰과,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현장에서의 현실성을 고려하여 목회상담에서 신학과 심리학에 대한 명확한 정립이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다. 또한 목회상담에서 신학과 심리학의 통합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목회상담을 배우고, 목회 상담을 하기 원하는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신학과 심리학에 대한 통합은 대립모델, 종속모델, 병행모델 등의 입장을 취하기도 하지만 기독교적 입장에서 가장 올바른 모델은 ‘성경적 통합모델’의 입장이다. 왜냐하면 진리의 일치성과 목회상담학 그리고 심리학의 여러 문제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입장은 바로 ‘성경적 고찰’을 통한 통합모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통합의 모델은 기독교 전통과 윤리적인 것과 기독교 세계관 그리고 기독교의 영성의 부분까지 어우르는 통전적인 입장의 모델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전통 속에서 말하는 영적 성숙, 지적 성숙, 도덕적 성숙의 부분과도 일맥상통하는 입장이 바로 가장 바람직한 통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통합에서 돈 브라우닝의 자유주의 입장과 토마스 오든의 보수주의 입장 중에 한 입장만을 고수하지 말고 진정 자유와 보수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통합이 이루어 져야 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자는 “목회상담에서 신학과 심리학의 통합”이라는 문제는 이론적으로 확실하게 정립해야 함과 더불어 이론에 대한 확실한 것을 기반으로 목회 현장에서 적용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며, 현대의 목회상담에 있어 성경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심리학의 이론들을 통한 상담기법이나 심리치료를 사용함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함을 말하면서 이 논문을 마무리 하겠다.

      •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 연구

        윤석호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6 국내석사

        RANK : 249647

        본회퍼의 저작인 [신도의 공동생활]을 통해서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경건생활에 있어서 가져야할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인 사귐을 말하고자 한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