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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정치소설 <經國美談>과 <雪中梅>의 한·중 번역 수용 연구

      이복순 고려대학교 대학원 2025 국내박사

      RANK : 249775

      근대의 한·중·일 삼국은 열강의 침략과 민족적 위기 속에서 모두 국가의 존망 위기와 사회 제도의 근대적 전환이라는 과제에 직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가장 먼저 근대화 과정을 완수하였고 정치인들은 서구 정치소설의 형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자유와 민권 등 근대 정치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일본 정치소설을 다수 창작하였다. 일본의 근대화 성공에 영향을 받은 한국과 중국의 지식인들은 자국 사회 개혁의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치소설이 지닌 계몽 기능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일본 정치소설을 자국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였으며 이를 번역하고 개작함으로써 서구 정치사상을 전파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며 사회 개혁을 추진하는 중요한 문학적 도구로 전환시켰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본 연구는 일본 정치소설의 한·중 양국 번역·수용 과정을 통해 ≪經國美談≫과 ≪雪中梅≫라는 두 대표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일본 정치소설이 한·중 양국의 정치 계몽과 소설의 근대적 전환 과정에서 수행한 역할을 체계적으로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일본 정치소설이 한·중 사회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수용 양상과 문학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밝혀내고자 하였다. 서론인 제1장을 제외하고 본론과 결론에서 논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제2장은 일본 정치소설의 형성과 한·중 전파라는 두 측면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논의를 전개하였다. 먼저 메이지 시대 서구 문학의 유입과 번역 소설의 유행 배경을 분석함으로써 서구 사상과 일본의 정치 현실이 융합되며 정치소설이 점차 형성되어 간 발전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일본 정치소설이 한국과 중국에 어떻게 전파되었으며 각국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수용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제3장은 한국과 중국에서의 ≪經國美談≫ 번역 수용 양상에 초점을 맞추어 각 번역본의 번역 전략과 사상적 성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첫째, ≪漢城新報≫ 연재 번역본이 일본 식민 권력의 통제에 복무한 번역 전략을 분석하였고 이어서 ‘鄭喬譯本’과 ‘玄公廉譯本’에 대한 심층 분석을 통해 두 中譯本이 보여주는 번역자의 주체적 선택과 정치적 입장을 고찰했다. 둘째, 中譯本이 전통 서사 방식을 유지함으로써 독서의 용이성과 사상적 계몽 기능을 강화한 점을 분석하였다. 아울러 ≪前本經國美談新戱≫가 희곡 형식을 통해 정치 선전과 사상 계몽의 기능을 수행한 방식도 고찰하였다. 제4장에서는 ≪雪中梅≫의 한·중 번역 수용 특성을 고찰하였다. 먼저 한국에서 具然學은 번역 과정에서 이야기의 배경을 ‘독립협회’ 시기로 재설정하여 민족 독립에 대한 요구를 뚜렷하게 부각시켰으며 특히 현실 정치에 대한 은유를 이야기 속에 절묘하게 담아냈다. 그러나 여성 인물의 처리에서는 여전히 남녀 차별의 한계를 드러내었다. 이에 비해 중국 번역자는 언어의 본토화와 전통적 구조의 계승에 더욱 주력함으로써 텍스트의 수용성과 사상의 전파력을 강화하였다. 하지만 전통적 서사 방식에 얽매인 결과 원작이 지닌 근대성과 비판 정신이 일부 약화되는 한계점도 함께 노정하였다. 제5장에서는 일본 정치소설이 한·중 양국에서 번역 수용된 특징과 그 영향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였다. 두 나라는 수용 경로에서는 차이를 보였지만 모두 ‘독립’, ‘계몽’, ‘민권 선전’이라는 세 가지 핵심 목표를 중심으로 번역과 개작을 실천하였다. 일본 정치소설은 사상적 측면에서 서구의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 측면에서도 소설 서사의 근대적 전환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제6장에서는 본 연구의 주요 결론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첫째, 한·중 양국의 일본 정치소설 수용은 단순한 수동적 도입이 아니라 각국의 사회 전환 배경과 맞물린 능동적 선택과 창의적 개작의 결과였다. 둘째, 일본 정치소설은 서구의 신사상을 한국과 중국 사회에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셋째, 일본 정치소설은 한·중 양국 소설의 소재 확장, 서사 혁신, 소설 기능 전환 등 문학적 측면에서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넷째, 일본 정치소설의 문화 간 전파와 본토화 개작 과정은 한·중 문학이 전통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데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였다. 다섯째, 일본 정치소설은 중국 정치소설의 탄생을 촉진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신소설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사상적 자원과 서사적 전범을 제공함으로써 근대 문학 전환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일본 정치소설의 한·중 양국에서의 번역과 전파는 문학 교류에 그치지 않고 당시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중 양국 선지자들에게 국민 계몽 지향의 정치·문화적 실천에 중요한 사상적 받침대였다고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일본 정치소설이 한·중 양국이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상호 간 문화적 영향력과 사상적 자극을 주고받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Amid the aggression of imperialist powers and the pressure of national crises, the three East Asian countries-Korea, China, and Japan-faced the dual challenges of national survival and the modern transformation of their social systems. In this context, Japan, through the Meiji Restoration, was the first to complete its modernization process. Japanese politicians actively adopted the format of Western political novels, producing numerous works aimed at disseminating modern political ideologies such as liberty and civil rights. Inspired by Japan’s successful modernization, Korean and Chinese intellectuals began exploring paths to reform their own societies. They took particular note of the enlightening function of Japanese political novels, actively introducing them into their countries. Through translation and adaptation, these novels became important literary tools for spreading Western political thought, fostering national consciousness, and advancing social reform. This study focuses on the translation and reception of Japanese political novels in Korea and China, centering on two representative works-Keikoku Bidan (經國美談) and Setsuchūbai (雪中梅). It systematically investigates the role these novels played in political enlightenment and the modern transformation of fiction in both countries. The research aims to reveal, in detail, the modes of reception and the literary value of these Japanese political novels as they spread throughout Korean and Chinese societies. Excluding the introduction in Chapter 1, the content discussed in the main body and conclusion is roughly as follows. Chapter 2 develops a structured discussion along two main lines: the formation of Japanese political novels and their transmission to Korea and China. First, it analyzes the influx of Western literature during the Meiji period and the popularity of translated novels, outlining the development process by which political novels emerged from the fusion of Western ideas with Japan’s political realities. It then offers a detailed overview of how Japanese political novels were transmitted to Korea and China and the various ways in which they were received in each country. Chapter 3 focuses on the translation and reception of Keikoku Bidan in Korea and China, analyzing the translation strategies and ideological tendencies of various versions. Section 1 examines how the serialized translation in Hanseong Sinbo functioned as a translation strategy aligned with Japanese colonial control. It further conducts an in-depth analysis of the “Jeong Gyo version” and “Hyeon Gongnyeom version,” revealing how each translator’s subjective choices reflected their political stance. Section 2 discusses how the translated versions retained traditional narrative styles to enhance readability and ideological enlightenment, and it also explores how the adapted play Jeonbon Keikoku Bidan Sinhui fulfilled the roles of political propaganda and ideological education through its dramatic format. Chapter 4 examines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Setsuchūbai’s translation and reception in Korea and China. In Korea, Gu Yeonhak’s adaptation reset the story’s background to the period of the Independence Club, thus strongly emphasizing the call for national independence and skillfully embedding metaphors of real political circumstances within the narrative. However, in its depiction of female characters, it revealed limitations in gender consciousness. By contrast, Chinese translators focused on localization of language and adherence to traditional narrative structures, thereby enhancing textual receptivity and ideological dissemination. Nevertheless, this emphasis on tradition also revealed limitations, such as the weakening of the original work’s modernity and critical spirit. Chapter 5 provides a comprehensive summary of the characteristics and impacts of the translation and reception of Japanese political novels in Korea and China. Although the two countries differed in terms of transmission routes, both pursued translation and adaptation with three core objectives: “independence,” “enlightenment,” and “promotion of civil rights.” Japanese political novels contributed not only to the introduction of new Western concepts on the ideological level but also to the modernization of narrative forms and functions in literature. Chapter 6 presents the main conclusions of this study as follows. First, the reception of Japanese political novels in Korea and China was not merely passive imitation but an active and creative response shaped by each country’s social transition. Second, these novels significantly contributed to the effective dissemination of new Western ideas and ideologies in both societies. Third, they deeply influenced the expansion of novelistic themes, innovation in narrative techniques, and the transformation of fictional functions. Fourth, the intercultural transmission and localized adaptation of Japanese political novels served as an important medium in the shift from traditional to modern literature in Korea and China. Fifth, Japanese political novels not only stimulated the birth of Chinese political fiction but also provided ideological resources and narrative models for the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Korean “new novels,” becoming a major driving force in literary modernization. In short, the translation and dissemination of Japanese political novels in Korea and China was not limited to mere literary exchange. Rather, it was a form of politically and culturally motivated practice aimed at enlightenment in the face of a national crisis, demonstrating significant intercultural influence and ideological impact. 近代的韓·中·日三國都面臨著列强的侵略及由此而來的民族危機,國家的生死存亡使得社會制度的近代化轉型成爲各國必須解決的重大課題。在這樣的歷史背景 下,日本通過明治維新最早實現了近代化轉型,政治家們積極借鑑西方政治小說的形式,創作出大量政治小說,傳播自由、民權等近代政治理念,以促進社會制度的現代化。 受到日本近代化成功的影響,韓國和中國的知識分子在探索本國社會改革方法的過程中,開始關注日本政治小說的啟蒙功能。因此,他們積極引入日本政治小 說,並通過翻譯和改編的方式,傳播西方政治思想,激發民族意識,並將其轉變為推進社會改革的重要文學工具。 本硏究在此背景下,系統地考察了日本政治小說在韓·中兩國的飜譯與接受過 程,重點分析了≪經國美談≫和≪雪中梅≫這兩部代表性作品,探討日本政治小說在兩國政治啓蒙和小說的現代轉型過程中所發揮的作用。旨在通過這一硏究,具體揭示日本政治小說在韓·中兩國傳播過程中展現出的接受特徵與文學價值。 本論文以六章構成,除去作爲序論的第一章,正文與結論部分所討論的內容具體如下。 第2章圍繞日本政治小說之形成與韓中傳播兩個方面展開系統討論。首先,通過分析明治時代西方文學的傳入及飜譯小說的流行背景,探討西方思想與日本政治現實的融合過程,暨政治小說逐漸形成的發展歷程。接著,分析日本政治小說如何傳入韓國與中國,並具體討論韓·中兩國如何接受這一文學形式。 第3章集中討論≪經國美談≫在韓國與中國的飜譯接受特徵,系統地分析諸譯本的飜譯策略與思想傾向。第一節分析≪漢城新報≫連載的飜譯本如何服務於日本殖民政權的控制,並通過深入分析‘鄭喬譯本’與‘玄公廉譯本’,揭示兩部譯本所展現的譯者主體選擇和政治立場。第二節則分析中文譯本如何以傳統敘事方式來增強閱讀的便利性和思想啟蒙功能。同時,考察≪前本經國美談新戱≫如何通過戱劇形式進行政治宣傳與思想啟蒙。 第4章則考察了《雪中梅》在韓·中兩國的飜譯接受特徵。首先,韓國的具然學在飜譯過程中將故事背景設定爲‘獨立協會’時期,突出民族獨立的要求,特別值得注意的是譯本巧妙地將現實政治的隱喩融入故事之中。相比之下,中國的飜譯者則更側重於語言本土化和對承繼傳統敘事模式的繼承,從而增強文本的接受性和思想傳播 力。也因傳統敘事模式的束縛,致使原作所具有的現代性和批判精神部分弱化。 第5章綜合整理了日本政治小說在韓·中兩國的飜譯接受特徵及其影響。兩國都圍繞着‘獨立’、‘啓蒙’和‘民權宣傳’這三大核心目標展開了飜譯和改編實踐。硏究發現日本政治小說不僅在引入西方新槪念方面做出了貢獻,也在促進小說敍事的現代化轉型層面發揮了重要作用。 第6章對本硏究加以總結。首先,韓·中兩國對日本政治小說的接受並非單純的被動引入,而是在各國社會轉型背景下的主動選擇和創造性改編。其次,日本政治小說及韓中受容在有效傳播西方新槪念和新思想方面作出了巨大貢獻。第三,日本政治小說的飜譯受容在韓中兩國的小說素材擴展、叙事創新、小說功能轉變等文學層面產生了深遠影響。第四,日本政治小說的跨文化傳播與本土改編過程,在韓中文學從傳統向現代過渡中起到了重要的媒介作用。第五,日本政治小說的傳播不僅促進了中國政治小說的誕生,而且爲韓國新小說的形成和發展提供了思想資源和叙事範式,成爲現代文學轉型的重要動力。 綜上所述,日本政治小說在韓·中兩國的飜譯與傳播,不僅僅是文學交流,而且是當時兩國知識人們在克服時代危機的過程中,爲實現民族啓蒙所進行的政治和文化實踐的思想支撐。通過這一過程,可以發現日本政治小說在韓中兩國推進現代化的過程中,展現出了强大的跨文化影響力和思想激勵作用。

    • 중국 항전기 낭만주의 문학 경향 연구

      강에스더 高麗大學校 2017 국내박사

      RANK : 249775

      <中文摘要> 在理解中國浪漫主義的時候, 最基本的前提就是要理解浪漫主義文學的特點並不是單一的. 事實上, 因爲浪漫主義本身就是以對理想不斷的憧憬爲基礎的, 所以在近代西方浪漫主義中也存在相同的問題. 此外, 西方的浪漫主義運動結束以後, 許多國家與民族均接納了浪漫主義文學思潮, 並基於各自的社會文化需求進行重組, 因此浪漫主義變得更爲複雜. 所以中國的浪漫主義也絕不是一個確定性的概念, 而是存在幾種具體的形態. 最重要的是, 擺脫傳統社會迎接近代史的五四時期知識分子的啟蒙主義態度對於浪漫主義的轉型與分化起到了非常直接的影響. 五四時期知識分子以追求西方近代性的立場爲基礎, 顯示出強調個人主觀感情與人文理想的浪漫主義傾向. 雖然, 這種傾向隨著19世紀30年代提出的社會理想的蘇聯式革命理論而顯得有所退步, 不過在作家的意識中, 浪漫主義傾向仍然以個人與集團的融合爲前提持續著. 此外, 19世紀30年代開始出現了美學浪漫主義, 這種浪漫主義不受蘇聯的影響, 同時獨立於以前的五四啟蒙主義、反駁近代性, 集中於中國本土性. 在城市化已有所發展的上海等地, 還發現了蘊含現代主義的浪漫主義潮流. 基於浪漫主義傾向以多種形態登場, 本論文認爲, 爲說明抗戰期間浪漫主義分化的情況, 應該持有開放型浪漫主義視角. 即, 需要記住, 中國的浪漫主義作爲反映西方歷史性的文學思潮, 雖然以西方浪漫主義概念爲基礎, 但同時作爲反映蘇聯政治意圖的創作方法, 也混入蘇聯式的浪漫主義概念. 不僅如此, 開放型浪漫主義還包含貫通文學歷史的人類創作精神的浪漫精神概念. 這不僅可以視爲開放型浪漫主義具備反映中國本土性的可能性, 而且還可以視其爲中國浪漫主義轉型的轉折點. 以上述背景爲基礎, 抗戰時期的浪漫主義在分散與非主流的位置上, 以分散的形態發展. 在中國現代文學史中, 現實主義始終占據主流, 隨著抗戰時期民族危機意識被喚起, 被認爲最能爲戰爭現實做貢獻的現實主義更加全面地顯露了出來. 在這種情況下, 抗戰時期的浪漫主義或者在現實主義內部以轉型的形態持續, 或與民族主義情緒緊密結合並發展, 或在意識到巨變的文化與經濟局勢的情況下尋求發展. 具體來看, 抗戰時期浪漫主義大體可以分爲三大發展趨勢. 首先是在抗戰現實主義作家的創作意識中, 出現了以辯證法方式接受的浪漫主義傾向. 五四啟蒙運動開展不久, 就接納了強調革命理想的蘇聯文藝理論, 在唯物辯證創作方法中, 浪漫主義被認爲是與個人主義和觀念論相同的概念而被排斥. 但後來, 在社會主義現實主義中, 爲填補經濟學上的主觀主義的理想與現實的差距, 提倡革命的浪漫主義作爲美學對應物. 對此, 中國對於在社會主義現實主義中提倡的浪漫主義, 單純地認爲是強調理念性與理想性的左翼文壇的專屬. 在這種情況下, 已經在五四時期奠定了自己創作觀念與方法的知識分子, 顯示出在抗戰現實主義的框架下混淆了革命的浪漫主義與以前的浪漫主義的一面, 或者通過對革命的浪漫主義理念性的反駁, 顯示有意接近五四啟蒙主義浪漫性的傾向. 其結果是, 抗戰時期文壇顯示了五四啟蒙主義式浪漫主義的特點複蘇的現象, 尤其是重申了關於個人主體性的問題. 這種浪漫主義傾向, 在抗戰時期文壇掀起了主觀爭論等論戰, 其結果是偏重於理念性的抗戰現實主義作家的意識在審美方面得到了完善並進一步深化. 抗戰時期浪漫主義的第二個發展趨勢是在抗戰時期右翼文藝界戰國策派知識分子提出的民族文學論中發現的浪漫主義傾向. 戰國策派主張的文化形態史觀是反對因歷史理性主義而導致人類文化被判斷爲一元化價値的現象, 認可文化的多樣性, 旨在高度評價民族文化, 最終反映出希望中國民族從帝國主義侵略中解放, 走向理想世界的願望. 這符合始終反對推進近代性的理性主義, 堅持要回歸到理想世界的19世紀30年代美學浪漫主義的特點. 此外, 戰國策派爲克服抗戰的不安感, 提出了民族理想, 采用了浪漫反諷的觀點, 接納了尼采的自由意志論與英雄崇拜思想, 提出了強調五四啟蒙主義式浪漫主義中所持有的個人主體性的思想. 此外, 將這種個人概念與民族主義和集團主義相結合, 將浪漫主義自我意識無限擴張. 這種戰國策派的浪漫主義傾向於具備對帝國主義侵略的抵抗性含義. 同時, 從構建近現代東亞秩序提供新的視角方面來看意義重大. 此外, 戰國策派的浪漫主義傾向在抗戰這一框架下, 在以現實主義爲中心展開的抗戰時期的文壇, 提出以浪漫主義爲代表的多種文學傾向的可能性. 最後, 抗戰時期浪漫主義的第三個發展趨勢是 : 在繼承美學浪漫主義及城市現代主義新浪漫主義趨勢的自由主義立場上體現的浪漫主義趨勢. 徐訏和無名氏以浪漫主義的憧憬的基調爲基礎, 探索自然的人性, 在具備回歸自然的傾向同時, 蘊含著哲理性與幻想性, 兼備符合浪漫主義回歸中世紀傾向的特點. 他們即接受了現實主義與現代主義等多種文學思潮的影響, 在中國浪漫主義發展過程中, 其作品仍然具備最接近西方浪漫主義的典型性. 他們雖然具有商業主義或自由主義傾向, 不可否認作品逃避現實的一面, 但他們的作品主要是對因戰爭武器的發達而導致的機械文明與戰爭賦予合理性的理性主義的反駁, 體現了浪漫主義的特點, 所以可以說在抗戰時期的文壇中具有一定的意義. 綜上所述, 在開放型浪漫主義的前提下, 抗戰時期浪漫主義在分割的文化區與話語空間中, 與多種文學傾向相結合, 比任何時期的內容都要豐富. 不過, 再次要重新考慮的一個問題就是中國浪漫主義總體性的問題. 其間, 對中國浪漫主義的研究主要停留於根據文化思想、文學流派、文學運動、創作精神、創作方法等概念分類浪漫主義文學現象等方面, 幾乎沒有討論有關浪漫主義的整體傾向. 但是, 文學思潮與只說明相關現象相比, 應該從根本上考慮作家與創作活動. 即, 應該考慮作家所屬的社會文化與美學觀點以及對讀者造成的影響, 才能確保其具有的整體性的觀點. 基於上述觀點, 中國浪漫主義終究是以中國傳統的浪漫精神爲基礎, 形成的一種外向型憧憬基調, 從始終沒有擺脫中國民族與現實這一框架的觀點上看, 可以確認其總體特點. 處於分散狀態的抗戰時期浪漫主義也以現實的關注爲中心, 從這一點上來看, 可以說是適用了較爲一貫的標准. 抗戰時期的現實在中日戰爭爆發以後急劇展開. 戰爭初起, 民族主義意識被鼓舞到最高潮, 以此爲基礎, 1938年3月27日, 中華全國文藝界抗敵協會在武漢成立, 它涵納了包括無產階級文藝運動、國民黨民主主義文藝運動、自由主義文藝運動的各個層面的作家, 建立了文學“抗日統一戰線”, 文壇整體上表現出樂觀及激昂的情緒. 但是, 1938年10月武漢陷落以後, 隨著首都遷至重慶, 抗日戰爭進入對峙階段, 1941年皖南事件爆發, 文學的統一運動遭遇瓶頸. 於是, 抗戰時期文學在國統區、共統區、淪陷區等不同的社會制度與政治背景下, 受到越來越強烈的制裁. 因此, 抗戰時期文壇脫離了戰爭初期樂觀與激昂的文學傾向, 開始面對現實, 陷入了整體停滯的狀態. 此外, 開始擺脫單純的抗戰意識, 對民族歷史與未來進行多方面多角度進行思考. 抗戰時期浪漫主義的多種傾向共同反映了抗戰時期文壇的需要而登場. 在抗戰現實主義論中辯證應用的浪漫主義傾向, 針對抗戰初期的理想, 偏重於單純樂觀情緒的左翼現實主義作家意識提出了更深層及平衡的視角, 出現了符合長期戰爭現實要求的層面. 在國統區右翼文藝界戰國策派的民族文學論中應用的浪漫主義傾向最終也強調了民族的力量, 蘊含希望擺脫被侵略民族現實的意圖. 此外, 被歸爲後期浪漫派的徐訏和無名氏的自由主義式浪漫主義傾向, 以在戰爭環境中, 以大衆性的男女之間愛情故事描寫了出來, 確實給人逃避現實的印象. 但如果把中日戰爭放入第二次世界大戰這一全世界範圍內的戰爭背景下, 以全人類的視角來觀察的話, 他們的作品提供了對永恒與最本質的人性與愛情的考察機會, 爲那些因爲戰爭而受到傷害的人提供了新的希望. 此外, 提供了對理想的現實世界本質進行深思熟慮的機會, 對於民族與人類的未來表現出深層的關切. 因此, 他們也仍然是在對現實的關心之上, 體現出浪漫主義的特點. 如果說現實主義的基本精神是克服現實的矛盾, 在現實中創造新的世界, 那麼中國的抗戰時期浪漫主義則與之相反, 是根據直觀, 將被規定爲絕對價値的理想世界與現實世界結合起來, 反映要克服現實矛盾的渴望. 從現實的所有束縛中完全解放出來, 享受真正的自由與和平, 這種對理想化世界的渴望, 通過抗戰時期浪漫主義傾向被表現出來. 不可否認的是浪漫主義憧憬的基調在中國的抗戰時期現實中, 被應用於民族解放和建立近代國民國家體制的世俗渴望之中. 但這只是限定於抗戰時期這一特定時期體現的浪漫主義, 在以後中國文學史上浪漫憧憬的對象具有不確定性. 目前, 在中國文壇上, 有關浪漫主義的新理論呈現多元化地發展, 相關研究的空間是很廣泛的. 從這個角度來看, 抗戰時期浪漫主義研究不只是停留於對過去文學史的回顧、整理與反省中, 它的文學史意義可以視爲推動包括現在在內, 未來中國浪漫主義文學發展方向的奠基石. 更進一步, 即使在危機的現實中也不會被時代氛圍所吞沒, 而是面向更爲美好的世界這一真誠態度的層面來看, 超越國家與民族, 對於生活在今天的我們來說, 也是有意義的.

    • 唐詩에 표현된 격리의식 연구 : ‘隔’자를 쓴 唐詩를 중심으로

      김동진 고려대학교 대학원 2025 국내박사

      RANK : 249727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현대인에게 ‘격리’는 익숙한 용어다. 이 사태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격리를 직접 경험했다.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위험 요소 중 하나가 격리인데, 격리를 체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불안, 우울, 스트레스 관련 장애가 발생할 확률이 현저히 높다. 고대의 중국 문인들도 다양한 이유로 인해 출세의 땅 장안이나 마음의 안식처인 고향으로부터 격리되었고, 조정관료 집단이나 요직으로부터 차단되었다. 그래서 그들 역시 코로나-19로 격리된 사람들이 체감했던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고, 이를 자신들의 시에서 다양하게 표현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격리되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고, ‘격리’를 의미하는 ‘隔’자를 사용함으로써 그 사실을 명시했다. 통계에 따르면, 당시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상위 10개의 두 글자 조합의 시어와 ‘隔’자를 사용한 당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두 글자 조합의 시어는 두 개를 제외하고 전부 일치한다. 이는 ‘隔’자에 담긴 격리의식이 당시의 특징을 정의하는 감정적 부분을 확립하는 데 공헌했고, 당시의 핵심적인 감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당시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隔’자를 사용해 ‘격리’를 언급한 시를 자세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隔’자가 격리에 대한 시인의 의식, 즉 ‘격리의식’을 나타낸다고 보았는데, 격리의식은 기존에 연구되지 않은 새로운 개념이다. 본고에서는 이를 ‘자신이 가까이하고자 하는 대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있고, 그 격리 상태가 지속될 것을 인지함으로써 발생한 심리의식’이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 입각하여, 본고는 격리의식을 표현한 당시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당대 시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떠한 이유 때문에 격리를 의식했고, 격리의식과 시의 중심 사상의 관계는 무엇이며, 격리의식이 무슨 감정을 초래했는지, 또 시인의 정서를 어떻게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는지 살펴보았다. 아울러, 시를 통한 감정의 표출이나 격리에 대한 저항으로 취한 행위가 저자의 심리적 상처 치유에 효과적이었는지도 논의했다. 이 작업을 수행하는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Ⅱ장에서는 당대 이전의 문헌에서 드러난 격리의식을 개략적으로 고찰했고, 당대의 격리의식을 초래한 사회적 배경을 종교, 과거제도, 좌천제도, 관찰사 및 절도사의 막부, 당쟁, 전쟁 등의 각도에서 정리했다. 또한, 앤트콩크와 파이썬 같은 디지털 인문학 도구와 통계적 방법을 통해‘隔’자의 사용 양상과 격리의식을 드러낸 시의 특징을 도출했고, 격리의식을 표현한 시가 창작된 지역은 어디인지 총체적으로 살펴보았다. Ⅲ장에서는 격리의식이 형성된 배경을 세 가지로 나누어 각 배경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분석했고, 격리의식이 일으킨 감정과 중심 사상의 관계를 탐구했다. 첫 번째 배경은 지역적 격리인 객지에서의 생활이다. 객거를 하게 된 이유는 만유(漫遊), 응시, 폄적(貶謫), 관직, 입막(入幕), 이주 등이 있었다. 객지로 이동한 시인은 자신이 동경하는 존재 및 공간과 단절되었고, 이에 격리의식을 느꼈다. 두 번째 배경은 사회적 격리인 지인과의 교류 단절이다. 교류가 단절된 이유로는 외부 요인으로 인한 지인과의 이별, 사회적 가치관, 전란 등이 있었다. 이 요소들로 인해 친근한 존재와의 접촉이 어려워진 시인들은 격리의식이 발현되었다. 마지막 배경은 죽음에 의한 격리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인물이 죽음으로써 그가 있는 저승과 시인이 있는 이승은 완전히 단절되었고, 이로써 시인의 뇌리에 격리의식이 생겨났다. Ⅳ장에서는 격리의식에 시달리던 시인들이 그 의식을 완화시키기 위해 시에서 어떤 저항 수단을 취했고, 시를 통한 치유가 효과적이었는지 시에 담긴 감정에 의거해 고찰했다. 우선 객지에 발이 묶인 시인들은 서신을 통해 비슷한 처지의 지인들과 교류했다. 이어서 그들은 자신이 지향하는 공간과 존재로부터 횡적으로 멀리 떨어졌기에 격리의식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이에 종적으로 이동하는 등림을 시도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동경하는 장소로 이동할 수 없어서 허황한 꿈속에서 영혼만 이동함으로써 잠시 그리움을 달래려 했다. 더불어 외력에 굴복해 격리된 공간으로 추방된 것이 아니라, 비속한 무리와 어울리기 싫어 단절된 공간에 스스로를 격리시킨 것뿐이라고 자신을 위로하거나 격리 생활을 의식적으로 즐기려고 노력했다. Ⅴ장에서는 격리의식을 표현한 시가 독자들에게 심미적 쾌감을 제공할 수 있도록 문학적으로 포장해 드러낸 방식, 즉 격리의식의 표현 기교를 논의했다. 시인들은 격리된 자신의 속성에 부합하고, 자신의 감정을 완곡하게 드러낼 수 있는 낯선 이미지를 대변인으로서 사용했다. 또한, 그들의 벼슬길에 놓인 다양한 난관과 장애물을 무수한 산으로 가시화시켜 생동감 있게 독자들에게 제시했다. 그리고 세상을 자신을 적대하는 공간으로 묘사해 잔혹한 현실 속에서의 무력감과 비애를 비극적으로 그려냈다. 나아가 시인들은 시야를 확장해도 도달할 수 없는 긍정적 장소까지의 거리를 강조했고, 그로 인한 그리움과 애타는 심정을 증폭시켜 표현했다. 동시에 그들은 거리가 격리의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신체 간의 물리적 거리와 마음의 거리를 대비시켰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부각시켜 표출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자신이 있는 공간을 하늘의 끝으로 지정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거듭났고, 이로써 자신의 외로움과 불운에 대한 비분을 강화시켜 드러냈다. 이와 같은 연구 작업을 통해 본고는 당시의 핵심 주제 및 감정과 맞닿아 있는 ‘격리의식’의 시각에서 당시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시도했다. For modern people who have experienced the COVID-19 pandemic, “isolation” is a familiar term. Many people have experienced isolation personally due to this event. Isolation is one of the biggest risk factors for mental health problems, and people who have experienced isolation are much more likely to develop anxiety, depression, and stress-related disorders than those who have not. Ancient Chinese literati were also isolated from Chang’an, the land of success, or their hometown, the place of spiritual comfort, and were blocked from government officials and important positions for various reasons. Therefore, they also felt the negative emotions that those who were isolated during the COVID-19 pandemic felt, and they entrusted those feelings to their poems. As a matter of fact, they were aware that they were isolated, and they made this clear by using the character “隔”, which means “isolation”. According to statistics, the top ten most frequently used two-character poetic words in Tang poetry and the most frequently appearing two-character poetic words in Tang poems that use the character “隔” are all the same, except for two. This means that the character “隔” and the sense of isolation contained in it contributed to establishing the emotional part that defined the characteristics of Tang poetry, and were suitable for expressing the core emotions of Tang poetry. Therefore, in order to understand Tang poetry more deeply and objectively, it is necessary to examine poems that use the character “隔” or are related to “isolation” in detail. In this thesis, the character “隔” is considered to represent the poet’s “sense of isolation”. However, sense of isolation is a concept that has not been studied previously. Therefore, it was temporarily defined as “a psychological awareness that arises from the recognition that one is isolated from the existence he/she wants to be close to, but that this state of isolation will continue.” Based on this definition, this paper systematically analyzes Tang poems expressing sense of isolation by examining when, where, and why the poets felt that they were isolated, the relationship between sense of isolation and the main idea of ​​the poem, the emotions that sense of isolation brought about, and the methods poets used to literarily sublimate those feelings. In addition, it discussed whether the expression of emotions through poetry and the actions taken to resist sense of isolation were effective in healing the author’s emotional injuries. This thesis, which carries out this work, is structured as follows: In Chapter Ⅱ, it briefly studies the sense of isolation revealed in the Pre-Tang texts. Then the social background giving rise to sense of isolation is examined from the perspectives of religion,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system, the demotion system, entering the Mufu of a governor, the factional strife, and disasters like wars. In addition, the usage patterns of the character “隔” and the characteristics of poems expressing sense of isolation are derived through digital tools and statistics, and the regions where poems expressing sense of isolation were written are comprehensively examined. In Chapter Ⅲ, the reasons for the formation of sense of isolation are divided into three categories, and the poems corresponding to each reason are analyzed. Also, the emotions caused by sense of isolation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ose emotions and the main idea of the poem are explored. The first reason is regional isolation, living in a foreign land. The poet lived in a foreign land due to wandering, taking an exam, demotion, official assignment to remote area, entry into the Mufu, and moving. The poet who moved to a foreign land was cut off from the beings and places he likes, so he felt a sense of isolation. The second background is social isolation, the cutoff of communication with acquaintances. The cutoff happened because poets were separated from acquaintances due to external factors, social values, and disasters. Because of these factors, poets who had difficulty contacting familiar beings developed a sense of isolation. The last background is isolation by death. When the being who was close to the poet died, the other world where the dead stayed and this world where the poet was were completely cut off, and this created a sense of isolation. In Chapter Ⅳ, it examines what means of resistance poets who suffers from sense of isolation use in their poems to alleviate it and whether healing through writing poems is effective, judging from the emotions reflected in their poems. First, poets who were stranded in foreign lands communicated with acquaintances in similar situations through letters that include poems. Second, they thought that they developed a sense of isolation because they were horizontally far from the space and existence they longed for. Therefore, they attempted to climb up high places vertically. Third, since they could not move to the place they longed for in reality, they tried to temporarily soothe their sense of isolation by sending only their souls to the places they liked in vain dreams. Fourth, they drew comfort by telling themselves that they were not banished to an isolated space because they submitted to external forces, but had simply isolated themselves spontaneously to a disconnected space because they did not want to associate with vulgar groups. Fifth, they tried their best accepting and becoming accustomed to their isolated lives, or they just heartily prefer to live in an isolated place. Chapter V discusses the literary achievement of works containing sense of isolation, that is the literary device by which poems expressing sense of isolation are decorated with literary beauty so that they would not be perceived negatively by readers. The poets use defamiliarization to creatively choose special images that match their isolated nature and are able to indirectly deliver their emotions. In addition, they use metaphors to visualize the various difficulties and obstacles they face on their official path as innumerable mountains, vividly presenting them to readers. Furthermore, they describe the world as an existence that antagonize the narrators to tragically portray the helplessness and sorrow they feel due to the cruel reality. Besides, the poets depict the narrators' efforts to extend their vision to reach the place and people they long for. However, by showing the failure of this attempt, the poets maximize their negative feelings caused by the sense of isolation. Moreover, the poets pay attention to the fact that distance can result in the sense of isolation, and contrasted the physical distance between bodies with the distance between minds. Through this, they are able to emphasize the emotions they express. Finally, they locate the place they are in as the edge of the heaven, making themselves the most unfortunate people in the world, thereby revealing their loneliness and sadness for their misfortune with amplification. Through the research methods mentioned above, this thesis attempts to gain a deeper and better understanding of Tang poetry from the perspective of ‘sense of isolation’ that touches core themes and emotions conveyed by Tang poetry. 對於經歷過新冠疫情的現代人來說,“隔離”是一個再熟悉不過的詞彙,因爲在這場長達四年的國際性突發公共事件中,相信絶大多數人都有過被隔離的親身經歷。實際上,隔離是嚴重危害精神健康的因素之一。研究表明,與未曾經歷隔離的人相比,遭受過隔離的人更容易感到不安、憂鬱與壓力。古代的中國文人也因各種原因被隔離,比如與長安、故鄉,朝廷的官僚集團等的隔絶。因此,他們也與新冠疫情期間被隔離的人們一樣,感受到了諸多負面情緒,並將這些情緒融入到自己的詩歌創作中。而且他們也意識到自己被隔離的事實,常通過“隔”字來表達。 統計數據顯示,含“隔”字的唐詩中最常出現的前十位雙音節詞與唐詩裏最常見的前十位雙音節詞高度一致。這表明,“隔”字及其蘊含的隔離意識對唐詩的情感特徵有着重要影響,適用於表達唐詩的核心情感。因此,爲了更深入地理解唐詩,研究含有“隔”字的唐詩及涉及“隔離”主題的作品是十分必要的。筆者首次提出了“隔離意識”這一概念,指的是詩人意識到自己和他嚮往的存在之間被隔絶,且這種隔離將一直持續下去,從而產生的一種心理意識。 本文基於此定義,全面分析了唐詩中表現出的隔離意識,探討了詩人何時、何地、因何原因而產生隔離意識,以及隔離意識與詩歌中心思想的關係。此外,本文還分析了隔離意識引發的情感、這些情感如何在文學上升華,以及詩人們如何在詩中採取各種方式來緩解隔離帶來的精神創傷。本文框架如下: 第二章首先總體地分析了先唐文獻中體現的隔離意識。接着從宗教、科舉制度、貶官制度、節度使、黨爭和戰爭等多個角度,介紹了滋生隔離意識的社會背景。最後通過數字人文工具和統計分析,探討了“隔”字的使用方式及表達隔離意識的詩作的基本特徵,分析了這些作品的創作地域。 第三章探討了隔離意識產生的原因,將其分爲三類進行具體例析。第一類是由於客居異地而產生的隔離意識,客居的原因包括漫遊、應試、貶謫、官職、投奔幕府或移居等。第二類是與親人或知己的交流因外力中斷而產生的隔離意識。第三類是因死亡導致的隔離意識。 第四章探討了詩人們爲緩解隔離意識而採取的反抗措施以及它們的效果。這些措施有三種,第一種是通過書信與知己交流。第二種是通過諸如登高的縱向移動來對抗與嚮往空間的遠離的橫向距離。第三種是在夢境中尋求靈魂寄託。第四種是詩人們通過自我合理化來緩解心理壓力,將自己的隔離視爲主動選擇,而非外力所迫。第五種是因眞心憧憬或享受隔離生活從而沒有隔離意識,或努力接受幷適應隔離生活。 第五章分析了詩人如何通過修辭手法賦予隔離意識的詩作文學魅力。首先,詩人運用了陌生化的手法,以符合隔離主題的陌生的意象間接生動地傳達思想;其次,他們通過比喻將仕途中的困難形象化;第三,詩人將世界描繪成與自己敵對的存在,表現出自己的無力感和絶望;第四,詩人通過最大限度地擴展自己的視野來强調他所嚮往的地方和自身之間的距離,反映了深深的無奈和思念。第五,詩人通過對比物理距離和心靈距離,深化了情感表達;最後,他們將自己置於“天涯”之地,傳達出極端孤獨與懷才不遇的悲憤情感。

    • 紅樓夢과 鏡花緣 俗語의 문학적 기능 연구

      고명주 高麗大學校 大學院 2014 국내석사

      RANK : 249727

      본 연구는 소설이 언어 예술로 구현되는 문학이라는 전제 하에, 작자가 의식적으로 작품 속에 사용했던 다양한 문학적 언어 장치에 집중하여 그 중 俗語라는 ‘민간에서 사람들의 입으로 구전되며 정형화된 통속적인 語句’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중국 고전 소설 발전의 정점을 이룬 明淸代 시기의 소설 중 문학 언어의 최고의 성과를 이룩해낸 曹雪芹의 ≪紅樓夢≫을 주요 텍스트로 삼았으며, 그 영향을 받아 창작된 작품 중 李汝珍의 ≪鏡花緣≫을 비교 텍스트로 선정하였다. 이 두 작품은 동 시대에 선후로 창작되어, 일부 구조와 분위기가 다소 유사하며 두 작품 모두 여성 형상을 그리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는 점에서 자주 비교대상으로 거론되었지만, 본 연구는 지금까지 주로 이루어졌던 ‘여성관’이라는 키워드를 벗어나 작품 속 서사적 기능에서의 언어 장치 사용에 초점을 맞추었다. 조설근과 이여진은 모두 당시 공명의 뜻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수재들로 평가 받고 있으며, 두 사람 모두 科擧제도를 경멸하고 八股文을 배척하는 성격으로 당시의 비뚤어진 세태에 공허함을 느끼며 ≪홍루몽≫과 ≪경화연≫을 창작했음은 이미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러나 淸代에 시행되었던 강력한 文字獄은 당시 작자들의 자유로운 창작을 제한하였고, 두 작자 역시 이를 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우회적 장치를 소설 속에 최대한 차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도의 눈을 피하기 위해 차용 되었던 이 장치들은 오히려 서사 구조를 단순함에서 벗어나게 하고, 문학적 예술성을 제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동시에 작가의 풍부한 지식을 뽐내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두 사람은 풍부한 학식과 타고난 글재주로 속어라는 언어 장치를 작품 속에 자유롭고 폭넓게 운용하여, 문학 언어로서 속어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기능을 십분 발휘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작품 속 속어 운용 양상과 그 성과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조설근이 당시 중국 사회 각계각층을 망라하는 폭넓은 어휘력을 갖고 있던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면, 이여진은 音韻學이라는 한 학문에 깊이 빠져 연구를 즐겼던 박식한 언어학자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에 있어 재능은 내면으로부터 피어나고 학식은 외부로부터 완성되며, 완벽한 문장은 재능과 학식이 겸비되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조설근과 이여진의 작품의 완성도와 질을 놓고 보았을 때 확연히 드러나는 수준의 차이는 바로 이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이것이 두 사람의 속어라는 언어 장치의 사용에 있어서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였으며, 본 논문에서 두 작품을 동시에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홍루몽≫이나 ≪경화연≫ 중 한 작품만 독립적으로 다루었을 때는 드러나지 않는 여러 가지 사항들을 비교를 통해 대조하여 새로운 특징을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先秦시기 이전부터 각 문헌에 사용되어온 속어는 그 문학성과 가치를 이미 오래전부터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명·청대에 이르러 소설이라는 통속 문학 장르의 특성과 그 궁합을 자랑하며 활발하게 사용되어, 현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속어의 운용은 계속되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진행형의 언어이다. 때문에 ≪홍루몽≫을 비롯한 여러 문학 작품은 속어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이미 그 가치와 특수성을 인정받은 속어를 연구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 본 연구에서는 우선적으로 작가의 속어 사용에 미친 여러 가지 요인들 중 시대적 배경과 개인의 생애, 그리고 고전 소설사에서의 속어에 대해 고찰해 본 뒤, 작품 내부로 시선을 옮겨 하나의 문학 작품에서 인물 형상과 서사 전개, 그리고 修辭 기법의 다양화를 구현해 내는 데 있어 속어가 어떻게 사용 되었는지 그 양상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작품을 통한 속어가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주제 의식의 심화, 부당한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 그리고 인생의 지혜와 교훈 전달 효과로 분류하여 분석해보았다. 모든 작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특수한 글쓰기 습관이나 패턴을 갖고 있으며, 창작 소설은 작품 그 자체가 작가 의식의 집결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작품 곳곳에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의식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숨어있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표현 되어 있기도 하다. ≪홍루몽≫이나 ≪경화연≫ 모두 작가가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총동원해 심혈을 기울여 창작한 작품으로, 그 안에 이용된 언어 장치는 셀 수 없이 많으며, 그 많은 장치 중 속어 하나만으로 작가의 모든 의도와 작품의 문학적 가치를 파악해 내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일차적으로 속어 자체가 갖고 있는 문학적 운용과 효과에 포커스를 맞춰, 속어라는 언어 장치의 문학 언어로서의 효용성을 증명하고자 했으며, 나아가 청대의 대표적인 창작 소설인 ≪홍루몽≫과 ≪경화연≫ 두 작품의 비교를 통해 두 작가의 소설 창작 방법에 있어 속어 운용 패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내고자 했다.

    • 馮至 문학의 실존론적 회귀의식 연구

      김미영 高麗大學校 大學院 2012 국내석사

      RANK : 249711

      펑즈는 당시 주류를 이루던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인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940년대 문화계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1940년대 대표 작가군에 포함된다. 펑즈는 당시 주류적인 방식이 아니라 순수하게 독창적인 표현 방식을 선택하여, 자신만의 목소리로 시대의 고통을 은유적으로 노래했다. 펑즈 작품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인간 고독에 대한 원초적인 접근, 개체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본원적 진실에 대한 갈망 등은 항전 의지를 고취하려는 데 목적을 두었던 중일전쟁 시기 여느 항전 작품들과는 다른 풍격의 문학을 만들었다. 그가 집중했던 것은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는 실존이었기 때문이다. 중일전쟁 시기로 접어들면서 중국 문단에서 ‘개인’의 내면에 대한 묘사가 급격히 줄어든 반면, 펑즈 작품에 드러나는 개인의 실존의식은 더욱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1930년대 아이칭(艾靑) · 허치팡(何其芳) 등 모더니즘을 부르짖던 동시대 다른 시인들은 중일전쟁 시기에 직접적인 현실 참여형으로 창작 풍격을 바꾸며 주류 문단으로 흡수되었다. 그에 비해 펑즈는 오히려 중일전쟁이 있었던 7년 남짓의 시간 동안 그가 가지고 있던 실존의식을 더욱 체계화하며 왕성하게 작품을 창작하였는데, 시집 ≪십사행집 十四行集≫, 중편소설 ≪오자서 伍子胥≫, 산문집 ≪산수 山水≫등의 작품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펑즈는 “작가에게 중심 사상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의 중심사상은 바로 인간이었다. 즉 시대가 모두 전체를 외쳤던 때에, 펑즈가 지성을 바탕으로 한 서정을 노래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1920년대 시작(詩作)에서 이미 개인의 고독에 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던 펑즈는 1931년 독일 유학길에서 릴케와 실존철학이라는 학문을 접하면서, 인간은 누구나 ‘실존’으로서의 고유한 운명을 지니고 있고 외로운 단독자로서 자기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독자적인 결단의 주체라는 사실을 익히게 된다. 학습을 통해 이해한 실존의식을 그저 머릿속의 개념으로만 그치게 하지 않고 몸소 체득하게 한 사건이 바로 중일전쟁이었다. 펑즈는 전쟁 중에 타인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죽음이 가져다주는 불안과 고통의 근원을 파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삽시간에 사라져버리는 시대 속에서도 불변하는 근원적 본질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그가 꾸준히 가지고 있던 실존 문제가 더욱 체계화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펑즈의 사상 전반을 지배하던 릴케와 괴테, 또한 학문적 양분으로 받아들인 실존철학을 이어주는 열쇠말은 실존의식이다. 중일전쟁 이전까지 펑즈에게 실존의식이 머릿속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면, 십 여 년의 창작 공백을 깨고 문학의 언어로 활동하고, 실존이 거주할 공간으로 회귀하게 한 것은 중일전쟁 시기 쿤밍과의 만남이었다. 때문에 펑즈의 작품이 개인의 내면적 노래일 뿐만 아니라 시대의 노래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펑즈가 그 시대의 주선율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스스로의 화음을 만들어나갔는지를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난 실존론적 회귀의식을 바탕으로 살펴보려 한다. 중일전쟁 기간에 쓰인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주류의 방식과는 달리 사회적 고통을 마주하는 펑즈만의 사유 방식을 연구하는 것은 펑즈라는 인물의 문학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중일전쟁이 있던 7년의 세월을 하나의 틀 안에 가두어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때문에 중일전쟁 기간의 창작 중에서도 그의 사유가 변화하는 흐름의 지점을 찾아나가는 것 역시 연구 과정 중 일부가 될 것이다. 중일전쟁 시기 펑즈가 가지고 있던 실존론적 회귀의식이 그의 작품 속에서 의지적인 삶을 보여주었고, 자연과 하나 되게 만들었으며, 타인과 소통하며 타인의 고통까지 어루만질 수 있게 하였다. 그러한 의식이 어디에서 기인하였는지, 또한 신중국 성립 이후에 발표한 신정권에 흡수되어버린 듯한 일련의 글들 사이에서 중일전쟁 시기 창작이 전쟁 이후 시기의 사유와 충돌 없이 연속적인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는 원인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궁극적으로 1940년대에 문학적으로 독특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가 1940년대 중국문학사를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점을 궁극적인 연구의 목표로 삼는다.

    • ≪朝鮮王朝實錄≫의 ≪詩經≫ 관련 기사에 나타난 한국적 수용 양상 연구

      GAO ZHENGZHENG 고려대학교 대학원 2025 국내박사

      RANK : 249711

      This study systematically organizes and analyzes 1,012 records related to the ‘Shijing’ in the ‘Joseon Wangjo Sillok’, categorizing them into four main types: textual localization, reception of ‘poetry education(詩敎)’, citation of poems through selective interpretation, and the practice of offering poems. These reveal the long-standing and profound acceptance of the ‘Shijing’ in the Joseon Dynasty, especially among the upper ruling class. Firstly, textual localization is manifested in the compilation of the ‘Koujue Ben’ during King Sejo’s reign, which took about three years, and the ‘Yan Jie Ben’ during King Seonjo’s reign, which took about sixteen years to complete. The latter was recompiled and printed with movable metal type after its los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reflecting the Joseon court’s strong emphasis on the preservation and localization of the classical text. Secondly, ‘poetry education’, as an essential system for cultivating monarchs and officials, although influenced by Zhu Xi’s Neo-Confucianism, placed greater emphasis on integrating the content of the ‘Shijing’ with contemporary political life, highlighting the practical application of Confucian education. Thirdly, the selective citation of poems inherited the traditional Chinese method of quoting by fragmentary interpretation, mainly used in diplomatic ceremonies to express aspirations through poetry and in political discourse to strengthen arguments. Diplomatic citations frequently drew from poems related to banquets and feasts found in the ‘Da Ya’ and ‘Xiao Ya’, while political citations favored poems praising King Wen and King Wu from the ‘Ya’ and ‘Song’. Lastly, the practice of offering poems continued the pre-Qin tradition of ministers composing ‘Da Ya’ and ‘Song’ poems to praise the ruler’s virtues, evolving into a systematic practice lasting 280 years. This practice also exhibited local characteristics, with poems typically lengthy, thematically limited, and highly repetitive. These cultural phenomena reflect the Joseon ruling class’s reverence for and inheritance of the ‘Shijing’ and Confucianism, demonstrating a rigorous ‘archaistic’ attitude. At the same time, they emphasize the close integration of classical learning with practical political life, showing a characteristic focus on ‘practicality’. Through actively absorbing and localizing cultural activities related to the ‘Shijing’, the Joseon court endeavored to apply Confucian classics in governance, aiming to realize an ideal political order and social stability, and embodying the pursuit and practice of the Western Zhou’s golden age political ideals.

    • 일본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프레카리아트 문학 연구

      이정화 고려대학교 대학원 2021 국내박사

      RANK : 249711

      일본 헤이세이 시대는 버블경제의 붕괴와 함께 큰 사회적 혼란과 맥을 함께한다. 장기간에 걸친 경제 침체는 곧 불안정한 고용의 확대를 불러왔으며, 이로 인해 불확실한 삶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가 가속화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 현대문학의 영역에서 이들의 불안정한 삶과 노동,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 그리는 다양한 소설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빈곤과 격차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지만,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로스제네 세대의 청년들이 이렇듯 한꺼번에 프레카리아트의 불확실한 삶으로 편입되어간 현상은 독특한 성격의 것이었다. 이에 본 논문은 헤이세이 시대(1989~2019) 기간을 일본 프레카리아트 문학의 시대적 배경으로 보고 그 대상을 폭넓게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리고 헤이세이 시대의 흐름에 따른 프레카리아트 문학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통시적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본 논문에서 연구대상으로 삼은 프레카리아트 소설은 넓은 의미에서는 프레카리아트의 불안정한 노동이 가져오는 불확실한 삶에 대해 그린 소설을 뜻하며, 더 나아가 프레카리아트가 느끼게 되는 불확실한 삶으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과 갈등에 대해 느끼는 심상이 표현된 소설이다. 현재까지 논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 프레카리아트 소설 작품은 총 60편으로 파악되며, 이를 내용적 특성에 따라 정리해보면 ①1990년대 후반부터 프레카리아트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사용되는 2006년까지, ②2006년부터 게 공선 붐이 일어나, 그 영향이 지속되는 2010년까지, ③2010년부터 헤이세이가 끝나는 2019년까지 세 시기로 구분이 가능하다. 먼저 첫 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199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에 갓 진출한 로스제네 세대에서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내몰리는 청년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문제시 되면서 문학의 영역에서 이러한 사회상을 반영하는 다양한 작품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은 주인공 캐릭터가 니트이거나 프리터라는 점에서 니트 소설, 프리터 소설로 제각기 명명되었다. 그러나 점차 불안정한 노동이 불러오는 빈곤과 격차 문제, 불확실한 삶 속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정체성의 위기 등 더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는 소설들이 점차 나타났고, 2006년에 이르러 ‘프레카리아트’라는 용어가 일본 사회에 알려져 사용되면서 이를 프레카리아트 문학의 영역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동안의 선행연구에서는 프레카리아트 문학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고찰 없이 소설에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루고 있거나 워킹 푸어의 빈곤을 다루는 내용이라면 모두 프레카리아트 문학으로서 분류하여 각 소설에서 나타나는 주제의식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프레카리아트 문학은 프레카리아트가 처한 현실을 반영하여 자본주의의 불안정성과 불평등성을 폭로하는 것을 넘어 그 생활과 노동에 있어서의 불안정함에서 연유하는 현대인의 정체성 위기에 대한 고찰이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정체성 위기에 접근하는 소설을 중심으로 실제 소설에서 프레카리아트의 심상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고찰하였고, 이를 통해 프레카리아트 문학의 과도기에서 나타나는 일본적 맥락과 특징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의 전개와 발전기에는 게 공선 붐이 일어나 프롤레타리아 소설과의 연결선상에서 프레카리아트 문학의 가능성이 대중에게 피력된다. 그리고 프레카리아트의 위치에 놓인 대중이 스스로의 목소리로 현실을 이야기하는 소설들을 다수 창작해내게 되었는데, 그동안 이들의 창작 소설은 프레카리아트 문학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분야로, 문학적 가치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나 이 작품들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과 다양한 시도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프레카리아트 문학의 가장 현실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확인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마지막으로 프레카리아트 문학의 후기에 해당하는 2010년부터 헤이세이 시대가 끝나는 시점까지의 시기에는 불안정한 노동이 불러오는 불확실한 삶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는 자아를 그리는 소설과, 프레카리아트의 삶이 엔터테인먼트 소설에서 하나의 갈등요소로 등장하는 소설로 흐름이 나뉘게 된다. 후자의 경우 대중의 전반적인 공감과 지지를 얻는 데는 성공하면서도 프레카리아트적 상황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원래 프레카리아트 문학의 의의에서 멀어지고 있으나 이처럼 양 갈래로 흐름이 나뉘는 가운데 이에 반응하는 일본 대중의 모습에서 프레카리아트 문제를 바라보는 양가적 태도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본 논문에서는 헤이세이 시대의 흐름과 함께 프레카리아트 문학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살펴보았다. 프레카리아트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본 사회의 갈등요소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후속 연구에서는 본 논문에서의 연구를 바탕으로 더 이상 청년이 아닌 로스제네 세대의 당면과제와 또 새롭게 유입되는 프레카리아트의 불안정한 삶이 소설에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 연구의 범위를 넓혀나가고자 한다. 또한 프레카리아트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만큼 한국의 프레카리아트 문학과 비교 연구도 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헤이세이 시대의 프레카리아트 문학연구가 앞으로의 논의에 기초적인 자료로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 일본 근대 문학의 콜로니얼 투어리즘 연구 : 제국주의 담론과 조선 인식을 중심으로

      노윤지 고려대학교 대학원 2024 국내박사

      RANK : 249711

      본 논문의 목적은 근대 전환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일본의 문학가들이 조선을 여행하고 남긴 여행기록물을 통해 조선을 둘러싼 제국주의 담론 속에서 식민지 기행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피고, 사회적인 변화에 대응하여 변화하는 담론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문학가들의 조선 인식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일본인 문학가들이 조선을 여행한 뒤 남긴 여행기록물을 통해 여행자들의 행로를 살피고 제국주의·식민주의라는 담론 속에서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했는지를 여러 층위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여기에서의 ‘여행기록물’이란 일본인 문학가들이 조선을 여행하며 경험한 사건·감상·관찰·인식·탐험 등을 직접 기록한 여러 형태의 간행물을 지칭한다. 여행을 소재로 한 글은 그 목적과 형식에 따라 다양한 장르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여행 문학(travel literature)이란 여행을 소재로 하는 모든 문학적 형식을 포함하는 넓은 범주이다. 일기, 소설, 시, 기행문 모두 여행 문학에 속할 수 있고 여행 경험을 통해서 얻은 감정, 생각, 문화적 체험 등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아우른다. 이는 단순히 여행에서 얻은 견문의 기록을 넘어 여행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다. 일본인의 조선 여행은 식민지 지배를 위한 수단에서 시작되었고 제국주의의 이상을 설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19세기 말 조선이 개항한 이후로 청일전쟁·러일전쟁·한일병합·3·1운동과 변화하는 조선총독부의 통치 방식 등 역사적인 사건과 식민지 정책이 변화함에 따라 조선 여행과 기행 담론도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를 개괄하면 먼저 근대전환기에는 조선을 향한 일본의 지리학적 관심이 뜨거워지는 만큼 일본의 대륙 진출을 위해 조선의 지리적 특성을 이해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현안이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조선이 개항하자 해외의 시장과 영토를 개척하려는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 욕구에 힘입어 점차 조선을 찾는 일본인의 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조선을 탐색하고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분위기 속에 조선 여행기가 출간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에도 조선에 관한 저술은 있었지만 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조사서나 정치적인 현황을 담은 보고 문서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러일전쟁 이후부터는 조사서 외에도 개인의 여행기 등 다양한 형태와 목적의 기행문이 출판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는 본격적인 대륙 진출을 목표로 일본인들의 조선 식민(植民)이 강조되었고 도한(渡韓) 이주가 늘어남에 따라 조선과 관련한 많은 자료가 간행되었다. 여행기록물은 조선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일본이 근대 사회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국가적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여행을 통해 수집된 지식들은 결국 제국주의적 공동체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다. 한일병합을 계기로 본격적인 식민지 조선 지배가 시작되었으며 이 시기에는 ‘신내지(新內地)가 된 외지(外地) 조선’에 대한 정보 욕구에 따라 조선을 소개하는 다수의 여행 기록물들이 간행되었고 새로운 영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확산을 목표로 대중에게 보급되었다. 다이쇼 시대가 시작되면서 경제적인 안정과 호황에 따라 여행 문화는 더욱 대중화한다. 교통의 발달과 해외 여행의 증가로 식민지 영토를 돌아보는 ‘조선·만주 여행’이 유행했고 이는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향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식민지에 대한 동경심을 자극했다. 한편 1930년대 군국주의의 물결이 거세지고 만주사변에서 시작된 15년 전쟁이 끝나는 때까지 만주와 중국 대륙으로 쏠린 관심 속에 조선은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의 역할을 수행하며 동아시아 신질서의 구축과 경계 확장 속에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본 논문은 조선의 근대전환기부터 1945년까지를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 단계는 조선의 개항 이후부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쳐 한일병합을 전후로 하는 근대 전환기이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조선을 식민지 지배하고 제국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해 나가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조선의 개항-청일전쟁-러일전쟁-한일병합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중심을 이루며 일본이 제국주의로 발돋움하기 위해 내부적으로는 국가주의를 공고히 하고 외부적으로는 끊임없이 주변국을 대상으로 영토의 확장을 시도하여 제국 일본 건설을 궁리하던 때이다. 이 시기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국의식’과 진구 황후의 삼한정벌설에서 이어져 온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근거로 내세우며 조선 침략과 지배에 대한 명분을 찾았다. 두 번째 단계는 한일병합을 전후로 하는 때부터 1930년대 초중반까지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본격화되는 무단정치기를 거쳐 1919년 이후 시작된 문화정치기를 포함한다. 일본 내부적으로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인한 민주주의와 평화 운동의 분위기도 조선의 인식과 식민지 경영에 영향을 끼쳤고 표면적으로 일선융화를 추구했던 시기이다. 3·1운동 이후 달라진 식민 정책과 표면적으로 유연해진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 여행 문화와 기행 담론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세 번째 단계는 1930년대 초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전시체제를 포함하는 시기이다. 조선에서는 총독부의 병참기지화 정책과 황국신민화 정책 등 강력한 지배 체제가 공고해지던 때이다. 대동아공영권 내에서 조선의 정치적 전략적 위상이 높아지고 병참기지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등 전시하의 총동원체제와 관련을 맺고 있다. 한반도의 북선과 간도·만주로 이어지는 대륙으로의 진출이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 이 시기의 기행 담론에는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이 반영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논문을 구성하여 제1장에서는 근대 전환기의 조선 여행과 조선인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일병합을 계기로 본격적인 식민지 조선 지배가 시작되었으며 이시기는 조선으로의 여행자나 여행 기록이 드문 시기로 여행기록물을 살펴보면서 근대 초기 조선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또한 이 시기 문학가들이 쓴 청일전쟁· 러일전쟁 종군기를 통해 문학가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과 식민주의와 조선의 지배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제2장은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시기로 다이쇼 시대 조선과 만주를 둘러보는 여행이 대중화되고 가장 발달했을 때이다. 이 시기는 ‘신내지(新內地)가 된 외지(外地) 조선’에 대한 정보 욕구에 따라 조선을 소개하는 다수의 여행기록물들이 간행되었고 새로운 영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확산을 목표로 대중에게 보급되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문학가의 만주 조선 여행기와 기행문집을 중심으로 다이쇼 시대 일본인들의 조선여행 양상과 조선 인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3장에서는 제국 일본이 확장될수록 조선 여행 관광지와 명소들이 서선(西鮮)과 남선(南鮮)에서 북선(北鮮)으로 바뀌는 변화의 양상을 확인하고자 했다. 일본인에게 북선은 원래 인구가 적고 군사적 긴장이 높은 국경지대로 자연 자원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졌는데 1930년대 이후부터는 철도의 개설과 더불어 만주와 중국 대륙과 경계를 두는 민족적으로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표상되는 과정에 대해 살폈다. 또한 중일전쟁에서 아시아·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이라는 시대 속에서 이루어진 관제적인 성격의 여행을 통해 시대적인 책임과 의무 속에서 국책 문학 또는 전쟁 협력적인 문학보국 활동에 참가했던 이들 문학가들이 조선을 어떻게 여행하고 무엇을 인식했는지를 콜로니얼 투어리즘 담론 속에서 파악하고자 했다. 본 논문은 개항 이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인 문학가들이 남긴 조선 여행과 관련된 주요 기록들을 검토하고 일본의 제국주의 지배 담론의 변화 속에서 식민지 조선의 여행 문화와 기행을 둘러싼 담론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통시적으로 고찰하며 이를 ‘일본 근대 문학의 콜로니얼 투어리즘 연구’라고 명명한다. 조선 여행과 관련한 여러 기록들 중에서 여행기록물을 특정하는 까닭은 그것이 가진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여행기록물은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자연과 사회, 인사와 견문에 대한 소감을 서술한 문학”으로 보고·듣고·느끼고·겪은 것을 적은 글이며 여행기록물은 시찰보고서나 안내기 등의 글과는 특성적인 면에서 다르다. 여행기록물은 여행을 전제로 하여 작가가 느낀 감정 즉 정서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글이며 정보의 전달은 부차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 보고서나 안내서는 작가의 느낌이나 감상보다는 담고 있는 정보에 집중하는 것으로 목표·전략을 위한 상황 파악과 제안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문학가들은 여행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으며 그것을 재구성한다. 작가의 눈에 비친 모든 대상은 여행기록물의 내용 요소가 되며 단순히 여행지에서 겪은 일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작가의 지식·가치·이성·인식과 같은 철학이 더해진다. 식민지 시기 조선을 방문한 문학가들은 식민지 영토를 직접 체험하고 각자의 감상과 견문을 내면화하여 여행기록물에 담았다. 이러한 개별적인 여행기록물이 모여 동시대 조선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고 조선 여행과 관련한 지배담론을 생산했다. 담론이 특정한 대상이나 개념에 대한 인식 체계와 지식을 생성시키고 그러한 존재들에 대해 무엇을 논할 수 있는가를 정하는 규칙을 형성하는 것이라 할 때, 식민지 조선 여행과 관련한 담론을 조망하기 위해서는 여행기록물을 통시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how the colonial travel culture surrounding Korea was shaped within the discourse of imperialism from the late modern period to the Japanese colonial era, through travel records left by Japanese literary figures who traveled to Korea. It also aims to analyze the changing discourse and the evolving perceptions of Korea by literary figures in response to social changes. Therefore, this paper intends to explore the routes of travelers through travel records left by Japanese literary figures who traveled to Korea, within the discourses of imperialism and colonialism. Here, "travel records" refer to various publications in which Japanese literary figures directly recorded events, observations, perceptions, and explorations experienced during their travels to Korea. Travel writings encompass a wide range of literary genres based on their purpose and form, generally categorized under travel literature, which includes diaries, novels, poems, and travelogues, all of which express emotions, thoughts, and cultural experiences gained through travel in a literary manner. This goes beyond mere observations recorded during travel to encompass deeper insights into the destinations visited. Japanese travel to Korea began as a means for colonial domination, encapsulating the ideals of imperialism. Following Korea's opening in the late 19th century, historical events such as the Sino-Japanese War, Russo-Japanese War, Korea-Japan Annexation, and the governance changes within the Korean Governor-General's Office led to varying trends in discourse surrounding travel and exploration of Korea. Initially, during the late modern period, Japan's geographical interest in Korea intensified, driven by Japan's imperial expansion desires to understand Korea's geographical characteristics for advancing onto the continent. Following the Treaty of Ganghwa in 1876 and Korea's subsequent opening, increasing numbers of Japanese began to visit Korea, spurred by Japan's imperialist ambitions to explore overseas markets and territories. Consequently, travel accounts exploring Korea and collecting various information began to be published. While previous writings on Korea existed, they mainly focused on national surveys or political reports. However, starting from the Russo-Japanese War, various forms and purposes of travelogues, including personal travel accounts, were published. This period emphasized Japanese colonialism of Korea as a means for their extensive continental expansion, marked by an increase in Japanese exploration and publications related to Korea. Travel records not only introduced Korea as a new world but also continued to affirm Japan's national identity in modern society. The knowledge collected through travels eventually served as an ideology of imperialist communities. With the start of the Taisho era, travel culture became more popular due to economic stability and prosperity. The development of transportation and increased overseas travel popularized "Korea-Manchuria travel," arousing curiosity among Japanese and stimulating admiration for the colonies. Meanwhile, in the 1930s, amidst the rise of militarism and the beginning of the 15-Year War from the Manchurian Incident, Korea began to be perceived anew in the context of constructing East Asian new orders and expanding boundaries. To understand these changes, this paper divides the period from Korea's modern transition to 1945 into three stages. The first stage covers the period from Korea's opening to the annexation by Japan, which witnessed Japan's active colonization and efforts to solidify its imperial position. This era centered around historical events such as Korea's opening, the Sino-Japanese War, the Russo-Japanese War, and the Korea-Japan Annexation, during which Japan sought to establish national sovereignty internally through nationalism and continuously expand its territories externally, targeting neighboring countries. During this period, Japan used the ideology of "Japan-Korea common ancestry" based on Toyotomi Hideyoshi's "ambition for a new country" and Queen Min's theory of punishing the Three Hans to justify its invasion and rule over Korea. The second stage spans from the time around Korea-Japan annexation to the early to mid-1930s, marking the peak of travel and exploration of Korea and Manchuria during the Taisho era. This period included the unauthorized colonial rule of Japan, the cultural political period beginning in 1919. Internally in Japan, the atmosphere of democracy and peace movements caused by the Taisho Democracy also influenced perceptions of Korea and the management of colonization. It was a period when travel culture and travel discourse underwent changes due to the altered colonial policies and the seemingly more flexible social atmosphere following the March 1st Movement. The third stage represents the period beginning with the Manchurian Incident and including the establishment of the puppet regime. This period was marked by a strong regime of governance policies such as the militarization of the colonial government and the policy of Hwang-guk Sin-min-hwa. It was a period when Korea's political strategic status within the Greater East Asian Co-Prosperity Sphere became increasingly significant, linked to the total mobilization system under the administration of the colonial government. The discourse of travel during this period reflected these historical situations, leading to the construction of colonial tourism in the context of colonial tourism. To understand the temporal flow, this paper is composed of three chapters, where the first chapter examines Korea's modern transition and Korean perception of Japan during the Japanese colonization of Korea from the time of the Korea-Japan merger. This period, which began with travelers' perceptions of war through literature, examines the recognition of wars and colonization through the understanding of wars.

    • 대중문학 형성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문학 연구 : 야스키치물(保吉物)을 중심으로

      이민희 高麗大學校 大學院 2011 국내박사

      RANK : 249711

      本&#30740;究はある現象が現れる&#28858;にはある&#26465;件を&#25539;うという思考に基づき、文&#23398;の場において&#35501;者の存在が可視&#22287;&#20869;に入り始まった時期に文&#23398;はその&#27010;念を如何に&#22793;貌したのか、そして小&#35500;はどのような&#27096;相を&#24111;びたのかという問題意識から始まった。こうした問題意識はライティングの際、&#35501;者を想定する文&#23398;&#35251;の持ち主が&#35501;者の存在が可視&#22287;&#20869;に入り始まった大衆文&#23398;の形成期という外部&#29366;況と出合った時、彼のテキストがどのような&#27096;相を&#24111;びるのか窺うことを可能にした。 芥川龍之介は文藝の形式と&#20869;容を〈不可分の&#38306;係〉に捉えていたが、彼がいう文藝の&#20869;容が形式によって&#27010;念付けられる性質である以上、芥川龍之介の文&#23398;&#35251;を初めから&#35501;者を想定するものであるといえよう。そしてこれは認識&#23550;象が認識主&#20307;によって相違に認識出&#26469;るということを表れながら「保吉の手帳から」と「少年」で具現されている。テキストで〈不可分の&#38306;係〉に置かれている文藝の形式と&#20869;容は本質は同じだが、外見は異るものの羅列乃至は言語遊&#25135;のように見せながら具現されているのである。 「寒さ」でこうした文&#23398;&#35251;は表現レベルで具現されているが、テキストの問題意識は1910年代に比して&#25313;大された1920年代の日本近代文&#23398;の場と連動し、作者と&#35501;者との疎通にある。ここでテキストは&#35501;者との〈疎通〉を希望するが、これは保吉物が&#35501;者を想定する芥川龍之介の文&#23398;&#35251;の具現の場で終わらず、&#23455;&#36341;の場としての可能性も窺える。コミュニケ―ション行&#28858;としてのライティングが「お時儀」と「或&#24651;愛小&#35500;」で&#23455;&#36341;的&#27096;相を&#24111;びていたのである。1920年代の文壇システムの中で&#35501;者を想定する文&#23398;&#35251;の持ち主から&#35501;者とのコミュニケ―ションを希望し、試みるライティングが出現するのは&#24403;然の&#24112;結であるといってもよい。 保吉物の問題意識は〈文芸の形式と&#20869;容〉、〈作者と&#35501;者との疎通〉、〈近代的ライティング〉に&#38306;する問題に分けるが、テキストが〈文芸の形式と&#20869;容〉に&#38306;する問題に携わる場合は「何を」に、〈近代的ライティング〉と〈作者と&#35501;者との疎通〉に&#38306;する問題に携わる場合は「誰に」にその重さの重心を異にする。ここで後者の場合は&#23550;象-誰(&#35501;者)に-が意識の表面に表れるのを意味するが、こうした&#27096;相を一番よく表れているのがライティングの&#23550;象を女性&#35501;者に限定し、テキストの問題意識を彼女たちと共有しようとする「或&#24651;愛小&#35500;」である。それなら「何(「文芸の形式と&#20869;容が不可分の&#38306;係にある」という文&#23398;&#35251;)」を「如何(&#22793;奏させながら)」に「書くのか?」を明らかに見せてくれる「少年」はその&#23550;蹠点にあるといえよう。&#21363;ち、保吉物は日本近代文&#23398;の場において&#35501;者の存在が可視&#22287;&#20869;に入り始まった時期に時には作者の文&#23398;&#35251;の披瀝の場として、時には&#35501;者とのコミュニケ―ションを試みる場として&#20685;いたのである。 最後に、日本において大衆文&#23398;の形成期に&#24403;たる1920年代という共時的な&#26528;組み以外に、通時的な&#26528;組みの中で保吉物を見たとき、それは日本近代文&#23398;の場が形成した以&#26469;、1920年代に至るまで持&#32154;されて&#26469;た〈現&#23455;の再現としての小&#35500;&#35251;〉に反する特殊な位置を占めるテキストとして位置付けられる。

    • 영·미 화인작가 문학작품의 혼종성 연구 : 린위탕(林語堂)과 장이(蔣彛)를 중심으로

      손유디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9 국내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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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중국현대문학을 논할 때에 한 국가·한 체제·한 문화권에서는 해석될 수 없는 수많은 결과 지점을 마주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현대문학이라는 언어적 유희에 갇혀 중국이라는 한 거대한 국가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중국 대륙 이외의 지역 즉, 탈구된 위치에 자리한 작가와 작품을 연구한다고 했을 때 이미 중국현대문학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만 같은 위기감마저 든다. 더욱이 중국문학의 언어적 속성을 국적이라는 틀로 묶어두려고 할 때 중국의 화인작가는 중국현대문학의 주변부로 밀려나 아류로 취급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중국인의 문학을 중국·현대·문학이라는 지리적·시간적·장르적 담론의 틀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20세기 대표적인 영미 화인 이산작가로 린위탕(林語堂·Lin Yutang, 1895-1976)과 장이(蔣彞·Chiang Yee, 1903-1977)를 꼽을 수 있다. 린위탕과 장이는 화인작가로서 역사적 흐름과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주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전 세계를 돌며 광범위한 창작활동을 벌였다. 화인작가는 과거 자신들이 속해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적 공간에 머물고 있다. 이들은 작품을 통해 토속민에서 이주민으로, 중심에서 주변으로 오고가며 경계에 머무르기도 하고 넘나들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아픔을 담아내고, 시대의 경련을 묶어내기도 하고, 침묵하는 자의 외침을 쏟아내며 역사의 발자취를 기록해내기도 한다. 작가는 언어로 시대를 담아낸다. 과거의 언어를 표면으로 이해하고 작품을 범주화하려고 하면, 작가의 내면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시대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적 가치들을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화인작가의 작품을 연구할 때, 그의 본국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이주 후의 삶까지도 총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어느 시대를 사느냐에 따라 작가는 현실을 진단하고 비판하는 비평가, 현실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는 이상가, 현실과 이상을 융합시켜 이념을 나타내는 사상가일 수도 있다. 이들은 조국을 떠난 이후 타국에서 창작활동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조국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화인작가의 작품세계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고에서는 ‘디아스포라(diaspora)’ 대신 ‘이산(離散)’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이산민은 본래의 나서 자란 고장에서 타지로의 이동을 통해 초지역·초국가의 특성을 가지고 경계에 머무른다. 이 과정에서 이산민은 경계에 맴돌거나 넘나들며 ‘혼종성’을 유지해 간다. 호미바바(Homi K. Bhabha)는 서구 중심적인 관점에서 탈피하려는 탈식민주의적 시도에서 그치지 않고, 문화들 간의 혼종과 그 틈새적(interstices) 공간의 특징으로 설명한다. 호미바바가 말하는 틈새는 서로 다른 문화와 정체성이 중첩되는 경계의 공간이다. 이 경계의 공간에서 자기중심적인 정체성과 문화는 해체되어 간다. 이로부터 혼종성은 민족적 정체성의 이해와 문화적 가치라는 상호 주관적이고 집단적인 경험이 교섭되면서 다중성과 치환의 특성을 보인다. 본 연구의 목적은 20세기 영미의 화인 이산작가 린위탕과 장이의 작품세계 속에 내재되어 있는 혼종성의 특징들을 탐구하는 데 있다. 린위탕과 장이는 서구 영미권 사회에서 활동한 중국의 대표적인 화인 이산작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의 서사 구조와 시공간의 흐름 속에 내재되어 있는 혼종성의 특징들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린위탕과 장이는 30여년 동안 해외에서 창작활동을 하면서 주관적인 민족성과 자기중심적인 문화를 넘어서 다문화주의의 문화적 다양성을 예술적으로 잘 표현한 작가이다. 이들은 이산작가로서 혼종적 정체성과 주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특징이 있다. 초국가적 정체성은 경계에 선 존재의 인정인 반면, 주체성은 경계를 넘나드는 의지로 정의될 수 있다. 혼종적 정체성이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경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의 인정과 확인이라면, 혼종적 주체성은 그 경계를 넘나들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이 혼종화 과정이다. 혼종화는 ‘거부-제한-확대’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주체성을 발현하게 된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를 다시 ‘경계의 확인-경계의 응시-경계의 넘나듦’이라는 관점으로 확대해 볼 필요가 있다. 혼종화 과정에서 보이는 거부·제한·확대는 경계에 선 자의식의 확인과 응시, 이를 넘나들고자 하는 의지와 맞닿아 있다. 이처럼 이산민은 떠나 온 고국과 타국이라는 경계에 머물면서 허물기와 넘나들기를 반복하며 제3의 공간을 만들어간다. 화인작가는 끊임없는 헤어짐과 만남을 통해 동서양의 정서적·물리적 거리를 가로질러 중국현대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주인공들이다. 화인작가의 삶과 같이 이들의 작품 속에 투영된 등장인물 간의 관계 또한 수많은 경계에서 충돌하며 해체되고 개별화되어 간다. 이 과정을 경계의 넘나듦인 동시에 혼종성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작품세계를 분석할 때에는 국가와 민족, 이념과 지역이라는 범위에서 벗어나 작품 그 자체의 세계 속에서 접근하고 이해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린위탕과 장이의 작품세계를 통해서 경계에 있는 자아를 확인하고 그 경계를 넘나들고자 하는 주체성의 혼종성을 살펴보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목적 성취를 위해 본 연구에서는 혼종적 서사구조 속에 등장하는 시공간 의식과 정체성, 주체성의 문학적 특징들을 밝혀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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