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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현대 주거 공간으로서의 아파트의 인간학적 의미에 대한 연구

      변순용 한국환경철학회 2011 환경철학 Vol.0 No.11

      이 연구는 우선 집 그 안에 사는 사람의 품성이나 성향 내지 정서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볼 때, 집이야말로 그 어떠한 건축물보다도 또한 사람이 만드는 그 어떤 물리적인 실체보다도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감성이 담겨지고 표현되고 계발되어 승화시키는 그릇임을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하에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잡은 아파트의 의미를 전통적인 삶의 주거 구조와 비교하면서, 서구적인 아파트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변화에 주목하여, 아파트식 주거 구조에 공동체적 계기의 실현을 강조하였다. 한국의 주거문화는 생활 기능적 측면보다는 가족 구성원 중심을 강조한다. 여러 가족 구성원이 한 공간에서 모여 산다는 것은 구성원간의 서로 다른 욕망의 본질에 의해서 갈등, 분열과 긴장이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갈등구도는 가족 구성원간의 협력과 정(情)의 공간성에 근거해서 해소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파트형 주거문화에서 개별성과 독립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성을 살릴 수 있는 공간적 계기가 구성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적 계기의 실현이 전통적인 사회의 공동체성으로의 복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이러한 공동체적 계기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공동체성이라기 보다는 현대사회의 특징이 반영된 공동체성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사생활 보호와 안정성에 대한 요구와 더불어 공동체성에 대한 요청이 서로 조화될 수 있는 공동체성이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는 현대 주거 공간의 철학적ㆍ윤리적 의미에 대한 숙고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는 자신의 존재에 상응하는 고유한 공간을 지니고 있다. 공간과 존재자는 서로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공간의 의미는 존재자의 존재의미와 직결되며, 결국 공간의 위기는 존재자의 위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좋은 공간이란 인간적인 공간임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으며, 좋은 집은 인간적인 집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This paper supposes that the house represents emotions and atmosphere of the inhabitants who live there. While the meaning of modern living style of apartment is compared to traditional one. this paper focuses on the changes of housing culture in the korean society and emphasizes the need of communal moments. The housing culture in Korea places more stresses on family-centered life than living function. But the living culture in apartments has emphasized individuality and independence of each members of family. So it is important to maintain harmony between both characters. The communal moments does not mean to come back to the past, to the traditional housing culture, but it must be based on the modern lifestyle. The need of privacy and stability should be in harmony with the need of communal character. And this paper propose the need of reflection on the philosophical and ethical meaning of modern living space. All beings have own space to its existence. Because space and being have necessary relation and the meaning of space has direct relation to the meaning of being. crisis of space leads to crisis of man. So a good house should be humane house.

    • KCI등재

      AI로봇의 도덕성 유형에 근거한 윤리인증 프로그램(ECP) 연구

      변순용 한국윤리학회 2019 倫理硏究 Vol.126 No.1

      The goal of the Ethics Certification Program for Autonomous and Intelligent System (ECPAIS), recently proposed by the 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 (IEEE), is to improve the transparency, accountability and to reduce algorithmic bias of autonomous intelligence systems. Citizens and consumers are concerned about the proliferation of these systems in the form of smart homes, companion robots, autonomous vehicles, or many of the products and services associated with them, whether they are considered “safe” or “trustworthy” by professionals. It cannot be denied that safety and reliability are important and that they should act as important thresholds in our introduction to real life. One thing is clear, however, is that ethics cannot be replaced by safety or reliability. It is important to distinguish between ethical certification and safety or reliability certification. Therefore, this study critically examines the contents of the ethical certification program, which is being discussed as the main criteria of accountability, transparency, and algorithm bias, and combines types of ethics certification and AI morality. I would like to present a ethical certification program that is dualized by ethical autonomy. 최근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에서 제안하고 있는 자율 지능 시스템의 윤리인증 프로그램(Ethics Certification Program for Autonomous and Intelligent System, ECPAIS)의 목표는 자율 지능 시스템의 투명성, 책임성 그리고 알고리즘 편향성의 축소를 증진시키는 인증 및 검토 과정에 필요한 것들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스마트 홈, 반려 로봇, 자율 주행차 혹은 이와 관련된 수많은 생산품과 서비스들의 형식으로 이러한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이것들이 전문가들에 의해 “안전”하거나 “신뢰할 만한다”라고 평가되는지에 대해 시민이나 소비자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필요성이 바로 윤리에 대한 ‘인증’이라는 개념이 도출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안전성이나 신뢰성이 중요하고, 우리들의 실생활의 도입에서 중요한 문턱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윤리성이 안전성이나 신뢰성으로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윤리인증과 안전성 내지 신뢰성 인증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이 연구에서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책임성, 투명성, 그리고 알고리즘 편향성을 주요 기준으로 논의되고 있는 윤리인증 프로그램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 윤리인증과 인공지능도덕성의 유형을 결합하여 기준 내지 준거인증과 자율성인증으로 이원화된 윤리인증 프로그램을 제시하고자 한다.

    • KCI등재

      타자의 윤리학 : 레비나스 (1906 - 1995) 1) 를 중심으로

      변순용 한국국민윤리학회 2000 倫理硏究 Vol.45 No.1

      타자란 무엇인가? 이러한 논의는 20세기 초반의 현대 철학에서 중요한 쟁점의 하나였다. 이 주제는 베르그송에서부터 시작되어 20세기 초반의 사르트르(1905), 메를로-뽕티(1908)를 거쳐 푸코, 알뛰세르, 데리다, 들뢰즈, 료따르로 이어져 왔다. 특히 레비나스는 인식론이나 존재론보다는 윤리학에 1차적 관심을 두고 타자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제 1철학을 윤리학이라고 말한 점에서 이러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철학의 출발점은 바로 유럽의 위기 즉 고대 희랍 이후로 서양을 지배해온 합리성의 위기이다. 물론 하이데거가 이런 문제에 대해 현존재와 실존의 개념으로 대답하였지만, 레비나스에게는 이 대답이 불충분한 것으로 보여졌고, 그는 타자의 개념을 들어 또 다른 대답을 시도한 것이다. 레비나스는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향성의 개념을 비판하면서, 현상학의 근본적 관계인 노에시스-노에마 구조가 모든 현상에 있어서의 지향성에게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불면의 상태를 예를 들어 항상 '무엇에 대한 의식'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또한 그는 하이데거에서도 하이데거가 존재와 현존재를 구분만 하였지 분리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레비나스에게서 나와 타인은 본질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즉 타인은 그의 타자성으로 인해 근본적으로 내가 다다를 수 없다. 나란 결국 동일성을 유지하는, 그래서 전체성을 갖는 존재이다. 타자를 동일자로 소급시키는 전체성에 반대하여 동일자와 타자, 그리고 나와 타인의 비상호적인 일방적 관계, 전자로부터의 후자의 독립 내지 분리를 그는 강조한다. 이러한 타자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레비나스는 책임을 자기 윤리학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의 책임은 나의 타자에 대한 책임이요 가장 철저한 수동적인 형태의 책임이다. 한 마디로 내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면서도 책임을 져야하는 비상호적이고 일방적인 책임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책임 윤리는 이성과 동일자를 중시하는 서구의 지성사적 전통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을 전제로 해서 나왔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 로봇윤리의 이론적 기초 연구

      변순용,송선영,김현수 한국윤리교육학회 2012 한국윤리교육학회 학술대회 Vol.2012 No.2

      이 연구의 목적은 로봇 제작 및 사용에 따라 인간 삶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들에 관한 윤리적 성 찰을 탐구하는데 있으며, 이것은 또한 로봇윤리의 근본적인 목표이다. 현재 로봇 공학의 기술 발달 에 따라 분야별로 전개되는 로봇의 제작 및 사용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 해 현재 서양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로봇윤리 연구는 각 분야별 사례에 따라 개별적인 사례들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이번 연구에서는 이러한 로봇윤리의 기본적 특징과 한계를 밝히고, 로봇윤리의 이론적 기초를 모색해보고, 향후 미래에 대한 책임윤리로서 로봇윤리의 본질을 전망해 본다.

    • KCI등재

      인간, 기술 그리고 건축 - AI로봇기술의 변화와 건축서비스산업 -

      변순용 한국환경철학회 2017 환경철학 Vol.0 No.24

      The modern concept of time and space is extended to the various concept of time and space due to technological change of modern society. There is no sufficient considerations of Its impact on modern life. The differences between virtual and real spaces gradually disappear, and the need and meaning of mobility are changing. The emergence of smart home and smart city and the emergence of single residence type and shared house type show that modern perception of space is changing. Space has value in relation to human being. The change in representation of space is bound to be directly related to the change of human life. That is why human beings need to learn about space and think about their living. It should be emphasized that there is a need to consider the value of space and the responsibilities of human space and the need for spatial education. Considering the series of technological changes and the social and economic ripple effects that are being addressed by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the architectural service industry needs to recognize and respond to the essential changes in the concept of space. 근대적 시, 공간의 개념이 현대사회의 기술적 변화로 인해 다양한 시, 공간의 개념으로 확장되고, 이것이 현대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충분한 숙고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가상과 실재의 공간에 대한 차이가 점차 사라지고, 이동성(mobility)의 필요와 의미가 변하고 있으며, 스마트 홈, 스마트 시티의 등장과 1인 주거 형태와 쉐어하우스와 같은 공동주거 형태의 등장 등을 통해 공간에 대한 현대적인 인식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간은 인간과의 관계 하에서 가치를 담고 있다. 공간에 대한 표상의 변화는 바로 인간 삶의 변화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은 공간에 대해서 배우고, 거주함에 대해서 숙고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간의 가치에 대한 숙고와 인간의 자기 공간에 대한 책임과 이에 대한 공간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회자되고 있는 일련의 기술적 변화와 이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해 볼 때 건축서비스산업에서도 이러한 공간 개념의 본질적인 변화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 KCI등재

      인성교육의 철학적 방법에 대한 연구

      변순용 한국초등도덕교육학회 2018 초등도덕교육 Vol.0 No.62

      In fact, the concept of character and character education is very ambiguous, and it is impossible to understand this concept with no consideration of context in space and time. The character education of the past and the character education of our society today can not be the same. Through the critique of the problems brought about by the Character Education Promotion Act, this study suggested the integration of Socrates-teachers and Protagoras-teachers, the integration of academic logos and rhetorical logos as a philosophical method of character education. This study compares Kant 's claim that philosophy as an act should be taught and Hegel' s claim that concepts and theories of philosophy should be taught, and try to insist the integrated method of both approaches. 실제로 인성과 인성교육(charachter education)의 개념은 매우 다의적이며, 시대적 규정이 포함되지 않는 탈맥락적 이해가 거의 불가능한 개념이다. 과거의 인성교육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인성교육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인성과 인성교육의 개념에는 시대적, 지역적 맥락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으며, 맥락적 이해 속에서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이 가져온 문제점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이 연구는 인성교육의 철학적 방법으로 소크라테스적 교사와 프로타고라스적 교사의 통합, 학문적 로고스와 수사적 로고스의 통합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철학하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칸트의 주장과 철학의 개념과 사상을 가르쳐야 한다는 헤겔의 주장을 비교하여 통합적 방법을 통한 인성교윢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 KCI등재

      2016년 촛불시위에 나타난 시민의식에 대한 연구

      변순용 한국윤리학회 2017 倫理硏究 Vol.117 No.1

      이 글의 출발점은 촛불시위에 나타난 시민들에게서 기존의 시위와는 다르게 평화적인 시위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사회지도층 인사의 도덕적 불감성에 대한 분노를 느끼면서 가지게 된 의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시위의 현장이 그 다음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을 보면서 왜 우리는 저토록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시위를 원했는지에 대해 반문해 보았고, 누구라도 작은 거짓말을 하거나 타인을 해치는 일을 했을 경우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마련인데 어떻게 공개적으로 거짓을 말하거나 양심적이지 않은 일을 하고서도 떳떳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상처받은 자존심의 회복과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이것이 생각의 실마리로 작용되어, 트라시마코스의 정의의 문제, 인문학적 자기 치유,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그리고 밀그램의 실험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기 치유로서의 자기 책임의 의미와 선의 평범성에 대한 신뢰가 인간성의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고, 또 이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다. The starting point of this article was the question that the citizens who appeared in the candlelight demonstrations were trying to maintain the peaceful demonstration different from the previous demonstrations and feeling the anger about the moral insensitivity of the social leaders. As we saw the scene of the protest, where so many people gathered, restored the image of the day as if nothing had happened the next day, we asked why we wanted such a peaceful and democratic demonstration. When anyone has committed a small lie or harmed others, he feels the remorse of conscience. I wondered how he could openly say falsehood or do his work without conscience. So I came to think about the restoration of the wounded self-esteem and the banality of evil, and this became a clue of thought, leading to the problem of the problem of justice, the humanistic self-healing, the banality of evil, and the Milgram’s experiment of obedience. Therefore, it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meaning of self responsibility as self healing and the trust in the banality of moral goodness can and should be led to the responsibility of humanity.

    • KCI등재

      생명의 생태학적 의미에 대한 연구 - 니체와 쉬바이처를 중심으로

      변순용 범한철학회 2010 汎韓哲學 Vol.56 No.1

      In der vorliegenden Abhandlung handelt sich um den Begriff des Lebens bei A. Schwietzer und F. Nietzsche. Der Begriff des Lebens bei A. Schweitzer und F. Nietzsche ist wichtig in ihrer Philosophie. Während Schweitzer den Begriff des Lebens vor allem mit Solidarität und Verbundensein mit anderem Leben in Zusammenhang bringt, bedeutet das Leben für Nietzsche im wesentlichen genau das Gegenteil, nämlich Konflikt, Kmapf, Ausbeutung und Übermächtigung. Scharfe Kritik übt Schweitzer zudem daran, daß Nietzsche ganz offensichtlich den Willen zum Leben durchgängig in engste Verbindung mit dem Willen zur Macht bringe, d.h., den Willen zur Leben regelrecht mit dem Willen zur Macht identifiziere. Wenn man die Kraft, die nach dem Leben strebt, als Kraft im selbst die Akkumulation von Kraft für das Leben unterscheiden kann, dann den ersteren nimmt Schweitzer, und Nietzsche nimmt den letzteren. Denn ist der Wille zur Macht vielmehr immer und grundsätzlich eine Pluralität von Kräften. Für Schweitzer ist Lebensverneiung nämlich keineswegs immer einfach gleichbedeutend mit Verneinung des Lebens. Es mag sich vielmehr gerade auch hier ein Streben nach Lebensbejahung, nach Lebensverbesserung, nach Lebenssteigerung verbergen. Die beiden Denker haben eine gleiche Ausgangspunkt, aber durch anderen Weg, d.h. Solidarität und Ausbeutungscharakter des Lebens, sind sie zum gleichen Schluß, d.h., die Weltbejahung durch Lebensbejahung, gekommen. 생명 문제에 대한 최근의 논쟁들을 통해 생명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기에, 이 논문은 생명에 대한 이해를 서로 상반되었다고 여겨져 왔던 쉬바이처와 니체의 생명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쉬바이처가 생명 개념을 연대성 내지 결합성, 혹은 다른 생명과의 조화를 향한 노력으로 정의한데 반해, 니체는 생명현상의 핵심으로 착취성격을 강조한다. 그러나 니체가 생명의지를 힘의 의지로 보느냐 힘의 축적의 의지로 보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물론 힘의 축적의 의지도 넓게 보면 힘의 의지에 포함되겠지만, 만약 이 두 의지가 구분된다면, 즉 생명의지가 ‘살려는 힘의 의지 그 자체(Kraft als Kraft)’와 ‘힘을 (가급적 많이) 축적하려는 의지’(Akkumulation von Kraft)로 구분된다면, 쉬바이처는 생명의지를 전자 쪽에, 니체는 후자 쪽에 관심을 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생존을 위한 최소한 내지 적어도 상태유지라는 의미에서의 생명의지와 여러 종(種)간, 종내의 투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힘의 축적을 지향하는 생명의지는 같지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쉬바이처에게 있어 생명부정은 단순하게 생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긍정을 향한 노력, 생명개선, 생명의 상승 작용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결국 쉬바이처와 니체는 생명긍정과 생명부정의 긴장관계에 대하여 힘으로서의 생명의지라는 동일한 출발점을 갖지만, 각각 다른 길을 통해 결국 최종목표인 생명긍정을 통한 세계긍정이라는 곳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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