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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연 韓國傳統文化大學校 大學院 2017 국내석사
한반도 중서부지역은 마한의 소국들이 위치하고 있던 곳으로, 원삼국시대 분묘유적 출토품 중 원저단경호가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며 확인된다. 따라서 원저단경호는 이 지역의 원삼국시대 문화를 파악하는데 있어 주요한 자료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원저단경호는 원삼국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토기 기종으로 바닥이 둥글고 배가 부르며 목이 축약된 형태이다. 지금까지 원저단경호와 관련된 연구들은 중서부지역 원삼국시대 연구 등에서 대상 자료 중 하나로 활용되었으나 원저단경호라는 한 기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나 검토는 미진한 편이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원저단경호라는 한 기종에 집중하여 중서부지역 내에서 어떠한 출토양상과 특징을 가지는지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원저단경호의 동체부 형태, 구경부 형태, 타날문양을 속성으로 삼아 13개의 형식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공반유물 중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양상이 비교적 뚜렷한 유개대부호, 원저심발형토기, 원통형토기, 마형대구를 검토하여 중서부지역 원삼국시대 분묘 출토유물의 변화양상을 Ⅰ-1단계, Ⅰ-2단계, Ⅱ-1단계, Ⅱ-2단계, Ⅲ단계로 구분하였다. Ⅰ-1단계는 원저단경호 A형이 확인되는 2세기 전엽~중엽, Ⅰ-2단계는 A형이 이어지고 B형의 원저단경호가 등장하는 단계로 2세기 후엽, Ⅱ-1단계는 C형이 등장하고 B형과 D형의 원저단경호가 확인되며 지역적 차이가 확인되기 시작하는 단계로 2세기 말~3세기 전엽, Ⅱ-2단계는 B형과 D형의 원저단경호가 이어지며 늦은 시기에는 E형이 등장하여 지역적 차이가 이전 단계보다 뚜렷하게 확인되는 단계로 3세기 중엽~후엽, Ⅲ단계는 F형의 원저단경호가 등장하며 원저단경호가 점차 사라지는 단계로 4세기 전엽~4세기 중엽으로 추정하였다. 그리고 원저단경호 A형과 C형은 비교적 넓은 지역에서 확인되며 시기적인 차이를 가지며 등장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구경부 형태는 경기․충청 서북부지역에서 2a형, 충청 동북부지역에서 2b형인 것이 주로 보이므로 지역적 차이가 확인되며, 이는 원저단경호의 제작기법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중서부지역의 원저단경호는 다양한 형태가 시기와 지역을 달리하며 사용되었음이 확인된다. 이 지역은 분묘 부장 유물로 원저단경호가 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동질성이 있지만, 지역 내에서도 여러 마한 소국들이 위치하고 있어 권역별로 새로운 문화의 유입과 수용 양상에서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색인어】원저단경호, 중서부지역, 원삼국시대, 변천, 지역성 The small states of Mahan were situated in the Midwestern region of Korean Peninsula, where round-based short-neck jars were most excavated in the tomb relics of most Proto-Three Kingdoms. Round-based short-neck jars are thus important materials to figure out the culture of Proto-Three Kingdoms period in the region. Round-based short-neck jars first appeared during the Proto-Three Kingdoms period, being a type of pottery with a round base, full abdomen, and shortened neck. The present study categorized round-based short-neck jars into three groups according to the attributes of round body shapes, mouth forms, and paddling patterns. They were reviewed with pottery and metal artifacts whose changing patterns were relatively clear among their accompanied artifacts. Based on the results, the changing patterns of artifacts excavated in the tombs of Proto-Three Kingdoms in midwestern Korea were categorized into Ⅰ-1, Ⅰ-2, Ⅱ-1, Ⅱ-2, and Ⅲ stages. Types A and C of round-based short-neck jars were found in relatively wide areas and appeared with a time difference between them. As for the mouth forms, the 2a and 2b types were mainly found in Gyeonggi and northwestern Chungcheong and in northeastern Chungcheong, respectively, which indicates that they had regional characteristics, as well, and seems to be related to the manufacturing techniques of round-based short-neck jars. The findings confirm that the various shapes of round-based short-neck jars were used in midwestern Korean with time and area differences, which is estimated to derive from the presence of several small countries of Mahan in the region and the differences in the introduction and acceptance patterns of new culture by the zones in spite of the common characteristic that round-based short-neck jars were usually buried in the tombs along with the deceased in the region.
구교빈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4 국내석사
백제 토기를 대표하는 기종 중 하나인 고배는 백제 유적의 편년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어 왔다. 금강유역권의 백제 고배는 성행과 소멸 단계에 해당하며,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지역별 고배 양상 연구는 미진한 편이고, 고배의 변천과 소멸 요인 역시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금강유역권의 단계별, 지역별 고배 유입과 변천 과정과 함께 사용과 소멸 요인 등을 파악해 보았다. 백제 고배는 뚜껑 유무와 뚜껑받이턱과 구연부 형태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대각 형태, 배신 형태 등의 명목적 속성과 대각 위치, 배신 심도 등 계측적 속성으로 세분된다. 지역별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고배의 세부 형식을 살펴보고 6개 지역에서 지역별 단계를 설정한 후 각 단계를 조합했고, 이를 통해 금강유역권 고배의 유입과 소멸 시기를 6단계에 걸친 분기로 설정하여 변화 양상을 파악해 보았다. Ⅰ-1기(4세기 후엽~5세기 전엽)에는 한성기 중앙형식의 고배들이 지역을 달리하여 나타나고, Ⅰ-2기(5세기 중엽~475년)가 되면 또 다른 한성기 중앙 형식의 고배를 포함하여 가장 다양한 형식의 고배가 금강유역권에서 확인된다. Ⅱ-1기(5세기 후엽)에는 고배의 형식은 점차 단일화, 정형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Ⅱ-2기(6세기 전엽)에는 고배가 더욱 정형화되지만 점차 수량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Ⅲ-1기(6세기 중엽)에 이르면, 고배 수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Ⅲ-2기(6세기 후엽)에는 대각이 굽처럼 퇴화한 고배가 소수 확인되는데, 이때가 되면 고배는 과거처럼 배식기가 아닌 다른 용도로 전용된 것으로 보인다. 금강유역권에서는 외래계고배도 상당수 확인되었으며, 가마에서 출토되어 생산도 이루어진 점이 특징이다. Ⅰ기에 소가야 및 신라와 관련된 투창고배 등이 여러 지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며 Ⅱ기에는 여러 외래적 속성이 혼합된 고배가 제작되기에 이른다. 중국 문헌 및 그림 자료를 통해 보았을 때 백제 고배의 용도와 기능은 豆와 高足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豆와 高足盤은 배식기 중 주로 반찬용기로 사용되어 왔는데, 백제 고배 역시 동일한 용도와 기능을 가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백제 고배는 웅진기 후반부터 점차 감소하여 사비기에는 그 수가 매우 적어지며, 일반적인 배식기가 아닌 등잔·향로 등 다른 용도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인다. 고배의 소멸은 대부완을 비롯한 굽이 있는 토기의 등장과 성행과 관련되는데 고구려와 중국의 식문화가 백 제로 유입되면서 이들이 고배를 대체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즉, 고배는 높은 다리의 탁(卓)을 사용하는 반상문화가 정착됨에 따라 소멸된 것으로 판단된다. 주제어 : 백제, 고배, 금강유역권, 변천, 사용, 소멸
임효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4 국내석사
철제 무기류는 당대의 철기문화와 군사 조직 및 전투 방식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물질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철제 무기류의 발전은 고대 사회의 전쟁 양상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매우 크다. 기존의 철제 무기류에 관한 연구는 주로 개별 무기에 관한 형식학적인 분석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러나 고대 전쟁 양상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위해서는 철제 무기류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함께 시간에 따른 변화 양상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시간에 따른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확인되는 근거리 무기(철검, 철모, 철도)를 중심으로 철제 무기 조합의 변화 양상을 분석하였다. 장병기인 철모는 호서지역에서 철제 무기류가 출현하는 시점부터 확인되기 시작하여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보여준다. 반면, 단병기의 경우 호서지역 철제 무기류 출현 초기에는 철검의 형태로 등장하였다가, 3세기경에 점진적으로 환두도로 대체된다. 따라서 마한에서 백제에 이르는 전 시기에 걸쳐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보여주는 철모를 중심으로 형식을 분류하고, 이와 조합을 이루는 철제 무기 체계의 변천 양상을 파악하였다. 그 결과, 크게 4개의 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다. Ⅰ단계는 이단관식 철모(Aa1)의 소멸을 기준으로 Ⅰ-1단계와 Ⅰ-2단계로 세분된다. Ⅰ-1단계에 장병기인 철모는 이단관(Aa1)과 돌출관(Ba1)이 주류를 이루며 일반관+광형(Ca1)이 일부 공반된다. 또한 단병기로는 세경형 철검이 주류를 이룬다. Ⅰ-2단계에 철모는 돌출관(Ba1·Bb1)이 주류를 이루고 일반관+광형(Ca1)이 일부 공반된다. 단병기로는 세경형 철검이 지속되어 주류를 이룬다. Ⅱ단계는 철검이 소멸하고 환두도가 등장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구분하였다. 장병기인 철모는 일반관(Ca1·Cb1)이 주류를 이루며, 단병기는 무관·편관 환두도가 차례대로 출현하여 주류를 이룬다. Ⅲ단계는 백제식 철모가 호서지역에 유입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Ⅲ단계는 양관 환두도, 장식도, 광경형 철검의 등장 등을 기준으로 다시 Ⅲ-1단계와 Ⅲ-2단계로 세분된다. Ⅲ-1단계에 철모는 신부 너비가 좁아진 형태의 일반관(Cb1)과 축약관(Db1)이 주류를 이룬다. 또한 백제식 철모(Cb2·Db2)가 곡교천 유역과 서해안 권역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출현하기 시작한다. 단병기로는 무관·편관 환두도가 지속되어 주류를 이루며, 일부 목병도가 등장한다. Ⅲ-2단계에는 백제식 철모가(Cb2·Db2)가 주류를 이루어 대부분의 지역에서 확인된다. 단병기로는 편관·양관 환두도, 목병도가 주류를 이룬다. Ⅳ단계에도 백제식 철모(Db2·Eb2)가 주류를 이루며, 위신재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Ca2식 철모, 광경형 철검, 장식 환두도 등이 위계가 높은 분묘를 중심으로 확인된다. 단병기로는 양관 환두도, 목병도가 지속되어 주류를 이룬다. 호서지역에서는 3세기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철검과 철모 중심의 무기 체계에 큰 변화가 나타난다. 이 시기에 철검이 소멸하고 환두도가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중원 지역에서 사용되던 무기 기종과 병종이 ‘대방군의 한예 공격’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호서지역에 유입된 결과로 해석된다. 또한, 환두도는 보병 전술에 최적화된 무기로서, 보병 전술이 주를 이루었던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상 빠르게 수용되어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호서지역의 백제화 과정은 ‘백제식 철모’의 출현과 확산이라는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추론하였다. 백제식 철모는 호서지역 내에서 지역별로 시기를 달리하여 점진적으로 유입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를 통해 마한에서 백제로의 이행 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4세기 전엽~중엽에는 곡교천 유역과 서산 지역을 중심으로 백제식 철모가 확인되기 시작하며, 4세기 후엽에는 호서지역 전역에서 백제식 철모가 확인된다. 이는 백제가 기리영 전투 이후 쇠약해진 목지국(곡교천 유역)을 4세기 전엽~중엽에 병합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서산 지역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였음을 나타낸다. 이후 4세기 후엽경 근초고왕의 영역 확장에 따라 미호강 유역과 금강 중류역까지 백제의 영향력이 확산된 것으로 파악된다.
백제 사비기 대상파수부토기는 ‘대상파수부호, 자배기, 시루, 동이형토기, 대상파수부직구호’로 구성된다. 기존의 대상파수부토기 연구는 동체부에 대상파수가 달려있어 백제 사비기 신기종 중 고구려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대상파수부토기의 기초적인 연구나 전반적인 변천에 대한 연구가 미비하였다. 이에 본고에서는 대상파수부토기의 전반적인 변천을 살펴보고 대상파수부토기의 출현과 기능을 추정해 대상파수부토기가 백제 토기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파악해 보았다. 이를 위해 구연부 외반 정도와 상면 형태, 구순부 형태 등을 조합해 대상파수부호 6개, 자배기 5개, 시루 4개, 동이형토기 5개, 대상파수부직구호 4개의 형식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공반관계와 선후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통해 4단계에 걸쳐 웅진〜사비기 금강유역에서 출토된 대상파수부토기의 변화 양상을 파악하였다. Ⅰ단계는 대상파수부호 A형식만 확인되는 5세기 후엽∼6세기 전엽, Ⅱ단계는 대상파수부호와 자배기가 확인되고 대상파수부호 B2형식과 자배기 B2형식이 주류를 이루며 대상파수부호 B1, C1형식과 자배기 C1형식이 나타나는 6세기 중엽, Ⅲ단계는 대상파수부토기의 모든 기종이 확인되고 대상파수부호·자배기·시루 C2형식이 주류를 이루며, 시루 B2, C1형식, 동이형토기 A형식, 대상파수부직구호 A1, A2, B1형식이 확인되는 단계로 6세기 후엽〜7세기 전엽, Ⅳ단계는 대상파수부호·자배기·시루 D형식, 동이형토기 B형식, 대상파수부직구호 B2형식이 보이는 단계로 7세기 중엽으로 추정하였다. 단계별로 출현하는 대상파수부토기를 통해 수용과 정착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Ⅰ단계는 주변 고구려 문화의 영향을 받아 대상파수부호가 출현했으며, Ⅱ단계는 백제가 한강유역으로 진출하면서 6세기 전반 아차산 보루군에서 확인되는 고구려 토기의 영향을 받아 대상파수부호와 자배기가 백제로 수용되었다. Ⅲ단계는 대상파수부토기의 대상파수토기 전 기종이 등장하고 백제 도성 및 중요 거점지역에 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국가 주도로 받아드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구려 토기를 통해 대상파수부토기의 기능을 살펴보고 대상파수부토기가 등장하기 이전 한성·웅진기 토기와 사비기의 대상파수부토기의 각 기능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 한성·웅진기 장란형토기는 자비용의 솥과 매장용의 대상파수부호, 한성기 동이는 자비용의 동이형토기와 운반용 및 세척용의 자배기, 한성·웅진기 저장·이동용 호와 옹은 주 기능이 운반용인 대상파수부호와 저장용인 대상파수부직구호, 단경호로 용도가 분화된 것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한성·웅진기 토기의 기능이 분화하는 과정 속에서 고구려 토기 중 대상파수부토기의 기종뿐만 아니라 기능도 수용되어 백제 사비기 토기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동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6 국내석사
도로는 사람과 물자의 운송, 대규모 의례행렬의 통행을 담당하는 중요 한 시설이다. 특히, 도성과 지방에서 공간을 구획하며 도시의 배수체계와 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 중요도가 크다. 백제 도로는 축조 공법, 측구, 경사, 노폭 등 다양한 속성이 확인됐다. 그동안 축조 공법을 중심으로 형식을 분류하고 다른 속성들을 검토했다. 축조 공법은 시간적․위계적 차이로 이해되었지만 본고에서는 도로의 축조 공법이 지형에 따라 선택되는 경향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백제 도로는 축조 공법과 측구의 유무에 따라 6개의 형식으로 분류하였 다. 이를 노폭, 주변 유적과의 관계, 도로 전체적인 축조 방식에 근거하여 형식들 간의 변천양상을 파악한 후 백제의 도읍기에 따라 3단계의 단계를 설정하였다. Ⅰ단계는 한성기에 해당하며 2기로 세분된다. 한성기 전반은 백제 이전 시기부터 사용된 ⅠA, ⅡⅰA형식이 확인되며 도성에서 ⅠA, Ⅰ B, ⅡⅱB형식 도로가 등장한다. 한성기 후반에는 측구를 설치한 도로가 지방에서 확인되며, 의왕 내손동유적, 세종 나성동유적, 나주 월양리 구양 유적 등에서 ⅠB, ⅢB형식 도로가 등장한다. Ⅱ단계는 웅진기에 해당하며, 도성과 지방에서 웅진기 도로가 확인되는 사례가 매우 적어 구체적으로 논하기는 어렵다. Ⅲ단계는 사비기에 해당하며 2기로 세분된다. 사비기에는 기본적으로 한성기 도로가 이어진다. 전반에는 성토식 도로가 다수 확인된다. 측구에 석재, 목재를 사용하기도 하며, 별도로 암거시설이 추가된 복합적인 도로 배수 체계를 구축한다. 후반에는 ⅡⅱB형식을 제외한 모든 공법과 배수시 설, 노폭 유형이 확인된다. 특히 도로의 대형화가 두드러지며, 도성 서남 쪽 일대에서 ⅡⅰA형식 도로이 다수 확인된다. 다음으로 도로의 유형을 간선도로, 지선도로, 순환도로, 운송전용도로로 구분하여 시기별 도로체계를 고찰해 보았다. 간선도로는 도시 내부를 구 획하고 주요 유적을 연결하는 중대로 이상의 도로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노면을 유지․관리가 이루어진 ⅠB, ⅡⅱB, ⅢA, ⅢB형식이 간선도로에 해당한다. 순환도로는 『周禮』「考工記」의 환도(環涂)와 같 은 개념이다. 운송전용도로는 물자 운송을 위한 수레가 다닌 도로이다. 이는 노면이 안정적으로 관리되지 않아 보행과 승거의 통행이 어려운 도 로(ⅠA, ⅡⅰA형식)이다. 이는 노면 종단경사도를 크게 하여 배수했던 것 으로 판단되며 경사가 작은 도로는 차로 중앙 수혈렬을 이용한 발판 시설 이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바탕으로 시기별 도로체계를 살펴보면, 한성기에는 왕성 내부에서 간선도로와 운송전용도로로 사용된 순환도로가 확인되었다. 이는 정연하 지는 않지만 『周禮』「考工記」의 경위도(經緯涂)와 환도(環涂)의 모습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자 한 양상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한성기 후반 이러한 양상이 지방에서도 확인되는데, 간선도로로 공간을 구획하고 마을 외곽으 로 운송전용도로가 돌아가는 양상이 세종 나성동유적에서 확인된다. 사비기 전반에 중대로와 대로를 이용하여 도성의 골격을 갖추는 간선도 로가 개설되었다. 관북리-동나성을 잇는 금성산 북로를 필두로 도성의 서 쪽과 북동쪽에도 간선도로가 개설되었다. 사비기 후반에는 전반의 노선이 유지되며, 금성산 남로와 도성 서남쪽 에서 물자 운반용 도로가 추가되었다. 이는 정림사지, 궁남지, 화지산유적 등의 조성 및 변화와 금강을 이용한 수운 교통과 연계되어 있다고 판단되 며, 7세기 이후 익산 개발과도 관련이 있다고 판단된다. 사비기의 도로체계는 큰 개념에서 경도(經涂)와 환도(環涂)로 구분되고 세부적으로 보행, 승거, 물자 운송 공용 도로(ⅠA, ⅠB, ⅢB, ⅢB형식)와 물자 운송 특화 도로(ⅡⅰA형식)로 구성된 촘촘한 도로망이 구성된 것으 로 판단된다. 주제어: 백제, 도로, 간선도로, 운송전용도로, 도로체계
김소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6 국내석사
This study presents a comprehensive examination of bricks (jeon, 塼) excavated from the Sabi capital area of Baekje, focusing on their typological classification, chronology, patterns of use, and factors underlying change. Previous research has concentrated on the construction techniques of brick-chambered tombs of the Ungjin period and on the iconographic interpretation and dating of the patterned bricks from Oe-ri. Detailed typological classification and chronological analysis of plain bricks from the Sabi period based on morphological and metric attributes have yet to be undertaken, and no comprehensive study has addressed the overall production and consumption patterns of bricks inclusive of patterned bricks and box-shaped bricks. In this study, typological classification was carried out by examining attributes of 446 brick specimens, including planar form, size, decoration placement, decoration type, and manufacturing traces. Bricks are broadly divided into solid bricks and hollow bricks; solid bricks are further subdivided into patterned bricks and plain bricks according to the presence or absence of decoration. Plain bricks were classified, based on complete specimens, by length-to-width ratio into elongated rectangular (Plain Type I), rectangular (Plain Type II), and square (Plain Type III) forms, each of which was further subdivided by size into large and small (Ia·Ib), large, medium, and small (IIa·IIb·IIc), and large and small (IIIa·IIIb) types, respectively, with the medium and small rectangular types each further subdivided by thickness into two types. Patterned bricks were classified according to decoration placement and type into side-decorated bricks (Patterned Type I), partially decorated bricks (Patterned Type II), and fully decorated bricks (Patterned Type III). Chronology was established primarily on the basis of kiln assemblages reflecting the point of brick production, supplemented by consumption-site data with clear excavation contexts and associated finds. This yielded a four-phase sequence — the late Ungjin period, Sabi Phase 1, Sabi Phase 2, and Sabi Phase 3 — broadly consistent with the pattern of change observed in Sabi-period kilns. Comparative analysis with Chinese and Silla examples was employed to infer patterns of use of bricks in the Sabi capital area. Bricks were used primarily in tomb construction during the Ungjin period, but their applications shifted toward building foundations, flooring, and decorative elements during the Sabi period. As the context of use shifted from tombs to buildings, patterned bricks moved from a method in which the narrow side was set upright to display the pattern toward one in which the pattern was stamped across the wide upper surface; accordingly, their function diversified into flooring material, laid flat, and wall decoration, mounted upright on a separate supporting structure. As wall decoration, box-shaped bricks with a supporting frame and, subsequently, Patterned Type III bricks with a groove-and-join structure appeared in succession. Plain bricks likewise became unified toward building use following the disappearance of brick-chambered tombs; the rectangular form was added to the existing elongated rectangular and square forms, and after a period of coexistence, the rectangular form gradually became dominant. Size likewise diversified before gradually increasing, a change interpreted as resulting from the combined effect of the practical need to efficiently cover larger areas as bricks came to be used more for flooring than for foundations, and the large-scale construction undertaken across the Sabi capital area in the latter part of the Sabi period. The changes in brick typology and function are thus understood not as simple transformation but as a reflection of the development of Baekje architectural technology. 본고는 백제 사비도성 일대에서 출토된 전(塼)을 대상으로 형식분류와 편년, 사용 양상과 변천 요인을 종합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백제 전에 대한 선행연구는 웅진기 전실묘의 축조 기술과 외리 문양전의 도상 해석과 편년에 집중되었다. 사비기 무문전에 대한 형태적·계측적 속성에 기반한 세부 형식분류와 편년 검토가 미진한 편이고, 문양전·상자형전을 포함한 전 전반의 생산·소비 양상을 종합적으로 다룬 연구도 다소 부족하다. 본고에서는 분석 가능한 446점의 전에 대하여 평면형태·크기·시문위치·시문형태·제작흔 등의 속성을 검토하여 형식분류를 진행하였다. 전은 크게 실전과 공심전으로 구분되며, 실전은 문양 유무에 따라 문양전과 무문전으로 나뉜다. 무문전은 완형 개체를 기준으로 장단비에 따라 세장방형(무Ⅰ)·장방형(무Ⅱ)·방형(무Ⅲ)으로 분류하였으며, 각 평면형태 내에서 크기 차이에 따라 각각 세장방형 대형·소형(무Ⅰa·무Ⅰb), 장방형 대형·중형·소형(무Ⅱa·무Ⅱb·무Ⅱc), 방형 대형·소형(무Ⅲa·무Ⅲb)으로 세분하였고, 장방형 중형·소형은 두께에 따라 다시 각각 두 형식으로 나누었다. 문양전은 시문 위치와 시문 형태에 따라 측면시문전(문Ⅰ)·부분시문전(문Ⅱ)·전면시문전(문Ⅲ)으로 구분하였다. 전의 편년은 생산 시점을 반영하는 가마 출토품을 기준으로 삼고, 출토 맥락과 공반 유물이 명확한 소비유적 자료로 보완하였다. 그 결과 웅진 후기·사비 1기·사비 2기·사비 3기의 네 단계가 설정되었으며, 이는 사비기 가마의 변화 양상과 대체로 궤를 같이한다. 이를 바탕으로 백제 사비도성 일대 전의 사용 양상을 추론하기 위해 중국·신라의 사례를 비교 검토하였다. 전은 웅진기에는 주로 고분 축조에 사용되다가, 사비기에 들어서면서 건물의 기단·바닥·장식재로 용도가 변화하였다. 그에 따라 문양전은 사용 맥락이 고분에서 건물로 바뀌면서, 측면에 문양을 시문하는 방식에서 넓은 상면에 문양을 시문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고, 후자의 경우 눕혀서 쓰는 바닥재와 별도 구조를 갖추어 세워서 쓰는 벽면 장식재로의 용도 분화도 이루어졌다. 벽면 장식재로는 받침 구조를 갖춘 상자형전과 홈 결구 방식을 갖춘 문양전(문Ⅲ)이 차례로 출현하였다. 무문전 역시 전실묘 소멸과 함께 건물 용도로 일원화되면서, 기존 세장방형·방형 위주의 평면형태에 장방형이 더해져 혼재하다가 점차 장방형이 주류로 자리잡았다. 전의 크기 또한 다양하게 나타나다가 점차 대형화가 되는데, 이는 기단재보다 바닥재로서의 사용이 확대되면서 넓은 면적을 효율적으로 덮기 위한 실용적 요구와 사비기 후반 도성 일대의 대규모 건축 등이 맞물린 결과로 추정된다. 전의 형식과 용도 변화는 백제 건축의 성행, 기술 발달과 관련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노민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6 국내석사
백제 취락 연구는 그동안 원삼국시대에서 한성기로 이어지는 주거 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사비기까지의 연속적인 변천 과정이나 중요 지방과 주요 유적을 제외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백제 전 시기의 고고학적 양상이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익산지역을 대상으로 취락 유구의 속성 분석과 편년을 통해 단계별 변천양상을 파악해보았다. 익산지역 백제 취락의 주거지⸱건물지, 원형수혈, 가마를 주요 분석 대상으로 설정하고, 각 유구의 속성을 검토하여 형식분류를 진행하였다. 주거지⸱건물지는 축조기법에 따라 수혈주거지와 지상건물지로 분류하고, 원형수혈은 배치형태와 단면형태, 가마는 소성부의 평면형태와 규모를 기준으로 분류하였다. 이후 시기적 변화 양상이 뚜렷한 가마 출토유물을 기준으로 주거지⸱ 건물지와 원형수혈 출토유물을 통해 4∼7세기를 6단계로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익산지역 수계인 금강유역권과 만경강유역권으로 구분하여 단계별 전개 양상을 파악해보았다. Ⅰ단계는 두 유역권 모두 백제 중앙의 영향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Ⅰ-2단계에는 금강유역권의 경우 위세품이, 만경강유역권의 경우 한성기 도성지역 중앙 양식의 유물이 확인되는 등 두 유역권 모두 성격이 다른 형태로 중요 지역으로써의 역할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Ⅱ단계는 두 유역권의 양상이 대비되어 확인된다. 금강유역권은 입점리⸱웅포리 고분군의 위세품과 횡혈식석실묘의 수용, 출토유물을 통해 Ⅱ-1단계를 기점으로 백제 중앙의 기술과 시스템이 유입되었다고 판단된다. 만경강유역권은 벽주건물지(Bb1형식)가 새롭게 확인되며, 원형수혈 급증과 더불어 독립적인 저장공간으로 분화되는 양상이 확인되어 중앙의 영향이 금마면 및 왕궁리 일대 유적을 기점으로 유지되었다고 보인다. Ⅲ단계는 두 유역권 간 기능과 위계 차이가 더욱 뚜렷하게 확인된다. 금강유역권에서 주거지⸱건물지가 벽주건물지인 Bb2형식만 나타나는 반면, 만경강유역권에서는 모든 형식이 확인된다. 특히 왕궁리 건물지와 유사한 형식의 초석건물지인 Bc형식이 확인된다. 원형수혈은 수량이 급감하는 가운데 유역권별 형식 차이가 유지되며, 가마 역시 만경강유역권 내에서만 Aa⸱Ba형식이 확인된다. 무덤 자료에서도 금강유역권에서는 성남리고분군 등이 확인되었으나, 만경강유역권에서는 화강암제 판석과 장대석을 사용한 쌍릉, 관모테와 금동이식이 출토되어 위계가 높은 사례들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만경강유역권으로 중심권역이 이동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종합하면, 익산지역의 취락은 단계가 진행됨에 따라 두 유역권에서 시작하여 금강유역권을 거쳐 다시 만경강유역권 순으로 중심권역이 점진적으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백제 중앙 세력이 익산지역을 점유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전략적 거점 이동의 결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