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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지향하는 한국교회의 개혁방향에 관한 연구 : 청교도정신을 바탕으로
김성철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2001 국내석사
지금까지 살펴 본대로 한국교회는 미국 초창기 선교사들의 청교도 정신을 이어받으면서 성장해 왔다. 특히 한국교회 안에 새겨진 몇 가지 청교도 정신은 한국교회를 성장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반면 부정적인 영향도 있음을 위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가 청교도들의 개혁정신을 이어받았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본인은 이 질문에 대해서 부정적임을 밝힌다. 한국교회는 청교도의 영향력을 받았으나 청교도들의 개혁정신을 이어받지는 못했다. 그것은 청교도 운동이 일어나게 된 영국의 시대적 상황과 한국교회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역사적 상황이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상대적 상황 인식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것은 21세기를 시작하는 한국교회가 거센 개혁의 요구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앞부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교회는 위기 속에 있다. 모 교단의 총회장 금권선거는 교회의 부정부패에 대한 이미지를 깊이 각인 시켰다. 요즘은 대형교회의 목회자 세습문제로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MBC의 PD 수첩,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교회의 기복신앙과 부패에 대해서 심각하게 보도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개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 그러면 21세기를 지향하는 한국교회는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 본인은 이것에 대해서 한국교회의 정신이기도 한 청교도의 개혁정신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왜냐하면 한국교회는 청교도의 경건과 성경중심의 문화는 받았지만 진정한 청교도들의 정신인 교회 개혁 정신은 이어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청교도의 개혁 정신을 어떻게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한 정신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첫째, 성경의 원리를 삶 속에 적용했던 청교도들의 실험정신을 본받아야한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도 너무 이원론적 신앙에 물들어있다. 제2회 복음과 상황 포럼에 기조발언을 한 이만열 교수는 이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속나라의 구분, 하나님의 일과 세속적인 일의 구분은 신자들이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 직장생활이나 기업활동 등 소위 세속적인 일에 대해 기독교적인 의미 부여를 불가능하게 할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러한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독교적 윤리의식과 죄의식을 심각하게 마비시켜 버린다. 여기에서 우리는 청교도들의 성경적인 원리를 삶 속에 적용했던 성경과 세속의 일원론적인 청교도들의 신앙을 배워야 한다. 특히 성경의 원리를 경제, 정부, 가정, 교회, 인생, 성, 자연, 교육, 그리고 그 밖으로 모든 문제에 적용시켰던 청교도들의 실험정신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이원론적으로 빠진 것은 지나치게 성경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생각하는 근본주의적 영향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이제 성경의 원리를 모든 문제에 적용했던 청교도들의 실험정신을 배우는데서 시작되어야할 것이다. 둘째, 개인경건의 개혁에서 시작해서 가정과 사회와 국가로 변혁을 시도한 청교도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개혁하면 거창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청교도들도 교회 개혁을 처음에는 반교회정치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체제에서 완전히 정치에 패배한 이후 그들의 관심을 개인 경건 운동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사회와 국가 전체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이것이 1640년 영국혁명의 발판이 되었고 올리버 크롬웰의 청교도 통치기를 맛보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의 심각한 위기 앞에서 우리는 당황하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해 한다. 그러나 개혁은 먼저 개인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정으로 그리고 서서히 사회전체로 저변 확대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개혁의 힘은 개인의 경건한 삶의 실천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청교도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어떻게 보면 성도들의 개인 신앙의 위기인 것이다. 개혁의 시작은 이런 개인의 신앙 각성에서 시작되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그 정신이 서서히 가정과 사회로 저변확대 되어야 한다. 셋째, 다음세대의 교육을 위해 헌신적인 투자를 했던 청교도들의 교육하는 안목을 배워야 한다. 앞에서도 살폈던 것처럼 한국교회의 신학교육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99년 11월 16일 국민일보에서는 교회갱신협의회 신학위원회가 서울 신반포교회에서 개최한 '21세기 신학교육을 위한 공개 심포지엄'의 내용을 이렇게 보도했다. “한국교회의 신학은 신학교 난립으로 인한 교육수준의 저하, 신학교와 교회간의 유기적인 협력 부족, 신학대학교와 대학원의 교과과정 중복 등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런 한국교회의 신학교육은 현재 목회자의 수준을 저하시켜 한국 종교계에서도 최하위의 수준임을 앞에서의 자료를 통해 살펴보았다. 이제 한국 교회은 교육의 개혁에 눈을 돌려야 한다. 청교도들은 그들의 개혁정신을 교육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이어나갔다. 처음 청교도의 지도자들은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대학을 중심으로 청교도의 정신을 심어나갔다. 미국 개척기의 청교도들은 교역자 양성을 중심으로 1636년에 하버드 대학이 설립되었고, 1693년 버지니아에서는 윌리엄 메리 대학을 1746년에는 뉴저지에 프린스턴 대학을 설립하였다. 이런 청교도들의 교육에 대한 열심 때문에 100년 넘게 개혁의 이상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교회가 개혁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교육에 대한 헌신적인 투자를 해 나갈 때 21세기에도 새로운 도약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교회를 성경적인 구조로 개혁하고자 했던 청교도들의 개혁정신을 배워야 한다. 청교도들은 당시 가톨릭의 요소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영국 국교회를 성경적인 교회 구조로 개혁하고자 했다. 이런 그들의 이상은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를 그리고 나중에 조합교회와 회중교회를 해산시켰다. 중요한 것은 교회구조를 성경적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그들의 개혁정신이다. 청교도 운동은 비성경적인 교회를 보다 순수하게 성경대로 개혁 해보고자 하는 이상에서 시작되었다. 한국교회는 과연 얼마나 성경적인지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물량주의와 개교회주의 그리고 담임목사 세습으로 온통 사회문제화 되다시피 한 한국교회는 과연 성경적인 원리에서 교회가 운영되고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적인 구조로 다시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개혁은 주재용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교회 구조에 대한 개혁이다. 성경적인 구조를 인간의 죄악으로 타락시켰다면 청교도들이 품었던 열심으로 개혁의 나팔을 불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교회 개혁의 이상을 품고 모진 박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신대륙에서 자신들의 개혁의 꿈을 이룬 청교도들의 이상을 배워야 한다. 청교도들은 개혁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때로는 순교를 각오하면서 때로는 감옥으로 들어가면서도 그들의 개혁의 이상은 시들지 않았다. 결국 시민혁명과 명예혁명으로 그들의 이상을 이루어 내었다. 특히 신대륙에서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이상은 오늘 미국이라는 나라를 만들어 내었다. 우리 한국교회 안에 청교도들이 품었던 위대한 교회의 이상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한국교회도 위대한 이상을 가져야 한다. 특히 21세기를 지향하는 시점에서 한국교회가 이 땅에서 성취해야 할 이상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상을 실현하고자 개혁자들이 되어서 나가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개혁교회의 원리는 "교회는 항상 개혁하여야 한다."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단호한 개혁 작업을 착수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물량주의, 기복신앙, 개교회주의, 신학교육의 질적 저하로 인한 목회자의 자질부족, 그리고 교회의 세습문제와 각종 부정부패의 비윤리적 문제 등 심각한 중병에 걸려있다. 성경보다는 물질이 앞서 있고, 사회의 비리 척결을 외치기에는 교회 안의 비리가 너무나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어 건전한 사회건설의 첨병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 되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런 자신의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과감한 개혁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이 수술을 위한 개혁의 칼로 본인은 청교도의 개혁정신을 제시했다. 청교도들의 개혁의 이상인 교회를 보다 순수하게 하고자 했던 그들의 개혁의 열망을 우리가 품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청교도 정신을 재조명하고 개혁정신으로서의 청교도 정신을 이어받아서 21세기를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다가오는 통일의 새 시대에 대처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지워진 개혁의 사명이다.
신학대학생의 자기존중감과 자기분화와 진로결정수준 간의 상관관계 연구
정명숙 호남신학대학교 기독교상담대학원 2011 국내석사
본 연구는 진로결정단계에 있는 신학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자기존중감과 자기분화가 진로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봄으로써 신학대학생들의 진로지도나 진로상담에서 필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이를 위해 자료 분석은 먼저 신학대학생의 인구사회학적 통계를 빈도분석을 통해 살펴보았고 인구사회학적 요인들과 자기존중감, 자기분화, 진로결정수준 간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평균, 표준편차, 차이분석, 일원변량분석 등을 통하여 검증하였다. 또한 자기존중감과 자기분화, 진로결정수준간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상관관계분석을, 자기존중감과 자기분화가 진로결정수준에 미치는 상대적 영향력을 파악하기 위해 다중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이상과 같은 연구과정을 통하여 얻은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신학대학생의 인구사회학적 요인은 자기존중감에 영향을 미친다. 학년에 따른 자기존중감 차이분석을 위해 일원변량분석을 실시한 결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나타냈으며, 성별에 따른 차이검증에서도 정적 상관관계가 있음으로 나타났고, 신학대학 진학동기에 따른 일원변량분석에서도 자신의 선택에 의해 대학을 진학한 학생이 다른 사람의 권유에 의해 진학한 학생보다 자기존중감이 높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형제 순위에서는 외동아이가 다른 형제 순위의 학생들보다 자기존중감이 더 높으며, 부모의 학력관계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학력이 높을수록, 월수입이 높을수록 학생들의 자기존중감도 높은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부모님이 모두 기독교인 가정, 부모 모두 비기독교인 가정, 한쪽 부모가 기독교인 가정의 순서로 자기존중감이 나타남으로써 부모님 신앙의 일치성이 자녀의 자기존중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하였다. 둘째, 신학대학생의 인구사회학적 요인과 자기분화와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학년별로 유의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검증되었고 성별에 의한 차이에서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높게 나타났다. 부모님 생존과의 상관분석에서는 자기분화에 영향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부모와의 동거여부에서도 자기분화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부모의 종교와, 아버지와 어머니의 학력에서도 동일하게 영향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가정의 소득수준, 신학대학에 진학하게 된 동기에서도 역시 자기분화수준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인구사회학적 요인은 자기분화에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셋째, 신학대학생의 인구사회학적 요인은 진로결정수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성별에 따른 진로결정수준과의 차이검증에서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진로결정수준이 더 높게 나타났으며, 대학진학 동기와 진로결정수준과의 일원변량분석에서 자신의 선택으로 신학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타인의 권유에 의해 진학한 학생보다 진로결정수준이 높았다. 넷째, 신학대학생의 자기존중감과 진로결정수준과의 상관관계분석에서 자기존중감은 진로결정수준과 양(+)의 상관관계를 갖고 있으며, 자기존중감이 진로결정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지 알아보기 위한 다중회귀분석 결과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입증 되었다. 다섯째, 신학대학생의 자기분화와 진로결정수준과의 상관관계 분석결과, 정서인지분화와 가족투사, 가족퇴행이 유의한 확률로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또한 자기분화의 정도가 진로결정수준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중회귀분석결과, 자기분화의 하위요인 중 가족퇴행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나타남으로써 자기분화의 수준이 높을수록 진로결정수준이 높은 것으로 검증되었다.
칼슈타트 종교개혁 신학의 신비적 급진성에 관한 연구 : 내려놓음(Gelassenheit) 개념을 중심으로-
김승연 호남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2024 국내박사
칼슈타트 종교개혁 신학의 신비적 급진성에 관한 연구 : 내려놓음(Gelassenheit) 개념을 중심으로 김승연 신학과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본 논문은 종교개혁자 안드레아스 루돌프 보덴슈타인 폰 칼슈타트 (Andreas Rudolff Bodenstein von Karlstadt)의 개혁 신학의 급진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칼슈타트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함께 초기 비텐베르크 개혁을 이끌었으며, 후기에는 스위스 종교개혁에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토마스 뮌처, 츠비카우 예언자 그리고 아나 뱁티스트 등과 같은 라디칼 개혁자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루터와 츠빙글리(Ulrich Zwingli) 등의 주류 개혁자들이 그들에게서 분 리된 라디칼 그룹을 수용하지 못하고 서로 대립했던 것과 비교할 때, 칼 슈타트의 개혁 신학은 종교 개혁사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임이 분명하다. 칼슈타트의 개혁은 주류 종교 개혁자들의 신학을 섭렵하고, 그들의 이론 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한계를 극복하는데서 출발하였다. 즉, 개혁 사상의 현실적인 적용을 깊이 숙고한 끝에 자신만의 신학 사상으로 확립 하는 과정에서 그의 개혁은 급진적으로 전개되었다. 칼슈타트 개혁 사상의 급진성을 규명하는 작업은 무엇보다도 그의 신 학이 형성된 과정을 근거로 살펴보아야 한다. 칼슈타트의 개혁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와 요한네스 타울러(Johannes Tauler)를 들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으로 스콜 라 신학에서 벗어나 내적인 신앙에 집중하는 개혁적 사고로의 전환을 가 져올 수 있었다면, 요한네스 타울러 신학, 특히 ‘내려놓음 (Gelassenheit)’ 사상은 신앙에서의 근본적인 측면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철저하고 원칙적인 방법으로 실행하게 했다. 1517-1519년 타울러의 설교집을 주해하는 과정에서 내려놓음 (Gelassenheit) 사상을 접한 칼슈타트는 1520년 파문위협교서 발표로 로 마 가톨릭교회로부터 공식적으로 분리된 이후 본격적으로 내려놓음 (Gelassenheit)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했다. 칼슈타트는 하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포기한 사람을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보았는데, 이러한 입장은 곧 반(反)성직자중심주의(Anticlericalism)와 미사와 성상 숭배 등의 로마 가톨릭 교회의 관례 비판으로 이어졌다. 또한 그는 중생 의 중요한 전제로 ‘내려놓음’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교회 내의 평등과 신 앙의 자유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루터의 만인사제직론과 비교된다. 또 한 성례전의 중심에 중생의 내적 경험과 영적 고난을 배치하여 성만찬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정립하였다. 나아가 그는 중생한 신자들을 통한 개 혁을 열망했는데, 이를 교회와 종교의 영역으로 한정짓지 않고, 기독교적 도시를 구상하여 사회 개혁을 도모하였다. 그가 추구하는 기독교 도시란 내적으로 거듭난 참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그리고 그들이 모인 도시를 지배하는 기독교적 덕목, 즉, 내려놓음(Gelassenheit)을 기반으로 한 덕이 구현되는 사회를 말한다. 이처럼 만인사제직론, 중생과 성화 그리고 성만찬론에서 내려놓음 (Gelassenheit) 사상의 적용은 다른 개혁자들과 구별된 칼슈타트적인 특 징을 부여하였다. 위의 세 가지 개혁 사상은 본래 루터의 신학적 개념에 서 출발하였지만 칼슈타트에게 이르러 그 실천적인 급진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는 철저하게 타울러의 신비주의, 즉 내려놓음(Gelassenheit) 사 상의 영향 아래에서 칼슈타트의 급진적 개혁 사상이 발전되었음을 보여 준다. A Study on the Mystical Radicality of Andreas Bodenstein von Karlstadt, focused on the concept of "Gelassenheit" Kim, Seung Yeon Department of Theology Honam Theological University & Seminary This dissertation aims to reveal the radicality of the Reformation theology of the Reformer Andreas Rudolff Bodenstein von Karlstadt. Karlstadt led the early Wittenberg Reformation with Martin Luther, and later influenced the Swiss Reformation. In addition, he had close relationships with radical reformers such as Thomas Müntzer, Zwickau Prophets, and Anabaptists. Compared to the mainstream reformers such as Luther and Zwingli, who could not accept the radical groups that separated from them and opposed each other, Karlstadt's Reformation Theology is clearly a very unique case in the history of religious reform. Karlstadt's Reformation began with studying the theology of the mainstream Reformers and the limitations they found in putting their theories into practice. In other words, his reforms developed radically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his own theological ideas after deeply considering the realistic application of reformed ideas. First of all, the task of identifying the radicality of Karlstadt's Reformed thought must be examined based on the process by which his theology was formed. Augustinus and Johannes Tauler were two of the most influential figures in Karlstadt's reform thought. Whereas Augustine's theology led to a shift in Reformed thinking away from scholastic theology and towards an inward focus on faith, Johannes Tauler's theology, especially the idea of ‘Gelassenheit’, led to a focus on the fundamental aspects of faith and its practice in a thorough and principled way. Karlstadt came across the idea of Gelassenheit while exegeting Tauler's sermon collections in 1517-1519, he published works on the subject in earnest after he formally separated from the Roman Catholic Church in 1520 with the publication of the Threat of Excommunication. Karlstadt considered a person who laid down and renounced himself in God as a true Christian, and this position soon led to criticism of anti-clericalism and the practices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such as mass and veneration of icons. He also emphasized ‘Gelassenheit’ as an important prerequisite for regeneration. Here, the concepts of equality within the church and freedom of faith appear, which is compared to Luther's theory of 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In addition, he established a new understanding of the Lord's Supper by placing the inner experience of regeneration and spiritual suffering at the center of the sacrament. Furthermore, he aspired to reform through regenerated believers, which he did not limit to the realm of the church and religion, but sought social reform by envisioning a Christian city. His definition of a Christian city is a gathering of true, internally renewal Christians, and a society in which Christian virtues, namely those based on ‘Gelassenheit’, dominate the city in which they gather. In this way, the application of the idea of ‘Gelassenheit’ in the theory of 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regeneration, sanctification, and the Eucharist gave it a Karlstadt-like characteristic that distinguished it from other reformers. The three reforming ideas above were originally Luther's theological concepts, but were able to recover their practical radicality under Karlstadt. This shows that Karlstadt's radical reform ideas were developed thoroughly under the influence of Tauler's mysticism, that is, the idea of ‘Gelassenheit’.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와 모스크바장로회신학대학교의 교회개척
한재희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2001 국내석사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 할 수 있다. (1) 서론부분에서는 다음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오늘날까지 수행해 온 선교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교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안으로 교회의 진정한 선교를 위해서 선교의 근원을 하나님 자신이라는 점과 선교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점에서 시작했다. 연구방법으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와 하나님의 선교를 찾으려했다. 연구절차로는 러시아교회 특히 모스크바장로교 신학대학교에 의해서 개척된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러시아 교회개척을 살펴보았다. (2) 교회론의 변화에서 교회의 정의를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찾고자했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물론 이것은 사도 바울이 본 교회이다. 여기서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과 교회는 제도가 아니라 에클레시아인 하나님의 백성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성령의 전안에서 교회의 속성을 갖는다. 교회의 속성은 하나된 교회로서 하나됨과 거룩한 교회로서 거룩성과 보편적인 교회로서 보편성과 그리고 사도적인 교회의 사도성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사도성 안에서 계속되는 보냄을 갖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부르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며 성령의 전이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로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선교적인 사명을 수행하는 가운데 교회의 존재의 근거를 갖는다. 과거의 선교에 있어서 교회를 위한 선교나 선교열정으로 인위적인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와 다른 제도적 교회가 행한 선교의 한 모습이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인 에클레시아 역시 하나님의 선교로 부름을 받고 있으며 에클레시아인 교회는 그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에 응답하는 교회만이 참된 교회로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만이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종말론적 공동체가 된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 관계에서는 교회는 곧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부활의 빛 속에서 '이미' 온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한 교회가 세상 속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사랑한 세상으로 교회는 세상 가운데서 그 역사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 가야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교회와 세상과 선교, 교회와 이성과 하나님의 나라, 교회와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교회와 정치와 하나님의 나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3) 러시아 개신교회에서는 먼저 러시아 정교회를 먼저 밝혔다. 왜냐면 러시아는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진 백성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에게 러시아 정교회는 종교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러시아 개신교회 역시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교회와 러시아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정교회, 러시아국가교회, 그리고 동방 정교회의 중심된 선교신학를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러시아 개신교회에 대해서는 먼저 러시아 개신교의 전래와 전파지역 그리고 선교의 대상, 오늘의 개신교의 성장을 이루어낸 지하교회의 고난과 소망 속에서 승리한 러시아 개신교회로 보았다. 이는 초대교회가 로마의 핍박을 딛고 일어난 것처럼 러시아 개신교회가 갖고있는 신앙의 전승 속에서 오늘날까지 러시아교회가 남은 자로서 성장하는데 큰 바탕을 이루었다. (4) 본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하나님의 선교에서 본 러시아 교회개척인데 먼저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개념을 정리했다. 즉,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도구이며, 선교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고 그 선교의 내용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통한 교회의 참여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선교공동체이며 성령은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도록 인도하고 이루시는 분이다. 따라서 인위적이거나 제도적 교회에 의한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에서 배제된다. 이 같은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모스크바 장로교신학대학교에 의한 교회개척을 살펴보았다. 특히 교회개척의 의미를 하나님의 선교와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복음과의 관계에 비추어 찾고자 했다. 여기서 교회개척은 단순한 양적 증가의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복음의 활성화와 러시아 교회의 요청에 의한 상황화이며 한국교회의 지속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모스크바 장로교신학대학교의 교회개척은 '러시아인에 의한 러시아선교'의 과정이며 신학교육의 장으로 신학과 교회의 유기적 상호관계 속에서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모스크바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의한 교회개척은 러시아 개신교회의 활성화에 참여하는 역동적 기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교회개척의 방법과 성장에 있어서 러시아 교회의 성장은 양적인 교회성장보다는 러시아교회에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유기적인 신앙공동체가 될 때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바른 교회의 바른 성장이라는 것이다. 러시아교회의 특징으로는 신학적 특징으로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 속에서 성례전의 중시와 사랑의 신학 그리고 도덕성과 부활의 신학을 들 수 있다. 예배학적 특징으로 러시아 교회가 지니고 있는 신앙전승 속에는 말씀의 선포뿐만 아니라 찬양과 시 낭송 등 신앙고백적인 적극적인 참여를 들 수 있다. 목회학적 특징은 공동체정신을 바탕으로 친교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러시아 교회의 선교 신학은 과거 핍박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 교회들은 기본적으로 에큐메니칼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 개척교회의 분류는 러시아교회의 신앙전승을 토대로 하는 교회들과 모스크바 장로교 신학대학교에 의해서 개척된 교회들로 나눌 수 있다. 개척된 러시아교회들은 비록 한국교회의 협력 속에서 개척되고 있을지라도 러시아 교회가 지니고 있는 신앙의 전승 속에서 러시아적인 장로교회로 태어나야 한다. 러시아 교회는 러시아에서 역사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러시아 교회는 러시아에서 요구되는 개인의 영혼구원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선취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예배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과의 관계에서는 선교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본질이 선교적이며 선교적이어야 한다. 선교적인 교회만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가 된다. 하나님의 선교는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오늘 러시아교회에서도 요구된다. 러시아 교회개척과 러시아 교회의 성장은 교회의 제도나 교회에 대한 단순한 개종을 넘는다. 이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개종하는 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이 세상에서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함으로서 새로운 변화를 찾을 수있다. 그 동안 양적 성장을 거듭한 한국교회에게 교회 갱신의 필요성과 교회갱신 기회를 갖게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질적인 성장을 위한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참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자기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쇄신하는 겸손한 자기 비움을 경험하게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러시아교회와 파트너쉽(partnership)의 선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고 성령의 전이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된 세계교회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러시아교회의 개척은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개교회 차원의 단순한 한국교회의 이식과 확장이 아니라 러시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지체로서 의미를 가진다. 러시아교회는 러시아의 정교회의 영향 속에서 그 동안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에도 충격을 줄 수 있도록 개인구원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우월한 도덕성을 계속 전승해야하고 다양한 계층에서 요구되는 삶의 질문에 대해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응답 해야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삶으로 모두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 가야한다. 이를 위해서 러시아 교회는 특히 정교회의 선교신학 가운데 하나인 사랑의 신학으로 모두를 포용하는 선교를 해야한다. 오늘날 선교의 내용과 활동도 변하고 있다. 이것은 세상과의 관계 속에 있는 교회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근본적이고 선교의 큰 틀인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러시아교회가 열린 마음으로 러시아라는 세상과 친교를 이루어 갈 때 러시아 교회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강한 믿음과 소명의식 그리고 리더쉽(leadership)과 책임감을 가진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한국교회는 러시아교회를 통해서 나눔과 친교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하나된 교회를 위해서 한국교회는 값비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어야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나누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양하고 활발한 선교활동가 곧 값비싼 은혜는 아니다.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교회는 값싼 은혜 속에 있다. 오늘 한국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교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값비싼 은혜를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가운데서 구해야한다. 한국교회는 값비싼 은혜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남기고 자기비움으로 경계를 넘어가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를 변화시키고 화해시키는 하나님의 선교는 한국교회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편애하시는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누고 치유하는 교회가 되도록 할 것이다.
김홍근 호남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1999 국내석사
지금까지 바울이 말하는 죄인식에 대한 논문을 전개했다. 이 논문을 통해서 바울은 과연 죄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밝히고 구원받은 죄인된 몸으로서 하나님께 진정한 응답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찰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과연 바울이 말하는 죄란 무엇인가?를 다시 정리해보고자한다. 죄는 "이 악한 세대"의 권세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 죄는 그것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죽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통치에 반역하며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주권적 현존으로부터 이탈하고자 하는 권세들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권세라고 말하며 죄의 권세의 영향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 즉 하나님의 나라의 후사로서의 자기의 진정한 목표로부터 소외되게 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또한 바울에게 있어서 죄의 의미가 매우 근본적으로 제시되는데 죄는 단순히 생명의 타락만은 아니고 궁극적으로 생명의 부정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죄란 하나님의 목적들에 대한 적대감을 의미하며, 또한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반역을 의미한다.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심각하고 거의 치유 불가능할 정도의 소외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개념만이 죄를 묘사하는 대 가장 적절한 개념이다. 바울의 죄란 또한 한마디로 말해서 "자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랑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피조물이나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죄란 "인간의 상황의 오해" 즉 생명이 하나님에게서 온 선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을 말한다. 죄란 또한 불경건와 불의 이라고 말한다. 전자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을 말하며, 후자는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것을 자기 것으로 삼음으로써 부당하게 하나님께서 그의 합당한 존귀를 박탈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고 정의하였다. 이방인들의 죄는 바로 이러한 불경건과 불의로 인하여 진노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로마서 2장의 내용을 보면 유대인들의 죄 역시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죄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창조주로부터의 인간의 괴리는 본문의 로마서 1장 21절 이하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하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21절).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의 "지혜"를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있으며 결국은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경배하는 결과에이른 것을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른 기독교인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겠다. 인간의 실존을 알아보려고 한다. 첫째, 모든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본문은 롬 1:16~17 즉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야 할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한 다음에 인간이 왜 구원을 얻어야 하는 대상이냐는 것을 주장하는 본문으로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인인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를 밝히고 있다. 구원의 적극적인 측면인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는 것을 통하여,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에 따라 사는 존재가 됨으로써 죄인된 우리는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즉 죄를 용서하시고 자신이 주셨던 계약은 끊임없이 충실히 지키신 그 분의 신실하심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대인은 이방인들의 범죄를 보고 그들은 이방인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바울은 그들도 하나님앞에서 교만하며 같은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다. 오늘날의 기독인의 특성이 바로 이러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즉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한 것은 인정하면서 자신들의 죄의 가능성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데 약점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도 늘 이러한 죄에 노출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성화(sanctification)된 삶을 이루어야 한다. 둘재, 인간자신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은 피조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의무는 하나님의 창조성에 순종해야 한다. 창조주로부터의 인간의 괴리는 본문의 의미와 상통하다. 즉 인간의 죄는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교만인 것이다.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를 드리는 삶으로의 전환을 이루어야 마땅하다. 창조주를 창조주로서 인정함으로서 인간의 교만을 그만둘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올바로 해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피조성을 인정하고 교만함을 깨뜨리는 지혜로운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데 인간의 실존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면 기독인으로서의 참 모습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야 겠다. 셋째. 죄의 실체를 통하여 이를 극복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으로의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로마서의 주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인간을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인간과 화해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열매를 맺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기독교인의 삶은 분명한 믿음의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인간의 불의와 불경건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며 이방인처럼 행동을 하면 결국 그것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거스리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자로서 주님의 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겠다.
金俊玎 湖南神學大學校 神學大學院 2006 국내석사
이 논문에서는 하버마스(J□rgen Habermas)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비판하고 토론하면서 신학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무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하버마스와 신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 개념을 정당화 시키려면 여러 해명 작업들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버마스가 자기 이론에 여러 신학적 입장들을 부분적으로 소개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학적 사고라 할 수 없는 고찰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과 바르트(Karl Barth)의 말씀론(logos)의 대비를 통해 둘 사이를 매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려고 한다. 바르트는 언어를 전달매체로서 도구적으로 보는 언어관을 반대한다. 그래서 바르트는 말씀을 실재로 보고 말씀의 유추를 계시, 즉 삼위일체 하나님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의 인식가능성은 부름받고 선택받은 기독교인들의 경험과 신앙을 통한 인식가능성이다. 즉 하나님 말씀의 "말씀"이란 어휘는 스스로를 알도록 하시고 여전히 알게 만드시는 하나님 자신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여 인식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인 말씀, 즉 선포된 말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버마스는 진정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절차로서 '무제한적인 토론'뿐만 아니라, 모든 '지배로부터 벗어난 토론'을 이상적 담화상황으로 상정한다. 의사소통행위는 화자와 청자의 상호적인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의 도달이며, 서로의 주장을 근거지우면서 규범적 합의를 해나가는 이상적 상황이다.
최연정 호남신학대학교 기독교상담대학원 2018 국내석사
본 연구는 Eric Berne의 교류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부모의 양육태도와 종교대처가 시간구조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것으로 이를 위해 SPSS21을 활용하여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먼저 G광역시의 신학대학에서 재학 중인 대학생·대학원생 300명을 조사대상으로 9월 21일부터 10월 11일까지 3주에 걸쳐 설문을 실시하여 성실한 응답지 244부를 분석하였다. 첫번째 독립변인인 부모의 양육태도는 자녀가 부모의 양육태도를 어떻게 지각하였는지를 살펴본 것으로 허묘연이 개발한 부모양육행동 척도를 사용하였다. 아버지 및 어머니 요인으로 ‘감독’, ‘합리적 설명’, ‘비일관성’, ‘과잉기대’, ‘과잉간섭’, ‘학대’, ‘방치’, ‘애정’을 부모양육행동의 의미 있는 구성 요인으로 구분하고 Likert식 4점 척도를 사용하였다.. 두번째 독립변인인 종교대처는 종교적 문제해결 척도(Religious Problem Solving Scale: RPSS)를 김병욱이 번안한 것으로 사용하였다. 이 척도는 ‘협력적 대처’, ‘자기주도 대처’, ‘의탁적 대처’라는 세 개의 하위요인으로 구분되며, 하위요인의 문항은 6문항이고 총 18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항은 Likert식 6점 척도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종속변인인 시간구조화는 문호영이 개발한 시간구조화 척도를 사용하였다. ‘폐쇄’, ‘의식’, ‘잡담’, ‘활동’, ‘게임’, ‘친밀’ 6요인 60문항으로 문항은 Likert식 5점 척도로 점수가 높을 수록 각 하위요인의 특성이 높은 것을 의미한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본 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아버지의 양육태도는 시간구조화에 부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나타냈다.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의 양육태도가 애정적이고 방치일 때 시간구조화 폐쇄와 부적상관이 있었고, 아버지의 양육태도는 시간구조화 의례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구조화 잡담에 있어서는 아버지의 애정적 태도와 정적 상관이 있었고, 활동으로의 시간 구조화는 아버지가 과잉간섭 일 때 부적상관을, 아버지가 애정적 양육태도 일 때 정적상관을 보여주었다. 아버지의 양육태도가 합리적 설명이거나 과잉 간섭, 방치일 때 시간구조화 게임에 부적 상관을 나타냈고, 과잉 기대를 할 경우 정적 상관을 보였다. 시간구조화 친밀은 아버지의 양육태도가 애정적이거나 방치일 때 정적 상관을 나타냈다. 두 번째, 어머니의 양육태도는 시간구조화에 부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나타냈다. 연구에 의하면 어머니의 양육태도가 과잉 간섭일수록 자녀는 폐쇄로 시간구조화 하는 경향이 높았으며, 어머니의 양육태도는 시간구조화의 의례와 잡담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어머니의 양육태도가 비일관적일 때 자녀의 시간구조화 활동은 부적상환을 보였고, 과잉기대를 할 때 활동으로 시간을 구조화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어머니의 양육태도가 과잉 간섭일 때 자녀들은 인간관계 속에서 게임으로 시간을 구조화하는 경향성이 높음을 또한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간구조화 친밀은 어머니의 양육태도가 감독과 합리적 설명일 때 높은 결과를 얻었으며, 애정일 때 부적상관을 보였다. 인구사회학적 특성에 따른 시간구조화의 영향은 다음과 같다. 학년이 낮을수록 시간구조화 폐쇄와 잡담의 경향이 높았고, 학년이 높아지고, 1일 영적 생활시간이 길수록 시간구조화 활동의 경향성도 높아졌다. 성별이 여이고, 학년이 낮을 때는 게임으로 시간을 구조화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시간 구조화 친밀과 가장 상관이 높은 것은 1일 영적 생활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종교대처가 시간구조화에 부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연구에 의하면 자기 주도 종교대처는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종교의 협력적 대처를 사용하는 경우 시간구조화 폐쇄에 부적 상관을 보였으며, 시간구조화 활동에는 높은 상관을 나타냈다. 종교에 의존적 대처를 사용하는 경우 시간을 폐쇄와 게임으로 구조화하는 경향성을 보였다. 이상의 결과를 토대로 본 연구에서 도출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부와 모의 동일한 양육태도 유형에도 자녀들의 시간구조화는 다르게 이루어졌다. 시간구조화에 가장 높은 상관을 보이는 변인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폐쇄는 어머니의 양육태도가 과잉 간섭일수록 높은 경향을 보였고, 의례는 영향 변인이 없었으며, 게임은 아버지의 양육태도가 과잉기대일수록 높았다. 잡담과 활동, 친밀은 아버지의 양육태도가 애정적일수록 높은 상관을 보였다.
레위기 14:1-9에 대한 주석적 연구 : -'정결 의식'을 중심으로-
손다희 호남신학대학교 대학원 2018 국내석사
본 논문은 구약성서에서 가장 권위 있는 책인 오경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레위기의 중요성을 살피고, 레위기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인 ‘거룩’을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에서 규범화하는 방법이 ‘정결 의식’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보통 ‘정결 의식’을 접할 경우, 유대인들의 규제일 뿐 기독교와는 그렇게 많은 관련이 없다고 여겨왔으며, 이러한 피상적인 판단으로 인해 ‘정결 의식’에 대한 자세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결 의식’의 해석에서 문자적으로나 상징적으로만 해석함으로써, ‘정결 의식’에 대한 다양한 시각 차이로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여지가 있었다. 더욱이 레위기 11-15장의 ‘정결 의식’은 제사 예식을 담당하는 공식 직무 수행을 위한 특수 성직 계층으로서의 제사장들만의 규정집으로만 여길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결 의식’을 단순한 유대교의 종교 행위로만 보고, 레위기의 ‘정결 의식’이 불필요하거나 현시대에 적용할 수 없는 것으로 오인하여 그리스도인에게 다소 거부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논문을 통해 ‘정결 의식’ 가운데에서도 가장 자세하게 제시된 레위기 14장 1-9절을 주석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창조신학과 시내 산 단락의 거대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본문이 제시하는 ‘정결 의식’이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레위기 14장 1-9절은 악성 피부병(‘차라아트’)에 걸린 환자가 치료된 후 야웨의 선언과 함께 정결 의식 절차를 구체적으로 진행한다. 본문을 주석하는 데 먼저 맛소라 본문을 우리말로 옮겨 설명했으며, 각 절에서 중요한 단어들을 선택하여 각 단어의 신학적 주제를 언급하므로 효과적인 용어의 해석을 제시한다. 그리고 오경의 구조에서 중심에 위치한 레위기의 강조점을 연결하여 레위기 전체의 구조 안에서 본문이 제시하는 짜임새를 통해 본문이 집중하고 있는 주제를 도출한다. 레위기는 창세기와 신명기,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이중으로 둘러싸여 각각 이스라엘 제도 사이에서 하나님의 현존하심을 일상생활로 구체화 시키는 강조점을 가진다. 이러한 레위기의 구조 안에서도 가장 중심에 위치한 레위기 16장에서 대속죄일 의식이 나온다. 이 16장을 향해 가는 레위기 13-14장이 본문에서 제시한 악성 피부병(‘차라아트’)으로 고통 받는 한 사람의 정결 의식에 집중하고 있는 인클루지오(inclusio) 구조를 가진다. 또한 그 구조 안에서 중심에 위치하는 레위기 14장 1-9절은 그 중심에 ‘새의 피’의 정화 기능을 증명하는 구조를 제시한다. 이러한 구조적 특징을 지니는 본문은 다음과 같은 신학적인 특징을 갖는다. 첫째, 자칫 악성 피부병(차라아트)과 죄를 단편적으로 연결하여 불분명한 질병의 원인을 포괄적으로 죄라고 여기는 것에 대한 상직적 해석을 비판한다. 둘째, 제사장의 역할을 부정과 정결의 사이에서 고통 받는 사람을 통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방적인 차원에서 부정에 이르지 않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헌신적인 섬김의 자리에 있음을 밝힌다. 셋째, 인간의 몸 또한 정결 의식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넷째, 정결 의식을 통해 홀로 됨에서 공동체로 회복할 수 있다. 다섯째, 본문이 제시하는 부정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침범한 부정일 가능성이 있다. 여섯째, 정결 의식은 원시종교의 애매한 거룩과 부정의 구분과는 차별화된 명확한 경계 구분으로 단계적인 거룩의 제시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일곱째, 신약성서에도 정결 의식은 폐하여 버려지지 않고, 철저하게 실천된다. 본문은 레위기의 정결 의식을 통해 거룩에 대한 구체적인 규범을 일상생활에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 ‘악성 피부병’(‘차라아트’)에서 치료된 사람의 부정한 고통을 두고 보지만 않으시고, 공동체로 회복을 허락하시는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에는 인간이 이해 할 수 있도록 거룩에 관한 실천사항을 쉽게 제시하신 하나님의 성품이 숨겨져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정결 의식에 대한 참된 이해를 통해 성숙한 성품과 성숙한 신학을 추구해야 한다. 제시어: 정결 의식, 악성 피부병(차라아트), 레위기 14장 1-9절 This paper confirms the importance of the Leviticus, the most central structure in the Pentateuch, the most authoritative book in the Old Testament explain that the way to standardize 'holiness', which is the most important content in Leviticus, in daily life is 'Ritual of Purification'. In general, when it comes to the "Ritual of Purification," it is regarded by the Jews as a regulation only, not so much related to Christianity, and this superficial judgment did not lead to a detailed discussion of the Ritual of Purification. There was room for misinterpretation in various interpretations of 'Ritual of Purification' by interpretation only literally or symbolically in the interpretation of 'Ritual of Purification'. Moreover, the 'Ritual of Purification' in Leviticus 11-15 is only a part of the priesthood as a set of rules for the priesthood, which is a special order for the official duties of the priesthood ceremony. For this reason, there is a tendency to deny Christians the "Ritual of Purification" as a religious act of simple Judaism, misrepresenting that Leviticus's "Ritual of Purification" is unnecessary or not applicable to the present. However, in this paper, by carrying out the annotative research of Leviticus 14: 1-9, which is described in detail in "Ritual of Purification", we have presented to the center of the huge story of the Sinai creation department in the text " Ritual of Purification" is playing an important role. Leviticus 14: 1-9 concludes with a cleansing procedure with YHWH's declaration after the patient has been treated for a malignant skin disease (צרעת). In order to annotate the text, first transfer the MT to Korean, explain it, select important words in each section, and present an interpretation of an effective term to describe the theological subject of each word . And connect the emphasis of the Leviticus notation in the center part with the structure of the Pentateuch, and derive the topics where the main body is concentrated through the quality presented in the text in the whole Leviticus structure. Leviticus has double emphasis on Genesis and Deuteronomy, Exodus and Numbers Numbers, each emphasizing emphasis on the existence of God in the Israel system in daily life. In the structure of Leviticus, Leviticus 16, which is at the center of the Leviticus, is to the Ritual of the Day of Atonement. The Leviticus 13-14 heading toward this chapter 16 has a inclusio structure focusing on the Ritual Purification of one person suffering from the malignant dermatosis (צרעת) presented in the text. Leviticus 14: 1-9, centered in its structure, presents a structure that demonstrates the purifying function of the 'bird's blood' at its center. The main text having these structural features has the following features. First, it criticizes the symbolic interpretation of the fact that the cause of unclear disease is comprehensively considered as sin by linking malignant skin disease(צרעת) with sin partly. Second, the role of the priest is not in the control of the suffering between the injustice and the cleansing, but in the place of the devoted service that provides the information so that it does not reach the injustice on the preventive level. Third, the human body is also an important element in the sense of cleansing. Fourth, it can be restored to community through Ritual Purificaiton. Fifth, the unclean presented by the text is likely to be a unclean that invaded God's ownership. Sixth, the Ritual Purification shows that it is possible to present gradual holiness by distinguishing clearly distinct boundaries from the distinction between ambiguous holiness and unclean of primitive religion. Seventh, in the New Testament, the Ritual Purification is not abolished, but is practiced thoroughly. The text expresses God's love for presenting specific norms of holiness to everyday life through the Ritual Purification in Leviticus. God's character, which easily presented the practice of holiness so that man could comprehend the reign of God, the creator who allowed the restoration of community without ignoring the unclean pain of a person who was treated in 'malignant skin disease' This is hidden. As Christians, we must seek mature character and mature theology through a true understanding of the ordinances of cleansing, participating in the character of this God. Keyword: Ritual Purification, malignant skin disease(צרעת), Leviticus 14:1-9
노르위치 줄리안의 고난과 신학 이해 : 영성지도 신학과 영적 변화
박신향 호남신학대학교 일반대학원 2022 국내박사
본 논문은 노르위치 줄리안의 신학과 경험을 근거로 고난의 경험을 다루는 기독교 영성지도가 전제하고 작동되는 신학을 조명하고 영성지도에서 경험하는 영적 변화의 작동기제(mechanism)를 밝히고자 한다. 고난의 시대 14세기 영국의 은수자 노르위치의 줄리안은 신비주의 신학자일 뿐 아니라 동료 그리스도인(evencristen)들을 위한 영적 안내자의 삶을 산 영성지도자였다. 그녀가 남긴 유일한 저작물인 『하나님 사랑의 계시』 는 고난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그녀의 삶과 영성지도 실천의 근간이 되는 심오한 조직신학적 내용들을 담고 있다. 또한 기도를 위한 실질적인 가르침과 안내, 그리고 기도 속에서 펼쳐지는 하나님과의 담화와 관상적 역동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따라서 줄리안의 작품은 하나의 탁월한 영성지도 신학과 모본을 제공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노르위치 줄리안의 고난 경험과 신학을 역사적, 현상학적, 학제간 연구방식으로 고찰하였다. 논문은 크게 세 가지 단계적 흐름을 가진다. 첫째는 깊은 인간 고난이 어떻게 경험되고 어떻게 극복 가능한지에 대한 문헌 고찰이다. 이를 통해, 한국적 한(恨)의 ‘삭임’과 기독교 신비주의의 ‘기도’를 동일한 내적 역동을 가진 대안적 길로 발견한다. 둘째는 고난에 대한 영성지도의 신학적 이해와 고난으로 인한 영적 변화의 여정을 줄리안의 신학과 경험을 통해 탐색한다. 이를 위한 역사적 접근과 현상학적 접근을 통해, 줄리안의 고난과 변화 경험을 고찰하는 한편, 그 근간이 되는 믿음의 내용으로 그녀의 신학을 고찰한다. 여기서 특히 줄리안의 정체성의 변화와 성숙의 과정을 탐사하는 한편,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인성회복의 신학적 원리로 “감각(sensuality)”의 회복을 조명한다. 셋째는 영적 변화의 작동기제(mechanism)에 대한 탐색이다. 줄리안의 영성지도를 자기심리학의 자기변형 이론과 비교 연구함으로써, 영성지도 안에서 작동되는 자기 변화의 기제가 하나님을 자기대상으로 경험하는 자기회복의 과정과 같다는 사실을 분석한다. 논문은 다음과 같이 일련의 결과들로써 위의 논지를 뒷받침한다. 첫째, 한과 같은 깊은 인간 고난은 동일하게 깊은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삭임’으로서의 기도를 통해서 건설적으로 변화 극복될 수 있다. 둘째, 줄리안이 계시를 통해 깨달은 바, 죄와 고난은 “행복한 오류(felix culpa)”와 같은 역설적 현실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당분간 필요하고 유익한(“behovely”) 것이다. 줄리안의 기도 방식은 고난 중 자기 정체성의 변화 경험을 가져왔다: ‘여성-자기비하’에서 출발했지만 ‘보편적 인간 정체성의 회복’을 거쳐 모성을 하나님의 본성으로 발견할 만큼 ‘모성의 회복과 찬미’에까지 나아간다. 그녀는 십자가 상에서 수난 당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기도를 통해 고난으로 시작하는 영적 여정을 제언한다: ‘탄식/통회(mourning/contrition)’로 시작된 이 여정은 ‘연민(compassion)’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되고 마침내 ‘하나님을 향한 열망(longing for God)’으로 변화하는 기독교 신비의 여정이다. 셋째, 이 영적 여정을 추동하는 것이 줄리안의 하나님 사랑의 신학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원죄와 고난이라는 현실을 허락하셨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같으신 그리스도의 현존과 활동이라는 하나님의 처방(remedy)도 함께 주셨다. 넷째, 줄리안의 경험과 신학에서 발견하는 영성지도는 자기심리학의 통찰에 따른 자기 변화의 모판이다. 영성지도의 영적 변화의 작동기제는 주님을 어머니나 분석치료자로 관계하는 ‘자기대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여기서는 줄리안의 영성지도와 하인즈 코헛의 자기심리학을 비교 분석했다: ‘관상’ 대 ‘공감’, ‘믿음의 덕’ 대 ‘충분히 좋은 어머니’, ‘감각의 회복’대 ‘변형적 내재화’는 모두가 회복을 위한 필수 요소이고 변화의 원리이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기독교 신비주의적 접근으로서의 영성지도는 인간 고난에 대한 건설적인 극복의 길임을 제안하며, 고난 중 자기 변화/회복을 이루도록 작동하는 탁월한 영성지도의 신학으로서의 노르위치 줄리안의 신학을 제시한다. This dissertation demonstrates an operating theology of Christian spiritual direction and the mechanism of spiritual transformation through human suffering formed in reflection of Julian of Norwich’s theology and experiences. Julian of Norwich, an English anchoress in the 14th Century, was a spiritual director as well as a mystical theologian: she not only wrote her spiritual experiences and thoughts in the Showings but also practiced spiritual direction for “evencristen (even Christians)”. As her singular work, Showings contains a profound theology that was reflected in her life and spiritual direction praxis. It also has practical teachings and guidance for prayer, revealing her own contemplations and conversations with God. Julian’s work offers an impactful example and a appropriate theology of spiritual direction, specifically for spiritual transformation through suffering. In this study, I use a historical approach, hermeneutical approach, and interdisciplinary approach, following three phases. First, I conduct a literature review of human suffering aiming to understand how suffering is experienced and constructively resulted. Secondly, I explore Julian’s own experience of suffering and her theology in the Showings, in order to understand both her spiritual transformation and her spiritual direction. Thirdly, I analyze the mechanism of spiritual transformation shown in Julian’s spiritual direction by comparing it to Heinz Kohut’s understanding of self-recovery explained in his Self-Psychology. As the result, I support the thesis in four respects. First, ‘prayer’ in Christian mysticism is a constructive and authentic way of dealing with human suffering that parallels ‘saghim(삭임)’ of Korean han. Secondly, Julian demonstrates a way of praying under suffering that transforms self-identity; this roots in an understanding that sin and suffering is “behovely”, a reality paradox commonly referred to as “felix culpa(happy fault)”. This journey of prayer begins in “mourning/contrition”, turns into “compassion”, then finally transforms into “a longing for God”. In Julian’s experience, her identity transforms from a “woman of self-depreciation” into a “self-awareness of human identity”, and finally into a “woman of maternal self-celebration”. Thirdly, this sequela of a Christian journey is supported by Julian’s theology of God’s Love, especially her anthropology and understanding of “Jesus as our Mother”. God not only allows sin and suffering as human reality but also offers “the remedy” of His motherly presence and activity as the Christian reality. Finally, the self-recovery mechanism of Self-Psychology is also applied in spiritual direction; however, in spiritual direction, the Lord is present and working as the “empathic self object”/“good enough mother”. To support this statement, I compare and formulate the relationships between essential elements of self-psychology and of spiritual direction: empathy versus contemplation, ‘Good enough mother’ versus ‘the virtue of faith’, and transmuting internalization versus sensuality’s recovery. In conclusion, I confirm that Julian of Norwich’s theology is a pre-eminent theology of spiritual direction operating as a matrix for self-transformation under suffering within the Christian con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