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민중신학의 관계철학적 연구 :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중심으로
서무경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21 국내석사
본 논문은 다원화되며 다양한 고통의 문제들이 발생되는 현실을 마주하며 이에 대한 신학적 대답으로 민중신학을 말하고자 한다. 민중신학은 현실 속 고통의 문제에서 그에 대해 신학적 대답을 하며 시작된 학문으로 역사 속 고통의 문제에 대해 선지자적인 역할을 감당해왔기에 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고통의 문제들의 원인 또한 더 다양하고도 새롭게 생겨나기에 민중신학에서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본 논문은 새로운 시각으로 마르틴 부버의 관계론을 제시하려한다. 마르틴 부버는 인간의 실존을 참된 관계 속에서 찾은 학자이다. 그는 사람의 관계에서 다른 존재를 사물로 여기는 ‘그것’의 관점을 통해 고통의 문제가 발생된다고 보았다. 필자는 이 관점을 민중신학과 접목하며 오늘날의 고통의 문제를 바라보고 관계의 세상 속에서 민중신학이 있어야할 사건의 현장은 어디 있는지 밝히며 그 속에서 민중메시아의 역할은 무엇인지 제시하고자 한다. 본 논문의 전개과정은 다음과 같다. 제 1장 서론에서 연구동기와 목적 및 연구방법과 방향에 대해 다룬다. 제 2장은 마르틴 부버의 관계론에 대해 탐구할 것이다. 그가 살아온 생애와 사상을 살펴보고 또한 그가 말한 관계론은 무엇인지 탐구하며 정리할 것이다. 제 3장에서는 앞서 논의된 마르틴 부버의 관계적 관점을 통해 민중신학을 이해할 것이다. 이 장을 통해 새로운 관점인 ‘관계적 관점’을 지닌 민중신학을 모색하며 발견해낼 것이다. 그리고 제 4장을 통해 우리는 관계적 민중신학이 고발해야할 현실 속 고통의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중메시아의 역할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마지막 제 5장은 앞서 논의된 내용들을 정리하고 본 논문의 주장을 명확하게 할 것이며 앞으로 남은 과제들은 무엇인지 이야기할 것이다. 이 논문을 통해 민중신학은 관계의 세상에서 혐오와 단절을 생산해내는 악의 구조를 밝혀내며 관계의 세상의 주체는 이 세상 모든 ‘나’이기에 ‘나’가 민중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할 때 그 구조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밝힐 것이다.
구윤정 한신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10 국내석사
본 연구는 우선적으로 존슨의 소피아삼위일체론 연구를 통하여 여성과 모든 사회적 구조적 약자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해방적 예배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시작되었으며 일차신학과 이차신학의 영역에서 실천성과 이론을 상호 반추하며 다양하고 세부적인 주제들을 지닌 논의들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또한 소피아삼위일체론의 의의를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그리스도교신학의 삼위일체론의 전환의 개막을 이끈 신학자 칼 바르트(K. Barth)의 영향 이래로 20세기 후반동안 입증되어 온 신학 속에 있는 최고의 비밀들 중의 하나인 삼위일체론은 이후 “삼위일체신학의 르네상스(Renaissance)”라 일컬어지며 여성신학에까지 이어진다. 여성신학에서 삼위일체론의 르네상스는 엘리사벳 A. 존슨(Elizabeth A. Johnson)과 캐서린 모리 라쿠나(Catherine Mowry LaCugna)에 의한 저서들을 통해 논의되며 삼위일체의 이론과 실천의 영역이 확보된다. 존슨과 논의에 참여한 여성신학자들에 의하면 삼위일체론의 하나님 언어의 고찰을 통하여 예배 언어의 범위를 확장하며 여성 그리고 모든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을 포용할 수 있는 하나님 언어를 구하고 실천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 핵심적이라고 한다. 필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론의 논의를 통하여 모든 신앙의 중심에는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체험이 있다는 것과 여성체험의 시각에서도 스스로 역사 안에 개입해 들어오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신비와 관련한다는 것을 먼저 존슨의 소피아 삼위일체론을 중심으로, 다음으로 라쿠나와 더크의 삼위일체론 논의를 중심으로 대화하고 고찰하여 여성신학에서 삼위일체론의 르네상스의 물결이 이루는 삼위일체론 논의와 이러한 하나님언어의 실천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예배에서 중요하며 핵심적이라는 인식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인들은 존슨의 소피아삼위일체론 연구를 통하여 얻은 바로부터 실천하고자 할 때 그리고 하나님 언어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논함에 있어 근본적으로 이분법의 논리를 넘어서 모든 약자들을 해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성신학에서의 삼위일체론 논의는 이러한 여남 이분법적인 논의를 넘어서 가부장적, 세계자본주의적 사회구조 안에서 신앙적, 성적, 인종적, 정치적, 경제적, 생태 환경적 이유로 억눌림을 당하는 모든 약자의 해방의 문제로 나아간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여성신학에서의 삼위일체론 논의에 관련한 신학의 기준점을 마련하려는데 이 글의 목적이 있다. 주제어: 소피아삼위일체론, 여성신학에서의 삼위일체론의 르네상스, 여성신학, 관계성, 하나님 언어, 여성해방적 예배
하승민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15 국내석사
국문초록 객체적 불멸에 대한 신학적 연구 본 논문은 화이트헤드의 객체적 불멸성 개념을 통하여 불멸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살펴보았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적 개념들은 현대신학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고 이에 따라 과정신학이 등장하였다. 풀리지 않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많은 신앙인들의 고민들에 대한 대안으로 화이트헤드의 철학의 개념 중 객체적 불멸성을 제시하도록 한다. 객체적 불멸성이란 간단하게 모든 현실적 존재는 소멸하지만 객체적으로 다른 현실적 존재 안에서 불멸한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객체적 불멸성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멸에 대한 의식에 대한 고찰로 영육론을 다루기로 한다. 불멸에 대한 연구에 앞서 영육론을 다루는 이유는 죽음 이후에 불멸에 대한 고찰을 할 때 주체적인 몸이나 영혼이 불멸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생각의 근저에 있는 사고가 바로 영육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육론에서는 데카르트를 중심으로 한 영육 이원론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한 영육 일원론을 살펴보고 영육 이원론과, 영육 일원론이 어떻게 몸과 영혼의 문제를 다루어왔는지 살펴보겠다. 그리고 성서에서의 영육론을 살펴봄으로서 기독교에서의 영혼, 몸의 구분을 살펴보기로 한다. 또한 성서에서의 영육론을 통하여 영육 이원론을 가지고 있는 많은 기독교 신앙들의 영혼 불멸 개념이 성서에 근거를 둔 것인지 살펴보겠다. 그리고 연구사로써 부활, 불사, 영원한 생명에 대한 문제들을 이야기 하고 그에 따른 두 가지 신학적 대응- 현재적-실존적 이해, 심판받으러 부활하는 것인가 혹은 불사인가?-을 살펴보고 이에 따른 신학적 답변을 살펴보겠다. 다음으로 화이트헤드의 객체적 불멸성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화이트헤드의 철학적 개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어떤 요구에 의해 과정철학이 오늘날에 필요한 것인지 살펴보고, 유기체철학으로서의 과정철학의 개념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러한 유기체철학으로서의 과정철학을 살펴보는 이유는 이전의 영육론과 화이트헤드의 영육론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알고 화이트헤드의 일원론적 사고가 어떤 근거에 의해서 나타났는지 살피고자 한다. 또한 어떻게 주체적 존재의 것들이 객체화되고 그 객체화 된 것들이 어떻게 객체적 존재가 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화이트헤드의 기본적 사고는 모든 것은 상호관련성과 모든 것은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로 화이트헤드는 세계를 구성하는 두 세계로 활동세계와 가치세계를 언급한다. 활동세계는 유한의 세계를 뜻하고 가치세계는 무한의 세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이 두 세계가 독립적인 세계가 아니라 두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어느 한 세계만으로 이 세계를 설명할 수 없고, 활동세계가 있다는 것은 곧 가치세계가 있다는 것을 뜻하며 상호 관계성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활동세계와 가치세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이 두 세계의 연결고리로서 신의 역할을 언급하고 있다. 신은 활동세계에서 나오는 가치들을 모두 기억, 보존, 전달하는 존재로서 한 현실적 존재의 영향력을 다른 현실적 존재에 영향을 줌으로서 주체적으로 소멸하지만 객체적으로 불멸하게 하는 신, 새로운 창조를 이끄는 신이다. 또한 유한과 무한의 연결 역할의 신은 곧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신이다. 이러한 객체적 불멸성은 단지 풍요로운 기독교 전승으로서의 영생을 한 관념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전승으로서의 영생의 관념을 더욱 심도 있게 살펴보고 또한 오늘날 지나친 내세 지향적 신앙으로 인한 문제점으로 제시되고 있는 기독교의 문제들에 대해 좋은 대안으로 제시하고, 객체적 불멸성의 신학적 함의를 향후 연구 과제로 제시 하고자 한다.
한국교회 비판과 대안으로서의 민중교회론 : 안병무의 민중신학을 중심으로
이지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13 국내석사
한국 개신교는 지난 100여 년간 세계교회가 주목할 만한 놀라운 성장을 이룩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를 기점으로 하여 개신교의 양적성장은 둔화/감소되었고 물량주의, 기복신앙, 권위주의, 개교회주의등으로 인하여 사회적 공신력마저 잃게 되었다. 본 논문은 한국 개신교가 쇠퇴하게 된 원인을 연구하여 개신교회의 개혁 방안을 제시한다. 2장에서는 한국 개신교회의 실태와 현황에 대해 조사한 통계를 근거로 한국 개신교회가 쇠퇴하게 된 원인을 1) 언행불일치의 신앙, 2) 교회의 역사의식 결여 문제, 3) 교회 공동체의 분열, 4) 샤머니즘적 신앙, 5) 제국주의적 선교와 종교적 배타성, 6)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으로 들고, 개신교 쇠퇴의 원인과 현 위치에 대해 되짚어 본다. 3장에서는 한국의 토착화 신학인 안병무의 민중신학을 중심으로 한국 교회 개혁의 대안을 제시한다. 종말론적 신앙의 회복은 언행불일치의 신앙의 대안이 될 것이며, 교회의 역사의식 결여 문제는 안병무의 ‘하나님’ 이해와 ‘죄’ 이해를 새롭게 고찰해 보고 역사 속으로 보냄 받는 교회공동체의 본질을 연구함으로서 문제를 극복하고자한다. 또한 교회 공동체 분열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안병무의 밥상공동체를 제안하고, 이기주의, 물신주의, 개인주의, 열광주의 등 개신교의 병폐를 조장하는 샤머니즘적 신앙은 갈릴리 예수의 신앙으로의 전환을 요청한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지탄을 받고 있는 제국주의 선교와 개신교의 종교적 배타성을 극복하기 위한 첫 단계로 안병무의 ‘통전적 구원론’ 이해로 안내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목회자의 신뢰도 하락문제에 대한 극복의 길로, 한(恨)의 사제로서 목회자의 소명을 짚어보려고 한다. 민중신학은 ‘신학적으로 반성(reflect)하는 가운데 형성된 현재진행형의 신학’이다. 제도적 교회에 대한 비판은 건강한 신앙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있어왔지만, 민중신학이 서구신학의 문제점들을 명확히 파악하고 지적하고 있다는 점, 한국 민족의 저변의 감정과 한국의 문화, 동양적 사고체계를 기반으로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신학적 대안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오신택 한신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5 국내석사
크레크(W. Kreck)는 '정의롭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조성하려는 노력 없이' 복음은 선포될 수 없으며, '복음의 선포는 결코 정치나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신학은 나름대로 정치신학이라고 보는 J. 몰트만은 J. B. 메츠와 더불어 대표적인 정치신학의 주도자이다. 몰트만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 아메리카 합중국의 흑인신학, 한국의 민중신학, 그리고 여성신학 등과 그 이외의 많은 새로운 형태의 신학들을 그리스도교 신학의 정치적 자의식의 필연성과 그 결실의 징후들로 간주한다. K. 마르크스는 유명한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Ⅱ』 에서 "인간의 사유가 대상적 진리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결코 이론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문제이며, 실천을 떠난 사유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 하는 논쟁은 순전히 스콜라학적인 문제"라고 비판하였다. 나는 정치신학이란 단순히 실천을 요청하는 이론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하는 복음의 빛 안에서 제시된 실천의 반성이라는 몰트만의 혜안을 전적으로 지지하면서 정치신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나의 할머니들, 어머니, 누이, 여자친구, 신학동료들인 여신학도들, 목회 현장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교회여성들, 그리고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과의 관계 속에서 여성의 경험과 페미니즘 물결을 접하면서 이를 외면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나의 실존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많은 여성신학 강좌들을 수강하였다. 어떤 이는 신학의 방법론적 차원에서 삶의 현장, 혹은 현실적 경험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기독교 진리로 해결하고자하는, 20세기 중·후반에 나타난 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민중신학 등을 경험적 신학으로 간주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1960년 이후 독일에서 전개된 정치신학,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 아메리카 합중국의 흑인신학, 한국의 민중신학, 그리고 여성신학이 공히 인간의 해방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에서 해방 신학들(liberation theologies)이라고 간주한다.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대체로 여성신학을 해방신학의 한 범주로 보고, 과정철학 또는 과정신학과 여성신학과의 관련성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정치신학에 대한 관심을 가진 한 남성 신학도로서 여성신학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려는 나에게 1980년대 이래 이른바 페미니즘의 제3의 물결을 반영하고 있는 오늘의 주도적 여성신학자들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레베카 � (Rebecca Chopp)의 "정치신학으로서의 여성신학"(Feminist Theology as Political Theology: Visions on the Margins)이라는 논문은 정치신학과 여성신학에 대한 나의 탐구열과 연구 동기를 아주 적절하게 자극하였다. 해방신학 · 과정신학과의 연관성 속에서 논의된 여성신학 연구와 비교해볼 때, 정치신학의 통찰력을 여성신학에 접목시킨 본격적인 연구는 매우 드물다. 정치신학으로서의 여성신학을 취급한 이 논문은 이러한 주제와 연구내용을 올바르게 소개하는 것을 우선적인 연구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럼으로써 이 논문은 정치신학, 해방신학 등등의 이른 바 진보신학의 계통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여성신학의 해방전통의 뿌리와 지향점을 보다 더 명확히 제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홍완식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1996 국내석사
현대는 가치관과 사상이 다양해지고 신념과 신앙의 차원도 다원화, 다차원화되었다. 따라서 교육신학에서도 이에 타당한 신학적 정립의 요청이 있어왔다. 이러한 다원화 사회의 요청과 도전 앞에서 이제까지의 신정통주의 신학, 곧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반드시 적합한 대처를 할 수 없다는 반성이 서서히 일어났다.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적 관심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되었다. 이러한 신학적 관심은 교육신학사를 통해 '회심'을 강조하느냐 아니면 '양육'을 강조하느냐의 대립양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회심'이나 '양육'이란 용어가 양립될 수 있을 것인가?, '발달'과 '변형'이라는 용어는 무엇인가?, 혹은 회심은 발달의 의미와 상충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역사 속에서 두 줄기의 흐름을 가지고 흐른다. 즉 1780년 레�壤�Robert Raikes)의 주일학교 운동을 중심으로 발전하여온 기독교교육운동과, 또 다른 줄기는 종교교육운동의 선구자이며 『Christian Nurture』 (1847)의 저자 부쉬넬(H. Bushnell, 1082-1876)과 종교교육협회(The Religious Education Association)의 창설자이며, 이 운동의 가장 위대한 이론가 죠지 코오(George A. Coe)이다. 부쉬넬이 제시한 대안은 기독교 교육의 회심이란 부분에 있어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아동은 이미 기독교라는 전제된 조건에서 '양육'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발달이론을 발견할 수 있다. 코오는 부쉬넬의 이러한 신앙관을 20세기초의 교육심리학과 결합시켰고, 그는 종교교육이 회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렇듯 기독교 교육사를 통해서 신앙성숙이 '급격한 변화로서의 회심'에서 가능하다는 입장과 '점진적 발달과정'에서 가능하다는 두 입장의 갈등이 현대의 회심 운동파인 제임스 로더(J. Loder)이르고, 양육운동파로 제임스 화울러(James W. Fowler)의 이론에 이른다. 이 두 사람을 비교 및 평가함으로 두 사람이 오늘의 기독교 교육의 패러다임 형성을 위해 결국 양자 중의 하나의 택일이 아닌 'Transforming Moment'(변형 와 'Developing process'(발달)와의 변증법적 관계에 놓여있음을 증명하고 이를 비교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회심과, 양육이란 두 산맥의 대립을 연결할 수 없을까? 라고 하는 생각의 구체적인 노력으로써 신앙의 본질문제, 과정문제, 성숙화의 문제를 생각해야할 것이다. 즉 신앙이란 과연 무엇이며, 무엇이 성숙한 신앙을 배양해 주며, 또한 신앙은 어떠한 과정을 거처 발달해 가는가? 라는 물음에 응답하려한다. 이러한 연구의 성과로 의해, 신앙의 성숙은 기독교교육의 주된 관심이며, 신앙성숙이 한 순간이 아니라 일평생 일어난다고 할 때, 변형과 발달을 어떻게 연관지을 것인가?, 동시에 신앙성숙을 위한 교회교육의 구체적인 학문적 접근을 전개하며, 그 장으로서 환경과 신앙공동체와의 관계, 즉 바람직한 장으로서의 '신앙 공동체' 형성을 고찰할 것이다. 기독교 교육의 목적이 성숙한 인간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할때 종교적 성숙성을 기독교 신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내부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기독교교육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상태가 전술된 인간의 성숙성이라고 할 때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으로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바람직한 장은 신앙 공동체일 수 밖에 없다. 환경이 신앙 발달에 끼치는 영향과 또한 신앙 공동체도 신앙의 단계와 같이 발달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웨스트호프(John H. WesterhoffⅢ)의 신앙공동체 교육이론을 편다.
다문화.다인종 사회에서 인종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기독교윤리의 제언
구재복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2012 국내석사
2010년 통계를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180개국 121만명(2010.6.30 현재)에 이른다. 또한 귀화하는 인구의 수 또한 2009년을 기준으로 47개국에서 2만5천 명이나 된다. 성씨를 보면, ‘태국 태씨’, ‘몽골 김씨’, ‘대마도 윤씨’ 대치동에 산다는 ‘대치 김씨’처럼 그들이 시조가 되는 새로운 본(本)이 4,884개나 생겼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전체 인구의 2%를 넘어 사회학적으로 한국 사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년 그 숫자가 증가하고 있어 2050년에는 인구 10명당 1명이 외국인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연구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기존의 단일민족국가관을 교육해오던 우리 교육과 다수 국민들의 인식은 유엔의 권고에 따라 단일민족국가관 교육은 타인종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기에 시정권고를 받았으며, 국민들의 인식 또한 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의 증가에 따라 점차적으로 다문화·다인종사회로 전환되어감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런데, 서구의 다문화된 사회 속에서 경기 불황과 경제의 위기 속에 도시 하층노동자를 중심으로 경기 불황의 원인과 단순직 노동 일자리를 이주노동자들이 차지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소요가 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우파가 정권을 잡은 국가를 중심으로 이주민들에 대한 그간의 포용정책과 혜택을 점차적으로 제한하는 모습과 이주민 2세대들의 사회 상층부로 진입하기에는 언어와 주류사회의 장벽이 존재함을 보면서 문제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먼나라의 이야기로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용직 노동자들이 새벽 인력시장에서 자신의 일자리를 젊은 조선족 노동자들에게 빼앗기고 물가상승과 더불어 임금상승요인이 분명 존재함에도 싼 임금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의 존재로 인해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조선족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제한할 것을 인터넷에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지촌여성들의 자녀들과 혼혈아동들은 한국사회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중학교 이상 진학하여 학업에 전념할 수 없어 주류사회로의 편입이 쉽지 않다. 그리고 농촌을 중심으로 한 이주결혼을 통해 급속도로 다문화가 진작되고 있으나 이주여성은 돈을 주고 사온 며느리이기에 그들을 바라보는 인식과 이로 인한 고부간의 갈등과 나이많은 남편과의 갈등에서 힘겨워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이주결혼은 도시의 단순 노동자와 장애인을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사회와 교회가 어떠한 다문화사회로 진입할 것인지 묻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겪게될 성장통에 대해 지혜롭게 응전해나가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놓여져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속한 개교회들의 40퍼센트 이상이 농촌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교회학교에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출석하게 되고 이주여성들 또한 심심치않게 교회예배에 시부모를 따라 출석하기에 이른 지금, 기독교윤리는 행동의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고 또 교회는 어떠한 역할을 새 시대에 부여받고 담당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2. 연구방법과 구성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여러 가지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한다. 경제력이나 정치권력의 차이에 따르는 차별과 불평등도 있지만, 직업, 학벌, 출신 지역, 외모 등이 차별과 불평등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추가해야 할 중요한 기준의 하나가 인종이다. 비록 한국 사회가 과거보다 인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인종이 차별과 불평등의 중요한 기준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역사가 말해주듯이 인종은 오랜 기간 차별과 불평등의 중요한 기준으로 이용되어왔고, 이는 때로 참혹하고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인종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의 작동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소한 차이를 엄청난 결함인 것처럼 과장하고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아예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차별 행위까지 정당화하기 때문에 특히 문제가 된다. 현재 국내 신학계에서는 다문화를 주제로 한 논의는 최근들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성서신학과 이론신학에 비해 선교신학 분야에서 비교적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기존의 신학적 논의와 사회학적 현실분석을 통해 현상을 직시하여 고찰함으로 교회의 역할과 그리스도인의 책임적 행동 등을 제안할 것이다. 또한 인종의 문제와 종교의 문제는 인류역사상 가장 커다란 충돌과 인명피해를 가져왔기에 기독교윤리의 관점에서 인종갈등과 종교갈등 그리고 한국적 상황에서 이를 논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다문화·다인종 사회에 대한 성서와 신학적 근거를 정립하겠다. 또한 인종문제와 관련한 배후 이데올로기의 사례를 고찰하여 우리 한국상황에서 지향할 만한 대안을 모색하고 현재 국내의 인종갈등 사례를 면밀히 살핌으로써 형이상학적인 신학적언어의 수사학적 유희가 아닌 현실에 천착하고 적용가능한 윤리적 판단과 행위의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인종문제 해결을 위한 교회의 실천
구스타보 구띠에레즈의 해방신학과 '신은사 운동'에 관한 연구
오세열 한신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9 국내석사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민중의 한(恨)이 서려 있는 학문이다. 해방신학은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을 마르크스의 사회분석 방법인 ‘종속이론’을 통해서 선진자본주의 국가를 통렬히 비판한다. 선진국의 제3세계 국가에 대한 종속은 경제 영역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아울러 국가안보를 내세우는 군부독재정부에 의해서 종속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에 가톨릭교회-라틴아메리카주교협의회-는 1968년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문제를 처음으로 언급하였다. 이로써 해방신학의 토대가 마련되었고,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교회는 ‘가난’과 ‘종속’으로부터 해방을 천명하게 되었다. 이것은 민중의 고난과 한계상황에 거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교회의 민중지향적인 신학이었다. 구스타보 구띠에레즈(Gustavo Gutierrez)는 해방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가난한 이들이 사는 현장인 페루의 수도인 리마(Lima)의 외곽인 리막(Limac)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지금도 이곳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구띠에레즈의 가난과 동행하는 삶은 그의 저서 ‘해방신학’의 내용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그는 해방신학에서 예수는 민중과 삶을 같이 하였을 뿐 아니라, 예수를 만난 민중은 삶이 변혁된다. 그리고 예수의 복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연대와 사회변혁을 일구어낸다. 그러나 해방신학은 분석방법, 현실인식, 구원 등에 관하여 다수의 비판을 받았다. 그렇지만 전(全)세계적으로 흑인신학, 여성신학, 민중신학 등의 태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교회는 해방신학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민주화와 민중의 권익을 위해서 애써 왔다. 가톨릭교회의 활발한 사회참여에도 불구하고 교세는 점차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라틴 아메리카 사회가 점차 개인화, 다원화, 도시화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로써 새로운 교회 운동으로서 신은사(오순절)운동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정치세력화 함으로써 해방신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사회참여를 해나가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교회가 감소하는 것과 달리 신은사(오순절) 운동은 ‘성장’에 초점을 두고, 성장해가고 있다. 이분법적 생각들 - 선과 악, 영혼과 육체, 부와 가난, 하나님나라와 세상, 천국과 지옥 - 등과 같이 성서를 단순한 대립의 구조로서 이해한다. 주목할 부분은 신은사(오순절)운동이 물질적인 축복을 매우 긍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의 고통과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민중에게 감성적으로 큰 설득력을 지닌다. 또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이들은 사회 제도권 진출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은 교회를 통해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책임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리고 성서 속의 치유와 기적은 국가 의료 서비스로부터 제외된 가난한 민중에게는 복된 소식이 된다. 이처럼 가난한 자들이 신은사(오순절)운동에 많은 참여를 하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사회 계층이 공존하고 있다. 성장에 대한 강조는 물질적·현세적 축복과 교세확장으로 드러난다. 한편으로 라틴 아메리카 신은사(오순절)운동은 개인의 변화를 통한 사회의 변화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신은사(오순절)운동은 성도 개인 윤리적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