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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예술공연장의 운영 개선 방안 연구 : - 한국문화의집 KOUS 극장을 중심으로 -
손진영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4 국내석사
전통예술 공연장의 운영 개선 방안 연구 - 한국문화의집 KOUS 극장을 중심으로 - 손 진 영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제문화유산협동과정 K-POP 공연이 대세인 이때, 전통문화예술은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어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표 전통문화예술 공연장인 한국문화의집(KOUS ; KOrea cUltural houSe) 공연에 관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KOUS 공연을 비롯한 전통문화예술 공연의 발전을 위하여 연구에 착수하였다. 본 연구의 목적은 공연장의 공간적 특성과 정체성을 준거로 삼아, 공연 운영현황을 살펴 개선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연구의 방법은 우선 설립목적과 운영방침, 구조와 형태 등 KOUS 자료 분석으로 공연장 성격을 규정하고, 이를 준거로 공연목록 검토, 관객의 설문 자료, 관객심층 면접을 통해 다음과 같이 문제점을 찾고 개선안을 제시하였다. 첫째로 KOUS 자료 분석으로 밝힌 공연의 기준(준거)은 두 방향이었다. 하나는 설립목적과 운영방향과 관련된 ‘전통문화예술의 보급, 선양, 발전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 또 다른 하나는 중소규모 공연에 적합한 (중)소극장, 관객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돌출 극장이며, 용도로는 다양한 장르와 형태의 예술 공연을 위한 다목적 극장이었다. 둘째로 ‘전통문화예술의 보급, 선양, 발전이라는 공공의 이익 추구’라는 준거로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나타난 문제는 홍보의 미흡,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나 관광 상품화 노력의 미흡, 또한 민관협력이나 네트워크 형성 노력의 미흡이었다. 이에 홍보의 미흡에 대해서는, 지인중심의 인지경로를 탈피하여 홍보의 다양화와 선진화를 제안하였다. 특히, TV 등 대중매체, 인터넷, SNS 등 첨단 매체 활용을 강조하였다. 외국인에 대한 서비스와 관광 상품화의 미흡에 대해서는, 밖으로는 한류에 편승하거나 성공한 선진 사례를 벤치마킹해 공연의 세계화를 이루고, 안으로는 관광업체 등 내한 외국인 관련 단체와 연계하여 방한하는 외국인 유치를 제시하고, 공연장내 외국인 편의 시설을 갖출 것을 제안하였다. 민관협력이나 네트워크 부족에 대해서는, 교육계와 연계하여 체험학습 등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기타 노인 단체, 지방문화단체와 연계할 것을 제시하였다. 셋째로, ‘극장규모와 형태를 준거’로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성 지향적, 프로그램에 따른 연령층의 편중 등의 편향성, 잠재고객 유치 노력 부족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에 공연의 편향성에 대해서는‘균형’있는 공연 프로그램의 편성과 운영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남성 취향을 고려한 프로그램의 제작이나 편성을 해야 하고, 연령 편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전통공연과 퓨전공연의 균형을 강조하였다. 잠재고객 유치와 관련해서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등 사전노출을 강화할 것을 제시하였다. 넷째로, 개선안을 종합하여 ‘KOUS 극장의 한국 전통문화예술공연장 랜드마크화’를 궁극적 지향점으로 삼아 장단기전략을 제시하였다. 단기 전략으로는, KOUS 공연장 홍보의 다양화 및 강화(홈페이지, 재단 공연 등 각종 협력공연의 시작과 말미 등 홍보), 협력 공연 추진, 교육계 및 관광업계와 협력한 공연장 활용안을 제시하였다. 장기 전략으로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전통문화예술공연학과 설치 유도, 국내외 관련 대학이 KOUS 극장을 체험코스나 실습장으로 활용하도록 유도, 공연장 외형에 특정 상징물(상징탑) 설치, 주차장 확대 및 전체 건물 사용의 재구조화 등을 제시하였다. 주제어 : 한국문화의집(KOUS), 전통공연, 공연장 성격, 관객 특성, 관람성향, 관객 만족도, 운영 개선안, 랜드마크
해방 이후 경주시 황남동 일대 한식 건물 주거지 형성과 역사적 경관의 구축
구성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0 국내석사
20세기 초중반에 걸쳐 형성되기 시작한 소규모 재래 주거지였던 황남동 일대는 1970년대에 이르러 관에 의한 역사적 경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황남동의 특수한 배경에 주목, 일대에 형성된 한식 건물군의 형성 배경부터 건축적 특징을 살펴보고 이에 따른 의미를 고찰했다. 황남동 일대는 경주 중심부에 위치한 대릉원 일대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한말 무렵까지는 농경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점차 주거지로 변모하고, 1970년대에 이르면 1971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기점으로 관 주도 경관 구축이 본격적으로 일어난다. 개발은 대릉원과 가까운 북동쪽으로부터 남서쪽 방향으로 개발되고, 후기에 주로 지어지는 ‘비 목조 한식 건물’의 분포 역시 증가하여 각각 개발 초기와 개발 후기에 해당하는 구역의 경관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주거지구조 또한 구역별로 상이하다. 개발 초기에는 ‘가로체계를 우선으로 한 자연발생적 배경’을, 중기에는 ‘필지를 우선으로 한 집단개발적 배경’, 후기에는 ‘가로체계와 필지를 동시에 고려하여 형성되는 배경’을 보인다. 필지는 규모 면에서 후기로 갈수록 더 커지며 정형적인 모습이 반복된다. 평면 유형은 1960년대까지 一자 전퇴집이 대부분을 차지하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ㄱ자 웃방꺾음집 유형이 폭발적으로 신축되어 이 일대의 일반적 평면유형을 대체한다. 1980년대부터는 제도적 규제 아래 ‘비 목조 한식 건물’을 건립하기 시작하여 이후 신축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20세기 중후반 황남동의 한식 건물은 ‘한식’을 유지하되 새로운 재료 및 구조를 통하여 새로운 평면을 모색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규모와 평면의 계획적 특징은 실측가옥 조사를 통해 일부 확인했다. 1970년대 이후 황남동 목조 한식 건물은 웃방꺾음집을 기본형으로 하기 때문에 규모와 가옥 이용이 유사하다. 비 목조 한식 건물은 실 배치 및 동선에서 대체로 거실중심형에 주방이 배면에 위치하고 화장실이 배면 또는 방 사이에 위치하는 점, 그리고 테라스-현관-거실의 진입 순서가 나타나는 등 특징을 공유한다. 목조 한식 건물의 경우에 비해 면적 및 전후폭에 있어 개별 가옥 간 차이가 큰 것도 특징이다. 구조 측면에서는 건물의 구조 조합과 지붕틀 구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벽체부와 지붕부에서는 목조·조적조·철근콘크리트조의 다양한 조합이 일어난다. 지붕틀은 종래의 한식 목구조의 일반적 규범에서 벗어나 높고 가볍고 간략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목조 지붕틀 구조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시기를 구분하지 않고 나타나며, 또한 벽체부 주구조가 목조인지 조적조인지에 무관하게 전형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외관은 비 목조 한식 건물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지붕부는 시각적으로 현저한 기와지붕과 서까래의 모사가 필수적으로 나타난다. 반면 벽체부 외관은 지붕부와 가까운 벽체 상단 뺄목에 한정되어 나타나고 오류를 가진 경우도 흔히 나타난다. 위의 분석은 ‘관의 주거지 조성에 따른 역사적 경관 구축’, ‘도시한옥이자 일반주택인 이중적 정체성 형성’, ‘한식 건물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라는 주제로 종합된다. 우선 관 주도의 주거지 조성에 따른 역사적 경관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황남동은 ‘주거’와 ‘역사적 경관’이 중첩되어 있는 지대이다. 일상의 공간인 주거지는 20세기 중후반에 걸쳐 여러 시도를 통해 역사적 경관 구축의 일환으로 다루어진 바 있는데, 주거라는 맥락 자체에서 이탈시키면서까지 역사적 경관을 무리하게 적용하는 등 유지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반면 황남동의 경우 관의 역사적 경관 구축과 주거지가 양립 가능했다. 황남동은 실용적으로 역사적 경관을 만들어낸 현대적 기획이 유효하게 실현된 곳이다. 한편 황남동의 한식 건물은 도시한옥임과 동시에 20세기 후반의 일반주택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이중적 정체성을 가진다. 먼저 도시한옥 간 비교 가능한 요소들을 통해 살펴본 결과, 같은 도시한옥이라는 범주 안에서도 각 지역마다 가지게 되는 특징은 상이했다. 경주시 황남동의 한식 건물은 타 지역 도시한옥처럼 도시화의 영향을 받았으나, 관 주도 경관 형성이라는 배경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또한 주요 형성 시기가 1970~90년대이므로 타 지역의 경우 20세기 초중반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점과 다르다. 배치의 비교 결과 지역별로 모두 상이했다. 평면의 측면에서 서울·대구·경주는 모두 웃방꺾음집의 지속 또는 도입, 그리고 변형을 중심으로 전개되나, 전주는 一자형 안채가 겹집화되어 지속된다. 20세기 후반의 일반주택으로서의 황남동 한식 건물의 의의는 동 시기 일반주택을 대표하여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대거 건립된 불란서 주택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았다. 1970년대 중반이라는 시기, 거실중심형 평면, 조적조 벽체 구조를 지닌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는데, 지붕틀이나 외관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특히 두 유형은 평면상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외관에서 각각 전통과 서구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표상하고 있어, 서구화의 추구와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새로운 역사적 경관을 창출해내고자 하는 시대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식 건물에 대한 다양한 실험은 평면 변천, 구조 전환, 외관 지속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평면 변천은 유형적으로 볼 때 크게 3단계에 걸쳐 변화했다. 가장 먼저 지역적 형식으로서의 一자집이 있었고, 1970년대에 도입된 양식으로서의 웃방꺾음집이 출현했고, 이후 차츰 보편적 양식으로서의 거실중심형 평면이 정착되어간다. 구조 전환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며, 조적조 벽체, 철근콘크리트 슬래브, 목조 지붕틀이 결합하여 형성되는 절충적 구조의 사례는 전통목조건축이 새롭게 도입된 구조에 적응하는 당시의 기술적 상황을 대표하여 보여준다. 한편 황남동 한식 건물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목조 지붕틀 구조는 서까래의 덧걸이 배치를 중심으로 한 변형된 한식 목구조의 일종으로 판단되며, 조선후기 지붕가구 형식 변천의 연장선에 놓일 수 있다. 외관 지속의 측면에서는 1960~70년대의 성역화 사업 등 국가건축사업에서 나타난 건물들처럼 구조가 변화해도 한식 목조 의장이 지속되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허나 국가가 주체가 되어 건설한 한식 건물은 목조 특유의 모습을 살려 외관이 유지되는 데 비해 황남동 비 목조 한식 건물은 지붕부 및 벽체 상부 외에는 ‘한식’의 특징이 생략된다. 이는 곧 조례로 정한 ‘한국고유의 건축양식’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지붕부 및 그와 가까운 벽체 상부의 뺄목 등, 다른 부분보다 시각적으로 현저한 부분을 더 중시했다. 결국 황남동에서 나타난 한식 건물에 대한 다양한 실험은 한옥의 재규정이 일어나는 20세기 후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경주시 황남동 일대 한식 건물 주거지는 우리나라에서 전반적으로 한옥 건립이 급감한 것으로 알려진 1970~90년대라는 시기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한옥 건립 흐름을 지속했다. 이와 함께 양식 및 구조가 전이되는 시기에 적응과 변용을 통해 고유한 건축 유형을 형성했다. 이 점에서 황남동의 한식 건물의 발달은 20세기 전반기의 새로운 조건과 환경에 대한 대응에 따라 나타난 도시한옥의 발생에 비할 수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The area of Hwangnam-dong, a small traditional residential area that began to form in the early and mid-20th centuries, was formed by the government in the 1970s. This study noted this particular background of Hwangnam-dong. The Hwangnam-dong area is located in the west of the Daeneungwon area located in the heart of Gyeongju, and was originally close to farmland. After that, it gradually changed into a residential area through Japanese colonial era, and by the 1970s, the government-led landscape construction began in earnest. As a result, urban tissues gradually becomes based on a plan rather than a natural occurrence, and the size of the parcel becomes larger and more formal in the latter phase. Although most of the floor plan types of Korean-style buildings(─ shaped) were constructed until 1960s, which was a regional tradition, the L-shaped floor plan type was constructed in the 1970s, replacing the general floor plan types in this area. In the 1980s, the construction of 'non-wooden Korean Style buildings' began under institutional regulations, and most of them were constructed later. The characteristic of the Korean Style buildings in Hwangnam-dong in the mid to late 20th century is that they maintain a “Korean style” but seek new surfaces through new materials and structures. The planned features of size and floor plan were identified in part by a survey. Since the 1970s, the size of the wooden Korean building in Hwangnam-dong is similar to the size of the house because it is based on typical traditional plan. The non-wooden Korean buildings are similar in that they generally follow the center of the living room in the layout. On the structural side, this study looked at the structural combination of the building and the construction of the roof frame. Various combinations of structures occur in the wall and roof sections. The roof frame shows a high, light and simplified form, breaking away from the general norm of traditional Korean wooden structures. This wooden roof frame structure is unique in that it appears from the 1970s to the late 1980s without distinguishing the timing, and is also typically applied regardless of whether the main structure of the wall is wooden or masonry. The exterior was focused on the non-wooden Korean style building. The roof is visually marked with roof tiles and rafters. On the other hand, the 'Korean style' exterior of the wall is limited to the top of the wall close to the roof, and it is common to have errors. The above analysis is aggregated as follows: First, in the case of Hwangnam-dong, the construction of historic landscape by the government and the maintenance of residential characteristics were compatible, and thus the modern planning of creating historic landscape through residential areas was effectively realized. Secondly, the case of Hwangnam-dong shows the formation of dual identity, which is an urban Hanok and a general contemporary house. Third, there are various experiments on Korean-style buildings, which are explained by the process of plan transition, structural changeover, and appearance continuation. The residential area of a Korean-style building in Hwangnam-dong, Gyeongju, continued to build hanok despite the period of the 1970s and 1990s, when the construction of hanok in general fell sharply in Korea. At the same time, a unique type of architecture was formed through adaptation and transformation at a time when forms and structures were transferred. In this regard, the development of Korean-Style buildings in Hwangnam-dong is comparable to the occurrence of the concept of urban hanok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in response to the new conditions and environment.
『임원경제지』 「전공지」를 통해 본 전통 직조 기술문화 고찰
장예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5 국내석사
본 연구는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와 그의 저서 『임원경제지』 중 「전공 지」를 중심으로, 전통 직조 기술과 복식 문화의 사상적 기반을 탐구하고 이 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조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서유구는 경세치용, 실 사구시, 이용후생의 실학적 철학을 바탕으로, 원료 재배, 도구 활용, 직조 기술의 실용성을 강조하며 전통과 외부 문물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본 연구는 조선 후기 복식 제작 체계와 민간 직조 활동의 흐름을 살피고, 「전공지」를 통해 직조 기술의 원료와 도구, 기술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이 를 바탕으로 서유구의 의문화에 대한 인식과 그의 실용적 접근 방식을 확 인하였다. 또한, 개항 이후 전통 직조 기술의 쇠퇴와 무형유산 정책을 통한 계승 과정을 검토하였다. 특히, 본 연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의 운영, 지속 가능 발 전 목표(SDGs), 종합성과체계(ORF, Overall Results Framework)와의 연 계를 논의하였다. 이는 서유구가 전통문화를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 재와 미래를 위한 실용적 자원으로 바라보며 이를 재창조하려 했던 철학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서유구의 사상을 통해 전통과 현 대를 연결하며, 전통 직조 기술의 지속 가능성과 창의적 계승을 위한 새로 운 관점을 탐구하고자 한다. 주제어 : 서유구, 임원경제지, 전공지, 전통 직조, 이용후생, SDGs, ORF
선·면 단위 등록문화재의 활성화를 위한 관리 개선방안 : -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중심으로 -
이은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2 국내석사
현대 사회에서 유산은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를 넘어선 사회적, 경제적 가치까지 추구하는 자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도시의 자원으로 이용되는 유산은 도시개발로 인하여 원래의 기능과 용도를 상실하거나 훼손되는 결말을 맞이한다. 한국에서는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하여 사라져가는 근대유산을 보호하고자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후 개별단위 문화재 중심의 단선적‧평면적 보존관리에 따른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2018년에 선·면 단위 등록문화재가 시행되었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면 단위 등록문화재는 총 8곳이며, 모두 근대역사문화공간이다. 근대역사문화공간은 등록문화재인 동시에 도시 재생사업이 함께 진행되고 있는 공간이다. 등록문화재 제도는 보존과 활용이 유연한 장점이 있어, 도시계획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계획에 치중하면 유산이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보존과 활용의 명확한 기준을 통해 진행되어야 한다. 유산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보존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활성화(revitalization)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유산의 활성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 유산을 활성화하는 방식은 재건(reconstruction), 개조(remodel), 재생(renewal), 재활용(recycle), 재활(rehabilitation), 보수(renovation), 재활성화(revitalization) 등 다양하게 존재하며, 각자 다른 결과로 도시에 적용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중심으로 적용된 유산의 활성화 현황을 분석하고, 해외사례와 비교를 통하여 근대역사문화공간이 추구해야 할 유산 활성화 방식과 관리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도시 속에서 지속가능한 근대유산의 보호가 가능하길 기대한다. In modern society, heritage is used as a resource to pursue social and economic values beyond historical, academic and artistic values. However, the heritage used as a city resource ends up losing its original function and use due to urban development. In order to protect modern heritage sites that are disappearing due to rapid urban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Korea implemented a registered cultural property system in 2001. Subsequently, registered cultural properties in line and area units were implemented in 2018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single-track and planar preservation management centered on cultural properties in individual units Currently, there are eight registered cultural properties in Korea, all of which are modern historical and cultural spaces. Modern historical and cultural spaces are registered cultural properties and urban regeneration projects are being carried out together. The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system has the advantage of being flexible in preservation and utilization, and can apply city planning. However, if urban planning is focused, it may lead to the destruction of heritage and should be carried out based on clear standards of preservation and utilization. In order to achieve sustainable development while preserving the value of heritage, we should aim to revitalize heritage rather than to revitalize cities. There are many ways to revitalize the heritage, such as reconstruction, remodeling, renewal, recycling, rehabilitation, renovation, and revitalization, which can be applied to cities with different results. In this study, we will analyze the current status of heritage revitalization applied mainly to Mokpo Modern History and Culture Space, and present the method of heritage revitalization and management improvement that modern history and culture space should pursue compared to overseas cases. Based on this, we hope that sustainable modern heritage can be protected in cities.
금다운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4 국내박사
본 논문은 한국 라(羅) 직물의 역사를 문헌과 유물을 통해서 살펴보고 시대별 직조 기법의 변천 및 직물 사용 양상과 의의를 고찰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공예사에서 라 직물의 가치를 제고하고 복원 연구를 비롯한 활용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라 직물의 기원 및 전형(典型)으로 인식되는 직물의 조직은 통상 경사 4올이 한 조로 꼬인 익조직이 기본 바탕으로 구성되며, 소재는 대부분 견으로 나타난다. 즉, 본 연구에서는 경사 4올 또는 2올이 경사 방향으로 고정 꼬임이 없이 서로 꼬여 조직된 라 직물을 연구 대상으로 상정하며, 명칭으로는 라로 불리지만 사조직 및 평조직 등의 다른 조직으로 제직한 직물 품종은 연구 범위에서 제한하였다. 라는 동아시아 직물의 발달 과정에서도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출현하기 시작한 익조직 종류이며, 고대부터 널리 파급된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에서도 삼국시대부터 관련 문헌이 나타나며 라 직물의 출토 양상을 살펴보면 고대부터 17세기 무렵까지 지속해서 확인된다. 라는 한반도에서 최소 약 1,500년 이상 존속한 직물로서 역사적 연원이 상당히 오래되었으나 현재는 제작 기법의 전승이 단절되어 멸실한 직물 품종이기도 하다. 이 같이 동아시아 직물사 연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라 직물은 국내ㆍ외 연구자마다 조직의 정의 및 명명법 등에 차이가 있어 조직 구분의 혼란 및 해석에 상충이 이어져 왔으며, 직물 품종 및 조직의 이해와 구분에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선행연구를 종합하여 조직의 개념을 재확인하고 라조직과 이를 기초로 하는 문직물에 관해 기본적인 조직 분류를 시도하였다. 라에 관한 문헌 기록을 통해 직물로 완성된 상태뿐만 아니라 라로 제작된 복식 및 공예품이 교역품과 하사품 등의 물목으로 일찍이 활용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시대별 직물 용도 및 활용 범위가 확인된다. 관영 공장을 중심으로 전담 인력 및 생산 체계에 관한 내용이 기술되며, 특히 고려시대에는 기록상 라 직물 생산이 국외에서도 인정받을 만큼 상당한 수준이었음이 확인된다. 라 유물은 삼국시대 무렵에는 대다수 일완전 크기를 알 수 없는 작은 직물 편으로만 나타나는 추세이고,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에는 라 직물 소재의 공예품도 다소 확인되며 복식 실물은 주로 조선시대 유물에 집중된다. 국내 출토 라 직물을 중심으로 제직 기술을 분석하고 조직에 따른 기법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무문라ㆍ문라ㆍ화라 및 직금라로 구분하여 문양 분류하고 시대별 직기와 직법을 추론하는 기초적인 고찰을 진행했다. 국내ㆍ외 라 제직 연구에 시도된 종광 유형을 세분하고 무문라의 경우 실험 실습을 통해 다종광 유형의 직기로 실물 제작하여 통경 구조 및 구동 원리를 확인하였다. 문라는 일완전 문양이 확인되는 유물을 분석하여 직법도를 작성하며 문종광의 개수 및 직법에 관한 추론을 진행하고, 익종광 유형에 따른 다양한 경우의 수를 산출하였다. 화라 및 직금라는 화루를 갖춘 문인기를 사용한 것이 추정되며, 문인기의 종광 유형 및 개구 구조와 직조 순서를 검토하였다. 라의 품종별 문직 기법을 분석하면서 시대에 따라 라를 제작하는 직조 공예의 변화 과정을 확인하였다. 현재까지 국내 발견된 라 직물을 통해 무문라는 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단층문조직의 문라는 고대에서 고려시대까지 발견되며 조선시대를 기점으로 부가문위사 위중조직의 화라 및 직금라의 출현이 확인된다. 라 직물에 문양을 표현하기 위한 조직의 변화 과정 및 이행의 방향을 살펴볼 수 있다. 라 직물의 문양은 기하문ㆍ운문ㆍ화문ㆍ연당문 등으로 분류하였으며 기하문의 경우 주로 고대부터 고려시대의 문라, 이외 운문ㆍ화문ㆍ연당문은 대체로 조선시대 화라 및 직금라의 문양으로 확인된다. 라는 직물 상태로 대내외의 국신품이나 하사품 및 진상품 등으로 유통되기도 하였으며 직조 공예로 완성된 직물은 다시 침선ㆍ염색ㆍ금니 및 금박ㆍ자수 등의 다른 섬유공예 종목에서 활용되었다. 라가 사용된 복식품은 시대 전반에 걸쳐 왕과 관인 등의 계급 단계 및 관계를 상징하는 구성 요소로 나타나며, 이외 여성 복식에 관해 비교적 라의 사용이 관대한 경향으로 살펴진다. 라로 만든 의복은 국가 및 왕실 관련 유통 물품에서 확인되거나 섬유공예 장식 기법의 바탕 소재로 라의 다양한 사용 양상이 보이는데 라는 한정된 귀한 재화로서 사회적으로 고급 직물의 가치로 인식한 것을 알 수 있다. 라의 생산과 쓰임이 연속된 시대 속에서 당대 정치ㆍ종교ㆍ문화를 표상하는 복식 및 공예품에 라가 적용되며 상류 문화를 대표하는 소재로써 자리하였다. 본 논문은 한국 라 직물의 기원과 역사적 흐름을 개관하기 위해 관련 문헌 기록 및 유물을 분류하고 개별 시대마다 라의 특징과 변화 흐름을 고찰하기 위한 시도였으나, 현전하는 사료를 제한적으로 조망한 연구임을 밝힌다. 문헌에서 확인되는 내용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발표된 유물을 중심으로 특성과 기법을 대상으로 한 단면적인 연구이지만, 향후 한국 라 직물 문화를 이해하고 전통 직물의 복원 및 활용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주제어 : 직물, 라, 익조직, 무문라, 문라, 화라, 직금라
최유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5 국내석사
Mosi(Ramie Textile) is a textile woven from the inner bast fibers of ramie, a plant belonging to the nettle family. It has been widely used as a clothing material in the Korean Peninsula since ancient times and has been cherished as a summer fabric through the modern era. The weaving techniques of Mosi have been recognized for their cultural significance and unique value, being designated as a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Korea in 1967 and inscribed on the UNESCO Representative List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in 2011. The Goryeo dynasty(918~1392) marks a significant turning point in the history of Mosi, as the terminology and usage of Mosi became more diverse and specific compared to earlier periods. Historical records indicate the production of both fine, delicate Mosi and special varieties. Therefore, the Goryeo dynasty is considered a particularly important era in the history of Mosi.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historical value of Mosi during the Goryeo dynasty by analyzing its terminology, usage, and weaving techniques from multiple perspectives. By examining historical documents and artifacts related to Mosi, the study identifies the characteristics and transformations over time. In particular, it highlights changes in spinning techniques and the distinctive features of Munjeopo(紋苧布, Patterned Ramie Fabric) to shed light on the unique attributes of Goryeo-Mosi. Mosi, often discovered in ancient tombs, suggests its production and use date back to early times. However, historical texts indicate that Mosi was referred to by general terms such as ‘麻(ma, hemp)’ and ‘布(po, cloth)’ before the Unified Silla period. The first recorded use of the term ‘紵(jeo, ramie)’ in 860 signifies its establishment as a distinct material separate from hemp. During the Goryeo dynasty, the terminology for Mosi diversified into terms such as ‘紵’, ‘苧(jeo)’, and ‘毛施(mosi)’. Additionally, various terms emerged to reflect differences in fabric characteristics such as fineness, width, color, and patterns. Among these, the usage frequency of ‘紵’ and ‘苧’ shifted over time. Mosi originally recorded as ‘紵’ gradually came to be written as ‘苧’ by the late Goryeo dynasty. This trend continued into the Joseon dynasty, where ‘苧’ became the standard term. Meanwhile, ‘毛施’ is associated with the Korean word for ramie(mosi) and was first recorded in Goryeo-era texts. The applications of Mosi during the Goryeo dynasty can be broadly categorized into domestic consumption and trade purposes. Its uses are documented in various contexts, including clothing, household items, taxation, and diplomatic gifts. Among these, white Mosi was widely used across all social classes, regardless of status. Mosi, which was also used as a substitute for currency alongside silver, was collected as tax and became a key resource for state finances. Notably, it was actively traded in diplomatic exchanges with the Yuan dynasty. Among these items, Munjeopo was one of the key commodities that the Yuan consistently demanded from Goryeo. This study compares and analyzes Mosi found in ancient tombs with Goryeo-period Mosi fibers to highlight their distinctive characteristics. While ancient Mosi underwent a twisting process during spinning, this step was largely omitted in Goryeo-period techniques. This spinning method aligns with the traditional Mosi-making practices still preserved in Korea today, suggesting the standardization of Korean Mosi-making techniques during the Goryeo dynasty. Of particular note, the Goryeo dynasty saw the production of special varieties of Mosi. Munjeopo is a textile specifically documented during the Goryeo dynasty. Although no weaving techniques or artifacts have survived, Munjeopo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rade with the Yuan dynasty and was considered one of the key products of the time. Previous studies have interpreted Munjeopo as a patterned fabric woven using a Complex Pattern Loom. However, this study proposes a new weaving technique based on the documented characteristics of Munjeopo and the specific properties of ramie fibers. This study examines the literature and artifacts from ancient times to the Goryeo dynasty to explore the characteristics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Mosi. By doing so, it identifies the influence of Mosi during the period and traces changes in spinning techniques over time. While the Goryeo dynasty has been recognized as a pivotal era in the history of Mosi, detailed studies on this topic have been scarce. Therefore, this study holds significance in elucidating the historical importance and unique characteristics of Mosi during the Goryeo dynasty. Although this research is limited to the existing historical records and artifacts, it is expected to serve as foundational material for advancing the understanding of traditional Korean Mosi in the future. 본 논문은 고려시대 모시의 용어, 활용례, 제직 기술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그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모시와 관련된 문헌 및 유물을 중심으로 시대적 특징과 변화를 고찰하였으며 특히 방적 방식 변화와 문저포의 특징을 조명하여 고려시대 모시의 특수성을 살피고자 하였다. 모시는 쐐기풀과에 속하는 모시풀[苧麻]의 속껍질에서 얻은 인피섬유(靭皮纖維)로 제직 된 직물이다.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의복 재료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름 옷의 소재로 사랑받아 왔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폭넓게 활용되었으며, 우수한 품질과 특별한 품종의 모시가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따라서 고려시대는 모시의 역사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모시는 고대 고분에서 빈번히 출토되어 일찍이 생산・활용된 직물이었음이 짐작된다. 그러나 문헌상으로는 통일신라 이전까지 별도의 명칭 없이 ‘麻(마)’와 ‘布(포)’라는 포괄적 용어로 통칭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헌안왕 4년(860) 모시가 ‘紵(저)’라는 명칭으로 기록된 사례는 모시가 삼베와 구별되는 독립적 소재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고려 이전 시기의 모시는 교역과 복식에 사용되었다는 직간접적인 기록이 전해진다. 또한 일본 정창원에 소장된 신라금(新羅琴)의 줄 소재가 모시로 밝혀진 점은 모시가 복식 외에도 다양한 기물에 활용되었음을 방증한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모시는 ‘紵’, ‘苧’, ‘毛施(모시)’로 명칭이 분화되었으며 섬세도, 폭, 색, 문양 등 직물 특성에 따라 다양한 용어로 명명되었다. 그중 ‘紵’와 ‘苧’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용 빈도가 달라지는데, 본래 ‘紵’로 기록되던 모시는 고려 말에 이르러 점차 ‘苧’로 표기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며 이후 ‘苧’ 표기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毛施’는 저마의 우리말인 ‘모시’와 관련이 있으며 고려시대 문헌에서 처음으로 ‘毛施’로 표기되었다. 『노박집람(老朴集覽)』에는 중국에서 저마를 지칭하는 여러 용어가 있으나, 고려인들이 저마를 ‘모시’라 부른 것을 차용하여 고려의 저포를 ‘모시포’로 불렀다고 전한다. 따라서 ‘毛施’는 ‘고려 모시’를 지칭하는 주요 용어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사료된다. 고려시대 모시의 활용례는 크게 국내 소비용과 교역용으로 구분하여 분류하였다. 복식, 기물, 조세, 외교 물품 등 다양한 활용이 기록에 나타나며 그중 백색 모시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널리 사용되었다. 은과 함께 화폐 대용으로 사용된 모시는 조세로 징수되어 국가 재정의 주요 자원이 되었으며, 특히 원과의 외교에서 활발히 거래되었다. 이 가운데 문저포는 원이 고려에 지속적으로 요구한 주요 품목 중 하나였다. 현재까지 발표된 고려시대 모시 유물은 총 23점으로 모두 고려 말 불복장 유물로 전해진다. 유물은 복식과 직물로 나누어 분석하였으며 개괄적인 복식 구성 방법과 섬유의 특성을 정리하였다. 복식 유물은 총 6점으로 모두 홑으로 제작되었으며 유물에서 확인된 고려시대 모시의 포폭은 31~36.5㎝이다. 고려시대 모시의 특성은 고대 고분에서 수습된 모시와 고려시대 모시 섬유 특성을 비교・분석하여 제시하였다. 고대 모시는 방적 과정에서 실 전체에 꼬임을 가하는 연사 공정이 이루어진 반면, 고려시대에는 연사 과정을 생략한 방식이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꼬임을 주지 않는 모시 방적 방법은 현재 한국에서 전승되고 있는 모시실 제작 방법과 동일하다. 이로 미루어볼 때 한국의 모시실 제작 방식이 확립된 시기는 고려시대로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당시 특별한 품종의 모시가 생산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문저포(紋苧布)는 고려시대에만 구체적인 기록이 전해지는 무늬가 있는 모시 직물로, 비록 제직 방법이나 유물이 전하지는 않지만 원과의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고려의 주요 생산품 중 하나로 평가된다. 기존 선행연구에서 문저포는 종광장치를 사용해 문양이 시문된 직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문헌에 나타난 문저포의 특징과 모시 섬유의 특성을 바탕으로 문저포 제직 기법을 새롭게 제안하였다. 본 연구는 고려시대 모시의 특성과 역사적 가치를 조망하기 위해 모시의 명칭이 처음 등장한 고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문헌과 유물을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모시의 영향력과 시대적 흐름에 따른 방적 방식의 변화를 확인하였다. 그동안 고려시대는 모시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로 평가되지만 구체적으로 연구된 사례가 드물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고려시대 모시의 역사적 의의와 시대적 특성을 규명하였다는 데 의미를 둔다. 현존하는 사료와 유물에 한정된 연구이지만 향후 한국 전통 모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기초 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양리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4 국내석사
이 논문은 프랑스의 전통공예 분야 무형유산 보호제도인 메트르다르 제도에서 한국의 무형유산 보호·관리원칙인 전형에 대입할 수 있는 공예기술 전승 사례를 연구하였다. 프랑스의 메트르다르 제도는 1994년 도입되어, 공예기술의 혁신과 발전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현대적 활용이 매우 뛰어난 사례로 알려져 있다. 2015년 한국의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도입된 전형이라는 개념은 프랑스 메트르다르 제도를 참고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전형의 개념적 모호성과 관련 세부지침의 부재가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프랑스 공예에 관한 전반적인 지형을 파악하기 위해 프랑스 공예의 용어와 성격, 분류체계, 정책의 주관부서 및 주요 협업기관 등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공예 전승정책으로서 메트르다르 제도의 전반적인 구성과 운영 현황을 살피고 문화재 정책과의 연관성을 살펴 그 특징을 분석하였다. 이후 메트르다르 제도의 기술, 도구, 전승방법에 대한 혁신을 보여주는 4개 공예기술 전승에 관한 현장사례를 수집·분석함으로써 국내에 참고가 될 수 있는 전형의 용례와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전승현황 조사의 연구문제는 메트르다르 제도에서 어떤 부분의 혁신을 추구하는지 밝혀내는 것으로 설정하고, 양적조사와 질적조사를 진행하였다. 프랑스 공예 전승에 관한 직접적 참여자인 메트르다르 장인 및 전수생을 대상으로 장인의 생애사 관점에서 접근한 질문지를 제작하였다. 질문지는 ‘개인 및 보유기술의 현황과 활동’, ‘입문자로서 공예기술의 학습’, ‘교수자로서 공예기술의 전수’, ‘공예 전승에 관한 가치관과 제도에 대한 회고’ 등의 소주제로 유형화한 50여 개의 질문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심층 인터뷰를 통해 내용을 검증하고 보완하여 구술채록문을 작성하였다. 제도 전반과 전승 사례에 대한 조사·분석 내용을 기반으로 메트르다르 제도의 운영 실태와 시사점을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메트르다르 제도는 공예기술에 대한 혁신과 변화를 무형유산의 전승 및 지속가능성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둘째, 전승자별 맞춤형 한시적 지원 전략으로 전수생의 미래 진로에 대한 고민을 수용하고 기한내 전수교육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실질적 도움을 주고자 한다. 셋째, 문화적 다양성의 포용력이다. 메트르다르 장인의 공예기술, 생애유형, 유입경로에 대한 다양성이 나타난다. 이로써 정책의 유연성과 포용성 안에서 전승의 역동성을 띠게 한다. 본고에서 제시한 메트르다르 제도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장기적인 전승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동일 공예 복수 지정 지양’의 원칙과 전수생의 처우개선을 검토한다. 둘째, 메트르다르 제도의 공예와 무형유산정책 간 교집합적 특성에 기반한 정책적 연계를 도모하여 전통공예 및 무형유산 보호에 관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한다. 메트르다르 제도의 사례에 기반하여 국내 정책과 무형유산 보호활동에 제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예를 구분 짓는 관습을 지양하고, 공예창작활동을 통한 기술의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 둘째, 무형유산 관련 기관의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한국적 전형의 용례 데이터를 실험·축적한다. 셋째, 전형 개념을 기술, 도구, 교육방법으로 유형화하여 단계적 도입을 추진한다. 메트르다르 제도는 공예기술의 혁신을 통해 무형유산의 진보와 발전을 추구하는 사례로서 의의를 갖는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전형에 대입될 수 있는 다양한 혁신적 전승 사례를 추가적으로 발굴한다면, 국내 무형유산 정책 운용에 의미 있는 참고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This paper explores cases of the transmission of traditional crafts centered around the French traditional crafts heritage protection system known as the "Maître d'art” system. Introduced in 1994, the Maître d'art system actively pursues innovation and development in craft technology and is recognized for its highly effective contemporary application. In 2015, the concept of "Jeonhyeong” inspired by the French Maître d'art system, was introduced with the enactment of the Cultural Heritage Protection and Promotion Act in South Korea. However, the conceptual ambiguity of “Jeonhyeong” and the absence of detailed guidelines in domestic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protection and management principles have been identified as issues. This paper examined the overall structure, operation, and practical cases of craft transmission in the Maître d'art system by collecting and analyzing data. To understand the broader landscape of French crafts, this paper explored terminology, characteristics, classification systems, and collaborating institutions in French crafts. This paper also analyzed the Maître d'art system's characteristics, operational status, and relationship with cultural heritage policies as a craft transmission policy. Specifically, this paper investigated and analyzed four cases representing innovation in technology, tools, and transmission methods within the Maître d'art system. While establishing research questions it was focused on identifying areas of innovation pursued by the Maître d'art system and conducted quantitative and qualitative research. Questionnaires for Maître d'art artisans and apprentices were made to address aspects such as the current status and activities of individuals and their skills, learning craft techniques as beginners, teaching craft techniques as instructors, and reflections on values and institutional aspects related to craft transmission. Based on the findings from the overall investigation and analysis of the system and case studies, this paper examined the operational status and implications of the Maître d'art system.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ly, the Maître d'art system considers innovation and change in crafts as driving forces for the transmission and sustainability of intangible heritage. Secondly, it has succeeded in preventing the discontinuation of the transmission of traditional crafts through temporary support tailored to individual artisans, promoting policy and economic benefits, and highlighting the excellence of crafts. Thirdly, it embraces cultural diversity, allowing for coexistence and dynamism within the flexibility and inclusiveness of policies. Challenges identified for the Maître d'art system include reviewing its principle of avoiding multiple designations for the same craft for long-term transmission sustainability and considering improving the status of apprentices. Additionally, this paper suggested opinion of promoting policy synergy based on the intersectional nature of the Maître d'art system with craft and intangible heritage policies to achieve synergistic effects in protecting traditional crafts and intangible heritage. Drawing on the case of the Maître d'art system, this paper proposes recommendations for South Korea's intangible heritage policy and protection activities. Firstly, to encourage the intrinsic development of crafts, it is advised to avoid customary genre categorizations and promote internal development through craft creative activities. Secondly, accumulating data on South Korean examples of "Jeonhyeong” from programs such as the National Intangible Heritage Center's support for successors is essential. Thirdly, to address confusion among successors caused by the concept of "Jeonhyeong” consider developing a pilot operation of the system, categorizing "Jeonhyeong”into types such as technology, tools, and education, and promoting a phased introduction. Lastly, to expand the domestic group of successors, it is recommended to establish a diverse pool of transferable skills and expertise among successors. The Maître d'art system is a significant example, seeking progress and development of intangible heritage through innovation in craft technology. If additional cases of innovative transmission that can be applied to South Korea's "Jeonhyeong” are identified, they could serve as meaningful reference cases for the operation of domestic intangible heritage policies.
임희영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1 국내석사
본 논문은 한국의 전통금속공예기법인 칠보(七寶) 중 유선 칠보 기법을 활용한 작품 제작과 그 제작 과정을 상세히 정리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유선 칠보 기법을 활용하여 제작한 각각의 6세트 작품에 있어서 제작 진행 과정을 순차적으로 상세히 기록하여 유선 칠보 기법의 전통기술 계승의 토대를 마련하고, 기술 발전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칠보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후 유럽으로 전래 되어 비잔틴 시대에 성행하였다. 실크로드를 통하여 동아시아로 전래된 칠보는 한국·중국·일본 등 각 나라의 문화와 개성을 담아 계승·발전하였다. 한국의 칠보는 신라 시대 경주 금령총에서 발견된 금제가는고리귀걸이를 통하여 살펴보았을 때 삼국시대부터 그 원형이 확인되며, 고려·조선 시대를 지나 현재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금속공예기법 중 하나이다. 이렇게 전래 되어 계승·발전된 칠보에는 다양한 기법이 존재한다. 그중 유선 칠보 기법은 금속판 위에 다양한 금속선을 원하는 문양에 따라 모양을 만들어 세운 뒤 금속선 사이에 칠보 유약을 채워 구워내는 기법이며,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 표현과 다채로운 색상 표현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본 연구에서는 유선 칠보를 제작함에 있어 금속 동판을 활용하고 둥근 은선(丸銀線)을 눌러 만든 납작 은선을 사용하였다. 바탕 금속 동판을 활용해 칠보의 투명 유약과 불투명 유약을 다양하게 사용하였고, 금속선의 두께는 얇아지고 높이는 높아진 납작 은선을 사용해 더욱 유선 칠보 기법의 특유의 특징인 섬세한 문양 표현과 다채롭고 풍부한 색 표현이 가능하도록 진행하였다. 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 유선 칠보 기법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기물 중심의 입체 작업을 시도하였으며 많은 종류의 기물 중에서 물건을 담아 보관할 수 있는 용도를 지니고, 오브제로서의 활용도 가능한 함(函)을 선택하였다. 물건을 담아 보관하는 함에 유선 칠보를 활용하여 기능적인 면에 심미적인 요소를 부여하고, 예로부터 길하고 상서로운 의미를 띄는 길상무늬를 넣어 기능적인 용도가 있는 함에서 귀하고 중요한 물건으로의 의미가 확장되도록 작품을 제작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하여 한국의 전통문양인 길상무늬를 기반으로 문양을 새로이 도안화하고 이를 납작 은선으로 옮긴 뒤 칠보 작업을 진행하였다. 또한, 작품에서 유선 칠보가 활용된 면적을 넓히고 가장 윗부분에 위치하여 칠보의 비중을 두었다. 물건을 담아내는 아래 함에 경우 금속 위에 칠보를 올리거나 옻칠을 사용해 표면을 마무리하여 칠보의 화려한 색상과 섬세한 은선 표현이 최대한 돋보일 수 있도록 하였다. 본 연구에서 영롱하고 화려한 색과 섬세한 문양 표현을 위해 효과적인 납작 은선을 활용한 유선 칠보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현대 한국 칠보의 아름다움과 유선 칠보의 지속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길상무늬의 전통적인 이미지와 귀중함을 담아내는 의미를 활용하여 함이라는 공예품을 제작해 조금이나마 한국의 전통 칠보와 문양의 아름다움을 토대로 현대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상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5 국내석사
본 연구는 전통 옻칠공예기법인 협저탈태 기법을 활용한 항아리 오브제의 조형성을 탐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협저탈태 기법은 옻칠로 삼베를 겹겹이 붙여 하나의 형태로 완성하는 전통 기법이다. 삼베와 옻칠이 쌓여 만들어진 층은 전통의 본질인 시간과 기술이 축적을 상징한다고 판단했다. 이 관점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협저탈태 기법으로 구현하기에 적합하며, 전통과 공예의 실용성을 상징하는 항아리를 조형 대상으로 상정하였다. 연구자는 협저탈태 항아리를 전통 및 공예의 실용성을 상징하는 대상으로 설정하고, 이를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행위를 통해 새롭게 만든 오브제로 치환했다. 이로써 전통과 현대가 각기 다른 시간의 벽에서 분리된 것이 아닌 상호 교류하고 연결되어 있음을 시작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협저탈태 항아리의 새로운 형태를 창출하였다. 전통기술의 집약체인 협저탈태 항아리를 현대적 도구로 해체하는 행위는 실용성의 상실을 초래하지만, 재구성이라는 연속적 작업을 통해 전통 기술의 의미와 현대와의 조화를 새롭게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해체 과정에서 드러난 항아리 내부 공간의 시각화 및 재구성된 구조를 장식으로 강조해 표현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조화와 순환이라는 상징성을 오브제로 구현하였다. 연구 방법론은 협저탈태 항아리의 형태 변형과 그 가능성을 검토하는 실험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실험 결과는 협저탈태 항아리를 오브제로 표현하는 데 활용되었고, 이는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연구자에 의한 의도적 행위의 근간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으로 항아리의 본질적인 형태를 흔들고 숨겨진 공간과 새로운 조형성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협저탈태 기법의 다양한 표현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이 연구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과정으로 협저탈태 항아리의 변형을 시도함으로써, 작가적 표현의 자유와 함께 전통공예와 현대의 유기적 상호관계를 시각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협저탈태 항아리라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개성을 가진 오브제로 변모시키고자 했다. 해체라는 능동적 접근으로 보편적 형태였던 협저탈태 항아리를 변형하고, 재구성이라는 행위로 새롭게 획득한 공간과 각기 다른 장식적 요소를 통해 다각도에서 완상할 수 있는 오브제를 창출하였다. 본 연구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협저탈태 표현기법의 확장을 위한 시도로, 단지 조형적 실험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공예의 의미와 표현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주제어 : 전통, 공예, 협저탈태 기법, 해체, 재구성
오아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반대학원 2023 국내석사
본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 박람회에 지어졌던 조선관에 주목했다. 19세 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열렸던 해외 박람회에 전시된 조선관에 관한 연구는 그동안 서양의 박람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일제강점기 일본 박람회에 지어졌던 조선관을 건축적인 측면에서 분석한 연구는 없었다. 이에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일본 박람회에 전시된 조선관의 건축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본 연구는 첫째, 일본 박람회에서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조선관에 차 용한 한국의 전통건축의 요소들을 분석하고, 둘째, 일시적 가설건축물의 전시관 인 조선관에 한국의 전통건축을 녹여내기 위해 어떠한 건축적 특징이 나타났는 지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조선관에 나타나는 실은 전시실, 매점, 접대실 및 귀빈실, 끽다실 및 식당, 휴 게실, 직원 사용 실로 구분된다. 이러한 실들은 실을 사용하는 주체와 건물에 기여하는 중요도에 따라 주용도, 부용도, 보조 용도 실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실들은 용도에 따라 효율적인 동선을 위해 특정한 배치와 형태를 보였다. 또한 조선관의 건축구조는 주골조를 통해 건물의 뼈대를 먼저 구축한 뒤 그 겉을 나무판자로 장식해 마치 한식 목가구조인 것처럼 표현한 구조였다. 이 같 은 구조물 위에 자리 잡은 지붕가구는 서양식 트러스와 일식 목가구조였다. 이 렇듯 사용 실과 구조가 한국전통건축물과 다른 조선관은 외관을 전통건축물과 유사하게 표현하고자 한국전통건축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 것 역시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전통건축의 표현과 일치하지 않았다. 위와 같은 조선관의 건축적 특징은 ‘한국전통건축물의 표현’, ‘건축 재료 및 표현의 대체’, ‘전시관으로서의 공간 확보를 위한 장치’라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조선관은 한국전통건축물을 모델로 축조되었다. 조선관과 관련된 각종 문헌을 살펴보면 ‘조선식 궁전조(朝鮮式宮殿造)’와 ‘조선식 문(루)(朝鮮王宮門, 朝 鮮式樓門造)’를 기본으로 형태를 구축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의 전 통건축물, 그중에서도 조선의 궁궐, 관아 건축을 모델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관 도면과 사진 자료 등에서 한국전통건축물에서 격식이 높은 건축물 을 표현할 때 나타나는 양성바름, 장식기와, 모로단청 등의 의장 요소를 살펴볼 수 있다. 둘째, 조선관에 사용된 건축 재료 및 표현은 한국전통건축물과는 다른 방식으 로 대체되어 나타났다. 조선관 설계자는 조선관을 전통건축물의 형태로 짓고자 했지만 조선관이 한국전통건축물에 익숙하지 않은 타지에서 건설되는 점과 일 시적으로 설립되었다가 철거되는 가설건축물인 점을 고려해 빠르고 간단하게 축조해야 했다. 때문에 절충점과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기존의 재료를 대체하고 의장을 간략화 한 것과 건물의 정면과 후면의 의장을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조선관을 전시관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공간과 지붕을 조정하였다. 전 시관으로서 조선관이 갖추어야 할 용도와 배치에 집중하고 필요한 공간을 확보 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중층 전시관 건물의 실내 공간을 상하층으로 구분하고, 루(樓) 형태의 조선관의 하층을 실내화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절충식 지붕틀을 채택해 대규모 공간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상과 같이 본 연구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 박람회에 전시되었던 조선관의 건축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동안 . 조선관은 일제에 의해 지어진 전통식 건축물 이라고 막연히 알려져 왔다. 그러나 앞서의 고찰을 통해 당시 일본 박람회의 조 선관은 한국전통건축물의 외관과 일부 요소만을 재현하려고 했을 뿐, 건축 목적 과 건축 환경, 사용 용도 등에 따라 공간을 변형시키거나 새로운 구조와 재료를 채택하는 등 전시용 가설건축물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The Joseon-Pavilions, displayed at the Japanese exhibition in Japanese colonial era, were built to introduce the colonial Joseon. Theses Joseon-Pavilions were construct in the form of a traditional Korean buildings. It was to introduce Joseon's architecture to viewers through the exterior of the building. However, they followed a different pattern than traditional buildings, ranging from detailed decoration to materials, construction methods, and use. Therefore, this study examined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Joseon-Pavilions shown at the Japanese exhibition in Japanese colonial era. The rooms in the Joseon-Pavilions were divided into exhibition rooms, canteen stores, reception rooms, VIP rooms, tearoom and restaurants, lounges, and employee use rooms. These rooms could be classified into main, secondary, auxiliary rooms according to the target using the room and the importance of contributing to the building. Each room displayed a specific arrangement and was designed for efficient movement. In addition, the pavilions' architectural structures differed from a Korean wooden house's structure. They resembled this structure by attaching a wooden board to the main frames of the buildings. The Joseon-Pavilions constructed in this way were unsafe buildings. The roof furniture on top of such a structure was a Western-style truss and a Japanese wooden construction. Thus, the Joseon-Pavilions, which took rooms with different use and structures from traditional Korean buildings, depicted the characteristic elements of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However, the details did not match the expression of traditional architecture.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Joseon-Pavilions, as described above, can be summarized into three categories: "Depiction of traditional Korean buildings", "Substitution of building materials and presentation," and "Means for securing space as an exhibition hall". First, the Joseon-Pavilions were built as a replica of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Considering miscellaneous documents related to the Joseon-Pavilions, it is apparent that the form was established based on "Joseon-style palace building" and "Joseon-style gate building." Thus, the modeling of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especially the palace of Joseon, and the architecture of government offices were evident. In addition, in drawings and photographic materials of the Joseon Pavilions, design elements such as Yangseongbarum, antefix, and Morodancheong were examined when expressing formal buildings in traditional Korean architecture. However, there was a movement to supplement the disparity in the use of the building and the architectural environment to imitate traditional Korean buildings completely. Second, the Joseon-Pavilions replaced the original architectural materials and presented traditional buildings differently. While they were meant to resemble traditional buildings, they had to be built quickly and in a place unfamiliar with traditional Korean buildings. Furthermore, they were only temporarily constructed and later demolished. Therefore, there was no choice but to find a compromise and replace the existing materials, simplify the design, and display the front and rear of the building differently. Third, the Joseon-Pavilions had a modified space and a roof constructed to use the building as an exhibition hall. Thus, the Joseon-Pavilion's designers tried to focus on the arrangement necessary for the use as an exhibition hall and to ensure sufficient space. The interior space of the middle-story exhibition hall building was divided into upper and lower floors, and the lower floors of the Ru-shaped pavilions became an indoor space. A compromise roof frame was adopted to secure a large-scale space. As described above, this study examined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Joseon-Pavilions displayed at the Japanese colonial era Japanese exhibitions. Until now, these pavilions have only been vaguely known as traditional buildings constructed by the Japanese. However, it was found in a previous review that the Joseon-Pavilions of the Japanese exhibitions at that time only tried to imitate the appearance and some elements of traditional Korean buildings. In addition, these pavilions had the characteristics of temporary buildings for exhibitions, such as altering spaces or adopting new structures and materi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