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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교장로회 조선총회 100년을 돌아보며 : 한국의 근대화와 한국장로교회: 회고와 전망

        장동민 ( Dong Min Jang ) 한국장로교신학회 2012 장로교회와 신학 Vol.9 No.-

        본 논문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한국장로교회가 한국의 역사에, 내용적으로 말하자면, 한국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선교사가전하여준 복음을 받은 한국 기독교는, 복음과 더불어 근대정신을 공유하게 되었다. 미국 개신교가 가진 근면과 금욕의 덕이 자연스럽게 한국 기독교에도 정착되어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근대 과학을 가능하게 한 세계관이 미신적인 세계관을 대치하였다. 봉건적 신분제도를 타파하는 데도 기독교는 큰 공헌을 하였고, 민족주의가 정착되도록 하였다. 기독교=근대화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된 관점 가운데 하나가 한국 기독교가 한국 역사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응답인 셈이다. 둘째는 정말 한국 기독교(장로교)가 한국 역사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다. ① 한국 장로교회는 기독교의 영향력을 사적인 영역으로 혹은 부드러운 방법으로 제한시켰다. 점차로 정교분리의 논리가 힘을 얻어 보수적장로교회 내에서 민주화나 노동문제, 통일이나 환경 등의 공적인 영역에서 담론을 형성해 내지 못하게 되었다. ② 신학적인 이유이든 사회학적 이유이든 장로교가 분열되어 극심한 반목과 대립 가운데 있었던 것이, 신학적으로 진보적인 장로교가 정치적으로 진보적이 되게 하였고,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장로교가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이 되게 하는 데 일조하였다. ③ 기독교가 근대화에 기여한 바가 많을 뿐 아니라, 한국기독교가 근대정신의 상당부분을 수용한 지금, 근대화 자체를 싫어하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The goals of this thesis are two: First, to demonstrate that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has given large influences to Korean history, namely the modernization of Korea. The Korean church, having received the gospel transmitted by the American evangelical missionaries, came to share the modernist mentality with them. The virtue of diligence and temperance of the American Protestantism became a part of the Korean church, providing the spirit of Capitalism. Scientific worldview replaced superstitious worldview, prevalent among the ancient Koreans. Western Christianity made contribution to the breaking down the feudalistic status system and to the rising of modern nationalism.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Christianity equals modernization among many Koreans. Second goal of this thesis is to show the answer to the question: if all the contributions of Christianity to Korean society are true, why so many scholars and the Korean people do not feel that way? It is because, ① Korean Presbyterian church has limited Christian influence only to the private realm or personal ethic.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banned the formation of discussions itself such as democratization, the labor union, the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or the environment issues. ② The schism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between right-wing and left-wing helped theologically liberal church to become politically liberal, and theologically conservative more conservative in the political sphere too. ③ Now that Western Christianity gave a lot of influences to the modernization of Korea and that the Korean church accommodated considerable amount of the modernist spirit, so-called post-modernism made an appearance in the Korean society. The latter criticizes modernism in many ways: it brings to the fore a dark side of Capitalism and industrialization, it tends to regress to the ancient Oriental worldview denying modern scientific worldview, it blames Christianity for the discrimination against non-Christians and homosexuals and it even dislikes patriotism. In short those who do not like modernism do not like Korean Christianity, since the latter has everything the former has. Through the discussion of modernization and Christianity in Korea, the tasks of the Korean Presbyterians’ social engagement. First, they have to find a way to engage social matters in the time of ‘secularization’ and to integrate the conservative and the liberal, theologically and politically. Second, they have to cope with the challenge of post-modernism which blames Christianity for all the modernist acid. They have to reconsider the equality that Christianity equals modernism: on the one hand acknowledging the universal and biblical values modernism brought, but on the other hand seeing the wrongs of modernism with critical eyes. The goals of this thesis are two: First, to demonstrate that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has given large influences to Korean history, namely the modernization of Korea. The Korean church, having received the gospel transmitted by the American evangelical missionaries, came to share the modernist mentality with them. The virtue of diligence and temperance of the American Protestantism became a part of the Korean church, providing the spirit of Capitalism. Scientific worldview replaced superstitious worldview, prevalent among the ancient Koreans. Western Christianity made contribution to the breaking down the feudalistic status system and to the rising of modern nationalism. It is no exaggeration to say that Christianity equals modernization among many Koreans. Second goal of this thesis is to show the answer to the question: if all the contributions of Christianity to Korean society are true, why so many scholars and the Korean people do not feel that way? It is because, ① Korean Presbyterian church has limited Christian influence only to the private realm or personal ethic.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banned the formation of discussions itself such as democratization, the labor union, the re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or the environment issues. ② The schism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between right-wing and left-wing helped theologically liberal church to become politically liberal, and theologically conservative more conservative in the political sphere too. ③ Now that Western Christianity gave a lot of influences to the modernization of Korea and that the Korean church accommodated considerable amount of the modernist spirit, so-called post-modernism made an appearance in the Korean society. The latter criticizes modernism in many ways: it brings to the fore a dark side of Capitalism and industrialization, it tends to regress to the ancient Oriental worldview denying modern scientific worldview, it blames Christianity for the discrimination against non-Christians and homosexuals and it even dislikes patriotism. In short those who do not like modernism do not like Korean Christianity, since the latter has everything the former has. Through the discussion of modernization and Christianity in Korea, the tasks of the Korean Presbyterians’ social engagement. First, they have to find a way to engage social matters in the time of ‘secularization’ and to integrate the conservative and the liberal, theologically and politically. Second, they have to cope with the challenge of post-modernism which blames Christianity for all the modernist acid. They have to reconsider the equality that Christianity equals modernism: on the one hand acknowledging the universal and biblical values modernism brought, but on the other hand seeing the wrongs of modernism with critical eyes.

      •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회 100주년과 한국 장로교 신학의 과제

        이승구 한국장로교신학회 2012 장로교회와 신학 Vol.9 No.-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회가 처음 열린 1912년 9월 1일 이후로 한국 장로교 신학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전개 되어 왔는지를 살피는 일의 한 부분으로 이 논문에서는 그 동안의 장로 교 신학이 제시되어 온 바를 1.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 2. 신정통주의적 통전적 신학, 3. 신정통주의적 진보신학, 그리고 4. 급진적 진보신학 넷으로 분류하여 검토하는 기초적인 작업을 시도해 보았다. 개개인의 신학이 정확히 어떤 입장에 해당하는 지를 엄격하게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각 그룹 안에 일종의 신학적 동질성이 있으므로 이와 같은 네 가지 분류가 그리 사실에서 거리가 먼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한국 내에서의 이런 장로교 신학들의 전개를 검토하면서 앞으로 신학이 어떻게 제시되어야 1912년 1차 총회를 모인 그 성경적 전통에 충실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논의로 마무리하였다.

      • 특집 : 한국 장로교회 연합을 위한 모색 ; 분열된 한국 장로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제언

        임희국 ( Hee Kuk Lim ) 한국장로교신학회 2011 장로교회와 신학 Vol.8 No.-

        이 글에서 우리는 1950년대에 일어났던 한국 장로교회의 교단 분열을 되돌아보려 한다. 우리가 특별히 주목한 점은 1950년대의 장로교회는 분열만 거듭하지 않았고 분열 직후에 화합과 재결합을 위한 노력도 했다는 것이다. 고신교단과의 화합을 위하여 1954년 제39회 총회가 ``신사참배 취소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또한 1959년도 교단 분열 직후에 결성된 ``통합추진위원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통합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노력들이 가시적인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런데 1950년대 초반에 일어난 두 번째 분열(``기독교장로회`` 교단 생성)에 관하여는 다음 기회에 서술하고자 한다. 그다음,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분열된 상태인 한국 장로교회의 화해와 일치의 가능성을 짚어볼 것이다. 첫째로, 한국 장로교회는 공통 기반인 ``성경 기독교``로 일치될 수 있다고 본다. 성경 기독교는 한국 교회 초창기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우는 사경회(査經會)를 기초로 형성되었다. 사경회는 장로교회가 이 나라의 문화 토양에 정착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를 향해 자긍심을 갖는 새벽기도회는 사경회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되었고, 선교사들이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우리의 토양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된 신앙 경건 훈련이다. 이런 식으로, 성경 기독교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장로교회의 중심에 있다. 둘째로, 한국 장로교회의 ``보수적 전통``은 ``상호 협력과 연합``의 정신(에큐메니칼 정신)이다. 보수적 전통이란 1907년 장로교회 독노회의 회록 서문이 선포한 연합과 일치를 말한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1959년도 장로교회 분열 직후에 통합촉진위원회는 교단 화합을 촉구하는 성명서의 첫 머리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한국 교회의 75년의 보수적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따라서 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은 한국 장로교회의 보수적 전통을 계승하는 것임을 우리가 확인한다. 셋째로, 연합과 일치는- 기구와 제도의 연합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우선적으로 연대하고 화합해야 할 일이다. 맨 먼저 목회자들 사이에서 연합과 일치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최근에 한국 교회에서 다양한 연합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 운동이 한국 교회 연합과 일치의 전망을 환히 밝히고 있다. 하나의 예로 들자면,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이하 한목협)의 일치, 갱신, 연합운동이다. 1998년에 창립된 한목협은 교회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의 분단현실을 극복하여 화해케 하고, 세계의 경제적 양극화의 현실을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변혁하고, 생명을 경시하고 무시하는 인식의 틀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며 이 땅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해 왔다. 끝으로, 한국 장로교회의 뿌리인 개혁교회(reformed Church)의 원리에도 ``연합과 일치``가 크게 강조되었다. 특히 ``제2스위스 신앙고백``(1566, 2nd Helvetic Confession)은 개혁교회(스위스, 프랑스, 헝가리, 폴란드, 화란, 체코 등)들의 공동 신앙고백서이다. 이러한 개혁교회의 유산을 이어받은 한국 장로교회의 교단들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화해와 일치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We hope for the reconciliation and unity among the divided Presbyterian denominations. The only way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can come to reunite and agree is if the people have solidarity and alliance. For example, pastors must serve together in ministry with understanding and cooperation, and in the midst of that agree in thought and intention to push forward a good business. Everyone must acknowledge the diversity of various denominations and agree with one another in Jesus Christ. Working together with the same heart will prevent doctrinal or theological debate, and instead, a joint vision will be sought together, developing collaboratively the action of sharing and serving. This follows the ecumenical spirit of the early 20th century Europe that corresponds to the proverb that says, "Theory and debate divides but serving unites". Lastly, alliance and agreement is strongly emphasized even in the principle of the Reformed Church, which is the root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For example,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is a joint Confession of Faith by the Reformed Church (Switzerland, France, Hungary, Poland, Netherland, the Czech Republic, and etc).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denominations that have inherited the legacy of the Reformed Church must reunite and agree in Jesus Christ on the basis of the Bible, the Word of God, through the ministry of the Holy Spirit.

      • 예수교장로회 조선총회 100년을 돌아보며 : 한국장로교 총회 100주년 회고 한국장로교의 발달단계

        안교성 ( Kyo Seong Ahn ) 한국장로교신학회 2012 장로교회와 신학 Vol.9 No.-

        2012년, 한국장로교는 총회 설립 100주년을 맞는다. 본 논문은 총회 설립 100주년을 회고하며, 이 사건이 한국교회, 특히 한국장로교회에 지니는 의미를 살피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한국장로교의 발전단계를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1959년 교단 분열이후는 주로 필자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한국장로교의 역사구분을 살펴볼 때,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 한국장로교의 역사 초기에는 주로 선교의 역사를 기준으로 삼았다. 아마도 선교부의 영향 탓일것이다. 둘째, 한국장로교의 후반에 들어서면서 점차 교회의 역사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것은 교회의 영향력의 증대와 맞물려가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장로교 총회 설립 100주년을 맞아, 공동 역사를 기술할 것을 기대한다. 아울러, 1984년 선교 100주년이 한국교회의 연합정신을 전반적으로 고취했던 것처럼, 2012년 총회 100주년이 한국장로교의 연합정신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In 2012, we are going to celebrate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Reviewing the last 100 years of the General Assembly, this paper aims to clarify what meaning the event has for the Korean Church, especially for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To do this, this paper surveys the developmental stages of Korean Presbyterianism. However, after the year of 1959, when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Tonghap group) emerged, to which this writer belongs, the reviewing of the history will center round the Tonghap group. When we examine the issue of the periodization of the history of Korean Presbyterianism, it must be remembered that in its first stages the history was divided mainly according to the anniversaries of missions, while it has gradually been celebrated according to the anniversaries of the General Assembly. Perhaps this change parallels the decrease of the missions and the increase of the church. With the 100th anniversary coming around, we are hoping for the writing of a common histor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It is desired that as the centennial of the missions in 1984 inspired the spirit of unity in the Korean Church, so does the centennial of the General Assembly in 2012 in Korean Presbyterianism. In 2012, we are going to celebrate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Reviewing the last 100 years of the General Assembly, this paper aims to clarify what meaning the event has for the Korean Church, especially for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To do this, this paper surveys the developmental stages of Korean Presbyterianism. However, after the year of 1959, when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Tonghap group) emerged, to which this writer belongs, the reviewing of the history will center round the Tonghap group. When we examine the issue of the periodization of the history of Korean Presbyterianism, it must be remembered that in its first stages the history was divided mainly according to the anniversaries of missions, while it has gradually been celebrated according to the anniversaries of the General Assembly. Perhaps this change parallels the decrease of the missions and the increase of the church. With the 100th anniversary coming around, we are hoping for the writing of a common histor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It is desired that as the centennial of the missions in 1984 inspired the spirit of unity in the Korean Church, so does the centennial of the General Assembly in 2012 in Korean Presbyterianism.

      • 예수교장로회 조선총회 100년을 돌아보며 :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회 100주년과 한국 장로교 신학의 과제

        이승구 ( Seung-goo Lee ) 한국장로교신학회 2012 장로교회와 신학 Vol.9 No.-

        예수교 장로회 한국 총회가 처음 열린 1912년 9월 1일 이후로 한국 장로교 신학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전개 되어 왔는지를 살피는 일의 한 부분으로 이 논문에서는 그 동안의 장로 교 신학이 제시되어 온 바를 1.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 2. 신정통주의적 통전적 신학, 3. 신정통주의적 진보신학, 그리고 4. 급진적 진보신학 넷으로 분류하여 검토하는 기초적인 작업을 시도해 보았다. 개개인의 신학이 정확히 어떤 입장에 해당하는 지를 엄격하게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각 그룹 안에 일종의 신학적 동질성이 있으므로 이와 같은 네 가지 분류가 그리 사실에서 거리가 먼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한국 내에서의 이런 장로교 신학들의 전개를 검토하면서 앞으로 신학이 어떻게 제시되어야 1912년 1차 총회를 모인 그 성경적 전통에 충실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논의로 마무리하였다. Since the first meeting of the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Chosun) Presbyterian Church convened on 1st September 1912 at Pyungyang, the theologies written and developed by Korean Presbyterian theologians are, in the real sense, vary. In this essay I have classified the major trends of Korean Presbyterian theologies as follows: (1) reformed orthodox theologies, (2) neo-orthodox integrative theologies, (3) neo-orthodox radical theologies, (4) radical liberal theologies. It is always difficult to exactly identify one`s theology. Since three are some theological homogeneousness within each of these groups, however, it is not too far from the truth to classify the Korean Presbyterian theologies into these four groups. I concluded with some suggestions about the way in which our theologies can be more faithful to the meaning of the convening the first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n 1912. Since the first meeting of the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Chosun) Presbyterian Church convened on 1st September 1912 at Pyungyang, the theologies written and developed by Korean Presbyterian theologians are, in the real sense, vary. In this essay I have classified the major trends of Korean Presbyterian theologies as follows: (1) reformed orthodox theologies, (2) neo-orthodox integrative theologies, (3) neo-orthodox radical theologies, (4) radical liberal theologies. It is always difficult to exactly identify one`s theology. Since three are some theological homogeneousness within each of these groups, however, it is not too far from the truth to classify the Korean Presbyterian theologies into these four groups. I concluded with some suggestions about the way in which our theologies can be more faithful to the meaning of the convening the first General Assembl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on 1912.

      • 예수교장로회 조선총회 100년을 돌아보며 : 한국장로교회가 한국문화에 미친 영향

        이은선 ( Eun Seon Lee ) 한국장로교신학회 2012 장로교회와 신학 Vol.9 No.-

        한국장로교회는 선교사들이 전해 준 복음을 수용하면서 한국의 문명화와 복음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국의 문명화와 관련하여 선교사들은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문명개 화론을 전파하였고, 장로교회는 그러한 문명개화론에 따라 교육과 의료를 통하여 서구문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서구문명을 수용하는 가운데 한국장로교회는 복음의 진리에 따라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타파한 인간평등의식, 근로의식, 민주의식 등을 형성하였고 그러한 근대의식을 토대로 근대사회와 근대문화 형성에 기여하였다. 신분제를 넘어서 모든 국민이 한 민족이라는 근대적 민족 개념의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장로교회를 중심한 기독교의 한글성경 사용을 통한 한글보급이었다. 그리고 장로교회는 삼문출판사를 중심한 근대적인 출판사를 설립하여 다양한 출판물들을 출판하여 출판문화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고 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근대적인 음악, 미술, 체육, 건축 등 다양한 근대문화가 도입되어 발전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장로교회는 한국전통종교에 대해 신관을 기준으로 재평가하였다. 유교는 신이 없는 윤리체계이고, 불교는 한편에서는 해탈을 추구하는 자력종교의 측면과 함께 보살들의 도움을 통한 타력종교의 양면을 가지고 있어 온전한 종교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샤머니즘은 기복을 추구하는 미신으로 보았다. 그리고 술과 담배로 인한 폐해를 극복하고자 금주 금연의 절제운동을 실시하였고 조혼과 축첩 풍속을 극복하였으며, 조상제사에 대해 우상숭배로 규정하여 추도예배로 대체하였다. 한국장로교회는 한국의 전통문화에 이러한 다양한 영향을 끼쳤으나, 아직도 한국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려생활화되지 못한 측면이 있으므로, 이러한 측면을 극복해 나가야 하겠다. Korean Presbyterian Church very greatly contributed to the civilization and evangelization accepting the Gospel which the missionaries propagated. They dissimulated the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theory on the basis of the theory of social evolution. According to it, Korean Presbyterian Church accepted the western civilization through education and medicine. In the course of acceptance of it, KPC formulated the human equality consciousness, labor consciousness, democratic consciousness overthrowing the caste system according to the gospel truth. The popularization of the Hangul through the use of the Hangul Bible made all people a nation through the abolition of the caste system. It made modern publishing companies such as trilingual publishing company. It developed the publishing culture putting into print various publications. Modern music, art, sports, and architecture were introduced and developed by the churches and schools which were founded by the presbyterian denomination. It reevaluated the korean traditional religions on the basis of the viewpoint of God. The Confucianism is a ethical system without God. Buddhism is the religion by one own efforts seeking nirvana in the one side and the religion of other-power such as faith of Bodhisattva in the other side. So it don`t have a whole nature of religion. Shamanism is a superstition seeking the prosperity. It made a abstinence movement such as temperance and antismoking in order to solve the harmful effects of alcohol and tabacco and overcame the early marriage and concubinage and changed the ancestral rite which regulates the idolatry into the memorial service. It influenced the korean traditional culture in various sides. But it still don`t take deep root in the korean culture and life and must overcome this side of it.Korean Presbyterian Church very greatly contributed to the civilization and evangelization accepting the Gospel which the missionaries propagated. They dissimulated the civilization and enlightenment theory on the basis of the theory of social evolution. According to it, Korean Presbyterian Church accepted the western civilization through education and medicine. In the course of acceptance of it, KPC formulated the human equality consciousness, labor consciousness, democratic consciousness overthrowing the caste system according to the gospel truth. The popularization of the Hangul through the use of the Hangul Bible made all people a nation through the abolition of the caste system. It made modern publishing companies such as trilingual publishing company. It developed the publishing culture putting into print various publications. Modern music, art, sports, and architecture were introduced and developed by the churches and schools which were founded by the presbyterian denomination. It reevaluated the korean traditional religions on the basis of the viewpoint of God. The Confucianism is a ethical system without God. Buddhism is the religion by one own efforts seeking nirvana in the one side and the religion of other-power such as faith of Bodhisattva in the other side. So it don`t have a whole nature of religion. Shamanism is a superstition seeking the prosperity. It made a abstinence movement such as temperance and antismoking in order to solve the harmful effects of alcohol and tabacco and overcame the early marriage and concubinage and changed the ancestral rite which regulates the idolatry into the memorial service. It influenced the korean traditional culture in various sides. But it still don`t take deep root in the korean culture and life and must overcome this side of it.

      • 1959년 한국 장로교회 분열 원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

        정병준 한국장로교신학회 2011 장로교회와 신학 Vol.8 No.-

        1959년의 한국의 주류 장로교회는 합동과 통합으로 분열되었다. 교단 분열의 주원인에 대해 합동 측은 WCC 신학에 대한 양자의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한 반면, 통합 측은 분열의 근본 원 인이 교권 논쟁이라고 주장한다. 통합 측은 박형룡 박사가 공금 유용 문제로 신학교 교장직에 서 물러난 이후, 한국복음주의자협의회(NAE) 측이 교권을 다시 장악하기 위해 WCC 논쟁을 악용했다고 생각한다. 이 논문은 두 가지 분열 원인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한 쪽만을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 을 밝히려는 것이다. 또한 두 원인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갈라진 두 교단의 심리적 치유 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월남한 서북장로교 지도자들은 남한 장로교회 안에서 강력한 교권을 형성했다. 이들은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의 후원을 받으며 신학 교육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그 중심 세력은 NAE 회원들이었다. 다른 한편 1950년대 미국 장로교회 해외 선교부는 세계 에큐 메니칼 운동에서 강력한 주도력을 행사했는데, 그 영향력 아래서 한국 장로교회 안에서도 WCC와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계 지도자들이 생겨났다. 양자는 갈 등하면서도 서로 타협하며 공존했다. 그러나 1959년 박형룡 박사가 정치적으로 실각한 이후 그 정치적, 신학적 갈등이 크게 드러나게 되었다. 필자는 세 가지 이유로 합동 측의 주장을 반 대한다. 첫째, 대다수 한국 장로교인들은 에큐메니칼 운동과 WCC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지도자들을 따라 분열했다. 대부분의 목사들 역시 신학보다는 교권, 지역, 인맥을 따라 분열했다. 오직 소수의 사람만이 WCC에 대해 알고 있었고, 특히 박형룡 박사조차도 WCC에 대해 부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둘째, 통합 측은 교단을 분열시킬 만큼 WCC를 중요하게 생각 하지 않았다. 그것은 통합 측이 중도파의 견해를 따라 WCC 탈퇴를 결의한 것에서도 잘 나타 난다. 셋째, WCC에 대한 박형룡 박사의 입장과 태도는 일관성이 없고 상황에 따라 변화했다. 그러나 통합 측의 주장도 합동 측을 설득하기에는 논리가 약하다. 합동의 입장에서 교단 분열 의 배경에는 분명 신학적 이유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친WCC 지도자들은 교권을 독점하고 있는 NAE 세력에 대해 반감이 있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박형룡 박사의 재정적 실수는 친WCC에게 큰 기회로 작용했다. 반면, NAE 세 력은 교권 수호와 보수 신학 수호를 동일시하면서 WCC 이슈를 정치적으로 사용했다. 그 배경 에는 국제기독교협의회(ICCC)의 매킨타이어가 제공하는 신학과 자금이 있었다. 교단 분열 과 정에서 누가 비윤리적 행위를 많이 했느냐 하는 문제는 학문적으로 밝힐 필요는 있겠지만 양 교단의 대화와 화해를 위해서는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1959년 장로교 분열은 신학 논쟁과 결합된 교권 투쟁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 특집 : 한국 장로교회 연합을 위한 모색 ; 한국 개신교 초기 교회 연합 운동의 유산

        박경수 ( Gyeung Su Park ) 한국장로교신학회 2011 장로교회와 신학 Vol.8 No.-

        필자는 이 글에서 20세기 초반의 한국 교회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교회 연합 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한국 교회의 여러 가지 유산들 중에서 필자가 특별히 교회 연합 운동에 주목한 것은 이것이 21세기 한국 교회의 질병인 분열을 극복하는 데 좋은 통찰력을 제공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사분오열은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는 이유가 될 뿐만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선교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복음 전파라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위한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교회사를 돌아보면 한국 개신교 선교 초기에 이미 미국 북장로회, 미국 남장로회, 호주 장로회, 캐나다 장로회가 모두 연합하여 ``장로교공의회``를 만들었고, 1905년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4개 장로교 선교회와 2개 감리교 선교회(미감리회, 남감리회)가 함께 ``복음주의 연합공의회``를 결성하였다. 이를 통해 선교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선교지 분할 협정을 맺음으로써 선교의 효율성을 높이고 선교회 간의 혼란과 갈등을 해소하였다. 또한 교파를 초월하여 연합 부흥회를 개최함으로써 대부흥 운동의 불씨를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장로교 목사가 감리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감리교 목사가 장로교회에서 사경회를 주관하는 아름다운 협력을 통해 한국 교회에 ``부흥의 계절``이 왔고, 1907년의 ``영적 폭풍``으로 확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육, 성경 번역, 찬송가 발행, 신문, 잡지, 연합 기관의 운영에 있어서도 힘을 합하는 아름다운 일치가 이루어졌다. 교회 정치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하나의 민족교회``를 이루고자 했던 시도는 결실을 보지 못했지만 복음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연합이 폭넓게 이루어졌다. 이제 21세기 한국 교회는 초기 한국 교회가 보여 주었던 아름다운 일치의 유산을 되살려야만 할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의 모든 측면에서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사회를 향해, 화목제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는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먼저 연합하고 일치하는 모습을 보일 때에만 가능하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bring to light the history and meaning of the union movement which began at the dawn of the 20th century, about the time of the Great Revival Movement of the Korean Church. The reason I chose this topic is that I believe it will explain the detailed union movement of early Korean Church, and give insights for the ecumenical movement of today`s Korean Church. One of the major reasons that Korean society more and more distrusts the Korean Church is the split of the church. The partiality and division of the Korean Church has almost become an obstacle to mission. Thus, the church must recover unity for the sake of mission, which is the essential task of church given by our Lord Christ. The union of church is an important task not only for evangelism but also for the uni?cation of two Koreas of the South and the North. Left as the last divided nation in the world, the uni?cation of the South and the North Korea is the national goal that Korea has to achieve in this century. The Korean Church is exerting e?orts in many ways for national uni?cation. We, however, feel ashamed when we see the disunity of church itself. Along with the criticism from both outside and inside church, we Korean Christians do not feel that we are qualified to even mention the unification of the South and the North Korea. If Korean Church wants to give prophetic voice to the Korean society, it first has to overcome the Achilles` heel, the disunion of the church. This paper is restricted in dealing with the time from 1884, when Korean Church mission began, to 1910, when Korea was annexed by Japan. I will first make clear how the union movement has developed, then see through the collapse and fruit of the union movement. For deeper understanding, we have to bear these following questions in mind; What triggered the union movement of early Korean Church and how did it develop?; Why did the attempt to set up ``One National Church`` fail?; What is the concrete content and fruit of the union movement? Through those questions, concrete facts about the union movement of early Korean Church will be ev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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