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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의 유산」에 나타난 한‧일불교

        김호성,金浩星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09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

        한국인으로 태어났으나 일본인으로 귀화한 일본작가 다치하라 마사 아키(立原正秋, 1926〜80)는 그의 체험을 토대로 자전적 소설 「겨울의 유산(冬のかたみに)」을 남기고 있다. 특히 한국의 무량사와 일본의 건각사에서의 선 체험을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소설(禪 小說)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작품 속에 한국불교에 대한 묘사와 일본불교에 대한 묘사가 공존하면서, 한국의 선과 일본의 선이 교류하는 모습에 주목하여 한, 일불교의 소통이라는 문제에 천착해 보았다. 그러면서 이상적인 불교의 모습이 이 작품 속에 그려지고 있다고 보아서, 그것을 ‘상상의 불교’라고 이름 하여 보았다. 우선「겨울의 유산」유산 속에는 1930년대 중반 무렵의 한국불교에 대한 묘사가 행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이미 작가가 일본불교에 충분히 습윤 (濕潤)된 뒤에 작품이 씌어졌다는 점에서 일본불교적인 영향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서도 스승들의 묘사나 조선시대 선승들의 선시를 인 용하는 등 우리 불교에 대한 올바른 묘사 역시 존재한다. 이런 예비적 고찰을 행한 뒤에, 작품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선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또 왜 그는 돌아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이기고서 돌아오지 않고 일본에서 살아가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작가는 일본의 선이 자칫 알음알이에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주인공이 임제선과 조동선의 어록을 함께 읽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 불교와는 다른 일본불교의 모습을 제시한다. 또한 선승 세끼링 (碩林)의 존재를 통하여 스승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나라(奈良)의 고사 (古寺)에서 일본 안에서도 무량사가 존재함을 자각하게 된다. 이러한 작품의 결론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역사적 업연의 한계를 벗어나서, 불교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지며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가하고 싶다. 一体どうして私は日本仏教を語ろうとするのか。この問いの答えは即ち我々が日本仏教に関して話すことを忌む所以と表裏を成して いると思う。もともと仏教を伝えあげた方は我々だったとの一種の歴史的な優越感と言うか、または源泉指向意識によるインドや中国への関心の重々しさに比べられる相対的な疎外などとを挙げよう。いや、おそらくそれより帝国主義時代の日本にやられた植民地体験、別けても仏教に対して加えられた弾圧の記憶が未だ生々しく 残っている所以かもしれない。その理由は如何であろうと、我々にとって日本仏教とはあまり度外視するべき存在であったのが事実で ある。もちろん近世․近代の不幸な歴史から目を背けることはできない である。そうではあるが我々の中の憎みや怨みなどの呪縛を断ち切 れ、束縛からもトラウマからも自らを束縛から、トラウマから開放 できればそれより大した自由があろうか。その一方法で私は、仏教 を通じる韓国・日本お互いの実体と存在を認めて理解していくによっ て相互間に会通/疎通ができようはずであると信じている。こうし た訳で「日本仏教を勉強しましょう」という旗じるしを掲げてき た。そのうちに一人物が目についてきた。彼は立原正秋(1926-80)という作家であり、彼の作品の『冬のかたみに』のためである。この作品は「少ししかない自力門/聖道門の小説の代表作」として評価されているだけでなく、いろいろな面で問題作になってきた。別けても私が着目したのはこの作品に描かれている韓国仏教と日本仏教の有様の断面であった。 作家の自伝小説として、或いは自伝に準じるものとして知られているこの『冬のかたみに』の第1部と第2部には1920,30年代の韓国仏教が描かれている。それは当時の純な韓国仏教の有様もあるし、また作家の理想としてのあらざるをえない韓国仏教の像もあ る。また日本仏教風とうか日本仏教的要素が混じて塗られている韓国仏教の様子もある。その上で作品の第3部「建覚寺山門前」には主 人公の渡日後の日本生活とともに仏教体験が述べている。即ち日本仏教の姿がうかがえる。たとえ文学的に形象化されている形にしてもこの作品『冬のかた みに』を検討していく際、私は韓・日仏教の疎通の光というか一すじ の希望のようなものを感じられた。作品に描かれている韓・日仏教の有様や面影、また両者の間の相違というか対立的または区別される 様子[二相]を越えて義相(625-702)の「法性円融無二相」という語 句まで浮かばせるようになった。即ち主人公の梵海禅文はそんなに 長いあいだ懐かしんでいた無量寺に、いつかはきっと戻るべき所として思っていた無量寺についに帰れない。その代わりに奈良の唐招提寺の金堂の瓦葺き屋根の曲線美から、また鎌倉の建覚寺(建長寺と 円覚寺の合称であるか)の居士林での修行などから、『徒然草』や『方丈記』などの日本中世の古典から、無量寺または韓国仏教の風土を見つけ出している。それは一生を通して彼(作品の主人公または 作家自身)を日本にいられるようにする力であり、また韓・日仏教の 疎通であった。従って仏教的な立場から見ると彼が住するところが 韓国であっても日本であっても、それは非本質的なものに過ぎないと言える。彼の居所は何処でも良い。なぜなら彼は、もはや「仏教 の内」、「仏教の中」で生きていられる所以である。自分の姿を映してみるには鏡が必要である。それは他者という鏡であろう。すなわち他者という鏡に自分を映して自らを省みることは基本的に自分と他者をの比較であり、融合でもある。そうした他者という名の存在は多様すればするほどもっと多面的な自分の面目が見つけよう。我々の仏教の現実を映し、融合させる鏡になってく れる対象は実に色々ある。チベット仏教もあり、ヴィパッサナー(Vipassana)修行に関わる南方仏教もあり、書物の翻&#

      •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은 근대불교의 다면성

        김광식(金光植)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3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9

        고찰은 한국 근대불교를 연구함에 있어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상주제인 일본불교에 대한 시각을 재인식하려는 글이다. 근대불교에 영향을 준 일본불교에 대한 연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미약하였다. 이는 근현대 불교 연구의 부진, 정치적인 영향, 근대불교에 대한 성찰의식의 나약, 기존의 편협한 사관 등이 중첩된 결과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일본불교가 끼친 영향, 일본불교가 한국에 건너와서 행하였던 실상과 본질 일본불교에 대한 인식 등을 다면적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고 본디. 필자는 실사구시적인 입장에서 일본불교의 모든 것을 바라보자고 제언한다. 그리하여 기존 연구 시각이었던 단면성, 일방성, 일국성, 주관성에서 벗어나 이제는 다면성, 보편성, 객관성으로 나가자는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본고에서는 필자가 일본불교를 재인식할 수 있는 주제를 선별하여 그에 담긴 개요 성격 등을 요약하고자 한다. 필자가 선택한 그 주제는 첫째 불교 근대화, 둘째 근대적인 관리조직인 법, 셋째 재일 불교유학생과 근대불교학, 넷째 한국불교 전통의 이완, 세속화의 가속 등이다. 필자의 이 글이 일본불교 연구의 재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 분야 연구의 지평을 심화시키는데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부연할 것은 일본불교와 연관된 자료의 발굴, 자료집 발간에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작업, 토양하에서 연구가 촉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에서의 근대불교 연구 동향의 파악, 관련 저술 및 논문의 입수, 근대불교를 주제로 하는 한일 양국의 학문적ㆍ문화적 교류 등도 유의해야 한다, 本考察は、韓国近代仏教を研究するに当たって決して見過ごすことのできないテーマで、ある日本仏教に対する視角を再認識しようとしたものである。近代仏教に影響を与えた日本仏教に対する研究は、その重要性にも関わらずいまだ微弱であるといえる。これは、近現代仏教研究の不進、政治的な影響、近代仏教に対する省察意識の懦弱、既存の偏狭な史観などが重疊された結果である。 しかし、これからは日本仏教が及ぽした影響、日本仏教が韓国に渡ってきてしていたことの実像と本質、日本仏教に対する認識などを多面的な観点から研究すべきであると思う。筆者は質事求是的な立場で、日本仏教のすべてをみていこうと提言する。そして、既存の研究視角であった断面性、一方性、一国性、主観性から脱皮し、これからは多而性、普遍性、客観性に向かうへきであろう。 こうした前提のもとで、本稿で筆者は日本仏教を再認識できるテーマを選別し、それに含まれた概要、性格などを要約してみたいと思う。筆者が選んだテーマは、第一に仏教近代化、第二に近代的管理組織である法、第三に在日仏教留学生と近代仏教学、第四に韓国仏教伝統の弛緩、世俗化の加速などである。筆者のこの考察で日本仏教研究の再認識を基本的に変えることはできないかも知れないが、この分野研究の地平を深化するところに役に立つことを期待する。 敷衍すべきことは、日本仏教と関連する資料の発掘、資料集発刊などもにてを急ぐべきであるということである。このような基礎的な作業、土壌のもとで研究が觸發するはずである。また、日本で、の近代仏教研究の動向の把握、関連著作や論文の入手、近代仏教を主題をする韓日両国の学問的ㆍ文化的な交流なども深め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 한일불교의 특수성과 동일성

        원영상(元永常)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4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0

        본 논문은 한국과 일판의 불교의 득수성과 풍일성의 입장에서 비교한 것이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까운 한일 간의 다양한 문화 가운데에 불교를 통한 교류는 이른 고대로부터 이루어져 왔다. 각각의 지역불교로서 발전된 한일 불교는 관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현대에도 긴밀한 교류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먼저 한일 불교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불교교단의 발전과정과 수행 및 신앙의 관점에서 비교하였다. 대륙으로부터 한반도로 건너온 불교는 국가불교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일본의 경우에는 백제로부터 전해진 불교가 한반도의 경우처럼 고대국가확립에 기여하였지만 그 이전에 씨족 세랙에 의해 먼저 받아들여졌다. 이후 전개과정에서 한반도에서는 선관 교의 일치를 지향하여 발전한 반면, 일본은 종합불교의 시대를 거쳐 종파불교를 형성하게 된다. 이는 지역의 역사와 운화의 변천 과정과 깊은 관제가 있다. 후지의 수행 칭 신앙의 관점에서는 먼저 수행에 있어 임제선 제통의 간화선이 주를 이루는 한반도에 비해 일본은 조동선이 활성화 되었다. 그러고 정토사상에 있어서는 각각 상적광토와 내세정토의 정토관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한반도의 경우에는 종단의 형성을 과지 못한 반면 일본 열도에서는 정토제의 종단이 형성되어 큰 세력을 떨치게 되었다. 물론 양국의 정토신앙은 민중 속애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특히 일관의 경우 근세 단가제도의 확립과 힘께 장제불교(葬祭佛敎)화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양국 불교의 동일성 차원에서는 대승불교의 성격과 국가와 불교의 관계 측면에서 비교해 보았다. 전자에 있어서는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에 입각한 중생구제의 차원에서 불교가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보살신앙 가운데에도 관음선앙, 지장신앙, 미륵신앙 등은 양국에서도 공히 민중 선앙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불교사성적 측면에서도 대승불전에 의한 사상적 발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고 국가와 불교의 관계 면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불교유입의 시기에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결국 왕권국가의 이념에 불교의 초월적인 사상이 활용되었다. 또한 한반도의 불국토사상과 일본열도의 본지수적설은 불법에 의한 외호의 역혈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양국의 국가와 불교가 왕법불법 상자론(相資論)과도 연동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일 불교는 역사와 문화적 차이에 의해 특수성이 존재히는가 하면, 대승불교의 발전 과장에서 보여주는 공통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교학적 차원에서도 양국의 불교는 고대이래로 지속적인 관제를 맺어왔다. 이러한 점에서 양국 불교의 비교학적 연구는 호혜적인 입장에서 양 지역의 불교 교류와 문화적 소통을 더욱 강화시켜줄 것으로 본다.

      • 교키와 일본의 오대산문수신앙

        최복희(崔福姫,)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1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5

        行基に対する研究、すなわち'行基論' とも言える研究はかなり進んでいる。 戦前における行基研究は、大正初期に書かれた梅原末治の「行基舎利瓶記にみえたるその姓氏と享年について」が早い例である。 戦後の行基研究の出発点ともいうべき北山茂夫の「行基論」は、戦後の研究史の起点的意味合いのみで重要な位置を占めているのではない。この研究の重要性は、働く民衆の側、つまり当時の律令班田農民の立場に立って行った古代政治研究の一環として行基を研究対象に設定きれた、その問題意識にこそあるといえよう。 井上薫の『行基』は、行基に関する全てといってよいほどの問題が論ぜられ、多方面にわたって精緻な分析と、旦つゆきとどいた実証作業に支えられて、行基の生涯が跡づけられている。今日この研究をきして'行基研究上の基礎文献'と呼ばれている。 行基が仏教のみでなく、各方両の分野において、所謂、政治ㆍ日本古代史ㆍ仏教文化ㆍ社会福祉、きらには国文学までも研究されていることは、行基は日本の肯代において重要な人物からである。 さて、この論文において何よりも重要な行基研究の一つは、行基と五台山文殊信仰との関連である。それは、五台山文殊信仰の伝来は、行基の文殊化身説や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の中にその教理と共に具体的な説話の型として踏襲されているの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まず、『日本霊異記』には、行基に関する説話が、他の僧侶との記述より比較的に多く記されている。『日本霊異記』での行基にまつわる説話は、彼の死後に形成されたと考えられていることが一般的である。ここで、大事なのは、行基のなした説法が説話ではなく、その事蹟が説話になっていることである。しかし、朝枝善照はII 「日本霊異記』の行基説話は、「続日本紀』に記載される行基伝に影響をうけていない、全く別の所伝によるものである点、行基研究上からも参考すべきものである。"と述べている。 『日本霊異記』の中で「三宝を信敬し、現報を得る縁」が、行基の文殊化身に関する説話である。朝枝善照は"この説話は大伴氏に伝承された大部屋栖野古に関する史料を参照し、聖武天皇、東大寺建立、行基の仏教伝道などを結び付けているが、景戒の時代には、このように、日本に、五台山仏教文化、すなわち文殊信仰が伝来し多くの民衆に理解きれていてはじめて、行基の「文殊反化」説が成立することになる。韓国の五台山との関連性も検討すべきであろう。"と言っている。 行本の五台山説話、ここにはすでに聖徳太子一聖武天皇、五台山文殊行主主の一連の伝説が完成している。これは、『三国仏法伝通縁起』に東大寺を中心に久しく信じ伝えた伝説に連繋するものである。 行基は'行基菩薩'とも呼ばれた。この背景には、8世紀の日本では、僧名に菩薩号を付した呼び方が盛行していた、つまり、民宋利益の利他行をもって、「菩薩」や「化主」と|序称され、白称した一群の僧尼が存在していたのである。 『続日本記』と『日本霊異記』の記録を検討してみると、行基に対する称号は、'行基菩薩'と呼ばれはじめてから、'文殊菩薩の化身'というように変化していったと考えられる。 最後に、『三宝絵』に初見する行基と婆羅門僧正との交流の説話の成立について米山孝子は、"行基、婆羅門僧正の交流事実、行基文殊化身説や五台山信仰の流布、婆羅門僧正の高僧伝化など、様々な要素が接合して『菩提伝来記』の説話が『三宝絵』に遡って成立していたのである。"という。 行基の文殊化身説には古田靖雄氏の指摘されるように、経典等による文殊の宗教的役割が大きく影響していると思われるが、それに対応して作られた新たな婆羅門僧正来朝説は、思想というよりも、『仏頂尊勝陀羅尼経』序文などで、広く知られた五台山での文殊値遇の説話の「型」に従って、来朝日的がはめ込まれたような形になっていることが分かる。 교커에 대한 연구, 즉 '교키론(行基論)'이라고 일컬어지는 연구는 매우 많은 성과물들이 축척되어 있다. 전전(戰前)의 교카연구로는 다이쇼초기에 씌어진 우메하라스에지(梅原末治)의 「교키사리병기(行基舎利甁記)에 보이는 그 성씨와 향년에 대해서」 대표적이다. 한편, 전후(前後)의 교키연구의 출발점이라고 해야 할 기타야마시게오(北山茂夫)의 「교키론」은 전후 연구사에 기점적(起点的) 의미로 서만 그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이 연구는 이른바 '민중'의 입장, 즉 당시 율령반전민(律令班田農民)의 입장에서 행한 고대정치연구의 일환으로서 교키를 연구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그 문제의식이야 말로 더욱 중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노우에카오루(井上薰)의 『교키(行基)』는 교키에 관한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방면에서의 접근은 물론, 치밀하면서도 폭넓은 실증작엽을 통해 교키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이 연구는 '교키연구의 기초문헌'으로 불리고 있다. 교키는 불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 즉 정치ㆍ일본고대사ㆍ불교문화ㆍ사회복지ㆍ국문학 방면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교키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키연구는 교키와 오대산문수신앙과의 관련이다. 그것은 오대산문수신앙의 일본전래가 교키의 문수화산설(文殊化身說)이나 바라문승정문수치우설(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 속에 그 교리와 함께 구체적인 설화의 형태로서 답습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에는 교키관한 설화가 다른 승려들의 기술보다 많다' 『일본영이기』의 교키관련 설화는 교키 사후에 형성되었다는 관점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키가 행한 설법이 설화가 아니라 그 사적(별원)이 설화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사에다젠쇼우(朝枝善照)는 "『일본영이기』의 교기설화는 『속일본기(續日本記)』에 기제된 교키전(行基傳)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전혀 다른 소전에 의한 것이라는 점, 교키연구에서 참고해야할 점이다."라고 술하고 있다. 『일본영이기』 중에 「삼보를 믿고 공경하여 현보를 얻은 이야기」가 교키의 문수화신(文殊化身)에 관한 설화이다. 아사에다젠쇼우는 "이 설화는 오오토모(大伴)씨에 전승된 야스노코에 관한 자료를 참조해, 성무 천황, 동대사건립, 교키의 불교포교 등을 연결하고 있지만, 교우카이가 살았던 시대에는, 이와 같이 일본에 오대산 불교문화, 즉 문수신앙이 전래되어 민중에 이해되기 시작해, 교카의 '문수반신설'이 성립하게 되었다. 한국의 오대산과의 관련성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교키의 오대산설화, 여기에는 이미 성덕태자-성무천황, 오대산문수-교키의 일련의 전설이 완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삼국불법전통연기(三國佛法傳統縁起)』의 동대사를 중심으로 믿어온 전설에 연계하는 것이다. 교키는 '교키보살'로도 불렸다. 이에 대한 시대적 배경으로, 8세기 일본에는 승명(僧名)에 보살칭호를 더하여 불렀던 것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또 민중을 위해서 이타행을 행하는 승려들은 자신들을 '보살' 또는 '화주(化主)'라고 자칭하고 집단을 이루기도 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속일본기(續日本記)』와 『일본영이기』의 기록을 검토해 보면, 교키에 대 한 칭호는 '교키보살'로 불리 기 시 작하다가 차차'문수보살의 화신'으로 바꿔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삼보회(三宝絵)』에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교키와 바라문승정과의 교류에 대한 설화의 성립에 관하여 코네야마다카코(米미孝子)는 "교거, 바라문승정의 교류사실 교키문수화신설이나 오대산신앙의 유포, 바라문승정의 고승전화 등 다양한 요소가 접합하여 『보살전래기(菩薩傳來記)』 설화가 『삼보회』로 거슬러 올라가 성립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교키의 문수화신설은 요사다야스오(吉田靖雄)도 지적한 바와 같이, 경전 등에 의한 문수의 종교적 역할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이는 데, 그것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바라문승정래조설(婆羅門僧正來朝說)은 사상이라기보다는 『불정존승타라니경(仏頂尊勝陀羅尼経)」 서문 등으로 널리 알려진 오대산 문수치우(文殊値遇)의 설화의 「형(型)」에 따라 본조목적(本朝目的)이 가미된 형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근대 일본의 불교개혁과 신불교운동 : 신불교운동’을 통해서 본 일본불교의 ‘근대'

        제점숙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5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2

        이 글은 일본의 근대국가 성립과 함께 전개된 종교운동의 일환인 ‘신불교운동(新佛敎運動)’을 통해 일본 불교의 근대성을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근대불교’에 대한 성과는 요시다 구이치(吉田久 一)와 이케다 히데토시(池田英俊)의 연구 성과를 넘어 근대불교 개념에 대한 재구축의 필요성과 함께 일본 국내외에서 다양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이 글에서 주목하고 있는 ‘신불교운동’에 대한 논의는 그러한 일본의 ‘근대불교’ 관련 논의에서는 소외된 측면이 없잖아 있다. ‘신불교운동’은 1900년대 기성 일본불교의 비판의식에서 파생되어 건전한 신앙, 사회개선, 종교의 자유토구, 미신근절, 교단 제도 부정,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핵심 강령으로 정하고, 이를 주장하는 운동이다. 이러한 신불교운동에 대해 이 글에서는 선행연구에 의거 하여「신불교(新佛敎)」라는 잡지를 통해 주된 내용 및 주변 인물들을 검토하고 신불교운동 속에 투영된 일본불교의 근대성에 대해 논했다. 즉, 종교/불교라는 개념화 과정 속에, 천황제국가, 근대종교 모델로써의 기독 교, 전근대와 근대의 경계에 위치하는 일본불교의 모습 등이 실타래처럼 뒤엉킨 가운데 연동하여 표출되는 근대적 현상이 ‘신불교운동’이었음을 고찰했다. 이처럼 ‘불교인 듯 불교 아닌’ 당시 신불교의 모습은 ‘종교 Religion’와 ‘불교Buddhism’의 개념화가 이루어지는 과도기 속에서 표출되 는 일본불교의 또 다른 ‘근대적 표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韓國 近代佛敎 ‘帶妻食肉’의 二元的 路線

        김광식(Kim Gwang sik)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5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3

        본 고찰은 한국 근대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불교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기 위하여, 일본불교의 상징으로 지칭되었던 이른바 ‘帶妻食肉’의 문제를 정리한 논고이다. 근대기 불교의 대처식육에 대한 문제는 근대불교의 본질 이해의 단서로 인식한 연구가 일부 있었다. 그러나 한국 내부의 대처식육의 인식 및 수용에 대한 이념, 한국불교내부의 대처식육에 대한 찬반양론의 흐름은 정리되지 않았다. 특히 한국에 영향을 미친 일본의 대처식육에 대한 성격까지는 연구가 미치지 못하였다. 대처식육의 문제는 한국의 근현대 불교를 설명하는 가장 본질적인 주제이다. 이를 통하여 韓日 불교의 교류, 이질적인 불교문화 등에 대한 다양한 연구 과제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지금까지 연구는 연구 관점의 단순성, 민족 감정의 문제, 일본에서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지 않은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개재되어 심화되지 못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연구 성과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이 고찰에서는 대처식육이 한국 근대불교에 수용되었던 제반 흐름을 몇 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개괄적으로 살폈다. 그러면서 대처식육에 대한 수용을 긍정(善)과 부정(惡)으로 대별하면서 그에 내재한 인식을 분석하였다. 본고가 한일불 교 문화의 이해, 교류 등에 일조가 되길 기대한다. 本考察は、韓国近代佛教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た日本佛教に対する本質を理解するために、日本佛教の象徴ともいわれている'帶妻食肉'の問題を整理した論考である。近代期佛教の帶妻食肉に対する問題は、近代佛教の本質理解の手掛かりとして認識している研究がいくつなされている。しかし、韓国内部の帶妻食肉の認識やその受容に対する理念、韓国仏 教内部の帶妻食肉にたいする賛否両論の流れは整理されていない。特に韓国に影響を及ぼした日本の帶妻食肉に対する性格までは研究が進んでいない。帶妻食肉の問題は、韓国の近現代仏教を説明する最も本質的な主題であるといえる。それにも関わらず、韓国での今までの研究はその観点の単純性、民族感情の問題、日本での研究成果を反映していない限界などが複合的に関わり、研究が深まらない原因になっていると思われる。筆者は、このような研究上の限界を認識しながら、この考察では帶妻食肉が韓国近代佛教に受容されてきた流れを幾つかの時期に区分して概括的に論究した。また、帶妻食肉の受容を肯定(善)と否定(悪)として大別し、それに内在している認識を分析した。本稿が韓日佛教文化の理解、交流などに少しでも役に立つことを期待する。

      • 근대 일본불교에 대한 연구 동향과 과제

        원영상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5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2

        본 연구는 근대 일본불교에 대한 연구 동향을 살펴보고, 이를 기반으로 그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먼저 근대 일본불교의 역사적 지형으로는 세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폐불훼석에 대한 근대 불교계의 대응양상, 근대문명에 대한 불교계의 대응 양태, 그리고 일본의 근대역사가 지속적인 대외전쟁과 영토 확장을 향해 진행되고 있으며, 일본불교 또한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해갔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 위에서 근대기 일본불교계의 학술연구 및 출판 동향을 고찰했다. 특히 관서의 종학과 관동의 관학이 나타난 것과, 서양학문의 영향을 받은 불교학의 방법론의 발달, 문헌학의 성립, 국체론적 불교학의 등장 등을 그 특징으로 보았다. 이를 이어 근대 일본불교에 대한 분야별 연구 동향을 세부적으로 살펴 보았다. 역사적 연구, 문화적 연구, 사상적 연구, 그리고 학제 간 연구 및 자료집성에 대해 근대불교연구의 전체적 동향을 제시했다. 근대 일본불교 의 연구 성과를 총괄하는 것은 물론, 보편적인 연구방법의 범주에 입각한 것이다. 역사적 연구에 있어서는 폐불훼석(廢佛毁釋) 이후 근대 일본불교 계가 새로운 국가체제에 대응해 가는 양상을 필두로 전통불교가 근대사 회를 배경으로 어떻게 변모해 갔는가 하는 불교근대화에 대한 연구가 이 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적 연구에서는 앞의 역사적 연구와 연동하여 개혁과 결사, 해외포교 등에 대한 연구, 식민지와의 관계 등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상적 연구는 근대불교학의 수립과 전개, 특히 불교철학과 전통불교학과의 관계, 불교사상의 근대적 모색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학제 간 연구 및 자료집성에서는 근대사회문제에 직면한 불교계의 대응에 대한 연구, 근대불교계의 동향과 관련된 자료의 집성 등이 이루어지고 있음 을 살펴보았다. 근대 일본불교 연구의 과제로써는, 사회적 변화에 대한 대응 연구, 동아시아 불교권과의 관계 연구, 일본불교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제시했다. 앞의 두 과제는 이전의 연구 위에 외연의 확장을 주장한 것이다. 세 번째에서는 불교의 철학화와 논리실증주의적 불교학의 문제, 국가주의 교학의 문제, 폐쇄적인 종학 문제에 대한 연구와 그 해결방안을 찾을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일본 근대불교연구는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불 교연구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 연구 영역임과 동시에 현대의 불교연구 에도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 교키와 일본의 오대산문수신앙

        최복희(崔福姬)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1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4

        교커에 대한 연구, 즉 '교키론(行基論)'이라고 일컬어지는 연구는 매우 많은 성과물들이 축척되어 있다. 전전(戰前)의 교카연구로는 다이쇼초기에 씌어진 우메하라스에지(梅原末治)의 「교키사리병기(行基舎利甁記)에 보이는 그 성씨와 향년에 대해서」 대표적이다. 한편, 전후(前後)의 교키연구의 출발점이라고 해야 할 기타야마시게오(北山茂夫) 의 「교카론」은 전후 연구사에 기점적(起点的) 의미로서만 그 중요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이 연구는 이른바 '민중'의 입장, 즉 당시 율령반전민(律令班田農民)의 입장에서 행한 고대정치연구의 일환으로서 교키를 연구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그 문제의식이야 말로 더욱 중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노우에카오루(井上薰)의 『교키(行基)』는 교키에 관한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방면에서의 접근은 물론, 치밀하면서도 폭넓은 실증작업을 통해 교키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이 연구는 '교키연구의 기초문헌'으로 불리고 있다. 교키는 불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 즉 정치ㆍ일본고대사ㆍ불교문화ㆍ사회복지ㆍ국문학 방면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교키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키연구는 교카와 오대산문수신앙과의 관련이다. 그것은 오대산문수신앙의 일본잔래가 교키의 문수화산설(文殊化身說)이나 바라문승정문수치우설(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 속에 그 교리와 함께 구체적인 설화의 형태로서 답습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일본영이기(日本靈異記)』에는 교키관한 설화가 다른 승려들의 기술보다 많다' 『일본영이기』의 교키관련 설화는 교키 사후에 형성되었다는 관점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키가 행한 설법이 설화가 아니라 그 사적(事蹟)이 설화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사에다젠쇼우(朝枝善照)는 "『일본영이기』의 교기설화는 『속일본기(續)日本記』에 기제된 교키전(行記傳)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전혀다른 소전에 의한 것이라는 점, 교키연구에서 참고해야할 점이다."라고 술하고 있다. 『일본영이기』 중에 「삼보를 믿고 공경하여 현보를 얻은 이야기」가 교키의 문수화신(文殊化身)에 관한 설화이다. 아사에다젠쇼우는 "이 설화는 오오토모(大伴)씨에 전승된 야스노코에 관한 자료를 참조해, 성무 천황, 동대사건립, 교키의 불교포교 등을 연결하고 있지만, 교우카이가 살았딘 시대에는, 이와 같이 일본에 오대산 불교문화, 즉 문수신앙이 전래되어 민중에 이해되기 시작해, 교카의 '문수반신설'이 성립하게 되었다 한국의 오대산과의 관련성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교키의 오대산설화, 여기에는 이미 성덕태자 성무천황, 오대산문수-교키의 일련의 전설이 완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삼국불법전통연기(三國佛法傳統緣起)』의 동대사를 중심으로 믿어온 전설에 연계하는 것이다. 교키는 '교키보살'로도 불렸다. 이에 대한 시대적 배경으로, 8 세기 일본에는 승명(僧名)에 보살칭호를 더하여 불렀던 것이 성행하였던 것이다 또 민중을 위해서 이타행을 행하는 승려들은 자신들을 '보살' 또는 '화주(化主)' 라고 자칭하고 집단을 이루기도 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속일본기(續日本記)』와 『일본영이기』의 기록을 검토해 보면, 교키에 대 한 칭호는 '교키보살'로 불리 기 시 작하다가 차차'문수보살의 화신'으로 바꿔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삼보회(三宝絵)』에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교카와 바라문승정과의 교류에 대한 설화의 성립에 관하여 코네야마다카코(米山孝子)는 "교카, 바라문승정의 교류사실 교키문수화신설이나 오대산신앙의 유포, 바라문승정의 고승전화 등 다양한 요소가 접합하여 『보살전래기(菩薩傳來記)』 설화가 『삼보회』로 거슬러 올라가 성립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교키의 문수화신섣은 요사다야스오(吉田靖雄)도 지적한 바와 같이, 경전 등에 의한 문수의 종교적 역할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이는 데, 그것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바라문승정래조설(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은 사상이라기보다는 『불정존승타라니경(仏頂尊勝陀羅尼經)」 서문 등으로 널리 알려진 오대산 문수치우(文殊値遇)의 설화의 「형(型)」에 따라 본조목적(本朝目的)이 가미된 형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行基に対する研究、すなわち'行基論' とも言える研究はかなり進んでいる。 戦前における行基研究は、大正初期に書かれた梅原末治の「行基舎利瓶記にみえたるその姓氏と享年について」が早い例である。 戦後の行基研究の出発点ともいうべき北山茂夫の「行基論」は、戦後の研究史の起点的意味合いのみで重要な位置を占めているのではない。この研究の重要性は、働く民衆の側、つまり当時の律令班田農民の立場に立って行った古代政治研究の一環として行基を研究対象に設定きれた、その問題意識にこそあるといえよう。 井上薫の『行基』は、行基に関する全てといってよいほどの問題が論ぜられ、多方面にわたって精緻な分析と、旦つゆきとどいた実証作業に支えられて、行基の生涯が跡づけられている。今日この研究をきして'行基研究上の基礎文献'と呼ばれている。 行基が仏教のみでなく、各方両の分野において、所謂、政治ㆍ日本古代史ㆍ仏教文化ㆍ社会ff1副止、きらには国文学までも研究されていることは、行基は日本の肯代において重要な人物からである。 きて、この論文において何よりも重要な行基研究の一つは、行基と五台山文殊信仰との関連である。それは、五台山文妹信仰の伝来は、行基の文殊化身説や婆羅門僧正文殊値遇説の中にその教理と共に具体的な説話の型として踏襲されているのを見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まず、『日本霊異記』には、行基に関する説話が、他の僧侶との記述より比較的に多く記されている。『日木霊異記』での行基にまつわる説話は、彼の死後に形成されたと考えられていることが一般的である。ここで大事なのは、行基のなした説法が説話ではなく、その事蹟が説話になっていることである。しかし、朝枝善照は" 「日本霊異記』の行基説話は、「続日本紀』に記載される行基伝に影響をうけていない、全く別の所伝によるものである点、行基研究上からも参考すべきものである。"と述べている。 『日本霊異記』の中で「三宝を信敬し、現報を得る紘一」が、行基の文殊化身に関する説話である。朝枝善照は"この説話は大伴氏に伝承された大部屋栖野占に閲する史料を参照し、聖武天皇、東大寺建立、行基の仏教伝道などを結び付けているが、景戒の時代には、このように、日本に、五台山仏教文化、すなわち文殊信仰が伝来し多くの民衆に理解きれていてはじめて、行基の「文殊反化」説が成立することになる。韓国の五台山との関連性も検討すべきであろう。"と言っている。 行本の五台山説話、ここにはすでに甲徳、太子一聖武天皇、五台山文殊一行基の一連の伝説が完成している。これは、『三国仏法伝通縁起』に東大寺を中心に久しく信じ伝えた伝説に連繋するものである。 行基は'行基菩薩'とも呼は、れた。この背景には、8世紀の日本では、僧名に菩薩号を付した呼び方が盛行していた、つまり、民宋利益の利他行をもって、「菩薩」や「化主」と呼称され、自称した一群の僧尼が存在していたのである。 『続日本記』と『日本霊異記』の記録を検討してみると、行基に対する称号は、'行基菩薩'と呼ばれはじめてから、'文殊菩薩の化身'というように変化していったと考えられる。 最後に、『三宝絵』に初見する行基と婆羅門僧正との交流の説話の成立について米山孝子は、"行基、婆羅門僧正の交流事実、行基文殊化身説や五台山信仰の流布、婆羅門僧正の高僧伝化など、様々な要素が長合して「菩提伝来記」の説話が『三宝絵』に遡って成立していたのである。"という。 行基の文妹化身説には古同靖雄氏の指摘されるように、経典等による文殊の宗教的役割が大きく影響していると思われるが、それに対応して作られた新たな婆羅門僧正来朝説は、思想というよりも、「仏頂尊勝陀羅尼経』序文などで、広く知られた五台山での文殊値遇の説話の「型」に従って、来朝日的がはめ込まれたような形になっていることが分かる。

      • 한국과 일본의 불교수용기사에 나타난 호국불교적 요소

        김춘호(金春鎬)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4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10

        호국불교란 '나라를 지키는 불교', 내지는 '국가를 위한 불교'리고 정의될 수 있디. 이러한 호국불교는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한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관고는 한국과 일분의 불교수용 기사에 나타난 호국불교적 요소에 대해 살펴보았다. 고구려나 백제의 경우 전래당초부터 불교의 수용과 정칙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그 이유는 불교의 국기적 소용에 주목히였기 때문이디. 특히, 국기제의와 불교가 연관되어 언급펀다는 점에서 불교의 호국적 소용을 기대하고 있다고 보인다. 신라의 경우 고구려나 백제와는 달리 전래당초에는 국가적 차원이라기 보다는 개인적 치원의 불교라는 인식이었지만, 그것이 점차 불국토신앙이나 호국사찰의 건립과 같은 국가적 차원의 불교로 전개되어 간다. 일본의 경우 불타를 일본재래의 호국신들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점과 불타도 그들 신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인간에게 복과 별을 줄 수 있는 신이며, 특히 질병이나 천재지변과 같은 국가적 재앙과 불교교연관시켜 보고 있는 점 등이 특정적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불교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호국의 신앙과 논리를 국가애 제공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개인적 신앙이나 수행 등의 차원과는 다른 불교의 국가적 소용과 그에 대한 기대가 강조된다는 점에서 호국불교라고 해야 마땅할 갓이다, 護国仏教とは、'国を護る仏教'または、'国のための仏教'と定義することができる。このような護国仏教は、韓国仏教文化の重要な特徴として指摘されている。その点は日本も同様である。本稿は、韓国と日本の仏教受容記事にみられる護国仏教的要素についての考察である。 高句麗や百済の場合、伝来当初から仏教の受容と定着に国家が積極的にすすめているが、その理由は仏教の国家的所用に注目したからである。特に、国家祭儀と仏教が関連づけられて言及されている点において仏教の護国的な所用を期待していると考えられる。 新羅の場合、伝来当初は国家的な次元よりも個人的な次元の仏教という認識があるが、それが徐々に仏国土信仰や護国寺刹の建設といった国家的な次元の仏教へと展開して行く。 日本の場合、仏を日本在来の護国神らと同一線上で理解している点や、その護国神と同じく、現実の人間に福と罰を与える神であり、特に病気や天災地変のような国家的な災殃を仏教を関連してみている点などが特徴的である。 このような内容は、仏教自らが積極的に護国の信仰や論理を国家に提供する段階ではないが、個人の信仰や修行のような次元とは異なる仏教の国家的所用とそれに対しての期待が強調されている点で護国仏教をみるべきであろう。

      • 근현대 불교개혁론의 지평

        김광식(Kim Gwang Sik) 한국일본불교문화학회 2011 일본불교문화연구 Vol.- No.4

        본 논문은 한국 근현대 불교 개혁론의 이해, 연구의 지평을 넓혀 보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고찰이다. 그러면서 이 글에서는 최근 근현대 불교 및 근현대 불교 개혁론에 대한 연구 에 대한 성찰을 제언하고 있다. 큰현대 분야의 연구에서의 과대평가, 착종, 누락 등의 행태를 지적하였다. 그리고 개혁론의 이해, 해설에 있어서도 지나치게 단면적, 미시적 연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전제하에 그 대안을 피력하였다. 이에 필자는 이 같은 연구 경향을 지적, 비판하면서 불교개혁론의 연구의 시야를 넓혀 보려는 의도를 표출하였다. 우선 근현대 불교개혁론의 개념을 살펴보고, 그 연후에는 개혁론으로 볼 수 있는 대상 전체를 조망하였다. 이로써 지난 100여년간 불교현장에서 나타났던 다양한 개혁론의 개요 및 성격을 조망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필자는 시론적으로 일제하의 불교, 해방공간의 불교, 1980∼90년대의 현장에서 구현된 개혁론을 보수와 진보라는 잣대로 설명해 보았다. 이런 시도가 일부분에서는 과도한 측면도 있겠지만 시론적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개혁론 연구에서 유의할 초점도 대별하여 보았다. 본 본문은 불교개혁론을 직접적으로 분석한 고찰은 아니고, 불교개혁론의 연구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한 제언 및 시론으로 집필된 것이다. This research paper is consideration to the intention in order to extend prospect of understanding and study in Modern and Contemporary Buddhist Reforming Theory. I suggested introspection about the study of Modern and Contemporary Buddhist Reforming Theory recently through the paper. There was made to point out manner of overestimate, entangling and omission in studying on the field of modern and contemporary Buddhist history. And I stated frankly an alternative under the premise in consisting the mainstream of sectional area and microscopic study excessively on that point of understanding and exposition of reforming theory. Hereupon the author expressed intention to extend my view on study of Buddhist reforming theory in indicating and criticizing such tendency. First of all, as examining the definition of modern and contemporary Buddhist reforming theory, afterward I prospected the whole object regarding as reforming theory. With this I have an eye for ability to look at the outline which was appeared in various reforming theories on the spot of the Korean buddhist circles for the last hundred years and view on character. Then I tried to explain reforming theory which was realized buddhism under the Japanese Empire period, during the space of the Independent and the scene of the buddhist field between the nineteen eighties and nineties by standard of the conservatives and the progressives on a trial. This attempt seems to be excessive aspect, but I just suggested by way of experiment. And I classified roughly important focus on studying reforming theory. This paper is not consideration on Buddhist reforming theory directly. The paper is written as a trial for suggestion and an essay in order to extend the prospect of researching Buddhist reforming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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