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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을 논하는 잡지의 지면 연구 시론

          이수정 ( Lee Su-jeong ) 한국음악사학회 2018 韓國音樂史學報 Vol.60 No.-

          이 글에서는 1945년 이후 한국 현대국악학(現代國樂學)을 논하는 관련 잡지와 지면의 상황을 고찰함으로써 현대와 같은 연구기반이 마련되기까지 국악계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일면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현대국악을 소개하는 잡지의 연구 경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일제강점기의 잡지 지면을 통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설펴보았는데, 국악학(國樂學) 연구가 국악인아 아닌 민속학자ㆍ국문학자 또는 일본인에 의해 연구되면서 타자적(他者的)인 시각으로 다루어졌음을 파악하였다. 잡지는 처음 개화와 계몽을 목적으로 잡지가 발행되기 시작하여, 이후 전문잡지가 등장하면서 각 분야의 연구 활동의 발표지면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음악계에서는 『三光』과 같은 전문 잡지가 등장하였다. 음악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국악을 다루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해방이후는 새 시대를 맞아 각 부분에서 학문적 토대 및 체제를 세우며 성장하는 시기였다. 역사상 가장 격동적인 변화를 겪었던 시기이면서 또한 제도 및 학문적 토대가 마련되던 시기이다. 음악 관련 단체가 결성되었고,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 건립,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 제도 등이 마련되면서 학문의 주제 및 중심의 마련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각 기관의 기관지 및 『無形文化財』와 같은 관련 잡지가 발행되었다. 국악계가 성장하자 『國樂界』라는 최초의 국악전문잡지도 반짝 등장하였다. 국악계에 독자적한 학술지가 없던 1970년대 이전까지는 여러 학회지나 잡지의 지면을 통해서 학술활동을 진행하였지만, 대학에 국악과가 설치되고 학문적 기반이 확충되면서 고등교육을 받은 신진연구자가 등장한 이후 다양한 학문활동이 이루어 졌다. 학교나 연구소에서 발행되는 각종 ‘논문집’을 통해 학술활동이 이루어 졌다. 한국국악학회(韓國國樂學會)에서 처음으로 『韓國音樂硏究』를 발행하였고, 이후 한국음악사학회(韓國音樂史學會)의 『韓國音樂史學報』를 비롯한 수십 종의 학술지 및 학회지가 발간되면서 현대와 같은 연구 환경이 조성되었다. 근대적인 학문의 정착과정에 신문ㆍ잡지와 같은 매체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글에서 제시한 잡지 목록만으로 현대국악의 연구 활동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현대국악계의 연구사적 흐름을 규명하는 데에 의의가 있다. This paper explores magazines which deal with modern Korean musicology and the status of those paper works published after 1945. The research shows an aspect of the development of Korean music field and the process of building the ground for its scholarship in the modern times. In order to see the trend of research on introducing modern kugak 國樂 the research first looked at the magazin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Korean music scholarship was most done by non-musicologists, such as scholars in folklore or language, or by Japanese in the perspective of outsider. The earlier magazines were published for enlightening people, and later specialized research magazines were began to appear in each field, for example in the case of music, specialized magazine like Samgwang 『三光』. It was the time that non music specialist were researching kugak. After the liberation many scholarships faced a new phase as building its academic ground as well as the system, although it was the time of historical turbulence. Many musical associations were organized; the Kungnip Kugagwon 國立國樂院 (National Kugak Center) was opened;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system was set. Not only each organization but also the institutions published their own journals, such as government organ and Muhyong munhwajae 『無形文化財』(Intangible Cultural Property). With its quick development, a special magazine Kugakkye 『國樂界』(The Korean Traditional Music Field) was appeared suddenly. But up until 1970s there was no specialized kugak journals. After the universities opened kugak departments new researchers were raised with the high level education. They did active academic works and the journals were published by the universities or their research center. Han'guk Kugak hakhoe 韓國 國樂學會 (Korean Musicological Society) first published Han'guk umak yon'gu 『韓國 音樂硏究』(Studies in Korean Music) and some other academic journals including Han'guk umak sahakpo 『韓國音樂史學報』(Journal of the Society for Korean Historico- Musicology) by Han'guk umak sahakhoe 韓國音樂史學會 (the Society for Korean Historico-Musicology) were appear as making the modern research environment. In the process of settlement of modern scholarship, the media such as newspaper and magazines were important. This research is meaningful in clarifying the historical flow in modern kugak field. However, only with the list of magazines provided in the paper, it is limited to understand the general research activities in modern kugak.

        • KCI등재

          논문 : 만당음악학의 국제성 지향 재조명

          김희선 ( Hee Sun Kim ) 한국음악사학회 2015 韓國音樂史學報 Vol.55 No.-

          한국음악학의 효시인 만당 이혜구의 업적은 초기부터 한국음악학의 국제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는 만당의 정치적 행위로서의 국제적 행보와 학문적 행위의 두 측면을 통해 만당 한국음악학의 국제성 지향의 성격을 재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09년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만당은 식민지 서구식 음악교육을 받고 바이올린을 연주하였으며 경성제국대학의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의 학습과 영문학 전공의 사회문화적 배경은 이후 만당 음악학의 국제성의 향방을 제시해 주었다고 보여진다. 만당의 국제성 지향은 1950년대 구미에서 구성되기 시작한 두 개의 국제학회(International Council for Traditional Music, Soceity for Ethnomusicology)의 회원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맺게 된 주요 학자들과의 교류로 시작된다. 만당은 다양한 정치적 행보를 통해 한국전통음악을 해외학계에 소개하고 한국음악학의 존재를 해외에 드러내는 매개자의 역할을 감당하였을 뿐 아니라 본인 또한 해외 학계의 주요학자로 활동하였다. 또한 만당은 해외학계의 동향을 국내 학계에 보고 함으로서 한국음악학계에 국제성 지향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또한 만당은 대중매체의 지면을 통해서도 한국음악학의 국제성과 현대화 작업의 필연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가 하면 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였다. 만당은 1960년대부터 자신이 능통했던 영어와 일본어로 논문발표, 저서, 논문출판, 번역에 걸친 활발한 학술활동을 펼쳤다. 만당의 영어저작물의 주제는 한국음악의 개괄적 소개, 이론, 역사 악기, 장르, 창작음악을 망라하여 한국음악 전반을 영어권 독자에게 소개하고자 하였는데, 이들 연구물은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연구물의 영어번역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만당의 영어저작물은 대부분은 해당 분야 혹은 장르의 최초의 영문저작물로 이후 해외 한국음악학 연구자들에게 한국음악연구의 입문의 단초를 제공하여 해외 한국음악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만당의 정치적, 학문적 행보는 이후 국제 음악학계의 형성과정에서 음악인류학계의 역사음악학 분과의 존립 및 아시아 음악학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더 나아가 해외 한국음악학의 성립, 성장, 위상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From early stages, writings of the late Lee Hye-ku 李惠求 [Yi Hye-gu] (1909-2010), pioneer in Korean musicology, aims for internationalism of Korean music. This study attempts to reinvestigate such international aspect of Mandang’s 晩堂 works, focusing both on his political/international activities and on his academic achievements. Mandang was born in 1909, while Korea was under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e received Western music education, learned to play the violin and played at the Western orchestra and graduated from Keijo Imperial University 京城帝國大學 majoring in English Literature. Such socio-cultural background seems to have formed the foundation for his international tendency inherent in his later works as a musicologist. His internationalism became even more evident as he, as a member of two international organizations; ICTM (International Council for Traditional Music) and SEM (Society for Ethnomusicology), began interacting with other renowned international music scholars. Through political venue Mandang introduces Korean traditional music to foreign scholars and worked as a intermediary for Korean traditional music, while continuing to focus on his personal research activities. He also discussed international academic issues with scholars within Korean musicology, motivating Korean scholars to ‘view the larger picture.’ Also by means of popular media and magazines, he continued to pursue and bring general attention to the goal of modernizing and internationalizing Korean musicology. From the 1960s Mandang produced various writings in English and in Japanese, as well as many translating works, to be published in various journals and books. His writings in English usually dealt with general introduction and history of Korean music, as well as general theory, musical instruments, and modern compositions to be introduced to English-speaking readers. Mostly translated from his former research written in Korean, his English writings were the first in introducing respective Korean musical genres, and played a crucial role in providing basic research material for international scholars interested in Korean music. Mandang’s political and academic activitie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both strengthening the position of historical musicology within ethnomusicology and developing Asian music studies in general, not to mention his contribution in nurturing and in raising the position of Korean musicology in the field of ethnomusicology.

        • 한국음악 비평의 현실과 대안

          강혜진(Kang, Hye-jin) 한국음악문화학회 2013 한국음악문화연구 Vol.4 No.-

          음악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향유하는 예술이다. 따라서 사회의 분위기와 요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판단하여 음악 활동에 반영해 줄 음악 비평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평은 사회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글’로 기록하여 남겨두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따라서 한국음악 비평문이 실린 단행본과 한국음악 비평 관련 연구 결과물을 검토해봄으로써 현재 한국음악 비평이 처해있는 상황을 살펴보았다. 제1세대에서 제3세대에 이르기까지 학자 중심의 평자들에 의한 비평집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으나, 201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 음악 관계자가 발간한 비평집을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최근 3년 동안은 한국 음악 비평집의 발간이 없는 실정이다. 한국음악을 연구하고 연주하는 이가 이처럼 비평에 대해 무관심한데, 대중에게 한국음악을 사랑해달라고 외치는 소리만 곳곳에서 들리는 것 같은 현재의 이 아이러니한 현실에 대해 한국음악을 연구하고 연주하는 이들이 함께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할 것이다. 한국음악 비평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200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2010년 이후로는 현재까지 눈에 띄는 연구 결과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비평집이 기존 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발간된 것에 비하면, 비평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 성과는 아직 아주 미흡하다 할 수 있겠다. 이는 한국음악학계 내에서 음악 비평의 학문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비평의 현실을 직시하고 필자가 내세운 대안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다양한 세대와 분야의 비평집을 꾸준히 발간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음악 비평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음악을 공부하고 연주하고 작곡하는 이들이 비평에 관심을 갖고 비평집을 발간하고 비평 교육을 하는 시간들이 쌓여 현재 활동하고 있는 제3세대의 평론가들의 뒤를 이을 젊고 유능한 평론가가 많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Music is the art that contemporary people enjoy together. Therefore, music criticism is necessary for reflection of social requirement. Criticism must affect another"s thoughts and feelings. And writing process is material to criticism. This study researched circumstances of the current korean music criticism by analyzing books and treatises on korean music criticism. Books on korean music criticism have constantly been published by reviewers and scholars. But since around 2010 Books on korean music criticism written by korean music expert are not published, during the past three years Books on korean music criticism are not published. Full-scale studies on korean music criticism is started in earnest on the year 2000, results of scholarly research in korean music criticism are very insufficient. We have to be realistic about circumstances of the current korean music criticism, I offer two solutions. One is steady publication of the various generations and branches, the other is systematic realization of the korean music criticism education. If these two solutions are realized well, a large number of young capable critics are emerged.

        • KCI등재

          만당음악학의 국제성 지향 재조명

          김희선 한국음악사학회 2015 韓國音樂史學報 Vol.55 No.-

          한국음악학의 효시인 만당 이혜구의 업적은 초기부터 한국음악학의 국제성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는 만당의 정치적 행위로서의 국제적 행보와 학문적 행위의 두 측면을 통해 만당 한국음악학의 국제성 지향의 성격을 재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09년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만당은 식민지 서구식 음악교육을 받고 바이올린을 연주하였으며 경성제국대학의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의 학습과 영문학 전공의 사회문화적 배경은 이후 만당 음악학의 국제성의 향방을 제시해 주었다고 보여진다. 만당의 국제성 지향은 1950년대 구미에서 구성되기 시작한 두 개의 국제학회(International Council for Traditional Music, Soceity for Ethnomusicology)의 회원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맺게 된 주요 학자들과의 교류로 시작된다. 만당은 다양한 정치적 행보를 통해 한국전통음악을 해외학계에 소개하고 한국음악학의 존재를 해외에 드러내는 매개자의 역할을 감당하였을 뿐 아니라 본인 또한 해외 학계의 주요학자로 활동하였다. 또한 만당은 해외학계의 동향을 국내 학계에 보고함으로서 한국음악학계에 국제성 지향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또한 만당은 대중매체의 지면을 통해서도 한국음악학의 국제성과 현대화 작업의 필연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가 하면 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였다. 만당은 1960년대부터 자신이 능통했던 영어와 일본어로 논문발표, 저서, 논문출판, 번역에 걸친 활발한 학술활동을 펼쳤다. 만당의 영어저작물의 주제는 한국음악의 개괄적 소개, 이론, 역사 악기, 장르, 창작음악을 망라하여 한국음악 전반을 영어권 독자에게 소개하고자 하였는데, 이들 연구물은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연구물의 영어번역물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만당의 영어저작물은 대부분은 해당 분야 혹은 장르의 최초의 영문저작물로 이후 해외 한국음악학 연구자들에게 한국음악연구의 입문의 단초를 제공하여 해외 한국음악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만당의 정치적, 학문적 행보는 이후 국제 음악학계의 형성과정에서 음악인류학계의 역사음악학 분과의 존립 및 아시아 음악학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더 나아가 해외 한국음악학의 성립, 성장, 위상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From early stages, writings of the late Lee Hye-ku 李惠求 [Yi Hye-gu] (1909-2010), pioneer in Korean musicology, aims for internationalism of Korean music. This study attempts to reinvestigate such international aspect of Mandang’s 晩堂 works, focusing both on his political/international activities and on his academic achievements. Mandang was born in 1909, while Korea was under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e received Western music education, learned to play the violin and played at the Western orchestra and graduated from Keijō Imperial University 京城帝國大學 majoring in English Literature. Such socio-cultural background seems to have formed the foundation for his international tendency inherent in his later works as a musicologist. His internationalism became even more evident as he, as a member of two international organizations; ICTM (International Council for Traditional Music) and SEM (Society for Ethnomusicology), began interacting with other renowned international music scholars. Through political venue Mandang introduces Korean traditional music to foreign scholars and worked as a intermediary for Korean traditional music, while continuing to focus on his personal research activities. He also discussed international academic issues with scholars within Korean musicology, motivating Korean scholars to ‘view the larger picture.’ Also by means of popular media and magazines, he continued to pursue and bring general attention to the goal of modernizing and internationalizing Korean musicology. From the 1960s Mandang produced various writings in English and in Japanese, as well as many translating works, to be published in various journals and books. His writings in English usually dealt with general introduction and history of Korean music, as well as general theory, musical instruments, and modern compositions to be introduced to English-speaking readers. Mostly translated from his former research written in Korean, his English writings were the first in introducing respective Korean musical genres, and played a crucial role in providing basic research material for international scholars interested in Korean music. Mandang’s political and academic activitie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both strengthening the position of historical musicology within ethnomusicology and developing Asian music studies in general, not to mention his contribution in nurturing and in raising the position of Korean musicology in the field of ethnomusic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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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과 한국음악치료학회 20년사

          최병철 한국음악치료학회 2017 한국음악치료학회지 Vol.19 No.1

          이 연구는 한국의 음악치료 교육이 어떻게 숙명여대에서 시작하게 되었으며 한국음악치료학회가 국내 최초로 결성되고 발전해 온 지난 20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음악치료가 국내에 자리 잡게 된 1990년대의 역사적 내용들을 음악치료대학원과 학회의 결성, 학술대회, 학회지, 자격제도와 보수교육, 대내외 활동들(직업홍보, 음악치료홍보, 대외 활동, 지역 활동, 숙명음악치료센터활동)을 1부에 정리하였고, 2부에서는 한국음악치료의 발전과 조망으로 특히 4가지 내용을 주목하고 관련 내용들을 소개하였다. 한국음악치료는 (1) 음악치료 특강 15주 과정을 통해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2) 초기에서부터 다양한 치료적 모델들을 발전시켜 올 수 있었다; (3) 음악치료사 취업에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을 가졌다; (4) 출발에서부터 개척자 정신이었다. 한편 한국음악치료 발전의 역사에서 여전히 고려되어야 할 몇 가지 문제들도 지적되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describe and document how Korean music therapy has developed during its twenty year history. An account of its origin beginning in the 1990s—along with historical reports such as conferences, centers, publishing journals, certifications and continuing education system, and activities in and outside community—will be given. In particular, four unique aspects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music therapy will be explored. (1) The biannual special 15-week lecture series on music therapy that was open to the general public in Korea had an important role in promoting awareness of the field; in the past 20 years, over 13,000 people have attended these lectures. (2) Korea readily adapted already well-established music therapy models from the beginning and rigorously focused on the development of these training programs (e.g. GIM, N-R Improvisation, and Vocal Psychotherapy). (3) There was a strong emphasis on providing a music therapy job market; Sookmyung music therapy centers were opened right after the first graduate music therapists matriculated from the program and provided opportunities for career advancement. (4) People have kept the pioneer spirit from the beginning. Beyond the offerings of music therapy to the general public, there has also been an emphasis on using music therapy for outreach of specific populations endemic to Korea, such as North Korean refugees. Finally, this paper will discuss some of the ongoing issues and barriers to the development of a unified certification system for music therapists in Korea—in particular the dissonance between hospital internship periods and the academic calendar for students in music therapy programs.

        • KCI등재

          Western influence and changes in Korean Music

          Byeon, Gye-won 한국음악사학회 2003 韓國音樂史學報 Vol.30 No.-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서양음악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한국 전통음악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로는 한국 음악문화가 국악과 양악으로 이분화 되고, 전통음악 분야에 새로운 창작방법을 도입한 음악장르가 생겨났는데 이것이 오늘날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창작국악이다. 본고는 서양음악이 한국에 유입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한국음악의 변화된 모습 가운데 창작국악 장르와 관련되는 측면들을 살펴보면서 '창작국악'이라는 장르가 어떠한 사회적, 역사적, 음악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서양 오선보의 사용은 정간보 보다 좀더 많은 요소들을 악보에 표기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이것 역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오선보의 사용은 끊임없이 변화되어 오던 한국 전통음악의 선율들을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음악으로 만들었고, 연주자들의 악보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놓았다. 오선보는 민요나, 정악 등의 전통음악 선율 보존에 큰 공로가 있으나, 또한, 한국음악 음계에서 음정의 변화를 가져왔다. 서양식의 콘서트 홀과 레코드 등의 대중과의 만남의 방식은 또한 이전까지 구분되어 왔던 전통음악 안의 여러 장르들을 뒤섞어서 보여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예를 들어, 궁중음악과 민간음악이 한 공연 장소에서 같이 공연되게 되었으며, 공연시간이나, 레코드 시간에 맞게 음악자체를 편집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외에 창극이나 사물놀이 같은 새로운 장르나, 국악 관현악곡, 협주곡 등의 서양 음악식의 음악 형태가 등장하였다 이는 또한 국악기를 위한 서양 화성법 적용의 문제와 함께 악기 개량의 문제를 더 신속히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살펴본 바와 같이 서양음악의 유입은 한국 전통음악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다주었으며 이 커다란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부추기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과정을 살피어 오늘날 이 장르가 한국 전통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에 대한 서양음악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서양음악적, 현대 음악적 요소들을 어떻게 현대 국악곡에서 한국화 시키는가를 직접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오늘날의 작곡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고의 전환으로 스스로 갖혀 있는 테두리를 벗어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 KCI등재후보

          Western Influence and Changes in Korean Music

          Byeon Gye-won변계원 한국음악사학회 2003 韓國音樂史學報 Vol.30 No.-

          서양음악의 영향과 한국음악의 변화 변 계 원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서양음악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한국 전통음악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로는 한국 음악문화가 국악과 양악으로 이분화 되고, 전통음악 분야에 새로운 창작방법을 도입한 음악장르가 생겨났는데 이것이 오늘날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창작국악이다. 본고는 서양음악이 한국에 유입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한국음악의 변화된 모습가운데 창작국악 장르와 관련되는 측면들을 살펴보면서 '창작국악'이라는 장르가 어떠한 사회적, 역사적, 음악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서양 오선보의 사용은 정간보 보다 좀더 많은 요소들을 악보에 표기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이것 역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오선보의 사용은 끊임없이 변화되어 오던 한국 전통음악의 선율들을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음악으로 만들었고, 연주자들의 악보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놓았다. 오선보는 민요나, 정악 등의 전통음악 선율 보존에 큰 공로가 있으나, 또한, 한국음악 음계에서 음정의 변화를 가져왔다. 서양식의 콘서트 홀과 레코드 등의 대중과의 만남의 방식은 또한 이전까지 구분되어 왔던 전통음악 안의 여러 장르들을 뒤섞어서 보여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예를 들어, 궁중음악과 민간음악이 한 공연 장소에서 같이 공연되게 되었으며, 공연시간이나, 레코드 시간에 맞게 음악자체를 편집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외에 창극이나 사물놀이 같은 새로운 장르나, 국악 관현악곡, 협주곡 등의 서양 음악식의 음악 형태가 등장하였다. 이는 또한 국악기를 위한 서양 화성법 적용의 문제와 함께 악기 개량의 문제를 더 신속히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살펴본 바와 같이 서양음악의 유입은 한국 전통음악에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다주었으며 이 커다란 변화가 또 다른 변화를 부추기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되었다. 이러한 변화과정을 살피어 오늘날 이 장르가 한국 전통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에 대한 서양음악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서양 음악적, 현대 음악적 요소들을 어떻게 현대 국악곡에서 한국화 시키는가를 직접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오늘날의 작곡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고의 전환으로 스스로 갖혀 있는 테두리를 벗어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 KCI등재후보

          변화하는 대중음악 교육 환경에 있어 한국 재즈학의 위치와 의미론에 관한 성찰

          김 책 한국대중음악학회 2018 대중음악 Vol.- No.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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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음악교육 환경의 교과서, 교과과정, 범교과에 있어 점진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대중음악에 관한 총체적 연구가 개진되기에 앞서, 재즈학(Jazz Studies)이란 용어의 개념적, 맥락적 쟁점들을 선결문제로서 성찰해보고, 이를 교육과 문화 전달이라는 일반론적 테제들과 연관지어 다루어야 할 지점이라는 것을 우리 음악 사회에 설득하고자 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재즈학과 관련된 이론적 개념과 쟁점들을, 2장 한국 재즈의 역사와 기원, 3장 위치와 정체성, 4장 즉흥연주 관습이라는 사회문화적 쟁점을 각론으로 구성하여 음악교육학적 연구질문들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본 논문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음악교육 환경에 있어 재즈학, 광의에 있어 대중음악을, 기존의 소위 서양 고전 낭만음악 위주의 커리큘럼에서 비교적 등한시되던 즉흥연주, 디아스포라, 문화접변, 그리고 대중음악, 아프리칸아메 리칸음악 등 다양한 타자의 음악문화라는 함의를 포용할 수 있는 적실성 있는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discuss and reflect the conceptual, contextual issues of Korean Jazz studies as a prerequisite questions before holistic researches on popular music in general which is facing a radical rapid and super competitive challenges recently. Reaching the moment to persuade korean society to build general theory structures surrounding these issues, the contents are dealing with the theoretical concepts and issues on the 2nd chapter: The epoch and history of Korean Jazz, The 3rd chapter: Location and Identity of Korean Jazz, The 4th chapter: Improvisation customs in contemporary korean music society. And this article also is recommending to revaluate the characteristic agents of Jazz and popular music(diaspora, acculturation, improvisation, music as a multicultural expression) -which used to be defined as counter form of authentic western fine art music- as a promising cultural resources for future generation’s music education in general.

        • 외국 작곡가의 작품에 응용된 한국 전통음악적 요소 : 랜들 스나이더의"남대문"을 중심으로

          이정화 한국음악응용학회 2010 음악응용연구 Vol.3 No.-

          Randall Snyder(1994~)는 미국의 클래식 재즈 작곡가로 1993년 한국 정부가 선정한 9명의 미국작곡가와 연주가에 선정되어 6주간 서울에서 이루어진 전통 공연 예술 강습회에 참가하여 한국전통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Snyder는 판소리, 대금, 장고, 목탁 등을 배웠고 한국전통음악과 전통적 양식에 영감을 받아 '낙성대의 꿈(1993)' '남대문(1993)' '늙은 양반(1994)' 등 여러 작품을 작곡하였다. '남대문'은 그 중 한 곡으로 Snyder가 한국에 체류하면서 남대문과 남대문 주변의 모습과 환경, 그리고 남대문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중의 하나라는 것에 감명을 받고 한국의 민속 음악에 대한 관심을 표면화 시키려는 의도에서 미국의 재즈음악과 한국 전통음악을 접목하여 쓴 관현악 작품이다. 본 논문에서는 한국 전통음악적인 요소를 다루고자 한다.'남대문'은 122마디의 9개 섹션으로 형성되어있다. 국악적인 요소로는 전반부의 느리고 장엄한 부분에서 점점 시나위를 표방하는 빠른 속도의 즉흥 연주적 성격이 강한 후반부로 나뉘어지는데 이는 국악에서 '한배에 따른 형식'이라고도 한다. 타악기의 리듬은 9박에 강세가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굿거리나 자진모리 장단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남도 계면조가 많이 사용되었다. 섹션Ⅷ를 제외한 나머지 섹션들은 하강종지를 하고 있고 특히 마지막 마디인 122마디의 타악기에서 점점 작아지는 연타음으로 종지를 한다. 이것은 한국의 전통 민속악의 종지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트릴과 글리산도의 연주 기법을 이용하여 국악의 요성, 추성, 퇴성 등을 나타냄으로 국악적인 분위기를 드높이고 있다. 그러나 외국작곡가이기 때문에 한국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계면조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였고, 일본 음계인 미야꼬부시가 나타나는 등 한, 두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앞으로 외국 작곡가가 한국 전통음악의 음악어법을 활용하여 작곡하기를 원한다면 한국 전통음악의 음악적 구조와 표현방법 등을 올바르게 이해하여 정확한 표현으로 작곡되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국 작곡가뿐 아니라 외국 작곡가들을 통해서도 한국 전통음악이 세계 속에 널리 알려지기를 희망한다.

        • KCI등재

          한국 창작음악의 전개에서 나타난 국악의 배치와 의미

          윤혜진 ( Yoon Hye-jin ) 한국음악사학회 2017 韓國音樂史學報 Vol.59 No.-

          한국의 창작음악 논의에서 국악은 때로는 과거 전통음악으로, 때로는 관련된 요소로, 그리고 때로는 한국음악으로 여겨진다. 각 구도에서 국악은 시대인식, 양악과의 대립적 구도, 창작행위, 개인, 국가와 공동체문화 등의 다양한 견지에서 다르게 배치된다. 이 글은 한국의 창작음악에서 국악이 어떠한 견지와 맥락으로 배치되어 인식되는 지를 살펴봄으로써 창작음악에 관한 관점을 확장하고자 한다. 한국문화에서 국악은 제한된 범주인 동시에 열린 범주이다. 국악은 양악에 대별되는 범주로서 과거의 음악으로 제한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우리음악으로서 미래로 열려 있기도 하다. 국악이 제한됨과 열림의 역설적 구도를 지니는 데에는 우리음악의 전통과 시대성 논의에서 국악에 대한 관점과 구도가 명확하지 않았던 배경이 있다. 한국 창작음악의 논의에서 창작국악과 창작양악에 대한 시각은 양악 중심의 사고에 매몰되어있다. 음악의 정체성 문제에 있어서 양악은 한국의 음악으로서 정체성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고 창작에서 사용되는 도구는 양악의 범주에 둠으로써 양악창작이 아닌 국악창작은 국악의 정체성과 양악적 서구화라는 시각으로 투영되었다. 한국의 창작음악 전개에서 창작국악만이 아닌 전체 창작음악을 조망하려면 국악·양악·창작의 구도를 세심하게 볼 필요가 있다. 국악은 선율적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고 특정 기법이 음향적 구조로 활용되기도 하며 관련된 개념이 음악적 구성의 이디엄이 되기도 한다. 소리에서부터 개념까지 창작음악에서의 국악은 창작을 위한 구체적인 요소로부터 추상적인 요소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거나 해석된다. 창작음악에서 국악기의 사용과 국악적 요소들과 관련된 개념 등은 전통, 시대성, 현대성, 그리고 민족성과 같은 담론에서 국악을 어떻게 배치하는 지 따라 음악적 활용과 해석이 달라진다. 현재 한국문화에서 창작음악을 음악으로 여기면서도 국악기가 들어가거나 국악적 재료가 사용되는 음악은 음악의 범주보다는 국악으로 모호하게 구분하기도 한다. 한국문화가 한국과 서양이 혼합된 만큼 창작음악에 대한 혼합적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 창작음악의 전개에서 국악을 배치하는 구도는 전통과 시대성을 어떻게 인식하는 지와 연계되어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전통이 시대를 구분하는 시대성보다 더 넓고 열려 있는 개념이기에 우리의 음악적 전통인 국악은 과거의 음악에 제한되지 않는 열린 범주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대적 가치나 개인적 성향을 따르는 창작자만이 아니라 전통과 시대성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열고 작업하는 많은 창작자가 존재해야한다. 우리음악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고민이 양 음악계 창작자의 의미 있는 작업으로 생산되고 한국 문화의 자생적이고도 주체적인 담론과 함께 이루어진다면 한국 창작음악은 새로운 전망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The term kugak 國樂 discussed in Korean new music has been considered by the varied contexts as past traditional music, a musical element, Korean music, and so on. Those show that assemblage of kugak is deployed according to various standpoints such as the view on the times, an opposed to yangak 洋樂 (lit. Western music), creative compo- sition, and nation and community culture. This study attempts to examine how kugak has been deployed and recognized in the various contexts so as to expand the view on Korean new music. Kugak belongs to the category not only being limited also being opened concept. That is, kugak lies in the limited concept as past music confronting with yangak, and also in the opened to future as our music containing Korean identity. The reason kugak has such paradoxical points is that the view points toward kugak have been vague in the matter on tradition and contemporaneity of our music. The main view to ch'angjak kugak 創作國樂 and ch'angjak yangak 創作洋樂 in discussing Korean new music is mainly focused by the thought centered on yangak. On the issue of music identity, yangak was not the issue of the debate and composition methods was considered inside the category of yangak. Ch'angjak kugak hereby has been criticized by its identity and Westernization. By virtue of having more wide perspective not only to ch'angjak kugak but to the whole new music, we need to investigate the context between kugak·yangak·creative composition emerged in development of Korean new music. Kugak might be used for musical elements for melody, its peculiar techniques would be applied for acoustic structure, or a related conception becomes the idiom for musical construction. In other words, kugak in new music has been broadly used and applied from sound as concrete musical element to conception as abstract element. The usage of Korean musical instruments and the pertinent idea to kugak are differently interpreted according to how to make assemblage of kugak in the discourses of various aspects such as tradition, contemporaneity, modernity, and the character of Korean culture. Korean culture of our current times classifies new composed music to music, however which of Korean musical instrument or utilizing elements is vaguely categorized in kugak rather than music. This is because there exists the mixtures of views to new composed music as much as Korean and Western cultures features a blend for a long time. Assemblage of kugak deployed in Korean new music has connected to how to recognize tradition and contemporaneity. Tradition penetrates the times. This tradition is more wide and opened concept than contempo- raneity of current times which provides periodization. Therefore our musical tradition, kugak, should be acknowledged as a more opened category not limited to past music. We pursue our path to a new inquiry and thought on our music along with our own discourse so that Korean new music would have a new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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