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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사 프로젝트를 통한 인지적 이해 모색

          신주철(Shin, Jucheol)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13 외국문학연구 Vol.- No.50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근래 외국인이나 외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 후손들의 한국 대학 진학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문학교육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대학에 진학한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문학을 교수하는 보다 바람직한 방안을 모색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 연구는 한국의 대학에서 전개되고 있는 외국인 대상 교양 한국문학교육에서 문학-문화 통합 교육이라는 관점을 적용한다. 그리고 교육 과정에서 수행될 수 있는 한 사례로서 답사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한국문학 교양강좌의 교육적 성공 여부의 큰 변수의 하나는 학습자들이다. 그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교양 한국문학강좌의 경우 한국문학사와 작품의 배면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역사, 사회 등에 대한 교수가 동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필자는 답사 프로젝트 수업이 학생들을 능동화하여 자율적으로 지식을 모색하고 자기화 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판단한다. 본고의 논의에서 기획된 답사지는 서울의 종로이고 수업 목표는 종로 문화유산과 그에 관련된 문학작품을 함께 살펴 이해와 감상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필자는 답사 프로젝트를 이끌기 위해 학생들에게 3단계의 과정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 첫째는 답사 프로젝트의 실현 전 단계로 계획, 조사 등을 수행한다. 둘째는 프로젝트 수행 단계로 자신들이 선정하여 조사한 대상을 답사한다. 셋째는 평가와 마무리 단계인데 강의실로 돌아와 자신들이 계획하고 목표로 했던 바의 성취도와 답사 프로젝트의 의의를 정리한다. 이와 같은 각각의 단계에서는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기획력을 높이고 문제를 줄이도록 하였다. This study applies a combined literature and culture education to Korean literature education in liberal arts targeted towards foreign students. In addition, it suggests a field study project as an example. In lectures on Korean literature in liberal arts for foreign students, the understanding of Korean literature history, characteristics of Korean literature, current state of the process, furthermore, and the importance and the value of Korean literature as part of world literature will be taught and learnt. One of the main successive factors in the process of teaching and learning such content depends on learners. For the foreign students, teaching Korean history and society that are the backgrounds of Korean literature history and literary works that should be accompanied with. For the very reason, it is desirable to be combined with cultural education. The author reasons that the field study project is a method that helps the learners to inquire independently and absorb knowledge as their own. The intended location for this lecture was Jongno, Seoul, and the goal of the class was to develop the understanding and appreciation by looking into the cultural heritage and the regarding literary works of the intended location together. The author let the students follow three steps to lead the project: first, it was a pre-stage for the field study project for which they planned and investigated. Second step was a stage for carrying out the project, students visit the place they chose and investigated. Third, was the evaluating and finishing stage, students organize the academic achievement and the meaning of the project. In each step, they made a checklist in order to improve the planning and reduce problems. 근래 외국인이나 외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 후손들의 한국 대학 진학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문학교육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 대학에 진학한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문학을 교수하는 보다 바람직한 방안을 모색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 연구는 한국의 대학에서 전개되고 있는 외국인 대상 교양 한국문학교육에서 문학-문화 통합 교육이라는 관점을 적용한다. 그리고 교육 과정에서 수행될 수 있는 한 사례로서 답사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한국문학 교양강좌의 교육적 성공 여부의 큰 변수의 하나는 학습자들이다. 그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교양 한국문학강좌의 경우 한국문학사와 작품의 배면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의 역사, 사회 등에 대한 교수가 동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필자는 답사 프로젝트 수업이 학생들을 능동화하여 자율적으로 지식을 모색하고 자기화 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판단한다. 본고의 논의에서 기획된 답사지는 서울의 종로이고 수업 목표는 종로 문화유산과 그에 관련된 문학작품을 함께 살펴 이해와 감상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필자는 답사 프로젝트를 이끌기 위해 학생들에게 3단계의 과정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그 첫째는 답사 프로젝트의 실현 전 단계로 계획, 조사 등을 수행한다. 둘째는 프로젝트 수행 단계로 자신들이 선정하여 조사한 대상을 답사한다. 셋째는 평가와 마무리 단계인데 강의실로 돌아와 자신들이 계획하고 목표로 했던 바의 성취도와 답사 프로젝트의 의의를 정리한다. 이와 같은 각각의 단계에서는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기획력을 높이고 문제를 줄이도록 하였다. This study applies a combined literature and culture education to Korean literature education in liberal arts targeted towards foreign students. In addition, it suggests a field study project as an example. In lectures on Korean literature in liberal arts for foreign students, the understanding of Korean literature history, characteristics of Korean literature, current state of the process, furthermore, and the importance and the value of Korean literature as part of world literature will be taught and learnt. One of the main successive factors in the process of teaching and learning such content depends on learners. For the foreign students, teaching Korean history and society that are the backgrounds of Korean literature history and literary works that should be accompanied with. For the very reason, it is desirable to be combined with cultural education. The author reasons that the field study project is a method that helps the learners to inquire independently and absorb knowledge as their own. The intended location for this lecture was Jongno, Seoul, and the goal of the class was to develop the understanding and appreciation by looking into the cultural heritage and the regarding literary works of the intended location together. The author let the students follow three steps to lead the project: first, it was a pre-stage for the field study project for which they planned and investigated. Second step was a stage for carrying out the project, students visit the place they chose and investigated. Third, was the evaluating and finishing stage, students organize the academic achievement and the meaning of the project. In each step, they made a checklist in order to improve the planning and reduce probl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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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문학연구회와 양주동의 번역 논쟁

          김욱동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10 외국문학연구 Vol.- No.40

          Descriptive rather than analytic in its approach, this article attempts to explore disputes over translation between Joo-dong Yang and the Society for Research in Foreign Literature, a literary society established by Korean students who majored in foreign literature at colleges in Tokyo, Japan, in the late 1920s. The debates occurred in the spring of 1927 when Yang criticized most of translations in Foreign Literature, a magazine published by the members of the Society for Research in Foreign Literature, for being poor―so poor, in fact, that they could be seen as “a nearly total failure.” Yang's somewhat acrimonious criticism was based on three premises: 1) translators should employ fluent style so that the reader of the target text may have easy access to the translated works; 2) they must try to render the source text into the target language freely rather than render it too literally; and 3) they should be very careful when they use loan-words and calques. A strong defender of the Korean language as well as Korean literature, Joo-dong Yang argues that the translators have failed in these three aspects and that most of the translations in Foreign Literature suffer pitifully where readability is concerned. Some members of the Society, such as Ha-yoon Lee, Chin-sup Kim, and In-sob Zong, immediately joined in answering back to Yang's critique, pointing out that new vocabulary and phrases, however strange and awkward they seemed at first, would become domesticated. Cosmopolitan in their weltanschauung, the members strongly maintained that loan-words and calques in translation would eventually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the target language. 이 논문은 1927년 양주동이 ‘외국문학연구회'가 발행한 잡지 《해외문학》에 실린 번역 작품을 비판하면서 촉발된 일련의 번역 논쟁을 다루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양주동은 이 잡지에 실린 외국문학연구회 회원들의 번역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로 그는 이하윤과 김진섭을 비롯한 번역자들이 1) 자국어가 있는데도 난삽한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였고, 2) 의역보다는 축자적 직역을 시도하였고, 3) 자국어에는 없는 ‘비어(非語)'나 외래어 또는 신조어 등을 사용하였다는 점을 든다. 양주동의 이러한 비평에 대하여 이하윤과 김진섭은 반론을 제기하여 세계 언어사를 보아도 한 국어의 어휘는 번역 과정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들은 이러한 외래어나 신조어는 처음에는 아무리 생경하게 느껴지더라도 곧 자국어에 흡수되어 자국어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문학연구회를 창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정인섭도 이하윤과 김진섭의 편을 들면서 외국문학 작품을 자국어로 옮길 때 번역자는 어쩔 수 없이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외국문학연구회 회원들의 이러한 반론에 대하여 양주동은 앞서 내세운 입장을 철회하기는커녕 오히려 다시 한 번 번역에 대한 소신 있는 태도를 천명한다. 한편 외국문학연구회의 번역에 대한 양주동의 평가에는 사사로운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하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양주동은 《해외문학》이 출간되기 4년 앞서 문예지 《금성》을 창간하여 번역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번역 방법론을 둘러싸고 양주동과 외국문학연구회 회원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련의 논쟁은 획기적 사건으로 한국 번역사에서 최초의 의미 있는 논쟁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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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문학연구회와 양주동의 번역 논쟁

          김욱동(Wook Dong Kim)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10 외국문학연구 Vol.- No.40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논문은 1927년 양주동이 ‘외국문학연구회'가 발행한 잡지 《해외문학》에 실린 번역 작품을 비판하면서 촉발된 일련의 번역 논쟁을 다루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양주동은 이 잡지에 실린 외국문학연구회 회원들의 번역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로 그는 이하윤과 김진섭을 비롯한 번역자들이 1) 자국어가 있는데도 난삽한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였고, 2) 의역보다는 축자적 직역을 시도하였고, 3) 자국어에는 없는 ‘비어(非語)'나 외래어 또는 신조어 등을 사용하였다는 점을 든다. 양주동의 이러한 비평에 대하여 이하윤과 김진섭은 반론을 제기하여 세계 언어사를 보아도 한 국어의 어휘는 번역 과정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들은 이러한 외래어나 신조어는 처음에는 아무리 생경하게 느껴지더라도 곧 자국어에 흡수되어 자국어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문학연구회를 창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정인섭도 이하윤과 김진섭의 편을 들면서 외국문학 작품을 자국어로 옮길 때 번역자는 어쩔 수 없이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외국문학연구회 회원들의 이러한 반론에 대하여 양주동은 앞서 내세운 입장을 철회하기는커녕 오히려 다시 한 번 번역에 대한 소신 있는 태도를 천명한다. 한편 외국문학연구회의 번역에 대한 양주동의 평가에는 사사로운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하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양주동은 《해외문학》이 출간되기 4년 앞서 문예지 《금성》을 창간하여 번역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번역 방법론을 둘러싸고 양주동과 외국문학연구회 회원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련의 논쟁은 획기적 사건으로 한국 번역사에서 최초의 의미 있는 논쟁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Descriptive rather than analytic in its approach, this article attempts to explore disputes over translation between Joo-dong Yang and the Society for Research in Foreign Literature, a literary society established by Korean students who majored in foreign literature at colleges in Tokyo, Japan, in the late 1920s. The debates occurred in the spring of 1927 when Yang criticized most of translations in Foreign Literature, a magazine published by the members of the Society for Research in Foreign Literature, for being poor―so poor, in fact, that they could be seen as “a nearly total failure.” Yang's somewhat acrimonious criticism was based on three premises: 1) translators should employ fluent style so that the reader of the target text may have easy access to the translated works; 2) they must try to render the source text into the target language freely rather than render it too literally; and 3) they should be very careful when they use loan-words and calques. A strong defender of the Korean language as well as Korean literature, Joo-dong Yang argues that the translators have failed in these three aspects and that most of the translations in Foreign Literature suffer pitifully where readability is concerned. Some members of the Society, such as Ha-yoon Lee, Chin-sup Kim, and In-sob Zong, immediately joined in answering back to Yang's critique, pointing out that new vocabulary and phrases, however strange and awkward they seemed at first, would become domesticated. Cosmopolitan in their weltanschauung, the members strongly maintained that loan-words and calques in translation would eventually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the target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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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외국문학 교육 교수법 및 평가 유형 시론

          윤혜준(Yoon, Hye-joon)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07 외국문학연구 Vol.- No.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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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문학은 대학의 인문학 및 교양 교육의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학을 교수법의 문제로, 특히 교수법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평가의 문제를 전면에 놓고 고민해온 논의들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외국어 능력 제고라는 실용적인 요구 앞에서 외국문학 교육이 스스로를 정당화할 의무를 부여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문학교육의 실무적인 차원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이러한 실무적 논의의 핵심은 평가가 차지한다. 평가를 통한 학점 부여가 대학 강의의 객관적인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외국 문학교육에서의 평가는, 문헌학적 평가, 해석학적 평가, 수사학적 평가,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 먼저, 문헌학적 평가의 필요성은 문학적 ‘가치'와 ‘교양'을 심어주기 전에 구체적인 문학사 및 지역학적 사실을 알려주고 숙지하게 하는 단계를 건너뛸 수는 없다는 데서 그 필요성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외국문학 교육이 인문학 교육의 일부인 한, 문학교육은 사유훈련을 유도해야 하기에, 독서를 통한 사유 훈련이란 의미에서의 해석학적 훈련이기도 하고, 이에 맞는 평가 모형이 필요하단 점에서 해석학적 평가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수사학적 차원의 평가는 작품 이해에서 출발한 다양한 응용과 각색, 활용을 장려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를 통해 사고와 경험의 폭을 넓혀줄 뿐 아니라 외국어 구사력을 늘리고 활용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In so far as literature is an established subject in current university education, those involved in teaching literature cannot be free from the obligation to take part in a more down-to-earth discussion of its practical features, above all the business of assessing and grading student performance. Such obligation has become more incumbent due to the increasingly vociferous criticism offered by the language education specialists, from whose perspective the presence of literature in a foreign language education program is an anomaly, for literary language, in their view, is the diametrical opposite of the authentic current language which they seek to teach with maximum efficiency. Faced with such criticism, literature teachers can do worse than to go to the very roots of literary education, drawing from the classical, medieval, as well as modern precedents, a more systematic program of assessment, which we propose as a three-fold structure. First comes the philological dimension, for literature is part of a general cultural history, and since factual knowledge of literary phenomena is bound to form the basis for more sophisticated discussions. Philological understanding also embraces grammar, the first subject of medieval trivium, since the ability to comprehend a foreign language in its best classical samples must be claimed as an educational objective addressed in literature courses. Philological assessment, however, must be supplemented by hermeneutic assessment, for literary education, as an essential core of general liberals arts, must encourage the students to draw personal meaning (or “significance”) from the texts: the thought experiment conducted in each discussion session is bound to broaden the sympathies and mentalities of the students. Finally, literary education should never shy away from using the texts as instruments for various rhetorical games and exercises. Such activities as re-writing, imitation, performance, and adaptations would enhance the pragmatic value of literature courses both in the eyes of the students and in the eyes of the university administ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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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금(巴金)과 한국전쟁문학

          이영구(Lee, Young-Koo)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07 외국문학연구 Vol.- No.25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연구는 지난 2005년 10월 17일 10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중국 근현대문학사의 위대한 거장 가운데 하나인 파금과 그의 문학 중 한국전쟁을 다룬 작품들에 대한 탐구이다. 파금은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노신, 곽말약, 모순, 노사, 조우 등과 더불어 ‘6대 거장' 중 하나로 존경받으며 ‘격류삼부곡', ‘애정삼부곡' 등 유명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청년 시절 무정부주의에 심취해 있었으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는 스스로 자신의 사상을 개조하여 정부의 사회주의 이념에 적극적으로 동화되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중국 ‘인민군'이 이에 참전하자 1952년과 1953년 두 차례 한국 전쟁에 참여하여 종군 문학을 창작한다. 그는 여러 소설과 산문들을 통해 당시 상황을 반영하거나 직접 묘사함으로써 한국 전쟁에서 북한군과 중국군의 승리를 위하여 영웅적인 인물들을 주로 묘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그의 문학적 태도는 인생의 후반기, 즉 중국 당대문학사의 한 일원으로서 파금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입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한국은 물론 중국의 학계에서조차 파금의 한국전쟁문학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토론이 이뤄져오지 못했는데, 한중 교류의 결락 缺落된 부분을 복원한다는 차원에서도 앞으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This paper probes into Bajin's literature works concerning the Korean War. Bajin, the great writer in the history of modernliterature, died at the age of 102 on Oct. 17, 2005. Along with Lu Xun, Guo Moruo, Mao Dun, Lao She and Cao Yu, he was regarded as one of the six literary giants in the history of Chinese modern literature. He left the world many eminent works like “Ji Liu San Bu Qu(The Trilogy of Torrents)” and “Ai Qing San Bu Qu(The Trilogy of Love)”. When Baijin was young, he believed in anarchy. After the foundation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he transformed his thought and turned actively to communism. After the Korean War broke out, 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 marched to the battle field in Korea. Bajin went with the Volunteersto Korea twice, in 1952 and 1953 respectively. He wrote things there, and described the situation of the war then with his novels and essays. To demonstrate directly the victory of North Korea and Chinese Volunteers in the Korean War, he decided to focus on depicting heroes in the war. As an important figure of Chinese contemporary literature, Bajin's literary attitude in his later life helps us to put him in the right position in history. Bajin's works on Korean War have seldom been discussed by Korean scholars. But they will receive due attention in the process of recovering the part of Sino-Korean communication that has been lost. The study of Bajin's works concerning Korean War will become a formal and necessary research field.

        • 하이너 뮐러의 역사철학과 연극미학

          이창복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1997 외국문학연구 Vol.- No.3

          In der vorliegenden Arbeit versuche ich, die Geschichtsphilosophie und die dramatische Asthetik Heiner Müllers zu analysieren. Diese Arbeit besteht aus vier Teilen : Erstens das Leben H. Müllers und seine Stellung in der deutschen Literatur, zweitens die Rezeption B. Brechts in Heiner Müllers Literatur, drittens die persönlichen Erlebnisse und seine Geschichtsphilosophie, letztens die dramatische Asthetik und ihre Gestaltung. Bevor Heiner Müller als der bedeutendste Dramatiker seit Brecht nicht nur in Deutschland, sondem auch in ganz Europa anerkannt wurde, war er anfangs ein ungem gesehener Autor, weil er die Widersp피che und Konflikte beim Aufbau des Sozialismus in der DDR bloβlegte. Aber in diesem Bloßlegen liegt die pädagogische Idee, dem Publikum die Erkenntnis für eine neue Gesellschaft und eine bessere Zukunft zu geben,verborgen. Der Fall der Mauer bedeutete für den am meisten gespielten Theaterautor einen Einschnitt des Schaffens, weil er, der sich immer auf die marxistische Philosophie und Asthetik berief, im Kapitalismus auβer Verweigerung nichts zu lemen sieht. D하ler schwieg er bis zu seinem Tod. Wenn man das Verhältnis zu Brecht ins Auge faßt, versteht man, daß Müller,“ obgleich nie direkt ein Meisterschüler Brechts, einer von ilmen" war. Wie er selbst gesagt, hat er den Brecht vorausgesetzt, und “ da angefangen, wo Brecht aufgehört hat. " Auf diese Weise war sein Verhältnis zu Brecht selektiv und kritisch. W값rrend Müller die Geschichtsauffassung und die Dramturgie Brechts rezipiert hat, hat er sie im gleichen Maße kritisiert und auf seine eigentümliche Gestaltungsweise so weit radikal entwickelt, daß man das Charakteristikum der Mül1erschen Dramaturgie und Asthetik versteht. Der Wandel der Geschichtsauffassung Müllers übt Einfluß auf die formale und struktuel1e Veränderung seiner Stücke aus. In der Schaffensperiode der Produktionsstücke behandelt Mül1er direkt die Stoffe aus der DDR - Realität. Seit Anfang der 70er Jahre richtet er seinen Blick auf die deutsche Geschichte, die er für “V orgeschichte" oder das historische Erbe im marxistischen Sinne hält. Er sieht die zeitgenössische Geschichte der DDR als immer noch in “ Vorgeschichte"verstrickt und von eben diesem Erbe belastet. Diese V orgeschichte ist ein “ gigantisches, bedrückend gegenw삶tiges Panoptikum", in dem sich alle brutalen Gewalttätigkeiten der Menschen entfalten. Die Realität der DDR, in der die Verwirklichung des wahren Sozialismus und eine umfassend gerechte Sozialordnung kaum zu erwarten sind, gehört zur Vorgeschichtslage. Die Werke dieser Periode behandeln πlemen wie die Konflikte der Individuen mit der kol1ektiven Gesel1schaft oder die Gewalt des Faschismus mittels der Antike, ihrer Mythologie,ihrer Tragödien. Seit Ende der 70er Jahre erweitert sich die Geschichtsauffassung Müllers zur Weltgeschichte, die die Dritte Welt einschließt.. In der Entwicklung der Dritten Welt sieht er die Hoffnung auf Anderungen oder Reformen, die in der DDR nötig sind. Dabei reflektiert er wie Hamlet in der <Hamletmaschine> über die Rol1e der Intel1ektuellen und Künstler aus der Enttäuschung, daß sich die erhofften Veränderungen in der DDR - Gesellschaft nicht so schnel1 entfalten wie ursprünglich erwartet. Er schildert in seinen Stücken dieser Zeit nur die dunkle Seite der Geschichte und die schockierende Gewalt so redikal und mitleidlos, daβer als Geschichtspessimist gekennzeichnet wird. Aber gerade hier liegt seine wirkungsästhetische Strategie, nicht nur die versteinerten zeitgenössischen Gedanken, sondem auch alle überlieferten dramaturgischen Konventionen durch die Dialektik der Negation zu zerbrechen. Das ist die Pädagogik durch Schrecken, die gleichzeitig das Grundprinzip der dramatischen Asthetik Heiner Mül1ers ist Heiner Müller ist bekannt für seine experimentellen Versuche. Er zei망verschiedene Model1e seines Form - Experimentes, weil er nicht den Inhalt, sondem die Fonn seiner... 하이너 뭘러 Heiner Müller(1929 - 1995)는 1955년부터 극작활동을 시작했던 전후 독일의 유명한 작가로서, 브레히트 이후에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그의 문학과는 많은 점에서 상이점을 보여주고, 또한 그의 문학을 비판의 대상으로해서 급진적 사회주의 문학을 형성시킨 작가이다. 이와같은 윌러의 작가적 특징은, 그의 문학을 “급진적 마르크스주의자”, “예술적 아방가르드",“정력적인 공산주의자”, “건설적 패배주의자”, “역사 비관주의자"2) 등의 시각에서 규정하고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작품을 창작함에 있어서 자신의 문학관을 정확히 나타내기 위한 “엄격한 극적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작품들은 동독의 시대적 발전과 그의 역사관의 변화와 함께 변해 갔으며, 이 과정에서 배척과 부정, 수용과 찬양의 수많은 곡절을 겪게 되었다. 그는 독일이 통 일될 때까지 동독에서 활동했으나, 80년대에 와서 그의 작품은 동 · 서독의 많은연극 비평가와 문학 사가들에 의해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따라서 그의 문학에 대한 많은 연구서와 논문들이 동독과 서독에서 나오게 되었다. 윌러에 대한중요한 연구서를 펴낸 게니아 슐츠 Genia Schulz는 그를 “독일어 언어권에서 가장 언어구사력이 강하고, 이론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가장 엄격한 수준높은 극작가 der sprachmächtigste und politisch wie theoretisch sσengste und anspruchvollste Dramatiker im deutschprachigen Raum"로 평가했으며, 우베 비트슈톡 Uwe Wittstock은 “동독뿐만 아니라 유럽 연극계의 가장 중요한 극작가들에zu den bedeutendsten Dramatikem nicht nur in der DDR, sondem des europaischen Theaters" 속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그는 브레히트 이후의 최대의 극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 KCI등재

          울슨과 제임스

          최경도(Choi, Kyong-do), 윤희억(Yoon, Hee-oyck)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07 외국문학연구 Vol.- No.26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글은 19세기의 미국작가 콘스탄스 페니모어 울슨과 헨리 제임스의 문학적 관계를 전기적 시각에서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자신의 문학적 재능과 동시대의 미국 여성문학에서 그녀가 차지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콘스탄스 페니모어 울슨은 미국문학에서 흔히 잊혀진 작가로 간주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먼저 울슨은 미국 여성문학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기억될 만한 것으로 남기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녀를 특출한 작가의 대열로 올려놓을 유능한 전기 작가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작가로서 울슨의 운명은 특히 그녀와 깊은 개인적, 문학적 관계를 맺은 헨리 제임스와 구별된다. 울슨과 달리 제임스는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의 명성은 소설에서 많은 실험을 구사했던 작가로서의 업적뿐만 아니라, 그의 개인적 매력이 작용했다. 유럽에 거주하는 국적이탈의 작가로서 울슨과 제임스는 친밀한 관계를 이루었고, 이것은 두 작가 서로 간에 문학적 기법을 교환할 수 있는 호혜적 성격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울슨의 죽음은 비평가들 사이에서 이들이 맺은 길고도 불가사의한 관계로부터 과연 어느 작가가 더 혜택을 입게 되었는가라는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서 울슨이 더 혜택을 입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전기연구에서 나온 결론은 울슨의 존재가 곧 제임스의 예술적 비전을 일깨운 경로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울슨과 제임스의 관계에 대한 전기연구는 미국문학에서 크게 간과되었던 울슨의 문학적 위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예컨대, 제임스로 하여금 ‘믿을 수 없는 화자'와 같은 새로운 문학기법을 사용하도록 한 인물이 울슨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임스의 시각에서 울슨을 보거나 울슨의 시각에서 제임스를 보는 것은 개별 작가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이들의 문학을 전체적으로 탐색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실험적 방법이 된다. 울슨과 제임스의 해석에 대한 유용한 접근법으로, 여기에서 시도한 전기연구는 궁극적으로 제임스와 비교하여 진정한 미국 여성작가로서 위상이 정립되어야 할 울슨을 다시 평가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다. This paper aims to explore the literary relationship between Constance Fenimore Woolson and Henry James in the biographical perspective. Despite her literary talent and the position she occupied in the contemporary American women writings, Constance Fenimore Woolson was often regarded as a forgotten writer in American literature, and the cause for this neglection can be explained in two aspects. First, she did not strive herself to make her works memorable in American women writings. Second, there have been no major biographers who could bring her up to the level of distinctive writers. Her fate as a writer was especially differentiated from another American author who had a deep personal and literary relationship with her: Henry James. Unlike Woolson, James became widely known both in America and Europe, and his fame is attributed to his achievement as a writer who exercised many experiments in the novel as well as to his personal magnetism. As expatriate writers living in Europe, Woolson and James formed an intimate relationship that turned out to be reciprocal since both writers learned something of a literary skill from each other. The death of Woolson, however, brought about a debate among critics, which led to the controversy about which writer benefitted more from their long and mysterious relationship. Despite an argument that Woolson was the one who learned more, a conclusion from the biographical study is that she became a vehicle through which James was awakened to the vision in his art. Viewed in this respect, the biographical study of the Woolson and James relationship brings a new insight into the literary position of Woolson who was much ignored in American literature. It was Woolson who made it possible for James to adopt a new literary skill such as ‘unreliable narrator.' To see Woolson in terms of James and to see James in terms of Woolson becomes an experimental method that can be applied not only to the study of each writer but also to the study of their work as a whole. As a useful approach to the interpretation of both Woolson and James, the biographical study intended here would further lay a foundation for the re-canonizing of Woolson in the sense that in comparison with James, her status as an authentic American woman writer needs to be rebui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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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화 신문학사론의 문학사 연구 방법론적 성격에 대한 연구

          박상준(Park Sang-joon)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07 외국문학연구 Vol.- No.28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과학적ㆍ유물론적 문학사를 지향한 임화 신문학사론의 특징을 기술 대상인 근대문학 특히 신소설에 비추어 파악하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본고는 신문학사 논의에서 추론되는 실제의 방법론적인 구도와 임화가 명시적으로 제시한 연구방법론의 비교를 포함한다. 요컨대 <신문학사> 기술과 연구방법론, 근대문학의 세 항을 맞세워 신문학사론 전체의 특징을 구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소설 논의 이전의 신문학사론이 보이는 일반적인 특징은, 보편적인 이론을 구성하려는 욕망과 문학사의 실제를 존중하려는 실증정신 사이의 괴리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괴리는 계속 유지되어 작품론 부분에서는 과도한 일반화ㆍ추상화에 의해 작품의 실제가 무시되는 정도까지 강화된다. 임화가 신문학사의 연구방법론으로 제시한 구도는 ‘행위자 중심의 토대-상부구조론'인데, 신소설을 논하는 부분에서는 이 방법론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 특히 방법론의 핵심을 이루는 <전통>과 <환경>의 교섭 과정은 거의 적용되지 못했다. 방법론과 실제 논의의 이러한 괴리는 이론 구성의 욕망과 실증정신 사이의 괴리에 상응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괴리가, ‘토대 분석을 앞에 배치하는 신문학사론 전체의 체재'와 ‘토대를 구명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는 작품 논의' 사이에서도 확인된다. 신문학사론 전체는 물질적 배경[토대]과 정신적 준비[행위자, 주체], 신문화의 이식과 발전[환경]의 세 항을 전제한 뒤에 작가와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로 나아가는 반면, 뒤의 논의에서 토대는 작가와 작품의 특성으로부터 추정되어야 할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렇게 세 측면에서 확인되는 괴리 양상은 동일한 원인에서 유래한다. 역사관을 뚜렷이 하고 그 위에서 작가와 작품의 이데올로기적인 특성을 규정하지 않으면서 유물론적인 문학사를 구축하려 한 까닭에, 정론성ㆍ계몽성에 해당하는 내용 요소들을 기회 되는 대로 강조하는 속류적인 방식에 매달리게 된 것이 근본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실제에 있어 내용과 형식을 분리하여 사고하는 것으로 현상하게 되며, 작품의 실제와는 어긋난 평가를 낳고 만다. 신문학사론이 새로운 내용을 낡은 형식에 담아낸 과도기적인 문학으로 신소설을 규정하는 것 또한 동일한 원인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임화의 신문학사론은 이렇게 과학적 문학사를 산출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이러한 실패의 궁극적인 요인은 작품의 분석ㆍ평가 기준을 적절히 마련하지 못한 것이며, 그 결과로 소설의 내용과 형식을 사실상 분리하여 정론성을 강조하는 데로 치닫게 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This study aims to investigate the peculiarities of Lim-Hwa's History of New-Literature especially in comparison with the real aspect of New-Novel[新小說]. It is also need to compare the methodology presented by him with the real method deduced from the text. Lim-Hwa's history of New-Literature has a discordance between the positivistic attitude and the will to establish a leftist methodology of literature history. In the analyses of the works of New-Literature this discordance reveals itself the alleged generalization, which distorts the real aspect of New-Novel. Furthermore, the interaction between tradition and environments in Lim-Hwa's methodology is not applied significantly to the analyses of works. There is a similar discordance between the system of History of New-Literature which makes the 'base' the object of preparatory preceding studies and following analyses of works that have the same ‘base' as their object. These discordances result from the same cause. It is the blindness of politicization that compulsively probes and stresses the (hidden) political significance without ideological definitions of writers and their works. This blindness makes Lim-Hwa's analyses of works close to the dualism of form and content. After all his History of New-Literature loses coherence and fails to be the scientific, materialistic history of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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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트위터 문학'은 가능한가?

          임대근(Great Root Woods)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14 외국문학연구 Vol.- No.53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문학의 탄생 이래, 그 존재 방식은 언제나 특정 유형의 미디어 media, 媒體와의 공모/공존을 전제로 해 왔다. 동시대 과학기술의 급진적 변화는 출판 미디어 자체의 획기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문학의 유통방식, 즉 ‘출판'의 의미를 새롭게 사고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뉴 미디어'들의 잇따른 등장을 초래했다. 2006년 미국에서 공식 서비스를 시작한 트위터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뉴미디어로 정착하고 있다. 이른바 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 SNS로서 트위터는 과연 새로운 문학 환경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이 연구의 물음이다. 우리는 향후 트위터라는 새로운 미디어 혹은 네트워크 속에서 최소한 두 가지 문학적 변화의 가능성을 예견하게 된다. 첫째, 새로운 양식 출현의 가능성. 트위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미디어의 존재를 규정하는데, 즉 ‘140글자'라는 발신 정보량의 제한이다. 그 가능성의 사례로 류시화와 이외수라는 두 기성 작가의 트위터 운용을 제시할 수 있다. 둘째, 트위터는 새로운 문학 유통 방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작품 혹은 텍스트라고 불러왔으나 이제는 ‘멘션' mention 혹은 ‘트윗' tweet이라는 다른 이름을 얻게 된 작가의 글들은 생산과 동시에 독자들에게 도착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작가의 트윗을 다시 ‘리트윗' retweet하면서 자신들의 ‘독서' 행위를 클릭 한 번의 ‘비평' 행위로 진화시킨다. 문제는 ‘비평' 행위로 진화한 독자들의 즉각적 ‘독서' 행위가 무차별적인 ‘독자 연대'의 방식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들은 분명 머지않아 기존의 문학적 조건들을 비웃으면서, 새로운 작가와 문학, 독자를 만들어낼 것임이 분명하다. Since the birth of literature, the way of its existence has always been under the premise of collusion or coexistence with a specific type of media. The dramatic development of contemporary science and technology has brought the arrivals of ‘new media' one after another that not only changes publication media itself tremendously but also casts new light on the approach to the meaning of ‘publication', classical circulation of literature. Tweeter, which began its service officially in the US in 2006 has taken root as a new media that secures the most users in the shortest period. As a so-called social networking service, is tweeter going to create a new literature environment? This is the question of this study. We can expect at least two possibilities of literary changes, which will be caused by a new media or network called tweeter. First, the possibility of emergence of a new style. Tweeter defines the being of media in a different manner with other systems so far, which limites the amount of sending information up to 140 characters. We can refer to the tweeter operations of two well-established writers, Ryu Si Hwa and Lee Oe Soo, as cases in point. Second, tweeter shows a possibility of a new literature distribution system. The writings of these two writers, which have been called works or texts traditionally, now arrive at readers at the same time with their production in the name of ‘tweets' or ‘mentions'. Readers, on the other hand, re-post the writers' tweets on their tweeters and only with a click, they can evolve their ‘reading' activities into ‘criticism'. The thing is that the immediate ‘reading' activities of readers, which evolve into ‘criticism', may be led to indiscriminate ‘readers' solidarity'. It is clear that sooner rather than later, these new changes will create new writers, new literature and new readership, while laughing at the existing literary conditions. 문학의 탄생 이래, 그 존재 방식은 언제나 특정 유형의 미디어 media, 媒體와의 공모/공존을 전제로 해 왔다. 동시대 과학기술의 급진적 변화는 출판 미디어 자체의 획기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문학의 유통방식, 즉 ‘출판'의 의미를 새롭게 사고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뉴 미디어'들의 잇따른 등장을 초래했다. 2006년 미국에서 공식 서비스를 시작한 트위터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뉴미디어로 정착하고 있다. 이른바 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 SNS로서 트위터는 과연 새로운 문학 환경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이 연구의 물음이다. 우리는 향후 트위터라는 새로운 미디어 혹은 네트워크 속에서 최소한 두 가지 문학적 변화의 가능성을 예견하게 된다. 첫째, 새로운 양식 출현의 가능성. 트위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미디어의 존재를 규정하는데, 즉 ‘140글자'라는 발신 정보량의 제한이다. 그 가능성의 사례로 류시화와 이외수라는 두 기성 작가의 트위터 운용을 제시할 수 있다. 둘째, 트위터는 새로운 문학 유통 방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작품 혹은 텍스트라고 불러왔으나 이제는 ‘멘션' mention 혹은 ‘트윗' tweet이라는 다른 이름을 얻게 된 작가의 글들은 생산과 동시에 독자들에게 도착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작가의 트윗을 다시 ‘리트윗' retweet하면서 자신들의 ‘독서' 행위를 클릭 한 번의 ‘비평' 행위로 진화시킨다. 문제는 ‘비평' 행위로 진화한 독자들의 즉각적 ‘독서' 행위가 무차별적인 ‘독자 연대'의 방식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들은 분명 머지않아 기존의 문학적 조건들을 비웃으면서, 새로운 작가와 문학, 독자를 만들어낼 것임이 분명하다. Since the birth of literature, the way of its existence has always been under the premise of collusion or coexistence with a specific type of media. The dramatic development of contemporary science and technology has brought the arrivals of ‘new media' one after another that not only changes publication media itself tremendously but also casts new light on the approach to the meaning of ‘publication', classical circulation of literature. Tweeter, which began its service officially in the US in 2006 has taken root as a new media that secures the most users in the shortest period. As a so-called social networking service, is tweeter going to create a new literature environment? This is the question of this study. We can expect at least two possibilities of literary changes, which will be caused by a new media or network called tweeter. First, the possibility of emergence of a new style. Tweeter defines the being of media in a different manner with other systems so far, which limites the amount of sending information up to 140 characters. We can refer to the tweeter operations of two well-established writers, Ryu Si Hwa and Lee Oe Soo, as cases in point. Second, tweeter shows a possibility of a new literature distribution system. The writings of these two writers, which have been called works or texts traditionally, now arrive at readers at the same time with their production in the name of ‘tweets' or ‘mentions'. Readers, on the other hand, re-post the writers' tweets on their tweeters and only with a click, they can evolve their ‘reading' activities into ‘criticism'. The thing is that the immediate ‘reading' activities of readers, which evolve into ‘criticism', may be led to indiscriminate ‘readers' solidarity'. It is clear that sooner rather than later, these new changes will create new writers, new literature and new readership, while laughing at the existing literary cond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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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투완느 걀랑의 『천일야화』와 그 모방작에 관한 연구

          최은희(Choe, Eunhee)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15 외국문학연구 Vol.- No.59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연구는 걀랑의 『천일야화』와 그 모방작들이 시대적 요구와 함께 개인적 자아의 획득을 돕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하였다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문학이 사회변동의 한 부분을 드러내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이는 당시 문학적 풍토가 주력해온 합리적 이성으로는 치유시킬 수 없을 상실감이 그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며, 기존 문학이 제시하지 못한 출구를 타 문명에서 유입된 새로운 방식-동방이야기-이 제공함으로써 비로소 18세기 인들의 상실감이 치유될 돌파구가 마련되었다는 설명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 언급한 모방작들은 『천일야화』의 모방과 더불어 작가들 고유의 모습을 동시에 보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모두 상실과 치유의 과정을 밟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주제를 다룬다. 억압적인 앙시엥 레짐하에서 일방적으로 부과되던 전언이 아니라, 주체들이 상호 소통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는 동방이야기의 방식은 소통을 가로막던 장벽이 허물어지기를 기대한 당시의 일반 독자들을 환호하게 하였을 것이다. 걀랑의 『천일야화』를 비롯한 동방이야기들은 수차례에 걸쳐 재 출판되었고 그것은 전적으로 일반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 독자들의 반응은 사회적 변화를 동시에 드러낸다. 앙시엥 레짐의 그림자 안에 소외되어 있던 민중들은 결핍된 꿈을 독서를 통하여 만족시키며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권위라는 불편한 장막을 거두고자하는 욕망을 새로운 이야기에의 심취를 통해 드러내었다. 소통에 대한 이러한 각성이 이후 18세기 지식인과 대중을 고무시키고 결국은 프랑스 혁명으로까지 이어지는 디딤돌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This study aims to show that the parodic works of the One Thousand and One Nights had functioned as a device which allowed the readers of 18<SUP>th</SUP> century to acquire their self-consciousness, and then to show that the literature had been involved in a part of social change of the century. It means that there existed sense of loss of the readers in 18<SUP>th</SUP> century, which was not able to be cured by rational reason on which the literary climate concentrated. It also implies that a new way of telling stories, coming from other civilizations, finally provided the breakthrough to heal the sense of loss, and helped the readers, who had only the social ego, have self-emancipation, while the previous literary climate could not. Such an upheaval in literature is closely linked to social changes, and this creates a junction between literature and society. The references of this research imitated the One Thousand and One Nights, but at the same time, they also revealed the inherent creativity of each author"s. However, one can see that these works have mainly treated the same subject in the process of loss and healing. Instead of the messages that were imposed unilaterally upon readers during the ancient regime, the Oriental tales whose protagonists communicate to each other to complete the story, knew how to satisfy the readers. This awakening in terms of communication inspired the intellectuals and the general public of the 18th century, and would have acted, after decades, as a stepping stone leading to the French Revolution... 본 연구는 걀랑의 『천일야화』와 그 모방작들이 시대적 요구와 함께 개인적 자아의 획득을 돕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하였다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문학이 사회변동의 한 부분을 드러내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이는 당시 문학적 풍토가 주력해온 합리적 이성으로는 치유시킬 수 없을 상실감이 그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며, 기존 문학이 제시하지 못한 출구를 타 문명에서 유입된 새로운 방식-동방이야기-이 제공함으로써 비로소 18세기 인들의 상실감이 치유될 돌파구가 마련되었다는 설명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본 연구에서 언급한 모방작들은 『천일야화』의 모방과 더불어 작가들 고유의 모습을 동시에 보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모두 상실과 치유의 과정을 밟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주제를 다룬다. 억압적인 앙시엥 레짐하에서 일방적으로 부과되던 전언이 아니라, 주체들이 상호 소통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는 동방이야기의 방식은 소통을 가로막던 장벽이 허물어지기를 기대한 당시의 일반 독자들을 환호하게 하였을 것이다. 걀랑의 『천일야화』를 비롯한 동방이야기들은 수차례에 걸쳐 재 출판되었고 그것은 전적으로 일반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 독자들의 반응은 사회적 변화를 동시에 드러낸다. 앙시엥 레짐의 그림자 안에 소외되어 있던 민중들은 결핍된 꿈을 독서를 통하여 만족시키며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권위라는 불편한 장막을 거두고자하는 욕망을 새로운 이야기에의 심취를 통해 드러내었다. 소통에 대한 이러한 각성이 이후 18세기 지식인과 대중을 고무시키고 결국은 프랑스 혁명으로까지 이어지는 디딤돌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This study aims to show that the parodic works of the One Thousand and One Nights had functioned as a device which allowed the readers of 18<SUP>th</SUP> century to acquire their self-consciousness, and then to show that the literature had been involved in a part of social change of the century. It means that there existed sense of loss of the readers in 18<SUP>th</SUP> century, which was not able to be cured by rational reason on which the literary climate concentrated. It also implies that a new way of telling stories, coming from other civilizations, finally provided the breakthrough to heal the sense of loss, and helped the readers, who had only the social ego, have self-emancipation, while the previous literary climate could not. Such an upheaval in literature is closely linked to social changes, and this creates a junction between literature and society. The references of this research imitated the One Thousand and One Nights, but at the same time, they also revealed the inherent creativity of each author"s. However, one can see that these works have mainly treated the same subject in the process of loss and healing. Instead of the messages that were imposed unilaterally upon readers during the ancient regime, the Oriental tales whose protagonists communicate to each other to complete the story, knew how to satisfy the readers. This awakening in terms of communication inspired the intellectuals and the general public of the 18th century, and would have acted, after decades, as a stepping stone leading to the French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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