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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가 지니는 의미

          박유희(PARK Yuhee) 한국영화학회 2018 영화연구 Vol.0 No.77

          본고는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가 지니는 의미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 한국영화의 역사, 나아가 한국영화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탐색이기도 하다. 1980년대는 해방과 한국전쟁, 4.19 혁명과 5.16 쿠데타에 이어 한국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이는 한국영화사의 변곡 내지 변환에도 직결되는 격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는 현재 한국영화의 패러다임으로 이행하는 시발점으로서 주목할 만한 의의를 지닌다. 이에 이 글에서는 기존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의 역사를 서술하는 방법과 내용에 대해 살펴보는 것을 시작으로, 1980년대 영화 사료에 대한 분석과 재구성을 통해 1980년대가 지니는 ‘전환’의 함의를 천착하고자 했다. 1980년대 한국영화는 다각적인 변화의 국면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한마디로 술어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조적으로 서술하기 어려운 난맥을 보여준다. 또한 1980년대 안에서의 변화 또한 다기하기에 ‘한국영화사를 1980년대라는 단위로 보는 것이 유효한가?’라는 의문을 유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1980 년대 한국영화사’를 총체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이 왜 어려운지를 생각해보는 가운데 1980년대 한국영화가 처했던 맥락과 그것을 바라보는 기존 영화사 서술의 시각들을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가 지니는 의미를 점검하면서 1980년대 한국영화의 역사, 나아가 한국영화사를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부분들을 밝혔다. 이는 기본적으로 ‘1980년대 한국영화의 역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궤를 함께 하며 궁극적으로 그 해법에 대한 고민을 심화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기존 한국영화사에서 1980년대를 ‘전환’ 내지 ‘이행’의 시기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는 1980년대에 이르러 괄목할 만하게 변수가 많아지고 맥락이 다원화되는 것과 직결된다. 첫째,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 미디어의 확산과 다원화 또한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 대중문화와 함께 성장한 전후(戰後) 베이비부머 세대가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의 주도층이 되어갔다. 둘째, 박정희 정권이 영화법을 제정한 이래 영화정책에 속박되어왔던 영화 장르가 통제로부터 벗어나며 시장경쟁 속에서 재편성되었다. 셋째,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따른 자유화에 동승하게 되면서 이분법으로는 제어할 수도 해명할 수도 없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환의 맥락에 놓여있는 1980년대 한국영화사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시대 구분 면에서 볼 때 1980년대는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전반기는 1970년대와 후반기는 1990년대와 묶어 논의하는 것이 보다 적실하다. 둘째, 총체적인 역사 서술을 논하기에 앞서 다양한 갈래 별 주제 별 통사가 활발하게 연구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다른 매체와의 관계사를 통해 영화를 둘러싼 다기한 맥락과 변수들이 다각도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한국영화의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영화사를 서술한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이영일의 한국영화전사와 같은 통사는 서술되기도 어렵거니와 새로운 역사 서술이 되기도 힘들다. 한국영화전사가 이영일 일인의 성과이기에 앞서 이영일에 의해 집필된 당시 한국영화사 사료와 역량의 총화였듯이, 한국영화사는 다양한 연구 성과의 축적을 통해 구성되어 가는 것이다. 1980년대 영화사 또한 1980년대 영화에 대한 복수(複數)의 서술을 통해 한국영화사를 구성하는 복수(複數)의 일환으로 축적되며 새롭게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This paper examines the significance of the 1980’s in Korean Film History. It is also an exploratory study to reconstruct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through the 1980s. In the 1980s, South Korean film faced a situation of multifaceted changes, which makes it difficult to sum up in a predicate and describe it sequentially. In addition, its changes within the time frame of the 1980s were various, which raises a question, "Is it valid to look at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as a unit of the 1980s?" Thinking of the difficulties of describing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in the 1980s" in an overall manner, this study set out to examine the context in which South Korean movies were in the 1980s and their viewpoints in the existing descriptions about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This study aimed to test the meanings of the 1980s in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and identify what would be needed to reorganize the history of the 1980s and further throughout the time. This is an attempt to trace the same orbit of "how to describe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in the 1980s," ultimately reinforcing contemplations over its answers. There are no differing opinions about viewing the 1980s as a period of "transition" or "shift" in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and it is directly related to the considerable increase of variables and diversification of context during the period. First, the acceleration of economic growth enabled the fast expansion and pluralization of media, in the middle of which the post-war baby boom generation, who grew with the popular culture of South Korea, became the leading force in culture as well as in politics. Secondly, the film genre, which had been bound to movie policies since the Film Act during the Park Chung-hee regime, was emancipated from control and reorganized for market competition. Thirdly, there were fundamental changes that could not be controlled or explained with dichotomy in the South Korean film as it rode along with liberalization according to the globalization of capitalism. Then how can one reorganize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in the 1980s under this context of transition? First, it would be proper to divide the period into the former and latter half and discuss them with the 1970s and the 1990s, respectively. Secondly, there should be active research on syntax according to various parts and topics before discussing the overall descriptions of the history. Thirdly, there is a need to discuss various types of context and variables surrounding movies in many different angles through the history of its relationship with other media. Describing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in the 1980s is to describe the entir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At this point, such syntax as Lee Yeong-il’s Whol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is difficult to be described and has become a new description of history. It was a combination of historical materials and capabilities in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during those days compiled by him before an individual’s personal achievement. It demonstrates that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is organized by the accumulation of various research achievements. The film history of the 1980s can also be organized anew, being accumulated as part of multiple descriptions comprising the history of South Korean film through multiple descriptions about the movies during th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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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영화사에서 서양의 문예(文藝)는 무엇이었는가?

          박유희(Park Yuhee) 한국영화학회 2020 영화연구 Vol.- No.86

          본고에서는 서양문학을 원저(原著)로 하여 제작된 한국영화들을 대상으로 한국영화사에서 ‘서양의 문예’가 어떻게 활용되고 작용하였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한국 문예영화사에서 서양의 문예가 수행했던 역할과 그 의미를 밝힌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치중했던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문예영화란 무엇이었는가?’라는 물음을 다시 던져봄으로써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풍미했던 문예영화의 함의를 새로이 들여다보는 것이다. 본고에서 서양문학에 주목한 이유는 외국문학 중에서 서양문학을 원작으로 내세웠을 때 영화가 ‘문예’의 자격을 쉽게 부여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문학이야말로 선진문화의 본령이자 한국영화가 성취해야 할 예술성의 정전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러므로 서양문학을 원저로 하는 영화들이 문예를 표방하고 원작을 홍보하는 방식에서 한국영화가 선망했던 예술과 이를 투영했던 문예영화의 함의가 드러날 수 있다. 영화로 제작된 서양문학은 대부분 식민지시기부터 번안·번역되어 잘 알려진 익숙한 이야기들이었다. 원작은 서유럽문학 위주였고 그 중에서도 프랑스 문학의 비중이 가장 컸다. 이 원작들이 영화화되었을 때 대부분은 멜로드라마였다. 그런데 추리나 모험의 요소가 강한 소설을 영화화했을 경우에는 장르물로 수용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에 비해 ‘신파조’로 폄하되었던 관습에서 벗어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멜로드라마는 문예영화로 인정되곤 했다. 이는 멜로드라마 장르와 문예영화의 친연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멜로드라마로 만들기 용이한 원작들이 선호되었음을 말해준다. 한국영화사에서 서양의 문예는 우리가 성취해야 할 문화예술의 전범이자 작품성을 보장하는 원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경제적 가치로 환산될 때 의미있는 것이었다. 1960년대 전반까지는 영화계에서도 예술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원작의 영화화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문예영화가 우수영화 보상의 대상이 되는 1960년대 후반부터는 경제적 보상이 가능할 때 예술성이 성립할 수 있다는 인식이 오히려 분명해진다. 이에 따라 <춘희>와 같이 대중성이 검증되고 저작권에서도 자유로운 원작들이 멜로드라마로 제작되는 경향이 강화된다. 1970년대에는 영화산업의 불황으로 정부 지원에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산영화는 외화 쿼터를 따기 위한 명분으로 도구화된다. 그러면서 오히려 문예영화에서는 검열이 허용하는 제한된 범주 안에서 작가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1960년에 흥행에 실패했던 『전원교향곡』이나 일본소설 『설국』이 영화화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아이러니의 소산이었다. 이와 같이 문예영화의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며 이를 통해 드러나는 문예영화의 정체성은 다층적 역설로 이루어져 있다. 요컨대 한국영화사에서 문예영화는 상업/장르 영화와 반대 축에 놓을 수 없는 함의로 이루어져 있다. 오히려 흥행과 장르 관습의 기반 위에서 예술로 보일 수 있는 길을 모색했던 영화가 주류였다. 이 과정에서 서양문예는 이권과 명분에서 효율적인 저본이자 의장일 수 있었다. 그래서 서양문예를 통해 문예영화의 전개와 함의를 들여다보면 그 아이러니한 정체성이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ways Western literature was utilized and worked in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by examining Korean films whose the original work was Western literature, thus shedding light on the roles and meanings of Western literature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ry film. The study attempts to look into the implications of Korean literary films from a new angle by raising the question, What were literary films?, at a different level from the old inclination toward Korean literary films whose original work was Korean literature. The study focused on Western literature because it was easier for Korean films to get qualified as literary films when their original work was Western literature of world literature. This derived from the perception that Western literature was the true province of advanced culture and the Canon of artistry that Korean films should work to achieve. Implications of art sought after by Korean films and of literary films that projected it can be found in the ways that Korean films whose the original work was Western literature claimed to support literature and promoted their original work. Works of Western literature produced as films in Korea were mostly familiar stories well-known to the people as they had been adapted and translated since the colonial days. Their original work was mainly from western European literature, and a majority of it was from French literature. When this literature was made into films, most of it became melodramas, which has something to do with the fact that in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melodrama was the mainstream genre until the 1980s. When novels with strong elements of inference or adventure were made into films, there was a strong tendency that they were accepted as genre movies. Unlike these movies, sophisticated high-class melodramas that escaped the old custom of being disparaged as tear-jerking’Sinpa’ would be recognized as literary films, which reveals an affinity between the melodrama genre and literary films and, at the same time, indicates that original work that could easily be made into melodrama was preferred. In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Western literature provided examples of culture and art that people should achieve and original work that guaranteed artistic values of films. They were, however, meaningful only when they were thoroughly converted into economic value. Since the film community had an attitude of prioritizing art until the former half of the 1960s, they made attempts at turning new original work into art films. Entering the latter half of the 1960s, when literary films became the objects of Outstanding Film Reward Policy, however, t hey had a clear i dea that there w ould b e no a rt w ithout e conomic compensation. They made melodrama based on the original work that had their popular appeal tested and was free from copyright disputes such as La Dame aux camélias. In the 1970s, the trend became stronger and the film industry became dependent on government grants due to the recession, which made Korean films fall as a means of obtaining a quota for overseas films. It was during this period that literary films were in pursuit of auteurism within the limited scope allowed by the censorship. This period witnessed La Symphonie Pastorale that failed at the box office in the 1960s and Snow Country, the origianl Japanese novel, which were made into films, and it was an outcome of this irony. The history of literary films was the continuance of ironies, which revealed that the identity of literary films was comprised of multi-layered paradoxes. In short, In the history of Korean cinema, Literary films were not a concept contrary to ‘commercial/genre’ films. Korean literary films were films that sought after entertainment that could be packed as art rather than films oriented toward pure artistry instead of entertainment. In this process, Western literature could be efficient package material in terms of 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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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영화의 내러티브 공간이 갖는 지정학적 의미에 관한 연구

          한미라(Han, Mi-ra) 한국영화학회 2015 영화연구 Vol.0 No.63

          봉준호 영화는 공간을 통해 서사를 진행시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간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배치하면서 공간을 장소화시키는 것이 봉준호 영화의 내러티브 전략이다. 모든 영화들이 자신의 프레임에 의해 포착된 공간 이미지를 통해 당대의 현실을 드러내고 사회문화적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말걸기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공간은 장소화 된다. 봉준호 영화가 의미 있는 지점은, 특히 현실 세계의 특정 공간을 포착함으로써 그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문화적 상황의 지형도를 그려내고 이것은 한국 사회의 근현대라는 시간성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다양한 질감의 흔적과 주름들이 엉켜 시간과 장소들을 의미화시키는” 로컬적인 특성을 보인다. 영화가 끊임없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들을 물질화하고 구체화하면서 작동한다고 볼 때, 봉준호 영화가 갖고있는 개별적인 공간적 팩트들이 어떤 내재적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내며 한국 사회의 근현대라는 시간성으로 확장되고 있는지, 그 역동적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봉준호 영화의 로컬리티는 상상의 정체성이 아니라, 현실의 장소에 바탕을 둔 실재하는 정체성 그리고 중심에 의해 억압당하는 주변성, 소수성 등의 가치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그의 영화는 좁게는 한국의 1980년대-2000년대 또는 넓게는 1945년 해방이후 현재까지 서울 주변부 공간(〈플란더스의 개〉에서의 거여역, 서울 주변부 화성이라는 소도시(〈살인의 추억〉), 근대화의 상징이자 주한미군에 의해 독극물이 방류됐던 한강(〈괴물〉), 골프장이 들어서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착취되고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지역의 소도시(〈마더〉) 등의 공간이 그 시대의 사회적 사건들과 어우러진 특수한 장소성으로서의 로컬리티를 형성하고 있다. 봉준호 영화의 내러티브가 재미있는 지점은 ‘원인과 결과의 논리적 관계’가 항상 엇나간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의 엔딩은 항상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비켜가는데 이러한 엉뚱한 결말과 코미디적 요소는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에 균열과 틈을 만들며, 본고가 주장하는 봉준호 영화의 로컬리티로 작용한다. 그의 영화에서는 한국의 근현대사라는 특정한 시간들에 의해 서사가 앞으로 곧추 나아가지 못하고(않고) 옆으로 비켜서게 된다. 말하자면 한국의 로컬리티라는 특정성의 시간적 경험들이 서사의 인과관계를 방해하며 탈구하게 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In Bong Joon-ho’s films, space has a very important part because it makes narration progress. It’s his narrative strategy to make the space into a place as events are being set there as time goes on. All his films reveal contemporary realities and tries to talk about socio-cultural problems directly and indirectly with spatial images he chooses into the viewfinder. His films are significant in that they capture particular places in the real world and picture the topography of socio-cultural situations around them, calling up the temporality of modern and contemporary times in Korean society. His films are local, which “give times and places meanings in tangled marks and wrinkles of various textures.” If cinema functions by physicalizing and concretizing something ideal and abstract, it’s interesting to study the dynamic relationship of what internal value and meanings separate spatial facts in his films make and how they extend to the temporality of modern and contemporary times in Korea. The locality of his films is special for carrying real identities existing at actual places, not imaginary identities, and the value of marginalities and minorities suppressed by the “center.” The locality of specific placeness is formed in combination of the modern times in Korea of, narrowly, 1980’s-2000’s, or, widely, from the Liberation(1945) to the present (for which the U.S. Forces have been stationed in Korea) and the sites like the periphery of Seoul (Geoyeo Station in Barking Dogs Never Die), Hwaseong, a small outer city (in Memories of Murder), the Han river which is the symbol of the Korean modernization and a disgraceful place toxic chemicals are discharged by the U.S. Forces (in The Host), and a nameless small city which is being exploited under the label of development typified by a golf course construction (in Mother) with social happenings in those times. It’s an interesting point in the narrations of his films that “the logical relationship between cause and effect” is always beyond usual expectations. The ending parts of his films tend to be odd and blank, which break a narrative and make many chasms with comical elements. Their narrations can’t go straight and deviate from the usual way with the specific times of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 That is, the specific temporal experiences of Korean locality interrupt and dislocate the continuity of nar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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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대 한국영화에서 작가주의의 상업적 수용 양상

          성진수(Sung, Jinsoo) 한국영화학회 2015 영화연구 Vol.0 No.63

          미국에서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작가주의는 마케팅 전략의 일부로서 역할을 갖게 되었다. 미국 스튜디오 시스템이 스스로를 다른 미디어와 차별화시킬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었던 시기에, 작가는 한 영화를 구별짓는 브랜드로서 수용되었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와 감독들이 영향력 있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호평을 받게 되면서, 한국 영화산업은 대중적 인지도와 작가로서의 명성을 갖고 있는 스타 감독, 즉 작가-스타의 상업적 유용성을 깨닫게 된다. 그 결과 최근 한국에서도 작가주의 마케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주목하여, 본 논문은 서로 다른 두 사례를 통해 상업적 전략으로서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는 한국의 작가와 작가주의를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명세 감독과 그가 진행했던 〈미스터K〉프로젝트 사례는 한국 영화 산업이 한 편의 영화를 구별 짓는 수단으로서 작가의 명성을 욕망하면서, 동시에 작가가 고유의 영화적 표현을 억압하고 상업적 목표에 협조적이길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즉 시장 속에서 작가-스타는 ‘협조적인 천재’라는 정체성을 요구받는 것이다. 한편, 봉준호 감독과 〈설국열차〉의 경우는 어떻게 작가가 산업에 의해, 상업적 목적으로 구성되는지는 설명해주는 사례이다. 또한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작가가 ‘자기 해석적인 주체’로 활동하면서 영화가 수용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에이전시의 역할을 수행함을 알게 된다. 두 사례가 공통적으로 알려주는 것은, 한국 영화에서 지난 10년 간 작가라 불리는 감독들은 작가-스타로서 시장에 의해 기존의 작가와는 다른 정체성을 요구받아 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동시대 영화 연구의 실천으로서 작가와 작가주의 개념은 역사적인 조건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In the United States, auteurism from 1970s to 1980s became a part of marketing strategy. Auteurs were adapted as kind of brand-name which distinguished one movie from others when the American studio system needed to find new ways to distinguished itself from other media. In the early 2000s, during the period when Koran directors and films won prizes in international film festivals and gained world-wide fame, industry realized industrial utility of auteur-stars. As a result, auteurist marketing appears in Korea. This paper explorers auteur and auteurism which are required new roles as a part of commercial strategy through two different types of cases in Korea, today. Director Myung-se Lee and his former project 〈Mr. K〉 explains that Korean film industry desires auteur’s fame to distinguish one movie from others, at the same time industry requires auteurs to do favor commercial purpose controling his/her auteurist expression. Director Joon-ho Bong and his film 〈Snowpiercer〉’s cace shows us how the auteur is constructed by and for commerce. What we acknowledge through both cases is that directors as auteur-star were demanded new identity by market during the last ten years in Korea. Therefore the idea of auteur and auteurism, as a practice and contemporary film studies, needs to be revised in keeping pace with contextual and historical condi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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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한국영화와 수치심

          오영숙(Young Suk Oh) 한국영화학회 2016 영화연구 Vol.0 No.69

          이 글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수치심이라는 키워드로 1960년대 한국영화에 드러나는 감정과 마음의 풍경을 읽어내는 일이다. 스크린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수사의 양상과 그 형성 조건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명료한 말이나 담론으로는 표현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당대의 대중 감정과 사회적 정서를 기술하고자 한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1960년대의 사회적 감정이자 정신이 된다. 수치심은 1960년대 한국영화 전반에 걸쳐 편재적으로 등장한다. 가족드라마나 통속 신파물과 같은 멜로드라마를 비롯하여 청춘영화와 스릴러, 식민지 경험을 다룬 영화,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을 담은 모더니즘 계열의 영화, 나아가 계몽적 성격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수치심은 다양한 양상과 수위로 검출된다. 1960년대 초반에 수치심이 주로 멜로드라마적 페이소스를 유발하는 장치로 사용되었다면, 1960년대 중후반으로 갈수록 수치의 양상은 부끄러운 자아의 성찰적인 응시라는 문제로 심화되기도 한다. 또한 수치심에 사로잡힌 주체의 회복되기 힘든 심리적 외상이 강조되거나, 죽음 내지 자살과 같은 자기 파멸적인 행로가 전개되는 특징을 보인다. “아버지는 형무소 살이 하다 죽었고 어머니는 갈보였다.” 1960년대의 대표적인 흥행작이었던 청춘영화 〈맨발의 청춘〉(김기덕, 1964)의 이 대사는 이 시기 멜로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수치심의 기원을 함축적으로 제시한다. 1960년대 영화들에서 유난히 부각되는 이 같은 수치심은, 민족적 역사에서 기인하는 집단적인 수치심과 겹쳐지는 면이 있다. 1960년대는 분단 현실이 실감되면서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의 의미에 대한 아픈 인식이 공유되던 때이다. 굴욕적인 한일협정은 신생독립국의 종속적 위치에 대한 실감을 전국민적으로 확대시켰다. 수치의 폭로와 전시는 참담한 현실을 개선할 가능성을 꿈꾸던 상상의 산물이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성찰의 행위가 될 가능성을 갖는다. 1960년대의 혹독한 검열과 규제 때문에, 한국영화의 대부분이 수치의 근원에 대한 사회적 이해보다는 수치심으로 인한 개인의 내적 고통을 보여주는 것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또한 수치의 진짜 원인과의 만남을 가로막고 근본적인 사고를 어렵게 만드는 물신적 내러티브가 구사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영화에서 수치심의 궤적은 탈종속적인 국가의 길을 발견하고자했던 집단적 자의식으로 이해될 여지를 갖는다. 그것은 식민지 시기부터 유예되던 주인의식의 실현 가능성을 상상함으로써, 공론장에서는 발언이 제한되던 사회적 외상을 치유하려던 하나의 시도일 수 있다. The primary concern of this paper is to read out the landscape of a emotion and mind revealed in Korean films in the 1960s using the keyword ‘shame’. This writing is intending to describe complex collective emotions and social sentiments of the time, which were difficult to express through clear words, or discourses, by asking about the aspects of rhetoric frequently appearing on the screen, and the formation condition thereof. What it is aiming for ultimately becomes social emotions, and also spirit in the 1960s. The emotion of shame appears ubiquitously across Korean films in the 1960s. Ranging from youth films, thrillers, films addressing colonial experience, films belonging to the series of modernism including memories of the Korean War, further up to the films of enlightening character including melodramas like family dramas, or common tear-jerking dramas, shame is detected in diverse aspects. If we suppose that in the early 1960s, shame was used to mainly arouse melodramatic pathos, however, the aspect of shame more deepened into the problem of introspective staring of shameful ego as well, especially in the mid & late 1960s. Also, the aspect of a shame shows the characteristics that hardly recoverable scars and trauma of a subject seized with shame are more emphasized, and a self-destructive path of one’s life like death and a suicide is developed. “My dad died in prison, and mom used to be a prostitute.” This line from the youth film 〈The Barefooted Young〉(Directed by Kim, Ki-deok, 1964),which was the representative biggest box-office hit in the 1960s, connotatively suggests the origin of shame which frequently appeared in melodramas during this period. The shame like this, which was played up particularly in the films of the 1960s, overlaps with the collective shame attributable to national history in a sense. The 1960s marks the time when painful perception of the meaning of colonial experience and the Korean War was shared among the people with their realization of the reality of Korean division. The humiliating 1965 treaty between Korea and Japan served to expand the realization of a subordinate position of a newly-independent nation across the entire country. The exposure and display of shame are the products of imagination dreaming of the possibility of improving the horrible reality, and ultimately have the possibility of becoming a self-reflexive behavior. Most of the Korean films have limitations in that they remain at a level of showing an individual’s internal pain due to the shame rather than social understanding of the origin of the shame because of rigorous censorship and regulations in the 1960s. Nevertheless, the path of shame in the films of the 1960s has room for being understood as collective self-consciousness which intended to discover the post-subordinate nation’s path. It could be an attempt at healing social trauma, for which giving a speech was banned in public sphere, by imagining realizability of authentic self-reliance that had been suspended since the colonial days.

        • KCI등재

          한국 반공영화 서사(narrative)의 기원에 대한 연구

          김미현(KIM, Mee hyun) 한국영화학회 2015 영화연구 Vol.0 No.63

          1950년대 반공영화는 한국전쟁을 반공주의의 역사적 경험으로 재구성하는 서사 질서 형성의 시험장이었다. 한국 반공영화는 국가기구가 반공주의를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해 한국전쟁, 간첩, 스파이 소재의 영화 제작에 관여하면서 출현했다. 1950년대의 반공영화는 이념적 목적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과 모호함을 내포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영화의 장르 관습을 구성하는 서사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한국전쟁 직후에 제작된 〈자유전선〉(1954, 김홍)과 〈불사조의 언덕〉(1955, 전창근)이 반공주의를 즉자적으로 영화에 대입하려 했다면, 〈운명의 손〉(1954, 한형모)과 〈죽엄의 상자〉 (1955, 김기영)는 좌우익의 대립을 멜로드라마와 탐정극 구조에 결합하여 대중성을 고려하고 있다. 〈피아골〉(1955, 이강천)은 빨치산의 자멸과 강제적 전향 서사를 그림으로써, 〈격퇴〉(1956, 이강천)의 출현이 가능한 사회적 담론과 영화적 조건을 제시하였다. 〈격퇴〉는 〈피아골〉의 연속선상에서 제작되었으며, 국군의 영웅서사와 가족주의라는 반공영화 서사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 인물의 전형성, 시점의 설정, 서사 관습의 진화를 통해 대중영화의 틀 안에 반공주의를 결합하는 형식이 구현된 것이다. 1950년대 반공영화를 통해서 본 당대의 반공주의는 구성되는 과정에 있는 복합적인 질서임을 알 수 있다. Anticommunist films of the 1950s provided an experimental field to reposition the war experience into a ‘past that should be remembered’ by providing a narrative reenactment. In other words, the films attempted to reconstruct the experience of the Korean War, a destructive fratricidal war, with Cold War mentality. Filmmaking under the control of the semi-governmental authority plays a major role in building the production system and use it for their public information activities. The ambiguity of anticommunist movies from the 1950s is a historical characteristic formed from the tension between policy purposes of national authority and anticommunist ideology into fictional narratives. However, they also demonstrate the ways in which the narrative structure combined with anticommunism has developed. Jayujeonseon and Bulsajo-uieondeog depictions of propaganda were straightforward and attempted to clearly identify enemies to propagate anticommunism, while Unmyeong-uison and Jugeom-uisangja took on the forms of melodrama and thriller genres for the sake of commercial appeal. Piagol depicted how partisans destroyed themselves, but it raised social discourse over anti-communist movies. On the other hand, Gyeogtoe, which was parallel to Piagol, became an origin for anticommunist cinema of the 1960s based on its heroic characters of South Korean soldiers and their sacrifice. Anticommunist ideology reflected in the anticommunist cinema of the 1950s was a complicated one that was still being constru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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