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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컬시대 연극의 역동적 교류와 그 담론들- 파비스 교수가 제기한 오태석 연출 <템페스트>의 문제점들에 관한 재고 -

          김방옥 한국연극학회 2013 한국연극학 Vol.1 No.51

          Academic interest in the adaptation of theatre canon for local and globalperformances as a topic of research and investigation has intensified recently inthe wake of attempts to think about how Korean local performance practices canbe evaluated within and outside traditional critical frameworks for theorizingtheatre. A deconstruction and reworking of Shakespeare's <Tempest> by Oh,Tae-suk, for example, has used a range of Korean performance traditions and hisattempt to go from local to global has been viewed by many as an example thatseeks to carve out a distinctive Korean cultural identity, while providing a modelfor the future of Korean theatre that is exotic, slick and transferable acrosscultural and national boundaries. Such an effort, however, has prompted a serioustheoretical debate on what Korean theatre ought to be in the age of globalization. Professor Pavis, for example, points to the other side of the same phenomenon:In spite of its cleverness, exotic surface gloss, and the hint of Korean culture,Korean theatre as such is said to be fundamentally out of place in terms of‘identity of source theatre', ‘systematic mise-en-scene', and adaptation processbased on semiotic communication model. This essay is an attempt to reply to hisarguments by synthesizing his criticism and a more open-ended theory thatdisplaces existing concepts. At the heart of this synthesis is the argument thatKorean theatre should move beyond Koreanness as a sign of culturalfundamentalism and produce, instead, a cultural difference that retains its roots inlocal, while it is constantly moving to global, with endless shiftings and slidingsof that cultural identity. 최근 수년간 한국에 머물며 한국연극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프랑스의 연극학자 파비스(Patrice Pavis)는 2012년 가을 한국연극학회가 주최했던 <포스트 아방가르드 이후 연극의 방향성>이라는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에서, 오태석이 연출했던 셰익스피어 <템페스트>의 해외공연을 중심으로, 그 연출적 문제와 셰익스피어의 한국화 현상들에 관해 신중하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한 바 있다. 파비스가 “한국의 연출”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제기했던 문제는 ‘한국연극에서 ‘연출'이란 무엇인가?‘ ‘번안, 각색, 재창작' 들의 범주는 무엇인가?‘ ‘한국화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화'는 가능한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같은 해 한국을 떠나기 직전 그는 국내 저널인 <공연과 이론>에 기고한 「글로벌 연극」이라는 긴 논문을 통해 세계 연극의 글로벌화와 오태석의 작업을 포함한 한국 연극의 글로벌화의 문제점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전반적으로 파비스 교수는 ‘원전적 정체성'과 ‘체계적 연출미학', 그리고 ‘기호학적 커뮤니케이션 모델에 의한 각색'이라는 전제들을 지키는 문화상호주의 연극에 대해 호의적인 반면, 글로벌 연극이나 탈근대적 이론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듯하다. 이 글은 오태석 연극에 대한 그의 매우 조심스러운 비판에 대해 부분적으로 반론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우정어린 충고들은 한국연극이 글로벌/글로컬 시대에 위치하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전(正典)은 아직도 유효한가?파비스 교수는 한국에는 극작과 연출 사이의 구분도 없을 뿐 아니라 번역, 번안, 각색, 재창작의 개념과 경계가 매우 불분명하다고 당황해 한다. 아울러 오태석의 언어들이 대부분 원전 언어에 비해 피상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글로벌시대의 아시아 국가들의 셰익스피어 공연들이 원전의 존재, 원전 텍스트의 언어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제약 없는 작업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탈근대 이후의 재창작은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추세이다. 원전 텍스트의 존재를 추적할 수 없다는 것과 원전 텍스트에 기반해서 얼마나 자유롭게 재해석하고 재창조 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원전의 언어를 얼마나 잘 보전했는가와 원전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재창작하느냐의 문제도 성격이 다른 것이다. Dennis Kennedy는 “셰익스피어의 보편성은 초월성이라기보다 순응성(malleability)에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글로벌 시대의 ‘차이'는 ‘중심 없는 차이'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는 차이는 서구, 정전 텍스트라는 중심으로부터의 ‘차이(difference)'를 넘어 차이의 끊임없는 지연을 즐길 수 있는 ‘차연(difféŕ́́énce)'의 유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연출-공연적 기호화냐/퍼포먼스냐?파비스 교수가 제기한 정전/재창작의 문제는 그가 매우 중요한 요소 및 절차로 여기는 ‘연출'의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파비스는 유럽적인 의미의 연출이란 ‘배치, 배열, 구조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공연을 통해 연출가의 의도와 전략이 분명히 분석되고 설명되며 구체적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의 연출에는 이러한 체계적인 의미화가 충분히 이루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태석에게 있어서 리드미컬한 패턴이나 그것이 야기하는 통감각적(kinesthetic) 지각들이 의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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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셰익스피어 르네상스 Part II (2012~2018)

          이현우 한국연극학회 2019 한국연극학 Vol.1 No.72

          필자는 지난 2015년에 『한국 셰익스피어 르네상스』라는 저서를 통해 1990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에서 이루어진 433편(한국 극단의 셰익스피어 공연은 395편)의 셰익스피어 공연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하여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의 셰익스피어 르네상스는 이 후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 2014년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과 2016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은 국내의 셰익스피어 붐에 새로운 엔진을 장착해 준 셈이었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8년간 284편의 한국 셰익스피어 공연물이 제작되었다. 1990년부터 2011년까지 22년 동안 395편의 한국 셰익스피어 공연물이 제작된 것과 비교해 보면 가파른 증가세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본고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룬 2012년부터 2018년까지의 한국 셰익스피어 르네상스를 진단한다. 2010년대의 한국의 셰익스피어 공연은 그 이전과 약간 다른 특성을 보여준다. 한국 연극계를 대표해 오던 몇몇 대가들의 셰익스피어 공연물은 크게 위축된 반면, 현대성을 반영한 다양한 실험적 셰익스피어 공연물이 압도적으로 증가한다. 또한 연극 공연 형태로서뿐 아니라, 오페라, 발레, 음악 콘서트와 문화이벤트 등 점점 더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부류의 관객들과 셰익스피어가 만나고 있다는 점도 시선을 끈다. 그리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가 한국의 대중문화 및 일상 속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제 한국의 셰익스피어는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대중가요 등과 결합하여 한류문화 확산에 일조하고 있으며, 카페와 피자 가게, 네일 아트 숍, 심지어 의복과 주방용품 등의 다양한 상호로 이용되며 한국사회의 일상과 조우하고 있다. 본고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의 한국 셰익스피어 공연과 관련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기본으로 한국 셰익스피어 르네상스의 제 2 부에 대한 분석과 소개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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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청소년연극축제 창작극제 수상작 고찰 : 『소녀, 가시나무에 별을 걸다』를 중심으로

          오판진 한국교육연극학회 2020 교육연극학 Vol.12 No.1

          이 연구는 한국청소년연극축제 창작극제 수상작을 모은 『소녀, 가시나무에 별을 걸다』에 실린 희곡을 분 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물 측면에서 주인공은 청소년이었고, 청소 년의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나 성인들을 등장시켜 청소년들이 고민을 표현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둘째, 사건 측면에서는 장애에 대한 편견이나 연애 감정 등 청소년 개인의 갈등에 주목한 희곡이 두 편 있었고, 장래 희망이나 사후장기기증에 관한 이견으로 청소년과 성인(부모)이 갈등하는 작품이 두 편 있었으며, 나머지 여섯 편은 두 가지 갈등이 혼합된 희곡으로 청소년 사이의 갈등과 청소년과 성인 사이의 갈등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셋째, 배경은 현대가 많았고, 공간적 배경은 청소년들이 사는 현실 공간인 학 교나 집 또는 동네가 많았다. 이런 일상적인 배경은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현실 삶 속에 갈등이 많고, 첨예 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넷째, 이 희곡집에 실린 희곡의 대사가 정선되어 있고, 청소년의 마음을 나타내는 인상적인 대사들이 많았다. 다만 생동감이 없는 어휘나 시대 흐름에 벗어난 지문은 앞으로 수정을 해야 한다. 이 연구는 한국청소년연극축제 가운데 희곡으로 정리된 창작극제의 일부 성과를 살피는 한계를 가 지고 있다. 이런 연구의 제한점을 극복하여, 창작극제나 한국청소년연극축제 전체를 연구하고, 희곡뿐만 아니라 공연이나 그 밖의 여러 측면을 탐구하여 우리나라 청소년연극 연구를 더 활성화하기를 기대한다. This study analyzed a creative plays from 《Girl, hang a stars on thorn tree》 a collection of award-winning plays from the Korea Youth Theatre Festival. First, in terms of characters, the main character was a teenager, and he was trying to express his worries by bringing in friends or adults around him. Second, in terms of events, there were two plays that focused on conflicts between youth, such as prejudice against disability or romantic feelings, two works in which adolescents and adults(parents) were conflicted due to differences on future hope or post-mortem organism, and the other six were a mix of two conflicts, which overlapped conflicts between teenagers and adults. Third, there were many modern backgrounds, and there were many schools, homes, or neighborhoods where teenagers lived. This routine setting meant that there were many conflicts and sharpness in the real life teenagers were going through. Fourth, the lines of the play in this playbook are chosen, and there were many impressive lines representing the minds of the youth. However, words that do not seem to be alive or fingerprints that deviate from the trend of the times should be corrected in the future. The study has the limits of examining some of the achievements of the creative play festival, which is organized into plays among the Korea Youth Theatre Festival. Overcoming these research limitations, we hope to further promote the study of youth theatre in Korea by studying the entire creative play festival or the Korea Youth Theatre Festival and exploring not only plays but also performances and other asp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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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컬시대 연극의 역동적 교류와 그 담론들 -비스 교수가 제기한 오태석 연출 <템페스트>의 문제점들에 관한 재고-

          김방옥 ( Bang Ock Kim ) 한국연극학회 2013 한국연극학 Vol.1 No.51

          최근 수년간 한국에 머물며 한국연극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프랑스의 연극학자 파비스(Patrice Pavis)는 2012년 가을 한국연극학회가 주최했던 <포스트 아방가르드 이후 연극의 방향성>이라는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에서, 오태석이 연출했던 셰익스피어 <템페스트>의 해외공연을 중심으로, 그 연출적 문제와 셰익스피어의 한국화 현상들에 관해 신중하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한 바 있다. 파비스가 “한국의 연출”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제기했던 문제는 ‘한국연극에서 ‘연출'이란 무엇인가?‘ ‘번안, 각색, 재창작' 들의 범주는 무엇인가?‘ ‘한국화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화'는 가능한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같은 해 한국을 떠나기 직전 그는 국내 저널인 <공연과 이론>에 기고한 「글로벌 연극」이라는 긴 논문을 통해 세계 연극의 글로벌화와 오태석의 작업을 포함한 한국 연극의 글로벌화의 문제점들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전반적으로 파비스 교수는 ‘원전적 정체성'과 ‘체계적 연출미학', 그리고 ‘기호학적 커뮤니케이션 모델에 의한 각색'이라는 전제들을 지키는 문화상호주의 연극에 대해 호의적인 반면, 글로벌 연극이나 탈근대적 이론들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듯하다. 이 글은 오태석 연극에 대한 그의 매우 조심스러운 비판에 대해 부분적으로 반론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우정어린 충고들은 한국연극이 글로벌/글로컬 시대에 위치하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정전(正典)은 아직도 유효한가? 파비스 교수는 한국에는 극작과 연출 사이의 구분도 없을 뿐 아니라 번역, 번안, 각색, 재창작의 개념과 경계가 매우 불분명하다고 당황해 한다. 아울러 오태석의 언어들이 대부분 원전 언어에 비해 피상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글로벌시대의 아시아 국가들의 셰익스피어 공연들이 원전의 존재, 원전 텍스트의 언어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제약 없는 작업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탈근대 이후의 재창작은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추세이다. 원전 텍스트의 존재를 추적할 수 없다는 것과 원전 텍스트에 기반해서 얼마나 자유롭게 재해석하고 재창조 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원전의 언어를 얼마나 잘 보전했는가와 원전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재창작하느냐의 문제도 성격이 다른 것이다. Dennis Kennedy는 “셰익스피어의 보편성은 초월성이라기보다 순응성(malleability)에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글로벌 시대의 ‘차이'는 ‘중심 없는 차이'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는 차이는 서구, 정전 텍스트라는 중심으로부터의 ‘차이(difference)'를 넘어 차이의 끊임없는 지연을 즐길 수 있는 ‘차연(difference)'의 유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연출-공연적 기호화냐/퍼포먼스냐? 파비스 교수가 제기한 정전/재창작의 문제는 그가 매우 중요한 요소 및 절차로 여기는 ‘연출'의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파비스는 유럽적인 의미의 연출이란 ‘배치, 배열, 구조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공연을 통해 연출가의 의도와 전략이 분명히 분석되고 설명되며 구체적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의 연출에는 이러한 체계적인 의미화가 충분히 이루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태석에게 있어서 리드미컬한 패턴이나 그것이 야기하는 통감각적(kinesthetic) 지각들이 의미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태석은 70년대부터 50년 가까이 이런 퍼포먼스적 성격의 작업을 해왔으며 그의 이런 경향은 한국의 전통연희의 특성과도 맞닿아있다. 그리고 오태석의 경우 뿐 아니라 오늘날 탈근대, 포스트 드라마시대의 연극적 감각은 언어나 연극 기호학적인 의미의 체계적인 구축이나 분석보다 에너지, 신체성, 즉흥성, 수행성, 관객과의 일체화들을 더 중요시한다는 점은 다시 말 할 필요가 없다. 2006년 바비컨 센터에 초청되었던 오태석과 양정웅의 두 셰익스피어 공연을 본 브라이언 싱글톤은 “텍스트적 원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던 영어권 관객들은 어느새 대단히 시각적이고 신체적이며 때로는 비텍스트적인 스펙터클의 일부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 한국화는 어떻게 가능한 개념이냐? 파비스는 오태석 연극은 위계성의 부재나 혼종성을 드러내며, “심지어 전근대주의로 돌아가는”데 이는 글로벌 연극의 한 특징으로도 본다. 또 전근대주의는 흔히 ‘자문화중심주의(intracultualism)'라는 이름을 취한다고 하면서 오태석의 연극에는 너무나 많은 판소리, 창, 탈춤 같은 너무 많은 ‘한국주의(koreanism)'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Benedict Anderson의 ‘상상의 공동체(The Imagined Community)' 개념을 인용하며 ‘실제' 한국적인 것의 재현은 있을 수 없으므로 “한국화는 문화적 요소들을 인용하고 재구성하는 것이지 ‘실제' 한국의 요소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이국주의에 빠져서는 않된다는 그의 우려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한국화'가 ‘한국적인 기호들'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그의 충고에는 재론의 여지가 있다. 적어도 오태석에게 있어서 연극은 인용되거나 체계화된 기호들의 집적 이상의 그 무엇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연극의 특징적 요소들을 존중하더라도 ‘한국화'가 막연한 초월적 보편주의나 시대착오적 민족주의로 변질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 연출에 있어서의 시대적, 역사적 맥락을 중시해야한다는 파비스의 충고는 받아들어야 한다. Singleton은 오태석의 연극의 일차적인 목적이, 알 수 없는 특징들을 섞어 연극을 무작정 혼종화(hybridizing) 시키거나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추는(appropriating)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화상호적'이라기보다 일단 자문화중심적(intracultural)이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오태석의 자문화중심적 공연이 자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어필하기에 오태석의 연극은 새로운 문화상호주의, 혹은 글로컬한 공연의 긍정적인 한 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싱글턴은 오태석의 공연이 ‘새로운 의미의 문화상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공연 안에 ‘타자성(otherness)을 포함하고 있어야한다는 중요한 제언을 한다. 오태석의 연극이 한국인과 세계인에게 함께 감동을 주는 글로컬 연극으로 자리매김 되기에는 아직 문제가 많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다시 근원적 민족주의라는 신비적 거대담론에 이끌리고 있다. 한국연극이 한국이라는 지역성과 함께 이를 뛰어넘는 더 큰 문화적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뿌리 깊은 서구중심적 보편성이나 오리엔탈리즘의 유령에 재 포획되지 않으면서 민족주의의 본질론 속에도 가라앉지 않는, 더 작은 지역성, 더 다양한 타자성, 끊임없이 자기분열하며 요동하는 차이의 생성이 필요하다. Academic interest in the adaptation of theatre canon for local and global performances as a topic of research and investigation has intensified recently in the wake of attempts to think about how Korean local performance practices can be evaluated within and outside traditional critical frameworks for theorizing theatre. A deconstruction and reworking of Shakespeare`s <Tempest> by Oh, Tae-suk, for example, has used a range of Korean performance traditions and his attempt to go from local to global has been viewed by many as an example that seeks to carve out a distinctive Korean cultural identity, while providing a model for the future of Korean theatre that is exotic, slick and transferable across cultural and national boundaries. Such an effort, however, has prompted a serious theoretical debate on what Korean theatre ought to be in the age of globalization. Professor Pavis, for example, points to the other side of the same phenomenon: In spite of its cleverness, exotic surface gloss, and the hint of Korean culture, Korean theatre as such is said to be fundamentally out of place in terms of ‘identity of source theatre', ‘systematic mise-en-scene``, and adaptation process based on semiotic communication model. This essay is an attempt to reply to his arguments by synthesizing his criticism and a more open-ended theory that displaces existing concepts. At the heart of this synthesis is the argument that Korean theatre should move beyond Koreanness as a sign of cultural fundamentalism and produce, instead, a cultural difference that retains its roots in local, while it is constantly moving to global, with endless shiftings and slidings of that cultural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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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 서양연극의 한국도입과 한국 가톨릭교회 - 1917년 2월15일 _경향잡지_의 「연극의 이해」 기사를 중심으로

          이현주 ( Lee Hyunjoo ) 한국연극학회 2018 한국연극학 Vol.1 No.68

          오랫동안 서구와의 접촉을 단절하였던 한국은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서구인들에게는 매우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나라였다. 19세기 말에 자의적, 타의적으로 왕조의 문을 열며 수교조약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기 시작하였고, 20세기 후반부터는 세계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능동적으로 알리게 된다. 한국의 근대, 혹 개화기 시대 역사 연구는 서양인들의 기록과 증언에 상당 부분 의존하였고, 사전 편찬 활동 역시 그들의 한국어 작업에 바탕을 두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한불(불한) 혹은 한영(영한) 사전의 시초는 19세기 선교사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한국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시각과 서술은 그들의 문화, 상황, 배경이라는 프리즘을 거친 시선이다. 그들의 아카이브는 ‘우리'에 관한 증언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를 보는 ‘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들에 관한 증언인 것이다. 본 원고는 1917년 2월 15일 『경향잡지』 71-72쪽에 실린 「연극의 리해」라는 기사를 통해 20세기 초 서양연극의 한국도입 당시 한국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살펴보고자한다. 이미 예르지 그로토브스키(Jerzy Grostowski, 1933-1999)는 서양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 하였고, 프랑스의 연극학자들도 비판적이고 새로운 시각으로 (서양) 연극역사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한국 가톨릭교회' 역시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서양연극과 가톨릭 교회의 만남, 이해와 오해를 통해 형성되는 문화 의식의 변화와 계승, 변용에 대해 생각해보고자한다. As Korea upheld an isolationist policy that deterred them from contact with the West up until the 19th century, it Korea remained an exotic, secretive land for Westerners for a long time near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e Korean dynasty opened their doors to interact with other countries in part voluntarily and in part forcedly. The ‘diplomatic treaty' they agreed on actively spread Korean history and culture throughout the world during the mid- and late-20th century. Ironically, studies of Korea's modern, or enlightenment period relied heavily on Westerners' records and testimonies. Even dictionary compilations were based on foreigners' work on Korean. For instance, the Korean-English and Korean-French and vice versa dictionaries were first completed by the missionaries in the 19th century. However, Westerners' perspectives on and depictions of Korea are ultimately based on their culture, circumstances and contextualisation. Their archives may have more value when assessing how ‘they' interacted with and perceived other cultures and mindsets (the ‘other'), rather than as a generally verified testimony of how ‘we' used to be. As such, reverse anthropology suggests a switch between the ‘subject' and the ‘object', and has risen as an important approach in postcolonial studies. Nicolas Standaert, a professor of Chinese Studies at KU Leuven, Belgium and Jesuit father, emphasizes that in religious studies, the history of missionary work also “has to be viewed not via the missionaries eyes, but the eyes of those who encountered the missionaries”. This paper examines the Korean Catholic church's attitudes towards the introduction of Western plays to Korea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as gleaned from a Kyunghyang Magazine article (published on Feburary 15, 1917 under the title “The Understanting of Theatre”, p.71-72). Furthermore, these attitudes will be held in comparison to those of the French Catholic church. Some careful speculations will also be made on how those attitudes may have impacted the theatrical activities of Korean theological seminary students versus those of others. ‘Western play' is not a proper noun, and therefore cannot be defined succinctly and definitively. Jerzy Grotowski questioned precisely where ‘the West' is considered to begin and end, so did French theatre scholars in the 21st century, who critically inquired in depth what (Western) plays are. ‘The attitude and stance of the Korean Catholic church' is also a complex, multifaceted heritage composed of various cultural exhibits and thus, cannot be generalized as a singular entity. This article explores the intersections between change and succession, bias and perception, understanding and ignorance, underlining any contact that takes place between people or ‘others.' It further suggests a change in how the ‘subject' and ‘object' have been viewed and treated historically during modernization and enlightenment processes. Ultimately, it testifies to a need to transfigure a new consciousness with which societal, cultural, artistic, and religious phenomena are perce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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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영어 연극학의 현재 : 2019 IFTR 아시아 워킹그룹 학회 발표를 중심으로

          이미원 ( Lee Meewon ) 한국연극학회 2019 한국연극학 Vol.1 No.70

          본고는 2019년 2월에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연극학회(IFTR)의 아시아 워킹그룹 학회를 중심으로 아시아 영어 연극학의 현재를 집어보고자 한다. 세계연극학회 속에 아시아 워킹그룹이 생긴 것은 2008년 중앙대학교 주최로 한국에서 열렸던 세계연극학회 이후이다. 현재 세계연극학회는 워킹그룹(Working Groups), 일반패널(General Panels) 및 신진학자 포럼(New Scholars' Forum)의 세 분과로 나뉘어 있다. 10년 전에는 일반패널 부분이 왕성하였으나, 점점 워킹그룹이 주도하게 되어서 지금은 단연 워킹그룹의 발표가 훨씬 많다. 아시아 워킹그룹은 총 23개의 워킹그룹 중 하나이니, 전체 연구의 23분의 1으로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한국연극학은 한국의 세계 속의 위치를 감안할 때 많이 부족한 실정이니, 한국 연극학자들이 분발하여야 하겠다. 이번 학회는 ‘아시아 연극의 경계를 넓히며(Expanding the Boundaries of Theatre)'를 주제로 했다. 기조 강연으로 평창 겨울 올림픽 개·폐막식을 총체적으로 책임지고 연출했던 송승환의 발표가 있었다. 그는 이러한 개·폐회식 연출과 연극 연출 간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말하고, 이벤트에도 내러티브를 입힌 연출이 더 환영받는다고 하였다. 일본 연극학은 3명의 서구 학자들이 발표하여 세계 속에 일본연극의 위상을 알려주었다. 폴란드의 야곱 카포럭(Jakub Karpoluk)은 신사꾸 노(Shinsaku No)에 대하여, 독일의 바바라 게일혼(Barbara Geilhorn)은 스가와라 나오끼(Sugawara Naoki)와 오이복케쉬극단에 대하여, 핀란드의 아나 셔링 (Anna Thuring)은 핀란드 공영방송에서 방송된 라디오드라마 중 아시아의 영향을 살폈다. 인도연극은 축제 연극들이 소개되었는데, 현대 캘커타의 듀르가 푸자 축제를 시각적 공연으로 본 연구, 자트라 공연의 진화에 대한 연구, 그리고 인도 연극이 유지니오 바르바의 연극이론에 기여한 바에 대한 연구였다. 중국은 응용연극이 발표되었는데, '난페이얀 포럼 연극의 변화‘에서 중국 이주 노동자 집단의 연극 케이스 연구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필리핀과 베트남 연구도 있었으니, ‘필리핀 마린듀끄의 대관식 제의의 연극성'은 푸동/투봉이라 불리는 대관식을 소개하고 그 의의를 해석했다. ‘연극, 헌신과 젠더'는 민속적 가톨릭 제의의 하나인 페나프란시아 축제를 연구하며, 성녀의 우상화와 젠더의 문제를 논했다. 베트남 관련 논문은 베트남 현대 연극의 중요한 작가인 루 쿠앙 브(Lu'u Quang Vu)를 소개하였다. 환경연극도 발표되었는데, 범아시아의 생태와 그 복원 관련 연극을 논의하면서, 아주 인간과 동물의 영역을 나누어서 존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오늘날 아시아 연극은 점점 더 상업적이 되어가며 실험극도 줄어들고 있지만, 연극 경계의 확장은 필요하고 또 진행되고 있다. 연극은 대중사회에 맞추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으니, 환경연극의 부상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계 허물기를 연극이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연극이 오늘에 살아있는 장르가 될 것이다. Asian Theatre Working Group has founded since 2008, when the congress of IFTR (International Federation for Theatre Research) was held in Seoul, Korea. Since then, Asian Theatre Studies expand their voices to the world theatre. However, Asian Theatre Workign Group is only one of 23 working groups. In other words, the studies of Asian theatre in English are still very weak. In thinking of Korean theatre studies in English, there are very a few. Plus, a few scholars attend at the IFTR, and few scholar attends regularly. Korean scholars should try harder to publish Korean theatre studies in English when we consider the our economical power in the world. The topic of 2019 Asian Theatre Working Group is "Expanding the Boundaries of Theatre." The keynote speaker is Director Seunghwan Song, who directed the Winter Olympic opening and closing ceremonies of 2018. He tried to express the Harmony, Fusion, Passion and Peace, which he thought the essence of Korean cultre. He directed the Korean history dividing into the past, the present, and the future, and gave some story narrations to these periods. He found no differences of directing between the Olympic events and theatrical performances, and emphazied the importance of narrative story in both genres. There are three papers on Japanese theatre; all three are presented by the Westerners, which tells the status of Japanese theatre in the world. Jakub Karpoluk, a polander, presents the paper on Shinsaku No titled "Expending the Boundaries of Japanese Noh Theatre.” A newly written Noh < Meifuko Nekyia > is well examined. Barbara Geilhorn from Germany presents the paper of "Aging, Dementia, Caregiving-The Theatre of OiBokkeShi" on Sugawara Naoki, who is the founder of OiBokkeShi theatre group and concerns the aging problems. This is a study on applied theatre, which begins to raise its voice in Asia nowadays. Anna Thuring from Pinland studies YLE's radio dramas, which come from Asia since 1950s. With exception of one Chinese and Indian drama, all are from Japanese. She chooses five of Japanse radio drama and examines them Since our topic is expanding the Boundaries of Theatre, Indian theatre papers present two festival like theatre, Durga Puja in Contemporary Kolkata, and Transcending form of Jatra. The former is a scenic theatre centering the image of the goddess Durga in mythology. The latter well describes the evolution of folk theatre Jatra in Bengal from the 16th century to the present. There is also a paper on Indian theatres' contributions to the theories of Eugenio Barba. The applied theatre is also presented by Chinese scholar, titled on Nanfeiyan's Forum Theatre Transformation. It is a Case Study on Theatre Practices of Migrant Workers' Community in China. There are also studies of so far alienated areas such as philipine and Vietman. "The Theatricality of the Coronation Ritual in Marinduque, Philippines Theatre" and "Devotion and Gender: Figuring, Gendering and Theaticalizing the Penafrancia in Bicol, Philippines" deal respectatively with the Coronation Ritual as theatrical event and the Penafrancia ritual as theatrical Gender. The vietnamese paper explores the life of Lu'u Quang Vu, who is one of the important playwrights of the Modern Veitnam. In addition, there is a paper on environmental theatre. Analying couples of Asian environmental theatre, the writer suggests Human No-Go Zones on Stage. Since nowadays Asian theatre tends to be more commercial and lack the experiments, the expand of theatrical boundaries is very important in this postmoder world. Theatre in the age of media has to find a new way to be popular and to be a live art gen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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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굿과 연극치료의 연계 가능성 연구

          이선형 ( Sun Hyung Lee ) 한국연극학회 2016 한국연극학 Vol.1 No.58

          현재 연극치료는 유럽과 구미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고 있고 그들에 비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연극치료 역시 상당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연극치료 임상을 하다보면 특정 지역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커다란 장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한국인을 위한 한국 고유의 정서를 기반으로 연극치료를 행할 때 참여자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착안하여 본 연구는 연극성과 치료성을 갖추고 있는 한국 전통의 굿을 통해 한국인 참여자를 위한 연극치료 모델의 확장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한국인을 위한 연극치료에서 굿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굿은 한국 전통연극의 기원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굿놀이, 풍물굿, 두레굿, 연희굿, 걸립굿, 마을굿과 같은 굿의 명칭에는 놀이, 연희, 축제, 굿이 한데 어울린 흔적이 발견된다. 둘째, 굿의 기본 정신이 치료에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굿을 통해 심신의 위안을 얻고 치료를 받았으며, 공동체의 단결을 도모하여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연구절차는 첫째, 한국의 굿을 개괄하고 굿의 근본적인 목적을 밝히고자 한다. 둘째, 굿이 행해지는 절차 및 형식과 내용이 어떤 점에서 연극 및 연극치료와 연계되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여기에서 다룰 요소는 배우, 관객, 공간, 플롯의 차원이 될 것이다. 이처럼 굿에 대한 기본적인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한국인에게 유용한 연극치료의 방법과 모델을 확장하고 연극치료의 영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굿이 지니고 있는 연극성과 치료성에 주목하면서 한국인에게 적합한 연극치료 모델의 개발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탐색하는 것에 머물고 있다는 제한점이 있다. 이 연구가 좀 더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굿 유형의 연극치료를 임상적으로 실시한 후 그 결과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굿과 연극치료는 그 성격상 연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며, 한국인 참여자를 위한 연극치료의 지평을 넓히는 첫걸음으로써 의의가 있을 것이다. The drama therapy including theatre and psychotherapy is gradually becoming the object of attention. The drama therapy is actively studied in Europe and North America, and it is true that the main theories and models were there created. However, the dramatherapy was recently payed attention also in Korea and it is natural to find new dramatherapy models appropriated to Korean culture and emotion. In this perspective, this study aims to explore the possibility of finding a new dramatherapy model through the korean Gut which contains both theatrical nature and therapeutic nature. Why the Korean Gut? Because the Korean Gut can be considered as the origin of Korean traditional theatre. In the names of Gut such as Gut play, Pungmul Gut, Maeul Gut, the trace of play, drama and festival remains. In Gut, there are theatrical methods and procedures like role play. The Koreans hope to improve the quality of their lives by promoting the unity of community and also to gain the peace of mind and body. Therefore, studying the Korean dramatherapy, it`s natural that we are interested in Gut. However, it does not mean the dramatherapy copies the forms and contents of Gut as it is. We pursue the theatrical style and the function of treatment appeared in Gut. For that, we firstly summarize the Korean Gut and discover the purpose of Gut. Then, we explore the connectivity between Korean Gut and dramatherapy depending on the forms and procedures of Gut and on the actor, public, space and plot of the drama. Nevertheless, this research can be considered as a first step to develop a Korean customized model of dramatherapy. For developing more valuable model, it needs to apply this model to clinical cases for Korean particip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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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합작 연극 <가모메カルメギ>의 한국 초연 회고와 일본 공연 보고

          성기웅 한국연극학회 2019 한국연극학 Vol.1 No.71

          <가모메 カルメギ>는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를 일제강점기 한반도 배경의 이야기로 번안하여 재창작한 한일 합작 연극이다. 성기웅이 대본을 썼고 일본인 연출가 타다 준노스케가 연출을 맡았으며,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협업했다. 성기웅은 고증적, 재현적인 감각으로 원작 희곡 <갈매기>를 1930년 후반 황해도 연안 지역의 이야기로 치환하는 작업을 했고, 타다 준노스케는 그렇게 쓰인 대본을 공연적인 현재를 강조하는 ‘현전화(現前化)'의 연출 방법론으로 재구성하였다. 2013년 10월에 한국 서울의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초연한 <가모메 カルメギ>는 동아연극상 3개 부문 수상을 하는 등 호평을 받은 한편으로, 일제강점기 역사를 다루는 관점과 해석과 관한 문제제기를 받기도 했다. 일본군이 되어 출병하는 조선 소년을 일본인 여자 배우가 연기한 것을 두고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흐리는 불순한 의도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에필로그 장면에서 역사의 연도를 나타내는 큰 숫자가 카운트 업 되어갔던 것이나 그런 끝에 한국인과 일본인 배우들이 함께 걸어나가도록 했던 것을 두고는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섣부른 화해를 부르짖거나 무책임한 허무주의를 설파하는 것 같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일본 초연을 했던 2014년 11월은 아베 수상의 재집권 2년차로 우경화 행보가 가시화되고 일본 사회에 혐한의 기운이 높아져 있던 때였다. 연출가 타다 준노스케는 한국 초연 때 한국 관객들의 감각과 인식을 파악하기 어려워했던 것에 비해 일본 관객들에 대해서는 예측하기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한국 쪽 중요 배우 세 명이 바뀌었는데, 새로 3주 동안 리허설을 하면서 공연의 모든 요소 면에서 완성도가 높아졌다. 한국 초연과 마찬가지로 조선 소년의 출병을 일본인 여배우가 연기하게 한 것은 일본 관객들에게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고 청년들이 징병되는 미래를 상상하게 하였다. 에필로그 장면의 역사 연도 자막은 한국 초연 때 연도의 숫자만 내보냈던 것에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사적 구체적 사건들을 내보내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럼으로써 일본 관객들에게 한-일 관계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환기시켰다. <가모메>의 이 일본 초연은 일본 관객들에게 과거 한국을 침략했던 죄의식과 그 역사에 관한 당사자 의식을 자극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8년 여름에는 일본의 4개 도시 극장을 도는 재공연 투어를 했다. 일본 정치에서는 아베 수상의 집권이 6년째 장기화되며 우경화, 개헌을 향한 행보가 무르익고 있었다. 반면 지난 일본 초연 이후 한국 정치에는 큰 변동이 있어 촛불혁명을 통해 정부가 바뀌었고 남북 관계에도 급격히 화해 모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에필로그 장면의 연출은 그런 정치 현실을 반영하여 마지막에 일본인 배우들만이 무대에 남아 객석을 둘러보게 함으로써 일본 관객들에게 일본 정치의 현재와 미래를 묻는 메시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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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극과 서구연극 수용을 통한 한국근대연극의 기원에 관한 문제제기

          안치운 한국연극학회 2020 한국연극학 Vol.1 No.73

          The literary drama marks the beginning of Western influence on modern Korean theater. Although there had been a critical view and self-regulation on Western theater being the majority in Korean theater in the 1920-30s, the voice was not strong. The purpose of analyzing the modernization discourse made by New drama advocates is to leave concrete recording on new drama and to interpret them, thereby learning the developmental process of new drama and how their discourse influenced the history of modern Korean theater. This is not a simple task. It is because the ideology of new drama and its performance practice could seem abstract today. One should be careful not to discuss history without substances. In that regard, what will be discussed in this paper will have to remain an introduction or a preliminary investigation. New drama posed itself as an overarching project in the modern history of Korean theater. It was more than an alternative to modern theater. The discourse about new drama was a declaration of the cease of old theater, the birth of modern Korean theater at the same time. The deriding voice of theater reformist in this era for theater improvement by western theater style was cruel to uncivilized and primitive old theater. The voice created rigid assumptions that the modern Korean theater needs to center around the imported, translated, and transplanted Western theater. Kim hyun and Kim yoonsik wrote in 『Korea literature history』 that the history of literature is not a substance but a form. Borrowing their assertion, it could be said that the definition and study about the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of Korean theater, which covers both pre- and post- new drama era, will be crystalized with actual forms of theaters within the period and its continuity. The primary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aise a question on nes drama and reception of translated theater. It is also about reading discourse about new drama, which is the core of the modern history of Korean theater. This is an attempt to shed light on the origin, definition, and trace of modern Korean history. 한국근대연극이 서양으로부터 수입한 신극은 문학적 연극 즉 희곡에 기초한 연극(literary drama)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극예술협회와 토월회, 1930년대 극예술연구회에 이르기까지 수입된 신극의 주류적 경향에 대한 비판적 서술과 자기 검열은 종종 있었지만, 많지 않았다. 신극을 주장했던 이들의 근대적 연극의 담론을 분석하는 목적은 신극에 대한 분명한 기록과 더불어 이를 해석해서, 이러한 담론이 한국 근대연극사에 끼친 영향과 신극이 발전해온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신극이념이나 당대 공연 실제 등이 오늘날에는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내용은 상정의 수준, 하나의 예비적 고찰에 머물 수밖에 없다. 실체가 없는 역사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연극사에서 신극은 근대 연극을 위한 대안을 넘어서는 거대한 프로젝트와 같다. 신극에 대한 담론은 구극인 한국 전통연극에 대한 종언이고, 신극을 통한 한국 근대연극 탄생에 대한 선언이고 천명과도 같다. 구극에 대해서 가학적이었고, 조소적이었던 연극개량주의자들의 주장들은 한국의 근대연극의 중심이 수입된, 번역된, 이식된 서양연극 즉 신극이어야 한다는 경직된 가정의 능산물이다. 김현·김윤식의 『한국문학사』에서 언급된 “문학사는 실체가 아니라 형태이다”라는 명제를 빌려 말한다면, 한국 근현대연극사에 관한 정의와 연구는 신극 이전과 이후를 아우르는 연극적 연대기 속에 나타난 구체적인 연극 형태들을 통해서, 그것들의 연속성에 의해서 더욱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 다루려고 하는 것은 신극과 번역극의 수용에 관한 문제제기로서, 한국 근대 연극사의 중심을 이루는 신극에 대한 담론읽기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한국 근대 연극의 기원과 정의, 그 흔적에 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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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여성 연극의 프랑스 현대 작품 수용 연구 - 산울림소극장의 활동을 중심으로

          김명화 ( Kim Myung Wha ) 한국연극학회 2016 한국연극학 Vol.1 No.60

          외국 작품의 국내 수용 연구는 외국 작품이 국내에 끼친 일방향성의 영향관계를 연구하는 데 멈추어서는 안 된다. 국내 제작환경과 관객의 동향을 포함한 시대적 상황 또 미학적 흐름에 이르기까지 제반 여건의 작동과 관계 속에서 그 작품의 작용을 살펴보는 복합적인 시선이 요청된 다. 이런 역동성을 인정할 때 문화의 침투와 융합의 과정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이 보다 성숙한 수용 연구의 독법이 될 것이다. 이 논문은 산울림소극장을 중심으로 한국 여성 연극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프랑스 현대극의 수용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프랑스극은 한국의 근대극에서 초기 단계의 고전 소개, 한국 전쟁 후 실존주의나 부조리 연극처럼 새로운 사상적 미학적 흐름의 유입, 대중연극이라는 세 가지 경향으로 수용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 경제적 풍요와 개방의 물결 속에서 문화적 패러다임이 거대담론으로부터 다원주의로 변모하며 중산층 문화를 의식하게 된다. 이런 흐름 속에 여성 중심의 연극도 부각되며 여기에 프랑스 현대극의 수용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였다. 특히 산울림소극장의 활약이 이런 수용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미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며 프랑스 부조리극의 한국 수용에 한 역할을 담당했던 연출가 임영웅과 극단 산울림은 1985년에 같은 이름의 소극장을 개관한 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하였고 여성 중심의 레퍼토리를 적극적으로 소개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몬느드 보봐르의 <위기의 여자>, 장 콕토의 <목소리>, 드니즈 살렘의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와 같은 프랑스 현대극을 제작하였고, 그 성공은 한국 연극의 흐름에서 유사한 작품군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앞에서 언급한 세 편의 작품은 본격적인 페미니즘연극으로 분류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들 연극은 여성 희곡은 존재해도 부차적인 작품으로 폄하되거나 공연은 불가능했던 한국 근대극의 흐름에서 여성이 중심이 된 연극 공연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이로써 한국 연극은 여성의 정체성이나 정서 또 욕망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미시적 일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경제적 풍요 속에서 급부상한 중산층 관객들은 이런 달라진 패러다임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이 논문은 상술한 세 작품의 공연사를 시대적/연극적 흐름과의 관계 속에서 연구하였고, 한국연극에 끼친 영향력을 총체적으로 조망하였다. 그 동안의 연구 경향은 이들 작품을 여성 연극이나 중산층 대중연극의 관점에서 전반적으로 조망해온 경향이 있다. 반면 이 논문은 한국 여성연극의 흐름에서 중요한 촉매역할을 담당한 세 편의 프랑스 현대극을 분리하여 조명하면서 프랑스 현대극의 한국 수용이 1980년대 이후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조명할 수 있었고, 가치관의 개입을 절제하면서 보다 객관적인 공연사 검토를 통해 각 작품들의 시대적, 미학적 의의와 연극사에 끼친 영향력을 복합적으로 조망하였다. Focusing on the activities of Theatre Company Sanwoollim, this paper mainly analyzes the reception of works of contemporary French drama, which played a critical role in the stream of Korean female theater. Generally, in Korean modern theatre, French drama has been divided largely into three: introduction of classics at an early stage, inflow of new ideas and aesthetics such as Existentialism and Absurd Plays after Korean War, and popular entertainment. In 1980s, as Korean society starts to experience economic prosperity and open doors, cultural paradigm shifted from metadiscourse to pluralism, becoming conscious of the middle-class culture. Under these circumstances, female-centered drama has gained greater significance and the reception of contemporary French drama had acted as a decisive variable. Especially, the Theatre Company Sanwoollim and director Young-woong Lim played a remarkable part in the history of the reception, established the Theatre Sanwoolim in 1985, sensitively captured the periodical changes and actively introduced female-centered repertories. In the process, they produced contemporary French pieces such as A Woman on the Verge (La Femme rompue) by Simone de Beauvoir, The Human Voice (La Voix humaine) by Jean Cocteau, and At Fifty, She Discovered the Sea by Denise Chalem. Strictly speaking, the three pieces mentioned above have limitations to be categorized as feminism drama. Nonetheless, these works indicated the possibility of the successful theatre performances that feature female as a main character; until then, in the atmosphere of Korean drama society, works with female protagonists had been disparaged as secondary works or performances of them had been even impossible. Accordingly, with the help of these works, Korean theater began to recognize the importance of women`s identity, emotion, and desire, showing concern not only to metadiscourse, but also to microscopic everyday life. This paper examines the performance history of the three works mentioned above in the relations with theatrical flow and periodical flow, and takes an overall view of their effects on Korean 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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