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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ther's Theology of the Word in the Exposition of Psalms 1-25 at Coburg (1530)

          Batka ?ubomir 이윤정(번역자)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7 Canon&Culture Vol.11 No.2

          마르틴 루터에게 시편은 그의 전 생애 동안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거룩한 지혜의 끊임없는 원천이었다. 루터가 시편을 성령에 의해 영감된 본문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루터의 이해 속에서 시편은 어느 시대에나 모든 신자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신학적인 교리를 포함하고 있다. 루터는 그의 평생 동안 두고두고 시편을 주해하였다. 루터의 후기 시편 주해는 1530년 코부르그에서 쓴 『시편 1-25편 주석』(The Exposition of Psalms 1-25)에 나타난다. 이 주석은 그 분량에 있어서 『첫 시편 강해』(Dictata super Psalterium, 1513-1516)와 『두 번째 시편 강해』(Operationes in Psalmos, 1519-1521) 만큼 방대하지 않지만, 여전히 개혁자로서 시도한 진정한 신학적 연구로 평가될 수 있다. 그의 작업은 아우구스부르그 의회 (Diet of Augsburg)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루터가 코부르그에서 쓴 『시편 1-25편 주석』은 아직까지 연구되지 않았던 보다 상세한 루터의 신학적 분석에 대한 귀중한 본문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루터 신학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그가 첫 시편들에 대하여 시도한 다른 주해들과 여기에 나타난 그의 신학적 사상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분석은 말씀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교리에 근거하여 세 부분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루터는 시편 1-25편의 주석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는다. 이것은 이 작품이 짧으며 신학적 진술을 하는 것이 배경을 이루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논문에서 삼위일체적 구조를 지지하는 베이어(Oswald Bayer)의 논지를 사용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충만하게 그리고 온전하게 제공하시는 성경적 약속과 선물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유효하게 우리와 함께 소통하신다. 베이어는 한편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영원한 관계를 명시하려는 시도 이외에도 삼위일체 신학을 위한 대안을 제공한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연이어 시대를 열어가는 가설을 제공한다. 베이어는 하나님을 “시인”으로 보는, 소위 “시학적 신학(poetological theology)”의 견해를 발전시킨다. “시학적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의 실체성을 포착한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연설에서 시인이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 성자, 성령의 행위와 관련된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묘사는 루터의 강의들(Operationes) 가운데 시편 9:7에 관한 그의 주해로 뒷받침될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안에서 우리가 그 정신을 이해하기 원한다면 명사들보다는 동사들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 논문은 첫 번째 부분에서 루터가 주석을 썼던 배경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뒤따르는 세 부분에서 하나님 행동의 특성을 소개 할 것이며,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과 그의 영적 삶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실천하는 삶과 하나님과 소통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코부르그 시편 주석』에서 나타난 루터의 신학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For Martin Luther, the Book of Psalms was a never-ending source of divine wisdom which he cherished during his entire life. As he believed the psalms to be texts inspired by the Holy Spirit, in Luther's understanding they contain the word of God and theological doctrine applicable to the life of every individual in any era. Luther returned to exposition of psalms throughout his life. In a later period such exposition can be found in the Exposition of Psalms 1-25, which Luther wrote at Coburg in 1530. Even though this exposition, in terms of its length, does not compare to Luther's extensive lectures, such as the first and second lecture on the psalms (Dictata super Psalterium, 1513-1516, and Operationes in Psalmos, 1519-1521), it still is an authentic theological work of the reformer. The work dates back to the time of the Diet of Augsburg and offers a valuable textual basis for a more detailed theological analysis, which has not until now been the subject of research. The analysis of Luther's theology will make it possible to compare Luther's theological thought revealed here with other expositions of the first psalms. The analysis will be divided into three sections based on the doctrine of Trinity[1] as God the Father, Son and the Holy Spirit speaking. Although Luther does not specifically address the trinitarian doctrine in the Exposition of Psalms 1-25, which can be explained by the shortness of this piece and its context, we will use the thesis of Oswald Bayer to support such structure in this article: “The divine being communicates itself with final validity as a gift and testamental promise in which he himself gives himself to us fully and completely.”[2] Bayer offers an alternative for a theology of the Trinity other than an attempt at specifying the timeless relationship between the Father, Son and the Spirit on the one hand, or an assumption of subsequently following epochs of the Father, Son and the Spirit on the other hand. Oswald Bayer develops the idea of the so-called “poetological theology,” which sees God as the “Poet”, thus capturing “the identity of divine speech and action; in his spoken action and performing speech [God] is a poet.”[3] Thus laid out, a depiction of God's actions with regard to the actions of God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can be supported by Luther's comment on Psalm 9:7 in Operationes, which states that “in the Holy Scripture one has to pay more attention to the verbs than to the nouns, if one wants to understand the Spirit.”[4] In the first section, this article will relate the context in which Luther wrote the exposition. The subsequent three sections will then introduce the character of divine action and the final part will focus on the word of God in relation to man and his spiritual life. It will offer a glance at the praxis of living out one's faith and following Christ in a communicative character based on the word of God. It can be assumed that this procedure will reveal Luther's theology also in the Coburg exposition of psalms.

        • KCI등재후보

          ‘제1세대 성서'를 통해 이루어진 복음의 토착화

          이덕주(Deok Joo Rhie)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0 Canon&Culture Vol.5 No.2

          이 글은 1910년 번역을 끝내고 이듬해 출판된 신?구약 한글 성서의 번역과정을 정리하고 그 100주년의 역사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1870-1880년대 중국 만주에서 시작된 한글 성서 번역과 출판은 한국 개신교회 복음 선교의 단초를 제공했고 1885년 일본에서 인쇄된 한글 성서를 갖고 내한했던 개척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곧바로 성서 공동 번역에 착수하여 1887년 마가복음을 인쇄하였다. 이를 계기로 선교사들이 성서 번역자회를 조직하여 처음엔 일본과 만주에서 번역된 성서를 교정하는 형태로 진행하다가 1893년 상임성서실행 위원회와 번역자회를 새로 조직하면서 개인 역→번역자회 역→위원회 역→시험 역→공인 역으로 이루어진 번역 원칙과 방법론을 제정하였다. 이런 원칙하에 전면적인 번역 작업에 착수하여 1900년에 시험 역본과 개인 역본이 혼합된 형태의 신약전서를 인쇄하였다. 이어서 1904년 영국과 미국,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와 한국 선교에 착수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회들이 참여한 한국성서위원회를 조직하고 체계적인 성서 번역과 인쇄, 반포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와 함께 한국인 번역자들도 참여하는 성서 번역자회를 새롭게 구성하여 신약 개정 작업에 착수하여 1906년 공인 역본 신약전서를 인쇄하였고 이어 구약 성서 번역에 착수, 1910년 4월 번역을 끝내고 1911년 3월에 구약 전서 및 신?구약 합본 성경전서를 인쇄하였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비로소 한글로 번역된 성서 전체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신?구약 성경전서는 한국개신교회 선교 개척을 담당했던 내한 1세대 선교사들과 이들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개종한 1세대 토착 교인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제1세대' 한글 성서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1세대' 한글 성서로 1910년 번역을 끝낸 신?구약 성서는 다음 세 가지 역사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성서 번역을 통해 복음의 토착화가 이루어졌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성육화(成肉化) 과정처럼 성서 속에 담긴 기독교 신앙과 신학적 의미가 한글 번역을 통해 한국의 토착 언어와 종교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둘째, 성서 번역과 인쇄를 통해 한글의 과학적 연구와 실용화가 이루어졌다. 초기 내한 선교사들은 성서를 비롯한 기독교 문서를 한글로 번역, 출판하였는데 그 결과 세종대왕 창제 이후 4백 년 넘게 긴 잠을 자고 있던 한글의 실용화와 연구가 이루어져 한글이 ‘한국민의 생활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셋째, 성서 번역과 인쇄, 반포 사업을 통해 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이 촉진되었다. 외국의 3개 성서공회, 한국 선교에 임하고 있던 6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회가 조직한 성서위원회는 물론 성서 번역자 회도 초교파적으로 조직, 운영되었는데 이를 통해 교파주의를 극복한 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이 가능하였고 그 결과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는 ‘하나의 성서' 전통을 수립할 수 있었다.

        • KCI등재후보

          ‘제1세대 성서'를 통해 이루어진 복음의 토착화 -한글 성서 최초 완역 100주년의 역사신학적 의미-

          이덕주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0 Canon&Culture Vol.4 No.1

          This is the centennial year of the translation of the whole scriptures, New and Old Testaments into Korean language. In the beginning of the history of the Christian mission in Korea was the works of translation, printing and distribution of the Korean Bible tracts by the foreign missionaries and the Korean Christians in Manchuria of China before landing of the missionaries on Korea. And the pioneer missionaries, H. G. Appenzeller of the Methodist Church and H. G. Underwood of the Presbyterian Church landing at Korea on the Easter day of 1885 in possession of the Korean version of St. Mark printed in Japan, started their mission works together with the revision and translating of the Bible into Korean. They succeeded to print Korean revised version of St. Mark in 1887 when they, with other missionaries in Korea, formed the Permanent Committee of Bible and the Board of Translator for the future Bible works in Korea. In 1893 the missionaries in Korea renewed the Bible Committee and the Board of translator as the more enlarged interdenominational bodies and prepared the basic principle of translation of the Bible. In 1900 they finished translating and could print the New Testament as in both of the individual and the tentative versions. From then the board members began to revise the individual versions of the NT and could provide a tentative version of whole NT in 1904 when the Bible Committee was reorganized with the representatives of three foreign Bible Societies and six missions of the Methodist and the Presbyterian Churches, the board of translators with the foreign missionaries and the native Christians. The members of the Committee and the board took impetus to revise the tentative version of NT so could print the first authorized version of NT in 1906. Thence board members made haste to translate the Old Testament scriptures and could report of the completion of translation in 1910 and printing of the Korean OT and with the NT in one volume for the first time in 1911. It was thirty five years since the Scotland missionaries ventured to translate the Gospel into the Korean language in Manchuria and twenty five years since the first protestant missionaries reached Korean shores with a Korean version of St. Mark. So thus the Korean people and the Christians were able to read in their own tongue the whole Bible, the first generation Korean Bible, a product of cooperation of the first-coming missionaries and the first-converted native Christians in Korea. We can find in this first generation Korean Bible three historico-theological meanings. Firstly, there came to be indigenization of the Gospel in Korean religious culture through translation of the Bible into the Korean language. Namely the incarnation of the word to the life and the culture of the Korean people was done through the introduction and the practice of the Biblical messages in Korean linguistic form. Secondly, the Korean vernacular Hangul began to be studied scientifically and treated as an authorized language trough translation and printing of the Bible in Korean. From the early days of the Christian mission the foreign missionaries found the scientific superiority and efficiency in Hangul and determined to publish all the Christian books in Hangul. So it awoke from a long sleep of four hundred years and took successfully the position of an authorized popular language of the Korean people. Thirdly, Bible works initiated and provided the basic ground of ecumenical movement in Korea. Mission works in Korea began with the cooperation between the Methodist Appenzeller and the Presbyterian Underwood in translation of St. Mark and building of the Bible Committee and the Board of Translators as an interdenominational body. Thence the ecumenical work embracing of translation, publishing and distribution of the Korean Bible help Korean Church to sustain the tradition of ‘one Bible for one Church' in Korea. 이 글은 1910년 번역을 끝내고 이듬해 출판된 신․구약 한글 성서의 번역과정을 정리하고 그 100주년의 역사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1870-1880년대 중국 만주에서 시작된 한글 성서 번역과 출판은 한국 개신교회 복음 선교의 단초를 제공했고 1885년 일본에서 인쇄된 한글 성서를 갖고 내한했던 개척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곧바로 성서 공동 번역에 착수하여 1887년 마가복음을 인쇄하였다. 이를 계기로 선교사들이 성서 번역자회를 조직하여 처음엔 일본과 만주에서 번역된 성서를 교정하는 형태로 진행하다가 1893년 상임성서실행위원회와 번역자회를 새로 조직하면서 개인 역→번역자회 역→위원회 역→시험 역→공인 역으로 이루어진 번역 원칙과 방법론을 제정하였다. 이런 원칙하에 전면적인 번역 작업에 착수하여 1900년에 시험 역본과 개인 역본이 혼합된 형태의 신약전서를 인쇄하였다. 이어서 1904년 영국과 미국,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와 한국 선교에 착수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회들이 참여한 한국성서위원회를 조직하고 체계적인 성서 번역과 인쇄, 반포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와 함께 한국인 번역자들도 참여하는 성서 번역자회를 새롭게 구성하여 신약 개정 작업에 착수하여 1906년 공인 역본 신약전서를 인쇄하였고 이어 구약 성서 번역에 착수, 1910년 4월 번역을 끝내고 1911년 3월에 구약전서 및 신․구약 합본 성경전서를 인쇄하였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비로소 한글로 번역된 성서 전체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신․구약 성경전서는 한국개신교회 선교 개척을 담당했던 내한 1세대 선교사들과 이들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개종한 1세대 토착 교인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제1세대' 한글 성서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1세대' 한글 성서로 1910년 번역을 끝낸 신․구약 성서는 다음 세 가지 역사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성서 번역을 통해 복음의 토착화가 이루어졌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성육화(成肉化) 과정처럼 성서 속에 담긴 기독교 신앙과 신학적 의미가 한글 번역을 통해 한국의 토착 언어와 종교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둘째, 성서 번역과 인쇄를 통해 한글의 과학적 연구와 실용화가 이루어졌다. 초기 내한 선교사들은 성서를 비롯한 기독교 문서를 한글로 번역, 출판하였는데 그 결과 세종대왕 창제 이후 4백 년 넘게 긴 잠을 자고 있던 한글의 실용화와 연구가 이루어져 한글이 ‘한국민의 생활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셋째, 성서 번역과 인쇄, 반포 사업을 통해 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이 촉진되었다. 외국의 3개 성서공회, 한국 선교에 임하고 있던 6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회가 조직한 성서위원회는 물론 성서 번역자회도 초교파적으로 조직, 운영되었는데 이를 통해 교파주의를 극복한 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이 가능하였고 그 결과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는 ‘하나의 성서' 전통을 수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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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과 추방, 구약 신학적 검토

          왕대일(Tai-il Wang)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5 Canon&Culture Vol.9 No.1

          구속사 신학의 양 축은 해방과 추방이다. 구속사 신학의 얼개는 약속에서 성취로 가는 여정이다. 출애굽기의 구속사는 창세기 15장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하는 현장이다. 문제는 창세기 15장이 전하는 구속사가 해방을 추방으로, 추방을 해방으로 제시하고 있다는데 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사백 년 동안 살던 고장에서 나와서 아브라함이 살던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그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고향이란 과연 어디일까? 구속사가 말하는 `돌아옴`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조신앙에서 추방은 심판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에덴의 동쪽으로 내쫒으셨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에덴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다. 구속사 신학은 이 추방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처방이다. 에덴으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하나님의 품으로는 돌아가는 길을 구속사로 개척하셨다. 그 구속사가 신명기 신학에서는 약속에서 정복으로 가는 과정으로 제시된다. 신명기 7장은 해방과 추방을 이중주로 연주한다. 이스라엘에게는 해방을,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에게는 추방을 안긴다. 가나안의 원주민들이 정의롭지 못해서 추방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신앙의 올무가 되기 때문이다. 신명기사가(왕하 17, 25장)는 이 추방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적용시켰다. 해방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추방되는 당사자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주전 6세기 초 남왕국 유다 백성들은 해방의 하나님을 붙들고자 했다. 이스라엘을 추방시키려는 하나님의 의도에 맞서 하나님을 해방의 주님으로 단정하였다.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대결은 추방과 해방의 갈등을 신학론적으로 전개한 경우이다. 추방이 끝은 아니다. 추방은 역설적이게도 새 해방이다. 예레미야는 추방된 자리에서 소수자로 생존하는 삶을 선포한다. 에스겔은 고향의 의미를 땅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의 현존이 있는 곳에서 찾았다. 추방은 하나님의 현존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거기에 디아스포라의 신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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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니림과 왕대일의 구약신학 비교 연구

          강성열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9 Canon&Culture Vol.13 No.1

          크니림은 가블러의 알트도르프 대학 교수취임강연(1787년)을 기점으로 하여 구약신학이 교의학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연구 분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음을 강조한다. 그는 또한 구약성서 안에 매우 다양한 신학들과 개념들이 뒤섞여 있지만.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 개념이나 주제가 존재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그것들을 단순히 병렬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구약신학의 본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리어 그는 그처럼 다채로운 신학들과 개념들이 어떻게 서로 관련되어 있는지를 상호 비교 방법론을 통해서 밝혀내는 작업이야말로 구약신학의 과제임을 천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크니림은 구약성서의 다양한 신학들과 이념들 또는 주제들을 조직신학과도 같은 체계화 작업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 구약신학의 올바른 과제요 방법론임을 역설한다. 그렇다고 해서 크니림이 그러한 체계화 작업의 기본 틀을 조직신학으로부터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반대로 그는 구약성서 자체로부터 비롯된 체계적인 분석의 기준을 활용하여 체계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보며, 이스라엘 민족이 우리들과는 다른 그들 나름의 체계화 논리를 구약성서에 담아내고 있기에 그러한 체계화 작업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면서 그는 구약성서의 다채로운 그림들을 서로 비교하는 방식을 통해서 체계화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정의와 의에 기초한 야웨의 우주적인 통치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니림은 신구약성서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기초하여 두 성서의 대등한 관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 이 과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구약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왕대일의 구약신학은 이제껏 설명한 크니림의 구약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구약신학의 본질과 정의, 구약신학 방법론, 그리고 구약신학의 과제와 전망 등에 있어서 왕대일은 크니림의 발자취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왕대일이 크니림의 구약신학을 자신의 모델로 설정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구약신학하기를 수행하면서, 크니림의 구약신학이 가진 한계점이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능하다면 크니림의 한계와 문제점을 조금 더 비판적인 시각에서 살펴보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구약신학의 미래를 개척하려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라 믿는다. R. P. Knierim emphasizes that, after the 1787 inaugural lecture of J. P. Gabler as a professor of theology in Altdorf University, the separation of biblical theology and dogmatic theology began. According to his argument, there are many different theologies in the Old Testament, and the substantive plurality of the Old Testament's theologies renders it impossible for us to understand it in terms of unity under a singular theme. Though many Old Testament theologians have published their works in which theological notions of the Old Testament were merely juxtaposed, they have turned out to be unsuccessful. Knierim argues that the Old Testament speak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Yahweh and reality, and there are three essential realms in the Old Testament reality: the cosmic and natural world (cosmos and nature), corporate human existence (history and society), individual existence (existentiality). Old Testament Theology must interpret how Yahweh is related to each of these realms. In so doing, the most fundamental theological aspect is Yahweh's universal dominion in justice and righteousness based on creation theology. Furthermore, Knierim argues that Old Testament Theology must systematize the various Old Testament theological traditions analyzed by exegesis. For that reason, he calls Old Testament Theology as Systematic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Studies. Finally, the task of Old Testament Theology should also provide a fresh basis for examining the relationship of the two testaments of the Christian Bible, including the role of Jesus Christ in this relationship. Tai-Il Wang follows in the footsteps of his master Knierim faithfully. He opposes to the traditional approach dissolving the multiple theological outlooks into a central theological structure around which the whole Old Testament is organized. Rather, he argues that creation and universal perspective must be regarded as the most fundamental theological criteria for talking about Yahweh's relationship to the world. He also adopt Knierim's systematizing task of Old Testament Theology and examining task of the relationship of the two testaments, though there may be some limits and problems in Knierim's Old Testament Theology.

        • KCI등재후보

          성서 신학, 더 이상 조직 신학의 토대가 아닌가?

          김동수(Dongsoo Kim)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3 Canon&Culture Vol.7 No.1

          본 논문은 신학 분과에 있어서 성서 신학과 조직 신학에 있는 불통의 문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데서 출발한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최근 200여 년에 일어난 일이다. 그 이전에는 신학자는 곧 성서 해석자였고, 성서 주석자는 곧 신학자였다. 그런데 18세기 말 가블러가 성서 신학과 교의 신학을 나눈 다음, 급기야 나중에는 성서와 상관없는 조직 신학, 신학이 없는 성서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철의 장막”을 문제로 본 성서학자들은 성서 신학을 제창했고, 조직 신학자들은 성서적 조직 신학을 외쳤다. 본 논문은 이 중에서 조직 신학자인 미로슬라브 볼프(M. Volf)의 성서를 신학적으로 해석한 것을 분석, 평가한 것이다. 분석 결과 그의 성서적 신학은 성서 여기저기에 있는 진리를 조직 신학자의 입맛에 맞게 요리해 내는 것도 아니요, 또 ‘성서 본문 주석-성서 신학-조직 신학'에 이르는 단계를 거치는 단절된 것을 연결하는 신학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그의 신학은 성서의 진리를 오늘의 되살리는 것으로 여기에는 주석과 해석과 실천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신학하기는 성서 신학과 조직 신학과 단절은 물론 신학(이론)과 윤리(실천)의 단절도 좁혀준다. 이러한 볼프의 성서의 신학적 해석은 성서 신학과 조직 신학을 연결하거나 이것을 하나의 해석 체계로 만드는 하나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성서의 진리를 신학화를 통해 오늘의 상황과 삶까지 연결시켜주는 것으로 신학 내에서의 간학문적 연구의 중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학하기가 성서 신학과 조직 신학 사이에 그동안 있어왔던 “철의 장막”을 제거하는 하나의 시도라고 볼 때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This paper starts from the understanding that it is not normal for biblical scholars to have little conversation with (systematic) theologians and vice versa. This is a comparatively recent phenomenon for last 200 years in entire Christian history. Until that time, theologians were the interpreters of the Scripture; exegetes were theologians. Then W. Gabler distinguished biblical theology from dogmatic theology in late 18th century. This resulted in both systematic theology with having nothing to do with biblical theology and biblical theology of having no interest in theology. As a result there was “iron curtain” between them. It was a problem. That led to bear both biblical theologians with advocating biblical theology and theologians based on the Scripture. M. Volf is prominent among such systematic theologians, in that he has done his theology based on his principle of theological reading of the Bible more thoroughly than any other scholar of our time. His method is neither simply to collect data from the Bible nor to follow the model of ‘exegesis-biblical theology-systematic theology.' Instead, he proposed a hermeneutics including all of them. He wants to make biblical truths for the practices for our time. This makes the gap shorten both between biblical and systematic theology an and between theology and ethics. This kind of biblical/theological hermeneutics is a model for one hermeneutics which include biblical theology and systematic theology. Further, it connects theory into practice. In short, Volf was, I believe, successful in the interdisciplinary work between biblical theology and systematic theology. This can make the “iron curtain” posed between them be discar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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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셰긔(1906/1911년)

          민영진(Young Jin Min)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0 Canon&Culture Vol.5 No.2

          한국어 완역 『구약젼셔』(1911년)에 실린 창세기는 1906년에 낱권으로 출판되었다. 한국성서위원회 번역 창세기 이전에 성공회에서 한문역 『舊約撮要』에서 창세기를 발췌 번역하여 한문·한글 대조의 『舊約撮要』(1899년)를 펴낸 적이 있다. 완역 창세기로는 1906/1911년의 창세기가 한국 최초의 창세기 번역이다. 먼저 서지 사항을 살폈고, 편집 특징도 함께 고찰하였다. 장·절 구분, 장·절의 숫자 표시, 인명에 외줄, 지명에 겹줄, 음역된 낱말에 물결줄로 표시하여 구별한 것, 문단을 나눈 것 등은 한 세기 전의 경전 출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단히 현대적인 편집이라고 볼 수 있다. 페이지 분량을 고려하여 구약 2권, 신약 1권으로 분책하여 편집한 것은 아직 성경 종이가 희귀했던 당시의 사정을 반영하는 것 같다. 그 후 이 문제는 곧바로 해결되어 구약의 경우 분권 편집 문제는 해결되었다. 번역 특징은 무리한 축자 역을 피하고 한국어 표현을 따라 주어의 생략, 소유격 접미어의 생략(省略) 등의 현상이 보이고 반대로, 대명사 사용이 제한되어 대명사를 실명사로 바꾸어 번역한 첨가(添加)의 예가 자주 보인다. 극히 드문 현상이지만 본문 변경(變更)의 예도 볼 수 있었다. 와전된 히브리어 본문 번역에서는 그 결함을 번역에서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문맥을 바꾸어 조화시키는 현상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히브리어 특유의 표현이나 관용구를 번역할 때 무리한 축자 역으로 의미 전달이 효과적이지 못한 LXX나 KJV에 비해 『구역』이 번역에서 더 효과적인 의미 번역을 하였음을 높게 평가하였다. 주석적 문제와 관련된 본문 번역에서는 우리말 번역이 어떤 주석을 따랐는지를 여섯 가지 경우를 예로 들어 분석해 보았다. 『창세기』 번역과 MT의 창세기 비교 결과는『창세기』가 MT를 거의 그대로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창세기 이외의 다른 책 번역(예를 들면, 삼상 25:21-22 번역 본문)에서는 『구역』이 MT를 심하게 이탈한 흔적도 보인다. 이것은 본문비평의 결과는 아니다. 이런 현상은 『구역』이 사용한 구약 대본의 본문 전승에 관한 연구가 따로 필요함을 말해준다. The book of Genesis included in the complete OT translation, 『구약젼셔』(Old Testament in Korean, 1911) was initially published in 1906 as a Scripture portion. Prior to the Genesis translated by the Bible Committee of Korea, the Anglican Church translated excerpts of Genesis from the 『舊約撮要』(Old Testament Selection), and published the Old Testament Selection in Korean-Chinese diglot format in 1899. The work acknowledged as the first complete translation of Genesis in Korea is the book of Genesis translated in 1906/1911. In this paper, the bibliographic data was reviewed along with the characteristics in its editing. Different formatting of chapter and verse, numbering of the chapter and verse numbers, underlining people' names with single vertical lines and place names with double lines, indicating transliterated nouns with vertical swung dashes, paragraphing and others show that it has made very modern editorial arrangements, considering that it is a Scripture published a century ago. Publishing of the entire Bible into three volumes for the Old Testament and one volume for the New Testament appears to reflect the consideration for the page extent and the scarcity of paper during those days. This problem was taken care of soon afterwards, and the need to edit the Old Testament in separate volumes was resolved. In terms of translation, translators appear to have avoided doing a literal translation where it was inappropriate, subtracted subjects, genitive suffixes, and others to translate into natural Korean expressions. On the contrary, cases of additions where pronouns are changed to actual nouns due to the limitations in the use of pronouns, are often found in the text. Though it appeared very rarely, a case of text alteration was found as well. In the translation of the Hebrew text that was distorted during its transmission, the flaws were not reflected as they are in the translation, but changed its context to harmonize the text. However, compared with the LXX or KJV which does not effectively communicate the meaning due to extensive use of literal translation for expressions of Hebraism or Hebraic idioms, the Ancient Korean Version is highly recognized that it conveys the meaning more effectively. In cases where the text is related to exegetic issues, six sample cases were analyzed to identify the exegesis adopted for the Korean translation. Comparison of the Korean Genesis(1906/1911) and the Genesis of the MT revealed that the Korean Genesis followed the text of MT almost as it is. In the translation of books other than the Genesis such as the text of First Samuel 25:21-22, there are also places where the Ancient Korean Version diverges from the MT. These are not results from textual criticism. They rather signify the need to carry out an individual study on the textual transmission of OT source texts adopted for the Ancient Korean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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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셩경젼셔』의 한국 문화사적 가치에 관한 연구

          소기천(Ky-Chun So)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0 Canon&Culture Vol.5 No.2

          1911년 『셩경젼셔』는 『신약젼셔』 1권과 『구약젼셔』 12권으로 발행된, 당시 대영성서공회가 최초로 성경 번역위원회를 조직하여 번역한 성경이다. 본 논문은 『신약젼셔』를 중심으로 초기 한국 교회의 문화사적 유산을 연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국역성경은 이미 19세기 말에 중국에서 번역된 로스 역인 『예수셩교젼셔』가 출판되었지만 순수 우리말 성경을 번역하여 출판하였다는 점에서 문화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본 논문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도태로 국역 성경의 농경 문화, 결혼 문화, 장례 문화, 한문 문화, 군사 문화, 생활 문화 등의 초기 한국 교회의 삶의 전반에 걸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던 당시의 성도에게 정서적으로 공감이 가는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연구하였다. 또한 본 논문은 당시 혈연 중심의 한국인에게 『성경젼셔』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이해하여 성경의 세계상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초기 한국 교회가 한국인을 도와줘 기독교의 초석을 놓는 데 기여한 점이 크다는 사실을 연구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은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가족에 관한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를 올바르게 이해하여 『셩경젼셔』가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하나의 신앙 공동체적 연대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연구했다. The Complete Bible in Korean published in 1911 was the first Bible that the British Bible Society in Korea established an biblical translation committee and translated into Korean with two volumes of the Old Testament in Korean(1911) and one volume of the New Testament in Korean(1911). This paper focused on studying of Korean some cultural historical heritages of early Korean churches on the bases of the New Testament. In spite of publishing the Ross translation, the Jesus Holy Bible, in China at the end of 19th century, The Complete Bible in Korean(1911) is highly recognized in a cultural historical value, because it was the first Korean translation of the Bible by Korean Bible Society. This paper studied some agricultural heritages, marriage cultures, Chines character cultures, military cultures, and natural cultures with various ways in which early Korean churches experienced all over the life styles and many church members of them deeply sympathized due to they are speaking in Korean. This paper also studied some facts that early Korean churches helped to lead many Koreans accepted The Complete Bible in Korean(1911) without any negative feeling, since Koreans live together in one racial tradition since, and built the foundation of Christianity in Korea in order to reach an biblical world view. Finally, This paper studied some facts that The Complete Bible in Korean(1911) contributed building some unity of one faith community in familia dei because it was interested in Korean unique feelings that the Bible theologically expressed people and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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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겔의 계약 신학

          김선종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5 Canon&Culture Vol.9 No.1

          정치와 경제와 종교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들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이들을 분명하게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고, 이들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라는 주장도 있다. 히브리 낱말 ‘브리트'는 종교적인 뜻과 함께 정치적인 뜻도 지니고 있다. 종교의 맥락에서 사용될 때에는 주로 ‘계약'이나 ‘언약'으로, 정치적인 의미를 가리킬 때에는 ‘조약'으로 번역된다. 계약 신학은 성서신학의 핵심을 이루는데,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도 계약의 관계로 묘사되고, 이러한 관계는 구약 주변세계의 정치 조약 체결양식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에스겔 16-17장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에스겔서 전체에서 18번 나타나는 ‘브리트'가 이 두 장에만 12번 나타나며, 두 장에 각각 6번씩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브리트'는 16장에서는 종교의 맥락에서, 17장에서는 정치의 맥락에서 사용되는데, 이들 두 장은 앞에서 나온 표현을 다시 언급하는 특별한 편집기법(Wiederaufnahme)에 따라 하나의 단락으로 여길 수 있다. 에스겔서의 최종 편집자는 이러한 두 장을 하나의 단락으로 구성하고, 17장에서 느부갓네살과 맺은 계약과 하나님의 계약을 함께 언급함으로써, 종교와 정치가 가지고 있는 관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기술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의도적 모호성의 기법으로 하여금 저자는 모호한 세상에 살고 있는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참된 주인이 누구인지 고백하게 한다. 이 글에서는 에스겔 16-17장에 나타난 계약 신학을 파악함으로써, 포로기에 활동한 예언자가 정의하는 정치와 종교 사상을 계약 신학의 빛에서 밝히려고 시도한다. Politics, economy, and religion are the essential elements that make up the human life, and cannot be detached from one another. According to their definitions, one thinks that they should be clearly separated, the other asserts that they are two sides of the same coin. The Hebrew word běrît(tyrb) has both religious and political meanings. When it is used in the context of religion, it is translated as covenant or promise; when it appears in the context of politics, it is translated as treaty. Covenant theology is essential in the biblical theology in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people is described as a covenant relationship. This relationship is already reflected in a political treaty formula in the Ancient Near East. This article pays special attention to Ezekiel 16-17 because tyrb that appears 18 times in the book of Ezekiel is used 12 times in these two chapters(6 times in each chapter). Also, tyrb in Ezekiel 16 is employed in a religious context whereas it is in political usage in Ezekiel 17. These two chapters may be considered as one unit by a redactional technique called Wiederaufnahme that takes again the same expression appearing in a previous passage. The final redactor of the book of Ezekiel binds these two chapters as one and utters a covenant that is made with Nebuchadnezzar together with the one with God in Ezekiel 17. This textual arrangement intentionally makes the relationship between religion and politics ambiguous. Ironically this technique of intentional ambiguity leads the reader living in an ambiguous world to confess who the real God of the history is. By analyzing Ezekiel 16-17 in the light of covenant theology, we try to reveal religious and political thoughts of the prophet Ezekiel who worked in an exilic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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