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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ther’s Theology of the Word in the Exposition of Psalms 1-25 at Coburg (1530)

          Batka ?ubomir,이윤정(번역자)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7 Canon&Culture Vol.11 No.2

          마르틴 루터에게 시편은 그의 전 생애 동안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거룩한 지혜의 끊임없는 원천이었다. 루터가 시편을 성령에 의해 영감된 본문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루터의 이해 속에서 시편은 어느 시대에나 모든 신자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신학적인 교리를 포함하고 있다. 루터는 그의 평생 동안 두고두고 시편을 주해하였다. 루터의 후기 시편 주해는 1530년 코부르그에서 쓴 『시편 1-25편 주석』(The Exposition of Psalms 1-25)에 나타난다. 이 주석은 그 분량에 있어서 『첫 시편 강해』(Dictata super Psalterium, 1513-1516)와 『두 번째 시편 강해』(Operationes in Psalmos, 1519-1521) 만큼 방대하지 않지만, 여전히 개혁자로서 시도한 진정한 신학적 연구로 평가될 수 있다. 그의 작업은 아우구스부르그 의회 (Diet of Augsburg)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루터가 코부르그에서 쓴 『시편 1-25편 주석』은 아직까지 연구되지 않았던 보다 상세한 루터의 신학적 분석에 대한 귀중한 본문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루터 신학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그가 첫 시편들에 대하여 시도한 다른 주해들과 여기에 나타난 그의 신학적 사상을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분석은 말씀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교리에 근거하여 세 부분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루터는 시편 1-25편의 주석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는다. 이것은 이 작품이 짧으며 신학적 진술을 하는 것이 배경을 이루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논문에서 삼위일체적 구조를 지지하는 베이어(Oswald Bayer)의 논지를 사용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충만하게 그리고 온전하게 제공하시는 성경적 약속과 선물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유효하게 우리와 함께 소통하신다. 베이어는 한편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영원한 관계를 명시하려는 시도 이외에도 삼위일체 신학을 위한 대안을 제공한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연이어 시대를 열어가는 가설을 제공한다. 베이어는 하나님을 “시인”으로 보는, 소위 “시학적 신학(poetological theology)”의 견해를 발전시킨다. “시학적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의 실체성을 포착한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과 연설에서 시인이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 성자, 성령의 행위와 관련된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묘사는 루터의 강의들(Operationes) 가운데 시편 9:7에 관한 그의 주해로 뒷받침될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안에서 우리가 그 정신을 이해하기 원한다면 명사들보다는 동사들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 논문은 첫 번째 부분에서 루터가 주석을 썼던 배경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뒤따르는 세 부분에서 하나님 행동의 특성을 소개 할 것이며,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과 그의 영적 삶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실천하는 삶과 하나님과 소통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코부르그 시편 주석』에서 나타난 루터의 신학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For Martin Luther, the Book of Psalms was a never-ending source of divine wisdom which he cherished during his entire life. As he believed the psalms to be texts inspired by the Holy Spirit, in Luther’s understanding they contain the word of God and theological doctrine applicable to the life of every individual in any era. Luther returned to exposition of psalms throughout his life. In a later period such exposition can be found in the Exposition of Psalms 1-25, which Luther wrote at Coburg in 1530. Even though this exposition, in terms of its length, does not compare to Luther’s extensive lectures, such as the first and second lecture on the psalms (Dictata super Psalterium, 1513-1516, and Operationes in Psalmos, 1519-1521), it still is an authentic theological work of the reformer. The work dates back to the time of the Diet of Augsburg and offers a valuable textual basis for a more detailed theological analysis, which has not until now been the subject of research. The analysis of Luther’s theology will make it possible to compare Luther’s theological thought revealed here with other expositions of the first psalms. The analysis will be divided into three sections based on the doctrine of Trinity[1] as God the Father, Son and the Holy Spirit speaking. Although Luther does not specifically address the trinitarian doctrine in the Exposition of Psalms 1-25, which can be explained by the shortness of this piece and its context, we will use the thesis of Oswald Bayer to support such structure in this article: “The divine being communicates itself with final validity as a gift and testamental promise in which he himself gives himself to us fully and completely.”[2] Bayer offers an alternative for a theology of the Trinity other than an attempt at specifying the timeless relationship between the Father, Son and the Spirit on the one hand, or an assumption of subsequently following epochs of the Father, Son and the Spirit on the other hand. Oswald Bayer develops the idea of the so-called “poetological theology,” which sees God as the “Poet”, thus capturing “the identity of divine speech and action; in his spoken action and performing speech [God] is a poet.”[3] Thus laid out, a depiction of God’s actions with regard to the actions of God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can be supported by Luther’s comment on Psalm 9:7 in Operationes, which states that “in the Holy Scripture one has to pay more attention to the verbs than to the nouns, if one wants to understand the Spirit.”[4] In the first section, this article will relate the context in which Luther wrote the exposition. The subsequent three sections will then introduce the character of divine action and the final part will focus on the word of God in relation to man and his spiritual life. It will offer a glance at the praxis of living out one’s faith and following Christ in a communicative character based on the word of God. It can be assumed that this procedure will reveal Luther’s theology also in the Coburg exposition of psalms.

        • KCI등재후보

          성서 신학, 더 이상 조직 신학의 토대가 아닌가?

          김동수(Dongsoo Kim)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3 Canon&Culture Vol.7 No.1

          본 논문은 신학 분과에 있어서 성서 신학과 조직 신학에 있는 불통의 문제를 정상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데서 출발한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최근 200여 년에 일어난 일이다. 그 이전에는 신학자는 곧 성서 해석자였고, 성서 주석자는 곧 신학자였다. 그런데 18세기 말 가블러가 성서 신학과 교의 신학을 나눈 다음, 급기야 나중에는 성서와 상관없는 조직 신학, 신학이 없는 성서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철의 장막”을 문제로 본 성서학자들은 성서 신학을 제창했고, 조직 신학자들은 성서적 조직 신학을 외쳤다. 본 논문은 이 중에서 조직 신학자인 미로슬라브 볼프(M. Volf)의 성서를 신학적으로 해석한 것을 분석, 평가한 것이다. 분석 결과 그의 성서적 신학은 성서 여기저기에 있는 진리를 조직 신학자의 입맛에 맞게 요리해 내는 것도 아니요, 또 ‘성서 본문 주석-성서 신학-조직 신학’에 이르는 단계를 거치는 단절된 것을 연결하는 신학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다. 그의 신학은 성서의 진리를 오늘의 되살리는 것으로 여기에는 주석과 해석과 실천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신학하기는 성서 신학과 조직 신학과 단절은 물론 신학(이론)과 윤리(실천)의 단절도 좁혀준다. 이러한 볼프의 성서의 신학적 해석은 성서 신학과 조직 신학을 연결하거나 이것을 하나의 해석 체계로 만드는 하나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성서의 진리를 신학화를 통해 오늘의 상황과 삶까지 연결시켜주는 것으로 신학 내에서의 간학문적 연구의 중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학하기가 성서 신학과 조직 신학 사이에 그동안 있어왔던 “철의 장막”을 제거하는 하나의 시도라고 볼 때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This paper starts from the understanding that it is not normal for biblical scholars to have little conversation with (systematic) theologians and vice versa. This is a comparatively recent phenomenon for last 200 years in entire Christian history. Until that time, theologians were the interpreters of the Scripture; exegetes were theologians. Then W. Gabler distinguished biblical theology from dogmatic theology in late 18th century. This resulted in both systematic theology with having nothing to do with biblical theology and biblical theology of having no interest in theology. As a result there was “iron curtain” between them. It was a problem. That led to bear both biblical theologians with advocating biblical theology and theologians based on the Scripture. M. Volf is prominent among such systematic theologians, in that he has done his theology based on his principle of theological reading of the Bible more thoroughly than any other scholar of our time. His method is neither simply to collect data from the Bible nor to follow the model of ‘exegesis-biblical theology-systematic theology.’ Instead, he proposed a hermeneutics including all of them. He wants to make biblical truths for the practices for our time. This makes the gap shorten both between biblical and systematic theology an and between theology and ethics. This kind of biblical/theological hermeneutics is a model for one hermeneutics which include biblical theology and systematic theology. Further, it connects theory into practice. In short, Volf was, I believe, successful in the interdisciplinary work between biblical theology and systematic theology. This can make the “iron curtain” posed between them be discarded.

        • KCI등재

          ‘제1세대 성서’를 통해 이루어진 복음의 토착화

          이덕주(Deok Joo Rhie)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0 Canon&Culture Vol.5 No.2

          이 글은 1910년 번역을 끝내고 이듬해 출판된 신?구약 한글 성서의 번역과정을 정리하고 그 100주년의 역사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1870-1880년대 중국 만주에서 시작된 한글 성서 번역과 출판은 한국 개신교회 복음 선교의 단초를 제공했고 1885년 일본에서 인쇄된 한글 성서를 갖고 내한했던 개척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곧바로 성서 공동 번역에 착수하여 1887년 마가복음을 인쇄하였다. 이를 계기로 선교사들이 성서 번역자회를 조직하여 처음엔 일본과 만주에서 번역된 성서를 교정하는 형태로 진행하다가 1893년 상임성서실행 위원회와 번역자회를 새로 조직하면서 개인 역→번역자회 역→위원회 역→시험 역→공인 역으로 이루어진 번역 원칙과 방법론을 제정하였다. 이런 원칙하에 전면적인 번역 작업에 착수하여 1900년에 시험 역본과 개인 역본이 혼합된 형태의 신약전서를 인쇄하였다. 이어서 1904년 영국과 미국,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와 한국 선교에 착수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회들이 참여한 한국성서위원회를 조직하고 체계적인 성서 번역과 인쇄, 반포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와 함께 한국인 번역자들도 참여하는 성서 번역자회를 새롭게 구성하여 신약 개정 작업에 착수하여 1906년 공인 역본 신약전서를 인쇄하였고 이어 구약 성서 번역에 착수, 1910년 4월 번역을 끝내고 1911년 3월에 구약 전서 및 신?구약 합본 성경전서를 인쇄하였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비로소 한글로 번역된 성서 전체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신?구약 성경전서는 한국개신교회 선교 개척을 담당했던 내한 1세대 선교사들과 이들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개종한 1세대 토착 교인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제1세대’ 한글 성서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1세대’ 한글 성서로 1910년 번역을 끝낸 신?구약 성서는 다음 세 가지 역사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성서 번역을 통해 복음의 토착화가 이루어졌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성육화(成肉化) 과정처럼 성서 속에 담긴 기독교 신앙과 신학적 의미가 한글 번역을 통해 한국의 토착 언어와 종교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둘째, 성서 번역과 인쇄를 통해 한글의 과학적 연구와 실용화가 이루어졌다. 초기 내한 선교사들은 성서를 비롯한 기독교 문서를 한글로 번역, 출판하였는데 그 결과 세종대왕 창제 이후 4백 년 넘게 긴 잠을 자고 있던 한글의 실용화와 연구가 이루어져 한글이 ‘한국민의 생활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셋째, 성서 번역과 인쇄, 반포 사업을 통해 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이 촉진되었다. 외국의 3개 성서공회, 한국 선교에 임하고 있던 6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회가 조직한 성서위원회는 물론 성서 번역자 회도 초교파적으로 조직, 운영되었는데 이를 통해 교파주의를 극복한 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이 가능하였고 그 결과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는 ‘하나의 성서’ 전통을 수립할 수 있었다.

        • KCI등재

          크니림과 왕대일의 구약신학 비교 연구

          강성열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9 Canon&Culture Vol.13 No.1

          크니림은 가블러의 알트도르프 대학 교수취임강연(1787년)을 기점으로 하여 구약신학이 교의학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연구 분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음을 강조한다. 그는 또한 구약성서 안에 매우 다양한 신학들과 개념들이 뒤섞여 있지만.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 개념이나 주제가 존재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그것들을 단순히 병렬 소개하는 것만으로는 구약신학의 본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리어 그는 그처럼 다채로운 신학들과 개념들이 어떻게 서로 관련되어 있는지를 상호 비교 방법론을 통해서 밝혀내는 작업이야말로 구약신학의 과제임을 천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크니림은 구약성서의 다양한 신학들과 이념들 또는 주제들을 조직신학과도 같은 체계화 작업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 구약신학의 올바른 과제요 방법론임을 역설한다. 그렇다고 해서 크니림이 그러한 체계화 작업의 기본 틀을 조직신학으로부터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반대로 그는 구약성서 자체로부터 비롯된 체계적인 분석의 기준을 활용하여 체계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보며, 이스라엘 민족이 우리들과는 다른 그들 나름의 체계화 논리를 구약성서에 담아내고 있기에 그러한 체계화 작업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면서 그는 구약성서의 다채로운 그림들을 서로 비교하는 방식을 통해서 체계화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정의와 의에 기초한 야웨의 우주적인 통치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니림은 신구약성서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기초하여 두 성서의 대등한 관계를 집중적으로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 이 과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구약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왕대일의 구약신학은 이제껏 설명한 크니림의 구약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구약신학의 본질과 정의, 구약신학 방법론, 그리고 구약신학의 과제와 전망 등에 있어서 왕대일은 크니림의 발자취를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왕대일이 크니림의 구약신학을 자신의 모델로 설정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구약신학하기를 수행하면서, 크니림의 구약신학이 가진 한계점이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가능하다면 크니림의 한계와 문제점을 조금 더 비판적인 시각에서 살펴보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구약신학의 미래를 개척하려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라 믿는다. R. P. Knierim emphasizes that, after the 1787 inaugural lecture of J. P. Gabler as a professor of theology in Altdorf University, the separation of biblical theology and dogmatic theology began. According to his argument, there are many different theologies in the Old Testament, and the substantive plurality of the Old Testament’s theologies renders it impossible for us to understand it in terms of unity under a singular theme. Though many Old Testament theologians have published their works in which theological notions of the Old Testament were merely juxtaposed, they have turned out to be unsuccessful. Knierim argues that the Old Testament speak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Yahweh and reality, and there are three essential realms in the Old Testament reality: the cosmic and natural world (cosmos and nature), corporate human existence (history and society), individual existence (existentiality). Old Testament Theology must interpret how Yahweh is related to each of these realms. In so doing, the most fundamental theological aspect is Yahweh’s universal dominion in justice and righteousness based on creation theology. Furthermore, Knierim argues that Old Testament Theology must systematize the various Old Testament theological traditions analyzed by exegesis. For that reason, he calls Old Testament Theology as Systematic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Studies. Finally, the task of Old Testament Theology should also provide a fresh basis for examining the relationship of the two testaments of the Christian Bible, including the role of Jesus Christ in this relationship. Tai-Il Wang follows in the footsteps of his master Knierim faithfully. He opposes to the traditional approach dissolving the multiple theological outlooks into a central theological structure around which the whole Old Testament is organized. Rather, he argues that creation and universal perspective must be regarded as the most fundamental theological criteria for talking about Yahweh’s relationship to the world. He also adopt Knierim’s systematizing task of Old Testament Theology and examining task of the relationship of the two testaments, though there may be some limits and problems in Knierim’s Old Testament Theology.

        • KCI등재후보

          ‘제1세대 성서’를 통해 이루어진 복음의 토착화 -한글 성서 최초 완역 100주년의 역사신학적 의미-

          이덕주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0 Canon&Culture Vol.4 No.1

          This is the centennial year of the translation of the whole scriptures, New and Old Testaments into Korean language. In the beginning of the history of the Christian mission in Korea was the works of translation, printing and distribution of the Korean Bible tracts by the foreign missionaries and the Korean Christians in Manchuria of China before landing of the missionaries on Korea. And the pioneer missionaries, H. G. Appenzeller of the Methodist Church and H. G. Underwood of the Presbyterian Church landing at Korea on the Easter day of 1885 in possession of the Korean version of St. Mark printed in Japan, started their mission works together with the revision and translating of the Bible into Korean. They succeeded to print Korean revised version of St. Mark in 1887 when they, with other missionaries in Korea, formed the Permanent Committee of Bible and the Board of Translator for the future Bible works in Korea. In 1893 the missionaries in Korea renewed the Bible Committee and the Board of translator as the more enlarged interdenominational bodies and prepared the basic principle of translation of the Bible. In 1900 they finished translating and could print the New Testament as in both of the individual and the tentative versions. From then the board members began to revise the individual versions of the NT and could provide a tentative version of whole NT in 1904 when the Bible Committee was reorganized with the representatives of three foreign Bible Societies and six missions of the Methodist and the Presbyterian Churches, the board of translators with the foreign missionaries and the native Christians. The members of the Committee and the board took impetus to revise the tentative version of NT so could print the first authorized version of NT in 1906. Thence board members made haste to translate the Old Testament scriptures and could report of the completion of translation in 1910 and printing of the Korean OT and with the NT in one volume for the first time in 1911. It was thirty five years since the Scotland missionaries ventured to translate the Gospel into the Korean language in Manchuria and twenty five years since the first protestant missionaries reached Korean shores with a Korean version of St. Mark. So thus the Korean people and the Christians were able to read in their own tongue the whole Bible, the first generation Korean Bible, a product of cooperation of the first-coming missionaries and the first-converted native Christians in Korea. We can find in this first generation Korean Bible three historico-theological meanings. Firstly, there came to be indigenization of the Gospel in Korean religious culture through translation of the Bible into the Korean language. Namely the incarnation of the word to the life and the culture of the Korean people was done through the introduction and the practice of the Biblical messages in Korean linguistic form. Secondly, the Korean vernacular Hangul began to be studied scientifically and treated as an authorized language trough translation and printing of the Bible in Korean. From the early days of the Christian mission the foreign missionaries found the scientific superiority and efficiency in Hangul and determined to publish all the Christian books in Hangul. So it awoke from a long sleep of four hundred years and took successfully the position of an authorized popular language of the Korean people. Thirdly, Bible works initiated and provided the basic ground of ecumenical movement in Korea. Mission works in Korea began with the cooperation between the Methodist Appenzeller and the Presbyterian Underwood in translation of St. Mark and building of the Bible Committee and the Board of Translators as an interdenominational body. Thence the ecumenical work embracing of translation, publishing and distribution of the Korean Bible help Korean Church to sustain the tradition of ‘one Bible for one Church’ in Korea. 이 글은 1910년 번역을 끝내고 이듬해 출판된 신․구약 한글 성서의 번역과정을 정리하고 그 100주년의 역사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1870-1880년대 중국 만주에서 시작된 한글 성서 번역과 출판은 한국 개신교회 복음 선교의 단초를 제공했고 1885년 일본에서 인쇄된 한글 성서를 갖고 내한했던 개척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곧바로 성서 공동 번역에 착수하여 1887년 마가복음을 인쇄하였다. 이를 계기로 선교사들이 성서 번역자회를 조직하여 처음엔 일본과 만주에서 번역된 성서를 교정하는 형태로 진행하다가 1893년 상임성서실행위원회와 번역자회를 새로 조직하면서 개인 역→번역자회 역→위원회 역→시험 역→공인 역으로 이루어진 번역 원칙과 방법론을 제정하였다. 이런 원칙하에 전면적인 번역 작업에 착수하여 1900년에 시험 역본과 개인 역본이 혼합된 형태의 신약전서를 인쇄하였다. 이어서 1904년 영국과 미국,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와 한국 선교에 착수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회들이 참여한 한국성서위원회를 조직하고 체계적인 성서 번역과 인쇄, 반포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와 함께 한국인 번역자들도 참여하는 성서 번역자회를 새롭게 구성하여 신약 개정 작업에 착수하여 1906년 공인 역본 신약전서를 인쇄하였고 이어 구약 성서 번역에 착수, 1910년 4월 번역을 끝내고 1911년 3월에 구약전서 및 신․구약 합본 성경전서를 인쇄하였다. 이로써 한국 교회는 비로소 한글로 번역된 성서 전체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신․구약 성경전서는 한국개신교회 선교 개척을 담당했던 내한 1세대 선교사들과 이들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고 개종한 1세대 토착 교인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제1세대’ 한글 성서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1세대’ 한글 성서로 1910년 번역을 끝낸 신․구약 성서는 다음 세 가지 역사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성서 번역을 통해 복음의 토착화가 이루어졌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성육화(成肉化) 과정처럼 성서 속에 담긴 기독교 신앙과 신학적 의미가 한글 번역을 통해 한국의 토착 언어와 종교 문화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둘째, 성서 번역과 인쇄를 통해 한글의 과학적 연구와 실용화가 이루어졌다. 초기 내한 선교사들은 성서를 비롯한 기독교 문서를 한글로 번역, 출판하였는데 그 결과 세종대왕 창제 이후 4백 년 넘게 긴 잠을 자고 있던 한글의 실용화와 연구가 이루어져 한글이 ‘한국민의 생활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셋째, 성서 번역과 인쇄, 반포 사업을 통해 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이 촉진되었다. 외국의 3개 성서공회, 한국 선교에 임하고 있던 6개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회가 조직한 성서위원회는 물론 성서 번역자회도 초교파적으로 조직, 운영되었는데 이를 통해 교파주의를 극복한 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이 가능하였고 그 결과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는 ‘하나의 성서’ 전통을 수립할 수 있었다.

        • KCI등재후보

          성결 법전의 땅

          김선종(Sun-Jong Kim)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1 Canon&Culture Vol.5 No.1

          지금까지 구약신학에서 땅의 개념과 기능에 대한 연구는 주로 신명기 및 신명기 역사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우리가 성결 법전에 나타난 땅을 이 법전의 신학적 틀 안에서 이해할 때, 신명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신명기 및 신명기 역사서에서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해야 할 대상이라면, 반대로 성결 법전에서 땅은 스스로 거주민을 받아들이고 내어 쫓는다. 독자들은 이처럼 이스라엘 땅의 개념에 대해 존재하는 명백한 차이에 직면하여 전통적인 역사비평 가설에 대해 재고할 것을 요청받는다. 최근 성결 법전의 땅에 대한 연구에서, 땅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매개물로서, 인격화되어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가 성결 법전 본문에 나타난 땅이 행하는 기능을 살펴볼 때, 이 법전의 저자는 땅을 독립된 인격체로서 이스라엘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드러내고 있다. 나지르로서, 또한 하나님의 성소로서 이스라엘 땅은 자신이 창조된 당시 부여받은 정결함을 유지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하나님의 벌을 받고 자신의 거주민을 내어 쫓음으로 황폐화 된다. 이러한 성결 법전에 나타난 땅의 개념은 우선 이 법전을 낳은 제사장 문서의 창조신학에 근거하고 있다. 동시에 생명을 지니고 더 나아가 다른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로서의 땅은 이스라엘 백성의 민중 신앙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준다. 땅이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을 지니고 있다는 성결 법전의 언설을 단지 문학적이고 상징적인 표현 양식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또다시 인간 중심적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성결 법전이 보여주는 땅에 대한 신학은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지배하고 이용하려는 현대인들에게 땅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권리와 땅에 대한 경외를 회복할 것을 요청한다. Until now in the Old Testament theology, the study on the concept and function of the land has been made mainly in the domain of Deuteronomy and the Deuteronomistic Historiography. When we understand the land in the framework of the Holiness Code, we see that there are quite different aspects between the concept of the land in the Holiness Code and that of Deuteronomy. While Deuteronomy and the Deuteronomistic Historiography define the land as the object of Israel’s conquest, in the Holiness Code it is the land that accepts and expels the people. This obvious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wo law codes requires the reader to reconsider the hypothesis of the traditional historical criticism. Recent studies on the land of the Holiness Code interpret the land as a mediator between God and humankind and as a personified being having symbolic meaning. However, the examination on the function of the land in the Holiness Code reveals that the author of this law code describes the land as an independent person and a subject which drives the history of Israel. As Nazirite and as the sanctuary of God, the land of Israel should maintain its purity given at the time of creation. If not, it is punished by its Creator and devastated by spewing its residents. The concept of the land in the Holiness Code is based upon the creation theology of the priestly code that has produced the first law code. At the same time, the aspect of the land as the mother who bears the life and conceives another lives reflects the popular faith of Israelite people. When we consider the discourse of the Holiness Code on the land having a life and person as a simply literary and symbolic expression, we make a mistake to interpret the biblical passages anthropocentrically. The theology of the land in the Holiness Code demands modern people, who want to dominate and exploit the created world by God, to restore the right of the land and to respect other cr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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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베츠의 기도 재고(再考)

          김선종(Sun-Jong Kim)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5 Canon&Culture Vol.9 No.2

          역대상 4장 9-10절에 나오는 야베츠의 기도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진 기도이다. 야베츠의 어머니는 고통스럽게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야베츠(고통)라고 짓는다. 야베츠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의 운명을 기도로 극복한다. 그가 드린 기도는 ‘만일의 기도’라고 부를 수 있는데, ‘만일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을 주시면, 땅의 경계를 확대해 주시면, 그의 손으로 보호해 주시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면’이라고 하는 가정절로 이루어져 있는 점에서 그러하다. 야베츠의 기도에는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 주시면 무엇을 하겠다는 서약도 없고,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 주셔야 한다는 간구도 없다. 그저 야베츠는 ‘만일’이라고 하는 기도를 드림으로 기도의 결과는 유일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다. 많은 사람들이 야베츠가 드린 기도를 가장 효과적이고 훌륭한 기도로 이해하여,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드리면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일부 사람들은 야베츠가 구한 복을 개인주의적이고 물질적인 복으로 제한하여, 기도문에 나타나는 복의 의미를 협소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야베츠의 기도를 통속적으로 잘못 이해한 경우에 해당한다. 야베츠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본문이 기록된 역사의 상황 아래에서 이해해야 하고, 이 기도를 포함하는 역대기의 신학의 빛에서 읽어야 한다. 역대기 역사는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새로운 국가를 세울 청사진을 제공한다. 새로운 나라는 하나님만을 왕으로 모시는 신정 정치 체제로서, 성전에서의 제사와 기도가 중심이된 제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역대상은 처음 아홉 장에 걸쳐 새로운 이스라엘을 형성할 백성들의 명단을 족보의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으며, 족보를 통하여 자신들의 기원과 하나님의 은총을 표현한다. 야베츠의 기도는 이처럼 족보의 맥락에서 서술되고 있는데, 하나님께 복을 구하여 응답을 받은 야베츠는 이스라엘을 형성한 믿음의 조상들을 나타낸다. 역대기 역사서에 나오는 여러 기도 가운데 야베츠의 기도는 고통속에서 땅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한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의 단면을 보여준다. 야베츠의 기도를 역대기의 신학, 특별히 역대기의 기도 신학과 역대기 역사서가 기록된 포로기 이스라엘 역사에 비추어 읽을 때, 신비적이거나 사변적인 기도의 의미를 넘어, 구체적인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여 힘과 위로를 얻은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의 실례를 얻을 수 있다. 야베츠는 이스라엘 지파의 여러 족보 가운데 위치하고 있지만, 정작 그의 아버지의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을만큼, 그의 족보는 분명하지 않다. 야베츠는 그의 출신이 신비로운 신앙의 영웅이 아니라, 비록 고통 가운데 태어났지만 기도로 자신의 운명을 극복한 포로기의 고통 속에 있던 이스라엘이요, 고난과 억압 가운데 살아가는 오늘날의 작은 그리스도인들이다. The prayer of Jabez in 1 Chronicles 4:9-10 is well known to many Christians. His mother gave birth to him in pain, so she named her son Jabez, or “pain.” Although a painful fate was given to him, he overcame it through his prayer. His prayer could be called “the prayer of If” for it consists of the subjunctive mood as “if God bless me, if God enlarge the border of my territory, if God protect me with his hands, if God let me escape from this pain.” His prayer has neither a vow nor a plea that God has to respond. Jabez just entrusts the results of his prayer to the only sovereign God by praying “the prayer of If.” Many people understand Jabez’s prayer as the most effective prayer, so they think that God always responds to the prayer when they pray eagerly. Some people circumscribe the blessing by noting that Jabez asked God for a personal and material blessing, and then they minimize the meaning of blessing shown in the prayer. However, this represents a popular misunderstanding of the prayer of Jabez. The prayer of Jabez should be properly understood in the historical context in which the text was written and read in the light of the Chronicler’s theology within which the prayer was conceived. The Chronicler’s history offers a blueprint by which the Israelites construct a new nation after returning to their homeland from the Babylonian exile. The new nation is theocratic and is a cultic community which centers on the prayer and sacrifice in the temple precinct. Hence, First Chronicles gives a list of the people who construct the new Israel as evident in the genealogy in 1 Chronicle 1-9 and expresses Israel’s origin and God’s grace through this genealogy. Jabez asks for God’s blessing, and God responds to his prayer. Jabez represents the forefathers of faith who form Israel. Thus, the prayer of Jabez, written in the Chronicler’s history, shows among many prayers an important aspect of exilic and postexilic Israelites who prayed eagerly for the restoration of Israel in pain. When we read the prayer of Jabez in the Chronicler’s theology, particularly in the history of Israel in the exilic period when the theology of prayer was formed and the Chronicler’s history was written, we can grasp an example of the prayers of Israel and the mysterious meaning of prayers. Jabez’s genealogy remains unclear, since the name of his father is not known. Ultimately, Jabez is the hero of faith an Israelite who was in pain but who overcomes his fate with his prayer and who gives hope to today’s marginalized Christians who live in pain and under op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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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상수훈과 한국적 재구현 -개신교 가사『연경좌담』(1923) 중 “산샹보훈가” 연구-

          양재훈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9 Canon&Culture Vol.13 No.1

          This article deals with J.S. Gale and Yi Chang-Chik’s Protestant Gasa collection, The Gospel as Sung (1923), especially 9 pieces of “San-Sang-Bo-Hun-Ga” (The Sermon on the Mount). Gale and Yi, who are one of the most important persons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Protestant mission, wrote 149 pieces of Protestant Gasa in order to help Koreans understand the gospel more easily and be meaningful in their life and faith as the Word of God. This article firstly provides basic information of this collection, and analyses its structure and contents. It also examines the literary and theological aspects of “San-Sang-Bo-Hun-Ga.” It especially compares them with the Sermon on the Mount passages in Shin-Yuck Shin-Gu-Yack-Jeon-Seo (New Korean Bible Translation) which Gale translated into Korean in 1925. This article serves as a stepping stone for further research on The Gospel as Sung as well as on many other works of Korean biblical interpretation and its representation. It suggests that Korean biblical studies need to search for various ways to contribute to the Koran Church with its own colour. 이 논문은 게일(J.S. Gale)과 이창직이 쓴 149편의 개신교 가사집 『연경좌담』(1923), 이 가운데서 특히 산상수훈 부분을 다룬 “산샹보훈가” 9편을 연구한 논문이다. 한국의 초기 개신교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게일과 그의 동역자 이창직은 사복음서가 한국인들에게 가장 쉽고 편안하게 다가오고, 성경 말씀이 한국적 맥락 안에서 그들의 삶과 신앙에 의미 있는 것이 되도록 개신교 가사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풀어내었다. 이 논문은 먼저 『연경좌담』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그 내용과 구조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산샹보훈가” 9편을 살폈다. 이 9개의 가사를 분석함에 있어서 그 구조와 문예적 특징을 분석하고, 이어서 이 가사에 담긴 신학적인 관점을 연구했다. 특히 게일이 1925년에 개인적으로 번역한 『신역 신구약전서』와 본문을 서로 비교해가면서 “산샹보훈가”가 어떤 신학적 색채와 해석적 관점을 갖고 있는지 분석했다. 『연경좌담』에 대한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한 현실 속에서 이 논문은 후속 연구를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다. 이 논문은 한국의 성서신학이 한국적인 색채를 가지고 한국 교회에 기여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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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셩경젼셔』의 한국 문화사적 가치에 관한 연구

          소기천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0 Canon&Culture Vol.4 No.1

          The Complete Bible in Korean published in 1911 was the first Bible that the British Bible Society in Korea established an biblical translation committee and translated into Korean with two volumes of the Old Testament in Korean(1911) and one volume of the New Testament in Korean(1911). This paper focused on studying of Korean some cultural historical heritages of early Korean churches on the bases of the New Testament. In spite of publishing the Ross translation, the Jesus Holy Bible, in China at the end of 19th century, The Complete Bible in Korean(1911) is highly recognized in a cultural historical value, because it was the first Korean translation of the Bible by Korean Bible Society. This paper studied some agricultural heritages, marriage cultures, Chines character cultures, military cultures, and natural cultures with various ways in which early Korean churches experienced all over the life styles and many church members of them deeply sympathized due to they are speaking in Korean. This paper also studied some facts that early Korean churches helped to lead many Koreans accepted The Complete Bible in Korean(1911) without any negative feeling, since Koreans live together in one racial tradition since, and built the foundation of Christianity in Korea in order to reach an biblical world view. Finally, This paper studied some facts that The Complete Bible in Korean(1911) contributed building some unity of one faith community in familia dei because it was interested in Korean unique feelings that the Bible theologically expressed people and family. 1911년『셩경젼셔』는『신약젼셔』 1권과『구약젼셔』 2권으로 발행된, 당시 대영성서공회가 최초로 성경 번역위원회를 조직하여 번역한 성경이다. 본 논문은『신약젼셔』를 중심으로 초기 한국 교회의 문화사적 유산을 연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국역성경은 이미 19세기 말에 중국에서 번역된 로스 역인『예수셩교젼셔』가 출판되었지만 순수 우리말 성경을 번역하여 출판하였다는 점에서 문화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본 논문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도태로 국역 성경의 농경 문화, 결혼 문화, 장례 문화, 한문 문화, 군사 문화, 생활 문화 등의 초기 한국 교회의 삶의 전반에 걸쳐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던 당시의 성도에게 정서적으로 공감이 가는 언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연구하였다. 또한 본 논문은 당시 혈연 중심의 한국인에게『셩경젼셔』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이해하여 성경의 세계상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초기 한국 교회가 한국인을 도와줘 기독교의 초석을 놓는 데 기여한 점이 크다는 사실을 연구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은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가족에 관한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를 올바르게 이해하여『셩경젼셔』가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하나의 신앙 공동체적 연대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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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겔의 계약 신학

          김선종(Sun-Jong Kim) 한국신학정보연구원 2015 Canon&Culture Vol.9 No.1

          정치와 경제와 종교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들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이들을 분명하게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고, 이들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라는 주장도 있다. 히브리 낱말 `브리트`는 종교적인 뜻과 함께 정치적인 뜻도 지니고 있다. 종교의 맥락에서 사용될 때에는 주로 `계약`이나 `언약`으로, 정치적인 의미를 가리킬 때에는 `조약`으로 번역된다. 계약 신학은 성서신학의 핵심을 이루는데,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도 계약의 관계로 묘사되고, 이러한 관계는 구약 주변세계의 정치 조약 체결 양식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특별히 에스겔 16-17장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에스겔서 전체에서 18번 나타나는 `브리트`가 이 두 장에만 12번 나타나며, 두 장에 각각 6번씩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브리트`는 16장에서는 종교의 맥락에서, 17장에서는 정치의 맥락에서 사용되는데, 이들 두 장은 앞에서 나온 표현을 다시 언급하는 특별한 편집기법(Wiederaufnahme)에 따라 하나의 단락으로 여길 수 있다. 에스겔서의 최종 편집자는 이러한 두 장을 하나의 단락으로 구성하고, 17장에서 느부갓네살과 맺은 계약과 하나님의 계약을 함께 언급함으로써, 종교와 정치가 가지고 있는 관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기술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의도적 모호성의 기법으로 하여금 저자는 모호한 세상에 살고 있는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참된 주인이 누구인지 고백하게 한다. 이 글에서는 에스겔 16-17장에 나타난 계약 신학을 파악함으로써, 포로기에 활동한 예언자가 정의하는 정치와 종교 사상을 계약 신학의 빛에서 밝히려고 시도한다. Politics, economy, and religion are the essential elements that make up the human life, and cannot be detached from one another. According to their definitions, one thinks that they should be clearly separated, the other asserts that they are two sides of the same coin. The Hebrew word berît(בדיח) has both religious and political meanings. When it is used in the context of religions, it is translated as covenant or promise; when it appears in the context of politics, it is translated as treaty. Covenant theology is essential in the biblical theology in that the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people is described as a covenant relationship. This relationship is already reflected in a political treaty formula in the Ancient Near East. This article pays special attention to Ezekiel 16-17 because tyrb that appears 18 times in the book of Ezekiel is used 12 times in these two chapters(6 times in each chapter). Also, tyrb in Ezekiel 16 is employed in a religious context whereas it is in political usage in Ezekiel 17. These two chapters may be considered as one unit by a redactional technique called Wiederaufinahme that takes again the same expression appearing in a previous passage. The final redactor of the book of Ezekiel binds these two chapters as one and utters a covenant that is made with Nebuchadnezzar together with the one with God in Ezekiel 17. The textual arrangement intentionally makes the relationship between religion and politics ambiguous. Ironically this technique of intentional ambiguity leads the reader living in an ambiguous world to confess who the real God of the history is. By analyzing Ezekiel 16-17 in the light of covenant theology, we try to reveal religious and political thoughts of the prophet Ezekiel who worked in an exilic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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