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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아렌트의 역사서술과 이해의 문제

          강정민 ( Chung Min Kang ) 한국사회역사학회 2010 담론 201 Vol.13 No.3

          이 논문의 목적은 역사서술방법과 이해의 문제에 대한 아렌트의 논의들을 설명하는 것이다. 아렌트는 이해를 연역적 추론이나 유추, 일반화를 통해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고 직관이나 감정이입, 공감과 동일시하지도 않는다. 아렌트에게 이해란 현실에 저항하고 현실과 화해하는 도덕적 활동이다. 그에 더하여, 아렌트는 역사의 이해를 상상력과 연결시킨다. 아렌트에게 상상력이란 역사적 필연성이라는 논제에 포획되지 않으면서 과거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상상력을 의미한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사회과학의 관례를 위반하면서 기존의 분석틀 안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우연적 사건의 연구에 도전한다. 역사서술에 대한 아렌트의 특이한 접근법은 추상적이고 중립적인 설명으로부터 저자의 경험 속에 위치한 도덕적 담화로 분석의 방법이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기존의 이론과 객관성을 대체할 새로운 이론과 객관성의 문제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사회과학과 실증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비판을 분석한 후에, 『전체주의의 기원』의 검토를 통해 역사서술방법과 이해의 문제를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렌트에 대한 사회학적 독해가 도출해낼 수 있는 이론적 함의들을 탐색할 것이다. My purpose in this essay is to examine the problem of historiography and understanding in Arendt`s thought. For Arendt, understanding does not mean explaining phenomena by deductions, analogies, and generalizations, and is not identical with intuition, empathy, and sympathy. Arendt regards it as a moral activity by which we resist to and reconcile ourselves to reality. In addition, Arendt relates understanding to the faculty of imagination. For Arendt, imagination implies moral and political imagination which enables us to reach the past without being captured by propositions of historical necessity. In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Arendt attempts a task which violates the conventions of social science to expound a contingent event which is incomprehensible within that framework. Arendt`s unusual approach to historiography involves a shift in the method of analysis from an abstract, neutral account to explicitly moral narrative which is situated in the experience of the author. I begin with a discussion of new theory and new objectivity as substitutes for scientific ones. I will then examine Arendt`s criticisms of social science and positivism. After exploring the problem of historiography and understanding in the analysis of The Origin of Totalitarianism, I will elucidate some theoretical implications by reading Arendt sociologically.

        • KCI등재

          삶의 역사성과 추체험 -딜타이의 의미 이론과 해석학적 재구성 방법론

          신진욱 ( Jin Wook Shin ) 한국사회역사학회 2009 담론 201 Vol.12 No.1

          근대 해석학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딜타이는 개인과 사회의 상징적 상호작용과 의미의 연관관계에 대한 이해에 토대를 두고, 의미 해석의 인식론과 논리학, 방법론적 구상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학은 딜타이의 해석학이 감정이입과 심리적 동일시라는 낭만적 관념에 머무르고 있다는 일면적 해석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론이 사회학적 의미이론과 해석방법론에 대해 갖는 풍부한 함의를 발견하고 현재화시킬 수 없었다. 딜타이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방식을 통해 이 연구는 사회학 이론과 방법론에 기여하는 몇 가지 함의를 이끌어냈다. 첫째, 행위자들의 삶은 곧 타인들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체험해가는 과정이며, 행위자들이 이러한 체험들 간에 모종의 연관관계를 부여하는 해석적 실천을 통해서 `의미`가 생성된다. 둘째, 행위자의 의미세계는 삶의 생애사적 전개 속에서 일어났던 각각의 체험들을 하나의 전체적 역사로 엮어냄을 통해 형성되며, 그러한 개인들의 역사쓰기는 보다 넓은 사회적 공동체의 역사 속에서 객관화된 사회적 의미구조를 매개로 한다. 셋째, 그러한 행위자들의 의미구성과 의미체계에 대한 학문적 해석은 어떤 정태적 심리상태에 대한 감정이입과 동일시가 아니라, 행위자들의 삶의 역사적 전개와 그로부터 생성된 의미연관의 체계를 역진적으로 재구성하는 추체험의 방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이상과 같이 딜타이의 통찰은 사회학적 행위이론과 의미이론, 해석 방법론을 더욱 체계적이고 반성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Wilhelm Dilthey, who made a critical contribution to the establishment of modern hermeneutics, tried to develop epistemological, logical, and methodological ideas for interpreting the meaning on the ground of the ontological understanding of meaningfully mediated symbolic interactions. Although his Geisteswissenschaften made a deep influence upon the sociological theory and methodology of some classical sociologists like Weber and Simmel, the contemporary sociology did not go beyond a superficial and one-sided understanding that Dilthey`s hermeneutical methodology depends upon romanticist conceptions of empathy, sympathy, or psychological identification with others. The present article, however, draws some significant insights that may contribute to the sociological theory and interpretive methodology by reintrepreting Dilthey`s Geisteswissenschaften and hermeneutics. Firstly, the life of human actors is nothing but a continuous process of experiencing the social interaction and interrelatedness with others, and the `meaning` emerges through the interpretive practices of weaving a system of connection from the individual experiences. Secondly, the life and the meaning is historical in its nature, because the world of meaning is constructed by interlinking individual past experiences to constitute a unitary narrative of the whole life-history. Thirdly, for the hermeneutical explication of the process of meaning-making and the system of meanings, one cannot depend upon empathy and sympathy, but should make an inversive operation of Nacherleben the methodological core of which resides in reconstructing the action environment of actors, the proceedings of their life-history, and the system of meanings that emerge out of the very lived experiences of life itself.

        • KCI등재

          문화접촉에 따른 한,일 역사인식의 전환가능성

          손애리 ( Ae Lee Sohn ) 한국사회역사학회 2014 담론 201 Vol.17 No.2

          본고는 실제 한·일 양국 시민들의 문화접촉 및 교류의 증대가 한·일관계와 역사인식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2013년도 서베이 자료를 통해 개인수준에서 실증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상대국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상대국에 대한 인상이나 상대국민에 대한 신뢰, 한·일관계의 중요성 인식 등에서 방문경험이 없는 사람과 유의미한 차이를보였다. 그러나 역사인식에 문제에는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는데, 이는 대다수의방문이 단기간의 여행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둘째, 지인이나 친구의 유무및 친밀감의 정도는 상대국에 대한 태도 및 역사인식과 매우 유의미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상대국에 대한 인상과 상대국민에 대한신뢰에서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서 주목할 만한 차이를 만들어냈다. 셋째, 정보 취득의 정도에 따라 상대국에 대한 인상이나 한·일관계 전망,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태도가 다르게 나타났다. This study aims to empirically examine the relation of the growing cultural contact to the historical awareness in the individual level of Korean people and Japanese people, respectively. Recent controversies between Korea and Japan have aggravated the bilateral relation, which does not look like getting better for a while. This article suggests an increase in cultural contact and exchange as an alternative to improving relations. The empirical results are as below. First, the respondents who have ever visited the other country showed more positive attitudes in mutual impression, mutual trust and awareness of the importance of bilateral relation than those who have never visited. Second, the respondents who have foreign friends and acquaintances were more friendly in the attitudes toward the other country and in historical awareness than those who do not have. Third, the mutual impression and the prospect of bilateral relation varied depending on the degree of information-acquisition of the other country. These results tell the cultural contacts and exchanges such as visiting, acquaintances and the degree of information-acquisition are closely connected with the mutual attitudes and history awareness between the Korean and the Japanese. Therefore para-public programs such as a students exchange and a city partnership need to be increased qualitatively as well as quantitativ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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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개혁의 역사와 모형

          김정렬 ( Jung Yul Kim ),한인섭 ( In Sup Han ) 한국사회역사학회 2008 담론 201 Vol.11 No.3

          행정개혁의 역사와 모형을 종단 및 횡단적 견지에서 검토하는 일은 현실 행정의 개선은 물론 행정학의 체계화와 직결된 문제이다. 이에 본 연구는 행정개혁의 역사를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및 중상주의를 토대로 출현한 서유럽의 절대국가, 산업혁명과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영미의 입법국가 그리고 20세기를 전후해 적극적인 정부상을 표방한 현대 행정국가로 구분한 상태에서 각기 행정개혁의 주요한 추진계기와 제기된 문제점에 대한 처방책으로 제시된 행정개혁의 기반이론들을 비교역사적 견지에서 검토하였다. 또한 횡단적 견지에서 현재 각국의 행정개혁을 위해 경합하고 있는 행정개혁의 모형들을 시장모형, 참여모형, 조직모형, 관리모형으로 구분한 상태에서, 각각의 모형이 내포하고 있는 기본적인 논지를 정부실패의 원인, 개혁에 대한 처방, 해당 접근방법이 가진 한계와 비판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This paper aims to provide a systemic framework in understanding the practices which have historically been made in reforming public administration. For this purpose, this paper examines the history and model of administrative reform through a comparative historical perspective, and in turn, attempts to reveal the contexts and logics of administrative reform vertically and horizontally. In the first part of this paper, we analyze the major drives into administrative reform and theoretical grounds for it which can be put in relation to each different historical institutional experiences, which were brought by: (1) the absolute state based on the Renaissance and Reformation thought in Western Europe, (2) the constitutional state accompanied with the Industrial Revolution and party politics in Britain and the U.S., and (3) the contemporary administrative state with leading role of public administration in the 20th century. Secondly, by establishing a four-dimensional typology showing different viewpoints on the cause of government failure, the major prescriptions and logics toward administrative reform, we give rise to such contending four alternative models as: (1) market model, (2) participatory model, (3) organizational model, (4) managerial model. Lastly, we briefly discuss on some implications from these models and historical observations in terms of enhancing the public relevance of the current efforts for administrative ref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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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적장자 상속에 대한 역사심리학적 분석

          김진영 ( Jin Young Kim ),고영건 ( Young Gun Ko ) 한국사회역사학회 2009 담론 201 Vol.12 No.1

          지금까지 조선후기 상속제의 변화에 관한 학문적인 논의는 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요인들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아직까지 조선후기 상속제의 변화와 관련해서 심리적인 요인의 영향력을 분석한 연구는 보고된 바 없다. 역사심리학에서는 역사적 사건에 기여하는 인간의 정서, 지각, 사고방식, 그리고 심리적인 대처기제 등을 분석한다. 우리가 조선후기 상속제의 변화를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요인들에 기초한 해석과 심리적인 요인에 기초한 해석을 유기적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조선후기 상속제도의 변화를 역사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조선후기 상속제의 변화는 1592년에서 1598년까지 이어진 임진 및 정유왜란, 1627년의 정유호란, 그리고 1636년의 병자호란 등 무려 40여년에 걸친 전란들 속에서 등장하게 된 "환향녀(還鄕女) 딜레마"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란 후 조선의 조정은 환향녀들이 가풍을 더럽혔다 해서 이혼하도록 강제할 수도 없었고 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귀가하여 종사(宗祀)를 받들고 자손을 낳으며 가세(家世)를 잇도록 허용할 수도 없었다. 환향녀들을 이혼시키기로 결정하는 것은 그러한 의사결정자에게 심리적인 불편감 또는 죄책감을 유발할 수 있는 반면에 무조건 귀가시키는 것은 가계의 혈통적 순수성을 오염시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장자 상속제는 주자가례를 중심으로 한 성리학적 이념과 부합될 뿐만 아니라, 환향녀들을 내치지 않으면서도 종족의 혈통적 순수성을 보장할 수 있는 묘책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조선후기 적장자 상속제로의 이행은 벌렬(閥閱)에 의한 관료체계의 독점과 같은 정치적인 요인, 시장경제의 발달과 같은 경제적 요인, 친족 중심의 동족부락(同族部落)의 형성과 같은 사회적 요인, 그리고 종법적(宗法的) 가족질서를 강조하는 예학(禮學)의 보급과 같은 문화적인 요인과 더불어 환향녀 딜레마가 야기한 불편감과 불안감을 해결하고자 하는 심리적인 요인이 결합되어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The academic discussion on the changes in the inheritance system of the late Chosun dynasty has been mainly focused on its political, economical, societal or cultural factors. No research has been conducted to identify the influences of psychological factors on the changes in the inheritance system of the late Chosun dynasty. Historical psychology analyzes emotions, perceptions, ways of thinking and coping strategies of human beings which have contributed to historical events. In order to have a better understanding of changes in the inheritance system of the late Chosun dynasty, it seems necessary to integrate organically the interpretations based on political, economical, societal and cultural factors with the interpretation based on psychological factors. For that reason, this study intended to analyze the settlement of primogeniture system in the late Chosun dynasty from a standpoint of historical psychology. That settlement seems to be closely related with the "Whan-Whyang-Nyu (還鄕女, returnee females)" dilemma which appeared on the stage of history during the period of consecutive wars over forty years including Imjin-Jeongyoo war (1592~1598), the Jeongmyo war (1627) and the Byungja war (1636). While going through these wars, the Chosun dynasty could not but confront a dilemma: neither could it force the returnee females to divorce their husbands, nor could it let them enjoy their life as they were living before the war as if nothing had happened. If it made the returnee females get divorced, then its family members would suffer from a guilty conscience. On the other hand, if it permit the returnee females to come back home and to carry on a family line, the anxiety over the contamination of pure blood lineage of the family would be evoked. Under these situations, not only did the primogeniture system go well with the doctrines of Chu-tz including the customary formalities of a family, but it could guarantee the purity of family blood lineage without rejecting the returnee females. In this sense, it might be said that the switching to the primogeniture inheritance system in the late Chosun dynasty would had been resulted from combination of multiple factors: political factors such as the monopoly by bureaucracy due to factionalism, economical factors such as development of the market economy, societal factors such as the formation of a village community of the same blood, cultural factors such as diffusion of Courtesy Study (禮學) which emphasized clan rules of familial order, and psychological factors to deal with the guilty feeling as well as anxiety induced by the Whan-whyang-neo dile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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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 100주년, 역사전쟁과 고종 독시(毒弑)

          이영재 한국사회역사학회 2019 담론 201 Vol.22 No.2

          This paper especially focuses on the hypothesis of poisoning Emperor Gojong, because the intensity of the ideological rejection of poisoning of Emperor Gojong on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3⋅1 movement. There is a concern about the historical war that makes history a tool for certain ideologies. The ideological denial of the poisoning of Gojong is likely to extend to the exclusion of Gojong and the Korean Empire in relation to the interpretation of political modernization in Korea.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a dual purpose, the one is to watch out for the concern that the hypothesis of poisoning Emperor Gojong will be instrumentalized as part of the ‘historical war’. The other is to examine the controversy over the political necessity of Japan to assassinate Gojong, the actual issue of the poisoning of Gojong, the point of time of death of Gojong and the cause of death, and to overcome the contributing to the elimination of exhaustion controversy. 이 논문이 특히 고종 독살설에 주목한 것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독 고종 독살설에 대한 부정의 강도가 실체적 진실이 아닌 이념적 강도를 더해가며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특정 이념에 역사를 도구화하는 역사전쟁의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고종 독살설에 대한 이념적 부정은 한국의 정치적 근대화 해석과 관련하여 고종과 대한제국에 대한 배제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의 연구목적은 이중적인 데 하나는 역사가들의 이념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주조하는 근현대사 ‘역사전쟁’의 일환으로 고종독살설이 도구화될 우려를 경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종독살설의 실체적 쟁점인 고종을 암살해야 할 일본의 정치적 필요성, 고종의 사망시점 및 사망원인 등에 대한 논란을 검토해 고종 독살설의 실체에 다가감으로써 최근 ‘야사’로까지 치부되고 있는 고종 독살설과 관련한 소모적 논란을 해소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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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대중문화의 혼성적 형성과정과 한류문화 담론

          송도영 ( Do Young Song ) 한국사회역사학회 2007 담론 201 Vol.9 No.4

          2000년대 초기부터 현재까지 동아시아 여러 곳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 산업 상품들의 역사적 의미를 우리는 어떤 맥락 위에 위치시켜 해석할 수 있을까? 특히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한류`` 담론은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 안에서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개항기 이후 한국에서 ``대중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형성되는 초기에서부터 절대적인 자리를 차지했던 해외문화의 유입 현상들을 정리함으로써 한국 대중문화 형성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고찰하고, 그 결과 한국 대중문화 안에서 자리 잡은 혼성성의 성격과 그에 대한 담론적 반응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는 대중문화 성립의 전제인 대중사회의 등장과 산업화의 진전, 그리고 그를 포함한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한국에서는 어떤 문화적 바탕위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주목하는 작업이 된다. 즉 한류 대중문화 담론을 낳기까지에 이른 현 단계 한국 대중문화의 내용상 위치를 점검함에 있어서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 자체에 대한 고찰로 잠시나마 다시 회귀해서 그 맥락을 짚음으로써, 그것이 현대 한국의 대중문화 형성에 실질적으로 미친 영향과 작용의 내용들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발생한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중 한국 대중문화 형성에 영향을 미친 외부문화의 성격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여, 그 실제와 성격이 어떠했는지를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와 함께,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두고 현재 전개되는 담론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검토함으로써 담론들의 위치를 매길 수 있게 된다. 한국 대중문화의 실질적인 발전사를 검토해보면 이는 곧 수입된 해외 대중문화의 절대적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역사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일본의 식민지배를 중심으로 일본의 대중문화가 사실상 한국대중문화를 그 기초적 형태부터 형성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해방이 이루어지고 미국의 대중문화가 더욱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도 일본과 중국 문화의 영향은 단절되지 않았으며, 각국간 대중문화 요소의 상호유입 및 시장 통합의 경향은 강화되어왔다. 그러나 후기 근대적 상황에 이른 현재 소비의 전지구화와 문화 콘텐츠의 혼성성 강화에도 불구하고 대중문화의 각국간 영향력 경쟁 담론은 결코 감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새로운 형태로 재등장하고 있다. 정치경제적 환경의 힘은 애초에 일상성의 상업화를 전제로 출연한 대중문화산업과 문화소비 현상의 기초적 환경으로서 강고하게 존재하며, 매체의 전지구화와 경제의 전지구화가 단일한 형태의 세계문화(Global Culture)가 아닌, 각 지역권과 각 지방의 특성에 맞게 전지구적 요소들이 지역적으로 재구성되고 조합되는 현상을 보여 준다 This article studies the historical context of current ``Korean Wave`` phenomenon. Contemplating the process of Korean mass culture industry from its daunting period, this article tries to analyze influences of ``foreign`` cultural industry in the history of Korea`s mass culture industry. And following short analysis on the ``Korean Wave`` discourses is based on this historical context. Korean mass culture had started with the strong influence of Japanese and Western mass culture. It was, therefore, not an exceptional case in the general process of modernization for the Third World countries. Because, as well known, their modernization process was more or less directed in each country`s ``colonialized`` condition. In other words, it was a kind of unilateral communication where the dominant cultural power of the World System had a quasi-absolute influence on the weaker part. As the Chinese culture had been highly significant during Korea`s middle age, the influence of Western and Japanese mass culture has been also considerable since the beginning of Korea`s mass culture industry. Recent success for some part of Korean mass culture products --known as ``Korean Wave`` (``Hallyou`` for Korean pronunciation) - would be probably the first meaningful export of Korean mass culture industry. As the consequence, we can understand the enthusiasm of a part of discourses concerning this success. This discourse of enthusiasm for the ``Korean Wave`` can be even more significant when we consider actual context of globalization and aspects of post-modern period. Maybe this Korean case is not exceptional. Competition for the hegemony of cultural industry, and re-territorialization of identity with that, can be a part of understandable reactions from each region, before the strong tendency of today`s cultural glob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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