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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 교육의 패러다임 변화

        박정애(Park, Jeongae)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6 美術史學 Vol.- No.31

        이 글에서는 담론분석의 방법을 통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틀 안에서 미술사교육의 교육목표와 교수·학습 방법에 대해 파악하였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과거 모더니즘과 변화된 포스트모던 체계에서의 미술, 미술사, 그리고 인지이론/해석학을 파악하였다. 모더니즘에서의 휴머니즘, 절대성, 그리고 보편성의 가치는 표현주의와 형식주의 미술, 전수로서의 지식, 반영적·의도적 접근의 해석이라는 담론을 만들었고, 그 결과 오브제 중심의 박물관과 미술사교육을 이론화하였다. 이에 비해 포스트모던 사고에서는 문화가 유동적이며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이해되는 맥락에서 상대성, 문화중심을 강조하면서 미술은 텍스트, 상호텍스트성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해석은 감상자에 의한 관계적이며 복수적인 것으로서 구성적 접근으로 정의된다. 그 결과 포스트모던 미술사교육은 감상자 편에서의 복수적 해석을 도모하기 위한 감상자중심을 지향한다. 그 교수·학습 방법은 대화중심이다. 또한 교육 목표는 타자와 감상자 사이의 문화의 유사성과 차이성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한다. 따라서 미술사교육은 문화교육 또는 문화 학습의 맥에 있다. This paper uses discourse analysis to explore the pedagogy of art history education within the frame of modernism and postmodernism. It first examines modernist theory and practice of art, art history, and cognitive theory. As humanism, expressionism, and formalism were the main ideas within the theoretical framework of modernism, the discipline of modernist art history education was formed within this philosophy. Object-centered education mainly aims for the transmission of knowledge. In this context, interpretation is defined as reflective and intentive approach that aims to explain the author’s original idea and intent. In contrast, because postmodern art is defined as text, intertextuality, postmodern art history education promotes multiple interpretations on the part of audience. Consequently, the purpose of postmodern art history education is to understand through dialectical dialogue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of cultures between the artworks and the viewer. For this reason, postmodern art history education is viewer-centered, and its pedagogy is dialogue- centered. This leads to enable us to understand culture as fluid and interactive process. Consequently art history education means culture education to understand the world in which w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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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미술사, 왜 다시 읽어야 하는가? ‘동원된 서양미술사’의 신화(神話)와 한국현대미술사의 세 지점

        심상용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5 美術史學 Vol.- No.29

        본 논문은 해방공간 이후 현재까지 한국미술의 다양한 분야들, 창작과이론, 비평, 교육, 전시기획 등의 전문화된 영역에서 서양미술사가 그러한 신화로,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적 내러티브 기제로 작용해 왔으며, 그 결과 우리가 우리 미술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성찰하는 인식의 토대가 왜곡되어 왔고,그 여파가 오늘날의 동시대미술까지 미쳐 여전히 가볍지 않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것이 또한 그것이다. 서양미술사의 전망과 관점이 우리의 인식과 판단에 ‘신화적 거울’로 작동하는 동안, 그것에 반사된-맥락화된- 해석을 통해서만 우리 미술을 설명하고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것은 독자성과 자율적 판단, 의구심을 통제하는 검열기제로 작용했고, 이로부터 원류에 의해 상대화된 자각,아류의식, 대국(大國)에의 자발적인 예속, 선진적인 것을 따르는 추종자의 감성이 양산되었다. 서양미술사 내러티브가 신화적 거울로 작동하는 배후에 늘 일정한 정치적 자장이 작동해왔다. 때로는 완강한 정치적 분위기 조성이나 보상기제의 활용을 통한 동기부여 안에서 ‘서양’이 유일한 선택지로서 권장되거나 촉구되었고, 미술 장은 서양미술사의 내러티브를 적극적으로 차용, 편승함으로써 그러한 정치적 노선에 직, 간접적으로 부응했다. 그러므로 서양미술사를 다시 읽는 이 논의에는 서양미술사 내러티브에의 동조, 편승이 정치적 정당화기제로활용되도록 해온 예술의 정치화, 또는 정치예술의 맥락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내포되어 있다. 논의는 또한 ‘동원된 서양미술사 내러티브’의 신화화된 기제안에서 스스로를 인식해온 한국현대미술의 타자성의 문제와 부득불 결부될수밖에 없다. 즉, 서양미술사 다시읽기의 궁극적인 취지는 오히려 ‘동원되고특권화된 서양미술사 내러티브’와 그것의 중요한 배후로서 정치적 선전기제라는 두 축에 의해 지지되어 온 한국현대미술을 난맥상을 짚어보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현대미술의 연대기적 세 지점, 곧 1950년대의 앵포르멜, 1970년대 한국적 모노크롬 또는 단색조 회화, 그리고 1990년대의 글로벌미술화의 기점이 이 논의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져야 했다. 이 각각의 세 지점은 신화화된 서양미술사 내러티브와 정치적 선전기제의 제휴가 매우 긴밀하고 관찰 가능한 형태로 발현되었던 시기이고, (아마도 그 결과이겠지만)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 중요한 진전을 이룬 시점들로 이해되어 온 곳들이기 때문이다. 1950년대 이승만 정부가 반공이데올로기로 분위기를 몰아갈 때,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유럽의 앵포르멜을 추종하는 노선이야말로실로 훈장을 수여받을만한 화답이었다.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이끌었던 제3공화국에 의해 선포된 유신체제가 한국의 정치체제를 서구의 민주주의와 다른 것으로 만들고자 했을 때, 같은 추상이로되 ‘한국적 추상’을 주창한‘한국적 모노크롬’이나 단색조 회화는 결과적으로 체제의 노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1995년을 세계화의원년으로 삼았을 때, 한국미술은 21세기 초일류국가에 걸맞는 세계화된 미술을 위해 글로벌 무대에 가담하는 소통행위, 블록버스터 전시와 행사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부(富)에 편승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세계미술론, 아시아 맹주론 등으로 스스로를 고무시키면서, ... Western art history’s prospect and perspective worked as ‘a mythic mirror’ toour perception and judgement, and only the reconstituted interpretationorganized by its projection is possible to explain and persuade Korean art. The projective interpretation worked as a kind of inspective mechanismsupervising and controlling identity, autonomic judgement and suspicion,which resulted in mass production of perception relativized by the originaltext, imitator consciousness following headstream, voluntary subordination togreat powers and follower’s emotion toward the advanced. Like this, there has been always a extremely political magnetic field operatingin the background that made Western art history mobilized and operated as amythic mirror. That is to say, it is to create a series of political mood thatencourages ‘Western’ as the privileged choice securing compensation andpositively mobilize motivation mechanisms, of which contemporary art fieldaccommodate or atune to the political mainstream in the form of aggressivelyborrowing Western art history’s narrative. In this context, it is important to identify three chronological points of Koreancontemporary art. The first point of them is the time when Syngman Rheegovernment drove the atmosphere with anticommunist ideology. Linesfollowing american abstract expressionism and European Informalism were accommodation and response to that political line. The second point is thetime when in October 1972, the Revitalizing Reforms system declared by theThird Republic led by former president Park Chung-hee tried to make Koreanpolitical system different from the Western democracy, including a presidentialsystem of leading status for the peaceful unification of the nation. At thattime, Korean monochrome or monotone painting advocating ‘the Koreanabstraction’, although it belonged to the same abstraction, worked in thedirection giving the system line justification consequentially. In the third point that Kim Young-sam administration took office in 1993, thatmade the year 1995 as the first year for globalization, and that Korea joinedOECD in 1996, Korean art stepped on the path of the globalized artrepresented by Venice, Basel and Miami matching one of the top country inthe 21st century again, turning against its own experience. Beginning in thispoint, Korean art started to be measured by communication behavior joiningglobal stage, events decorated by blockbuster exhibitions and overseascelebrities, and economic wealth facilitating it. Encouraging itself with theoriesof global art, Asian leader, etc., Korean art lost critical and interpretationalabilities and was rapidly buried under the values of utopia and exchange. In retrospect, Korean art should ask itself whether it had a moment thatstarted from the independent critical mind, coming from experience of ourlives and anguish, and whether it had a moment that led to find its ownstyle, from the Americanization for subsistence in the 50s, through Koreanmodernism in the 70s, to the global art discourse in the 90s. In this context,our modern art history may be abstracted that it has repeated the samepattern by interaction of politics and myth, interlocked by an axis, whichpolitics and policy motivated beforehand or created atmosphere and the artpassively matched it and received a series of systematic compensation for it,with another axis of the structured practice, which it directly importedadvanced Western art history that risk bearing of trial and error was removedin advance and changed it as a myth of universality. Korean art will be able to get rid of this framework, only whenstraightforward gaze and strong criticism about stereotypical and structured intellectual subordination removing risk beforehand with political fomentation,accommodation and response to the system and myth-dependent thoughtapp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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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의 미술 교육

        정헌이(Jung, Hunyee)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5 美術史學 Vol.- No.29

        한국 대학 사회는 ‘대학 구조 개혁’과 관련하여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 변화에의 요구는 일차적으로는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과연 우리가 미술대학에서 어떤 교육 목표를 갖고 어떻게, 무엇을 교육하고 있는지에 대해 점검해볼 시기가 되었다. 필자는 우선 미술대학의 교육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던 티에리 드 뒤브가 진단한 미술교육의 세가지 모델, 즉 아카데미 모델, 바우하우스 모델, 해체주의 모델에 대해 소개하고, 그가 현재의 교육 모델이라고 예시한 해체주의 모델을 어떤 입장에서 비판했는지 살펴보았다. 그가 말하는 해체주의 교육 모델은 전통적인 아카데미 교육 모델에서 중시했던 장인적 훈련이나 바우하우스 모델이 중시했던 창의성 훈련의 자리를 각종 이론과 담론을 앞세운 정치적 “태도”가 차지한 상황을 말한다. 그가 이 “태도”의 모델을 문제삼은 것은 그가 반드시 예술의 정치적 입장 표명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매체나 마티에가 사라지고 오직 태도만이 남았을 때, 미술의 전통과 관습이 과연 무엇을 통해 유지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염려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드 뒤브의 입장을 니콜라 부리요의 “관계의 미학” 개념, 그리고 자크 랑시에르의 “해방된 관람자”의 개념을 통해 점검해보았다. 그리고 한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통해서 시각중심주의를 넘어서는 감각의 확장과 나눔이 미술현장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태도’는 어떻게 가르쳐질 수 있을까? ‘태도’가 기존의 감성의 분할을 넘어서고 새로운 감성을 나누는 일이라면, 즉 열정이라면, 이것은 가르쳐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론과 미술사, 각종 ‘테크닉(technique)’과 ‘기법(skill)’을 가르칠 수 있어도, 예술 그 자체는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이 제도기관의 교육은 항상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는 이 모순의 자리에서 고민하는 스승은 제자를 해방함으로써, 즉 제자가 내가 모르는 것을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자임을 믿고, 그의 능력을 현실화하도록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우정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의식의 좀 더 깊은 곳에서 삶에 대한 자신의 감성적 ‘태도’를 발견하게 하는 일, 그 ‘태도’가 우리를 살고 싶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미술교육의 숨겨진 내용이자 교육적 역량의 원천임을 조심스럽게 전망해 보았다. Korean Universities are on the process of structural reform. Although this claim for change is reinforced from outside, it’s proper time to introspect what is the aim for university art education, how to give what to the art students. First, I introduced three models of art education, academy model, bauhaus model and deconstruction model, that Thierry de Duve presented in his essay on “When Form Becomes Attitude?And Beyond”(1993). De Duve was especially critical to the new art school model of deconstruction, because he thought it drives out the technical training and medium study from the field of art education. “Attitude”, a sort of political and theoretical consciousness occupied the the place instead. He worried, if attitude becomes art form, then how the tradition and convention of visual art could survive itself. I examined this point of view through the concepts of “relational aestheics” by Nicolas Bourriaud, and “emanciated spectator” by Jacques Ranciere. And I look into the practices of young korean artists how their works distribute and extend “the sensible” across the ocularcentrism of traditional art practice. Then how attitude can be taught? If attitude is distributing the sensible beyond the partition of the senses, it cannot be taught. We can teach art history, theory, technique and skill, but we cannot teach art itself. Yet, the master who stands in this contradictory place where (s)he teach what (s)he cannot teach, can teach what (s)he doesn’t know by emancipating the students. In other words, the master should believe in them that they have the ability to teach themselves, and (s)he can teach them by being a ignorant master. Being equal, the master and students can accompany the journey together as a community of friend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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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와 교재 : 현대미술사 교재의 다양화를 위한 대안적 모색, 「현대미술사 교재의 다양화를 위한 대안적 모색」에 대한 질의, 강태희 선생님의 질의에 대한 답변

        조은영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05 美術史學 Vol.19 No.-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wofold. First, it examines the modern art history survey textbooks currently being used for art survey courses in Korean colleges. Secondly, it suggests some alternative ideas and methodologies to envision and rewrite the modern art survey text in order to provide a more comprehensive overview of modern art for Korean undergraduate students. More than two decades have passed since modern art survey courses were first included in Korean college curricula. But almost all the modern art texts being utilized in classrooms represent European and American art, with a focus on its white male masters and their masterpieces, while paying little or no attention to the others from the rest of the world. This situation owes much to the fact that these texts are mostly direct translations of Western texts written mainly from a Western-centered point of view. Most instructors in the academic field of art history prefer utilizing their own methods, lecture notes and visual images to any particular textbook. While this approach has some merit, many undergraduates express difficulties in approaching modern art without a textbook. New survey texts suitable for Korean students need to be developed. These texts should deal with not only the art of the West, but also that of the East, in particular, of Korea and its neighboring countries. In this era of globalization and glocalization, there should also be some introduction to diverse methodologies and perspectives including gender, race, and less-represented arts, artists, geographies,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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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화유산 교육의 새로운 시도

        오영찬(Oh, Youngchan)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7 美術史學 Vol.- No.33

        본 연구는 세계유산의 교육적 가치를 재확인하면서 창덕궁과 경주 양동마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기반 현장체험학습 사례를 중심으로 세계유산의 교육적 활용방안을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유산의 등재와 보존에 기울이는 노력에 비해 세계유산을 대상으로 한 교육적 활용은 미진한 편이다. 유네스코 차원에서 세계유산교육(WHE, World Heritage Education)은 1990 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세계유산에 대한 효과적인 교육 방법 중 하나는 학습의 대상이 되는 현장에서 학습자가 분명한 동기와 목적의식 가지고 사고하여 직접적인 경험을 통하여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현장체험학습이다. 현장체험학습에서 제한된 시간 내에 효율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본고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를 활용한 교육에 주목하였다. 스마트 폰이나 테블릿 기기 등 모바일 기기가 교수 학습 도구로서 각광을 받고 있지만, 모바일 기기에서 상용 중인 대부분의 어플리케이션들은 완성형, 비현장성, 그리고 기술적인 한계 등의 제약 조건으로 인해 교육적 활용에 난점이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교수자가 현장학습에서 사용할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의 내용을 직접 ‘저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인 어플리케이션의 저작도구를 제안하였다. 마지막으로 2014 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이화여자대학교 스마트융합교육연구팀 모바일 기반 세계유산 현장체험학습 연구 중 역사교육 분야의 연구 사례를 소개하였다. 1 차년도에는 세계문화유산 중 창덕궁을 대상으로 모바일 기반 현장체험학습을 위한 교수 학습 방안을 개발하였으며, 2 차년도에는 대상을 확대하여 경주 양동마을을 대상으로 동 연구팀에서 개발한 모바일 현장체험학습 저작도구(MoFAS, Mobile Fieldwork Authoring System)를 실제 현장체험학습에 적용시킨 실험연구를 사례로 제시하였다. This paper examines the educational value of the World Heritage, and introduces the mobile-based field experience learning as the World Heritage Education through case studies: Changdeokgung Palace and Gyeongju Yangdong Village that are the World Heritage sites in Korea. Utilizing the World Heritage as the educational subject has not been active while so much effort has been made to list on and preserve the World Heritage. In the 1990s, for the first time UNESCO has begun to introduce the concept of the World Heritage Education(WHE). One of the effective learning methods in WHE is the field experience learning that helps the learners act with a clear motivation, and get the knowledge through the direct experience. In the field experience learning, using the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ICT) may be one of most effective methods to maximize the field experience. Recently, smart-phones or tablet devices are paid attention to as a learning tool, but most mobile applications are restricted to use for the educational purpose due to technical limitations, and their incomplete types. Hence, developing the authoring tools that the teachers can directly make and fill out the contents of the application is necessary. Finally, the case study on the mobile-based field experience learning of World Heritage in history class is presented by the smart fusion education team in Ewha Womans University. In the first year, the teaching and learning scheme for the mobile-based field experience learning on Changdeokgung Palace was developed. In second year, the teaching and learning scheme for the mobile based field experience learning on Gyeongju Yangdong Village was developed. In addition, using the authoring tools of the MoFAS(Mobile fieldwork authoring system), the teaching and learning scheme was applied to the field experience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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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기 종 양상과 용문산 상원사 종 비교 고찰

        원보현(Won, Bohyun)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22 美術史學 Vol.- No.43

        명문(銘文)이 없는 용문산 〈상원사 종〉은 사찰문화재(2002년-2019년) 조사결과 근대 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용문산 〈상원사 종〉은 일제강점기에는 고려 종으로 추정되며 당시 종을 산 대곡파 본원사 경성별원을 홍보하는 신문기사에서도 朝鮮3銘鐘 중 하나로 자랑할 만큼 고대 한국 종 중에서 매우 진귀한 보물로 인식되었다. 일본 학자들이 고려 종으로 추정한 것은 당시 일제가 조사한 한국의 고대 종과 비교했을 때 종신의 문양표현이 통일신라와 조선시대 종과는 달랐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또 근대에 제작된 전통형 종은 조선시대 종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고, 일본 장인들에 의해 제작된 종은 남양주흥국사 〈개교원명 종(開敎院銘 鐘)〉(1918년)이외에는 한국 종을 모방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1939년 보물로 지정할 때에도 큰 이견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상원사 종〉이 1908년 남산 동본원사 경성별원에 도착했을 당시 한국 주종장인들의 활동은 매우 미약하였다. 19세기 한국불교는 이미 사찰에 대한 공납과 과세가 과도하게 요구되는 상황에서 군역과 부역군으로 동원되는 등 과도한 승역은 사찰몰락을 가져오게 되었고 많은 사찰이 폐사되면서 새로운 종을 주조하기보다 사찰 간에 종이 매매되거나 파손된 종을 수리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근대에 조선시대 종을 부분적으로 중수했던 기록이 보이는 것도 1916년부터이다. 1876년 일본과 조선이 맺은 수호조약에 따라 문호를 개방하면서 근대 일본불교는 조선에 진출하였다. 일본불교 종파 중에서도 정토종은 대한제국 황제와 황태자의 위패를 안치하면서 빠른시간 동안 비약적인 포교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불교계가 별원에서 사용할 대형 종을 주조해서 한국으로 가져오기 시작한 시기는 1918년부터이다. 대곡파 본원사 경성별원(大谷派本願寺京城別院)이 문을 연 1906년은 일본불교의 포교 활동이 시작단계였던 것만큼 사찰의 의식 법구들을 모두 일본에서 공수해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포교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대한제국 황실을 압박하여 경성별원은 지었지만 1906년은 한국 주종장인들의 활동이 거의 없었던 시기였고, 아직 일본 주종장인들의 공방이 한국에 자리 잡기 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일본 현지에서 대량으로 제작한 중소형의 판매용 일본 종만 유입되던 시기였다. 본 연구에서 살펴보고자 한 것은 〈상원사 종〉이 근대에 제작된 종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종은 제작기법과 종신의 형태 등은 일본 종을 기본으로 하며, 종신에 새겨진 상대, 하대, 연곽과 연뢰, 주악비천상은 새롭게 문양을 제작했다기보다 통일신라 후기에 제작된 작품을 모방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 종 역사에서 일본 종 양식을 받아들인 시기는 근대기가 유일하다. 현재 〈상원사 종〉에 대한 정확한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은 『조선고적도보 7권 - 고려시대 편』(1920년)에 찍힌 사진과 도면뿐이다. 양평에서 경성으로 옮겨진 시기에 대한 기록도 사실을 확인하기에는 부족한 자료들 뿐이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이 종이 옮겨졌다는 시기인 1907년을 배제하고, 1920년대 전후의 근대기 종 제작현황 등 실질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부분들로만 정리하여 본 논고에서는 〈상원사 종〉의 제작 시기를 근대로 추정하고자 한다. 또한 <상원사 종>의 제작 배경에 대해서는 근대기에 제작된 〈개교원명 종〉과 같이 한국인들에 대한 일본불교의 포교 활동 속에서 이루어진 결과물일 것으로 추정하고자 한다. The ‘Bell of Sangwonsa temple’ in the Yongmun mountain, which does not have an inscription (銘文), is classified as a modern bell based on a temple cultural property (2002-2019) survey. However, opinions are divided as to when it was made. The ‘Bell of Sangwonsa’ of the Yongmun mountain was presumed to be created under the Goryeo Dynasty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newspaper articles promoting the Daegok-pa Bonwonsa temple Gyeongseongbyeolwon, where the bell was bought at the time, glorified it as one of the three great bells of Joseon. It is believed that Japanese scholars presumed it to be the Goryeo Dynasty bell because the pattern expression of the bell was different from the bells of the Unified Silla and Joseon eras compared to the ancient bells of Korea investigated by the Japanese at the time. In addition, the traditional bells produced in modern times followed the bell style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re were no examples of imitations of Korean bells other than 〈開敎院銘鐘〉 (1918) at the Heungguksa Temple in Namyangju, which was made by Japanese craftsmen. Therefore, it is believed that there was no great disagreement when designating it as a treasure in 1939. When the ‘Bell of Sangwonsa’ arrived at the Dongbonwonsa temple Gyeongseongbyeolwon in Namsan in 1908, there was a decline in the activities of the master bell craftsmen in Korea. In the 19th century, Korean Buddhists were already mobilized for military service and auxiliary service in a situation in which tribute and taxation were excessively required for temples. Excessive work(僧役) led to the downfall of temples; as many temples were destroyed, it became more common to sell or repair damaged bells rather than create new bells. It is also from 1916 that records of partial repairs of the bells of the Joseon Dynasty in modern times can be seen. In 1876, Japan and Joseon opened their doors as per the Treaty of Protection, and modern Japanese Buddhism entered Joseon. Among the sects of Japanese Buddhism, the Jodo sect was able to carry out missionary activities in a short period of time by enshrining the tablets of the emperor and crown prince of the Korean Empire. However, it was in only in 1918 that the Japanese Buddhist community started constructing large bells to be used in the Byeolwon and brought them to Korea. In 1906, when the Daegok-pa Bonwonsa temple Gyeongseongbyeolwon (大谷派本願寺京城別院) opened, it must have been difficult to transport all of the temple"s ceremonial and rites from Japan as the propagation activity of Japanese Buddhism was at the beginning stage. And although the Gyeongseongbyeolwon was built under the pressure of the imperial family of the Korean Empire eight years after they started propagating Korea, 1906 was a time when Korean craftsmen had little activity, and Japanese craftsmen had not yet established themselves in Korea. It was a time when only small and medium-sized Japanese bells produced in large quantities in Japan were imported.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whether the ‘Bell of Sangwonsa’ was a modern bell. The production technique and shape of this bell are based on the Japanese bell, and it is thought that the upper and lower patterns carved on the bell, Yeongwak and Yeonroe, and Juakbicheonsang were not newly created patterns, but rather imitated works made in the late Unified Silla period. The modern period is the only period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bells to adopt the Japanese style. Currently, the only accurate records of the ‘Bell of Sangwonsa’ are photos and drawings in 『Joseon Archaeological drawings Vol. 7 - Goryeo Period Edition』 (1920). The records of the period of transfer from Yangpyeong to Gyeongseong are also insufficient to confirm the facts. Therefore, this researcher intends to estimate the production period of the ‘Bell of Sangwonsa’ in modern times in this paper by excluding 1907, the time when this bell was moved, and arranging only the parts that can be confirmed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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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시대[江戶時代] 朝鮮 繪畵의 收藏과 鑑評

        박은순(Park, Eunsoon)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20 美術史學 Vol.- No.40

        이번 연구는 한일 회화교류에 대한 연속적인 2차 연도 연구 중 두 번째 논문으로서 에도시대 19세기 중 일본과 조선의 회화 교류와 소통의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增訂古畵備考』 중 50권과 51권에 수록된 「高麗朝鮮書畵傳」(이하 서화전이라 함.)을 중심으로 19세기 일본에서 유통되던 한국 서화의 정보와 이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 및 평가 등을 검토하였다. 본고에서는 특히 일본의 상황과 조건을 전제로 한일 회화교류의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론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서 한국 측의 입장과 시각을 강조하여 온 그간의 연구를 넘어서 한일회화교류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더하고자 하였다. 먼저 서화전에 수록된 고려와 조선 회화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수록된 주요한 작품과 기록을 제공하거나 수장한 일본의 수장가 및 수장처를 발췌하여 1. 가노파 인사, 2. 개인 수장가, 3. 다이묘, 4. 사찰, 5. 출판물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이를 통해서 에도지역에서 활동하던 서화전의 著者가 한국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였고, 다양한 계층의 인사들을 접촉하였으며, 에도 뿐 아니라 조선과의 교류가 많았던 지역이나 수장처의 자료를 적극적으로 수집한 것을 확인하였다. 서화전의 저자가 가노파[狩野派]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배경에서인지 수장가 및 수장처의 경우에도 가노파와 관련된 사례가 많았다. 개인 수장가의 경우에는 原本 『古畵備考』의 정보 제공자들 중 주요한 인사들이 서화전의 정보 제공자, 또는 수장가로서 인용되었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개인들이 인용되었다. 조선과의 교류가 많았던 지방의 다이묘들과 에도 및 지방의 여러 사찰들도 주요한 수장가 및 수장처 역할을 하였다. 다이묘와 사찰의 수장품들은 작품의 수준이나 중요도 면에서 주목할 만한 경우가 있었다. 다음으로 한국 회화의 작가, 국적, 화풍, 진위 등을 거론한 감평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대표적인 사례를 고찰하면서 감평의 양상과 특징을 정리하였다. 감평의 경우에도 가노파 관련 인사 및 수장가의 의견을 인용한 사례들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작가나 국적, 화풍에 대한 서화전 저자의 의견이 인용된 기존의 견해와 다를 경우에는 기존의 의견과 저자의 의견을 함께 수록하여 감평의 객관성을 확보하였다. 저자는 화풍이나 기법 뿐 아니라 관서의 서체, 도장의 진위 문제 등도 거론하면서 본격적인 감정을 하기도 하였다. 에도시대에 유행한 古畵趣味를 배경으로 숙련된 감식안과 기준을 가졌던 서화전의 저자는 한국 관련 서화 정보를 발췌하고 작품을 평가, 감정하는 데 있어서 전문가로서의 기량을 발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화전에 수록된 작가, 국적, 화풍 등에 대한 논의를 현재의 시점에서 분석하여 보면 때로는 잘못된 판단과 불충분한 정보를 제시한 경우들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에도시대 19세기 중 한국회화에 대한 정보와 지식의 상황을 시사하고 있으며, 이는 곧 서화전의 특징인 동시에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서화에 대한 서화전의 정보를 인용하거나 활용하려는 경우 서화전이 가지는 이와 같은 특징을 감안하여 비판적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This research is second in series of a research on the cultural exchange of paintings between Korea and Japan.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identify the details of cultural exchange and communication that took place during the Edo period. Firstly, the study is based upon “the Records on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of Goryo and Joseon periods”, included in Vol. 50 and Vol. 51 of The Revisied Version of the Records on Old Paintings 『增訂古畵備考』. It focuses on information and reputation of painting and calligraphy of Joseon in the 19th century Japan. “The records on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of Goryo and Joseon periods” includes calligraphy and paintings of Goryo and Joseon, or records of them and representative collectors and collections of Japan, suggested and organized in the following categories; 1. Gano school members, 2. Personal collectors, 3. Daimyos 4. Temples, 5. Publications. It was possible to identify the fact that the author, who’s active mainly in Edo, collected a wide variety of materials related to Korea, contacted with people of diverse classes, and actively gathered materials from regions or collections that made frequent connections with Joseon. Furthermore, possibly owing to the fact that the author of “the records on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of Koryo and Joseon periods” made intimate realtionships with the Gano school, collections and collectors were often linked to the Gano school. Some private collectors were overlapped with information providers of the original The Notes of Old Paintings 『古畵備考』. Some daimyos of regions that had frequent relationships with Joseon took the role of collectors at the same time. Various temples provided important collections as well. These collections or collectors were worthy of notice in terms of importance or quality. Secondly, criticisms on the artist, nationality, painting style, authenticity of Korean calligraphy and paintings were classified into two categories. Their aspects and characteristics are suggested upon analysis of representative cases. Opinions of Gano School personnels were also referenced often in criticism on paintings. The author’s opinion was suggested along with ideas of other critics, in order to secure objectivity. The calligraphic characteristic of a sign and the authenticity of a seal were also a subject of discussion in some cases of these criticisms. The author of “the records on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of Goryo and Joseon periods”, who had a sophisticated standard of criticism on paintings owing to the trend of tasting old paintings during the Edo period. He was able to perform professional criticism upon evaluation and appraisal of paintings and calligraphy related to Korea. However, some of the included discussions seem misjudged to the perspective of present standards. Moreover, some cases of criticism seems to be inadequately supported as well. This means the limitation of information and knowledge in the 19th century Edo period and at the same time can be regarded as a characteristic of “the records on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of Goryo and Joseon periods”. When one refers the information on Korean paintings and calligraphy included in “the records on the calligraphy and painting of Koryo and Joseon periods”, it is important to take notice of this limitation and characteri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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