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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일본의 초기 니체 수용사: 1890~1910년까지

          정낙림 ( Chung Nakrim ) 한국니체학회 2018 니체연구 Vol.34 No.-

          이 논문은 일본의 니체 수용사를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본의 니체 수용사가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동양에서 최초로 니체철학이 소개되고 니체의 저서들이 번역된 곳이 일본이고, 한국과 중국의 니체 수용은 일본을 거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의 니체 수용사에 대한 연구는 일본의 니체 수용사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니체 수용사가 우리에게 의미를 가지는 또 다른 이유는 일본의 니체 수용사를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일본이 어떻게 자신의 문화와 역사, 사회적 조건에 맞게 니체를 재해석하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의 니체 수용사를 통해, 니체철학에 대한 동양적 이해 방식의 의의와 그 동시에 문제점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니체 수용사는 한국보다 반 세기 가까이 앞서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대략 1890년에서부터 1910년까지의 일본에서의 니체 수용사를 소개한다. 이 시기에 우리가 주목해야할 지식인은 다카야마 린지로[쵸큐], 아네사키 마사하라[쵸후], 모리 오가이이다. 1900년초 다카야마 린지로가 촉발하고 당시 일본 지식인들의 화두였던 ‘미적 생활’ 논쟁은 일본의 니체 철학 수용과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주제이다. This paper aims to introduce the Reception of Nietzsche’s Philosophy in Japan. To examine the Reception of Nietzsche’s Philosophy in Japan is meaningful for us because it was exactly Japan where Nietzsche’s Philosophy was first introduced and Nietzsche’s texts were translated. The Reception of Nietzsche’s Philosophy in Korea and China was mostly influenced by Japan. Thus, research into the Reception of Nietzsche’s Philosophy in Korea and China will be able to gain objectivity through the Reception of Nietzsche’s Philosophy in Japan. Another reason why the Reception of Nietzsche’s Philosophy in Japan has meaning to us is because we will be able to see how Nietzsche’s Philosophy had been reinterpreted in Japan in accordance with its culture, history and social conditions. Through the Reception of Nietzsche’s Philosophy in Japan, we will be able to identify the significance and problems of the Oriental understanding of Nietzsche’s Philosophy. The Reception of Nietzsche’s Philosophy in Japan is nearly half a century ahead of Korea. This study introduces the Reception of Nietzsche’s Philosophy in Japan from approximately 1890 to 1910. The intellectuals of that time we should pay attention to are Takayama Rinjiro[Chogyu], Anesaki Masaharu[Chofu], and Mori Ogai. ‘The aesthetic life debate’ triggered by Takayama Rinjiro is mainly based on Nietzsche’s Philosophy.

        • KCI등재

          니체의 몽테뉴 회의주의 수용과 변형

          임건태 ( Gun Tae Lim ) 한국니체학회 2015 니체연구 Vol.27 No.-

          니체는 몽테뉴가 글을 씀으로써 이 지상에서 사는 기쁨이 늘어났다고 극찬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몽테뉴가 니체에게 미친 철학적 영향이나 두 사람 간의 관계에 연구는 아직까지 극히 드물다. 이에 대한 원인을 짐작컨대 니체의 해석자들이 너무 표면적인 언급이나 인용의 빈도수에만 초점을 맞추어 니체의 글을 독해해 왔기 때문이 아닌가싶다. 하지만 니체의 아포리즘적 글쓰기 방식이나 비체계성을 등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식의 이해 방식은 그리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니체가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에게 심대한 작용을 하고 있는 사상적 맥락을 짚어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글은 지금까지보다 더 심층적으로 니체에게 다가서서 니체의 사상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써 방금 언급한 프랑스 모럴리스트이자 니체가 높이 평가하고 있는 몽테뉴의 입장이 니체에게 미친 사상적 파급 효과가 어느정도인지 밝혀보고자 한다. 그러나 두 사상가 사이의 전면적인 비교 연구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특정한 주제와 관련하여 니체가 몽테뉴의 견해를 생산적으로 수용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고자한다. 그러한 주제로 여기서 택한 것은 미로와 같은 몽테뉴 사상의 핵심적 실마리라고 할 수 있는 회의주의이다. According to Nietzsche, the delight of living on this earth increases owing to Montaigne’s writing. But strangely there is a few study about the relation between two thinkers or about Montaigne’s philosophical influence on Nietzsche. Because it seems that interpreters of Nietzsche have focused on superficial comments or the frequency of references. Nevertheless such a way of understanding is not appropriate because of Nietzsche’s aphoristic style or deliberate non-systemic writing. Rather we must discover the contexts of the hidden thoughts that Nietzsche doesn’t express explicitly. In this respect, this dissertation aims to investigate French moralist Montaigne’s influence on Nietzsche in order to know Nietzsche deeper. But the overall research between two thinkers will ask many times and labors. Therefore we choose the essential part of Montaigne’s thoughts i.e scepticism.

        • KCI등재

          니체의 "예술가-형이상학"의 의미와 문제

          이상엽 ( Sang Yeop Lee ) 한국니체학회 2014 니체연구 Vol.25 No.-

          니체의 『비극의 탄생』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 관한 고전문헌학적 연구의 결과물로 보이지만, 본질적인 의미는 미적 또는 예술적 관점에서 새로운 형이상학을 구축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 니체는 그리스도교 문화가 힘을 상실한 후 과학에 대한 맹신과 물질주의가 삶을 지배하고,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이 경제적 차원으로 축소되어 가는 것을 문화의 몰락으로 감지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극복하기 위해, 니체는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의미 있는 삶의 토대를 건설하여 새로운 예술 문화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한다. 바로 그 시도의 산물이 『비극의 탄생』이고 또한 이것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예술가-형이상학’이다.이 형이상학은 단순한 ‘형이상학적 미학’이 아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존재와 가상을 구분하는 이원론에 입각해서 하나의 초월적 일자를 전제하는 하나의 형이상학이다. 세계와 삶의 보편적 원리와 구조를 예술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동시에 세계와 삶의 모든 고통과 모순된 현상을 ‘미적으로’ 정당화하려는 그러한 형이상학이다. 니체는 ‘예술가-형이상학’이 우리에게 삶의 고통을 치유하고 삶의 자극제가 되는 “형이상학적 위안”의 기능을 함으로써 인간의 삶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일종의 종교와 같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의 ‘예술가-형이상학’은 삶의 여러 고통, 모순, 부조리, 염세적 기분 등을 극복하고 삶에 의미, 즐거움, 행복을 가능하게 해주는 형이상 학적 토대를 제공하려 한다는 점에서 실로 의미 있고 독창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니체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여기서 전제되고 있는 초월적 절대자에 대한 설명이나 증명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영국의 경험론과 칸트의 비판철학 이후 표상에 근거하는 인식능력의 한계 때문에 인간은 현상 배후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식’할 없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니체의 ‘예술가-형이상학’이 전제로 삼고 있는 ‘근원적 일자Ur-eine’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본 논문의 목표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예술가-형이 상학’은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으며 또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를 서술하고,이 ‘예술가-형이상학’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문제에 대해 살펴보는 데 있다. Auf den ersten Blick scheint Nietzsches "Geburt der Tragodie" das Ergebnis einer philologischen Untersuchung uber die antike griechische Tragodie zu sein. Doch besteht die wesentliche Bedeutung dieser Schrift darin, in Hinsicht auf das Asthetische oder das Kunstlerische eine neue Metaphysik zu bauen. Im spaten 19. Jahrhundert war Nietzsche bewusst, dass Blindes Vertrauen in die Wissenschaft und Materialismus in den Prozess der Industrialisierung das Leben beherrscht. Zur Bekampfung dieses historischen Prozesses verscht Nietzsche aufgrund einer neuen Mtaphysik den Grundstein fur den Sinn des Lebens herzustellen und eine neue kunsterliche Kultur aufzubauen. Das Ergebnis dieses Versuches ist "Die Geburt der Tragodie" und die "Artisten-Metaphysik", die den Hintergrund dieser Schrift bildet. Die Metaphysik ist nicht eine blosse “metaphysische Asthetik”. Dies ist einewirkliche Metaphysik, die aufgrund der Dualitat des Seins und der Erscheinung das tranzendente Ur-Eine veraussetzt. Die Metaphysik zielt darauf, Leiden und widerspruchliches Phanomen der Welt und des Lebens ‘asthetisch’ zu rechtfertigen. Nietzsche hofft, dass “Artisten-Metaphysik” als eine Art von Religion dem menschlichen Leben Sinn und Zweck zu verleihen, indem sie eine fuhrende Rolle als ‘metaphysischen Trost’ spielt, den Schmerz in unserem Leben zu heilen."Artist-Metaphysik" ist sicherlich ein sinnvoller und kreativer Versuch, weil sie eine metaphysische Grundlage giebt, verschiedene Schmerzen, Widerspruche und Absurditaten des Lebens und pessimistische Stimmung zu uberwinden und Sinn, Freude und Gluck des Lebens zu erscheinen zu ermoglichen. Wie von Nietzsche selbst zugestanden, muss es jedoch ein anachronistischer Versuch sein, das in seiner Metaphysik vorausgesetzte transzendente Absolute zu beweisen. Nach dem Empirismus Englands und der kritischen Philosophie Kants vermag der Mensch nicht, Ubersinnliches hinter der Erscheinung zu erkennen,wegen der Grenze des Erkenntnis aufgrund der Vorstllung. Daher ist eine Annahme des ‘Ur-Eine’ problematisch, auf dem “Artisten-Metaphysik” Nietzsches basiert.Das Ziel dieser Arbeit besteht darin, darzustellen, aus welchem Hintergrund "Artisten-Metaphysik" Nietzsches entstand ist und welchen Inhalt sie hat, und zu erortern, welchen Sinn und welche Probleme sie hat.

        • KCI등재

          니체의 민주주의 이념 비판- 자유, 평등, 박애 비판을 중심으로

          최순영 ( Soon Young Choi ) 한국니체학회 2014 니체연구 Vol.26 No.-

          민주주의는 19세기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을 기점으로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2차 대전 직후 민주주의는 한국을 포함한 구식민지 국가들에게 확산되었다. 냉전 시기 동안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의 대결국면을 맞았다. 결과는 사회주의의 몰락과 자유민주주의의 승리였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역사의 종말이라고 환호하였다. 이후자유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로 변화해갔다. 그러나 2008 미국발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2010년대 우리는 아랍과 북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의 제 3의 물결 ‘쟈스민 혁명’을 목격하였다. 역사 속에 민주주의는 전 세계로 확산되어간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의미와 제도 또한 변화되어 가고 있다. 민주주의는 이제 인류의 보편적가치가 되었다. 20-21세기 민주주의가 보편화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그 비판력을 많이 상실하였다. 브론너의 지적처럼 ‘민주주의가 모든 문제들의 해결책이 됨에 따라 그 비판적 특성과 기능은 상실되었다.’ 이는 민주주의 개념의 외연적 확장에 따른 민주주의 개념의 내포, 즉 민주주의 개념의 모호화로 드러나고 있다. 민주주의의 외연이 확장되면서 그 내포가 추상화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우리는 니체의 거리낌 없고 솔직한 민주주의 비판에 정치철학적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에 대한 니체의 비판을 분석하고, 그 의의와 한계를 서술하였다. 니체의 정치철학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이는 니체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개념인 힘에의 의지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필자는 니체철학에 대한 다양한 정치철학적 해석을 비교, 분석하였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각각의 해석이 갖는 장단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논문을 서술하였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하여 니체 정치철학의 공헌은 계승, 발전시키고, 그 한계는 시대의 정치적 맥락에 맞추어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학문적 노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니체철학에 대한 엄밀한 정치철학적 독해를 해야 한다. 본 논문이 니체 정치철학 연구과 현대민주주의 연구에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Democracy has developed in Western Europe, and it prevailed in this world, as English Chartist Movement started. After very end of World War Ⅱ, democracy has begun to spreaded over the colonial countries, including Korean democratic republic. Liberal Democracy has confronted to people``s democracy in the era of cold war. And the socialist countries has fallen down. The latter has been defeated by the former. F. Fukuyama has declared the victory of liberal democracy as the end of history. Liberal democracy has been transforming to neo-liberalism. But financial crisis of USA in 2008 has revealed the limit of neo-liberalism. In first decade of 21C, we have observed the Jasmin Revolution in the middle east and north-african countries. The political meanings and institutional forms of democracy has been changing, as democracy has been developing in the whole world. Democracy became a universal value of mankind nowadays. By the way, democracy has lost the critical meaning in the course of its universalization. As S. E. Bronner pointed out, democracy has lost its critical character and function, as it becomes cure-all for political problems. It proved to be obscuration and abstraction of democracy, as long as the concept of democracy has been extended. It is worthy of listening to Nietzsche``s unreserved critique of democracy. In this paper Nietzsche``s critique of liberty, equality and fraternity has been critically analyzed. The meanings and limits of Nietzsche``s critique of democracy are described. The desirable Interpretation of Nietzsche``s political philosophy is disputable till today. It results from the difference of interpretation of will to power, which is Nietzsche``s most important philosophical concept. I tried to compare, and to analyze various interpretations of will to power. In this way, I do philosophical endeavors to clarify the merits and faults of each interpretation. Nietzsche``s philosophical contributions should be succeeded, on the contrary, his limits should be overcome. First of all, the political interpretation of Nietzsche``s philosophy should be done to approach this goal. I hope that this paper could contribute to the philosophical researches of Nietzsche``s political philosophy and of contemporary democracy.

        • KCI등재

          제2부: 니체와 형이상학, 해석의 문제 : 니체의 근원적 허무주의

          이상엽 ( Sang Yeop Lee ) 한국니체학회 2013 니체연구 Vol.24 No.-

          니체의 허무주의 철학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 대부분은 허무주의를 ‘신의 죽음’, 다시 말해 절대적 진리나 가치의 부재의 측면을 중심으로 하여 다루어왔다. 간단히 말해 ‘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허무와 공허가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는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허무주의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포괄적인 관점이라 하기 어렵다. 우리는 니체가 말하는 ‘근원적 허무주의grundsatzlicher Nihilismus’로까지 논의를 전개시켜야만 허무주의의 본질을 알 수 있고 또한 그극복의 가능성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본 논문은 근대에 ‘신의 죽음’ 이후 나타난 ‘유럽의 허무주의’와 인간 실존의근원 현상으로서의 ‘근원적 허무주의’를 함께 사유해야지만 니체의 허무주의의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유럽의 허무주의’는 근대 유럽에 나타난 특정한 형태의 허무주의를 가리키는 반면에, 니체가 말하는 ‘근원적허무주의’는 근대 유럽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근원적 현상이며‘동일한 것의 영원회귀’의 사유와 밀접한 연관 속에 있다는 점을 밝힐 것이다. 본 논문은 니체가 허무주의의 원인에 대해 어떤 진단을 내리는지, 또한 이것의 극복을 위해 어떤 처방을 제시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려한다. 이를 위해서니체의 허무주의에 대한 이해가 시간의 경과 속에서 어떻게 변해갔는지, 유럽의허무주의와 근원적 허무주의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 근원적 허무주의와 동일한것의 영원회귀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살피고, 마지막으로 니체의 허무주의 극복의 시도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다. Nietzsches Nihilismus-Philosophie wird bisher am meisten in Bezug auf den ‘Tod Gottes’ untersucht, der also die Abwesenheit der absoluten Wahrheit oder des Wertes bedeutet. Einfach gesagt, wegen des ‘Tod Gottes’ wird eine Zeit des Nihilismus erschienen, wo die Verneinung aller Werte, Ziele und Glaubensinhalte auftaucht und somit eine Leere dominiert. Aber es ist schwer zu sagen, dass diese direkte Ableitung des Nihilismus aus dem ‘Tod des Gottes’ eine umfassende Perspektive ist, um die Ursache des Nihilismus ans Licht zu bringen. Wenn nur die Nihilismus-Diskussion zum ‘grundsatzlichen Nihilismus’ Nietzsches entwickelt wird, dann ist das Wesen des Nihilismus und die Moglichkeit der uberwindung zu erkennen. Diese Arbeit geht von der Ansicht aus, dass der nach dem ‘Tod Gottes’ in der Moderne erschienene ‘europaische Nihilismus’ und der ‘grundsatzliche Nihilismus’ als die grundlegenden Phanomene der menschlichen Existenz zusammengedacht werden muss, um die Essenz von Nietzsches Nihilismus zu verstehen. Wahrend der ‘europaische Nihilismus’ als eine im 19. Jahrhundert in der modernen Europa erschienene bestimmte Art von Nihilismus bestimmt wird,wird der ‘grundsatzliche Nihilismus’ im wesentlichen nicht mit dem modernen Europa beschrankt, sondern liegt in enger Verbindung mit dem Gedanke ‘die ewige Wiederkehr des Gleichen’. Diese Arbeit hat es sich zur Aufgabe gemacht,diesen wichtigen Zusammenhang in seinen verschiedenen Kontexten darzustellen. Diese Arbeit versucht, Nietzsches Diagnose fur die Ursache des Nihilismus und die Wege des uberwindung des Nihilismus darzulegen. Zu diesem Zweck unternimmt sie, wie ein Verstandnis von Nietzsches Nihilismus im Laufe der Zeit verandert wird, was der Unterschied zwischen dem “europaischen Nihilismus”und dem “grundsatzlichen Nihilismus” ist, weiche Beziehung zwischen dem “grundsatzlichen Nihilismus” und dem Geganke “die ewige Wiederkehr des Gleichen” giebt, herauszuarbeiten, und schließlich Nietzsches Versuch der uberwindung des Nihilismus zu erlautern.

        • KCI등재

          “그러나 투린이다!" 니체의 도시의 발견

          ( Jorg H. Gleiter ) 한국니체학회 2014 니체연구 Vol.25 No.-

          니체는 그의 마지막, 정신적으로 가장 생산적인 해였던 1888년 4월 초 투린에 왔다. 그는 1888년 4월 20일에 하인리히 쾨젤리츠(Heinrich Koselitz)에게 보낸 편지에서 투린을 “탁월한 발견” 이라고 말하며, 같은 해 4월 14일 칼 푹스(CarlFuchs)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투린을 “내가 있을 수 있는” 첫 번째 장소라고 알리고 있다. 또한 그 해 말 12월 16일 쾨젤리츠에게 보낸 또 한 통의 편지에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알리고 있다: “최근에 깊이 생각해봤는데, 사람들이 단 한번이라도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지 않는 풍경이든 혹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는 것을 즐거워하든 하나의 장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전에 나는 불가능한 것이라여겼다.” 그가 20년 전에 이미 자신을 잘 소개했던 것처럼, 오버엥가딘 산간지방의 산책자는 현대 중심지의 그런 한가로운 철학적 산보자가 되어 있었다. 1869년 초 당시 니체는 당시 로데(Erwin Rohde)와 함께 파리에서의 길고 긴 체류를 계획했었다. 로데에게 보낸 1869년 1월 16일자 편지에서 니체가 표현했던 것처럼, “한 쌍의 한가로운 철학적 산보자처럼” 그들은 “진지한 눈과 미소 짓는 입술로 파리의 강가를 걸어 다니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이 계획들은 니체가 바젤에서 초빙을 받는 바람에 좌절되었다. 화려한 거리들과 직각의 거리패턴, 거의 끝없이 이어지는 건물 아케이트들과 건물들의 고전주의 양식 면에서 파리와 많은 유사성을 지닐 만큼 성장한 공업도시였던 투린은 그에게 탁월한 발견이었다. 니체 연구에서 지금까지 간과된 것은 니체가 1888년에 도시인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니체가 지금까지 “실스마리아의 은자” (토마스 만)로서 플라톤처럼 자유로운 자연 속에서 자신의 철학적 착상들을 얻었다면, 투린에서는 전적으로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공격했던 것 같다. 투린의 끝없이 이어지는 아케이트 속에서 행해진 니체의 산책들은 『비극의 탄생』의 직접적인 반향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그는 어떻게 소크라테스의 “아테네에서의 비판적인 행보”(GT, KSA 1, Abs. 13,S.89)가, 즉 폴리스에서, 스토아 속에서, 거리에서, 시장에서의 행보가 그의 철학적 깨우침의 행위들을 위한 장소가 되었는지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높은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들이 서 있는 복도와 맑고 고상한 선으로 그어진 지평선을 올려다 보면서, 그 옆에 빛나는 대리석 속에 다시 비치는 자신의 미화된 모습의 변화 속” (GT, Abs. 25, S.155)에서 스스로를 “고대 그리스의 실존” (GT, Abs. 25, S.155)으로 복귀시켰다. 투린에서는 그 중 첫 번째로 19세기 “특별예술(Sonderkunst)”로서 음악으로 부터의 니체의 분리와 현대의 “중심예술(Leitkunst)”로서 건축으로의 방향 선회가 일어났다. 도시의 발견과 더불어 미학 생리학의 사상은 두 째로 몸의 현상학적 전환으로 명명할 수 있는 그의 예술이론의 중심부로 들어온다. 동시에 『힘에의 의지』의 기획의 소로 데카당스는 그의 철학의 새로운 중심 개념이 되었는데, 이러한 철학으로 니체는 세 번째 최종적으로 바그너적으로각인된 독일관념주의로부터의 분리되었고 프랑스적 현대성으로 방향전환을 했다. 니체의 도시의 발견에 대한 이해 없이그의 마지막 해의 저작들의 많은 것들이 아직도 어둠 속에 머물러 있다. Anfang April 1888, seinem letzten, geistig uberaus produktiven Jahr, kamFriedrich Nietzsche nach Turin und berichtete, dass Turin eine “capitale Entdeckung” (Brief an Heinrich Koselitz vom 20. April 1888) sei, Turin sei der erste Ort, “in dem ich moglich bin!” (Brief an Carl Fuchs vom 14. April 1888) Am Ende des Jahres verkundete er: “Neulich sagte ich mir: einen Ort zu haben, wo man nicht heraus will, nicht einmal in die Landschaft, wo man sich freut, in den Straßen zu gehn! - fruher hatte ich’s fur unmoglich gehalten” (Brief an Heinrich Koselitz, 16. Dezember, 1888). Aus dem Spazierganger der Oberengadiner Bergwelt wurde jener “philosophische Flaneur” der modernen Metropole, als den er sich selbst schon gut zwanzig Jahre zuvor vorgestellt hatte. Damals, Anfang1869, hatte er zusammen mit Erwin Rohde einen langeren Aufenthalt in Paris geplant. Wie ein “paar philosophische Flaneurs” hatten sie “mit ernstem Auge und lachelnder Lippe, mitten durch den Pariser Strom hindurch schreiten” wollen (Brief an Erwin Rohde vom 16. Januar 1869). Nietzsches Berufung nach Basel ließ die Plane scheitern. Umso mehr war Turin, eine aufsteigene Industriestadt, die mitihren Boulevards, dem rechtwinkligen Straßenraster, den fast endlosen Arkaden und dem Klassizismus der Gebaude viel Ahnlichkeit mit Paris aufweist, eine“capitale Entdeckung”. Von der Nietzscheforschung bisher ubersehen wandelte sich Nietzsche im Jahr 1888 zum Stadter. Wahrend Nietzsche bisher als “Einsiedler von Sils-Maria” (Thomas Mann) wie Platon in der freien Natur seine philosophischen Einfalle empfing, scheint es, dass er sich in Turin ganz auf die Seite von Sokrates schlug. Nietzsches Spaziergange in Turin, die unter den fast endlosen Arkaden Turins machte, scheinen ein direktes Echo aus Die Geburt der Tragodie, wo er beschreibt, wie fur Sokrates die “kritischen Wanderung[en] durch Athen” (Die Geburt der Tragodie, KSA 1, Abs. 13), durch die Polis, in der Stoa, in den Straßen und auf demMarktplatz zu Orten seiner philosophischen Erweckertatigkeit wurden. In Die Geburt der Tragodie hatte Nietzsche sich selbst in eine “althellenische Existenz” (GT, Abs. 25, S.155) zuruckversetzt, “im Wandeln unter hohen ionischen Saulengangen, aufwartsblickend zu einem Horizont, der durch reine und edle Linien abgeschnitten ist, neben sich Wiederspiegelungen seiner verklarten Gestaltin leuchtendem Marmor” (GT, Abs. 25, S.155). In Turin vollzog sich erstens Nietzsches Ablosung von der Musik als“Sonderkunst” des 19. Jahrhunderts und Hinwendung zur Architektur als “Leitkunst” der Moderne. Mit der Entdeckung der Stadt trat die Idee der Physiologie der Asthetik ins Zentrum seiner Kunsttheorie, was zu dem fuhrte, was man zweitens Nietzsches leibphanomenologische Wende bezeichnen kann. Gleichzeitig wurde mit der Absage des Projektes des Willens zur Macht dieDecadence zum neuen Zentralbegriff seiner Philosophie, mit der Nietzsche drittens endgultig die Ablosung vom deutschen Idealismus wagnerscher Pragungund Hinwendung zur franzosischen Moderne vollzog. Ohne das Verstandnis fur Nietzsches Entdeckung der Stadt bleibe vieles in den Schriften des letzten Jahrs im Dunkeln.

        • KCI등재

          딜타이와 니체의 삶 철학

          양해림 ( Yang Haerim ) 한국니체학회 2018 니체연구 Vol.34 No.-

          오늘날 딜타이와 니체사이에서 삶 철학은 상호 정신적 친밀감을 엿볼 수 있다. 그들 사이의 이론적 공통점은 삶과 역사를 동일시하는 역사적인 관계에 있다. 하지만 양자(兩者)사이의 이론적 방법은 서로 단편적인 영향관계만을 남겨둔 채 제각기 상이한 판단을 할 따름이다. 니체에 대한 딜타이의 비판은 부분적으로 그의 청년시절 전집에서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입장들은 삶 철학의 주제에서 그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양자(兩者)사이에 자기인식의 방법은 삶 철학을 중심으로 인간 일반을 스스로 인식하는데 있다. 특히 니체는 고독한 자기성찰, 근원적인 인간본성, 무역사적인 인간의 본질을 추구했다. 딜타이와 니체 사이에 이론적 교감은 언제나 상존해 있으나, 그들 사이에 삶철학에 대한 근거는 역사적인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딜타이와 니체는 개인적인 의미에서 중첩되거나 일면적인 측면에서 상호 영향관계를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딜타이의 저서에서 학문적 세계는 단순하게 인식하는 것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가치가 있는 이론으로 평가한다. 또한 니체는 현대에서 삶 철학의 종교적 사유를 충족했던 역사적 사명이 있는 철학자로 기억한다. 따라서 필자는 딜타이와 니체 삶의 철학을 중심으로 양자의 이론적 관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Today the philosophy of life between Dilthey and Nietzsche shows a mutual mental closeness. The theoretical commonalities between them are historical relationships that identify life and history. However, the theoretical method between the two is different from each other, leaving only the possibility of fragmentary influence. Dilthey’s criticism of Nietzsche is, in part, partly known in his youthful collection. These positions can be found in the theme of life philosophy. In other words, the possibility of self-awareness between the two and the way of mutual possibility of Nietzsche is to recognize the human being in general. In particular, Nietzsche pursued a solitary self-reflection, a fundamental human nature, and a trade-personal nature. Although mental closeness always exists between Dilthey and Nietzsche, the general rationale for their philosophy of life can easily be reached in historical relations. Although mental closeness always exists between Dilthey and Nietzsche, the general rationale for their philosophy of life can easily be reached in historical relations. Dilthey and Nietzsche can only individually judge the mutual influence in a nested or one-sided sense in a personal sense. In Dilthey’s book, the academic world is regarded as a theory of positive value, not merely perceptible. In other words, Nietzsche describes it as a philosopher who has a historical mission to fulfill the religious thinking of the philosophy of life in modern times. Nietzsche also refers to philosophers who have a historical mission to fulfill the religious thinking of the philosophy of life in modern times. Therefore, I would like to elucidate the theoretical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focusing on the philosophy of Dilthey and Nie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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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데거와 니체의 예술 이해

          양대종 ( Yang Dae-jong ) 한국니체학회 2017 니체연구 Vol.31 No.-

          본 연구는 니체의 `예술가 형이상학`을 개괄한 후, 하이데거의 예술에 대한 고찰을 그의 전기사상과의 연관 속에서 살피고, 그의 예술관이 니체의 예술관과 공유하는 지점과 그로부터 분기해 독자적인 길을 가는 지점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니체를 전통 형이상학의 완성자로 보는 하이데거의 니체독해를 니체와 하이데거의 예술관이라는 틀에서 재삼 검증해 본다. 시대의 변환가로 예술가를 정초하는 것처럼 보이는 횔덜린의 시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은 그의 말처럼 “달아나버린 신들과 도래하는 신들의 시대”에 대한 규정이며 현대를 두 가지 의미의 결여로 설명하는 시대규정을 포함한다. 그리고 횔덜린에 대한 이러한 접근이 가능해진 것은 명백히 니체의 영향이다. 예술가를 궁핍한 시대의 변환가로 바라보는 시각의 근저에는 삶의 원칙을 바꾸는 데 예술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니체의 예술 이해가 놓여있다. 무궁한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영역인 예술에서 단지 나르시스적인 개인의 자기현시만을 보는 현대의 예술 이해는 명백히 문화적 가능성의 축소이자 인간의 왜소화이다. 인간의 구체적 행위와 나아가 전체적인 삶의 의미를 감지하고 찾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현대에 사라졌거나 최소한 위축되고 말았다는 진단은 두 사상가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다. 니체에게는 끝없는 자기극복을 통해 새로운 관점과 지평을 열어나가는 장이 예술이라면, 하이데거에게 예술은 인간이 삼가며 귀 기울일 때 감춰진 존재가 현상하는 탁월한 영역이다. 니체에게 예술가는 역사 속에서 인류가 경험했던 기존의 관점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새로운 집짓기와 해체의 유희를 하는 어린아이나 주권적 개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하이데거에게서 예술가는 스스로의 실존을 문제 삼는 현존재(Da-sein) 중에서도 존재의 심연에서 오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성숙한 자를 지칭하는 기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두 사상가가 서로 상이한 예술개념을 통해서 가르치는 지점이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근원적 일자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영원한 가치의 창조와 해체의 창조적인 작업을 지속하자는 니체와 망각되었던 존재와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자는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그것이 생명의 고양이건 존재의 빛 속에서 사는 것이건, 이들에게 예술은 근원적인 삶으로의 귀환이 가능해지는 곳이다. Die vorliegende Arbeit gibt einen Uberblick der Nietzscheschen Artisten-Metaphysik, untersucht das Heideggersches Nachdenken uber die Kunst im Bezug auf seine fruhre Seinsproblematik und analysiert die gleichen und unterschiedlichen Einstellungen uber die Kunst von den beiden Denkern. Die Heideggersche Interpretation uber die Holderlins Dichtung ist, wie Heidegger selber sagt, eine Diagnose uber die Zeit sowohl von den nicht mehr existierenden als auch von den noch nicht angekommnen Gottern. Und sie beinhaltet gleichzeitig die Bestimmung von der Moderne als eine durftige Zeit wegen dieser doppelseitigen Abwesenheit der Guottern. Solche Betrachtungsweise von Heidegger ist aber erst durch seine aufmerksame Lekture von Nietzsche ermoglicht. Der Perspektive von Heidegger, welche die Kunstler als die Rettender der durftigen Zeit betrachtet, liegt das Nietzsche`s Verstandnis fur die Kunst vor, dass die Kunst einen machtigen Einfluß einubt bei dem moglichen Wechsel des Lebensprinzi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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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부: 니체와 철학실천, 철학적 치유 : 예수의 십자가와 아리아드네의 탄식에 대한 니체의 주목과 버려진 여자의 원형 하갈

          이주향 ( Ju Hyang Lee ) 한국니체학회 2011 니체연구 Vol.19 No.-

          ``버림받음``은 인간의 보편적 문제다. ``버려짐``은 인간이 통과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 정황이지만 또 그만큼 감당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예수의 십자가는 ``버림받음``의 대표적 상징이다. 낙소스 섬에서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나 아브라함가(家)에서 버려진 하갈도 버림받은 자의 원형적 모습이다. 니체는 모든 것에서 버림받고 십자가를 지게 된 예수의 태도 속에서 ``자유``를 보았고,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이라고까지 하고 있다. 버림받은 자의 원형인 그들의 태도 속에는 운명애가 무엇인지 들어 있다. 니체는 버림받은 자 예수와 아리아드네에게서 무엇을 본 것인가? 니체에 따르면 예수의 십자가는 모든 원한 감정을 넘어선 자유의 상징이다. 그 운명애적 자유를 사랑하는 니체는 아리아드네에 대해 나 이외에 누가 아리아 드네가 무엇인지 알겠냐며 테세우스에게 버림받은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의 탄식에 주목한다. 물론 니체는 아브라함 가(家)에서 버려진 여자 하갈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는 아리아드네에 대한 니체의 주목에 착안하여 모든 페르조나를 상실하고 아들과 함께 광야로 쫓겨나 떨기나무를 바라보며 방성대곡했던 하갈도 운명애적 존재라는 결론을 얻었다. 필자의 관심은 그 상징적 사건들이 버림받은 자의 신화적 원형이 되어 회자되고 있는 이유에 있다. 나는 니체가 예수와 아리아드네에게서 본 것이 자유고, 자기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성서의 버림받은 여자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하갈의 이야기에서도 반복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운명애적 존재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누구나 진리를 소유할 수 없듯 진리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없다. 자기가 자기를 버리기 전에 버림받을 수 있는 자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음이 인류의 보편적 문제가 된 이유는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버림받은 무엇인가가 응어리 되어 뭉쳐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자기가 뒤집어썼던 페르조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우리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기도 하고 박탈감을 주기도 한 각종 페르조나들은 언젠가는 제거되어야 할 일시적인 버팀목일 뿐이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경험이다. 되풀이 되는 업이 아니라 그 업을 뚫고 나오는 각성이다.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을 소유하려 한다면 고통은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Uber den Begiff "Ausgesetztsein" ist die allgemeine Situation der Menschen nachgedacht. "Ausgesetztsein" ist eine Fragestellung, die allerdings die Bedeutung des menschlichen Lebens spiegelt. Der Gekreuzigte ist das Hauptsymbol von "Ausgesetztsein". Adriane und Hagal, die von Abraham verlassen wurde, sind Archetypen der Ausgesetzten. So konzentriert sich fur Nietzsche die Frage nach der Freiheit, wenn Jesus Christus ausgesetzt und am Kreuz gehangt wurde. Nietzsche wiest mit Nachdruck auf das "Selbstsein" hin, wenn Adriane im Naxos von Theseus verlassen wurde. Dem wesentliche Lebenshaltung der Ausgetzten entspricht "Amor fati" Nietzsche versteht Jesu Kreuz als das Symbol der Freiheit gegenuber dem Ressentiment. In den Zusammemhang mit der Frage nach der Freiheit wird Adriane insbesondere von Nietzsche gestellt. Aber Er gibt keine Aufmerksamkeit auf Hagal. Vor allem wird es wichtig sein, von vornein nur solchen Begriff "Ausgesetztsein" als integratonsfahig in den Fall der Hagal anzusehen, der aus der Perspektive des Verlustes aller ``Persona`` forderbar ist. Ich will mit dem Neuansatz beim Verlust eine wesentliche Wendung in die Freiheitsfrage bringen, indem ich auf den mytischen Archetypus achtgebe. Ich will doch daran festhalten, dass fur Nietzsche "Ausgeseztsein" lediglich das "Selbstsein" bedeutet, das mit der Wertung "Amor fati" verbunden ist. Niemand besitzt keine Wahrheit, niemand wird von der Wahrheit ausgesetzt. Kein Selbst wird von dem Selbst nicht verlassen. Trotzdem sind wir am Zentrum der Verlust angelegt, was sich auch daran zeigt, dass wir keine Antwort von "Selbstsein" mehr ins Feld fuhren konnen, sondern "Persona" in den Indentifizierung einbeziehen mussten. Das Leben ist kein Besitz, sondern die Erfahrung, die in dem aufeinanderfolgenden Karma nicht besteht. Sie ist die Erleuchtung, dass man das Karma zerbrechen und im Zentrum des "Selbst" bestehen mu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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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니체철학과 자연, 인간, 정치 :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스마르크 비판

          최순영 ( Soon Young Choi ) 한국니체학회 2011 니체연구 Vol.19 No.-

          정치가와 정치철학자간의 관계는 미묘하면서 다양하다. 정치가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참모로서 정치철학자를 이용하려고 한다. 반면 정치철학자는 자신의 철학적 이상을 정치가를 통해서 실현하고자 한다. 양자는 때로는 협력하기도 한다. 정치철학자는 자신의 정치이념의 실현을 위해 전자를 위하여 일하기도 한다. 공자와 맹자가 자신의 유가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천하를 주유한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때로는 양자는 대립, 멸시하기도 하기도 한다. 햇빛이 안보이니 비켜 달라는 부탁을 알렉산더에게 한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의 마주침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치``,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무자비한 폭력을 수반하는 현실정치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한 번도 니체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없으며, 니체의 비스마르크에 대한 평가는 비판적이다. 잘못된 오해를 극복하는 것으로부터 본 연구는 시작된다. 이점에서 독일의 사학자 쉬더(T. Schieder)의 주장은 경청해 볼만한 주장이다. "니체와 비스마르크의 이름은 먼 과거에도 현재에도 연결되어 있다. 많은 외국의 관찰자들은 양자를 독일적 과도함(excessiveness)의 인격화로 본다. 니체의 슬로건인 힘에의 의지는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다가오는 무자비한 권력의 야만성과 실행자로서 양자는 전체주의적 독재의 원조에 귀속된다. 그러나 단순화는 기껏해야 많은 문제들을 포함하고 양자에 대한 엄격하게 차별화된 평가를 요구하는 역사적 연관성을 드러낼 뿐이다." 인구에 널리 회자되는 다수의 편견들은 현실과 무관한 근거 없는 주장일 경우가 많으며, 이는 정확한 이해를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비스마르크와 니체의 관계일 것이다. 양자의 외견상의 유사성을 파고들면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가 나타난다. 신의 옷자락이라도 잡을 수 있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정치가 비스마르크와 2000년이 넘는 서양역사의 문제를 니힐리즘으로 비판하고 가치전환에 의한 새로운 유럽 문화의 건설을 꿈꾸는 니체, 이 두 사람을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양자에 대한 성급한 역사적 연관성, 유사성의 주장은 엄밀한 지성의 관점에서 볼 때 무지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은 통일독일을 위한 외교정책의 일부였다는 점과 비스마르크의 세력 균형 외교가 독일제국 건설이후 독일의 번영과 유럽의 평화를 위해 기여했다는 점,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철학적 원리로서, 정책으로서 철혈정책과 추상수준을 달리하므로 아무런 개념적, 역사적 배경에 대한 고려 없이 양자를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스마르크 비판`` 연구를 통해서 필자는 현실정치, 현실정치가와 이를 비판하는 정치철학, 철학자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건강한 긴장상태를 강조하고자 한다. 이러한 긴장상태가 무너지고 일자에 의한 타자의 지배와 예속은 정치적 타락을 가져온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현실정치에 의한 정치철학의 예속은 정치적 이상 없이 힘과 힘의 대결만이 난무하는 정치의 타락과 끝없는 대화와 의견 교환으로서 정치의 종말을 야기한다. 반면에 정치철학에 의한 현실정치의 예속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철인정치에 의한 독재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실정치와 정치철학의 적절한 긴장관계는 건강한 정치를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와 철학이 유리되고 정치는 지저분한 권력정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치부되는 정치의 위기가 논해지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니체는 자신의 철학적 이상의 구현을 문화국가를 통해서 실현하고자 한 현대의 마지막 이상주의적 철학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맺는다. The relationship statesman and political philosopher is various and subtle. Statesman uses political philosopher as a political counselor in order to attain his political object. On the contrary, political philosopher tries to realize his political ideal through statesman. They cooperate sometimes. The former works for the latter to achieve his political ideal, for example the political tour of Confucius and Mencius. Sometimes they contradict or despise each other, for example Diogenes request to Alexander, whether he gets out of the way that he can enjoy sunshine continually. Bismarck`s policy of blood and iron and Nietzsche`s will to power are normally regarded as a representation of real politics which is based on ruthless violence. But Bismarck never talked about Nietzsche and Nietzsche`s political thoughts on Bismarck are critical. This paper aims to overcome the common prejudice on them. For that, it is helpful to read what german historian T. Schieder has written. "To many a foreign observer, both men appeared as personifications of German excessiveness; Nietzsche`s slogan of will to power seemed precisely to fit Bismarck`s slogan of blood and iron. The prophet of impending barbarism and the practitioner of unmitigated power could both be relegated to the ancestral gallery of totalitarian dictatorship. But simplification at best only disclose a historical connection, which is full of problems and requires strictly differentiated evaluation of the two parties." Baseless Prejudice on the connection of Bismarck`s blood and iron policy with Nietzsche`s will to power is the greatest barrier which prevents us from exact understanding of them. Their differences become clear when we scrutinize their relationship precisely beyond superficially simplified similarity. It isn`t easy to compare real statesman Bismarck with philosopher Nietzsche. The former thought that it is very lucky if we can touch the fringe of God`s dress in the real political world, the latter criticized western history which can be defined as nihilism and he tried to rebuild healthy european culture by critique of nihilism and conversion of whole nihilistic values. It is an ignorance to correlate Bismarck`s blood and iron policy with Nietzsche`s will to power without scientific and historic proof. The policy of Bismarck`s blood and iron is one of his strategy for german unification. After unification Bismarck tried to keep the international political power balance, and this policy contributed to prosperity of Germany and international peace. Will to power, on the contrary, is a philosophical principle which can`t be simply identified with political policy of blood and iron. There is a kind of tension between real politics, statesman and political philosophy. The collapse of this tension causes political corruption. The subordination of political philosophy to real politics brings out contesting political powers without philosophical thoughts, which provoke the end of politics as endless communication of various political opinions. The subordination of real politics to political philosophy as Plato`s Republic induces the dictatorship of philosopher king. Therefore maintenance of healthy tension between real politics and political philosophy is inevitable for vital democratic politics. Politics and philosophy are separated and politics means dirty power game in contemporary political world. In this situation, is Nietzsche the last idealistic philosopher who tried to realize his philosophical ideal by cultural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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