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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주 한국극예술학회 2014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46
현철의 번역희곡 「하믈레트」는 한국의 셰익스피어극 수용사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위치를 점한다. 우선 1920년대에 수용된 여타의 셰익스피어극과는 그 번역 양상과 번역의 목적이 가장 이질적이라는 점에서 시대적 특이성을 보인다. 1920년대에 이루어졌던 셰익스피어극 수용 과정을 일별해 보면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띠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 가지는 ‘소설적 수용’이고 한 가지는 ‘연극적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적 수용’은 주로 찰스 램(Charles Lamb)의 『셰익스피어 이야기(Tales from Shakespeare)』를 저본으로 하여 독서용으로 번역한 것이다. 찰스 램의 저작물 자체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작의 대사를 살린 산문체 형식으로 바꾸고 복잡한 구성을 간결하게 추림으로써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번역의 저본으로 삼은 가장 큰 목적은 셰익스피어극에 대한 한국인 독자들의 접근과 이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데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연극적 수용’은 현철의 「하믈레트」에서 나타나는 경향으로 당시의 주류적 경향이었던 ‘소설적 수용’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현철의 「하믈레트」는 실질적인 공연을 의식한 공연용 대본으로서, 희곡이라는 장르 자체가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희곡을 문학의 하위 장르로서뿐만 아니라, 나아가 연극의 하위 장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는 실제적인 실례로 제공되었다. 이는 희곡 장르의 번역과 더불어 연극 대본으로서의 지위를 분명하게 표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번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소설적 수용’이 셰익스피어극의 내용에 대한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현철의 「하믈레트」가 보여주는 ‘연극적 수용’은 희곡의 번역을 한국의 근대극 수립을 위한 근대극 운동의 일환과 관련시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현철의 「하믈레트」가 갖는 시대적 가치는 일본의 셰익스피어극 수용 과정과 비교해 볼 때 보다 선명해 진다. 1920년대까지 일본 내에서 진행된 셰익스피어극 수용 과정은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가부키적 수용에서 신파극적 수용으로, 그리고 다시 신극적 수용을 거쳐 대학 강단의 학문적 수용으로 변모되어 나갔다. 그리고 1911년에 쓰보우치 쇼요의 ‘후기 문예협회’가 공연했던 <하무렛토(햄릿)>(1911.5)를 기점으로 셰익스피어극은 사실상 더 이상 공연되지 않게 되었다. 셰익스피어극이 더 이상 공연되지 않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11년에 공연되었던 <하무렛토>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그 배경에는 서구식 근대극의 연극적 성공과 일본 내에서의 영문학 위상의 제고 등과 같은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함으로써 1920년대가 되면 일본 내에서 셰익스피어극이 근대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고전극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현철의 「하믈레트」는 바로 일본 내에서 셰익스피어극이 근대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시점에서, 그리고 마치 일본의 전통 연극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옛날의 연극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던 쓰보우치 쇼요의 <하무렛토> 공연에 사용되었던 번역본 『하무렛토』를 번역의 저본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의아함을 불러일으킨다. 1920년대는 한국의 근대극이 본격적으로 태동하는 시기로, 한국의 근대극이 일본의 근대극 ...
김숙경 한국극예술학회 2008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27
Many directors and play writers have pursued ‘Korean style theater’ since 1970'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Myung Kon Kim who has pursued ‘Korean style theater’. Myung Kon Kim is a playwriter and director and one of the representative writers who have created ‘Korean style theater’ since 1980's. I make, his early works, “Kabose Kabose”, “Jum-a Jum-a Konjum-a”, “Kyek-jung-man-ri” an objects of this study. His initial interests of ‘Korean style’ originated in the Ma-Dang-Kuek Movement. Ma-Dang-Kuek was handed down by the success of Tal-Chum(Mask play). He transformed Ma-Dang-Kuek into the style on the stage theater. The materials of his plays are basically focused to social subjects and historical matters of Korea like Dong-Hak revolution, Gyang-Ju demonstration, The Korean War, the division of Korean and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and Korean theater history. He often applies the plot of epic theater and Ma-Dang-Kuek. In the aspects of plots, the quality is not so excellent, because the principles of theater on the stage and Ma-Dang-Kuek clashsed in his works. Moreover he intends to put too many materials, stories, and characters into a play. Therefore it is not easy to communicate the message of the play. He cares much for ‘theatrical ways’ in writing and directing, which are movement, song and dance, the participation of the audience, play within the play, masks and dress, and spectacle. He takes good ideas on theatrical ways from traditional drama and culture like the technique of traditional theater and play, Pan-So-ri and Korean folk songs, traditional dance, original korean objects and dress. The theatrical ways cover the problems of the writing in the performance and make the audience feel easy. However the misapplication and frequent insertion of theatrical ways make a paly worse and complicated. In this case, Myung Kon Kim may cause misunderstanding that he intends to depend on the formal and easygoing way in creating ‘Korean style theater’. 본 논문은 ‘한국적 연극’을 지향했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김명곤의 초기 작품을 대상으로 ‘한국적 연극’을 지향하는 그의 연극관이 극작술에 어떻게 반영되고 실현되는가를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대상 작품은 <갑오세 가보세>, <점아 점아 콩점아>, <격정만리>이다.김명곤은 마당극의 무대화를 통해 ‘한국적 연극’을 추구한다. 주로 동학농민혁명, 광주항쟁, 6.25전쟁, 분단과 통일, 한국연극사와 같은 당면한 사회문제나 민족수난사에서 극의 소재를 취해 리얼리즘적 현실 깨닫기를 지향한다. 김명곤은 민중 지향적이고 진보적인 시각에서 주제의식을 부각시키고 있다. 작품의 구성에 있어 연구 대상 작품들은 상호 공통된 특성들을 보여주고 있다. 해설자를 등장시키는 서사극적 구조나 앞풀이-각 장-뒤풀이 식의 마당극적인 구조, 그리고 연대기적 구성은 두 작품 이상이 갖고 있는 공통된 구성 방식이다. 마당극과 무대극 모두를 개방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창작의 방향을 표방하지만, 초기 극작품에서는 마당극의 영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며, 이는 이후까지도 김명곤의 극작술의 한 특성으로 지속된다. 초기 작품에서는 마당극의 구성원리와 무대극의 구성원리가 적절하지 않은 지점에서 충돌하기도 한다. 해설자 진행 방식이 극을 상투적이고 평범하게 만드는가 하면, 총체적 접근이라는 목적 하에 다수의 짧은 장면들을 연대기적으로 나열시켜 극의 효과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또한 내용과 구성방식이 유기적으로 관련 맺지 못하는 측면도 발견된다.이러한 구성의 문제는 일정 부분 ‘연극적 방식’의 활용으로 공연에서 보완될 가능성을 마련하고 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연극적 방식’은 대부분 한국의 전통연희나 전통극, 판소리와 민요, 한국의 전통춤(몸짓), 한국 고유의 오브제나 의상 등 ‘한국적 연극’ 지향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한국적’이고 ‘연극적’인 방식의 활용은 구성의 밋밋함이나 느슨함을 보완해주고, 대중적인 친근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지나치게 잦은 삽입으로 표면상 ‘한국적’ 분위기를 내는 데에 그치기도 한다. 이런 경우 ‘한국적 연극’을 만드는 정형화되고 안이한 연출 방식에 기대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크다.‘마당극의 무대화’, 또는 ‘마당극과 무대극의 절충적 계승’은 김명곤의 ‘한국적 연극’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자, 김명곤의 연극미학을 결정짓는 주요 개념이다.
[자료]한운사의 광복절 특집드라마 <기다려도 기다려도> 해제
정현경 한국극예술학회 2015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49
한운사(본명은 한간남(韓看南), 1922~2009)의 방송극은 선택된 사실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인간의 삶과 역사의 속내를 허구라는 틀 속에 담아 그려내며 시청자로 하여금 가려진 역사 속 진실과 대면하게 한다. 정현경,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24~26면 참조. 일제의 강점으로 시작된 20세기를 산 한국인들 모두가 그러하였듯이 한운사는 파란만장한 한국사를 그의 인생에서 현재로 살아왔다. 80여 편에 달하는 한운사의 방송극은 그의 인생 여정인 동시에 그가 살아온 질곡의 역사에 대한 미메시스(mimesis)라고 할 수 있다. 극작가로서의 한운사가 추동해내는 상상력의 구심점이 그가 살아온 ‘한국사’에 맞닿아 있는 것은 그의 문학관과 관련이 깊다. 그는 문학이나 영화를 자기가 살아본 세상에 있었던 일,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였느냐는 이야기, 그런 것을 재현해 내일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가를 상의해 보는 장으로 인식하였다. 한운사, 『구름의 역사』, 민음사, 2006, 112면. 더불어 그는 식민과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트라우마(trauma)를 ‘소화’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건강도, 개인의 건강도 유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위의 책, 126면. . 한운사에게 있어 ‘악몽’과도 같았던 민족사는 같은 역사를 공유한 민족의 ‘트라우마’이자 반드시 치유되어야 할 ‘독소’와도 같은 것이었다. 한운사가 끊임없이 ‘한국사’를 소환하고 있는 이유는 문학이 독자/시청자로 하여금 불행했던 역사로서의 민족적 ‘트라우마’를 직면하도록 하여 그것을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한운사의 극작은 일제강점기와 8.15광복, 한국전쟁 그리고 4.19혁명과 5.16쿠데타로 대표되는 정치적 갈등과 모순의 1960~1970년대로 이어지는 질곡의 한국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한운사의 작품 중,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광복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향한 노모(老母)의 기다림과 죽음을 통해 민족의 수난과 비극을 극화한 ‘광복절 특집드라마’이다. 1970년대에 8.15광복을 기념하는 특집극으로 방영된 한운사의 TV 방송극은 모두 4편이다. 광복 30주년 기념 특집극으로 방영된 「미싯가루」(TBC, 1975)를 비롯하여 「기다려도 기다려도」(MBC, 1977)와 같은 해인 1977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3부작으로 제작되어 미니시리즈의 가능성을 보여준 「나루터 3대」(KBS, 1977) 그리고 「파도여 말하라」(TBC, 1978)가 그것이다. 1970년대에는 계몽과 선전선동의 목적극이 주류를 형성하였는데, 이들 특집극을 통해서 목적극의 실상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억압과 통제의 방송 현실에서도 소극적이나마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견지하고자 했던 작가 정신도 발견할 수 있다. 윤석진, 「광복 30주년 기념 특집극 <미싯가루> 해제」, 『한국극예술연구』 제37집, 한국극예술학회, 2012, 231면 참조. 한운사는 광복 기념 특집극들을 통해 일제강점으로 인한 민족의 수난을 극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주력하였던 것이다.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광복 이후 30여 년이 흐른 서울의 종로를 극적 배경으로 설정하여 197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강조해 동시대성과 리얼리티(reality)를 획득하고 있다. 극의 전개는 교회의 교육관을 짓기...
우수진 한국극예술학회 2012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35
This thesis is for studying on the modernity of The Caltrop's amateur theatricals in the social and the cultural context of the early 1910s. The Caltrop, the society of the working students in Keungsung(京城, Seoul) was established in the July 1920. They demanded the sympathy and the support of the society, and hold the various cultural business such as the public lectures, the concerts and the theatrical productions for raising funds for themselves. The Caltrop enacted the spirit of the sympathy and the mutual help which was the basis of the bourgeois society. The activities of The Caltrop was reported fully in the press, which ideally theatricalized the modern society in which the sympathy and the mutual help was being fulfilled. The Caltrop's amateur theatricals were still Shinpakuk(新派劇, The New Trend Theatre). However they showed the reality and the authenticity which Shinpakuk had never showed before, especially in the autobiographical drama like The Destiny(運命)(written by Yun Baknam(尹白南)) and The Poor(written by anonym). The provincial tours for raising funds was the highlight of the Amateur Theatricals Movement in the early 1920s. Especially The Caltrop's tour company was welcomed for staging the miserable reality of the working students, and got the huge sympathy and support everywhere they visited. The relay reports of The Caltrop's provincial tour in the press visualized and enhanced the community of Chosun colonized. 이 논문은 1920년대 초반 갈돕회 소인극(素人劇)의 근대연극사적인 의의를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구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920년 6월 창립된 갈돕회는 경성의 고학생들이 연설회와 강연회, 음악회, 소인극 공연 등과 같은 각종 문화사업을 통해 사회 각계각층의 동정과 후원을 구했던 자기구제 단체였으며, 소인극공연과 순회모금공연은 그 핵심적인 문화사업 중 하나였다. 갈돕회는 근대 부르주아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원리인 ‘동정(同情)’과 ‘상조(相助)’를 토대로 하며 이를 실연(實演)하는 단체였다. 갈돕회에 대한 신문언론의 적극적이고 우호적인 보도는 결과적으로 ‘동정’과 ‘상조’의 원리가 구현되는 근대사회를 ‘극장화(theatricalization)’ 하는 것이었다. 갈돕회 소인극은 신파극 형식으로 공연되었다. 하지만 갈돕회 소인극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였던 윤백남의 <운명>과 미태생(微蛻生)의 <빈곤자의 무리>는, 그것이 ‘고학생들에 관한 고학생들의 연극’이었다는 점에서 번안 위주의 기존 신파극에는 없었던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순회모금공연은 소인극운동의 백미였다. 특히 갈돕회의 순회공연은 고학생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무대화함으로써 관객대중의 큰 ‘동정’과 ‘상조’를 얻었다. 그리고 순회일정에 따른 신문언론의 반복적인 중계보도는 순회극단이 거쳐간 남선(南鮮)과 함경도 그리고 중부 및 평안도 등의 각 지역을 하나의 조선/사회로 심상화(心像化) 시키면서, 그 공동체/감을 스펙터클화 했다. 갈돕회 소인극 및 순회모금공연으로 대표되는 20년대 소인극운동은 기성 연극의 공연주체와 목적이 전도된 새로운 연극이었다. 그것은 상업적인 연극과 달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들과 공감, 소통하기 위한 공동체 연극이었다. 이 속에서 공연주체는 자신의 서사를 연극화 하면서 자기 자신 및 자신이 속한 공동체/사회를 재/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객대중은 이국적인 재미를 추구하기보다 자신과 그들(공연주체)이 함께 속해 있는 공동체/사회의 현실을 재/발견하면서 진정성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과 공동체/사회의 현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를 매개로 하는 공감과 소통은 소인극공연의 정수이자 근대극운동의 토대였다.
한국 유성기음반에 관한 음반문헌학적 연구의 결실 ―배연형, 『한국 유성기음반 문화사』(지성사, 2019)
송미경 한국극예술학회 2020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70
배연형의 『한국 유성기음반 문화사』는 1897년부터 1945년 사이 한국의 유성기와 유성기음반, 그리고 이것을 둘러싸고 벌어진 문화적 현상의 전모를 담아낸 책이다. ‘제1부. 한국 유성기음반의 역사’, ‘제2부. 유성기음반과 사회’, ‘제3부. 유성기음반 시대의 음악’의 전체 3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해당 시기 한국 유성기음반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으며, 방대한 분량의 한국 유성기음반 관련 시각자료와 문헌 기록을 한 자리에 집대성했다는 의미도 있다. 이 책에서 한국 유성기음반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고 분석한 이론적, 방법론적 토대가 된 것은 이른바 ‘음반문헌학’이다. 이는 저자가 30여 년 전 발표한 「한국음악의 음반문헌학(Discogrophy) 서설(1)」을 통해 학계에 처음 제기된 개념으로, 후에 ‘음반 문헌 연구’, ‘과학 기술적 연구’, ‘음반의 내용 연구’, ‘파생적 연구’ 등으로 다시 구체화였다. 『한국 유성기음반 문화사』는 이러한 방법론을 발전적으로 아우른, 음반문헌학적 연구의 훌륭한 결실이다. 저자가 시도한 것은 한국 유성기음반에 관한 사적 고찰로서의 음반문헌학 연구로, 음반사적 접근, 문화사적 접근, 음악사적 접근이 차례로 논의의 중심에 놓인다. 제1부 ‘한국 유성기음반의 역사’에서는 ‘음반 문헌 연구’를 주요한 방법론, ‘과학 기술적 연구’를 보조적인 방법론으로 삼아 한국 유성기음반사를 구축․정립하였으며, ‘제2부 유성기음반과 사회’에서는 한국 유성기음반을 둘러싼 제 현상을 문화사, 특히 대중문화사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제3부 유성기음반 시대의 음악’은 ‘음반 문헌 연구’에 따른 성과를 토대로 ‘음반의 내용 연구’를 본격화한 논의인데, 특히 3장 ‘판소리와 창극, 가야금병창’에는 그동안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업적을 이뤄온 저자의 내공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한편 저자가 이 책을 마무리하며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시대적 과제로서의 유성기음반 공공화이다. 그리고 『한국 유성기음반 문화사』가 이룩한 음반문헌학적 연구의 성취는, 음반의 연구와 음반의 수집․활용이 별개의 문제가 아님을,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문제가 아님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1950년대 ‘현대극’으로서 사실주의 연극의 양상 - 차범석의 장막극과 제작극회의 공연을 중심으로
이영석 한국극예술학회 2015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47
In this paper, we check to one aspect of the realistic theater performances in 1950s through the contents of the drama and production of Cha beomseok and Jajackgeukhoe. The discussion of contemporary theatre is actively developed in the late 1950s, South Korea. Cha beomseok and Jajackgeukhoe was advocating a theatrical activities for the "theatrical modern". To consider the aspect that is realized in Playwriting and performances is meant to check the pattern of seeking to establish a contemporary drama. Cha beomseok and Jajackgeukhoe were against the emission of feelings and tried to conform the realistic style on the stage. Cha beomseok sought the realistic aesthetics by the character looking at the distance between himself and the reality. In the 1950s’ play works, however, distinctive characteristics are found. In <Bulmoji>(The Wasteland), <Gongsangdosi>(The Fancy City), <Ggepjilijjaejineunapeumoepsineun>(The Shell can not be torn without Pain), the characters with the subjective inner regions which is not encompassed into the objective world in the drama were appeared in his play. These figures are to be critical for the social reality reflected in the works by the awareness of the negative reality of the drama surrounding them. Their critical awareness of the dramatic reality raises the need for a sound social ethic that will enable the successful joining to that reality, and social reality also. In this way, the Cha Beomseok’s plays of this period is beyond the level of simple reproduction of reality. It is to carry out the functions of the social edification. This can be called theatrical response to the reality in the 1950s. Jajackgeukhoe’ production developed and pursued realistic reproduction aesthetics. They were seeking restraint of emotion in acting, the stage setting was trying to create an environment that meets the contemporary life. Sometimes The subjectivity of a person was reflected on the stage set, or the memory of a person was visually represented. But it was entirely without departing from the borders of the factual representation. However, the subjectivity of the characters that appear in the drama of Cha beomseok seems to conflict with such reproduction. Subjective validity of the characters in realistic reproduction had not been specifically staged, but are channeled into madness and rage. This was contrary to the acting route to pursue a disciplined behavior. It was easy to buy a reluctant of audience. And in between stage and audience, brought the inconsistency of intention and outcome. The achievement in realistic style of Cha beomseok and Jajackgeukhoe was not complete it. These activities, however, were the foundation of the contemporary realism theater in 1960’s as <Fire> shows well it. 이 글에서는 차범석의 희곡과 제작극회의 공연 내용을 통해서 1950년대 사실주의 연극의 한 양상을 점검한다. 1950년대 후반 한국 연극계에서는 현대극 수립의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차범석과 제작극회는 ‘현대적 감각’에 맞는 연극 활동을 표방하였다. 그것이 극작과 공연에서 어떻게 드러났는가를 고찰하는 것은 현대극 수립을 위한 모색의 양상을 점검한다는 의미가 있다. 차범석과 제작극회는 감정을 발산하는 연기에 반대하였고, 사실에 부합하는 생활상을 무대화하려 했다. 차범석은 감정의 토로를 통해 현실의 비참함을 폭로하는 방식에 반대하고 현실에 문제점을 객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현실과 거리를 두며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인물을 통해 시도된다. 차범석의 장막극 <불모지>, <공상도시>,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에는 객관적 극 중 세계에 포괄되지 못하는 주관적 내면의 영역을 지닌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은 자신을 둘러싼 극 중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임으로써 작품이 반영하고자 하는 현실에 대해 사회 비평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것은 1950년대 현실에 대한 차범석 희곡의 연극적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제작극회에서도 사실적 재현을 중심 미학으로 삼아 공연을 전개한다. 이들은 연기에서 감정의 절제를 추구했으며, 무대장치에서는 시대적 생활상에 부합하는 환경을 조성하려 노력했다. 차범석의 텍스트와 그 무대화에서는 때로 인물의 심리적 정황을 무대장치에 반영하거나 현재의 심적 상태를 암시하기 위해 과거 회상 장면이 도입되지만, 작품의 전체 양식은 사실적 재현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 등장인물들의 주관적 정당성은 구체적인 사건 안에서 형상화되지 않고 광기나 분노로 직접 표출되는 양상을 띤다. 이것은 절제된 행동으로 인물의 심리 변화를 암시하고자 한 제작극회의 연기 노선과 모순되는 것이며, 관객에게 거부감을 사거나 무대-객석 간에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를 가져오기 쉬운 것이었다. 비록 텍스트와 공연에서 이들이 추구한 절제의 미학이 온전히 실천되지는 못했으나, 연기에서 감정보다는 정확한 극 행동을 추구하고 현실에 부합하는 재현의 충실성을 기하는 이들의 노력은 이후 사실주의 성취의 토대가 되었다. <산불>의 공연은 이점을 잘 보여준다.
이정숙 한국극예술학회 2011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34
한국전쟁기에 유치진은 반공극과 함께 역사소재극 두 편을 집필한다. <처용의 노래>와 <가야금>은 처용과 우륵이라는 예술가를 소재로 선택하여 이를 삼각관계의 멜로드라마로 풀어내고 있으며, 모든 갈등이 해결하는 것으로 예술의 힘을 배치하여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대사 위주의 화극에서 벗어나 춤과 노래를 활용하였고, 창극과 같은 전통극의 기법을 도입하여 극의 표현기법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전쟁기의 유치진 희곡은 국립극장 재개관에 대한 요구와 국립극장에 적합한 민족극 구상의 일환으로 창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립극장은 유치진의 오랜 바람이 실현된 형태였다. 그러나 전쟁으로 국립극장의 기능이 정지되었고, 재개관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유치진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의 힘을 보여주어 국립극장 재개관의 당위성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전쟁기의 역사소재극은 국립극장에 적합한 민족극에 대한 모색의 결과였다. 유치진의 민족극 구상에서 전통극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기존의 사실주의극의 기법이 우리의 생활이라는 내용만 가져온 것이라면 전통극의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우리의 그릇에 우리의 생활을 담는 민족극 모색이 가능해지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원형과 해석 공동체의 탄생 - 김재석,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형성』, 연극과인간, 2017
이광욱 한국극예술학회 2018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59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형성』은 그간 근대극의 과도기로 치부되는 데 그쳤던 1920년대의 연극사를 본격적으로 재조명한 저작이다. 크게 다섯 마당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식민지조선 근대극담당자의 인식과 자연주의극 수용의 문제, ‘입센이즘’의 수용 양상을 밝히고 있으며, 극예술협회, 카프계열 극단, 토월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연극사적 흐름 역시 중요한 검토대상으로 삼았다. 김재석은 식민지조선의 근대극 활동 중에 서양 근대극 수준에 이른 것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보다 생산적인 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는 실재태로서의 한국 근대극이 지닌 독자성을 규명하기 위한 방법론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검열은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실천을 제약한 요소였지만, 이는 역으로 식민지기 한국 연극의 독특한 면모를 발생시킨 원인이 되었다. 김재석은 “자발성 높은 관객”의 존재에 착목하여 ‘계몽의 극장’이 완성되는 과정을 재구성한다. 즉, “관객이 단순한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극의 의미 생성에 일정 부분을 담당하는 독특함이 바로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특성”이며, 이를 전제할 때 비로소 “넘치거나 모자라는 요소”가 형성해내는 효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재석은 ‘비교연극학’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그간 자료의 공백 때문에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던 1920년대 연극사를 보다 구체적으로 조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는 1930년대의 연극사적 현상들에 뚜렷한 역사적 연속성을 부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 침체되어 가는 식민지기 연극 연구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성과로 평가되어야 한다.
김재석 한국극예술학회 2011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34
The aim of this essay is to evaluate the role of Toweolhoe, the theatre group in forming the Korean modern drama. The activities of Toweolhoe can be divided into four periods. The first is the period of the performances of July and September in 1923, when Toweolhoe had the standpoint that the performance of typical Western modern dramas could contribute to establishing the colonized Joseon's modern drama. The second is the period of January to July in 1924, when Park sunghee were active as the representative of theatre group. Park sunghee found that the Western modern drama didn't suit the Korean's mood and noting that audience preferred the works with sad mood, he tried to combine these works with the reality of colonized Joseon. The third is the period of April in 1925 to February in 1926, when Toweolhoe operated Kwangmoodae as the theatrical company system. Park sunghee rented the theater and used it, following the example of Japan's Little Theatre Chukichi but he had to perform too many works to maintain the theater. During this period it is important that they gave attention to utilizing the traditional materials, performing Chunhyangjeon. The fourth is the period of the comeback performance of the October in 1928 to the last. During this period, there are two valuable works. One is Lee Daegam, Manghal Daegum and it has the significant meaning in terms of the dramatization of traditional materials. The other is Arirang ridge in which the reality of the poor peasantry is represented as sadness but hope is never given up. It has the value as the archetype of colonized Joseon's social drama. In the studies up to now, they considered Toweolhoe, the theatre group as the popular theatre group and said that it had little contribution to forming the Korean modern drama. However thanks to Toweolhoe, the theatre group, it was possible to know the audience's response to modern dramas in colonized Joseon and on the ground of this, it was possible to form the archetype of modern drama of colonized Joseon which contains the content that they tried not to lose hope despite their harsh reality. 이 논문은 한국 근대극 형성기에 있어 「토월회」의 위치를 재고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국 근대극 형성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단체로 「극예술연구회」를 꼽고 있으나, 「토월회」의 역할도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토월회」가 공연한 전체 작품을 모아보면, 전근대적인 작품과 근대적인 작품이 혼재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전근대적 작품 때문에 「토월회」를 상업성이 강한 극단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검열을 통과하고 대중성을 확보한 작품으로 극의 교화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공연을 추구했던 「토월회」의 근대극 지향점에서 그 점을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토월회」의 1기와 2기 공연에서는 일본의 근대극운동을 동류화하는 입장을 취했다.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골라 공연함으로써 교화의 대상인 관객도 확보하고, 공연 수익도 높이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의도한 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식민지조선의 관객들이 정서적으로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다는 사실과 서양 근대극의 번안으로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토월회」의 3기와 4기는 근대극운동의 고유화를 추구하였다. 「광무대」를 전용극장으로 임대하여 의욕적으로 출발하였으나, 극단과 극장의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대중성이 강한 작품을 계속해서 공연해야하는 모순에 빠졌다. 결국 「조선극장」에 전속극단으로 활동해야 할 만큼 세력이 위축되지만, 그동안 공연 경험을 통해 ‘조선정조가 넘쳐흐르는 의미심장한 시대극’에 이르게 된다. 「토월회」의 <아리랑고개>는 한국 근대극 형성기에 아주 중요한 작품인데,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 긍정적 인식이 돋보인다. 서양 근대극의 번역 공연에 머물지 않고, 식민지치하에서 공연 가능한 근대극의 실체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한국근대극 형성에 미친 「토월회」의 영향을 높게 평가하여야 한다.
유성기 음반극: 대중극과 대중서사, 대중문화의 미디어극장
우수진 한국극예술학회 2015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48
The primary purpose of this paper first is an overview of the discography of the SP record drama which was published during 1920-30’s. For this purpose, this paper made up the SP record lists, checked the left lyrics and the sound source, and searched the names of the actors, writers, directors, etc. who participated in the record work. Also it investigated how the SP record drama, the popular narrative, the popular songs were interacting each other in the sphere of the popular culture. Therefore, The study of the SP record drama is very important for the study of the popular culture. The SP record was such a commodity that could not help considering the popular trends. There were so many ‘classic/traditional’ repertories as traditional novel or Pansori like Chunhyangjeon(春香傳), shimchungchen(沈靑傳), and etc., the famous Shinpakuk(新派劇, New Trend Drama) as like Changhanmong(長恨夢), Bulyugyu(不如歸), and the western classics –like The Resurrecton(by Tolstoy), Les Misérable(by Hugo), and etc. However, the most of the SP record drama was the new original works. The motifs and main characters of the SP record drama could be easily found in stage drama, movie, novel, and popular songs. And the famous and popular actors, singers, silent-film narrators were employed in the record recoding. Also the representative works of 1930’s such as Fooled by love, Hurt by Money(by Im Sungyu), The Power of Mother(by Lee Suhgyu), and even the works of Yu Chijin were sharing the motifs, main characters, and narrative with the SP record drama and the popular narratives. 이 논문은 남아있는 유성기음반들 중 음반극을 분류하고 그것의 음반번호와 표제, 제목, 가시지와 음원의 여부를 목록화 함으로써 그 내용과 전모를 파악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유성기 음반극이 당시 무대극과 영화, 소설, 유행가 등과 같은 대중적 문화 형식들과 어떻게 적극적으로 교섭하고 있었는가를 살펴보는 데에도 중요한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이 논문에서는 1907년에서 1945년까지 발매되었던 음반들 중 현재 남아있는 음반정보가 파악되는 음반들을 전수조사(全數調査)하여 음반내용에 따라 크게 음악과 극, 서사 분야로 나누고, 그 중에서도 특히 ‘2인 이상의 대화적 상황이 포함된 연극적 구성물’을 ‘극’다시 말해 ‘음반극’으로 범주화 한다. 그리고 유성기 음반극은 다시 고전소설극 · 고전신파극 · 서양고전극 음반과 창작극 음반으로 분류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당시 고전소설극과· 고전신파극, 서양고전극 음반은 각각 6편․16종, 2편․14종, 10편․17종이었으며, 창작극 음반은 총 161편․167종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살펴볼 음반은 모두 214종으로 그 작품 수는 179편에 달한다. 유성기 음반극은 1920~30년대 연극과 문화의 장에서 무대극과 라디오극, 그리고 영화극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음반극 연구는 당시의 대중극과 대중문화 연구에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유성기음반 자체가 상업적인 판매상품이었던 까닭에 음반의 기획 및 제작단계에서부터 음반소비자 대중의 취향이나 유행 등이 고려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성기 음반극의 경우에도 ‘고전’ 레퍼토리들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고전들의 음반화는 말 그대로 고전의 불변성을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고전의 가변성, 즉 고전이 변용적으로 재/생산되거나 전유되면서 오히려 새로운 시대사회의 형식과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편 창작극 음반은 음반극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음반극에서뿐만 아니라 무대극과 영화, 소설, 가요 등에서 널리 인기 있는 소재들과 등장인물들을 토대로 하는 대중서사들이 조금씩 유사한 듯 다르게 변용적으로 차용되었으며, 잘 알려진 기존의 무대극 및 영화 배우들과 무성영화 변사, 가수들이 녹음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임선규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와 이서구의 <어머니의 힘>, 그리고 유치진의 <토막>과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등은 당시의 대중극 및 대중서사와 적극적으로 교섭, 수용한 결과였다. 음반극은 당시 대중극과 대중문화의 장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극작가와 배우, 가수 등에 대한 새로운 지형도를 제시한다. 음반극 안에서 작사가와 극작가, 배우, 가수의 영역과 경계는 유동적인 것이었고, 이들의 활동은 영역과 경계를 넘나들며 탄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음반극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대중극 및 대중문화의 장에서 활동했던 배우들의 존재를 드러내준다. 여기에는 당시의 신문과 잡지 기사들, 그리고 기존의 근대연극사/희곡사 연구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배우들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수의 배우들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