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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곤의 ‘한국적 연극’ 지향과 극작술의 상관관계 연구

          김숙경(Kim Suk-kyung) 한국극예술학회 2008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27

          본 논문은 ‘한국적 연극’을 지향했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영곤의 초기 작품을 대상으로 ‘한국적 연극’을 지향하는 그의 연극관이 극작술에 어떻게 반영되고 실현되는가를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연구대상 작품은 〈갑오세 가보세>, <점아 점아 콩점아〉, <격정만리〉이다. 김명곤은 마당극의 무대화를 통해 ‘한국적 연극’을 추구한다. 주로 동학농민혁명, 광주항쟁, 6.25 전쟁, 분단과 통일, 한국연극사와 같은 당면한 사회문제나 민족수난사에서 극의 소재를 취해 리얼리즘적 현실 깨닫기를 지향한다. 김명곤은 민중 지향적이고 진보적인 시각에서 주제의식을 부각시키고 있다. 작품의 구성에 있어 연구 대상 작품들은 상호 공통된 특성들을 보여주고 있다. 해설자를 등장시키는 서사극적 구조나 앞품이-각 장-뒤풀이 식의 마당극적인 구조, 그리고 연대기적 구성은 두 작품 이상이 갖고 있는 공통된 구성 방식이다. 마당극과 무대극 모두를 개방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창작의 방향을 표방하지만, 초기 극작품에서는 마당극의 영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며, 이는 이후까지도 김명곤의 극작술의 한 특성으로 지속된다. 초기 작품에서는 마당극의 구생원리와 무대극의 구성원리가 적절하지 않은 지점에서 충돌하기도 한다. 해설자 진행 방식이 극을 상투적이고 평범하게 만드는가 하면, 총체적 접근이라는 목적 하에 다수의 짧은 장면들을 연대기적으로 나열시켜 극의 효과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또한 내용과 구성방식이 유기적으로 관련 맺지 못하는 측면도 발견된다. 이러한 구성의 문제는 일정 부분 ‘연극적 방식’의 활용으로 공연에서 보완될 가능성을 마련하고 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연극적 방식’은 대부분 한국의 전통연희나 전통극, 판소리와 민요, 한국의 전통춤(몸짓), 한국 고유의 오브제나 의상 등 ‘한국적 연극’ 지향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한국적’이고 ‘연극적’인 방식의 활용은 구성의 밋밋함이나 느슨함을 보완해주고, 대중적인 친근함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지나치게 잦은 삽입으로 표면상 ‘한국적’ 분위기를 내는 데에 그치기도 한다. 이런 경우 ‘한국적 연극’을 만드는 정형화되고 안이한 연출 방식에 기대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크다. ‘마당극의 무대화’, 또는 ‘마당극과 무대극의 절충적 계승’은 김명곤의 ‘한국적 연극’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자, 김명곤의 연극미학을 결정짓는 주요 개념이다. Many directors and play writers have pursued 'Korean style theater' since 1970's.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Myung Kon Kim who has pursued 'Korean style theater'. Myung Kon Kim is a playwriter and director and one of the representative writers who have created 'Korean style theater' since 1980's. I make, his early works, "Kabose Kabose", "Jum-a Jum-a Konjum-a", "Kyek-jung-man-ri" an objects of this study. His initial interests of 'Korean style' originated in the Ma-Dang-Kuek Movement. Ma-Dang-Kuek was handed down by the success of Tal-Chum(Mask play). He transformed Ma-Dang-Kuek into the style on the stage theater. The materials of his plays are basically focused to social subjects and historical matters of Korea like Dong-Hak revolution, Gyang-Ju demonstration, The Korean War, the division of Korean and unification of North and South, and Korean theater history. He often applies the plot of epic theater and Ma-Dang-Kuek. In the aspects of plots, the quality is not so excellent, because the principles of theater on the stage and Ma-Dang-Kuek clashsed in his works. Moreover he intends to put too many materials, stories, and characters into a play. Therefore it is not easy to communicate the message of the play. He cares much for 'theatrical ways' in writing and directing, which are movement, song and dance, the participation of the audience, play within the play, masks and dress, and spectacle. He takes good ideas on theatrical ways from traditional drama and culture like the technique of traditional theater and play, Pan-So-ri and Korean folk songs, traditional dance, original korean objects and dress. The theatrical ways cover the problems of the writing in the performance and make the audience feel easy. However the misapplication and frequent insertion of theatrical ways make a paly worse and complicated. In this case, Myung Kon Kim may cause misunderstanding that he intends to depend on the formal and easygoing way in creating 'Korean style the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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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철의 『하믈레트』번역과 그 의의

          윤민주(尹珉珠) 한국극예술학회 2014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46

          현철의 번역희곡『하믈레트』는 한국의 셰익스피어극 수용사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위치를 점한다. 우선 1920년대에 수용된 여타의 셰익스피어극과는 그 번역 양상과 번역의 목적이 가장 이질적이라는 점에서 시대적 특이성을 보인다. 1920년대에 이루어졌던 셰익스피어극 수용 과정을 일별해 보면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띠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 가지는 ‘소설적 수용’이고 한 가지는 ‘연극적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적 수용’은 주로 찰스 램(Charles Lamb)의 『셰익스피어 이야기(Tales from Shakespeare)』를 저본으로 하여 독서용으로 번역한 것이다. 찰스 램의 저작물 자체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작의 대사를 살린 산문체 형식으로 바꾸고 복잡한 구성을 간결하게 추림으로써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번역의 저본으로 삼은 가장 큰 목적은 셰익스피어극에 대한 한국인 독자들의 접근과 이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데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연극적 수용’은 현철의 『하믈레트』 에서 나타나는 경향으로 당시의 주류적 경향이었던 ‘소설적 수용’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현철의 『하믈레트』 는 실질적인 공연을 의식한 공연용 대본으로서, 희곡이라는 장르 자체가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희곡을 문학의 하위 장르로서뿐만 아니라, 나아가 연극의 하위 장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는 실제적인 실례로 제공되었다. 이는 희곡 장르의 번역과 더불어 연극 대본으로서의 지위를 분명하게 표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번역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소설적 수용’이 셰익스피어극의 내용에 대한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현철의 하믈레트 가 보여주는 ‘연극적 수용’은 희곡의 번역을 한국의 근대극 수립을 위한 근대극 운동의 일환과 관련시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현철의『하믈레트』가 갖는 시대적 가치는 일본의 셰익스피어극 수용 과정과 비교해 볼 때 보다 선명해 진다. 1920년대까지 일본 내에서 진행된 셰익스피어극 수용 과정은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가부키적 수용에서 신파극적 수용으로, 그리고 다시 신극적 수용을 거쳐 대학 강단의 학문적 수용으로 변모되어 나갔다. 그리고 1911년에 쓰보우치 쇼요의 ‘후기 문예협회’가 공연했던 <하무렛토(햄릿)>(1911.5)를 기점으로 셰익스피어극은 사실상 더 이상 공연되지 않게 되었다. 셰익스피어극이 더 이상 공연되지 않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911년에 공연되었던 <하무렛토>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그 배경에는 서구식 근대극의 연극적 성공과 일본 내에서의 영문학 위상의 제고 등과 같은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함으로써 1920년대가 되면 일본 내에서 셰익스피어극이 근대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고전극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현철의『하믈레트』 는 바로 일본 내에서 셰익스피어극이 근대극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시점에서, 그리고 마치 일본의 전통 연극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옛날의 연극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던 쓰보우치 쇼요의 <하무렛토>공연에 사용되었던 번역본『하무렛토』를 번역의 저본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의아함을 불러일으킨다. 1920년대는 한국의 근대극이 본격적으로 태동하는 시기로, 한국의 근대극이 일본의 근대극을 모범적인 선례로 내면화하여 추수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철 역시 한편으로는 일본의 근대극이 서구식 근대극 수용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에 편승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서구식 근대극의 주변으로 밀려나 있던 셰익스피어극에 대한 관심을 피력했다는 것은, 일본식 근대극을 그대로 모방해서 뒤따르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 문학계의 상황과 연극계에 대한 명확한 현실 진단의 결과를 거쳐 나온 작가적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의 근대 연극인으로서의 그의 면모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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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한운사의 광복절 특집드라마 <기다려도 기다려도> 해제

          정현경 한국극예술학회 2015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49

          한운사(본명은 한간남(韓看南), 1922~2009)의 방송극은 선택된 사실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인간의 삶과 역사의 속내를 허구라는 틀 속에 담아 그려내며 시청자로 하여금 가려진 역사 속 진실과 대면하게 한다. 정현경,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충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24~26면 참조. 일제의 강점으로 시작된 20세기를 산 한국인들 모두가 그러하였듯이 한운사는 파란만장한 한국사를 그의 인생에서 현재로 살아왔다. 80여 편에 달하는 한운사의 방송극은 그의 인생 여정인 동시에 그가 살아온 질곡의 역사에 대한 미메시스(mimesis)라고 할 수 있다. 극작가로서의 한운사가 추동해내는 상상력의 구심점이 그가 살아온 ‘한국사’에 맞닿아 있는 것은 그의 문학관과 관련이 깊다. 그는 문학이나 영화를 자기가 살아본 세상에 있었던 일, 그때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였느냐는 이야기, 그런 것을 재현해 내일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가를 상의해 보는 장으로 인식하였다. 한운사, 『구름의 역사』, 민음사, 2006, 112면. 더불어 그는 식민과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트라우마(trauma)를 ‘소화’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건강도, 개인의 건강도 유지할 수 없다고 보았다 위의 책, 126면. . 한운사에게 있어 ‘악몽’과도 같았던 민족사는 같은 역사를 공유한 민족의 ‘트라우마’이자 반드시 치유되어야 할 ‘독소’와도 같은 것이었다. 한운사가 끊임없이 ‘한국사’를 소환하고 있는 이유는 문학이 독자/시청자로 하여금 불행했던 역사로서의 민족적 ‘트라우마’를 직면하도록 하여 그것을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한운사의 극작은 일제강점기와 8.15광복, 한국전쟁 그리고 4.19혁명과 5.16쿠데타로 대표되는 정치적 갈등과 모순의 1960~1970년대로 이어지는 질곡의 한국사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한운사의 작품 중,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광복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향한 노모(老母)의 기다림과 죽음을 통해 민족의 수난과 비극을 극화한 ‘광복절 특집드라마’이다. 1970년대에 8.15광복을 기념하는 특집극으로 방영된 한운사의 TV 방송극은 모두 4편이다. 광복 30주년 기념 특집극으로 방영된 「미싯가루」(TBC, 1975)를 비롯하여 「기다려도 기다려도」(MBC, 1977)와 같은 해인 1977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3부작으로 제작되어 미니시리즈의 가능성을 보여준 「나루터 3대」(KBS, 1977) 그리고 「파도여 말하라」(TBC, 1978)가 그것이다. 1970년대에는 계몽과 선전선동의 목적극이 주류를 형성하였는데, 이들 특집극을 통해서 목적극의 실상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억압과 통제의 방송 현실에서도 소극적이나마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견지하고자 했던 작가 정신도 발견할 수 있다. 윤석진, 「광복 30주년 기념 특집극 <미싯가루> 해제」, 『한국극예술연구』 제37집, 한국극예술학회, 2012, 231면 참조. 한운사는 광복 기념 특집극들을 통해 일제강점으로 인한 민족의 수난을 극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주력하였던 것이다. 「기다려도 기다려도」는 광복 이후 30여 년이 흐른 서울의 종로를 극적 배경으로 설정하여 197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강조해 동시대성과 리얼리티(reality)를 획득하고 있다. 극의 전개는 교회의 교육관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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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월회」 연극의 근대성과 전근대성

          김재석(Kim Jaesuk) 한국극예술학회 2011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34

          이 논문은 한국 근대극 형성기에 있어 ?토월회?의 위치를 재고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국 근대극 형성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단체로 ?극예술연구회?를 꼽고 있으나, ?토월회?의 역할도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토월회?가 공연한 전체 작품을 모아보면, 전근대적인 작품과 근대적인 작품이 혼재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전근대적 작품 때문에 ?토월회?를 상업성이 강한 극단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검열을 통과하고 대중성을 확보한 작품으로 극의 교화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공연을 추구했던 ?토월회?의 근대극 지향점에서 그 점을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토월회?의 1기와 2기 공연에서는 일본의 근대극운동을 동류화하는 입장을 취했다.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골라 공연함으로써 교화의 대상인 관객도 확보하고, 공연 수익도 높이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의도한 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식민지조선의 관객들이 정서적으로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다는 사실과 서양 근대극의 번안으로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토월회?의 3기와 4기는 근대극운동의 고유화를 추구하였다. ?광무대?를 전용극장으로 임대하여 의욕적으로 출발하였으나, 극단과 극장의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대중성이 강한 작품을 계속해서 공연해야하는 모순에 빠졌다. 결국 ?조선극장?에 전속극단으로 활동해야 할 만큼 세력이 위축되지만, 그동안 공연 경험을 통해 ‘조선정조가 넘쳐흐르는 의미심장한 시대극’에 이르게 된다. ?토월회?의 <아리랑고개>는 한국 근대극 형성기에 아주 중요한 작품인데,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는 긍정적 인식이 돋보인다. 서양 근대극의 번역 공연에 머물지 않고, 식민지치하에서 공연 가능한 근대극의 실체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한국근대극 형성에 미친 ?토월회?의 영향을 높게 평가하여야 한다. The aim of this essay is to evaluate the role of Toweolhoe, the theatre group in forming the Korean modern drama. The activities of Toweolhoe can be divided into four periods. The first is the period of the performances of July and September in 1923, when Toweolhoe had the standpoint that the performance of typical Western modern dramas could contribute to establishing the colonized Joseon's modern drama. The second is the period of January to July in 1924, when Park sunghee were active as the representative of theatre group. Park sunghee found that the Western modern drama didn't suit the Korean's mood and noting that audience preferred the works with sad mood, he tried to combine these works with the reality of colonized Joseon. The third is the period of April in 1925 to February in 1926, when Toweolhoe operated Kwangmoodae as the theatrical company system. Park sunghee rented the theater and used it, following the example of Japan's Little Theatre Chukichi but he had to perform too many works to maintain the theater. During this period it is important that they gave attention to utilizing the traditional materials, performing Chunhyangjeon. The fourth is the period of the comeback performance of the October in 1928 to the last. During this period, there are two valuable works. One is Lee Daegam, Manghal Daegum and it has the significant meaning in terms of the dramatization of traditional materials. The other is Arirang ridge in which the reality of the poor peasantry is represented as sadness but hope is never given up. It has the value as the archetype of colonized Joseon's social drama. In the studies up to now, they considered Toweolhoe, the theatre group as the popular theatre group and said that it had little contribution to forming the Korean modern drama. However thanks to Toweolhoe, the theatre group, it was possible to know the audience's response to modern dramas in colonized Joseon and on the ground of this, it was possible to form the archetype of modern drama of colonized Joseon which contains the content that they tried not to lose hope despite their harsh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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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진의 도쿄 구상 실천과 극예술연구회의 <포기>(Porgy)

          김재석(Kim Jaesuk) 한국극예술학회 2017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55

          이 논문에서는 1937년에 극예술연구회가 공연한 <포기>를 유치진의 도쿄 구상 실천과 연관시켜서, 공연의 과정과 결과를 분석하였다. 1934년 3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도쿄에 머물면서 유치진은 식민지조선 근대극 발전의 방안, 즉 도쿄 구상을 마련하였다. 식민지조선의 현실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이 무대상에 직접 노출되는 것을 피하여야 하며, 관객의 흥미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희극적 정조를 주로 하는 극을 창작하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조선적으로 해석된 외국극 공연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 도쿄 구상의 핵심이다. 귀국한 유치진은 실천부 책임간사로 극예술연구회의 공연을 주관하면서, 그의 도쿄 구상을 실천해나가기 시작하였다. 도쿄 구상에 입각한 최초의 창작극인 <소>를 필두로 한 그의 시도는 그 무렵에 강화된 일제의 공연 검열에 막혀버렸다. 유치진이 도쿄 구상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식민지조선의 현실 반영’과 ‘검열에 대한 대응’이라는 두 조건을 동시에 넘어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유치진은 작품의 소재를 역사에서 취하는 방법과 풍자극 창작이라는 두 가지 방안 중에서 역사극을 선택하였다. 그러한 모색의 결과가 <춘향전> 공연이었다. <춘향전>에서 시도했던 “리알리즘을 토대로 한 로만틔시즘”의 발전적 모습이 <포기>이다. 낭만적 사랑 이야기에 담긴 현실 비판, 그리고 노래와 춤으로 이루어진 볼거리 많은 무대(spectacle stage)를 가진 <포기> 공연을 통하여, 유치진은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실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었다. 유치진은 <포기> 공연에서 “리알리즘을 토대로 한 로만틔시즘” 극의 대극장 공연이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미래라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가 주장했던 ‘관중본위’의 외국극공연에 대한 실체로 “리알리즘을 토대로 한 로만틔시즘”의 <포기>를 제시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 공연을 통해 확고해진 “리알리즘을 토대로 한 로만틔시즘” 극을 그후에도 계속 실천해나가지는 못한 것이 그의 한계이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1938년 3월에 극예술연구회가 해산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크게 악화된 연극계의 현실로 인하여 그가 창작극에 전념할 여유를 갖지 못한 것이다. 두 번째는 대극장 공연과 낭만주의적 작품, 그리고 현실 비판이라는 세 조건이 당위적으로 설명되고 있을 뿐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창작적 논의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애매함이다. 극예술연구회의 목표와 거리가 먼 듯이 보이는 <카추샤>가 1937년에 서항석의 연출로 공연된 것도 유치진 방법론의 애매성에 그 원인이 있다. 유치진에게 있어서 <포기>는 “리알리즘을 토대로 한 로만틔시즘”의 이상적 작품 중의 하나였다. 그가 해방 후에 거듭하여 <포기>의 공연에 애를 쓴 것에서 “리알리즘을 토대로 한 로만틔시즘”의 실천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수행하려 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This report is aimed at analyzing the process and result of performance of Porgy by Gukyesulyeonguheo, the theatrical group in colonized Chosun in 1937, relating it with Yoo Chijin’s practicing his theatrical ideas in Tokyo. Yoo Chijin embodied his theatrical ideas in Tokyo, namely the ways to develop modern drama in colonized Chosun while he had stayed in Tokyo from May in 1934 until he came back home next April. The core of his ideas can be summarized three points ; first the theme of drama should never be revealed on stage directly, dealing with the real problems in colonized Chosun, secondly the dramas with comic mood should mainly be created to catch the audience’s interest, and last the foreign dramas which are interpreted in the way of Chosun should be performed. Yoo Chijin who had come back home from Japan began to practice his ideas, managing the performances as the executive secretary of practice department of Gukyesulyeonguheo. His trials including the performance of So, the first creative drama based on his ideas in Tokyo were cut off by Japanese censorship of performance which was strengthened at that time. To practice his theatrical ideas well, he had to search the way to cope with two conditions (the reflection of reality in colonized Chosun and passing Japanese censorship) at the same time. After thinking over two ways to find the subject matter of drama from history and to create satirical dramas, he chose historical dramas and the result of such pursuit was the performance of Chunhyangjeon. In the performance of Chunhyangjeon, he perceived the possibility of “romanticism based on realism”, tried to find foreign dramas with such tendency and finally selected Porgy. In Porgy there are the romantic love and the criticism of reality in the story and the stage with many thing to see, consisting of songs and dances like Chunhyangjeon. Through the performance of Porgy, he believed firmly that performing dramas of “romanticism based on realism” in big theater would be the future of modern drama of colonized Chosun. It is also very important that Yoo Chijin suggested Porgy, the drama of “romanticism based on realism” as substance of performing foreign dramas centered on audiences. Nevertheless it is his limitation that he could not practice continuously the dramas of “romanticism based on realism” hardened through the performance of Porgy. The reason is outlined as two causes. First he could not afford to apply himself to creating works, owing to the reality of theatrical world much more worsened like Gukyesulyeonguheo’s being broken up. Second he explained three conditions such as the performance in big theater, romantic dramas and the criticism of reality as a matter of course, but had not enough creative discussion on how to structure them. So the ambiguity of methodology appeared and this ambiguity caused Resurrection, the work having little to do with Gukyesulyeonguheo to be performed by Seo Hangseok’s direction in 1937. To Yoo Chijin, Porgy is one of ideal dramas of “romanticism based on realism”. So he tried to perform it repeatedly after the 1945 liberation, which showed that he did not give up practicing dramas of “romanticism based on realism” and tried to keep on practicing them continuously.

        • KCI등재

          이현화의 초현실주의적 사유와 극중극

          이은하(Lee, Eun-ha) 한국극예술학회 2013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39

          이 연구는 이현화의 <카덴자>를 중심으로 한 후기작들에서 나타나는 극중극의 기법에 대한 해명을 위해 작가의 초현실주의적 사유를 고찰하였다. 작가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에서의 현실이나 우리가 안정적이라고 믿는 세계에 대한 의문을 강조한 작품을 많이 창작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병리적인 내면과 성적 욕망을 포함한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탐색이다. 이현화는 신춘문예 당선소감에서 앵그리 영맨이나 “라이징 제네레이션의 저항”이라는 표현을 통해 당대 극계의 사실주의의 전통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 사실주의는 세계를 물리적으로 인식하며 인과관계를 통해 합리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으로 상정하는데 이러한 세계 인식에 극도의 혐오감을 나타낸 초현실주의자들처럼 이현화 역시 물리적 실재(reality)계가 아닌 무의식과 인간의 과학적 인식 너머의 세계를 탐색했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극중극의 기법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의 극중극은 서사극의 소외효과와 상관없이 초현실주의의 목표와 연관되어 있다. 그의 극중극은 끊임없는 연쇄와 반복으로 그러한 무대의 경계를 무화시킨다. 우리가 실재라고 믿는 가시적 세계와 허구 세계가 분리되지 않았다는 그의 초현실주의적 사유가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의 극중극의 작품들이 내용적 측면보다 무대와 관객의 경계가 반복되는 양상에 더 집중되는 이유는 이현화의 초현실주의적 사유가 연극이 가지는 허구이면서 동시에 현존하는 그 이중성과 맥락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현화의 극중극은 이현화의 초현실주의적인 사유를 통해 연극의 이중성을 구체적 형식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가 서구의 근대적 예술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이현화의 초현실주의적 사유 역시 한국 극계의 예술적 전통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60-1970년대 정치적?사회적 현실에서 사실주의극의 운신은 넓지 않았는데 제도권에서의 연극활동은 당시 작가의 예술적 자유를 보장해 주지 않았다. 때문에 이현화의 초현실주의가 서구의 집회와 결사를 통해 조직된 아방가르드의 예술운동과 다른, 개별적인 것으로 성취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극중극은 한국의 아방가르드 작가의 실천이라는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The main subject of LEE Hyun-hwa"s drama is about human inside. All fictional story, like schizophrenia and mental disorder could be a main subject. Her drama is theater of the absurd that handle some problems which are never solved in life. But the inside, she pointed is always about the mental disease or the realities of life. This search for subject stop making gap between the stage and the reality, and change them into coexisted thing. Stage is not fiction but reality. So stage can be "body" and "the realities of life". The Drama is a fictional story but it can be a real story. Becoming fiction and reality ruined the border of imagination and reality ultermately. "play within a play" of her drama try to coexist. The way to be aware of surrealism gets the motive in Yi Hyun-Hwa"s play-within-a- 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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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연극의 현장을 지켜온 힘

          이진아 한국극예술학회 2017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55

          『동시대 한국연극의 혼돈과 생성(전통연희의 수용 이후 탈근대적 퍼포먼스까지)』은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약 반세기 동안의 한국연극의 미학적 변화를 추적하고 있는 저서이다. 이 책에 수록된 논문 중 적지 않은 부분이 긴 시간을 들여 현장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성실하게 기록한 자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연구들이다. 현장 비평가로서 한국연극계에서 그 누구보다도 오랜 시간을 가장 활발히 열정적으로 활동하여 온 저자의 저력이 느껴진다. 총 6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관통하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근대와 근대 이후라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관찰되는 연극의 미학적 변화요, 다른 하나는 세계연극과의 만남과 충돌속에서 한국연극이 제 것으로 만든 미적 특징이다. 책의 제목이 ‘동시대 한국연극의 혼돈과 생성’인것도 바로 이러한 점을 주목한 까닭이다. 한국연극은 근대성에 대한 미학적 합의에 미처 이르지 못한 채 19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탈근대 시대의 연극을 향하여 빠르게 돌진하였다. 또 근대극의 시작부터 외부로부터의 강한 영향 하에 놓여있었던 한국연극은 오늘날까지도 세계를 향한 눈과 귀를 예민하게 열고 새로운 이론과 경향을 무섭게 흡수해 나가고 있다. 저자는 근대와 탈근대,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사이의 혼돈 속에서 우리 연극이 생성해 온 것이 무엇인지를 추적하고 있다. 동시대 한국연극 현장에서 벌어지는 작업의 의미를 시의성 있게 정리해 냈다는 점은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또 새로운 이론을 적용하고 새로운 경향을 탐색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저자의 열린 태도 역시 인상적이다. 저자는 한국연극의 주요 쟁점을 학문적으로 재검토하고 그 결과를 시의성 있게 다시 현장에 돌려주는 생동감 있는 연구를 보여준다. 현장은 학계의 도움으로 제 자신의 미학적 기반과 연극적 유산을 이해하여 제 것으로 정립하고, 학계는 현장의 작업을 다시 비평적으로 정리하여 우리 연극미학을 학문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데에 이 책이 큰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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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돕회 소인극 연구

          우수진(Woo Su jin) 한국극예술학회 2012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35

          이 논문은 1920년대 초반 갈돕회 소인극(素人劇)의 근대연극사적인 의의를 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구명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1920년 6월 창립된 갈돕회는 경성의 고학생들이 연설회와 강연회, 음악회, 소인극 공연 등과 같은 각종 문화사업을 통해 사회 각계각층의 동정과 후원을 구했던 자기구제 단체였으며, 소인극공연과 순회모금공연은 그 핵심적인 문화사업 중 하나였다. 갈돕회는 근대 부르주아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원리인 ‘동정(同情)’과 ‘상조(相助)’를 토대로 하며 이를 실연(實演)하는 단체였다. 갈돕회에 대한 신문언론의 적극적이고 우호적인 보도는 결과적으로 ‘동정’과 ‘상조’의 원리가 구현되는 근대사회를 ‘극장화(theatricalization)’ 하는 것이었다. 갈돕회 소인극은 신파극 형식으로 공연되었다. 하지만 갈돕회 소인극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였던 윤백남의 〈운명〉과 미태생(微?生)의 〈빈곤자의 무리〉는, 그것이 ‘고학생들에 관한 고학생들의 연극’이었다는 점에서 번안 위주의 기존 신파극에는 없었던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순회모금공연은 소인극운동의 백미였다. 특히 갈돕회의 순회공연은 고학생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무대화함으로써 관객대중의 큰 ‘동정’과 ‘상조’를 얻었다. 그리고 순회일정에 따른 신문언론의 반복적인 중계보도는 순회극단이 거쳐간 남선(南鮮)과 함경도 그리고 중부 및 평안도 등의 각 지역을 하나의 조선/사회로 심상화(心像化) 시키면서, 그 공동체/감을 스펙터클화 했다. 갈돕회 소인극 및 순회모금공연으로 대표되는 20년대 소인극운동은 기성 연극의 공연주체와 목적이 전도된 새로운 연극이었다. 그것은 상업적인 연극과 달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들과 공감, 소통하기 위한 공동체 연극이었다. 이 속에서 공연주체는 자신의 서사를 연극화 하면서 자기자신 및 자신이 속한 공동체/사회를 재/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객대중은 이국적인 재미를 추구하기보다 자신과 그들(공연주체)이 함께 속해 있는 공동체/사회의 현실을 재/발견하면서 진정성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과 공동체/사회의 현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를 매개로 하는 공감과 소통은 소인극공연의 정수이자 근대극운동의 토대였다. This thesis is for studying on the modernity of The Caltrop’s amateur theatricals in the social and the cultural context of the early 1910s. The Caltrop, the society of the working students in Keungsung(京城, Seoul) was established in the July 1920. They demanded the sympathy and the support of the society, and hold the various cultural business such as the public lectures, the concerts and the theatrical productions for raising funds for themselves. The Caltrop enacted the spirit of the sympathy and the mutual help which was the basis of the bourgeois society. The activities of The Caltrop was reported fully in the press, which ideally theatricalized the modern society in which the sympathy and the mutual help was being fulfilled. The Caltrop’s amateur theatricals were still Shinpakuk(新派劇, The New Trend Theatre). However they showed the reality and the authenticity which Shinpakuk had never showed before, especially in the autobiographical drama like The Destiny(運命)(written by Yun Baknam(尹白南)) and The Poor(written by anonym). The provincial tours for raising funds was the highlight of the Amateur Theatricals Movement in the early 1920s. Especially The Caltrop’s tour company was welcomed for staging the miserable reality of the working students, and got the huge sympathy and support everywhere they visited. The relay reports of The Caltrop’s provincial tour in the press visualized and enhanced the community of Chosun coloniz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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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원형과 해석 공동체의 탄생

          이광욱(서평자) 한국극예술학회 2018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59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형성』은 그간 근대극의 과도기로 치부되는 데 그쳤던 1920년대의 연극사를 본격적으로 재조명한 저작이다. 크게 다섯 마당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식민지조선 근대극담당자의 인식과 자연주의극 수용의 문제, ‘입센이즘’의 수용 양상을 밝히고 있으며, 극예술협회, 카프계열 극단, 토월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연극사적 흐름 역시 중요한 검토대상으로 삼았다. 김재석은 식민지조선의 근대극 활동 중에 서양 근대극 수준에 이른 것이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보다 생산적인 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이는 실재태로서의 한국 근대극이 지닌 독자성을 규명하기 위한 방법론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검열은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실천을 제약한 요소였지만, 이는 역으로 식민지기 한국 연극의 독특한 면모를 발생시킨 원인이 되었다. 김재석은 “자발성 높은 관객”의 존재에 착목하여 ‘계몽의 극장’이 완성되는 과정을 재구성한다. 즉, “관객이 단순한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극의 의미 생성에 일정 부분을 담당하는 독특함이 바로 식민지조선 근대극의 특성”이며, 이를 전제할 때 비로소 “넘치거나 모자라는 요소”가 형성해내는 효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재석은 ‘비교연극학’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그간 자료의 공백 때문에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던 1920년대 연극사를 보다 구체적으로 조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는 1930년대의 연극사적 현상들에 뚜렷한 역사적 연속성을 부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 침체되어 가는 식민지기 연극 연구에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성과로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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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ㆍ일 표현주의극의 전유 방식 비교 연구

          윤민주(尹珉珠) 한국극예술학회 2012 한국극예술연구 Vol.0 No.36

          이 논문은 김우진이 표현주의극을 어떠한 관점에서 이해하고 창작하였는가 하는 주체적인 측면에 주목한 논의를 확장시키는 차원의 연구로, 김우진의 표현주의극 이해를 보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검증해보기 위해 동시대 일본의 표현주의극을 비교 지표로 삼고자 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서구의 표현주의극이 한ㆍ일 양국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유(專有, appropriation)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비교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으며, 동시에 김우진의 표현주의극이 갖는 탈식민적 의미를 확인하여 한국 근대극의 독자성과 선구성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오사나이 카오루와 「츠키지소극장」은 번역의 시대를 상정하고 이 기간 동안 표현주의극 상연을 통해 당대 일본의 연극 토대와 단절된 신극을 수립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실천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표현주의극은 새로운 정신을 상실한 채 새로운 기교로만 경도되어 스스로 번역의 시기에 갇힌 무대상의 표현주의극에 그치고 말았다. 반면에, 김우진의 표현주의극은 작가의 철리(哲理)와 ‘이즘(-ism)’을 찾아나가는 예술로서 새로운 정신을 중시하는 창작활동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작가의 주의ㆍ주장은 시대적, 역사적 현실 맥락 속에서 발현되는 것으로 ‘조선’이라는 현실적 토대가 없이는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조선은 식민과 근대라는 두 가지 대립의 상황이 교차되고 있던 과도기적 공간으로, 현상태를 높은 단계로 고양시키고자 하는 자연 발생적 의지로서의 개인의 내적 생명력을 사회 발전을 위한 사회적 생명력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연극이 요구되었고, 그러한 필요성에서 표현주의극이 적극적으로 창작되었던 것이다. 한ㆍ일 표현주의극 전유 방식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는 탈식민적 인식의 차이를 노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소 거칠게 말하는 것이 되겠지만, 1920년대 일본의 표현주의극은 적극적으로 ‘서양화 되기’를 시도한 전유라는 점에서 스스로 타자화 되고자 한 방식이며,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에 종속된 상태를 스스로 자초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설정한 번역시기에만 갇혀 새로운 정신을 제시하는 표현주의극 작품을 산출하지 못 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시기의 김우진은 서구를 모방하는 것은 물론 일본식 근대화를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조선의 문학이 성립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대립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생명력의 예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작품 창작을 통해서 새로운 정신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고자 했다. 이점에서 1920년대 한국의 표현주의극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전유 방식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표현주의극의 주체로서 표현주의극의 정신을 한국의 역사적 맥락 속에 적용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탈식민적 인식을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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