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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한인 여성의 구술생애사 : 무엇을 말하고 어떤 것을 듣나

        유철인 한국구술사학회 2019 구술사연구 Vol.10 No.2

        재미한인 여성 구술자인 이지원(가명)은 이혼한 후 애리조나 피닉스의 한국식당에 서 웨이트리스 일을 하고 있다. 구술자의 자기서사에서 이혼은 생애이야기의 주제이 자 그녀에게 가장 큰 인생사건이었다. 구술자는 이혼과 이혼 후 삶을 말하고 싶어 한 국남성 대학교수인 연구자에게 자신의 생애를 이야기하였다. 구술생애사 인터뷰를 하 기 전 연구자의 관심은 구술자가 애리조나로 이주하게 된 배경과 구술자의 초국가적 활동이었다. 부부가 같이 자영업을 하다가 이혼을 한 후 구술자가 한국식당에서 웨이 트리스 일을 하게 된 배경과 느낌에 대한 이야기는 세 차례의 인터뷰 모두에 등장한 다. 이혼을 하고 혼자 살면서 한국식당에서 웨이트리스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구술자 의 현재를 가장 강력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혼을 한 후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한국남자 와 연결이 되고 한국의 인문학 관련 강의를 들었다는 것도 구술자는 여러 차례 이야 기하였다. 구술자의 생애는 이혼 전 자영업에 매달리는 재미한인의 삶에서 이혼 후 유투브로 한국의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섭렵하는 초국가적 이주자의 삶의 모습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구술자료는 기본적으로 구술자와 연구자의 공동작업의 결과물이기에 이 논문은 구술자는 현재적 관심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했고, 구술생 애사 연구자는 어떤 것을 귀담아 들었는지 비교하였다. Jiwon (a pseudonym) has worked as a waitress at a Korean restaurant in Phoenix, Arizona after getting divorced. A divorce is a theme of her self-narrative and a major turning point in her life. She would like to tell h er l ife to a research er, a Korean male professor, in o rder t o talk about her divorce and her life after getting divorced. Before life history interviews, however, a researcher and listener had an interest in Koreans’ living in Arizona and their transnational activities in everyday life. Her story about working as a waitress at a Korean restaurant after getting divorced was said over and over again during a series of three interviews. Such a s tory r epresents her p resent. Sh e also t alked about social media several times by telling how Korean men were connected with her and that she used to fall into various Korean lectures related to the humanities on the YouTube. Her life history shows the transition from the life of a self-employed immigrant before her divorce to the life of transnational activities on the social media after her divorce. Since an oral text including an oral life history is a product of the interaction between a subject and a researcher, this paper compares what the subject wants to say and what the researcher hears.

      • KCI등재

        엘리트 구술자료의 성격과 수집 방안

        김태우 한국구술사학회 2014 구술사연구 Vol.5 No.1

        이 글은 엘리트 구술자료의 성격과 수집방안에 대한 시론적인 글이다. 또한 이 글은 이제 막 엘리트 구술자료 수집을 시작하려는 연구자들이 일종의 매뉴얼로 참조할 수 있 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작성되었다. 최근 한국에서는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 중앙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기존 한국사회의 대표적 엘리트 집단에 대한 구술자료 수집활 동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반면에 아직 국내학계에는 이 같은 엘리트 구술자료 수집의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학술논저가 거의 전무한 형편이다. 이에 이 글은 엘리트 구 술자료 수집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통찰하고, 그를 선도해온 해외 학계(특히 미국 구술사 학계)의 엘리트 구술관련 논의를 충실하게 소개함과 동시에, 필자 개인이 엘리트 구술자 료 수집 과정에서 느꼈던 소회와 시행착오를 글 속에 녹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 글은 현재 한국학계에서 학술용어로 정착되어 있지 않은 ‘엘리트 구술’이라는 용어의 사용 가 능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엘리트 구술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비엘리트 구술과는 달리 인 터뷰를 통제하거나 지배하고자 하는 엘리트들의 욕구, 구술사업을 자기 정치경력이나 사 회경력 기록의 보존수단으로만 활용하려는 엘리트들의 경향성에 맞서 적절히 구술사료를 수집하는 방안에 대해 총체적으로 접근한다.

      • KCI등재

        공공역사 구술자료 활용과 법적/윤리적 쟁점 : 북미 사례를 중심으로

        박준규 한국구술사학회 2022 구술사연구 Vol.13 No.1

        본 논문은 북미 구술자료 활용에 관한 윤리적 쟁점에 관한 사안을 다룬다. 구술사 연구가 공공역사의 자료로 활용되고 대중과의 접합점을 확대해가면서 구술사적 자료 수집과 활용을 둘러싼 윤리적, 법적 문제는 점차 중요한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이 문 제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본 논문은 북미 사례를 중심으로 구술자료 활 용에 대한 윤리 및 법적 쟁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 논문은 북미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구술사적 자료 활용에 관한 3가지 윤리 적 쟁점인 피해자 중심 접근법, 탈식민 아카이브, 권력구조 비판을 사례와 함께 성찰 하고자 한다. 그리고 구술자료 활용과 관련하여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중요한 법적 쟁점이 될 수 있는 1) 구술자료의 강제공개, 2) 명예훼손, 그리고 3) 인터넷 환경에서 의 구술자료 활용을 논의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북미의 사례와 관련된 구술사 연구의 법적 윤리적 쟁점을 반면교사 삼아 한국의 구술사 연구에서 관련 논의가 활성화 되기를 바란다. TThis paper examines various ethical issues related to the applications and usage of oral historical materials in North America. As oral history is more and more associated with public history and popularized, ethical and legal issues regarding the collection and use of oral histories are becoming serious and complex. In order to stimulate serious discussions on these issues, this paper examines ethical and legal issues related to the use of oral historical materials in North America. This paper examines 3 ethical issues on the use of oral historical materials found in North American such as victim centered approach, de-colonial archive, and critique of power structure and reflects corresponding cases. Next, the paper discusses major legal issues related to the application and use of the oral historical materials found in the U.S. and South Korea in the near future: 1) compelled release of interviews, 2) defamation, and 3) oral history and the Internet. In doing so, this paper seeks to contribute to the preparation of sound ethical and legal understanding and practices regarding the application and use of oral historical materials.

      • KCI등재

        주월한국군의 대민관계 : 참전 군인들의 구술 증언을 중심으로

        류기현 한국구술사학회 2020 구술사연구 Vol.11 No.1

        이 글은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구술과 증언, 회고담을 중심으로 주월한국군의 민 사작전 및 대민관계의 준비과정과 내용, 주월한국군과 베트남 현지 사회의 충돌‧갈등 양상을 살펴본다. 베트남전은 주로 비정규전의 형태로 치러졌기 때문에 전‧후방의 구 분이 불분명했고, 한국군이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베트남 현지인 및 민간사회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구술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군의 대민관계를 위한 준비는 전반적으로 부실했다. 파월 직전 이루어진 특수교육은 유격 훈련을 비롯한 전투기술의 함양에 초 점을 맞추었으며, 언어, 문화, 습속 등을 비롯해 베트남이라는 낯선 나라를 이해하고 현지 민간인들과 관계를 맺는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의 전달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 다. 파월 군인의 기본 임무는 전투이므로 특수교육의 초점이 전투기술 향상에 맞춰진 것은 일견 불가피했지만, 그럼에도 한국군이 대민관계의 중요성을 외부적으로 공언한 데 비해 그것을 위한 실제 준비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한국국은 구호사업, 진료활동, 건설지원, 자조사업 등의 민사작전을 전개했다. 이 는 군사작전과 개발의 밀접한 결합을 강조하는 미국의 대유격전 교리, 근대화 이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즉 한국군이 벌인 대규모의 민사작전은 미국이 제공한 이론적, 물질적 배경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상당수의 구술자들은 민사작전의 효과나 결 과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는 주월한국군의 ‘성공적인 대민관계’라는 역사 적 이미지가 상당 부분 신화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preparation and contents of the ROKFV’s (Republic of Korea Forces in Vietnam) civil affairs operations and civil-military relations, as well as the conflict between the Korean military and the Vietnamese community, based on oral statements of veterans. Since most battles in Vietnam were conducted as counter-guerilla warfare, the distinctions between the front and the rear were unclear. Therefore, the Korean military should have established friendly relationships with the Vietnamese community for successful operations. However, according to the veterans, ROKFV’s preparations for civil-military relations were generally poor. Special training conducted just before the dispatch to Vietnam only focused on combat skills such as guerrilla training, ignoring education on Vietnamese culture and custom that are essential for successful civil relations. It was inevitable that special training concentrated on improving combat skills because the basic mission of soldiers was a battle, but the actual preparations for civil-military relations were relatively insufficient, compared to the Korean military’s externally avowed commitment to the importance of civil relations in Vietnam. ROKFV’s civil affairs operations consisted of relief works, medical treatment, construction, and self-help projects. The operations were influenced by the United States’ counterinsurgency doctrines and modernization theory. In other words, the large-scale civil affairs operations conducted by ROKFV were carried out under the material and theoretical background provided by the U.S. Many veterans gave a negative assessment of the effects or results of the civil affairs operations. This raises question of whether the historical image of the Korean military’s ‘successful civil-military relations’ in Vietnam War has been largely mythical.

      • KCI등재

        외교·안보 분야 전직 고위관료를 대상으로 하는 구술 증언 채록의 경험

        조동준 한국구술사학회 2014 구술사연구 Vol.5 No.1

        이 글은 필자가 외교·안보 분야 전직 고위관료를 대상으로 구술 증언을 얻는 과정에 서 경험했던 몇 가지 특이점을 소개한다. 필자는 국제정치학자로서 1차 북핵위기 관련 한국의 정책결정과정을 이해하기 위하여 전직 관료를 대상으로 구술 증언을 얻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필자는 1975년 在월남 한국교민철수 작전, 駐월남 한국공관원 수감 사 건, 북핵 2차 위기에 관여했던 고위 공직자를 면담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필자 는 일반 독자보다는 전문 연구자를 위한 구술 자료를 채록했고, 구술 자료의 신뢰성을 높 이기 위한 작업을 꼼꼼하게 진행하지 못했으며, 구술자의 신뢰를 얻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예산을 규모 있게 사용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 이런 실수는 필자의 개인적 한계일 수도 있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서 구술 증언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 KCI등재후보

        기관구술채록의 진단과 과제 : 국사편찬위원회 구술채록사업을 중심으로

        윤택림 한국구술사학회 2015 구술사연구 Vol.6 No.1

        이 논문은 2013년도 국사편찬위원회가 지난 10년간의 구술채록결과물을 검토하는 연구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필자는 다른 공동연구원들과 함께 국사편찬위원회의 구술채 록결과물을 재분류하여 8개의 대주제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5개의 대주제, 정치경제, 지 역사, 학술교육, 여성가족, 생애사를 선정하여 형식적인 면과 내용적인 면으로 검토함으 로써 국사편찬위원회의 구술채록사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 였다. 필자는 구술채록기관들이 구술채록사업 시스템과 구술 아카이브의 분류체계를 다 시 정비하면서 기관구술채록의 특수성을 담보하는 구술 아카이브를 특성화하고, 이제까 지 축적된 방대한 구술 자료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필자는 기관구술채록이 한국 구술사 연구의 발전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면 서, 기관구술채록사업에 참여하는 기관, 실무자, 연구자들의 성실성을 요구한다. 마지막 으로 구술채록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사업 목적을 재검토하여 앞으로 각 기관 에서 더 진전된 구술채록의 방향을 진단해야 한다고 본다. This article is the result of a research project from 2013 in which we reviewed oral history materials in the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that were compiled in the last ten years. I with other four co-researchers initially classified these oral history materials into eight subjects. We then chose 5 of these subjects—political economy, local history, scholarship and education, women and family, and life history—and examined them in terms of form and content. By doing this, we attempted to diagnose the problems involved in institutional oral history projects and to make recommendations for their future direction. On the basis of the examination of these materials, the author argues that government agencies or government-sponsored institutions need to reorganize the classification system of their oral archives, and to specify their collections suited to the aims of each institution. The author also asserts that a vast amount of oral history materials collected in many institutions need to be utilized more effectively through a proper service system. For this, the aims and issues of institutional oral history projects above all have to be reexamined through discussion among oral historians and oral history project institutions. Lastly, the author requests a sincere commitment from the persons in charge of oral history projects, oral historians and institutions while she recognizes the contributions which institutional oral history projects have made to the progress of Korean oral history research.

      • KCI등재

        독립운동가의 가족 이야기와 트라우마의 재현 : K대학교에서 진행한 구술사·연극 융합수업의 경험 분석 (Ⅱ)

        김영미 한국구술사학회 2018 구술사연구 Vol.9 No.2

        본 연구는 2018년도 1학기 구술사와 연극 융합수업의 사례를 소개하고 그 경험을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필자는 구술이 문자로써 표현되고 이용되는 데서 발생하는 한계에 대해 고민해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구술사와 연극을 결합하는 버바텀 연극(verbatim theatre)을 제작하는 실험 수업을 진행하였다. 구체적으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구술을 채록하여 이를 연극으로 만드는 수업이었다. 구술자는 독립운동가 김규식, 윤봉길, 이회영, 정정화, 조소앙의 후손들이었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역사전공 5명, 연극전공 10명의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한국사전공 1명, 연극전공 2명이 한 팀이 되어 총 5개 팀으로 나뉘었다. 각 팀은 한명의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탐구하고 그 후손들을 인터뷰하여 10분짜리 공연을 위한대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직접 무대에서 공연까지 수행하였다. 공연 자리에는 구술자들이 참석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재현한 작품을 통해 그 의미를 학생들과 관객과 함께 나누었다. 이 작업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첫째, 구술을 문자가 아니라구술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둘째, 구술이 무대에서 구술로서 이야기되는 버바텀 연극은 구술자의 소외문제를 극복하고많은 대중들과 함께 구술자의 삶을 기리는 효과적인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셋째, 구술사 공연은 구술 아카이브를 축적하는 작업과 매우 효과적으로 연동될 수있음을 보여주었다. 넷째, 구술사를 교육과 연계시켜서 진행하는 것은 역사 교육뿐만아니라 사회 교육, 실용 교육, 감성 교육, 세대 간의 소통 등 다면적 효과를 거둘 수있음을 말해주었다. This study introduces and shares an example of an interdisciplinary course in oral history and theater held in the first semester of 2018 at K University. We have been thinking about the limitation of oral history arising from the fact that it is written and used by letters. In order to overcome this limitation, we conducted an experimental class in which we produced a verbatim theatre play that combined oral history and play. It was a class specifically on conducting interviews with descendants of Korean independence activists and making a play based on these interviews. The interviewees were the descendants of Kim Kyu-sik, Yun Bong-gil, Lee Hoe-yeong, Jung Jeong-hwa and Jo So-ang. Five history students and ten theatre students attended the class. They were divided into five groups. Each group consisted of one history student and two theatre students. The groups explored the life of an independence activist, interviewed with his or her descendant, and made a script for a 10-minute play. And they themselves performed the play on stage. The interviewees attended the performance and shared the meaning of the play which represented their voices with the students and audiences. This work has been highly successful in the following respects. First, it is not only possible but also effective to deliver oral history not by letters but by oral representation. Second, the verbatim theatre which uses transcripts of oral history interviews could be a very useful and effective means of overcoming the alienation of interviewees and honoring their lives with many audiences. Third, the performance of oral history could be effectively linked to the accumulation of interview data. Fourth, the link between oral history and education could achieve positive effects not only on history education but also on social education, practical education, emotional education and communication between generations.

      • KCI등재

        구술사 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함한희 한국구술사학회 2010 구술사연구 Vol.1 No.-

        이 글에서 필자는 기존의 한국 구술사연구를 간략하게 정리한 후에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전망을 세워보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구술사에 대한 인식과 접근방법을 비교해서 네 가지의 구술사 연구동향을 나누어서 살핀다. 첫째는 사회운동으로서의 구술사이며 1980년대 중후반 이래 구술증언 채록사업으로 시작되었다. 이 작업을 통해서 개인의 증언이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둘째는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기치로 내세우면서 공적역사에 대한 대항담론을 찾는 구술사이다. 역사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역사주체로 그리고 그들의 구술을 역사주체성 표현으로 보았다. 세 번째로는 구술사의 이론적 차원을 높이기 위해서 기억의 방식, 정체성의 정치, 그리고 서사 전략 등에 주목한 연구이다. 여기에서의 구술은 재현과 재구성방식을 분석하는 대상으로 보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의 현재성이 문화의 역사성보다 강조되곤 했다. 이 세 패러다임은 한국 구술사의 짧은 역사와 급변하는 정치적ㆍ사회적 환경 속에서 시기별 연구의 특징으로 구분 짓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 대신에 이 세 개의 패러다임이 동시에 공존하면서 구술사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 왔고, 구술사의 외연도 크게 확장시켰던 점에 주목한다. 네 번째로는 디지털기술의 혁신이 구술사 발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디지털혁명이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있듯이 구술사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 디지털기술과 환경이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디지털환경에서 가능한 다자(多者)간의 소통과 사회적 미디어를 통한 네트워크 형성 등은 특정한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상호주관성의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이나 지식이 만들어지고 전달되는 방법과 과정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서 구술사의 진면목이 드러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아울러서 필자는 구술사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논의를 하고자 한다. 이른바 민족지적 구술사쓰기를 제안하는데, 이 방법은 구술의 맥락, 구술자의 일상과 공동체와의 관련성을 신중히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구술에서 다른 자료들―물증, 사진 또는 영상―을 이용하는 방법도 구술자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며 또한 자료의 교차점검을 위해서도 유용하다. 마지막으로 구술사가 복합학문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타진해 본다. 구술자료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통합적·총체적인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이 방향은 필수적이다. 학제간의 교류와 융복합을 통해서 구술사는 인간의 복잡하고 복합적인 역사적 현상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wo-fold. One is to retrospectively view previous works in Korean oral history and the other is to prospectively search for a new paradigm. I have studied the epistemology and methodology of oral history and categorized the works into three paradigms. The first paradigm is of oral history as a social movement. It started with a series of collection of oral testimonies on the forbidden histories of comtemporary Korea since the mid-1980’s. The second paradigm is of a more complex view of oral history from the bottom. It has tried to search the counter-historical discourses against the official and elite cultures of history. This type of oral history has contributed to revealing invisible subjects of history to historical subjects. Due to some historians’ vigorous studies the voiceless subjects have been earned their places in the writing of a new history. The third paradigm is of the scholarly direction of oral history focusing on subject matters such as memory, identity, and narratives. The orality is seen not so much a way of probing historical facts and truth as a way of representation and reconstruction of history. This kind of study tends to look history as a direct by-product of the subject’s present social, political and cultural situations, but is less attentive to the history of culture upon which the subject is bounded. The three paradigms co-exist in the area of Korean oral history unlike its counterparts within Western oral history. This has resulted from the fact that Korea’s rapid growth of oral history following the fall of doctrinated political regimes. The strong desire to disclose untold stories under political and ideological turmoil powered the many oral history projects in Korea. Even if each paradigm shows a different epistemology, methodology and goal, the three paradigms together have made contributions to the development of Korean oral history. There is a new fourth paradigm that has resulting from the digital revolution. Digital technology has made it possible for researchers to have full and easy access to oral data in order to collect, preserve, and utilize the said datal. Not only that, but digital technology will eventually change the consciousness and practice of populace with respect to oral history. Some evidences of such changes already appears within the activities of digital networks and social media. Volunteers actively join projects involving historical writing of their own lives, families, villages and communities, and the nation. During the course of oral history projects both researchers and volunteers/interviewees are aware of the importance of intersubjectivity. This will eventually lead to comprehension of the actual processes involved in the creation of oral history. Furthermore, I propose some fruitful methods for studying oral history such as ethnographic writing methodology, supplementary work with other data, and multi- and uni-disciplinary work. A new paradigm of oral history triggered and powered by the current digital technological innovations will lead to a better understanding of the complex and diverse history of human society and culture.

      • KCI등재

        한국전쟁과 한국군위안부문제를 돌아본다

        김귀옥 한국구술사학회 2011 구술사연구 Vol.2 No.1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에는 과거사 정리와 함께, 화해나 관용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돌아보면 한국 정부나 사회 역시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침묵해왔다. 그런데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일제식민주의에서 끝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1996년 분단과 전쟁의 희생자들에 관한 현지조사 과정에서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육군에 의한 군‘위안부'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 만든 위안소의 실체와 성격은 무엇이고, 누가 만들었고, 어떤 일을 하였으며 군위안소의 위안부는 누구인가를 밝히고자 한다. 또한 한국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침묵하도록 만든 원인은 무엇인가 등등 한국군의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제반 의문들을 제기함으로서 사실에의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것에 대한 대답은 대한민국 육군본부가 1956년 발간한 『후방전사(後方戰史)』외에는 결정적인 문서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다양한 길이 있다. 나의 연구방법론은 민중의 기억에 목소리를 불어넣어 억압된 진실을 기록하는 구술사방법론이다. 비록 군위안부였던 여성은 침묵해왔지만, 군위안부의 경험을 가졌던 많은 남성들의 증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리영희조차 한국전쟁 당시의 군위안부와의 만남을 별다른 감회 없이 전쟁 중 일화를 소개하듯 기록하였고 증언하였다. 전쟁을 경험한 많은 군인의 기록에도 남아 있고,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세계적 문제로 거론되어도 한국인 자신의 경험은 침묵되고 있다.

      • KCI등재

        사진관과 예식장 경영자의 구술생애사로 본 혼인문화의 전개

        노영미 한국구술사학회 2014 구술사연구 Vol.5 No.2

        이 연구는 구술생애사(oral life-history)를 통한 문화연구라 할 수 있다. 구술사란 역 사의 길 위에 남아 있는 또 다른 발자취로서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뿌연 먼지에 덮인 발 자취(기억)이다. 구술을 통해 그 먼지가 걷히고 난 후에 드러난 발자취는 구술사가 된다. 또한 개인의 삶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구술생애사가 되는 것이다. 이 연구는 구술생애 사를 통해 근대 사진관과 예식장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서 사진문화와 혼인문화의 전개 를 살펴보았다. 기존 연구 중에 사진관과 예식장의 긴밀한 연관성을 밝혀낸 연구가 없으 며 더욱이 구술생애사적으로 접근한 연구도 없으므로 이 연구는 구술생애사적 연구 분야 를 좀 더 확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김동욱의 아버지인 김남용은 1930년대 중반에 일본인으로부터 취미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계기로 충남 서천군 길산에서 1930년대 후반에 사진관을 개업하였다. 당시에 조 선인에 의해서 운영되는 사진관이 전국적으로 늘어가는 시기였다. 김남용은 길산보다 장 항이 더 경기가 좋아지자 1946년도에 장항으로 이전을 한다. 장항에서 1960년대까지는 혼인식을 신부집 마당이나 교회에서 올렸기 때문에 김남용은 출사를 많이 다녔다. 그러다 차츰 사진관의 스튜디오에서 간단히 예식을 올리고 사진촬영도 하기를 원하는 신랑신부 가 늘어났다. 이때부터 김남용은 사진관의 스튜디오를 예식에 어울리는 배경으로 바꾸어 예식을 진행하였다. 사진관의 예식이 차츰 늘자 김남용은 1968년에 사진관을 증축하고, 그 후 1971년에 넓은 정원이 있던 자리에 별관을 지어 예식을 전문으로 진행하였다. 이때에 장항에서 유 일한 예식장이었기 때문에 예식이 아주 많았다. 1953년도에 도민증으로 호황기를 보내 고 1960년대에는 학교 졸업 앨범으로 호황기를 보내고 다시 예식장을 경영하면서 호황 기를 맞이한다. 이상과 같이 김동욱의 구술생애사는 장항의 미라미사진관/예식장이 어떻게 변화해 왔 는가를 보여주므로써 근대적 사진문화와 혼인문화의 전개를 일부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 를 통해 근대 사진관이 혼인식 사진 때문에 신부집이나 교회를 대신한 예식 장소로 선호 되면서 전문 예식장으로 변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이 일반사람들에게 보급된 후 혼 인의례에서 혼인식이 가장 중요한 절차로 인식되는 것처럼 이 혼인식을 담은 사진도 매 우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혼인식은 혼인을 사회적으로 공표하기 위한 의식이고 이때 촬영 한 원판사진은 혼인을 증명하게 된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사진이 매개가 되어 사진관 이 예식장으로 변화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연구들은 농촌에 서양식의 혼인식이 보급된 것은 1960년대라고 하였고 예식 장이 보급된 것은 1970년대라고 하였다. 그러나 농촌지역의 예식장들이 어떻게 보급되 었는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하였다. 미라미예식장의 형성과정은 1970년대 농촌지역 예식장들이 어떻게 보급되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can be described as a cultural study through oral life-history. Oral life-history is a footprint (memory) covered with a cloud of dust over a long period of time as another footprint left on the historical road. The footprint appears after the dust clears as an oral statement becomes an oral history. In addition, a person’s life becomes an oral life-history through this process. This study examines changes in photographic and marriage cultures while investigating the formation of modern photographic studios and wedding halls through oral life-history. There have been no previous studies clarifying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photographic studios and wedding halls, and furthermore there have been no such studies from the perspective of oral life-history. Therefore, this study extends the field of research on oral life-history. Kim Nam-yong (김남용), the father of Kim Dong-uk (김동욱), began to learn photography from a Japanese person in the mid-1930s and then opened a photographic studio in Gilsan (길산; 吉山), Seocheon-gun (서천 군; 舒川郡), Chungcheonnam-do (충청남도; 忠淸南道) in the late 1930s. At that time, there was an increase in Koreans who operated photographic studios nationwide. When the economy improved in Janghang (장항; 長 項) more than Gilsan, Kim Nam-yong moved to Janghang in 1946. In Janghang, wedding ceremonies had been held in the gardens of brides’ families or churches until the 1960s. Therefore, Kim Nam-yong frequently visited these places to take photographs. Gradually, more and more brides and grooms wanted to have a small wedding ceremony in the photographic studio and then to have their photograph taken there. Subsequently, photographic studios were used as a wedding hall when a wedding ceremony was held. As described above, Kim Dong-uk shows how the Mirami Photographic Studio/Wedding Hall in Janghang has changed alongside the development of modern photographic and marriage cultures through oral life-history. This study shows that modern photographic studios changed to wedding halls as they became preferred as a wedding venue instead of gardens of brides’ families or churches. As the marriage ceremony has been recognized as the most important procedure among marriage rituals since photographs have been popularized, photographs have been regarded as important to this marriage ceremony. A marriage ceremony is held to socially announce the marriage, and the original photograph taken at the time proves the marriage. Based on this concept, it is shown that photographic studios changed to wedding halls through the medium of photographs. Previous studies have reported that Western marriage ceremonies were prevalent in rural areas in the 1960s and wedding halls in the 1970s. However, they failed to demonstrate how wedding halls became prevalent in rural areas. I argue that the formation of the Mirami Wedding Hall is a clear example of how wedding halls were popularized in rural areas in the 19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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