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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사학회의 성장과 발전: 1966년부터 1999년까지

        박창훈 한국교회사학회 2020 韓國敎會史學會誌 Vol.55 No.-

        이 글은 1966년 시작된 한국교회사학회가 1999년까지 이룩한 역사를 성장과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전체적으로 육하원칙의 틀에 따른 보고의 형식을 따르면서, 우선 창립시기의 인물과 학회의 활동을 시간 순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학회가 하였던 일들을 민경배 교수의 언급에 따라, 연구발표회, 자료집 발행, 학회지 간행 등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이를 위해 어떻게 학회의 재정이 모이고 지출되었는지를 점검 하고 있다. 아울러 이 글은 연구과정에서 제기한 논의 틀로 재구성한 몇 개의 표를 포함하고 있다. 본 연구는 한국교회사학회의 초기의 성장과 발전은 한국에서 교회역사 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학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지적한다. 초대 회장 백낙준 교수를 비롯한 이들의 헌신을 통하여 기초가 놓이고, 그 뒤를 잇는 후배와 제자들에 의해 기둥과 외양을 갖추게 되었다. 회원, 임원, 그리고 재정은 꾸준히 증가하였고, 이를 통해 연구발표회, 자료집 발간, 학회지 간행 등의 사업은 분명한 틀과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우선, 이 시기 한국교회사학회의 발전을 더 세밀하고 깊이 연구하기 위하여, 회원들이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수집하여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초기 한국교회사학회는 교단적인 신학적 편협성을 뛰어넘는 에큐메니컬 모임으로서의 특성을 보며, 한국사회의 민주화, 평화, 통일의 문제에 관심을 학문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원 각자의 학문적인 관심과 연구, 그 이상으로 회원들간의 교제가 중심에 있었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history of the Church History Society in Korea, which began in 1966, until 1999 in terms of growth and development. In general, following the format of the report according to the principles of 5 Ws and 1 H. it organizes chronologically the figures of the founding period and the activities of the Society. In addition, for Professor Kyung-Bae Min's comment, the Society worked for research presentations, publications, and journal publications. Finally, it examines how the funding of the Society was collected and spent. In addition, this article contains several tables that have been restructured into a discussion framework raised during the research process. This study points out that the early growth and development of the Church History Society in Korea was conducted by the scholars who study and teach church history in Korea. The foundation was established through the dedication of the first president, Professor Nak-Joon Paik, and the pillars and appearance by the juniors and disciples. Members, officers, and finances have steadily increased, and this has led to a clear framework and scale for projects such as research presentations, publications, and journal publications. Above all, in order to study the development of the Society in more detail and depth, it is necessary to collect and supplement the data that members keep personally. The Society, as an ecumenical group that goes beyond denominational theological intolerance, attempted to express academic interest in the issues of democratization, peace and unification of Korea. Finally, the fellowship between the members was centered on the academic interests and researches of each member.

      • KCI등재

        한국교회사학회 2000년-2019년 활동 분석 및 방향제시

        이정숙 한국교회사학회 2020 韓國敎會史學會誌 Vol.55 No.-

        한국교회사학회는 1966년에 국내 6번째 신학회로 시작되어 활발한 학술 대회 개최와 수준 높은 학회지 (한국연구재단 등재지)를 발간하며 모범적으로 활동해 왔다. 본 논문은 2000년부터 2019년까지의 학회 활동을 분석 하고 향후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논문의 내용은 1) 보관자료의 성격과 분석 2) 이사회/임원회 구성의 변화 3) 학회의 다양한 활동 소개 4) 특 기사항: 특별 제안이나 활동들 5) 향후 발전을 위한 제안 등으로 구성되었 다. 한국교회사학회 임원진들이 보관하고 있는 일차자료는 중복과 상실, 또 단순/부실 기술의 문제점이 있었으나 지난 20년간의 학회 활동을 추적 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임원진의 구성 변화의 원인과 내용을 추적하고, 연 4회 정기학술대회의 특징을 분석하며, 학술지의 위상 변화, 번역/저 술 작업과 특별학술활동 등을 살펴보며 학회의 향후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시도하였다. The Church History Society in Korea [CHSK hereafter] was established in 1966 as the sixth theological society in Korea and continues to be active by offering academic conferences four times a year and publishing its academic journal (approved by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since 2002) three times a year. This paper seeks to trace and evaluate the activities of the CHSK in terms of its historical changes and developments by reading and analyzing the official records of CHSK such as the minutes of leadership meetings, academic conferences, and special documents between 2000 and 2019. It consists of five sections including 1) nature and characteristics of records kept by the leadership 2) changes and expansion of leadership 3) major activities 4) incidents or irregular activities of special attention and 5) some practical suggestions as future direction.

      • KCI등재

        「한국교회사학회지」에 나타난 아시아 교회사 관련 연구 분석

        서원모 한국교회사학회 2020 韓國敎會史學會誌 Vol.55 No.-

        본고는 「한국교회사학회지」에 수록된 아시아교회사와 관련된 논문을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창간호부터 53권까지 총 425편의 연구논문 중 7.3%인 31편이 아시아교회사와 관련되는데, 여기에는 한국교회사와 관련 된 6편의 논문도 포함되어 있다. 아시아교회사를 시리아교회, 가톨릭교회, 개신교회로 분류할 때, 상대적으로 아시아 가톨릭교회와 관련된 논문이 매우 적었다(2편). 또한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고대시리아교회와 관련된 논문 2편과 필리핀과 버마와 캄보디아에 대한 논문이 3편만 수록되어 아시아 각 지역의 교회사 연구는 매우 미진하다. 그럼에도 2011년까지의 국내에서의 아시아 교회사 연구를 정리한 논문이 수록된 것은 획기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결론에서 본고는 아시아교회사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아시아기독교사학회의 협력, 한중일 삼국의 개신교 수용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 문명교류의 입장에서 총체적이고 다면적인 아시아 교회사 연구, 한국 교회의 아시아 선교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사료 수집을 제안하였다. This study is designed to analyze the articles published by the Journal of Church History Society in Korea. There exist 31 articles related to Asian Church History out of 425 articles printed in this journal from voulme 1 to volume 53, and these include those relevant to the Korean Church History. If we understand the history of Asian Church as consisting of Syriac Church, Asian Catholic Church, and Asian Protestant Church, studies concerning Asian Catholic Church is significantly underrepresented (2 articles). Furthermore, since two articles explore Ancient Syriac Church and since three examine churches of Philippines, Myanmar, and Cambodia, it is concluded that a tiny number of studies deals with church history of countries other than China and Japan. The article devoted to analysis of the studies on Asian church up to 2011, however, is quite inspiring and foundational for future studies in this field. In conclusion, this study stresses the significance of Asian Church History, and suggests the intimate relationship with the Society of History of Asian Christianity, a comparative study on acceptance of Christianity of Korea, China, and Japan especially in the modern period, a comprehensive and multilateral study from the civilizational exchange, and finally systemic gathering of records of Asian mission initiated by Korean missiona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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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사학회지」에 나타난 한국 교회사 연구 경향

        박종현 한국교회사학회 2020 韓國敎會史學會誌 Vol.55 No.-

        이 글은 창간호부터 2019년까지 「한국교회사학회지」에 수록된 한국기 독교의 역사 연구 논문들에 대한 분석적 연구이다. 「한국교회사학회지」는 해방 후 최초로 발간된 한국의 교회사 학술 연구 논문집이다. 이 기간 동안 135편의 한국교회사 연구 논문이 수록되었다. 이 글은 그 연구 논문들을 분류하여 인물 연구, 사회사, 사상사, 교단사, 문화사 등의 범주로 분류 하였다. 초창기 연구들은 한국교회사의 기초를 위한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 이후 연구 논문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2000년 이후의 논문들은 체제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연구 분야도 다양해졌다. 2010년대의 연구 논문들은 논문 심사의 강화로 논문들의 체제와 논문의 주제들이 더욱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연구 분야는 인물 연구와 사회사 논문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신학사상, 문화사 연구들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이후의 연구에서는 통계자료의 도입과 타 분야와 복합적 연구가 필요하다. This paper is an analytical study of the articles of the studies on the Korean church history in Hankuk’kyohoesahakhoeji from 1971 to 2019. Hankuk’kyohoesahakhoeji is the first academic journal of the study of Christian Church history in Korea. There are 135 enrolled papers of Korean Church history in the journal from 1971 to 2019. Those papers are classified in this study under the categories of character, social history,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denominational history and the Christian cultural history. In the initial stage, papers were written as a foundational study for Korean church history. The numbers of the papers increased rapidly in the 1990’s. The papers’ system improved and the themes of studies also varied in the 2000’s. As time went by the papers were varied, systemized and upgraded academically due to the review system. The major portion of the papers are about the study of character, social study and theological study. In further studies, statistical data and hybrid study with other fields of science will be neces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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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분리의 복잡한 역사: 한국의 보수적 개신교를 중심으로, 1945-2013

        한국교회사학회 한국교회사학회 2016 韓國敎會史學會誌 Vol.43 No.-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①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국교 는 인정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래 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한국에 서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며 심지어 모호하다. 기본적으로, 그 런 조항은 미국헌법의 절대적 영향 하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1945년 이후 전개된 한국근대사의 혼돈 속에서, 그런 헌법조항에 근거한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불안정하고 문제가 많았다. 특히, 한국의 보수적 복음 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유동적인 정치적·종교적 환경에 따라 이 문제를 전략 적으로 다루어왔다. 이 논문은 1945년부터 2013년까지 보수적 복음주의자 들이 정교분리의 의미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며 그것에 적응해 온 복잡한 역 사를 추적하는데 목적을 둔다. 1945년부터 1960년까지, 한국교회는 정교분리에 대한 헌법의 규정과 상 관없이 기독교에 특혜를 베풀어준 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예를 들어, 그 기간 동안 미군정은 미국선교사들의 조언에 따라서 한국개신교인 들이 다양한 정치영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다. 종교정책 면에서, 미군정은 다른 종교들을 배제한 채, 한국교회에게 많은 특혜를 베풀었다. 그런 특혜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으로, 한국교회는 정부정책에 열정적으로 협조했다. 특히, 제1공화국에서 대통령선거 기간 동안, 한국교회는 감리교 장로이자 한국개신교에 대단히 우호적이었던 이승만을 거의 맹목 적으로 지지했다. 그 기간 동안, 한국교회는 정교분리의 의미를 정확히 이 해하지 못했다. 1961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은 군사독재기간을 통과했다. 그 동안, 한 국교회는 두 부분으로 분리되었다. 즉, 군사정부를 신실하게 지지했던 보 수주의자들과 그 정부에 저항했던 진보주의자들로 말이다. 그 결과, 독재 자들은 두 진영을 정부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따라 다르게 취급했다. 예를 들어, 군사정부는 보수교회들이 ‘액스플로 74’ 같은 일련의 대규모 집회들을 개최하고 ‘전군신자화운동’ 같은 전도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후원함으로써, 이들이 빠르게 성장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이런 종교적 특 혜에 대한 반응으로,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진보진영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그 정권의 충실한 동맹자가 되었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의 경우, 군사정 권에 저항한 것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교회는 처음으로 정부와 부정적 관계를 맺게 되었다. 진보적 정부가 남북간의 적대적 관계를 개선하기 시작하고, 사립학교법 개정을 통해 기독교사립학교들의 부정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자, 한국교회는 반정부세력으로 돌변했다. 그들은 진보적 정부를 종북좌파세력 으로 규정하고 이 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에 반대했다. 이 기간 동안, 교회 들은 정교분리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을 수정했다. 그들은 이전에 종교가 정치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제는 종교가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정치적 저항이 헌법 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정부를 위한 새로운 대통령 후보로 보다 보수적이고 친기독교적인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최근에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이런 주제와 관련해서 정부와 이중적 태 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여전히 친기독교적인 이명박 정부의 강력하고 신실한 후원자들이었다. 같은 정치적·경제적 신념 에 기초해서, 그들은 이 정부를 지속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적극적 정치참여가 정교분리라는 헌법조항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 했다. 그러나 때때로 그들은 동일한 정부가 타종교들, 특히 불교와 이슬람 에 대해 우호적 조치를 취하자 강력하게 저항하고 비판했다. 그들은 정부 의 그런 태도가 기독교를 배제한 채 다른 종교들에게 특혜를 베풀어 정교 분리의 원칙을 위반했다며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정부와 자신들의 관계에 따라 “정교분리”란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해왔다. 그들과 정부의 관계가 우호적이었을 때, 그들은 “정교분리”를 “종교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 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그들과 정부의 관계가 불편했을 때, 그들은 그런 이 해를 뒤집고 강력한 반정부세력이 되었다. 한편, 그들이 정부로부터 우호 적 지원을 받았을 때, 그들은 그런 특혜가 정교분리의 헌법적 조항을 위반 한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정부에 의해 차별을 받는다 고 느꼈을 때는 정부가 헌법을 위반한다고 주장하며 반정부적 투쟁에 나섰 다. 이토록, 한국에서 보수적 복음주의자들과 정교분리의 관계는 복잡했다. According to the Korean Constitution, (1)every citizen has the freedom of religion, (2)the establishment of religion is not allowed, and politics and religion is separated. Thus, it is a common sense that politics and religion should be separated. However, the relationship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has been highly complicated, even ambiguous. Basically, such a provision was shaped under the almost absolute influence of the US constitution. But, for the chaotic unfolding of the modern history in Korea since 1945, the relationship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based on that constitutional provision has been consistently unstable and problematic. In particular, the conservative evangelicals in Korea have strategically addressed this issue in accordance with their fluctuating political, religious circumstance. This paper is aimed at tracing the complicated and multi-faced history of how the conservative evangelicals have understood, reconstructed, and adjusted themselves to the meaning of separation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from 1945 to 2013 depending on their changed status in Korea.From 1945 to 1960, Korean churches maintained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the government which showed its favoritism to Christianity, regardless of the constitutional provision of separation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For example, during that period, the US military government gave the Korean Protestants a series of chances to participate in a variety of political sphere based on the practical advice of American missionaries. In terms of religious policy, the government allowed many privileges to Korean churches at the cost of other religions. As a natural response to such a favoritism, Korean churches enthusiastically cooperated with the governmental policies. In particular, during the presidential campaigns, Korea churches almost blindly stood for the Seungman Lee who was a Methodist lay elder and was highly supportive to the Protestant churches in Korea. During that era, Korean churches didn't have a clear understanding of what the separation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means. From 1961 to 1986, Korea had to pass through the period of military dictatorship. During that period, Korean churches were divided into the two parts: the one as conservatives who faithfully stood for the military regime, but the other was liberals who stood against it. As a result, the dictators dealt with the two groups in accordance to their attitude toward the government. For example, the regime helped the conservative churches to grow fast by supporting them to hold a series of grand rallies including theExplo' 74 and to carry out the so-called “Evangelization of All Military Armies.” As a response to those religious privileges, conservative Christians became a sincere ally to the regime, while inveighed against the liberal wing. In the case of liberals, however, they had to pay a painful cost totheir heroic protest against the military regime. From 1997 to 2007, the Korean churches, for the first time, came to have a negative relationship with the government. Since the liberal government not only began to improve the hostile relationship between the South and the North, but also tried to reform the corruption of Christian private schools by altering the related laws, the Protestant churches turned into an anti-government force in Korea. They raised their voices against almost every policy of the liberal government, regarding it as the pro-North and left. During this period, the churches changed their interpretation of separation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While they had interpreted it as religion’s not participating in politics, they began to argue that religion should take its political responsibility, believing that such a political protest didn't violate the constitutional provision. And they did their best to elect more conservative and pro-Christian candidate as a new president for the next government. Recently, the conservative Christians seemed to maintain a dual relationship with the current government concerning this issue. Basically, they were still strong and faithful supporters to the pro-Christian government, whose head was the presbyterian lay elder. Based on the same political, economic ideologies, they persistently stood for it. But, they believed that such an active participation in politics had nothing to do with the constitutional provision of separation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From time to time, however, they criticized the same government for its generous support for other religions, especially Islam and Buddhism. They regarded it as illegal, for it was violating the separation between politicsand religion by showing favoritism to some religions excluding Protestantism. But they did not interpret in that way when they received the favorable or even privilege-like support from the same government. Likewise, the Conservative Christians in Korea has used the term “separation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in various ways according to their relationship with the government. When they had a good relationship with it, they interpreted “separation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as “religion’s not participating in politics.” But when they were at odds with it, they changed their former understanding of it and became a strong anti-government force. At the same time, when they received favorable supports from the government, they never interpreted it as violating the constitutional provision of separation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When they felt that they were discriminated by government, however, they raised their voices against it, arguing that it was violating the constitutional pro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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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사학회지」에 나타난 고대교회역사 연구 동향과 전망

        채승희 한국교회사학회 2020 韓國敎會史學會誌 Vol.55 No.-

        한국교회사학회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한국교회사학회지」 특집호(55집)에 고대교회사 연구동향 분석과 미래전망에 대해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 본고는 전체 420여 편의 전체 논문 중 77편의 고대교회사 논문을 다루었다. 포스트모던적 사조와 신학적 배경으로 크게 4개의 범주(역사관, 주제, 방법론, 저자)로 나누어 논문들의 성향과 내용을 분석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근대적 사고에서 탈피하고 지배담론이나 거대 담론의 해체를 주장하면서 소위 “아래로부터”의 신학을 추구한다고 하겠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소외되고 주목 받지 못했던 약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이 역사 연구의 중심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탈가부장적, 탈유럽적, 탈교리적, 탈교파적, 탈제도적 사고가 주가 된다고 하겠다. 이러한 사고로 역사 연구에 다양한 방법론이 시도되고 다양한 접근이 이루고 지고 있다. 물론 전통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연구도 활발하게 역사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본 학회의 발전과 학문적 공헌을 위해 학제간 학회나 연구 등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역사가 신학, 영성, 상담, 윤리, 예배 등과 어우러 질 때 교회 현장은 물론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와 함께 소통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해야하기 때문이다. On the occasion of the 50th anniversary of the Church History Society of Korea, it is a great honor for me to analyze and evaluate the articles on Early Christianity in our JCHSK since 1979. I examine those 77 articles on the early church through four categories, historical viewpoints, themes, methodologies, and authors. Finally, I suggest a plan for improving future academic and pastoral contributions, both to the church and to society. The new trends of research in church history are “from below.” The perspectives of the alienated or marginalized classes, genders and races has been promoted as the central theme of historical study. Provocative achievements have, of course, also resulted from research done in traditional methods and themes. Along with the postmodernist thoughts, more practical issues for the church such as spirituality, Christian education, worship and liturgy are also linked with historical theories. To promote the advancement of academic research in the Church History Society of Korea, I believe it is important that we develop interdisciplinary programs. Incorporating modern perspectives on theology and history into educational materials as well as products for the daily practices of the church will enable all Christians to be more effective communicators of the Gospel for all those we se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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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사학회지」 40년의 근대교회사 연구 분석과 평가 - 경건주의와 웨슬리 연구를 중심으로 -

        오광석 한국교회사학회 2020 韓國敎會史學會誌 Vol.55 No.-

        1979년 6월 창간호부터 2019년 8월까지 「한국교회사학회지」에는 40편의 근대교회사 분야 논문이 실려 있다. 그 40편 가운데 경건주의와 관련된 연구가 15편으로 근대교회사 연구의 38%를 차지하고, 웨슬리와 관련된 연구는 18편으로 45%나 된다. 본 연구는 “「한국교회사학회지」에 실린 경건 주의와 웨슬리 연구를 통해 학회지의 근대교회사 연구를 분석 평가하였다. 경건주의 연구논문들은 대부분 개혁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의 타락과 교회개혁에 대한 열망이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개 신교의 타락을 통렬히 비판하며 등장했던 경건주의에 대해 신학자들이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웨슬리 연구는 웨슬리안 교단 연구자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으며, 그 주제도 다양하게 연구되어왔다. 전체적으로 평가해 보면, 그간의 본 학회지 근대교회사 분야는 너무 특정 분야와 지역에 연구가 쏠려 있다. 근대교회사 내에서 보다 다양한 지역과 다양한 분야와 주제를 다루는 연구들을 통해 학문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경건주의 연구에 있어서도 교회개혁뿐 아니라 예배, 성례, 소그룹과 평신도 중심의 교회 조직 등 목회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연구가 많아져야 한다. 무엇보다 그간의 연구가 지나치게 남성만을 대상으로 연구해 왔다는 점은 문제이다. 가용한 자원 안에서라도 여성들을 재발견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From the first issue of June 1979 to the recent issue of August 2019, the Journal of the Church History Society in Korea contains 40 articles for the study of modern church history. Of them, 15 articles were related to Pietism, accounting for 38% of the studies of modern church history, and 18 to Wesley, 45%. This study analyzes and evaluates the journal’s articles on modern church history, focused on the study of Pietsm and Wesley. Most studies of Pietism focused on reform. The corruption of Korean churches and pastors and the desire for church reform led theologians to pay attention to Pietism which emerged with fierce criticism of the corruption of Protestantism. The study of Wesley has been led by the scholars of Wesleyan denomination, and the subject has been studied in various ways. As a whole, the studes of modern church history in the journal are excessively concentrated on specific fields and regions. It is necessary to contribute to the balanced development of scholarship by studies covering more diverse areas and themes in modern church history. Also, in the field of Pietism, many studies are needed not only for church reform, but for worship, sacrament, small group and lay-centered church organization, where pastors are concerned. Above all, it is a big problem that the studies have been conducted only for men. Studies are needed to rediscover women, even within the available re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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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사학회지」에 게재된 16세기 교회사 논문 분석 평가 및 방향제시

        김선영 한국교회사학회 2020 韓國敎會史學會誌 Vol.55 No.-

        본 논문은 「한국교회사학회지」에 게재된 16세기 교회사 관련 논문 78편 을 분석하고 평가했다. 1979년 창간호부터 가장 최근인 2019년 8월까지 모두 53권이 발간되었다. 이 53권에는 모두 425편의 논문이 실려 있는데, 16 세기 교회사 관련 논문이 78편으로 18.35%에 해당한다. 이 78편의 논문은 모두 16세기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다루고 있으며, 대부분 그 핵심 인물 몇 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루터 관련 연구가 43편이고 칼뱅 관련 연구가 15편이다. 이러한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나서 본 논문은 16세기 교회사와 관련된 연구 영역이 크게 확장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향후 연구를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This paper analyzes and evaluates the 78 articles addressing Christianity in the 16th century, which appeared in the Journal of the Church History Society in Korea. A total of 425 articles were published in 53 volumes of the journal between 1979 and 2019, meaning that 18.35% of these 425 articles concern Christianity in the 16th century. It is noticeable that all 78 articles focus on the Protestant Reformation and predominantly on several of its main figures: 43 related to Martin Luther and 15 related to John Calvin. Taking into account these current research trends, this paper suggests several directions for future research, emphasizing the need to significantly expand the research areas.

      • KCI등재

        총장(호서대) 고희 기념호 : 한국전쟁과 메노나이트 평화운동 -아나뱁티스트 한국교회사 서술을 위한 서론적 고찰-

        정성한 ( Shung Han Chung ) 한국교회사학회 2014 韓國敎會史學會誌 Vol.39 No.-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MCC)는 1951년에서 1971년까지 한국에서 구제와 교육 사역을 해 왔다.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는 1920년 조직된 이후 전 세계의 분쟁지역 사람들을 구제하기 시작하였고,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구제사역을 펼쳐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농업, 물공급, 집 짓기, 보건, 직업 창조, 평화 세우기, 교육 등이다. 이런 활동과 함께 그들은 전세계의 수많은 다양한 기구들을 파트너로 삼아 지원하고 있다. 그들은 ‘메 시야의 평화 선교’ 정책에 기초하여, 인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인 모든 차원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는 한국전쟁 중인 1951년부터 한국과 관계를 시작했다. 휴전 직후인 1953년 7월에는 한국대표부를 대구에 설립하고 경산에 농장을 개발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한국 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 네 가지는, 물자구제 사업, 직업학교, 가족/어린이 지원 프로그램, 전쟁 과부들을 위한 재봉기술 교육 등이다.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의 사역은 제자도에 기초하여 공동체 안에 평화를 세우는 일이었다. 이 사역의 구체적인 모습이 개인과 가정과 마을과 한 국가에 대한 구제와 개발이고, 구제와 개발이 지향하는 바는 평화인 것이다. 이 구제사역은 곧 평화를 주고 나누고 세우는 사역이었다. 구제사역과 평화사역은 서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한국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는 인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모든 욕구를 포괄하는 선교인 ‘메시야의 평화 선교’에 근거해서 한국전쟁 시기 한국에서 그들의 평화사역을 시작하였다. 진정한 평화는 ‘일용할 양식’과 ‘공동체’가 그 기초이다. 그들은 신앙교육은 하되 교파교육은 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를 설립하려는 사람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메노나이트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앞서 들어온 한국의 교회들을 존중했고, 한국교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묵묵히 감당해 주었다. 그들은 한국교회를 섬겨 준 것이다. Mennonite Central Committee (MCC) have been a relief and education work in Korea, from 1951 to 1971. Mennonite Central Committee began to remedy the conflict areas of the world since they organized in 1920, has spread to various forms of relief work in various areas. The work they do agriculture, water supply, house building, health, job creation, build peace, and education. With these activities, they are supported by partner numerous diverse organizations around the world. They are based on a “Messianic Peace Mission” policy, and brought attention to the religious all levels. human and political, economic, social etc. Mennonite Central Committee began a relationship with Korea being Korea war since 1951. Shortly after the armistice in July 1953 has established representative offices in Daegu, South Korea, and went on to develop full-fledged activities in the Kyungsan farm. Representative will work with four of Korea, material relief, vocational school, support programs for family/children, sewing skills training for war widows. Mennonite Central Committee is a work of the ministry was to build peace in the community on the basis of discipleship. This specific form is the relief and development for individuals and families and villages and the country’s ministry, relief and development oriented bars that will peace. The mercy ministry was to be built, give and share peace. Relief work and peace work is a concept that can not be separated from each other. True peace is the ‘daily bread’ and ‘community’ is its foundation. Religious education, but they did not denominational education. They support people who want to establish a church, but did not stand the Mennonite church. They have respect for the church before entering Korea than they. They had served Korean churches.

      • KCI등재

        초기 개신교 내한 선교사들의 한국 무속 이해: 1884~1910년까지

        윤은석 한국교회사학회 2018 韓國敎會史學會誌 Vol.51 No.-

        본 연구의 목적은 초기 내한 선교사들이 한국 무속신앙을 어떻게 이해 했는지를 보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몇몇 연구자들이 선교사들의 한국 무속 이해를 간략하게 언급하였고, 선교사들의 한국 종교 이해를 다룬 연구도 있었다. 그러나 무속신앙에 초점을 맞추어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본 연구는 초기 선교사들이 무속신앙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을 제공한다. 본 연구는 선교사들이 인식한 한국 종교 체계 속에서 무속신앙의 위치를 다룬다. 한국인들이 무속신앙을 어떻게 느꼈다고 선교사들이 인식했는지도 다룬다. 한국인들의 무속신앙 인식에 따른 다양한 행동들도 분석한다. 한국인들의 무속신앙 속에서 선교사들이 기복주의를 발견했음도 살펴본다. 악귀와 관련된 다양한 무속신앙의 치유방법들이 선교사들에게 목격되었음도 살펴본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무속신앙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며 대결의 대상으로 삼았음도 확인한다. 본 연구의 방법론은 문헌연구이다. 선교사들은 한국 선교 경험을 토대로 책을 저술하였고, 편지, 잡지, 일기를 통해 그들의 무속신앙에 대한 견해를 드러냈다. 이러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선교사들의 이해를 분석하여 정리하게 될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examine what the understanding on Korean shamanism of early Protestant missionaries in Korea is more comprehensive. Until now, some scholars referred to understanding on Korean shamanism of early Protestant missionaries in Korea simply, and there was a study on missionaries’s understanding on Korean religion. However, we can’t find the systematic analysis focusing on shamanism. In that sense, this study provides a window to check how early missionaries understanded the Korean shamanism. This thesis treats the position of Shamanism in the religion system of Korea that missionaries recognized. It treats what missionaries perceived Koreans’ feeling about shamanism. It analyzes various behaviors based on the Koreans’ recognition on shamanism. It ascertains missionaries found shamanic fortune belief of Korean shamanism. It is treated for missionaries to have observed various healing methods of shamanism related to evil spirit. And it identifies missionaries viewed shamanism as a target of confrontation in the critical recognition on that. The research methodology of this thesis is literature review. Missionaries wrote books on a basis of missionary experience in Korea, and revealed their opinion about shamanism through letters, journals, and diaries. This thesis will analyze these materials and arrange the missionaries’ understanding on the sham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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