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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석우 몬시뇰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

        김수태 (재)한국교회사연구소 2019 敎會史硏究 Vol.0 No.55

        최석우 몬시뇰(1922~2009)은 해방 이후 한국인에 의한 한국천주교회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죽을 때까지 고민한 사제였으며, 거기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열심히 공부한 학자였다. 그의 등장은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제대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전문 연구자의 탄생을 알려주는 것이다. 동시에 프랑스인이나 일본인과 같은 외국인이 아니라, 앞으로 한국인에 의하여 교회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주도되는 것을 예고해 주는 것이었다. 몬시뇰은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통사 저술을 계속해서 강조하였다.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그는 시대사 연구를 계속해서 확대시켜 나가면서, 한국천주교회사의 거의 전 시기를 다루었다. 그리고 통사의 저술에 분류사 저술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면서, 다양한 분류사 연구를 통해서 통사의 내용을 풍부하게 채워가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그는 통사의 저술을 위해서 교회론에 기반을 둔 독자적인 시대구분을 설정하였다. 이를 통해서 한국천주교회사의 내용들을 선교사에서 순교사 및 문화사로, 그리고 다시 민족사를 거쳐서 구세사적 접근으로 나아가는 변화과정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몬시뇰은 한국천주교회사 연구를 어떠한 사관으로 행해야 하는가를 또한 깊이 고민하였다. 처음에 그는 교회사가 역사학과 신학이라는 두 개의 영역에 속하는 학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그는 교회사 연구와 역사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서 사료론을 집중적으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교회사가 민족사만이 아니라, 그리고 세계사와의 관련성을 추구하는 세계화라는 주제까지 지향해야 한다고 이해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결국 그로 하여금 점차적으로 교회사가 신학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교회 개념의 적용이 교회사 연구의 출발점이며, 동시에 그 방향은 구세사적 해석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몬시뇰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는 한국천주교회사 속에서 그 역사적 위치를 뚜렷하게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에 대해서 ‘최석우 사학’으로 불러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Monsignor Choi Seok-woo(1922~2009) was a priest who thought about what Korean Catholic Church should do after liberation, and was a scholar who studied hard to find the answer. His appearance marks the birth of a well-trained professional researcher in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At the same time, it was to forsee the full-fledged study of church history by Koreans, not by foreigners such as French or Japanese. Monssignor continued to emphasize the introductory whole history writing of the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After receiving Ph.D, he continuously expanded his study of the history of the times, covering almost all periods of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In addition, considering that writing the taxonomy is very important for the writing of the whole history, he tried to fill the contents of the whole history through various Categorized History. Based on this research, he set up an independent period division based on ecclesiastical theory for the writing of the whole history. Through this, he tried to show the process of changing the contents of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from history of missionary, to history of martyrdom, and cultural history, and then through national history to salvation approach. Monsignor also pondered what kind of view of history he should carry out regarding the study of the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At first he considered church history as a discipline under two areas; history and theology. He focused on study of the historical records for establishing a proper relationship between research of church history and history. And he understood that church history should be directed not only to national history but also to the theme of globalization, which seeks to relate to world history. This approach eventually led him to gradually emphasize church history as theology. This is because he saw the application of the church concept as the starting point of the study of church history. And at the same time, he believed that salvational interpretation should be applied to that direction of the study. In this way, Monsignor’s study of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clearly holds its historical position in the history of Korean Catholic Church. Then, it might be enough to call his study of Korean Catholic Church History as ‘Choi Seok-woo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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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석우(崔奭祐) 교회사학(敎會史學)의 사학사적(史學史的) 의의(意義)

        원재연(Won Jae-yeon) 한국교회사연구소 2014 敎會史硏究 Vol.0 No.43

        최석우 몬시뇰은 한국 천주교회사에 대한 집체적 연구를 시작한 한국교회사연구소의 창설자로서, 구원사와 실증사의 조화를 통해서 전체사적 전망을 제시한 선각적 교회사가였다. 최석우 몬시뇰의 교회사학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최석우 몬시뇰이 추구한 교회사 연구의 이상적인 형태는 교회사가 신학과 역사학의 두 영역에서 서로 공존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둘째, 최 몬시뇰은 신학으로서의 교회사를 추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교회’라는 용어에 대한 신학적 개념 정립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최 몬시뇰은 처음에는 교계제도로서의 교회 개념이 중요하다고 보았지만, 차츰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 특히 평신도의 능동적 참여가 보장되는 교회가 더욱 중요하다고 보게 되었다. 셋째, 최 몬시뇰은 한국 교회사 연구에서 원사료의 발굴과 이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중요시했다. 이는 그의 실증주의적 역사학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비롯된 경향으로, 달레, 다블뤼, 정약용 등 교회 측 인사의 기록뿐만 아니라 관찬 연대기와 재판 기록 및 척사론자들의 문집에 나오는 기록들도 매우 중시했다. 넷째, 최석우 몬시뇰은 박해기 프랑스 선교사들의 한국 진출, 다산 정약용의 신앙과 가톨릭 사상, 안중근의 애국 활동과 신앙심,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영성과 활동 등에 대한 연구와 저술을 통하여 구세사적 관점에서의 교회사 연구를 진전시켜, 단순한 선교사와 그리스도교사의 범위를 초월하는 전체사로서의 교회사를 조망하고 추구하였다. 최 몬시뇰은 우리 벽돌로 지은 ‘한국 교회사’라는 건축물을 짓게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인에 의한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의 소망이 실현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직 교회사 연구의 진정한 토착화는 실현되지 못한것 같다. 그것은 벽돌의 재질을 따지기 전에 그 벽돌로 지을 ‘교회사’라는 ‘무형(無形)의 성전(聖殿)’에 대한 건축설계도와 각종 도면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구체적 내용에 대한 합의가 아직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석우 몬시뇰이 소망했던 “국산 벽돌로 지은 한국 교회사라는 무형성전의 건립”이 아직도 요원한 현실이 안타깝다. Msgr. Andrea Choi seok-woo is the founder of The Research Institute for Korean Church History who has started joint rearches on the catholic history in Korea with his fellow workers. He was the pioneer who showed the view of total history though harmonious research of Salvation and of Positivism in Catholic history. The research meaning of catholic church history studied by him was as follows. First, his ideal type of studying church history was that of communicating and coexisting between the division of catholic theology and of secular histoy. Second, he regarded formulating the concept of church most highly, for pursuing of church history in theologic viewpoint. He focused on the concept of church as catholic hierarchy at first, but he gradually became to attach much more importance to it as God’s people. Third, he stressed on the excavations of historical materials and on systematic analyses of them in studying Korean catholic history. This stress was came from the viewpoint of regarding Positivism in studying histoy, with focusing not only on the church data of Rev. Dallet, bishop St. Daveluy and John Jeong Yak-yong, but also on the persecutor’s materials such as annals of government, judicial records, and personal books worked by anti-catholic confucianist. Fourth, he has researched and wrote such papers as of French missionaries’ coming to Korea in the period of persecution, of John Jeong Yak-yong’s belief and catholic thought, of Thomas Ahn Joong-keun’s patriotic movements and his catholic faithfulness, of the spiritualities and activities on Rev. st. Andrea Kim Dae-keun and his friend Rev. Thomas Choi Yang-eop, and of etc. Through these works, he inquired into studying of church history in the viewpoint of the history of salvation, and became to search and have the observation concerning total history of church, with transcending the mere history of mission or with surpassing the histoy of Christian. Msgr. Andrea Choi wanted that the study on Catholic history in Korea by foreign bricks might become by Korean. And now, he thought it became true. But I do not think so, in the strict point of view. Because we Koreans have not been able to reach an consensus on the concrete plan of Korean catholic history. Until now, we are in such needy circumstances that we do have enough discussions of total history containing of salvatio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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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

        김수태(Kim, Soo Tae) 한국교회사연구소 2014 敎會史硏究 Vol.0 No.43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는 최초의 한국 천주교회사 통사이다. 이와 같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저술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학사적 분석과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책은 서론과 본론으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이를 각각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 책과 혹은 순교사 중심의 호교론적 저술로서만 그 성격을 규정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한국천주교회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이 글에서는 《한국천주교회사》의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을 검토해 보았다. 역사 연구를 위한 훈련을 받지 않았던 다블뤼 주교와 역사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던 달레를 비교할 때 《한국천주교회사》가 달레의 단독 저술임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달레가 한국사와의 관련 속에서 천주교회사를 서술하려고 한 사상사 연구 방법을 적용하려고 했음을 지적해 두었다. 이 때문에 그는 조선을 둘러싼 대외 관계 속에서 천주교의 수용과 발전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이루어졌는가를 다루고자 하였다. 달레는 한국인들이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배교를 통해서 순교로 어떻게 나아가는가 하는 개종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다. 그 결과 그는 한국 천주교에 대한 박해사의 서술에 많은 비중을 두었는데, 특히 박해가 정치 사상적인 이유에서 일어났음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 천주교가 수용되면서 일어난 커다란 변화를 함께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조선이라는 새로운 선교지에 대한 서구 사회의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하였던 것이다. 달레는 특히 한국 천주교회사 속에서 선교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하는 부분도 새롭게 이해하였다. 또한 한국 천주교가 종교의 자유를 어떻게 획득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는데, 그것은 달레가 앞으로 열리게 될 새로운 시대에 천주교가 한국 사회를 위하여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을 크게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달레의 한국관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런 까닭에 《한국천주교회사》에 실려 있는 방대한 내용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체계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As a member of Paris Foreign Mission Society(La Societe des Missions Etrangeres de Paris, M.E.P.), Father Charles Dallet’s Histoire de l’Eglise de Coree is the first book to cover about the whole history of Korean Church. Despite such a significance, Histoire de l’Eglise de Coree has not yet been properly analyzed and evaluated in the domain of historical studies. The book is mainly divided into introduction and body parts however, each part was separately defined. One as introduction of Korean history and culture, and the other as Apologetics text focused on martyrs. Therefore, novel approach is required for proper understanding of Histoire de l’Eglise de Coree. This study examined few major features of the contents of Histoire de l’Eglise de Coree. By comparing Dallet’s outstanding ability as a historian with Bishop Daveluy, whom had never received a training for historical studies, the fact, that Histoire de l’Eglise de Coree was Dallet’s solitary work, was found. Dallet’s attempt to apply research method of history of thought by describing Korean Church history in relation with Korean history was also mentioned. Due to this attempt, Dallet tried to deal with how reception and development of Catholic voluntarily took place while regarding foreign relations of the Chosun Dynasty. Dallet specifically narrated the history of conversion by describing how koreans became theists from atheists and how koreans proceeded to martyrdom through perversion of faith. As a result, Dallet placed a importance on describing the history of persecution in Korean Catholic. He especially elaborated that such persecutions occurred due to political and ideological reasons. Dallet tried to show significant change that took place, regardless of such a brutal persecution, in Korean society as a result of the acceptance of Catholic. Through these efforts, he endeavored to remove prejudice of Western society about their new mission field, the Chosun Dynasty. Dallet had original understanding about how the history of mission works took place in Korea regarding Korean Church history. Thereupon, he also gained interests in the matter of whether Korean church could attain the freedom of religion. This was because Dallet greatly anticipated the role of the Catholic church inside the Korean society in upcoming epoch. This fact proves that Dallet’s view of Korea can be positively evaluated. Due to these reasons, thorough and systematic analyzation of vast amount of contexts in the Histoire de l’Eglise de Coree is neces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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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천주교회의 미국 천주교 외방선교회(메리놀회)와의 교류와 그 의의

        최선혜(Choi, Seon Hye) 한국교회사연구소 2016 敎會史硏究 Vol.0 No.49

        이 연구의 목적은 한국 천주교회와 미국 천주교회의 교류를 검토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사를 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는데 있다. 유럽의 천주교회와 달리 미국 천주교회는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외방 선교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이에 아시아 선교를 목표로 ‘미국 천주교 외방선교회’(메리놀회)를 창설(1911)하였고, 한국 천주교회는 메리놀회 창설 직후 부터 교류를 시작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무엇보다 아시아 선교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촉구하였으며, 한국은 동양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영성이 일어나는 준비된 선교지임을 강조하였다.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여 전쟁이 장기화되자 한국 천주교회는 더욱 절박하게 미국 천주교회가 선교지에 대한 책임을 깨닫게 되기를 촉구하였다. 메리놀회는 외방 선교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촉구하는 한국 천주교회의 요청에 진지한 반응을 보였다. 창설자 월시 총장은 선교사 파견을 위한 초석으로 아시아 천주교회 순방길에 올랐고, 직접 진출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 여정에서의 경험을 담아 여러 출판물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와 현황을 소개하고 한국에서 순교한 선교사의 전기도 출간하며 한국 교회에 대한 관심과 후원을 호소하였다. 한국 천주교회는 일제의 압박에도 시달리고 있음을 전하며 일본 정부가 일본과 한국 모두를 파멸시키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천주교인이 되는 것과 관련해 한국인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는 것이며, 교묘하게 자행되는 일본 정부의 그리스도교 압박으로 개종자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하였다. 메리놀회도 이러한 요청에 적극 반응하며 한국에 진출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집중해 다루었다. 마침내 교황청은 메리놀회의 한국 선교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였고, 메리놀회는 순교자의 나라인 한국은 메리놀에게도 감동적인 곳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천주교회의 미국 천주교회를 향한 선교의 책임과 당위성에 대한 호소, 아시아 선교를 목표로 한 미국 외방선교회의 적극적 호응, 이에 대한 교황청의 후원과 승인으로 마침내 미국 천주교회의 한국 진출은 이루어졌다. The goal of this research is to underst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Korean Catholic Church and the American Catholic Church. Since the establishment of the Catholic Church in Asia, there had never been a direct exchange with the American Catholic Church. Only after the 20th Century did the American Catholic Church begin leading foreign missionary work. After the mid-19th Century, Fr. Walsh, Fr. Price, and Mother Mary Joseph Rogers founded the “Catholic Foreign Mission Society of America”(Maryknoll) with the aim of creating mission in Asia. The Korean Catholic Church hoped that the American Catholic Church would realize its responsibility in foreign missions, and wanted it to recover it’s reputation by realizing that the United States was the only country with Protestantism, and prejudiced as a country known only for its money. Maryknoll responded genuinely to the Korean Catholic Church’s request regarding foreign missions. As a cornerstone for sending missionaries, Superior General Fr. Walsh visited Korea where he discussed making advances in Korea. By publishing a magazine and Korea-related books, the history and circumstances of the Korean Catholic Church which transpired out of persecution and martyrdom were introduced, and garnered further interest and attention about the Korean Church. Ultimately, the Vatican officially allowed Maryknoll a mission in Korea. The responsibility and duty of the American Catholic Church’s missionary work, the active response to create Asian missions by the Catholic Foreign Mission Society of America, and the Vatican’s support and approval is subsequently what brought about the entrance of the American Catholic Church int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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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홍렬의 한국 천주교회사 연구와 그 특성

        박광용(Park, Kwang-Young) 한국교회사연구소 2014 敎會史硏究 Vol.0 No.43

        유홍렬은 일생을 역사학자로 살았지만, 동시에 뛰어난 교육 행정가이자, 열심한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활동가였다. 그의 한국사 연구는, 조선의 성리학 사회를 구명하는 노력에서 시작하였으나, 한국 천주교회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로 귀결되었다. 달레는 복음전래사와 순교사를 서술하였고, 주로 프랑스 선교사들의 기록을 사용했다. 이에 반해서 유홍렬은 한국 사회에서의 천주교회사를 서술하였고, 연대기를 위시한 국가 편찬 사료들을 보완했다. 유홍렬의 천주교회사 연구는 이전보다 폭넓고 철저하게 문헌 고증을 했다는 특징이 있다. 단편적인 사료들을 발굴하여, 교회사를 조금이라도 보완하려 노력했다. 다만, 개척적 저술이라서 오류들이 가끔 나타난다. 다음으로, ‘근대화론’과 ‘자체발전론’의 시각으로, 새롭게 밝혀낸 자신의 연구 성과들을 정리했다. 조선 교우들은 스스로 천주교를 수용하고 전파했는데, 이는 우리 민족이 ‘서구적 근대 사회’로 발전해 나가는 데 직접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조선 교우들은 근대적 휴머니즘이나 실험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변별 없이도, 천주교 사상을 받아들여서, 곧바로 서구 근대사상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많은 부분이 오류일 것이다. 결국 유홍렬은 성리학이 우리 민족의 올바른 신앙생활-사회생활을 저해한 근원이라고 파악하였다. 반면에 이러한 비과학적이고 불평등한 역사적 상황을, 한국 천주교회가 극복해갔다고 파악하였다. 곧 달레의 호교론도 이어받고 있다. 서구 지향 근대화로 조국 건설에 이바지한다는 슬로건은 1960~1970년대 국가적 표방인데, 유홍렬은 이를 한국 천주교회사를 통하여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유홍렬의 사고는 너무 단순하고 자의적이지만, 사목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오늘날까지 폭넓은 이해를 받고 상당한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대 역사학은 크고 작은 인과 관계를 밝히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이를 구성체적으로 또는 구조적으로 통합하여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홍렬의 역사학은 이 부분에서 한계가 있다. Yoo Hong-youl had lived as a historian all the time, excellent educrat and activist of Catholic lay apostolate, too. His study of Korean history had started trying to follow up Korean Neo-Confucianism society, and boiled down to total understanding of the Catholic Church of Korea. Dallet had wrote a history of the Evangelization and of the martyrdom in Chosun Dynasty, using mainly French sources. In contrast, Yoo had wrote about the Catholic Church history within the Korean society, and made up for the chronicles of Chosun Dynasty which is past Korea, and the historical data of the Dynasty, using mainly Korean sources. Above all, Yoo’s Catholic Church research has more perfect and much more historical sources than before. Scrappy remains and feeds the research a daunting, his trying to back up a little more on the history of the Church. Sometimes we can find a few mistakes in this research because it is pioneer writing. Next, he said the newly uncovered and organized them in his research with the theory of modernization and the theory of autonomous development. Chosun Christians accept Catholicism spontaneously and propagate to their nation, so Chosun society had had a big impact directly and developed into a modern Western society. Chosun Christians fell into the Catholic ideas and directly could get the Western modernism without distinguishing the modern humanism or the empirical-scientific way of thinking from the Catholicism. This is probably a lot of error. Eventually, Yoo thought that Neo-Confucianism was the bar for the people to become courteous believers in Catholicism. He thought Chosun Catholic Church had overcome these non-scientific and historical situation of inequality. So, he succeeded to the Dallet’s apologetics. The modernization of the Western-oriented slogan was a national promotion in 1960~1970’s for the construction of the motherland, Yoo had showed that situation throughout the Catholic History of Korea. These Yoo’s attitudes could be so simple and arbitrary, but because of its pastoral needs and public needs, Korean Catholic accept and support it significantly until this day. However, modern history aims not at clarifying great and small causes and effects but at examining and explaining the result of a structural or a social organic integration. This could be filling up the shortage of Yoo’s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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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 관리를 통한 교회문화유산 활성화 방안

        정윤정 (재)한국교회사연구소 2019 敎會史硏究 Vol.0 No.55

        한국인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 베드로가 이 땅에서 첫 세례식을 거행한 1784년을 한국 교회 신앙의 첫 출발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230년 역사 속에서 한국교회는 신앙적인 측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있어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 왔다. 특히 한국교회는 교회 신앙이 뿌리내리는 과정 속에서, 성당 건축물을 비롯한 유물, 미술품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하 ‘한국 교회문화유산’이라고 한다)을 형성하였고 이러한 한국 교회문화유산은 우리 사회 전반의 다채로운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한국 교회문화유산을 구성하고 있는 성당 건축물, 성물, 성화, 유리화, 이콘, 조각물 등 여러 유형의 문화유산은 서양의 전래적인 건축 양식, 미술품 제작 기법, 테마 등으로 고착화되어 왔다. 교회문화유산에 대한 서양식 건축 양식, 디자인 등은 교회 신앙의 정통이라는 미명하에 교회 공동체와 개인 신자의 면에서 이를 선호 내지 당연시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고, 결국 한국 교회문화유산의 ‘현대화’와 ‘토착화’라는 행보에 상당한 난제를 부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교회문화유산의 ‘현대화’와 ‘토착화’라는 실천방향은 저작권 관리와는 직접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하여 새로운 건축 양식과 교회미술 제작 기법, 소재, 테마 등을 통한 한국 정서를 담은 교회문화유산을 구축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저작권 관리를 통하여 문화유산을 보존과 보호, 보호와 활용이라는 측면에 있어 교회문화유산 운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 관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해당 교회문화유산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 만큼 정보에 대한 효율적인 체계가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 천주교 문화유산 보존 관리 지침』 상의 분류체계를 기초로 하여 문화재청과 유네스코의 분류체계를 비교, 분석하여 새로운 교회문화유산 분류 체계를 제시한다. 새롭게 제시한 분류 체계를 반영하여 ‘공세리 성지’를 표본으로 주요 교회문화유산에 대한 특징, 저작물성, 저작권 관리를 분석하여 교회문화유산에 대한 생성부터 저작권 관리의 역할과 중요함을 제시함과 아울러 관리 방안을 도출한다. 본 논문이 한국 교회문화유산 활성화를 위한 또 하나의 화두를 제시함으로써 저작권 관리에 대한 좀 더 깊고 의미있는 논의와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The Korean Church has formed a diverse cultural heritage (the ‘Korean Church Cultural Heritage’), including cathedral architecture, artifacts and so on, in the course of the faith of the church. It has had a considerable influence on various cultures. However, various types of cultural heritage such as cathedral architecture, sacred arts, stained glass, icon, and sculpture, which constitute the Korean church cultural heritage until now, have been fixed with architecture, art and so on of the Western technique and theme. The Western style architecture and design of the church cultural heritage showed a tendency to prefer it in terms of the church community and the individual believer in the name of the orthodox of the church faith. As a result, the ‘modernization’ and ‘indigenization’ give considerable difficulties to the way. The direction of ‘Modernization’ and ‘Naturalization’ of the Korean Church Cultural Heritage establishes a direct and developmental relationship with copyright management. Based on above that,, a new style of architecture, church art, materials and themes featuring Korean sensibilities can build the New Korean Church Cultural Heritage. Korean churches will be able to find out how to manage cultural heritage in terms of conservation, protection, and utilization of cultural heritage through copyright management. Because copyright management has been involved since the birth of the church’s cultural heritage, it can provide information to become a unique cultural heritage in building cathedral buildings and producing artworks. For copyrights management, above all, an efficient system of information is important because accurate information about Korean Church Cultural Heritage is needed. In this respect, a new classification system of Korean Church Cultural Heritage is suggested by comparing and analyzing the classification of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nd UNESCO based on the classification system of the Korean Church Cultural Heritage Conservation Management Guideline. And this study analyzes the features, copyrights, and copyrights management of major church cultural heritage of ‘Gongseri Shrine’, reflecting the newly proposed classification system. Through this, it suggests the plans as well as the importance and role of copyrights management from the creation of the Korean Church Cultural Heritage. We hope that this study will provide deeper and more meaningful discussions and researches on the copyrights management for Korean Church Cultural Heritage by suggesting another issue for activating Korean Church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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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련옥략셜》의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

        조현범(Cho, Hyeon-Beom) 한국교회사연구소 2017 敎會史硏究 Vol.0 No.50

        한국교회사연구소 자료실에는 《련옥략셜》이라는 한글 필사본 하나가 소장되어 있다. 그 서지사항을 보면 저자 불명으로 나와 있다. 누가 그리고 언제 이 필사본을 만들었는지 추정할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자료실에는 《련옥략셜》과 함께 한문본《연옥약설》(煉獄略說)이 소장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련옥략셜》은 한문본의 번역임을 알 수 있다. 본고는 한글 필사본 《련옥략셜》의 정체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한문본 《연옥약설》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였다. 1871년에 처음 간행된 한문본 《연옥약설》에는 중국인 예수회원 이문어(李問漁, 1840~1911) 신부가 저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1862년 5월 29일 예수회에 입회하여, 1872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따라서 한문본 《연옥약설》은 그가 사제로 서품되기 직전에 집필 간행되었다. 《연옥약설》은 총 8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8편의 제목과 세부 장절을 보면, 연옥 교리에 관한 모든 가르침을 집대성하여 주제별로 배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각 편의 세부 장절 아래에 연옥 관련 예화들을 고적(故迹)이라는 제명으로 한두 편을 실어 놓았다. 그 예화들은 대부분 서양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인데, 단 두 편만이 중국의 예화들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 자료실에 소장된 《련옥략셜》에 대한 기록은 모리스 쿠랑의 저서 《한국서지》에 처음 등장한다. 쿠랑이 제시한 서지 사항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므로 현재까지는 쿠랑의 저서가 《련옥략셜》의 존재가 처음 기록된 자료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쿠랑의 기록을 신뢰한다면 1892년 이전에 《련옥략셜》이 주교관의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는 적어도 한문을 잘 아는 조선인 신자가 프랑스인 사제나 주교의 감독 아래에 교회의 공적인 목적을 위하여 번역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말하자면 한문본 《연옥약설》이 조선인 교우들의 신앙생활에 유익한 점이 많다고 판단하여 조선에서도 이를 번역 간행할 의향을 갖고 준비하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연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련옥략셜》의 인쇄 간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A Korean manuscript about purgatory is owned in the library of the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 Church History(RFKCH). It’s title is Ryeon-Ok-Ryak-Syeol which means an outline of purgatory. In bibliographic data there is written of unknown authorship. Who made this manuscript? And when? The library has no information about it. In which locus was it stayed before registration into the storage of the library of the RFKCH? What is the first record about the document which is at issue here? To put it briefly, when was born the RORS, where it has lived, and finally to exist in now and there? Fortunately we have one clue to the mystery of our manuscript. That is, the library retains a chinese book with the same name. Regarding that it is the original version of the Korean manuscript, we undertook the task for discovering the curriculum vitae of the RORS. The Chinese book, Lien Yu Lio Choe(煉獄略說) which was published in 1871 by the young Chinese jesuit, Fr. Li Wen Yu (李問漁, 1840~1911) could be estimated for the mother of the RORS. The LYLC consists of eight chapters which gathered, classified and disposed logically all the teachings and arguments about the doctrine of purgatory. Specially we could find two or three stories which are titled ‘Old Story’ in the end of each chapter. As European Catholic fables or legends, they are passed down from the medieval era, even dated to the ancient era. Therefore, we could find out a kind of imaginative world-making and describing the life after death in the Western societies, and examine the adequacy of the application of the same scheme to the East Asian societies. Now let us turn to the Korean case. In the book of Maurice Courant, french diplomat and author, Bibliographie Coréenne, there is the first record of the RORS. Its bibliographical information has an accurate consistency with the formal character of the manuscript of the library. So evidently the RORS was deposited in the library of french bishop of Vicariate Apostolic of Joseon before the year of 1892. Moreover we incline to the suggestion that an anonymous Korean layman who was so intelligent as to translate Chinese literature to Korean, did it for the ecclesiastical purpose under the direction of French bishop or priest. But the RORS was not published for the unknown motive, left the only manuscript to sit crouched on the worn-out bookshelf, waiting for the eyes of researchers.

      • KCI등재

        한국 전쟁기 천주교회와 공산 정권

        최선혜(Choi, Seon-hye) 한국교회사연구소 2014 敎會史硏究 Vol.0 No.44

        이 연구는 한국 전쟁기 북한 공산 정권과 천주교회의 문제를 초대 주한교황사절 번 주교를 중심으로 검토한 글이다. 이를 위해 메리놀 외방선교회와 골롬반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남긴 한국 관련 문서를 활용하여 보다 국제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하였다. 냉전에서 공산 정권은 주요한 저항 세력인 천주교회를 적대 진영으로 간주하여 공격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황 비오 12세는 1947년 4월 7일자로 번 주교를 교황특사로 한국에 파견하였다. 한국 천주교회와 정치인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교황청이 교황사절을 파견한 것은 한국을 독립 국가로 승인한 정의의 결단이라며 환영하였다.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도 미군정과 유엔, 그리고 천주교회의 긴밀한 교류 속에 이루어졌다. 미국의 교회 관련 신문과 잡지에는 대한민국이 천주교회의 축복 속에 탄생하였다는 보도가 잇따랐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무신론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로 규정되었다. 번 주교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수립된 것을 하느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도덕적 결과물이라고 강조하였고,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적인 국가로 승인되도록 지원하였다. 이승만은 천주교회는 악과의 전투에서 가장 좋은 동맹이라며 번 주교를 치하하였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번 주교는 전혀 대항할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주교공관의 모든 문을 열어 둔 상태에서 북한군에게 체포ㆍ실종되었다. 정전을 눈앞에 두고서야 생환한 포로들을 통해 ‘죽음의 행진’ 끝에 악의적인 학대로 번 주교가 사망한 사실이 알려졌고, 공산주의자에게는 악마와 같은 무리라는 거센 윤리적 지탄이 가해졌다. 결국 한국 전쟁기에 공산 정권이 천주교회에 가한 행위는 반공(反共)을 한층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The following research surveys and analyzes the Catholic Church’s response to the North Korean Communist regime’s exploitative policies toward the Church during the Korean War. This was done with special focus on the activities of Bishop Byrne, the first Apostolic Delegate to Korea. To better include an international perspective of the matter at hand, documents left by missionaries belonging to the Maryknoll Missioners as well as the Missionary Society of Saint Columban were referenced. The Communist regime considered the Catholic church, with its as a prime political suspect worthy of suspicions of sabotage against the party and state. In these circumstances, Pope Pius XII sent Bishop Byrne as his apostolic delegate to Korea on the seventh of April, 1947, far before the founding of the Korean Government. Not surprisingly, politicians as well as the Church welcomed this as a righteous act that officially recognized the independence of Korea and increased its standing among the nations. The establish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was deemed a clear victory over the atheist Communist Soviet Union. In the media, reports that proclaimed the birth of a sovereign Korean government, with the blessings of the church, closely followed one another. On this matter, Bishop Byrne emphatically claimed that the democratic founding of the Republic of Korea was a morally desirable outcome, made possible by the providence of God. Furthermore, Bishop Byrne seems to have exhausted every diplomatic means available to him in order for the Korean government to receive the approval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fter the outbreak of the Korean war, he opened the doors to every Bishop’s House in a display of non-resistance against the invading army, but he was still taken prisoner by the communists. Along with other civilian prisoners of war, Bishop Byrne was transferred to Pyongyang for imprisonment. Ultimately, Bishop Byrne would meet his end during ‘A Death March’. With the armistice just upon the horizon, around May of 1953, freed Catholic church priests notified the rest of the world of Bishop Byrne’s passing by giving interviews and submitting newspaper articles. In the end, both the deliberate execution of priests and the less overt act of their death as the regime’s prisoners led to an increase in Anti-communist sentiment. The criticism held that communists were not mere soldiers that were obligated to fight in a war but rather a demonic group that voluntarily engaged in highly unethical acts.

      • KCI등재

        1791년 내포(內浦)

        장유승(Jang Yoo-seung) 한국교회사연구소 2014 敎會史硏究 Vol.0 No.44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수기》(隨記)는 정조 어찰에 대한 박종악(朴宗岳)의 답장을 옮겨적은 책으로, 초기 천주교회사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신해박해 당시의 기록으로, 충청도 내포(內浦) 천주교회의 조사를 책임진 충청도 관찰사 박종악이 국왕에게 직접 보고한 것이다. 따라서 《수기》는 그간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 의지해 왔던 초기 교회사 연구에 중요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수기》의 발굴로 드러난 새로운 사실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충청도 내포 지역의 천주교 전파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이루어졌으며, 그 교세는 충청도 전역에 미쳤다는 사실이다. 박종악에 따르면 내포 지역의 천주교회는 1784~1785년경 형성되었으며, 1791년 무렵에는 충청도 일대에 광범하게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초기 교회사의 중요 인물들에 대한 정보이다. 그간 내포 지역 천주교 전파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존창에 관한 새로운 정보는 물론, 홍낙민 형제가 이 지역 천주교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 밖에 《수기》에 보이는 천주교도 명단 및 천주교 서적 목록 또한 초기 교회사의 실상을 밝히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천주교에 대한 정조의 대응 양상이다. 정조는 박종악을 통해 충청도 교회의 실상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으나, 비공식적인 조치로 비교적 온건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천주교 박해가 초래할 정치적 파장에 대한 고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Sugi(隨記) stored in Jangseokgak library of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is a book of replies of Park Jongak(朴宗岳) on the royal letters of King Chongjo(正祖), which contains various new facts on the initial Catholic history of Korea. The contents of the book were direct report to the King by Park Jongak, the governor of Chungcheong province(忠淸道) who was responsible for the examination of the Naepo(內浦) Catholic Church in Chungcheong province at the Catholic Persecution of 1791(辛亥迫害). Accordingly, Sugi is expected to be used importantly for the study of the initial Catholic history of Korea which has been largely dependent on Dallet’s A History of the Church in Korea. New facts by the discovery of Sugi can be summarized into three. Firstly, the spread of Catholic in Naepo area of Chungcheong province was far earlier than known today, and its congregation was spread throughout Chongcheong province. It is conjectured that Catholic Church in Naepo was formed in 1784~1785. In 1791 when the examination by Park Jongak started, it was widely spread throughout Chongcheong province beyond Naepo. Secondly, it contains information of important figures of the initial Catholic history of Korea. Sugi contains new information of Yi Jonchang(李存昌), who was known as the leading figure in the spread of Catholic Church in Naepo, and of brothers of Hong Nakmin(洪樂民) who had considerable influence on Catholic Church in this area. Besides, the list of Catholics and Catholic books in Sugi seem to contribute to figure out the reality of the initial Catholic history of Korea. Thirdly, it contains the response of King Chongjo on Catholic Church. While he understood the reality of Chungcheong province from the report of Park Jongak, he took moderate measures with unofficial actions. This seems because he considered the political impact by the persecution of Catholic Church, which needs further investig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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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에 대한 논쟁 : 그 교회사적 의미와 신학적 전망

        박준양 (재)한국교회사연구소 2020 敎會史硏究 Vol.0 No.56

        최근 한국 교회에서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고,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이 문제를 논의하였다. 그래서 선서문의 두 번째 단락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서한을 한국의 3대 세나투스에 보냈고, 이것이 레지오 마리애 세계본부(콘칠리움)에 전달되었다. 콘칠리움은 영적 지도자 비드 맥그리거 신부의 의견서를 첨부해 답변 서한을 보내왔다. 여기에서, 선서문의 내용은 주로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의 저서 내용이 반영된 것이며, 그 신학적 입장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앙교리위원회의 문제 제기는 성모 마리아가 ‘공동 구속자’이며 ‘모든 은총의 중개자’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모든 것에 대한 운영을 넘겨주실 수 있다.”는 것이 선서문의 요점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대해, 신앙교리위원회는 맥그리거 신부의 의견서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해 신학적으로 반박하는 입장을 전달하였다. 이 답변서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몽포르의 수도 가족들에게 보낸 1997년과 2003년의 서한에 나타난 교도권적 가르침에 근거해, 성 루도비코의 문체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당황스러울 수 있기에 언어적 표현에서 변화가 꼭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따라서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제8장의 내용에 비추어 재해석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마리아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중개에 종속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되신 삼위일체에 대한 마리아의 전적인 상대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임을 설명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 루도비코의 말을 직접 인용해, 마리아는 “오로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하기에 곧 “하느님의 메아리”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동 구속자’나 ‘모든 은총의 중개자’라는 명칭은 적합하지 않고, 마리아의 역할은 참여적 중개임을 밝힌다. 레지오 마리애 운동이 활발한 한국에서 많은 선의의 신자들이 선서문에 나온 일부 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더 이상 혼란을 겪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신앙교리위원회의 관심임을 밝히면서, 앞으로 이에 대한 신학적 교육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하며 답변서는 마무리된다. 이후 지금까지, 이에 대한 콘칠리움의 의견 표명은 없다. 이러한 선서문 논쟁은, 공의회의 정신으로 성찰해야 할 일들이 아직도 한국 교회 안에 남아 있다는 자각을 통해, 지속적인 교회적·신학적 쇄신의 과제에로 연결된다. 그리고 대중 신심에 대한 신학적 탐구를 통해 성령과 마리아의 관계에 대한 재정립 작업을 해야 할 과제를 남겨주었다. 이 논쟁은, 한국 교회의 현대사 안에서 서구로부터 도입된 레지오 마리애의 선서문에 대해 한국 지역 교회의 신학자들과 공식 기관에 의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 교회사적 의미를 지닌다. 즉, 공의회 이전 유럽에서 시작된 레지오 마리애 운동의 정신과 영성을 신학적으로 새로이 조명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한국 교회 안에서 스스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교회사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서구 교회로부터 복음이 전해졌던 한국 교회에서, 이제는 역으로, 신학적 차원에서 서구 교회에 공헌하고 기여하는 흐름이 시작되었다는 교회사적 전환을 암시하기도 한다. Concerns over the Legion of Mary Promise have been raised recently within the Catholic Church of Korea, prompting the CBCK Committee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to officially address the issue. After due consideration, the Committee issued a letter to the three regional Senatus of Korea and expressed concerns over the questionable language found in the second paragraph of the Legion Promise. The letter was then sent to the International Centre of the Legion of Mary (Concilium Legionis Mariae), after which the Committee received a response containing a reflection prepared by Fr. Bede McGregor, the spiritual director of the Concilium. Fr. McGregor’s reflection asserts that the Legion Promise does not raise theological concerns, as the Promise draws primarily from the writings of St. Louis-Marie Grignion de Montfort. According to Fr. McGregor’s reflection, the Committee’s concerns stem from its failure to acknowledge Mary as ‘Co-Redemptrix’ and ‘Mediatrix of all graces.’ The reflection goes on to emphasize how the key notion contained in the Legion Promise is that the “Holy Spirit could hand over the entire conduct of affairs to Mary.” In response, the Committee has issued a response paper rebutting the theological positions of Fr. McGregor’s reflection. Turning to the teachings of the Magisterium of the Catholic Church articulated in Letters of St. Pope John Paul II to the Montfort Religious Family in 1997 and in 2003, the Committee’s response paper reiterates the late Pontiff’s claim that there is “no doubt certain changes in the language seem imperative,” given that St. Louis-Marie’s style can “surprise our contemporaries.” For this reason, the Committee contends that St. Louis-Marie’s words need to be reinterpreted in light of the Second Vatican Council, Chapter 8 of Lumen Gentium in particular, to conform to the Council’s teachings on Marian theology. The Committee echoes the Magisterium’s position that the role of Mary is subordinate to the unique and universal mediation of Jesus Christ, which clearly establishes “Mary’s total relativity to Christ and through him, the Blessed Trinity.” The Committee then ties these principles to St. Louis-Marie’s own words that “Mary only exists with reference to God” and is “the echo of God.” The Committee’s response paper concludes by underlining that its “major concern is to protect the many good faithful of the Korean Catholic Church from possible confusion or embarrassment caused by some ambiguous expressions of the Legion Promise.” The Concilium has yet to issue a statement in response to the Committee’s response paper. The recent debate surrounding the Legion Promise invites the Catholic Church of Korea to realize the continuing need to reformulate her faith in the spirit of the Second Vatican Council. As part of this mission to engage in constant ecclesial and theological renewal, the Catholic Church of Korea is especially being called to reformulat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Holy Spirit and Mary through theological reflections on popular piety. In addition to such a theological perspective, the debate also carries great historical significance. The correspondence between the Committee and the Concilium was initiated by concerns raised by theologians within the Korean Catholic Church together with its official assembly of bishops, which is significant given that the Korean faithful were first introduced to the Legion of Mary through the churches of Europe. This marks a significant point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Church, as it has undertaken the task of reinterpreting and shedding new light on the fundamental principles and theological foundations of the Legion of Mary which originated in the West predating the Second Vatican Council. The once nascent Korean Catholic Church that received the seed of the Gospel from the Western world is now contributing to the theological developments in the West, perhaps 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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