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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一溪 金哲埈

        李泳鎬(Lee Young-ho) 한국고대사학회 2009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53

        해방 후 한국사학계는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학을 건설하려는 의지로 충만하였다. “국내 역사학의 새로운 건설”을 기치로 역사학회가 창립되었고, 김철준은 그 주동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문헌고증학적 역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대사연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는 특히 인류학적 지식을 원용하여 한국고대사의 문제들을 해명하려 시도하였다. 그가 한국고대사연구에 남긴 최대의 업적은 한국고대사의 체계화였다. 1964년에 저술한 「한국고대국가발달사」는 해방 후 새로운 시각으로 쓴 한국 고대사 개설서였다. 동시에 해방 후 첫 세대 학자가 쓴 한국고대사 개설서의 시초였다. 이는 일제 식민주의 사관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형성과 발달과정을 이해하는 기준을 세웠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의 주요 연구들은 충분한 실증과 분석에 의한 결과가 아니었다. 직관적인 해석과 인류학 이론에 바탕을 둔 가설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방법의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이 오래 미치지 못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주장들은 연구자들의 비판에 직면하였다. 삶의 후반기 그는 대외적인 활동에 깊이 관여하였고, 학회 활동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해방 후 월남하여 거의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그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삶을 살다간 고독한 역사가였다. 그는 자신의 이력에 관한 글을 남기지 않았고, 가족사는 잘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한국고대사학의 개척기, 그는 연구의 지평을 넓히려 애썼던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였다. 해방 후 한국고대사학계가 이룬 많은 연구 성과의 결실은 그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된 것이 적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선학이 있음으로 해서 역사학의 방법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한국고대사의 체계화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또한 실증에 앞서 선험적 이론에 입각한 가설적인 연구는 역사의 실제와 거리가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After liberation in 1945, the Korean learned circles of history were full of willingness to liquidate vestiges of Japanese colonial rule and to establish new historical study. As a result, the Korean Historical Association was formed under the banner of "new establishment of Korean historical study," and Kim Chol-choon took the lead of it. From early times on, Kim sought ways to overcome the limits of the study of history based on bibliographical study and extend its scope. In particular, he tried to explicate difficult problems in ancient Korean history by using the anthropological knowledge and methodology. The greatest academic achievement that Kim left was the systematization of ancient Korean history. His work entitled History of Development of Ancient Korean States, appeared in 1964, was an outline of ancient Korean history, which was written in a new viewpoint after liberation. It was also the first work of the sort written by the first-generation Korean historian after liberation. The book is important, since it established a standard to understand formation and growth of Korea’s ancient states, breaking from the existing Japanese colonial view of history. But Kim’s major works were not a product of sufficient corroborative evidence and analyses. Since they appeared as hypotheses based on intuitive interpretations and anthropological theories, despite methodological novelty their influence was not sustaining. As time went by, his contentions were subject to criticism on the part of other scholars. In the latter part of his life, he deeply engaged in non-scholastic activities, and therefore he was alienated from the academic world. Kim Chol-choon, who moved south as a North Korean refugee after liberation and remained single almost for life, was a lonely historian, leading a dramatic life. He did not leave any writing on his own personal record, and therefore his family history is clearly brought to light. He was obviously a pioneer who tried to broaden the scope of Korean history in the initial stage of the study of ancient Korean history. In fact, a great deal of achievements in ancient Korean history realized after liberation have owed much to his raising of questions. The existence of pioneer scholars such as Kim Chol-choon leads us to broaden epistemological understanding of history and establish a standard to systematize ancient Korean history. Also, it is obvious that hypothetical studies based on a priori theories rather than actual proofs do not substantiate actual historical f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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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대사의 계보학

        김기봉(Kim Gi-bong) 한국고대사학회 2008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52

        역사의 3요소는 시간, 공간, 인간이다. 한국사에서 이 삼요소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고대사다. 한국 고대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한국사의 시작은 언제며, 한국사의 영역은 어디고 한국인의 조상은 누구인가가 정해진다. 시간, 공간, 인간의 조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 고대사의 구성과 체계가 달라진다. 한국 고대사의 계보학이란 삼국사기 이래의 正史로부터 근대 ‘국사’로 이어지는 한국사학사에서 고대사를 구성하는 방식의 변화에 대한 메타역사적 성찰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탈근대 역사이론은 과거에 대한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역사로 서술됨으로써 과거가 존재했던 것으로 인식된다는 전제 아래 ‘과거로서 역사(thehistory-as-past)’가 아니라 ‘역사로서 과거’(the-past-as-history)로의 ‘인식론적 전환(epistemological turn)’을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없었던 시대의 역사까지를 포괄해서 한국고대사를 쓰는 것은 이 같은 ‘인식론적 전환’을 이미 성취한 셈이다. 사실상 ‘국사’라는 역사서술 패러다임도 이 같은 ‘인식론적 전환’에 입각해서 성립했다. 다시 말해 한국이라는 과거가 있어서 한국사라는 ‘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라는 ‘국사’가 한국이라는 과거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국사’ 패러다임에 입각한 한국 고대사의 체계는 오늘날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수정돼야 한다. 첫째로 이제는 민족사가 아니라 문명 교섭사로 방향전환해야 한다. ‘국사’에 의해 망각된 고대 동아시아 역사세계를 복원하는 동아시아사를 서술하는 것이 문명 교섭사의 출발점이다. 둘째로 한국사회가 앞으로 점점 더 다문화사회로 변하고 있다면, 이제 한국인이란 누구인가의 정체성을 단일민족과 같은 혈통을 코드로 해서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서 재정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컨대 弘益人間과 같은 민족 고유의 가치를 인류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킬 수 있는 한국사 서술이 나와야 한다. 이 같은 新韓國人 정체성 형성 프로젝트의 시작에 한국 고대사가 있다. 나는 한국 고대사학자들이 어떤 역사를 쓰느냐는 바로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The three elements of history are time, space and human beings. In Korean history, it is especially ancient history which can define these three elements. The questions about when Korean history starts, what the space of Korean history is, and who the ancestors of Koreans are, can be answered based upon how one writes ancient Korean history. The composition and system of ancient Korean history depends on how time, space and human beings are put together. The genealogy of ancient Korean history is the meta-historical reflection upon the change in reconstructing ancient history in Korean historiography from ‘the canonical history(正史)’ since the “Three Kingdom's history” to the “National History(國史).” Presuming that history is not written about the past, but instead the past is perceived to have existed only by being written as history, postmodern history theory suggests an “epistemological turn” from “the-history-as-past” to “the-past-as-history.” This art of epistemological turn is already achieved when the Korean ancient history includes even the periods in which the identity as Korean nation was not formed yet. Actually, the paradigm of “National History” has set its foundation upon this epistemological turn. In other words, writing the national history of Korea was possible not because of the existence of the past of Korea, but instead, because the national history of Korea created the past of Korea. Now, the system of ancient Korean history needs to be corrected for two reasons. Firstly, we should turn around towards civilizational interchange history(=transfer history) from National History. It can begin with restoring ancient East-Asian history which was erased by National History. Secondly, Koreans need to redefine the Korean identity not by the code of blood, but based upon universal human value, in this time that Korean society is more and more becoming multi-cultural. This redefinition demands a historiography which is able to transform such a national value as “Hongik human being” into a universal human value. Ancient Korean history is standing in the first row of this project to form a new Korean identity. Our future depends on what kind of history that the ancient Korean historians 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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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대사의 대중화와 대중문화화

        최광식(Choe, Kwang-Shik) 한국고대사학회 2016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84

        정부는 2015년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2018년부터 교육 현장에서 역사교육 내용의 획일화된 편찬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한편 유사역사학자들 중에는『환단고기』 등 위서를 원사료로 활용하여 한국고대사의 위대함을 보여 준다며 대중들의 역사인식을 혼란시키고 있다.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은 한국고대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복원하려는 노력과 함께 한국사 인식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는 역사인식을 학생들과 대중들에게 보여줄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 고대사 사료 데이터베이스를 제대로 구축하고, 고고학 자료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하여 고대사와 고고학 연구자들이 보다 풍부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고대사 교육이 학교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다양한 시각의 ‘대안 교과서’나 ‘개설서’ 및 ‘지도’들을 제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의 사례처럼 많은 박물관들이 한국사의 체계적 인식을 도울 수 있는 통사적 전시를 추진하도록 하는데 역사학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중들이 한국고대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하여 한국고대사에 대해 흥미를 갖도록 하는 저서들을 집필 출판하는데 참여하여 한국고대사의 대중화를 이루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대중들이 디지털과 모바일 시대에 영화나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므로 문화콘텐츠 종사자들과 소통과 협력을 통해 한국고대사의 연구결과물을 문화콘텐츠화하여 대중문화를 질적으로 발전시킨다면 ‘한류’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제고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In 2015, the government announced a plan to standardize the Korean history textbooks, and attempts unified publication of the materials of history education in education field from 2018. Meanwhile, some pseudo-historians, using Hwantankogi (桓檀古記) as a primary source, is disturbing history awareness of the public, saying they are to show ‘greatness’ of the ancient Korean History. The Korean history scholars need to put more effort in rebuilding the aspects of the ancient Korean society, and have a responsibility to introduce the public and students the historical awareness to interpret the Korean history in various perspectives. For this purpose, it is necessary to establish a proper database for historical sources related to the ancient Korea, while providing ample sources for archaeologists through an archaeological source database. Plus, publishing ‘Alternative Textbooks’, ‘general history books’ and ‘maps’ written in various perspectives are needed, in order to set a proper education system of ancient Korean history in schools. Additionally, Historians are encouraged to actively participate in carrying forward museums’ exhibition for the general history of Korea, like National Museum of Korea, which will help methodical understanding in the Korean history. It is also required for historians to join in publishing books that will draw the public’s attention to the ancient Korean history, using ‘story-telling’ method for easy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and supporting the popularization of the ancient Korean history. Considering the public’s high interest in cultural contents such as movies and TV dramas in this digital and mobile era, it is also important to communicate and cooperative with the practicians in the cultural contents business to convert research achievements to cultural contents. Through this cooperation, the historians will have an important role to improve the quality of the public culture, which will ultimately take the ‘Korean Wave’ to the next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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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대 질병연구의 궤적과 과제

        이현숙(Lee, Hyun-Sook) 한국고대사학회 2021 韓國古代史硏究 Vol.- No.102

        이 글은 한국고대 의학 및 질병의 역사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한국고대 질병연구는 한국 질병의 기원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한국고대 의학 및 질병사 연구는 1960년대 미키 사카에와 김두종에 의해 한국의학사라는 통사의 서두로서 이루어졌다. 21세기 들어 신진연구자들이 새롭게 유입됨에 따라 매우 다양한 방식의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필자는 2002년 『신라의학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5세기와 7세기 전쟁의 시기에 군사의학과 불교의학이 발달하였음을 규명하고, 8~9세기가 전염병 특히 두창의 시대라는 것을 주목해왔다. 최근 연구성과를 분석해본 결과 첫째 학제간의 협업들이 이루어졌으며, 둘째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으며, 셋째 기존의 연구가 더욱 정치해졌으며, 넷째 기존 연구의 오류들이 정정되었다. 그러나 한국 전근대 의학 및 질병사에서 볼 때 여전히 고대 분야의 연구성과와 연구자가 적다. 이는 의학사 및 질병사가 아직 한국고대사의 한 장르로 자리 잡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전염병이 한 사회를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한국고대 사회가 경험하였던 혹독한 두창의 시대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the researches on the history of ancient Korean medicine and diseases. The study of ancient diseases in Korea is an attempt to determine the origin of diseases in Korea. The history of ancient Korean medicine and disease had been researched and introduced as its origin by two medical doctors, Kim Doo-jong(金斗鐘) and Miki Sakae(三木榮) since 1960’s. From the 21st century, newly scholars made researches in diverse ways. Since 2002 of my doctoral thesis, I have wrote many articles about ancient medicine and diseases. I pointed out the 5th and 7th century as the momentum of development from military medicine and Buddhist medicine. The smallpox was introduced from Tang China’s troops in the middle of the 7th century during the Silla’s unification war. It provided many motivations to Unified Silla’s medicine. Silla established the national medical school in 692 and it could be a starting point of medieval medicine in Korea. Because they adopted the Chinese Tang’s curriculums and so was the Japan. It was the beginning of the East Asian medicine world, sharing with the same text books. I categorized the researches of the 21st century in four. The first was the interdisciplinary collaboration, such as the archaeologist and Korean traditional medical doctor, as well as the DNA analysts and anthropologists. The second, new data have been discovered from the document type wooden tablet, Chinese and Japanese old documents. The third, it has become more advanced than before. The fourth, the errors in existing researches have been corrected by new researches. However, in the pre-modern history of medicine and diseases in Korea, the ancient fields have been the less researches and the less researchers than others. This is because the history of medicine and disease have not yet obtained a genre of Korean ancient history. Through the Corona 19 pandemic, we realized that the infectious diseases could fundamentally shake up a society. Now it is an important task to identify the harsh era of smallpox experienced by the ancient Korea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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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대 문화의 일본전파와 대마도

        정효운(鄭孝雲) 한국고대사학회 2007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48

        오늘날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경의 섬이기도 한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대한해협에 위치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고대로부터 대륙과 한반도의 정치, 경제, 문화의 교량적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특히, 전근대 시대에 있어서의 대마도는 해상 교통로상의 중요한 기항지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 교류의 중계지로서 존재하였다. 그런데 대마도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대마도가 가지고 있는 문화교류사적인 측면과 정치·외교사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고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교류에 있어서 대마도가 어떤 역할을 하였던가, 그리고 고대 한·일 양국의 지배층은 대마도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대마도는 지정학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 위치한 관계로 선사시대 이래 양국 문물 교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도작문화와 철기문화 등 고대국가 형성에 필요한 선진 문물이 일본열도로 전파되어 갔다. 역사시대에 들어서는 삼한과 삼국의 정치세력뿐만이 아니라 중국대륙의 정치세력들과의 정치, 문화의 교류에 있어서도 대마도가 해상 항로의 주요 기항지로 이용되었다. 한편, 대마도에 대한 동아시아 각국의 인식은 시기와 당시 정세에 따라 변화되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한반도 남부에 가야가 성립하고 난 이후부터 대마도는 가야 및 왜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역사를 영위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7세기 중반의 백강전투 이전의 단계에서는 왜국의 정치, 문화 교류의 중계 역할을 담당하던 섬에서, 백강 전투 이후의 동아시아적 위기 정세를 계기로 하여 점차 大和정권의 국경의 섬으로 정착되어 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마도는 문화교류사적 측면에서 볼 때 고대 한국과 대륙 문화의 기항지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의 수용지임과 동시에 발신지의 역할을 하였다고 보아진다. 또한 정치교류사적 측면에서 볼 때 대마도는 고대 한국과 일본의 국경의 섬이었으며, 한반도 지역을 둘러싼 동아시아적 군사 긴장내지 전쟁에의 개입이나 침략의 시기에 있어서는 그 전초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대마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근세와 근대기에 있어서도 한·일 양국의 선린우호를 매개하기도 하고 일본열도 정치세력의 대륙 진출의 출선기관지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결국, 대마도는 한국 측에서 본다면 문화를 전달하는 출구였지만, 일본 측의 입장에서 본다면 문화를 받아들이는 입구임과 동시에 한반도와 대륙 진출의 창구였던 것이다. 이러한 양국의 문화적, 정치적 필요성의 인식의 차이가 대마도의 귀속 욕구의 차이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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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의 한국고대사 교육 현황과 교과서 서술의 올바른 방향

        송호정(Song, ho-jung) 한국고대사학회 2016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84

        학교 현장에서의 한국고대사 교육 문제를 전문 연구자와 교사, 그리고 학생의 측면에서 살펴본 결과 연구자의 연구 성과가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 잘 반영되어 학생들에게 교육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문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는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논문으로 그치고 교과서나 개설서에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한국 고대사 서술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정리되어 있다. 역사의 민족주의적 서술은 우리 역사를 중심에 놓고 이해하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결함과 위험 요소도 가지고 있다. 즉 우리 민족체에 대한 충성 의무를 앞세움으로써 내적으로는 개인이나 소수 집단에 대한 억압 이데올로기로 사용되고 구체적으로는 배타적 국수주의로 발전할 위험성도 있다. 한편, 한국 고대사 내용은 증거가 부족하고 다양한 설이 많은데, 아이들에게 다양한 설에 대해 이야기해주거나 생각해보게 하지 않고 많은 학자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설을 사실인 것으로 가르친다. 현행 교과서 고대사 서술에는 많은 학자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설을 하나의 사실처럼 서술해놓은 부분이 많다. 이에 대해 다양한 설을 제시해주고 학생들이 생각해보게끔 하는 부분이 많았으면 좋겠다. 많은 교사들이 교과서 속 한국 고대사 서술과 역사교육 실천 과정에서 여러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그간 학계에서 연구되었던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교과서 서술에 반영되지 않거나 늦게 반영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학교에서의 고대사교육 실천과 관련해 공통의 견해를 마련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미 학계에서 합의된 내용이나 정리된 내용들을 교과서나 개설서에 반영토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 나아가 연구 분야 및 방법론상의 다양화를 모색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 예를 들면 문화사나 일상 생활사에 대한 연구 성과를 교과서에 반영하기 위한 교과서 기술의 방향이나 맥락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This study addressed the problems of school education on ancient Korean history from the viewpoints of historians, history teachers and students. The result was that the findings of historians was not sufficiently reflected in the curriculum or the textbook and also was not well passed to students. Historians’ findings are mostly ended in their exclusive contents and are scarcely included in textbooks or compendiums. Ancient Korean history tends to be described from a nationalistic perspective. Nationalistic description has the merit that the historic view is shaped centered on the nation, but at the same time, it has shortcomings and risk factors. Specifically, it may push an ethnic community to be loyal to their country, but the loyalty to their country may be an ideology to oppress individuals or minority groups. Moreover, it can lead to exclusive nationalism. For ancient Korean history, there are a variety of views rather than historical evidences. Nevertheless, students have little opportunity for listening to such views and pondering of them. Instead, they are just taught the views regarded by many historians as reasonable. In the current textbooks of ancient Korean history, there are many cases where historians’ views are described as if they were true. Thus, students need to have more chances to learn various views and ponder of them. Many teachers are aware of issues about ancient Korean history in textbooks and practical education on it. The reason is that lots of historical findings have not been included in textbooks, or that it takes a long time to include them in textbooks. Accordingly, historians need to find common ground with one another regarding practical education on ancient Korean history. In particular, it is more important and urgent to include consensual or definitive contents in textbooks or compendiums. Furthermore, it is required to seek a way to diversify the fields and methodologies of historical studies. For instance, descriptive or contextual reconstitution is expected to enable the textbook to cover the findings of cultural history and lif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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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직후 한국사 교과서 발행과 삼국 통일에 관한 서술 검토

        김상훈(Kim, Sang-hoon)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18 한국고대사탐구 Vol.29 No.-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에 통일된 민족국가를 수립해야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있었다. 동시에 남한에 진주한 미군정은 공산주의 세력의 확산을 막고, 남한에 미국식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미군정은 역사·지리·공민을 통합한 사회생활과를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에 도입하였고, 교육을 미국식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교육과정에서 과목 명칭만 사회생활과로 바뀌었을 뿐 역사·지리·공민은 여전히 분리되어 운영되었고, 한국사·동양사·서양사 교과서는 각각 편찬되었다. 그리고 해방 직후 발행된 한국사 교재와 교과서는 대부분 민족을 주체로 민족의 영광과 발전에 대해 서술하였다. 즉, 외형적 측면에서 한국사를 사회생활과에 포함시키는 것은 성공하였지만, 사회생활과를 통해 미국식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미군정의 교육정책은 실현되지 못했다. 한국사 교과서는 한국인들이 한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삼국 통일에 대한 인식은 삼국 통일에 대한 교과서 서술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 교과서의 삼국 통일에 대한 서술이 해방 직후 발행된 한국사 교과서에서 대부분 등장하고 있다. 즉, 해방 이후 지금까지 삼국 통일에 대한 평가가 거의 변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삼국 통일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할 때이다. 고구려·백제·신라가 하나의 민족이었다는 대전제에서 벗어나 삼국을 각각 독립된 국가로 인식해야한다. 만들어진 민족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존재했던 고대국가로 삼국을 바라볼 때, 신라의 삼국 통일도 그에 부합하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in 1945, there was the social demand for the establishment of a unified nation state in the Korean peninsula. At the same time, U.S. Military Government in South Korea had the intention of preventing the spread of communism and establishing an American democratic nation in South Korea. The U.S. Military Government introduced Social Studies into which History, Geography, and Kongmin were incorporated to elementary and secondary school curriculum, and tried to employ education as an important means to establish an American democratic nation in South Korea. However, although the subject name changed to Social Studies, History, Geography, and Kongmin were still taught separately and Korean History, East-Asian History, and World History textbooks were published individually. As a whole, textbooks and teaching materials published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described the nation"s glory and prosperity. focusing on nation as a subject matter. That is, on the formal aspect, it was successful to the extent that Korean History was included in Social Studies, but the educational policy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to build an American democratic nation in South Korea was not realized. Korean History textbooks are important norms for Koreans to observe and understand their history. Consequently, it is no doubt that the description of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should have a significant influence on the perception of Koreans. The description of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in current Korean History textbooks can be seen in the Korean History textbooks published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That means the historical evaluation about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has been rarely changed since the Liberation of Korea up until now. Now is the time to see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in a new light with new perspectives and interpretations. Departing from the premise that Goguryeo, Baekje, and Silla are the same nations, the Three Kingdoms should be recognized as individual independent countries. When Three Kingdoms are seen not from the perspective of "manufactured" concept of nations, but from the perspective of ancient countries which existed as a historical fact, the Silla"s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has its own significance according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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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연구 60년의 동향과 과제

        문창로 한국고대사학회 2005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40

        This is a study on a trend and a task of ancient Korean history studies centering around its results of value for the time the restoration of independence to Korea. In 1950's, there were groped for new theme and methodology in the part of ancient history as positive history was established. Granting that it was evaluated simply, the attempts like this became the basis to test subjective recognition of Korean ancient history thereafter. That is to say, its main products in 1960's wiped out distorted history of ancient Korea by colonial history of Japanese imperialism. Which also meant the opportunity to extend the sphere of ancient history studies, to embody the subject for inquiry from then on. In 1970's, research activities of this part could be lively with the discussion about an issue, the formation of early states in ancient Korea. And it made a understanding of development process of ancient Korean society deepen. Since then, it was possible to systematize ancient Korean history with increase of learned men and variety themes, deepening of research contents. For the last 60 years after the restoration of independence, there has been lots of efforts constantly in the academic world of Korean ancient history. It was to conquer colonial history of Japanese imperialism, to systematize ancient Korean history. As a result, it was rapidly progressed in both quality and quantity with the accumulation of research activities throughout increase of learned men, excavation and extension of related materials, groping of new methodologies, a diversity approach to the matters etc. This is totally based on exertions of First-generation, that laid the foundations for Korean ancient history studies, and concrete products accumulated by Second, Third-generation, that succeeded to the former. 본고는 지난 60년 동안 이룩한 한국고대사 연구의 주요성과를 살펴서 그 동향과 과제를 정리한 글이다 . 光復과 함께 전개된 좌·우 대립의 정국과 분단의 고착화 과정에서 일제의 植民史學을 청산하고 고대사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기는 쉽지 않았다. 1950년대에 實證的 연구풍토가 정착되는 가운데 새로운 주제와 방법론의 모색은 비록 소박한 수준으로 평가되지만, 이후 한국고대사의 주체적인 인식을 모색하는 토대가 되었다. 곧 1960년대에 이루어진 연구성과는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된 한국고대의 歷史像을 불식시켰으며, 이후 고대사연구의 범위를 확대하고 연구주제를 구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1970년대에 古代國家의 形成問題가 제기되면서 연구활동을 촉진하였고, 고대사회의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다. 또한 고대의 사회구조 및 구성단위 문제와 함께, 小國 間의 연맹과 통합과정을 거쳐 성립한 고대국가의 支配體制가 논의되면서 삼국의 지배세력 동향, 중앙 및 지방 통치체제의 정비, 군사조직의 운영, 民에 대한 편제방식 등에 접근하여 고대사회에 대한 구조적인 인식이 가능하였다. 1980년대 이후 연구자의 증가, 다양한 주제와 연구내용의 심화로 고대사의 체계적 구성이 더욱 튼실해졌다. 실제로 民族의 형성문제와 함께 檀君 및 古朝鮮史와 관련된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고, 신라와 백제사에서 축적된 연구성과가 가야와 고구려사 연구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渤海 역시 귀속문제에서 점차 발해사 자체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으며, 이밖에 樂浪·帶方郡의 재검토, 夫餘史의 전개과정, 三韓의 성장과 대외관계, 영산강유역의 甕棺古墳과 그 축조세력을 둘러싼 논의 등을 통해 고대사의 지평을 넓혀갔다. 1990년대로 접어들어 祭儀 및 建國神話, 고대 女性史와 관련된 문제, 농업생산 및 交易에 관한 접근 등도 다양한 연구주제의 모색에 일조하였다. 나아가 '고대 동아시아와 백제', '古代 韓·中關係史의 새로운 조명', '동아시아에서의 낙랑' 등의 학술회의를 통해 고대 동아시아의 정치적 국제질서나 문화적 교류에 대한 이해를 더하였다. 이와 함께 고대와 중세의 시대구분 문제, 三國의 遷都 및 都城制, 불교사상사 연구의 심화, 촌락문서 및 통일신라의 토지제도에 대한 재검토, 장보고와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 해상활동, 나말여초 豪族의 동향과 후삼국의 성립, 필사본 「花郞世紀」를 둘러싼 진위논쟁 등의 문제도 부각되었다. 한편 考古學的 成果와 새로운 金石文의 發掘은 고대사연구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었다. 실제로 百濟本紀의 신빙성 확인, 백제문화사의 이해증진, 삼국의 중앙정치 및 점령지 통치방식, 민의 존재양태, 고구려-신라의 대외관계, 신라의 정치·경제·제도사 정리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처럼 광복이후 60년 동안 고대사학계는 식민사학의 폐해를 극복하고 고대사의 체계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새로운 방법론의 모색, 연구주제의 다양한 접근, 관련자료의 발굴 및 확대 등을 통해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연구성과가 크게 진전하였다. 이는 전적으로 어려운 여건을 딛고 고대사연구의 디딤돌을 마련했던 1세대 연구자들, 그리고 이들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2·3세대 연구자들의 노력과 구체적인 성과물의 축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 KCI등재

        한국 고대 역병에 대한 한의학적 접근

        김상현(Kim, Sang-Hyun) 한국고대사학회 2021 韓國古代史硏究 Vol.- No.102

        『삼국사기』에 기록된 한국 고대의 역병 기록을 고대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비교적 따뜻한 겨울 기후를 역병과 관련지어 기술한 기사가 많고, 여름의 가뭄을 역병과 관련지어 기술하기도 하였다. 이는 고대 동아시아 전통의학 서적에서 인식하던 역병의 원인과 맞닿아 있다. 기사에 역병에 대한 증후 관련 정보는 기술되어 있지 않아 현대의 특정 질환으로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주변 정보가 충분히 주어졌을 때 특정 질환으로 추정된 역병에 큰 오류가 없을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주변국의 경우와 다르게 상한이 패러다임화되지 않았고 역병에 대한 분과가 독립되어 발전하였다. 그 분과에서의 역병 인식이 한국 고대 역병 인식과 닿아있는데, 이것이 향후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흐름 속에서 한반도만의 독자성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추정해본다. In this study, the records of ancient Korean plagues in 『Samguksagi』 were reviewed from the perspective of ancient East Asian traditional medicine. There are many articles documented that the relatively warm winter climate is related to the plague, also some articles documented that summer drought is associated with plague. This is in line with the cause of the plague recognized in ancient East Asian traditional medicine books. It is difficult to define plague as a specific modern disease because articles don’t contain information about symptoms. When enough surrounding information is given, there will be no major errors in the plague estimated as a specific disease. On the Korean Peninsula, the Shanghan was not paradigmized ulike neighboring countries, and the division on the plague developed independently. It seems that the recognition of the plague in the division is in line with the recognition of the plague in ancient Korea. And it is expected that this will be the key to solving the clues of the uniqueness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flow of East Asian traditional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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