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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一溪 金哲埈

          李泳鎬(Lee Young-ho) 한국고대사학회 2009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53

          해방 후 한국사학계는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학을 건설하려는 의지로 충만하였다. “국내 역사학의 새로운 건설”을 기치로 역사학회가 창립되었고, 김철준은 그 주동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문헌고증학적 역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대사연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는 특히 인류학적 지식을 원용하여 한국고대사의 문제들을 해명하려 시도하였다. 그가 한국고대사연구에 남긴 최대의 업적은 한국고대사의 체계화였다. 1964년에 저술한 「한국고대국가발달사」는 해방 후 새로운 시각으로 쓴 한국 고대사 개설서였다. 동시에 해방 후 첫 세대 학자가 쓴 한국고대사 개설서의 시초였다. 이는 일제 식민주의 사관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고대국가의 형성과 발달과정을 이해하는 기준을 세웠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의 주요 연구들은 충분한 실증과 분석에 의한 결과가 아니었다. 직관적인 해석과 인류학 이론에 바탕을 둔 가설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방법의 참신성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이 오래 미치지 못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주장들은 연구자들의 비판에 직면하였다. 삶의 후반기 그는 대외적인 활동에 깊이 관여하였고, 학회 활동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해방 후 월남하여 거의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그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삶을 살다간 고독한 역사가였다. 그는 자신의 이력에 관한 글을 남기지 않았고, 가족사는 잘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한국고대사학의 개척기, 그는 연구의 지평을 넓히려 애썼던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였다. 해방 후 한국고대사학계가 이룬 많은 연구 성과의 결실은 그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된 것이 적지 않았다. 우리는 이러한 선학이 있음으로 해서 역사학의 방법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한국고대사의 체계화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또한 실증에 앞서 선험적 이론에 입각한 가설적인 연구는 역사의 실제와 거리가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After liberation in 1945, the Korean learned circles of history were full of willingness to liquidate vestiges of Japanese colonial rule and to establish new historical study. As a result, the Korean Historical Association was formed under the banner of "new establishment of Korean historical study," and Kim Chol-choon took the lead of it. From early times on, Kim sought ways to overcome the limits of the study of history based on bibliographical study and extend its scope. In particular, he tried to explicate difficult problems in ancient Korean history by using the anthropological knowledge and methodology. The greatest academic achievement that Kim left was the systematization of ancient Korean history. His work entitled History of Development of Ancient Korean States, appeared in 1964, was an outline of ancient Korean history, which was written in a new viewpoint after liberation. It was also the first work of the sort written by the first-generation Korean historian after liberation. The book is important, since it established a standard to understand formation and growth of Korea’s ancient states, breaking from the existing Japanese colonial view of history. But Kim’s major works were not a product of sufficient corroborative evidence and analyses. Since they appeared as hypotheses based on intuitive interpretations and anthropological theories, despite methodological novelty their influence was not sustaining. As time went by, his contentions were subject to criticism on the part of other scholars. In the latter part of his life, he deeply engaged in non-scholastic activities, and therefore he was alienated from the academic world. Kim Chol-choon, who moved south as a North Korean refugee after liberation and remained single almost for life, was a lonely historian, leading a dramatic life. He did not leave any writing on his own personal record, and therefore his family history is clearly brought to light. He was obviously a pioneer who tried to broaden the scope of Korean history in the initial stage of the study of ancient Korean history. In fact, a great deal of achievements in ancient Korean history realized after liberation have owed much to his raising of questions. The existence of pioneer scholars such as Kim Chol-choon leads us to broaden epistemological understanding of history and establish a standard to systematize ancient Korean history. Also, it is obvious that hypothetical studies based on a priori theories rather than actual proofs do not substantiate actual historical fa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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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대사의 계보학

          김기봉(Kim Gi-bong) 한국고대사학회 2008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52

          역사의 3요소는 시간, 공간, 인간이다. 한국사에서 이 삼요소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고대사다. 한국 고대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한국사의 시작은 언제며, 한국사의 영역은 어디고 한국인의 조상은 누구인가가 정해진다. 시간, 공간, 인간의 조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국 고대사의 구성과 체계가 달라진다. 한국 고대사의 계보학이란 삼국사기 이래의 正史로부터 근대 ‘국사’로 이어지는 한국사학사에서 고대사를 구성하는 방식의 변화에 대한 메타역사적 성찰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탈근대 역사이론은 과거에 대한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역사로 서술됨으로써 과거가 존재했던 것으로 인식된다는 전제 아래 ‘과거로서 역사(thehistory-as-past)’가 아니라 ‘역사로서 과거’(the-past-as-history)로의 ‘인식론적 전환(epistemological turn)’을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없었던 시대의 역사까지를 포괄해서 한국고대사를 쓰는 것은 이 같은 ‘인식론적 전환’을 이미 성취한 셈이다. 사실상 ‘국사’라는 역사서술 패러다임도 이 같은 ‘인식론적 전환’에 입각해서 성립했다. 다시 말해 한국이라는 과거가 있어서 한국사라는 ‘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라는 ‘국사’가 한국이라는 과거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국사’ 패러다임에 입각한 한국 고대사의 체계는 오늘날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수정돼야 한다. 첫째로 이제는 민족사가 아니라 문명 교섭사로 방향전환해야 한다. ‘국사’에 의해 망각된 고대 동아시아 역사세계를 복원하는 동아시아사를 서술하는 것이 문명 교섭사의 출발점이다. 둘째로 한국사회가 앞으로 점점 더 다문화사회로 변하고 있다면, 이제 한국인이란 누구인가의 정체성을 단일민족과 같은 혈통을 코드로 해서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서 재정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컨대 弘益人間과 같은 민족 고유의 가치를 인류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킬 수 있는 한국사 서술이 나와야 한다. 이 같은 新韓國人 정체성 형성 프로젝트의 시작에 한국 고대사가 있다. 나는 한국 고대사학자들이 어떤 역사를 쓰느냐는 바로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The three elements of history are time, space and human beings. In Korean history, it is especially ancient history which can define these three elements. The questions about when Korean history starts, what the space of Korean history is, and who the ancestors of Koreans are, can be answered based upon how one writes ancient Korean history. The composition and system of ancient Korean history depends on how time, space and human beings are put together. The genealogy of ancient Korean history is the meta-historical reflection upon the change in reconstructing ancient history in Korean historiography from ‘the canonical history(正史)’ since the “Three Kingdom's history” to the “National History(國史).” Presuming that history is not written about the past, but instead the past is perceived to have existed only by being written as history, postmodern history theory suggests an “epistemological turn” from “the-history-as-past” to “the-past-as-history.” This art of epistemological turn is already achieved when the Korean ancient history includes even the periods in which the identity as Korean nation was not formed yet. Actually, the paradigm of “National History” has set its foundation upon this epistemological turn. In other words, writing the national history of Korea was possible not because of the existence of the past of Korea, but instead, because the national history of Korea created the past of Korea. Now, the system of ancient Korean history needs to be corrected for two reasons. Firstly, we should turn around towards civilizational interchange history(=transfer history) from National History. It can begin with restoring ancient East-Asian history which was erased by National History. Secondly, Koreans need to redefine the Korean identity not by the code of blood, but based upon universal human value, in this time that Korean society is more and more becoming multi-cultural. This redefinition demands a historiography which is able to transform such a national value as “Hongik human being” into a universal human value. Ancient Korean history is standing in the first row of this project to form a new Korean identity. Our future depends on what kind of history that the ancient Korean historians 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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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대사의 대중화와 대중문화화

          최광식(Choe, Kwang-Shik) 한국고대사학회 2016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84

          정부는 2015년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2018년부터 교육 현장에서 역사교육 내용의 획일화된 편찬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한편 유사역사학자들 중에는『환단고기』 등 위서를 원사료로 활용하여 한국고대사의 위대함을 보여 준다며 대중들의 역사인식을 혼란시키고 있다.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은 한국고대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복원하려는 노력과 함께 한국사 인식을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는 역사인식을 학생들과 대중들에게 보여줄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서 고대사 사료 데이터베이스를 제대로 구축하고, 고고학 자료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하여 고대사와 고고학 연구자들이 보다 풍부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고대사 교육이 학교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다양한 시각의 ‘대안 교과서’나 ‘개설서’ 및 ‘지도’들을 제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의 사례처럼 많은 박물관들이 한국사의 체계적 인식을 도울 수 있는 통사적 전시를 추진하도록 하는데 역사학자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중들이 한국고대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하여 한국고대사에 대해 흥미를 갖도록 하는 저서들을 집필 출판하는데 참여하여 한국고대사의 대중화를 이루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대중들이 디지털과 모바일 시대에 영화나 드라마 등 문화콘텐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므로 문화콘텐츠 종사자들과 소통과 협력을 통해 한국고대사의 연구결과물을 문화콘텐츠화하여 대중문화를 질적으로 발전시킨다면 ‘한류’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제고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In 2015, the government announced a plan to standardize the Korean history textbooks, and attempts unified publication of the materials of history education in education field from 2018. Meanwhile, some pseudo-historians, using Hwantankogi (桓檀古記) as a primary source, is disturbing history awareness of the public, saying they are to show ‘greatness’ of the ancient Korean History. The Korean history scholars need to put more effort in rebuilding the aspects of the ancient Korean society, and have a responsibility to introduce the public and students the historical awareness to interpret the Korean history in various perspectives. For this purpose, it is necessary to establish a proper database for historical sources related to the ancient Korea, while providing ample sources for archaeologists through an archaeological source database. Plus, publishing ‘Alternative Textbooks’, ‘general history books’ and ‘maps’ written in various perspectives are needed, in order to set a proper education system of ancient Korean history in schools. Additionally, Historians are encouraged to actively participate in carrying forward museums’ exhibition for the general history of Korea, like National Museum of Korea, which will help methodical understanding in the Korean history. It is also required for historians to join in publishing books that will draw the public’s attention to the ancient Korean history, using ‘story-telling’ method for easy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and supporting the popularization of the ancient Korean history. Considering the public’s high interest in cultural contents such as movies and TV dramas in this digital and mobile era, it is also important to communicate and cooperative with the practicians in the cultural contents business to convert research achievements to cultural contents. Through this cooperation, the historians will have an important role to improve the quality of the public culture, which will ultimately take the ‘Korean Wave’ to the next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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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대 질병연구의 궤적과 과제

          이현숙(Lee, Hyun-Sook) 한국고대사학회 2021 韓國古代史硏究 Vol.- No.102

          이 글은 한국고대 의학 및 질병의 역사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한국고대 질병연구는 한국 질병의 기원을 규명하는 작업이다. 한국고대 의학 및 질병사 연구는 1960년대 미키 사카에와 김두종에 의해 한국의학사라는 통사의 서두로서 이루어졌다. 21세기 들어 신진연구자들이 새롭게 유입됨에 따라 매우 다양한 방식의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필자는 2002년 『신라의학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5세기와 7세기 전쟁의 시기에 군사의학과 불교의학이 발달하였음을 규명하고, 8~9세기가 전염병 특히 두창의 시대라는 것을 주목해왔다. 최근 연구성과를 분석해본 결과 첫째 학제간의 협업들이 이루어졌으며, 둘째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으며, 셋째 기존의 연구가 더욱 정치해졌으며, 넷째 기존 연구의 오류들이 정정되었다. 그러나 한국 전근대 의학 및 질병사에서 볼 때 여전히 고대 분야의 연구성과와 연구자가 적다. 이는 의학사 및 질병사가 아직 한국고대사의 한 장르로 자리 잡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전염병이 한 사회를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한국고대 사회가 경험하였던 혹독한 두창의 시대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This article aims to explore the researches on the history of ancient Korean medicine and diseases. The study of ancient diseases in Korea is an attempt to determine the origin of diseases in Korea. The history of ancient Korean medicine and disease had been researched and introduced as its origin by two medical doctors, Kim Doo-jong(金斗鐘) and Miki Sakae(三木榮) since 1960’s. From the 21st century, newly scholars made researches in diverse ways. Since 2002 of my doctoral thesis, I have wrote many articles about ancient medicine and diseases. I pointed out the 5th and 7th century as the momentum of development from military medicine and Buddhist medicine. The smallpox was introduced from Tang China’s troops in the middle of the 7th century during the Silla’s unification war. It provided many motivations to Unified Silla’s medicine. Silla established the national medical school in 692 and it could be a starting point of medieval medicine in Korea. Because they adopted the Chinese Tang’s curriculums and so was the Japan. It was the beginning of the East Asian medicine world, sharing with the same text books. I categorized the researches of the 21st century in four. The first was the interdisciplinary collaboration, such as the archaeologist and Korean traditional medical doctor, as well as the DNA analysts and anthropologists. The second, new data have been discovered from the document type wooden tablet, Chinese and Japanese old documents. The third, it has become more advanced than before. The fourth, the errors in existing researches have been corrected by new researches. However, in the pre-modern history of medicine and diseases in Korea, the ancient fields have been the less researches and the less researchers than others. This is because the history of medicine and disease have not yet obtained a genre of Korean ancient history. Through the Corona 19 pandemic, we realized that the infectious diseases could fundamentally shake up a society. Now it is an important task to identify the harsh era of smallpox experienced by the ancient Korean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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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고대 문화의 일본전파와 대마도

          정효운(鄭孝雲) 한국고대사학회 2007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48

          오늘날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경의 섬이기도 한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대한해협에 위치한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고대로부터 대륙과 한반도의 정치, 경제, 문화의 교량적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특히, 전근대 시대에 있어서의 대마도는 해상 교통로상의 중요한 기항지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 교류의 중계지로서 존재하였다. 그런데 대마도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대마도가 가지고 있는 문화교류사적인 측면과 정치·외교사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고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교류에 있어서 대마도가 어떤 역할을 하였던가, 그리고 고대 한·일 양국의 지배층은 대마도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대마도는 지정학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 위치한 관계로 선사시대 이래 양국 문물 교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도작문화와 철기문화 등 고대국가 형성에 필요한 선진 문물이 일본열도로 전파되어 갔다. 역사시대에 들어서는 삼한과 삼국의 정치세력뿐만이 아니라 중국대륙의 정치세력들과의 정치, 문화의 교류에 있어서도 대마도가 해상 항로의 주요 기항지로 이용되었다. 한편, 대마도에 대한 동아시아 각국의 인식은 시기와 당시 정세에 따라 변화되었다. 전반적으로 볼 때, 한반도 남부에 가야가 성립하고 난 이후부터 대마도는 가야 및 왜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역사를 영위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7세기 중반의 백강전투 이전의 단계에서는 왜국의 정치, 문화 교류의 중계 역할을 담당하던 섬에서, 백강 전투 이후의 동아시아적 위기 정세를 계기로 하여 점차 大和정권의 국경의 섬으로 정착되어 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마도는 문화교류사적 측면에서 볼 때 고대 한국과 대륙 문화의 기항지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의 수용지임과 동시에 발신지의 역할을 하였다고 보아진다. 또한 정치교류사적 측면에서 볼 때 대마도는 고대 한국과 일본의 국경의 섬이었으며, 한반도 지역을 둘러싼 동아시아적 군사 긴장내지 전쟁에의 개입이나 침략의 시기에 있어서는 그 전초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대마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근세와 근대기에 있어서도 한·일 양국의 선린우호를 매개하기도 하고 일본열도 정치세력의 대륙 진출의 출선기관지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결국, 대마도는 한국 측에서 본다면 문화를 전달하는 출구였지만, 일본 측의 입장에서 본다면 문화를 받아들이는 입구임과 동시에 한반도와 대륙 진출의 창구였던 것이다. 이러한 양국의 문화적, 정치적 필요성의 인식의 차이가 대마도의 귀속 욕구의 차이로 나타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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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의 한국고대사 교육 현황과 교과서 서술의 올바른 방향

          송호정(Song, ho-jung) 한국고대사학회 2016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84

          학교 현장에서의 한국고대사 교육 문제를 전문 연구자와 교사, 그리고 학생의 측면에서 살펴본 결과 연구자의 연구 성과가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 잘 반영되어 학생들에게 교육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문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는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논문으로 그치고 교과서나 개설서에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한국 고대사 서술은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정리되어 있다. 역사의 민족주의적 서술은 우리 역사를 중심에 놓고 이해하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결함과 위험 요소도 가지고 있다. 즉 우리 민족체에 대한 충성 의무를 앞세움으로써 내적으로는 개인이나 소수 집단에 대한 억압 이데올로기로 사용되고 구체적으로는 배타적 국수주의로 발전할 위험성도 있다. 한편, 한국 고대사 내용은 증거가 부족하고 다양한 설이 많은데, 아이들에게 다양한 설에 대해 이야기해주거나 생각해보게 하지 않고 많은 학자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설을 사실인 것으로 가르친다. 현행 교과서 고대사 서술에는 많은 학자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설을 하나의 사실처럼 서술해놓은 부분이 많다. 이에 대해 다양한 설을 제시해주고 학생들이 생각해보게끔 하는 부분이 많았으면 좋겠다. 많은 교사들이 교과서 속 한국 고대사 서술과 역사교육 실천 과정에서 여러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그간 학계에서 연구되었던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교과서 서술에 반영되지 않거나 늦게 반영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학교에서의 고대사교육 실천과 관련해 공통의 견해를 마련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미 학계에서 합의된 내용이나 정리된 내용들을 교과서나 개설서에 반영토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 나아가 연구 분야 및 방법론상의 다양화를 모색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 예를 들면 문화사나 일상 생활사에 대한 연구 성과를 교과서에 반영하기 위한 교과서 기술의 방향이나 맥락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This study addressed the problems of school education on ancient Korean history from the viewpoints of historians, history teachers and students. The result was that the findings of historians was not sufficiently reflected in the curriculum or the textbook and also was not well passed to students. Historians’ findings are mostly ended in their exclusive contents and are scarcely included in textbooks or compendiums. Ancient Korean history tends to be described from a nationalistic perspective. Nationalistic description has the merit that the historic view is shaped centered on the nation, but at the same time, it has shortcomings and risk factors. Specifically, it may push an ethnic community to be loyal to their country, but the loyalty to their country may be an ideology to oppress individuals or minority groups. Moreover, it can lead to exclusive nationalism. For ancient Korean history, there are a variety of views rather than historical evidences. Nevertheless, students have little opportunity for listening to such views and pondering of them. Instead, they are just taught the views regarded by many historians as reasonable. In the current textbooks of ancient Korean history, there are many cases where historians’ views are described as if they were true. Thus, students need to have more chances to learn various views and ponder of them. Many teachers are aware of issues about ancient Korean history in textbooks and practical education on it. The reason is that lots of historical findings have not been included in textbooks, or that it takes a long time to include them in textbooks. Accordingly, historians need to find common ground with one another regarding practical education on ancient Korean history. In particular, it is more important and urgent to include consensual or definitive contents in textbooks or compendiums. Furthermore, it is required to seek a way to diversify the fields and methodologies of historical studies. For instance, descriptive or contextual reconstitution is expected to enable the textbook to cover the findings of cultural history and lif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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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先史와 古代 53輯 학회소식

          한국고대학회 한국고대학회 2017 先史와 古代 Vol.- No.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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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紅葉』과 일본인들의 한국문화 인식과정 검토

          車順喆(Cha Soon-Chul) 한국고대사탐구학회 2012 한국고대사탐구 Vol.11 No.-

          『한홍엽』은 세키노 타다시를 비롯하여 당시 한국고적조사를 담당했던 야쓰이 세이이치, 쿠리야마 이치 등이 한국의 문화유적을 조사하고 느낀 여러 가지 생각을 강연한 내용을 활자화한 것으로,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생각이 들어나 있다. 세키노 타다시는 『한홍엽』에서 한국미술사의 시기구분을 시도하였고, 이를 통해서 한국 문화가 역동적이기보다는 타율성에 지배를 받았고, 한국 고유문화의 빈곤함을 바로 쇠락한 문명의 상징으로 보았다. 결국, 이 책을 통해서 일본 연구자들이 고적조사를 진행하면서 가졌던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는데, 이는 당시 한국인들에게 제국주의 역사관을 고착화시키기 위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키노가 한국 문화사를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하고, 각 시기별로 중국의 여러 왕조와의 관계를 비교하면서 영향관계를 살핀 모습은 결국 중국미술과의 교류관계를 중심에 둔 채, 동아시아 문화사를 바라보았던 당시 연구자들의 시각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결국 『한홍엽』에 나타난 세키노의 인식은 한국 고대문화의 기원을 중국보다는 일본과 연계시키면서 그 동질성을 찾은 데에서 그 의미가 있으며, 이후 한국 미술사에서 통일신라미술을 황금기로 강조하던 모습의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Hanhongyeop” is the printed version of lectures given to the general public by three people: Sekino Tadashi, Yaiichi Seiichi, and Kuriyama Shunichi on what they felt during the survey of historical remains of Korea. This book contains 3 pieces of writings that show the thoughts of Japanese researchers about Korean cultural assets. Sekino Tadashi attempted to divide Korean art history into different periods through “Hanhongyeop”. He saw Korean culture as the culture dominated by heteronomy rather than as a dynamic culture and saw the lack of unique Korean culture as the symbol of decaying civilization. Japanese researchers ultimately attempted to perpetuate the colonial view of history upon Korean people based on imperialism through this book. Sekino Tadashi divided the history of Korean culture into prehistorical era and historial era and examined the influence of various dynasties of China in each period. He found Korean and Japanese cultures through the exchange with China, and this indicates the view of the researchers that studied East Asian culture then. Eventually, Sekino Tadashi’s idea that appears in “Hanhongyeop” finds homogeneity by associating the origin of ancient Korean culture with Japan rather than China and this is the reason he emphasized the art of the Unified Silla Dynasty as the golden age in the Korean art history.

        • KCI등재

          체험형 역사콘텐츠와 한국고대사

          최희수(Choi, Hee-Soo) 한국고대사학회 2016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84

          최근 한국고대사와 관련된 일반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려스럽기도 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관심이 역사학계의 연구성과를 바르게 받아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계가 대중들과 소통하는 것은 매우 긴요한 일이다. 한국고대사 학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매우 바람직하다. 대중과의 소통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콘텐츠이다. 그 가운데에서 대중들의 역사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역사콘텐츠임은 물론이다. 역사콘텐츠는 역사를 소재로 하거나, 역사를 주제로 삼은 콘텐츠를 의미한다. 역사콘텐츠는 콘텐츠가 유행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부터 급격히 발달해 왔다. 역사드라마, 역사영화 등이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역사콘텐츠들이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해 왔다. 따라서 역사학과 콘텐츠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이 절실하다. 역사콘텐츠는 우선 역사지식을 집적하는데서 비롯되었다. 민간주도의 역사자료 데이터베이스가 선행되었고, 뒤이어 국가주도의 지식정보 집적 사업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반대중들이 접근하기에는 많은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 때문에 새롭게 대중들에게 다가설수 있는 콘텐츠들이 기획되고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일반대중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서비스를 개선하고, 콘텐츠를 다시 가공하는 사업들이 진행된 것이다. 역사학의 목표는 대중들의 역사적 사고력을 함양시켜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하게 만드는데 있다. 그 가운데 콘텐츠는 역사적 상상력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사료상의 공백으로 인해 생기는 역사상의 빈 공간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채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역사적 상상력에 기여할 수 있는 콘텐츠는 ICT와 결합된 체험형 콘텐츠이다. 대표적인 기술이 가상현실, 증강현실이다. 그것은 인간의 체험영역을 확장시킴으로써 우리가 접할 수 없었던 과거시대의 역사상을 재연하고, 감정이입을 시킬 수 있도록 해준다. 이같은 방식을 디지털세계에서는 메타버스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메타버스는 증강현실과 가상세계, 거울세계, 라이프로깅의 4대 영역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들을 기반으로 체험콘텐츠가 제작되면 과거 역사상에 대한 대중들의 구체적 경험을 구현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역사적 사고력을 제고시킬 수 있다. 따라서 역사학계에서 ICT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콘텐츠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또한 역사콘텐츠에 대한 비판도 역사적 사고력에 필요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그 기준을 정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역사학은 학계의 성과를 콘텐츠에 반영하고, 콘텐츠는 대중들의 역사적 상상력을 제고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In recent years the general public has increased interest related to ancient history. On the one hand it is good, but, on the other hand, is a worried thing. Because it is not accepted properly research the history of academia. So it is a very critical one to communicate with the public in the history of academia. Such attempts that scholars communicate with the public in various ways are highly desirable. Content is exercised enormous influence in the communication with the public. Of course, it is an historical content, as well as being profoundly affect public perceptions of history. Historical content means content include history as a material, or history as a subject. Historical content has been developed rapidly since the 1990s. Historical dramas, historical movie, it started to exert greater influence on the public. However, academics have complained these contents failed to reflect historical facts faithfully.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find ways to win-win between the content and history. Historical contents were first derived from the accumulation of historical knowledge. The private sector was leading database of historical documents, subsequently it was pursued state-led projects accumulated knowledge and information. But there were, despite the many achievements, has a lot of limitation in the general public to access. Therefore, content that appeal to the masses began to have a new development. It was carried out to improve and re-processed content services to facilitate the general public to understand. The goal of history is making the proper historical recognition of the masses by cultivating historical thinking. Among them has the content closely related to the historical imagination. The empty space in the history caused by space of the historical documents that will need to fill in the historical imagination. Content that can contribute to the historical imagination is combined with experimetial content with ICT. Typical technology is virtual reality, augmented reality. It is allows us to reproduce the history of a bygone era could not access, and empathy by expanding the area of human experience. Such a method is described the concept of meta-bus in the digital world. Metaverse is divided into augmented reality and virtual worlds, mirror world, life logging area. If experimetial these product based on these area, it can implement detail experience of the public about the history of the past, also can enhance the historical thinking. Therefore, academic history should be actively involved in historical content production based on an understanding of ICT technology. In addition, the history academics shall define the criteria by considering the elements needed for historical thinking about criticism of the historical content. Thereby, the academic history reflects the academic achievement in the content, and the content should contribute to enhancing the historical imagination of the public.

        • KCI등재

          集安 高句麗碑의 拓本과 判讀

          尹龍九 한국고대사학회 2013 韓國古代史硏究 Vol.0 No.70

          2013년 1월 4日 『中國文物報』를 통해 새로 발견된 「集安 高句麗碑」가 소개 된지도 半年 가까이 지났다. 廣開土王碑와 中原 高句麗碑에 이은 4~5세기 高句麗史硏究에 새로운 전기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여전히 기초적인 문제에 봉착해 있다. 集安市博物館의 노력으로 종합조사보고서라 할 『集安高句麗碑』가 간행되었고, 이에 참여하지 않았던 연구자들이 『東北史地』(2013년 3기)를 통해 새로운 견해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개된 비석은 碑面의 관찰이 불가능한 상태이고, 중국 측 판독을 이끌어 낸 주요 拓本은 기초적인 書誌事項조차 정리되어 있지 못한 형편이다. 현재로선 중국 측 연구자가 가공하여 제공한 자료를 이해하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하지만 한국고대사학회를 비롯하여 동북아역사재단과 고구려발해학회 등의 노력으로 중국 측 연구 성과를 이해하고 나름의 시각을 정립하고자 노력하여 왔다. 지난 4월 13일 개최된 한국고대사학회 주최의 학술회의(「신발견 集安高句麗碑 종합검토」)는 새로운 자료에 대한 국내학계의 연구역량이 결집된 결과였다. 집안 고구려비의 조사연구를 주도한 耿鐵華?孫仁杰 등 연구자까지 참여하여 비석발견 된 후 개최된 첫 번째 공식 학술회의였다. 그럼에도 碑文의 判讀, 이를 위한 拓本과 寫眞 등 연구의 기초적인 자료의 열람이나 공유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碑文 연구의 특성상 판독과 내용검토는 늘 양립하는 것이지만, 판독을 위한 기초적인 논의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다고 하겠다. 본고에서는 碑面의 상태, 탁본의 현황과 각 탁본의 자료적 성격, 비문의 記載方式 및 기왕의 판독이 지니는 문제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두 차례 진행된 한국고대사학회 주최의 판독회 결과를 바탕으로 비문의 판독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원 비석을 실견하고, 판독의 底本이 된 탁본을 비교한 후에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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