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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판소리에 대한 엇갈린 인식과 대중화의 향방

          이태화 ( Tae Hwa Lee ) 판소리학회 2013 판소리연구 Vol.0 No.35

          본고를 작성하게 된 취지는 ``글로벌 시대``의 판소리에게 주어진 과제와 전망을 검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글로벌 시대``보다 ``멀티미디어 시대``라는 개념을 먼저 떠올렸다. 그 이유는 판소리의 세계적 수요를 논하기 이전에, 판소리가 현대의 국내 대중에게 보다 친근해질 수 있는 방도를 먼저 궁구해야 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현대 판소리의 연행 환경을 집약적으로 설명할 만한 개념을 멀티미디어라 본 것이다. 판소리의 세계적 경쟁력이나 대중성에 대한 그간의 평가는 다소 거칠고 과장된 감이 있었다. 국내외에서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있으나, 그것이 대중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님에도 단지 그 위상에만 취한 감이 없지 않다. 신영희와 박동진, 영화 <서편제> 등을 통해 판소리가 대중과 가까워졌다고도 하지만, 아직도 판소리를 전통음악의 다른 가창 장르들과 정확히 구분하여 인식하는 대중조차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고에서는 판소리와 판소리 콘텐츠의 대중화를 위한 방안을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제시해보았다. 우선 판소리의 대중화 방안으로는 개방적인 콘텐츠라는 장점을 활용하고, 공연 공간의 최적화를 이루어, 현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창극의 대중화를 위한 방안으로는 서사적 단순성을 극복하고, 고전의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에 변화를 기할 것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무형문화재 제도 운용의 유연화와 함께 연창자들의 활동 기반이 일찍부터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런데 필자는 정작 멀티미디어 환경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구체적으로 전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현장론적 검증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판소리가 아직은 멀티미디어 환경 전반에 전방위적으로 진입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야 할 단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판소리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실험과 실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공공기관이나 거대 미디어 생산자들의 지원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하며, 명창급 연창자들이 실험적 연행의 전면에 나설 필요가 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전통문화를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교육적 기반으로 마련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I aimed at examining the challenges and prospects of Pansori given to "Global Era" in this paper. The reason why I took note of "the Age of Multimedia" instead of "Global Era" is, I thought, that there is necessity to find out a way how Pansori can be a more familiar art form to the modern domestic public, before discussing the global demand of Pansori. I think "Multimedia" can be proposed as the most intensive concept for illustrating the environmental status of modern Pansori performances. It seems to me that Pansori has been evaluated somewhat exaggeratedly as well as uncarefully in terms of it`s global competitiveness and popularity. It was designated as an important cultural heritage at home and abroad, but it is likely that this fact depends on not the popularity but the honor of Pansori. One might say that Pasori has been appealed successfully to the masses` taste through those works, such as Shin Yeong-hee, Park Dong-jin, and <Seo-pyeon-je(西便制)>, but regardless of this tendency, it is not the common perception which distinguishes Pansori from other traditional singing art forms exactly. Hence, I suggested the plans for the popularization of the content of Pansori and Pansori itself as follows; Firstly, Pansori should take advantage of it`s strong point, "flexible content." and should strive to communicate with the modern masses through to optimize the performance spaces. Secondly, the creators of Chang-geuk(唱劇) have to do their best to avoid the simplicity of the narrative, and should make variations the ways of conveying it`s classical value. Finally, I emphasized that not only the system of intangible cultural assets has to be operated flexibly, but also the infrastructure of Pansori artists should be officially guaranteed from their youth. Frankly, I feel like pinpointing that I could not specifically actualize the ideas about how to take advantage of the multimedia environment for the popularization of Pansori. It is because the field theory cannot be verified with ease in each case. It can be said that, however, Pansori is now in the process that must continue to attempt to enter in all directions throughout the multimedia environment. In order to make it possible, experiments and practices of all the people involved in the field of Pansori are required. Additionally, institutional support of the public authorities and the cooperation of a mega-media producers need to be actualized systematically, and excellent artists also need to experiment actively some new styled works. Finally, it is important as well that the educational infrastructure has to be secured for generalization of the traditional culture since a nation`s childhood.

        • KCI등재

          판소리에서의 무속적 사유체계와 전통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김현주 판소리학회 2015 판소리연구 Vol.0 No.40

          It aims to understand how the shamanistic perspective in Pansori appears, and how it makes the traditional aesthetic paradigm of Pansori a change. The origin of Pansori singer is known as shaman or shaman family. The best valuable model of the men of shaman family is to be good singer of Pansori. The collective organization[jaeinchong(才人廳)] of shaman family themselves execute performative workshop, deal with patrons of government office and civilian for their crafts, and counter action for their rights and interests. Their shamanistic tendency in nature should be penetrated into the work of Pansori in several forms. The music style of Pansori has a lot of shamanistic property in factors like as sound structure, melody, rhythm, and vocal character etc. The speech words of Pansori has shamanistic property in factors like as expressive manner or discourse with metrical arrangement of origin history of objects and itinerary of Gods. The performance of Pansori has shamanistic property in factors like as behavioral context of performer, accompanying percussion instrument, communicative context between performer with audience, and emotional moving context between performer with audience. The shamanistic perspective in Pansori changed the traditional aesthetic character of Pansori. The traditional aesthetic character of classical performative arts and crafts were dignity, elegance, moderation, calmness etc. But the aesthetic character of Pansori was changed into immoderated violence, deviated interruption, freely adaptation to circumstances by shamanistic perspective. These property are melted into the traditional aesthetic character of Pansori. The shamanistic perspective considerably involve with characteristics of Pansori aesthetics, further has meaningful influence with the formation of Korean general aesthetics. 이 글은 판소리에 내재된 무속적 인자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러한 인자들이 무속의 어떤 사유체계에서 비롯되었으며, 그것이 판소리의 어떤 미학적 자질을 형성하게 하고 있는지를 탐구한 것이다. 판소리에 와서 전통미학의 구조가 균열되고 재구성되는데, 그러한 균열과 재구성에 있어 무엇보다도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무속적 사유체계라고 보았다. 이 글은 무속적 사유체계가 판소리의 어떤 측면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고찰하고, 이를 통해 그것이 판소리의 전통미학적 패러다임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그 기능과 의미를 분석했다. 판소리 창자의 태생적 기반이 무당과 관계된다는 점은 두루 확인된다. 그러나 판소리 창자가 무당과 관련된다는 점만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사회문화적 생태사를 구성해보는 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판소리 광대가 되는 것이 무당집 남자가 지향해야 할 최고 가치였던 시절이 있었고, 신청과 재인청에서의 조직적인 연희 훈련이 나중 판소리 연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관민에게 연희를 팔 경우 재인광대들의 집단조직이 상당히 유기적으로 대응했고, 그들은 나름의 권익을 위해 조직적으로 활동했다. 판소리 광대들의 출신과 무속적 연희 훈련, 무속집단의 조직적 활동 등을 통해 볼 때 그들의 무속 취향은 판소리에 상당 부분 수용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판단된다. 판소리 음악 속에는 무속적인 인자가 내재되어 있다. 굿의 음악인 시나위는 그 음조직과 선율형이 판소리에서 불려지는 계면조와 상당히 흡사한데, 육자배기토리의 시나위권 음악은 판소리의 음조직이나 장단, 성음과 목구성 등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판소리 사설 속에는 무속적인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비념이나 고사 등의 소재적 차원을 넘어 사설의 언어적 표현 방식 내지는 담화 방식의 측면에서 보면, 신의 근원내력이라든지 우주의 근원내력이라든지 하는 근원내력과 비슷한 내력 사설이 판소리에 많고, 근원내력과 비슷한 성질의 노정기도 판소리의 담화 방식의 하나이다. 사물 나열의 담화 방식은 근본적으로 굿의 담화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데, 판소리 사설의 많은 부분이 바로 사물들을 병렬적으로 되풀이하는 담화 방식인 것이다. 판소리 연행 방식 또한 굿의 연행 체계와 비슷하다. 무당이 굿을 주재할 때 발생하는 여러 연행적 맥락들은 판소리에서도 흡사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연행자의 동작이나 표정과 같은 행위적인 맥락은 물론이고 반주 악기들이 갖는 연행과의 관계적 맥락, 연행자와 청관중과의 소통적 맥락, 연행 중에 연행자와 청관중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서 또는 감정의 움직임의 맥락 등이다. 유학의 영향 하에서 형성된 전통미학적 패러다임은 아정함을 지향하는 것인데, 판소리에서는 이러한 아정한 미학적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판소리에 내재되어 있는 무절제한 격동성, 일탈적인 엇지름, 자유자재의 응변성 등의 자질들은 무속적 사유체계에서 전입된 미학적 자질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판소리의 미학적 성격은 복합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절제 속에서 무절제를 지향하는 속성이 있고, 규범 속의 일탈을 지향하는 속성도 있으며, 규격 내지 정형 속에서 무정형과 응변을 지향하는 속성도 들어 있는 것이다. 무속적 사유체계는 판소리의 미학적 성격을 형성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나아가 ...

        • KCI등재

          일반논문 : 다블뤼 주교의 저술에 나타난 1860년 무렵 판소리의 모습

          이유진 ( Yu Jin Yi ) 판소리학회 2011 판소리연구 Vol.0 No.32

          본 논문의 목적은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던 판소리사 관련 자료를 소개하고, 이 자료를 통해 확인되는 몇 가지 의미 있는 사실들을 짚어 보는 데 있다. 소개할 자료는 프랑스인 선교사제로서 1845년 조선에 입국해 1866년 새남터에서 순교할 때까지 약 21년간 조선에서 활동했던 다블뤼(Daveluy, 1818-1866) 주교의 기록이다. 이 기록은 다블뤼 주교의 저술들 중 하나인 Notes pour l`introduction a l`histoire de Coree(조선사 입문 노트)에서 발견된다. 불어로 작성된 이 저술에 조선의 과거제도(科擧制度)에 대해 서술한 부분과 조선의 민간 연희(演戱)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 각각 판소리에 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Notes pour l`introduction a l`histoire de Coree가 집필된 시기는 1860년 전후로 추정된다. 저자가 15년이나 되는 오랜 기간 동안 조선에서 살며 많은 견문과 독서를 통해 풍부한 지식을 쌓은 뒤에 이 글을 썼으므로 그 내용이 상당히 자세하며 오류가 많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판소리에 관한 다블뤼 주교의 기록은, 판소리의 외적인 모습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판소리 창작 또는 재창작 과정, 그리고 판소리 연행 및 향유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 기록은 한편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추정해 왔던 19세기 후반 판소리의 모습을 재확인시켜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추정과 배치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며,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판소리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기록의 진지한 검토가 19세기 후반 판소리에 관한 논의들을 더욱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본 논문에서 검토한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블뤼 주교의 기록은 19세기 후반에 판소리가 오락성 또는 광대놀음의 성격을 확고히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둘째, 다블뤼 주교의 기록은 판소리광대들이 판소리 사설을 짓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이 책에서 소재를 구해 판소리 사설을 짓기도 했음을 보여 준다. 셋째, 다블뤼 주교의 기록은 중간층 또는 상층 부녀자들이 판소리를 향유했으며, 그들이 판소리 공연을 감상할 때는 판소리광대들이 욕설이나 육담을 삭제했음을 보여 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troduce a new material, which documents the picture of pansori in the 19th century, and to review several facts of pansori history which can be proved by this material. This material is found in Notes pour l`introduction a l`histoire de Coree written by Marie Nicolas Antoine Daveluy(1818-1866), a French missionary priest who entered Choson Dynasty in 1845 and worked for 21 years until he died a martyr in 1866. It is estimated that Notes pour l`introduction a l`histoire de Coree was written around 1860, when the author had experienced and studied the culture of Choson for about 15 years. Thus, it is believed that it gives quite accurate information and has few mistakes. Daveluy had a great interest in pansori and also a deep affection for it. Therefore, he did not only try to describe the appearance of pansori, but also tried to report the way how it was produced and how it was enjoyed. His writing verifies the picture of pansori which has been developed by many researchers on a weak foundation so far, but on the other hand, it also presents a new picture of pansori which does not coincide with the picture we have had in mind. It tells us that pansori held its entertainment value, while it tried to obtain artistic value in the late 19th century. More interestingly, it also tells us that pansori clowns as creative singing poets arranged pansori texts for themselves, and that they performed a specially edited version for the female aud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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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판"을 주제로 한 통합적 판소리 교수,학습 방법 연구

          성기련 ( Ki Ryun Sung ) 판소리학회 2009 판소리연구 Vol.0 No.28

          지금까지 판소리는 음악 교과를 비롯한 여러 교과에서 중요한 제재로 다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교과에서는 판소리의 여러 요소 중 `소리`의 감상에 치우치는 수업을 하도록 교과서가 구성되고 다른 교과에서도 국어 교과는 노랫말, 사회 및 도덕 교과는 판소리의 문화적 가치 등 교과의 성격에 따라 일부 측면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판소리의 본질을 조명하고 감상 능력을 갖추도록 가르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본고는 기존의 단편적인 교과별 판소리 수업에서 벗어나서 판소리 문화의 본질에 기초하여 판소리를 지도할 수 있는 통합적인 교수·학습 방법을 구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음악 교과를 중심으로 국어, 사회, 도덕, 미술, 체육 등 여러 교과의 판소리 관련 내용을 유기적으로 연관 지어 교과 간 통합을 시도하였으며, 동시에 음악 교과 내에서 활동, 이해, 생활화의 대영역을 통합하고 활동 영역 내에서도 가창, 기악, 감상, 창작 활동을 통합하도록 영역 간 통합을 구상하였다. 판소리의 통합적 교수·학습과 관련한 본 연구를 진행한 이유는 20세기 후반기 이후 판소리 문화가 생동감을 잃고 정체되고 있는 원인을 판소리 향유가 일반 대중보다는 소수의 청중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적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판소리가 살아있는 문화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고 실력 있는 명창을 다수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판소리를 일상생활 속에서 듣고 즐기며 전승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청중층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학교 수업에 `소리판`에서 벌어지는 생동감 있는 판소리 공연문화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하여 `소리판 이해하기,` `귀명창 되기,` `명고수 따라잡기,` `명창 따라잡기,` `흥겨운 소리판 벌리기`를 소주제로 선정하였고, 교과 간 통합과 음악 교과 내의 각 영역 간 통합을 통한 구체적인 교수·학습 방법을 구상하였다. 특히 활동 영역 내에서도 가창, 감상, 기악, 창작의 여러 활동이 고루 이루어짐으로써 창자와 고수, 청중이 어우러지는 소리판을 체험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다. 공교육에서 청소년기에 판소리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감수성을 갖게 하고 학교 밖에서도 판소리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판소리의 생활화를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판소리를 조선 후기라고 하는 역사 속 한 시대의 문화로 학습시키지 않고 오늘날의 살아있는 문화로 이해시키고 그 특성을 가르칠 때 비로소 판소리가 정체되지 않고 `놀이로서의 특성과 삶의 방식`이라는 본질이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The reason why Pansori Culture has lost its vitality and been stagnant since the latter part of the 20th century is the fact that it is enjoyed only by a small audience, rather than by the general public. Therefore, while it is still important to create new works and develop a large number of talented singers to help Pansori to be reborn as a living culture, it is also imperative to secure an audience who can listen to and enjoy Pansori in their daily lives, and who can become positively engaged in handing it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But while Pansori has been treated as a pivotal educational material in many subjects, including music, music textbooks are so narrowly organized that music classes are only focusing on the appreciation of the `sori` aspect out the many elements of Pansori, while some other aspects of Pansori may be focused on depending on what subject is being taught for example, lyrics are the focus in Korean class, while its cultural value is the focus in sociology and ethics classes. This approach has a limitation, in that it cannot teach students how to make sense of the essence of Pansori as a whole, and appreciate it in the correct manner. To break from this fragmentary approach to Pansori education, this thesis attempts to lay a new foundation for Pansori education from a viewpoint of integration between subjects, so that Pansori education can be carried out in an integrated manner that combines the contents of Korean, sociology, ethics, arts, and gymnastics with one another, with music playing the leading role. First of all, attempting to reflect Pansori`s characteristic as a performance culture, since it is performed at a soripan, this thesis selects as a minor theme the need to understand soripan, to become a good listener, to find top-class drummers and singers, and to hold a soripan, and draws up methods of teaching and learning through the integration of each subject, and the integration of all aspects of pansori, including activity, understanding, and life embodiment, within the subject of music. In addition, it lays out some ideas by which students can experience a soripan where singers, drummers and the audience can harmonize together by means of promoting activities of creation such as singing, appreciation, instrumental music and creation within the learning activities. If students can become sensitive enough to be able to appreciate Pansori in public education while they are adolescents, and if they can make Pansori a part of their daily lives outside of school in order to positively accommodate its culture, Pansori culture will stagnate no longer, and the essence of Pansori as the characteristics of a style and a way of life can be kept alive in the future.

        • KCI등재

          전통사회 화극(話劇), 재담소리, 실창판소리에 대한 시각

          손태도 판소리학회 2015 판소리연구 Vol.0 No.39

          Pansori is one of the Clown's performances. It was made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refore, in order to properly understand the Pansori, we should have perspective on the Hwageuk and Jaedamsori that were performed earlier than the Pansori. when we divide Pansori works into 5 Living-Pansoris, <Chunhyangga (춘향가)>, <Simcheongga (심청가)>, <Sugungga (수궁가)>, <Heungbuga (흥부가)>, and <Jeokbyeokga (적벽가)>, and 7 Lost-Pansoris, <Baebijang-taryeong (배비장타령)>, <Gangneung-maehwa-taryeong (강릉매화타령)>, <Jangkki-taryeong (장끼타령)>, <Onggojip-taryeong (옹고집타령)>, the later need to discuss with Jaedamsori that existed earlier than Pansori. Hwageuk is a sort of farce by one major Clown with jokes and funny mimics. This play was performed for the king that only lived in palace to introduce the affairs of the out of palace. It was already performed in Chinese Han (한, 漢) Dynasty (B.C. 202~A.D. 220). And it was widely spreaded at East Asian countries, especially confucian ones. In Korea, it was already taken place in Goryeo Dynasty. It was a very simple form play, but it had been a major performance of the Clown for a long time due to that it performed in front of the king. However, it rapidly declined, because Naraehui (나례희, 儺禮戱. a ceremony on the last day of the year) of the palace that was main stage for it abolished in the fourth year king In-jo (1634) in the Joseon Dynasty. When there was no need to maintain the Hwageuk as major performance, there was Jaedsamsori that was made from Hwageuk, so to speak Jaedamgeuk (재담극), to be added songs. There was Jaedamsori era before Pansori. This Jaedamsori placed its purpose for fun to the audience purely. However, even in such works, there were works developed to Pansoris, so to speak Clown's epic songs. Because they dealt that day's important affairs, and the main character of those works had a positive factor, so as result people continuously enjoyed them. In this process the Hwarangi (화랑이) group, the Clown of the southern part of Gyeonggi, played an important role. They were shaman's husbands, musicians in the office, and Clowns. So they were sharing shaman's epic songs for a long time. On the other hand, the Jaeinchon (재인촌) people in the northern part of Gyeonggi, the Clown of he northern part of Gyeonggi only sustained the Jaedamsori like <Baebaengi-gut (배뱅이굿)> and <Jangdaejangnae-gut (장대장네굿)> that are sung until now. They had no relationship with shamans. If we look at the text of Lost-Pansori, we know that actually it is not Pansori but Jaedamsori. The hero of those works, Baebijang (배비장), Golsaengwon (골생원), Jangkki (장끼), Onggojip (옹고집), Musuki (무숙이) and Byeongangsoe (변강쇠), are all the persons of satire and humor with all the negative figures. And the story and the narrative methods also are fun themselves by using the method of Jaedamsori. As the life of the Jaedam (재담) related performance is a one-off, thus Lost-Pansori's abolition is natural. Because it has a lot of elements of Jaedamsori. By this time, we researched the Pansori with solo perspective on the Pansori itself. But Pansori was one of the Clown's performances. Only it was made in the late Joseon Dynasty. From now, we need to see Pansori with the relationship of Hwageuk and Jaedsamsori that existed before Pansori. Especially, in the case of Lost-Pansori, if we looked at it not in the perspective of Pansori but in the one of Jaedsamsori, its performatory and literary achieves could be more properly identified. 판소리는 조선 후기에 성립된 광대의 공연물의 하나다. 그러므로 판소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판소리 이전의 공연물들, 이를테면 화극(話劇), 재담소리에 대한 시각도 갖춰야 한다. 특히 판소리를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변강쇠타령>, <가짜신선타령> 등의 실창 7가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부가>, <적벽가> 등 전창 5가로 나눌 경우, 실창 7가들은 판소리보다 먼저 있었던 재담소리와 더 가까운 면이 있다. 화극은 한 명의 광대가 중심이 되어 간단한 재담과 흉내내기로 하는 이른바 1인 소극(笑劇)이다. 화극은 대궐 안에서만 살아 대궐 밖의 일을 잘 모르는 임금을 위해 광대가 대궐 밖의 여러 일들을 연극으로 꾸며 보여주어 임금에게 정치적 도움을 주고자 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통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한(漢)나라(B.C. 202~A.D. 220) 때 이미 그 전통이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부터 이뤄졌다. 화극은 간단한 연극 형태이지만 임금 앞에서 한다는 것으로 인해 오랫동안 광대의 주요 공연물이 되었다. 그러나 인조 4년(1634) 화극을 공연하던 가장 주된 행사인 궁궐의 연말 나례희(儺禮戱)가 폐지되자 급격히 쇠퇴했다. 재담소리는 인조 4년 이후 광대들이 화극을 더 이상 주된 공연물로 할 필요가 없게 되자, 광대의 흥행 수단인 재담과 소리 중 종래의 화극 곧 재담극에 소리도 곁들여 부상시킨 광대의 공연물로 판소리 이전에 한때 이러한 재담소리 시대가 있었다. 이러한 재담소리는 순전히 관객을 웃기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그러한 작품들 속에서도 그 주인공에게 긍정적 요소도 있고 당시대의 주요 내용들도 다루어 사람들이 노래와 같은 공동의 방식으로 공동으로 지속적으로 향유할 만한 작품들은 서사시 곧 광대서사시가 되어 이후 판소리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는 무부․악공․광대로 무당과 함께 무당서사시인 서사무가 문화를 오랫동안 공유해온 경기이남의 광대집단인 화랑이집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 악공․광대로 무속과 관계가 없던 경기이북의 광대집단인 경기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은 종래의 재담소리들을 이후에도 계속 부르게 된다. 오늘날까지도 전승되는 <배뱅이굿>, <장대장네굿> 같은 작품들이 그런 것들이다. 실창판소리는 오늘날 남아있는 그 사설들을 보면 우리가 편의상 판소리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상 재담소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배비장, 골생원, 장끼, 옹고집, 무숙이, 변강쇠 등 실창판소리의 주인공들은 모두 부정적 인물들로 풍자와 해학의 대상일 뿐이며, 그 줄거리나 전개방식도 골계일변도로 단지 웃기고자 하는 재담소리적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재담 계통의 공연물은 그 생명이 대체로 일회적이기에, 그러한 재담소리적 성격이 강한 실창판소리들이 전승이 끊어진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판소리를 연구할 때 대체로 판소리 하나만을 바라보며 하고 있다. 그러나 판소리는 조선 후기에 새로 성립된 광대의 공연물의 하나다. 이제는 판소리보다 먼저 있었던 광대의 공연물들인 화극, 재담소리 등도 고려하여 판소리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실창판소리는 오늘날과 같이 판소리라는 시각에서보다는 오히려 재담소리란 시각에서 바라볼 때, 그 공연적, 문학적 작품성이 보다 제대로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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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후반 판소리 관련 장시간 음반(LP Record)의 발매 양상과 의미

          최혜진 판소리학회 2018 판소리연구 Vol.0 No.46

          This study aims to summarize the characteristics of long playing (LP) record releases by the times, singers, and accompaniments, upon their release aspects in late 20th century. Since the record popularization was realized by LP records though there were multiple media to contain Pansori, how the Pansori culture was distributed and consumed could be evaluated. By putting Pansori into the records of gramophone as the subjects of appreciation, we could capture the new taste. Instead of giving up ‘watching' and ‘accompanying,' they could concentrate only on ‘advanced musicality' only by listening and sensing Pansori as a music. Since then, popular LP record era far from the era of gramophone was started. Due to the changes of media, Pansori realized popularization of records in late 20th century, when was 1960s to 1990s for 30 to 40 years. Since the modern history of Pansori that LP records brought was significant though it was started from 50 to 60 years ago, we tried to summarize the data to confirm their aspects as much as possible. In this article, the list of LP records related to Pansori in 1960s to 1990s was summarized to review their characteristics based on the final 157 items. The earliest LP records of Pansori seem to be a series of ‘Folk Songs of Southern Provinces' and ‘Choonhynagjeon and Shimchungjeon, a collection of Folk Songs of Southern Provinces' recorded by Cho Wol Park, Gui He Park, Woo Hynag Sung, Nong Sun Han, and You Kyoung Shin in 1959. Since then, multiple masters recorded their songs to continue the records of complete version of Pansori and it was discontinued after 1990s, which is the history of its LP records. It was Cho Wol Park that showed the most frequently among the master singers who had recorded Pansori in LPs. She had performed actively recording not only in complete version of Pansori but also in the Korean traditional opera. She was active from 1960s when was the starting period of LP records to 1970s. Then, many performers recorded LPs including Woo Hynag Sung, Dong Jin Park, Bong Sool Park, Change Soon Sung, So He Kim, and so on. With respect to accompaniment, specialized Korean Music Orchestras in the recording companies participated in the accompaniment in 1960s. It seemed to intend to supplement accompaniment splendidly due to the features of recording LPs. On the other hand, a part of LPs in the times was reviewed by ‘Shimchungjeon, a Korean traditional opera' produced by Daedo Records in 1968. It was known from Pansori in this record that it showed independency and improvisation and prepared unnecessary oral sound or articles to meet the time of records. LPs related to Pansori were spotlighted as the representative media that distributed Pansori in late 20th century. The master singers in the times had recorded the popular parts initially and then they expanded to complete version of Pansori in later parts. 본 연구는 20세기 후반 장시간 음반의 발매 양상을 확인하여 당대 시대별, 연창자별, 반주별 특성을 정리해본 것이다. 당대 판소리를 담는 여러 매체가 있었으나 장시간 음반을 통해 전면적 음반 대중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판소리 문화가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개화기 이후 판소리를 감상의 대상으로 유성기음반에 담아냄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미감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오로지 음악으로만 판소리를 듣고 느낌으로써 ‘보기'와 ‘함께 하기'를 포기한 대신 ‘고도의 음악성'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유성기음반 시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대중적인 LP음반의 시대가 열렸다. 매체의 변화로 판소리는 20세기 후반 음반 대중화를 이루었고, 그것은 1960년대~1990년대까지 약30~40년간 이루어진 일이다. 비록 50-60년 전부터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LP음반이 가져다 준 현대 판소리의 역사 또한 그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그 양상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여기서는 1960년대~1990년대까지 판소리 관련 LP음반 목록을 정리하고, 정리된 목록 총 157개를 바탕으로 특성을 살펴보았다. 가장 이른 시기의 판소리 LP음반은 1959년경 녹음된 박초월, 박귀희, 성우향, 한농선, 신유경의 ‘남도민요'시리즈와 ‘남도민요선집, 춘향전과 심청전'으로 보인다. 이후 여러 명창들의 녹음 발매가 이어졌고, 완창 판소리 녹음이 이어졌으며, 90년대 이후 사양의 길을 가게 된 것이 장시간 음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LP음반에 취입했던 명창들 중 가장 많은 출연 빈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박초월이었다. 박초월은 완창은 물론 창극에서도 많은 음반을 취입하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60년대 본격적인 LP음반이 시작될 때부터 70년대까지 활약하였다. 이어 성우향, 박동진, 박봉술, 성창순, 김소희 등이 많은 LP음반을 취입하였다. 반주자들은 60년대에는 레코드사의 전속국악단이 반주를 많이 했다. 녹음 음반의 특성상 반주를 되도록 화려하게 해서 보완하고자 한 의도로 보인다. 한편 1968년 제작된 대도레코드사의 ‘창극 심청전'을 통해 당대 LP음반의 일단을 살펴보았다. 이 음반에서 판소리는 자율성과 즉흥성이 드러나고, 음반의 시간을 맞추기 위한 불필요한 구음이나 사설도 들어갔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판소리 관련 장시간 음반은 20세기 후반 판소리를 유통시킨 대표적인 매체로 각광을 받았다. 당대 명창들은 초기에는 인기있는 대목을 중심으로 녹음을 하다가 후반기에는 완창 위주의 녹음을 해나갔음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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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에서의 전통미학 패러다임의 변화

          김현주 판소리학회 2018 판소리연구 Vol.0 No.46

          이 글은 판소리의 미학적 성격을 사유체계의 변화라는 패러다임으로 접근함으로써 조선 후기 당시 성리학적 사유체계의 균열과 그 균열의 틈새에 들어온 새로운 사유체계들의 혼융 속에서 발생하고 성장한 판소리의 미학적 사유체계의 성격을 밝히고, 그것이 갖는 민족미학적 위상을 점검하고자 했다. 조선 후기 미학적 사유체계의 큰 변화는 기를 보는 관점의 변화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기를 물질로 간주하는 경향에 의해 물적 사유가 강화된 것이 그 하나였다. 조선 후기에 발생하거나 재음미된 실학과 서학, 도교, 그리고 무교 등을 통해 볼 때 조선 후기에는 물적 사유가 강화되면서 실물적인 사고와 실용주의적인 정신이 확산하였으며, 사물의 무차별성에 대한 인식을 통해 만물평등의 정신도 고양되었다. 기 일원론의 연장선 위에서 성 일원론이 등장함으로써 몸적 사유가 강화된 것이 조선 후기에 나타난 또 하나의 변화였다. 양명학이나 동학 등을 통해 볼 때 정신의 우월성과 육체의 열등성이 해체되고, 인간의 성에는 선악이 없다는 인식에 따라 인간의 정감의 세계가 차츰 인정되고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을 긍정하는 관점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미학적 사유체계의 변화는 그 시대에 등장하고 풍미했던 판소리문학에 투영되지 않을 수 없었다. 판소리에서 볼 수 있는 물적 사유와 몸적 사유의 공통점은 인간에게 자연스럽고 솔직한 사고방식이라는 점에 있다. 눈에 보이는 사물들을 순수한 시각을 통해 그대로 감각적으로 담아내려고 하는 물적 사유는 가식과 인위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의식의 소산이다. 지성적 관념 작용을 통해 꾸미는 과정을 생략하고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다. 몸적 사유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에 더욱 솔직하고자 한 것이다. 인간이 일상에서 욕망의 문제에 부딪쳤을 때 몸이 느끼는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라고 하는 것이 몸적 사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성적 사고 작용에 앞서 감성적 사고를 앞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가식이나 위선이 없이 본능에 충실하게 된다. 물적 사유와 몸적 사유가 판소리에 두드러지게 기여하는 측면은 일상생활의 자연스러움을 구가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 그런 사유들이 판소리에서는 어떤 관념세계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철두철미 실제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판소리의 물적 사유와 몸적 사유의 의의는 일상적인 자연주의를 보편화한 국면에서 찾아진다. 당대에 부상한 다양한 사유체계들에 기반하고 있는 물적 사유와 몸적 사유는 판소리에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판소리의 자연주의의 성격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일상적이고 생활적인 자연주의의 성격은 판소리가 이전 시대보다 더욱 강화시킨 미학적 국면이며, 후대에 다방면으로 유포시킨 미적 감각이다. 근대의 미술사학자들이나 미학가들, 그 중에서도 특히 고유섭의 한국미에 대한 진단을 보면 한국미의 자연주의적 성격은 좀더 층위별로 세분화될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판소리에서는 그 다양하고 다방면의 자연주의적 성격이 문학과 음악에 걸쳐 밑바닥부터 체화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판소리의 자연주의적 미학이 민족 미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아직은 개진하는 단계에 불과하지만 상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This takes the aesthetic character of Pansori into a paradigm of its changes in the thought system. During the late Chosun Dynasty, new thought systems were mixed with cracks in the Neo-confucianism. In the midst of these currents, it revealed the nature of Pansori' aesthetic system, which occurred and grew up, and checked its national aesthetic status. A major change in the aesthetic thought system in the late Chosun Dynasty can be attributed to the change in the way in which people think about Li(理) and Gi(氣). One is that material thinking has been reinforced by the tendency to regard Gi(氣) as a substance. In the late Chosun Dynasty, physical reasons were strenthened through Sil Hak(實學), Seo Hak(西學), Taoism(道敎), Shamanism(巫敎) etc., and they were reflected in practical thinking and pragmatic settlement. The spirit of equality in all things has also been enhanced through the recognition of the individuality of things. Another change was the increase in physical thinking as mind-monism(性一元論) emerged over the extension of Gi-monism(氣一元論). It was broken up the spirit of superiority and inferiority of the body through Yang Myung Hak(陽明學) and Dong Hak(東學). The recognition that human mind and body is not good and evil has led to the gradual recognition of the human world of affection and the positive view of human natural desires. This change of aesthetic thought system could be reflected in Pansori which appeared and grew up at that time. The similarities between the material thinking and physical thinking of Pansori are natural and simple ways of thinking for humans. The material thinking of trying to capture things in a natural way, through a pure perspective, is a product of a consciousness to exclude pretense and artificiality. Its goal is to focus on the natural emotions of the human being and to skip the process of decorating with intelligence. Physical thinking is an attempt to be more honest with one's instinctive desires. It is the essence of physical thinking that when a person encounters a problem of desire, one is asked to think and act the way the body feels. Material thinking and physical thinking contribute remarkably to Pansori, which is meant to promote the natural way of everyday life. Such thinkings do not occur in a certain world of ideology in Pansori, but they occur when they run into real life completely. In this sense, the significance of Pansori' material thinking and physical thinking is found in a situation where it has generalized daily naturalism. Material thinking and physical thinking based on various thought systems that emerged in the period are actively accepted by Pansori, reinforcing the naturalistic characteristics of Pansori. The nature of everyday and mundane naturalism is an aesthetic phase enhanced by Pansori more than ever before and is thought to be an aesthetic sensibility spread widely to future generations. In modern art historians and aesthetic scholars, especially Ko Yu-seop's diagnosis of Korea's aesthetic nature, the naturalistic characteristics of Korea's aesthetic needs to be broken down further into sections. In Pansori, various and diverse naturalistic characteristics are represented from the bottem up through literature and music. In this respect, the naturalistic aesthetics of Pansori are considerable in terms of its status as national aesth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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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 명창의 생애와 예술 활동

          김석배 판소리학회 2015 판소리연구 Vol.0 No.40

          Kim Yeonsu(1907-1974) is an artist that is remarkable in the history of modern pansori. He became famous as a pansori singer, changgeuk actor and producer, and art administrator. He began to learn pansori at an older age in 1927 at his hometown Goheung. He mastered the five traditional pansori, and contributed greatly to the development of pansori and changgeuk through a variety of activities. This paper explored his life and art activities as an artist. The result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Kim Yeonsu did not graduate from Joongdong school, and learned pansori from Oh Seongsam and Park Bokseon at Goheung. Second, Kim Yeonsu contributed a great deal to the development of pansori and changgeuk through a variety of activities. (1) After he went up to seoul in July, 1937, he held various heads of Joseonseongakyeonguhoe, Joseonchanggeukdan, Urigukakdan, Gukribgukgeukdan, and so forth. (2) He made his debut in Heungbojeon in 1936 in Seoul. He performed as a protagonist in Chunhyangjeon, Baebijangjeon, Onggojibjeon, and he also made a lot of songs used in changgeuk. He showed his talent of pansori in a variety of Myeongchang concerts. (3) He made 62 SP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some LPs which recorded Changgeuk Chunhyangjeon. (4) He appeared as a pansori singer in JODK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 five traditional pansori was broadcasted by DBS in 1967. (5) He completed Dongchoje pansori in 1967. Pansori saseol was published in the title of 『Changbon Chunhyangga』 in 1967, and 『Changbon Simcheongga Heungboga Sugungga Jyeokbyeokga』 in 1974. 동초 김연수(1907-1974)는 현대 판소리사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명창으로 한평생을 판소리 창자, 창극 배우 및 연출가, 예술행정가로서 당당하고도 거침없이 살았다. 동초는 1927년 고향 고흥에서 늦깍이로 판소리에 입문하여 1935년부터 유성준 송만갑 정정렬에게 판소리 다섯 바탕을 익혀 소리꾼으로서 입지를 굳힌 이래 다양한 활동을 통해 판소리 및 창극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본고에서는 김연수 명창의 생애와 예술활동을 살펴보았는데, 그것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연수가 중동중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소리공부도 축음기로 독학한 것이 아니라 고흥에서 오성삼과 박복선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둘째, 김연수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판소리 및 창극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 1937년 7월에 상경한 후 조선성악연구회, 조선창극단, 우리국악단, 국립국극단 등 여러 국악단체의 대표를 역임하였다. 2) 1936년 11월 <흥보전>에서 서울 무대에 등장한 이래 <평화의 쇠북소리>, <심청전>, <춘향전>, <수양과 육신>, <배비장전>, <옹고집전> 등 수많은 창극에서 작곡과 연출을 하는 한편 주인공 등 주요 배역을 맡아 열연하였고, 명인명창대회, 판소리유파발표회 등 다양한 판소리 무대에서 기량을 유감없이 펼쳤다. 3) 일제강점기에 유성기음반(SP판)에 ‘고고천변' 등 62매(124면)를 취입하였고, 해방 후에도 장시간음반(LP판)에 <창극 대춘향전> 등을 취입하였다. 4) 일제강점기에 JODK의 국악방송에 출연하였고, 1967년에 동아방송에서 판소리 다섯 바탕을 방송하였다. 5) 1967년에 판소리 다섯 바탕을 자신의 판소리 이론에 맞는 이상적인 소리(동초제 판소리)로 완성하였고, 판소리사설은 『창본 춘향가』(1967)와 『창본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1974)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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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를 통한 문화적 문식성 교육 연구 -이청준의 <남도사람> 연작을 중심으로

          서유경 ( Yu Kyung Seo ) 판소리학회 2009 판소리연구 Vol.0 No.28

          이 연구는 판소리 교육의 효용을 국어교육 목표의 하나인 문화적 문식성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문화적 문식성을 발휘한 모델로서 작가 이청준을 대상화 하여, 판소리를 수용하여 창작한 <남도사람> 연작을 중심으로, 판소리 교육이 어떻게 문화적 문식성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연구에서는 고전 문화에 대한 문식성이 현대의 문화 향유에도 필요한 문식성이 될 수 있는 능력으로 본다는 의미에서 `문화적 문식성`을 개념화하고, 국어교육에서 이러한 능력 신장을 목표로 하는 것을 전제로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남도사람> 연작에 나타난 판소리의 수용 방식을 살펴보고, 판소리에 대한 문식성이 어떻게 현대 문학 작품의 감상과 판소리의 재생산에 작용할 수 있을지를 공감적 자기화의 원리로 분석해 보았다. `공감적 자기화`는 문학 작품에 대한 `공감성`과 수용 결과를 새로운 표현으로 창출해 내는 `자기화`를 통합한 개념이다. 문화적 문식성의 획득이 국어교육의 목표라는 관점에서 보면, <남도사람> 연작이 보여 주는 공감적 자기화의 방식은 판소리를 통해 학습자가 성취해야 할 목표와 내용 그리고 여기서 나아가 학습자가 도달할 상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를 통한 문화적 문식성 교육의 의의는 첫째, 국어교육 안에서 우리 판소리에 대해 향유 문화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둘째, 판소리를 매개로 고전과 현대를 통합하여 교육할 수 있다, 셋째, 판소리를 통한 문화적 문식성 교육은 궁극적으로 문화 향유 주체로서의 학습자를 길러 낼 수 있다, 넷째, 전통 문화 교육을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This study aims to find to answer why we should teach Pansori in the cultural-literacy as the object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education. So Lee Chung-jun should be modelled that showed his ability of cultural-literacy, and it was researched how Pansori education function as cultural-literacy on Lee Chung-jun`s Namdo-Saram series. The concept of cultural-literacy in this thesis is that to have the literacy about the classic culture can be the necessary literacy about the modern culture. In this point of view, it was researched how Namdo-Saram series received Pansori and how the literacy about Pansori works on the appreciation of the modern literature and the reproduction of Pansori with the theory of the empathic appropriation. The concept of the empathic appropriation is combining the empathy on the literature and the appropriation as renewed expression of the result of the acceptance. Inthe viewpoint of accomplishing the cultural-literacy, Namdo-Saram series show that the empathic appropriation of Pansori could be the object and contents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education. The meaning of the cultural-literacy education through Pansori is as follow; 1) the possibility of approaching Pansori in the viewpoint of enjoying literature, 2)the integration of the classic and modern through Pansori, 3)the possibility of educating the learner as the subject of the culture, 4)the possibility of the traditional culture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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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여창(女唱) 판소리의 문예적 특질

          이유진 판소리학회 2015 판소리연구 Vol.0 No.40

          This paper discusses the view of pansori and the consciousness of transmission which the female pansori singers of modern times had, and analyzes the literary characteristics of their pansori texts. While the male pansori singers of modern times were the successors to gwangdae, the female pansori singers of modern times were the successors to gisaeng. The female pansori singers of modern times considered pansori as vocal music which was the continuation of the traditional gisaeng culture. The ideal pansori, they aimed for, was the changak which could touch the audience delicately as the traditional gisaeng vocal music did. Accordingly, the greatest female pansori singers such as Park Rokju, Park Chowol, Kim Sohui re-edited and modified their pansori texts, and due to their efforts the female singers' pansori of modern times gained the dignity and the lyrical beauty as its literary characteristics. 본 논문에서는 근대 여성 명창을 대표하는 박록주, 박초월, 김소희의 판소리 텍스트가 동시대 남성 명창들의 판소리 텍스트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근대 여성 창자들의 판소리관 및 전승의식과 관련지어 그 문예적 특질을 고찰했다. 근대 남성 판소리 창자들이 광대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판소리를 전승했던 것과 달리, 근대 여성 판소리 창자들은 기생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판소리를 전승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여성 창자들은 판소리를 ‘놀음'이 아닌 ‘창악(唱樂)'으로 인식했는데, 그것은 전통적으로 기생들이 연행해 온 가악(歌樂)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청중의 마음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창악을 지향하면서 근대 여성 창자들은 판소리의 음악적 기교와 성음을 세련했고, 문학적인 면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일으켰다. 그들은 판소리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터무니없는 이야기, 어리석은 대화, 음란한 말장난 등으로 청중의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들을 배제하거나 그러한 대목들에 담긴 비속한 내용을 순화했으며, 판소리 작품의 주인공들을 품위 있는 인물들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서사성 또는 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대목의 텍스트를 과감히 요약하거나 삭제하여 기존 판소리에 비해 서사성과 극성은 약화되고 서정성은 더욱 강화된 판소리를 탄생시켰다. 또한, 그들은 서정적 창 대목을 새로 만들어 넣거나 당시에 전승되고 있었던 창 대목의 텍스트를 섬세하게 다듬어 그 서정미가 더욱 빛나도록 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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