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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대학원생들의 선교관 연구 :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중심으로

        권오훈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2005 국내석사

        RANK : 248687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선교할 것을 말씀하셨고 지금도 말씀하시고 계신다. 이런 하나님의 간절한 원하심을 21세기의 일군들이요 선교 한국을 이끌어갈 기독교 대학생을 특별히 그 중에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1∼3학년을 중심으로 본 논문은 현재 기독교 대학의 선교의 열망을 제시하겠다. 본 연구의 서론부분에서는 연구의 배경 및 목적 그리고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제시하였다. 제 2 장 선행연구 고찰에서는 선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통해 선교의 어원을 찾아 선교에 대한 정의를 내렸으며 성경에서 나타난 선교의 방법과 근거를 각출해 보려고 노력했다. 구약과 신약 그리고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선교를 강조하셨고, 계속적인 하나님의 일군을 세우기 위해 기독교 대학을 세워 복음화의 역군을 양육하고 계신다. 세상이 변해감에 따라 하나님 중심적인 믿음 위에 세워진 기독교대학도 일반 대학과 비슷한 대형화로 인하여 점차적으로 세속화되어가고 있던 시점에서 개혁주의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생들의 전체 선교관을 2장 3절에서 알아봄으로 현재 한국의 기독교 대학의 선교관을 검토하였다. 제 3 장에서는 더 자세한 기독교 대학생들의 선교관 적용을 위해 선교교육을 통한 준비 그리고 선교 헌신자 동원에 대해 연구 설계를 하였고, 본 연구를 위한 연구 대상과 견본 추출, 연구 도구, 자료 수집 절차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제 4 장에서는 자료 분석으로,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1∼3학년들을 대상으로 선교사역에 참여하고 있는가, 선교사를 돕고 있는가, 선교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설문지를 통하여 연구 분석 하였다. 설문지 처음에 대한 분석은 설문 대상자 학년 및 참여 여부, 두 번째는 선교사를 돕는 데에 대하여 연구 분석하였고, 3번째는 개인의 선교교육 만족도와 선교 헌신자 동원을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을 설문지에 답하게 하였다. 그리고 위 3가지를 분석하였다. 설문지를 통한 자료 분석 결과를 구체적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설문 대상의 선교 참여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응답한 수는 총 120명이었으며, 선교 동참은 53명이 보내는 선교사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 단기 선교사 29명이었다. 선교사역에 동참하고 싶은 대륙권은 68명이 아시아권으로 가장 많았고, 아프리카권이 27명이었으며, ‘현재 선교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60명이 예라고 답하였고, 가장 많았다. 아니요는 30명, 그 외에는 무응답이었다. 둘째, 학년에 따라 선교사를 돕고 협력하는 여부를 살펴보았다. 결과는 질문에는 60명이 5분이라고 답하였고, 30명은 10분, 그 다음은 무응답 이었으며, ‘선교사를 위해 한 달에 선교 헌금은 어느 정도 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60명이 1만원이라고 답하였고, 15명이 2만원으로 집계되었다. 셋째, ‘선교 헌신자 동원에 필요한 프로그램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40명이 선교 세미나라고 답하였고, 30명은 선교 간증이라고 답하였으며, 선교사에 관한 책을 1년에 몇 권 읽느냐는 질문에 55명이 1권이라고 답하였고, 30명은 2권이라고 답하였다. 마지막으로 ‘선교 헌신자 지원동기 위한 프로그램은?’ 이라는 질문에 48명이 선교 간증이라고 답하였다. 이 응답은 선교 헌신자는 무엇을 통하여 가능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 대학은 예수님이 명령하신 선교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본 논문에서 밝힌 바대로 하나님이 기독교 대학을 세운 목적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선교에 대한 강좌와 세미나를 통하여 도전을 주고 기도합주회나 선교 소그룹모임, 선교 간증집회를 통하여서 복음에 대한 열정을 주어야 한다. 신학대학원생들은 21세기를 이끌어갈 제일의 일군들이다. 이들은 교회, 사회에 큰 영향을 주고 이 사회를 이끌어갈 장차 지도자요 리더들이다. 하나님은 당장이 아니라 미래를 보신다. 기독교 대학은 미래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한다. 기독교 대학이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질 때 교회가 살고 사회가 살고 그리스도의 계절이 올 것이다.

      • 루터와 칼빈의 예배음악에 대한 이해

        진교소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8623

        지금까지 기독교의 역사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예배의 역사였음을 알 수 있다. 천지창조 이후에 시작된 예배는 그 예배와 함께한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음악이 함께해왔음을 우리는 안다. 찬양에 대한 관심은 하나님께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인간 창조의 목적을 밝히시는데 "이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이사야서 43:1절에 말씀하시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찬송 중에 거하신다는 것을 강력하게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 창조의 목적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창세기에서부터 나타난 찬양은 예배음악으로 자리 잡았으며 예배는 하나님과 의 만남을 통해서 예배자의 응답은 찬양과 헌신으로 나타났다. 예배에서 예배 음악은 하나님 되심을 드러냈고, 사도바울이 고백처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고 영으로 마음으로 찬미하는 찬송시가 가득하였다. 회중찬송은 교회음악의 정수이다. 회중찬송은 구속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하신 그 일을 인하여 인간의 반응을 나타내는 것 중에 최고의 인격적인 표현이다. 이 회중찬송은 교회의 최상의 목적이며 또 이 목적을 이루는 최선의 수단이기도 하기에 회중찬송 안에 교회의 예배가 바로 설 수 있다. 회중으로 하여금 음악적인 경험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여 그 열매인 희락을 통하여 축제의 분위기가 된다. 회중 찬송은 예배에서 풍성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게 해 주는 중요한 도구이다. 루터가 이해하는 음악은 신학과 버금가는 위치로 생각을 하였다. 음악과 신학은 매우 가까운 것이어서 회중들에게 말씀과 음악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씀과 음악이 회중의 영혼에 동시에 작용한다고 루터는 말한다. 음악은 인간을 조정하고 또한 자주 그들을 압도한다. 슬픈자 에게 평안을 주고 경솔한 자에게 자제를 주고 절망한 자에게 용기를 주고 교만한 자에게 겸손을 주며 흥분되어 있는 자에게는 차분함을 주고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자에게는 유화한 마음을 주는데 음악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음악을 통해서 복음을 선포하시는데 선포된 복음은 구원된 백성들의 입술을 통해 다시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 열매로 거둬들인다 했다. 회중찬송에 대한 루터의 견해를 인정한다. 교회의 찬양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객체는 회중이다 모든 회중의 찬송이 드려짐의 찬양이 될 때에 회중 찬송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예배음악에 대하여 역사 속에서 분명하게 나타난 것은 시대가 변화되면서 예배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그래서 역사의 변화 속에서 예배음악의 변천은 동일하게 움직여 가고 음악의 형태와 기보법 등이 발달하고 인쇄술의 발달로 인하여 음악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발전해가게 된다. 루터와 칼빈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음악에 대하여 건전하고 거룩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찬양하는데 집중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루터는 예배음악의 발전을 가져오면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났고, 반면에 칼빈의 경우에는 교회에서의 악기사용을 금하였고 루터와는 달리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태도를 더 보였다. 칼빈에게 있어서 음악은 교회적인 것이든지 방탕한 것이든지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고 했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 이외의 것은 모두 비난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칼빈이 음악에 대한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취진 것은 그가 음악이 진정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개혁주의적인 예배자로서 서기 위해서 오직 말씀만을 바라보고 그 말씀의 깊이로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본 필자는 칼빈또한 찬양에 대한 갈급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박사는 말하기를 철학은 소수의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예술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하였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말대로 "우리는 예술적 본능이 보편적인 인간 형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국가 형태나 풍토와 나라들에 따라서 그 예술적인 본능발전의 정도는 차이가 난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하였다. 칼빈은 그가 개혁자가 되기 전에는 예술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다. 칼빈이 예술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칼빈은 주장하기를 시각 예술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러기에 순수하고 바르게 사용해야 할 것을 요구했다. 칼빈은 예술의 정당한 사용을 장려하고 권장하였다. 칼빈의 주장은 이렇다. 성경이 예술의 최초의 출현을 언급하면서 유발이 그 장막에서 수금과 퉁소를 발명했을 때라고 했다. 그것을 성령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했다. 칼빈을 통해서 얻는 교훈은 음악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을 표출하고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칼빈주의적 예술가들은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주의적 예술에 대해서 진정한 예술을 위한 소명을 가져야 한다. 또한 루터는 그의 신학적 주장을 찬송을 통해서 효과 있게 전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종교개혁 이후 루터의 신학적이 흐름이 그의 찬송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찬송시는 그대로 한편의 설교였고 신학 논문이었다. 루터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개혁자들과 그 이후의 역사 속에서 교회를 갱신시킨 사람들은 반드시 새로운 찬송을 만들었고 이를 통하여 교리를 정착시키려고 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 한국교회는 110년의 역사동안 거의 갱신이 없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은 거의 대부분이 서양 찬송가라는 사실에 무감각할 뿐만 아니라 발전시키고자하는 의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찬송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교회에는 갱신이 없다. 결국 한국교회의 갱신을 원하는 자들은 목회자든 신학자이든 평신도든 간에 성경적인 새로운 찬송을 만드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대의 교회는 교회음악의 대중성을 강조하면서 그 음악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피조성과 구속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하였다는 가치 있는 사실을 증명하고 진리가 담긴 음악행위가 지속되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찬송의 방향은 회중을 의식하여야 하며 회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찬송은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찬송하는데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한다. 찬송을 하는 개인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개인에 초점이 맞추어 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찬양하는데 그 찬양이 쓰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찬양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영원히 찬양 드리는 삶으로 우리의 삶을 온전히 드려야 하고 더 나은 찬양을 드리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하심이며, 영광의 주님이 재림하셔서 영원한 천국에 인도하시면 그곳에서 성도의 할 일은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날마다 산송으로 화답하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본 논문을 통해서 개혁주의 예배음악이 갖어야할 것이 어느것이고 버려야할 것이 어느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개혁주의 예배음악이라고 하면 "기독교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 안에서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규범인 성경을 근거로 하여 교회의 공적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을 말한다. 칼빈은 "그리스도이름으로"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드려지는 예배만이 참 예배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칼빈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예배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며, 예배의 기본과 공동된 기독교 전통은 성경이 제공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과 성경은 개혁주의 예배의 기본적인 통일성을 이루는데 필수요건임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1항에는 예배의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참하나님을 예배하는 기꺼이 수납될 방법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제정되었고, 그 자신의 계시하신 뜻에 의해 제한되어서 사람의 상상이나 고안이나 사단의 시사에 따라, 어떤 유형한 표현이나 기타 성경에 규정되지 않은 방법으로 예배 받지 않게 하셨다." 이 개혁주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볼 때, 음악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방법으로 교회예배에 사용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개혁주의 자들의 외침처럼 "성경으로 돌아가자" 예배 중에 음악의 사용이 성경에 근거하여 그 위치를 정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개혁주의 교회는 예배음악을 사용할 때 사상이나 감정 표현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둔 신학적 평가와 지침을 통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생각한다. 개혁주의 예배음악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이 성경에 기초하여 사용되어지는 음악이기 때문에 성경적인 교훈을 찾는 것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 예배음악에 대한 객관적이며 건전한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서 '교회사적인 조명'을 통하여 예배음악의 모습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올바른 지침을 제공받는 일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우리 개혁주의 예배음악의 기본적인 통일성을 이루기 위해서 구원자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과 성경과 2000천년의 기독교 역사는 매우 중요한 요건으로 생각한다. 이때만이 참된 예배의 요소로서 예배음악이 자리를 잡게 될 것이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게 될 것이다.

      • 칼빈의 성경해석에 나타난 특징

        오미령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2011 국내석사

        RANK : 248623

        우리가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오히려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예를 들면, 만약 성경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사실, 하나님께서 밝히 드러내지 않으신 사실을 논리적으로 해석하려 한다면 많은 오해와 이단들이 생겨나게 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사변적 해석으로 성경을 왜곡하는 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칼빈의 성경해석에 나타나는 변증적 특징은 많은 의미를 제시해 준다. 칼빈은 성경을 왜곡하는 자들에 대해 “만약 나의 모든 능력을 다해서 그들을 반대하지 않는다면 나의 침묵이 비겁자와 배반자라는 고발로부터 변호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성경 해석에 대한 소홀이나 무관심 때문에 이단들이 교회에 크나큰 해를 끼치고 있다고 경고한다. 칼빈은 이러한 내적, 외적 세력들에 대항하기 위해 ‘인문주의 수사학’을 도입하여 끊임없이 말씀을 변호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시편 서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제 만일 독자들이 내가 노력함으로써 집필한 이 주석들에서 어떤 열매나 이득을 얻기만 한다면, 주님께서 나를 단련시키셨던 그 투쟁들로 말미암아 내가 경험했던 그 소량의 체험이 다음과 같은 면에서 나를 보통 이상으로 도우셨음을 그들이 이해해 주리라. 곧 이 경험을 통하여 나는 신성한 시편들에서 얻어지는 교훈은 무엇이든지 현재에 적용하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각 저자의 의도를 보다 쉽게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윗이 그들 가운데 가장 주요한 지위를 점거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다윗이 고통당했던 것과 같거나 또는 그와 유사한 것을 교회의 내적 원수들에게서 받았던 사실은 다윗이 했던 하소연을 보다 충분히 이해함에 있어서 내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칼빈은 말씀을 변호하기 위해 투쟁한 경험이 고통스러웠지만 성경을 해석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칼빈의 성경해석에 나타나는 변증적 특징은 그의 성경관에서 출발한다. 칼빈은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보고 있으며 하나님을 알려주는 유일하고 완전한 말씀으로 전제 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오직 성경에 근거하여 담대히, 때로는 거칠게 말씀을 변호하고 또한 그것을 신학자의 의무로 생각하는 원동력이 된다. 칼빈은 신학자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성경관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를 세우고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여 말씀을 수호하며 변호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였다. 오늘날 기독교는 많은 분파와 이단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나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신학자들은 많지 않다. 그 결과 한국의 기독교인의 수는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 현재 많은 성경해석자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론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론들이 얼마나 말씀을 변호하고 있으며, 얼마나 신자들에게 올바른 교리를 적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혼란스러운 한국 기독교에 필요한 해답은 무엇인가? 우리는 과거 혼란스러웠던 신학의 역사 속에서 말씀을 수호하며 바른 교리를 세워나갔던 칼빈의 성경해석을 기억해야 한다. 결국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해답은 새로운 해석이나 세속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칼빈의 성경해석에 나타나는 특징처럼 말씀을 수호하려는 변증적 성경해석이다. 물론 먼저, 변증적 성경해석에서 인간인 변증자가 차지하는 위치가 반드시 있지만 변증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순종간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변증은 ‘초자연적인 요소’, 즉 성령의 증거를 떠나서는 성공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변증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다. 불신자의 마음을 설득시키는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변증적 성경해석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변증적 성경해석은 계시 의존적 해석이다. 따라서 신학을 탐구하는 자는 변증적 성경해석을 따라야 한다. 즉,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신중함을, 올바른 성경해석을 전함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말씀이 변질되지 않도록 신중함으로 성경을 해석하여 올바른 교리를 증명하고 성경을 왜곡하는 자들과 이단들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로 믿는 자들의 당연한 본분이다.

      •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빈의 예정론 비교 연구 : 창세기 주석 1-3장을 중심으로

        배현식 칼빈대학교 대학원 201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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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주의 예정론은 본래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 있고 칼빈은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교리적으로 더 정교하고 선명하게 체계화시켰다. 본 논문에서 살펴본 대로 예정교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말씀인 신․구약 성경의 진리에 준거되어 있다. 두 사람의 성경 주석에 의하면 예정은 경세 이전 영원한 때로부터 장차 다가올 최종심판의 때까지를 망라하여 신학적인 모든 문제들을 논의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요소들을 다루는데 필요한 기능과 역할을 담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예정을 의도적으로 논하지 않으려는 시도들을 보면 매우 위험스럽고 균형과 조화를 잃은 모습들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빈이 강조하는 예정의 핵심 사안은 무로부터의 창조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그것은 개혁주의 창조론과 시간론, 그리고 구원론이 출발되는 가장 근본적인 신학적 사안이다. 그 창조가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이 없이 이루어졌다고 감히 주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두 사람의 창조관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전지하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거기로부터 영원히 발현되는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 그리고 직접적으로 말씀으로 통치하시며 영광을 받으신다는 결론을 말하고 있다. 즉 두 사람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섭리하시는 신성의 능력이 모든 피조물들에까지 골고루 나타나 있다는 현재적 신앙의 눈으로서 예정에 대한 절정의 표현을 마무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두 사람의 합치점에서 가장 돋보이는 곳은 구원교리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예정의 대상에 근본적으로 작용한다. 유기 받을 자들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자비로 구원을 베푸시되 기뻐하신 뜻에 따라 선택하신다. 택자들은 위로부터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로 전적 타락과 부패에서 벗어나 영원 전부터 예정된 자녀의 지위를 상속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높이는 목소리를 한가지로 내고 있다. 또 인간의 전적 타락과 부패에 전혀 동의하고 온전히 위로부터의 은혜에 의해 구원이 예정되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창세기 주석은 몇 가지 진술방식과 구조적인 면에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고 있다. 칼빈은 예정론에 있어서 더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고찰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칼빈만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부분을 결코 소홀히 지나칠 수 없다. 그것은 구원의 필연성과 정합성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닿으려면 죄의 유입과 책임에 대한 진술적 평형이 균형감 있고 조화롭게 전제되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단연 죄의 ‘허용적 작정’이다. 지혜의 본체이신 그리스도는 전지하심으로 모든 것을 아시되 완전하게 아시고 과거일도 현재로서 아시고 미래의 일도 현재로서 보신다는 두 사람의 합치된 시상은 첫 인류들의 범죄를 상상적인 허구가 아니라 죄의 발생과 책임을 분명하게 일깨우는 전지하심과 전능하심으로부터 상정한다. 그러나 칼빈의 대적자들은 그 전지와 전능에 의거하여 선하심만을 고려한 나머지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의지의 남용을 통하여 반역하고 타락할 것을 알고도 막지 않으셨다는 반대자들의 막다른 불만을 바로 짚어낼 수 있는 “허용적 작정”을 창세기 주석에서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의 예정론적 공헌에서 칼빈만의 독창적인 부분이 한층 더 크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아우구스티누스가 신학자로서 또 사상가로서 너무나 크고 원대한 숙고를 탁월하게 펼쳐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독창성은 창세기의 구조적 이해와 진술의 심층적 접근에 있다. 그가 창조사역의 6일을 성경 전체로 확대하여 세대를 구분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는 이유는 마니교도들의 해괴한 성경 접근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성경을 오해하고 왜곡하도록 만드는 신성모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성경을 볼 수 있는 시각을 띄워 주려는 의도에서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의 이런 통각적 성경관은 이후 교회사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쳐서 신학적인 진보를 가능케 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의 탁월성이 칼빈의 독창력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두 사람이 다루는 이중예정 교리는 단연코 성경에 사도의 증거로 기반 되어 있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선임자로서 사도들의 증거와 일치시킨 신학적 결론에 따라 칼빈은 자신의 당대에서 논적들에게 너무나 정의롭고 당당하게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선택의 결과와 유기의 최종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돌려지는 결론으로 맺고 있다. 본 논문에서 검토된 바와 같이 예정 사상은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으며 위대한 교부의 강조점은 성경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높이는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신학적 공헌에 힘입은 후대의 칼빈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성경 해석을 통하여 더욱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구속적 관점에서의 교리들을 전개하면서 하나님의

      • 칼빈의 경제윤리의 현대적 의의

        이호찬 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 201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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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창조 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칼빈의 경제윤리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본 논문을 출발하면서 16세기의 사회ㆍ경제적 배경 속에서 나온 칼빈의 경제사상과 윤리가 21세기인 오늘에 적용 가능한 가? 라는 문제의 답은 칼빈의 경제윤리가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그리고 성화를 강조한 것으로서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임을 알게 해주었다. 칼빈은 모든 경제문제는 타락한 인간의 탐욕과 불순종에서 시작되었음을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경제의 문제는 구조 악 이전의 신앙의 문제요, 윤리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경제생활에 있어서 윤리의 문제는 다른 윤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제 본 논문에서 살펴본 칼빈의 경제윤리를 통해 체득한 ??의 원리들을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안해 본다. 첫째, 경제활동을 하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그네 의식”이다. 칼빈은 나그네 의식을 가지는 것에서 두 가지의 부수적인 원리들을 제시한다. 먼저는 세상에 속한 것들을 조금 떨어진 시각에서 내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바라보라는 것이며, 둘째는 가난과 부유함에 억눌리지 말고 초연하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성도는 자신이 나그네라는 것을 인식할 때에 올 바른 물질 사용을 할 수 있으며, 아울러서 현세에서의 상황에서 우리는 자유 함을 가지게 된다. 둘째, 자기부인을 통한 소유권의 회복이다. 우리는 우리자신과 우리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소유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 우리는 우리자신의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 주어진 것임을 분명히 인식할 때 악하고 비뚤어진 방법을 통해 부를 이루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게 있는 것들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위탁되어 있는 것들은 어느 날인가에는 그 것들에 대하여 회계해야 한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아가자. 이를 위해 교회공동체 안에서 기독교경제윤리에 관한 교육이 칼빈의 경제윤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를 제안해본다. 오늘날 교회공동체는 헌금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만, 헌금을 통해 드려지는 재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이 있다. 이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청년들에게,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장년 성도들에게 바른 경제윤리를 교육하여, 부정부패와 뇌물에 찌들어 있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의 구별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므로 새 생명을 소유한 교회가 진리의 등대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준을 제공하는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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