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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 송절동 유적의 철기유물 변화

        서문영(Moon-young Seo)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2019 중원문화연구 Vol.27 No.-

        청주지역의 원삼국시대 철기문화 연구는 4세기 무렵의 백제문화의 확산과 관련하여 이해되어 왔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청주지역의 정치집단보다 백제의 진출 시점 또는 지배력 확대 과정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한국고대사 및 고고학 연구가 삼국을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삼국의 ‘주변 지역’은 소외되었다. 최근 조사된 청주 송절동 유적은 지금까지 발굴된 다른 유적에 비해 여러 성격의 유구가 종합되어 주목된다. 철기유물 역시 고루 출토되었는데, 해당 유물은 당시 이 일대를 기반으로 성장한 정치집단의 철기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청주 송절동 유적에서 출토된 철기유물을 중심으로 변화양상을 검토하여 철기유물의 변화가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한반도 철기문화의 도입과 확산은 중국과 연관된다. 특히 원삼국시대 중서부지역의 철기문화는 秦·漢시대와 관련이 깊다. 이러한 맥락에서 철기의 분류는 漢代의 분류안에 따라 진행하였고, 검토대상 철기는 형식적 속성의 변화에 시간의 흐름이 가장 잘 나타나는 기종을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청주 송절동 유적의 철기는 생산공구류의 정·부, 무기류의 도·촉·모, 마구류(재갈)·양단환부봉으로 구분하였으며, 개별 편년의 검토를 통하여 변화상을 도출하였다. 철기의 변화양상은 크게 3단계로 설정하였다. Ⅰ단계 도입기, Ⅱ단계 정착기, Ⅲ단계 발전기이다. Ⅰ단계 도입기는 철기유물이 출토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A형식의 정(판상철부형)·부(공부단면 장방형·말각방형·타원형/장방형)·촉(무경만입식)·모(관부돌출/직기형)가 주로 출토되었다. 대표적인 공반토기 유물의 조합은 유개대부호·원저단경호·원저발형토기이다. 이와 같은 유물의 조합은 오산 궐동유적·아산 진터유적 등의 중서부 해안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이들 유적은 대체로 2세기 중반부터 3세기 초반으로 편년된다. 청주 송절동 유적의 축조집단은 이전 시기부터 존재했던 지역집단에서 기원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낙랑의 유이민이 서해안로를 통해 유입되면서 철기문화가 보급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청주지역의 지역집단은 중서부 해안지역으로부터 철기문화를 수용하면서 한층성장했을 것이다. Ⅰ단계에서 보이는 철정과 무기류의 출토양상으로 보아 청주 송절동 일대를 기반으로한 정치집단은 철기문화를 수용하여 이전보다 체계적인 정치집단으로 변모하면서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Ⅱ단계 정착기는 정은 출토되지 않으며 B형식의 부가 출토된다. A형식(무환두/무관)의 도가 새로이 등장하며 B형식(관부축약/직기형)의 모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촉은 A형식(무경만입식)의 전통이 유지되는 가운데 B형식(무경공부식)과 C형식의 1단경식 촉이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양단환부봉이 새로이 등장한다. 시기적으로는 3세기 중반부터 3세기 후반에 해당한다. 양단환부봉이 출토되는 중심시기는 3세기 중반부터 최대하한은 4세기 초반으로 편년된다. 양단환부봉은 청주·천안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충청도 지역에서만 출토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양단환부봉과 함께 출토되는 토기는 복수의 원저단경호와 평저발형토기가 주로 부장되는데 대체로 유사한 공반양상을 보이고 있다. 양단환부봉의 존재는 청주·천안 지역 즉 미호천 중류지역과 병천천 유역의 정치집단이 이전시기부터 형성된 관계를 바탕으로 다른 지역과는 구분되는 문화를 공유하였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Ⅲ단계 발전기는 B형식의 정(타래형)·C형식(공부 단면 형태 원형/평면 형태 플라스크형)의 부가 중심을 이룬다. 무기류는 B형식(편관·양관/무환두식·환두식)의 도·C형식(2단경식)의 촉·C형식(관부 축약형/공부 연미형)의 모가 중심을 이루며 마구류가 출토된다. Ⅲ단계는 4세기 초반부터 4세기 중반이후로 편년된다. 타래형 철정은 철기의 생산과 관련된 가장 직접적인 유물로 다수의 생산시설과 함께 출토되어 철기의 생산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청주 송절동 유적 축조집단은 이 시기에 기승문화가 도입되면서 직접적인 철기의 생산을 통해 병종체계를 개편하는 등의 변화를 주도하였다. 주변 유적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면 적어도 4세기까지는 지역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독립된 정치집단으로 성장을 지속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청주 송절동 유적의 축조집단은 2세기 중반부터 4세기까지 이 일대의 유력한 정치집단으로 자리하였고,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주변 정세의 변화에 주도적으로 대응하였다. 이후 백제의 문화가 전파되어 신봉동고분군을 축조할 당시에도 여전히 백제를 구성하는 지역 정치집단으로서 그 영향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 KCI등재

        중원경·북원경 지역의 역사문화콘텐츠 개발 방안

        장충희(Choong-hee Jang)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2025 중원문화연구 Vol.35 No.-

        중원경(충주)과 북원경(원주)은 통일신라 5소경 중 핵심 지역으로 풍부한 역사문화유산을 지녔으나 현대적 콘텐츠 활용이 미흡하고 대중 인식 반영도 부족하다. 본 연구는 두 지역 역사문화콘텐츠의 지속가능한 활용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고유 자원 특성을 분석하고 소셜 미디어 텍스트마이닝으로 대중 인식을 파악하였다. 연구 결과 중원경·북원경을 연계 활용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으며, 다층적 역사자산은 풍부한 스토리텔링을 가능케 하고, 내륙 교차로 및 산악 관문이라는 입지는 독자적 네트워크 강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온라인 담론 분석에서는 대중의 관심이 주로 통일신라 유산에 집중되어 있지만 현대적 콘텐츠 개발과 관광에 대한 기대도 나타났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역사 스토리텔링 강화, 연계 관광루트 개발, 교육 프로그램 연계, 디지털 콘텐츠화, 주민 참여 확대 등 5대 전략을 제안하였다. 또한 국가 K-컬처 진흥 및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연계하여 두 지역을 통합 문화브랜드로 육성할 것을 제언하였다. 제시된 전략은 지역 정체성 강화와 문화관광 활성화에 기여하며, 유사 지역에도 적용 가능한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Jungwon-gyeong (Chungju) and Bukwon-gyeong (Wonju) were key regional centers in Unified Silla with rich cultural heritage, but modern content development efforts have been limited and have not adequately reflected public perspectives. This study aims to propose sustainable strategies for utilizing these regions’ historical and cultural assets by examining their unique attributes and analyzing public perception via social media text mining. Results show that jointly leveraging the two regions yields synergy, their multi-layered history enables rich storytelling, and their roles as an inland crossroads and a mountain gateway offer a unique network advantage. Online discourse analysis indicates that public interest focuses on the regions’ Unified Silla heritage but also reflects expectations for modern content and tourism. Based on these findings, five strategies are proposed: enhancing historical storytelling, developing linked tourism routes, integrating educational programs, digitizing content, and expanding community participation. The plan aligns with national cultural promotion and balanced regional development initiatives, and suggests a unified cultural brand encompassing both areas. These strategies can revitalize the regions, offering a model for others.

      • KCI등재

        중원경(中原京)의 치소(治所) 범위와 구조

        어창선(Chang-sun Eo)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2025 중원문화연구 Vol.35 No.-

        오늘날 중원역사문화권의 용어는 신라시대 ‘中原京’에서 시작되었다. 충주를 중심으로 그 일대를 아우르는 중원경은 신라의 한강유적 진출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제2의 행정수도로 역할을 하였다. 조사자료가 축적되면서 중원경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게 된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 중원경의 행정 치소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으며, 도시의 구조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고고학적 접근으로 중원경의 치소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중심이었다. 최근 문헌으로 중원경의 범위를 설정한 연구는 상당히 의미 있다. 문헌으로 접근한 중원경의 범위와 그동안 고고학적인 연구성과를 종합했을 때 중원경의 범위는 오늘날 충주시와 경계를 거의 같게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원경의 행정치소는 중앙탑면 탑평리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가 나당전쟁을 계기로 행정치소의 중심지가 오늘날 충주시내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최근 충주사고지나 안림 택지개발지구 등의 새로운 고고학적 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The contemporary concept of the Jungwon Historical and Cultural Area derives from Jungwongyeong, a major regional center established during the Silla Dynasty. Centered on present-day Chungju, Jungwongyeong functioned as a strategic base for Silla’s expansion into the Han River basin and served as the kingdom’s secondary administrative center. As archaeological and historical evidence continues to accumulate, the historical reality of Jungwongyeong has become increasingly well defined. Nevertheless, further research is required to accurately identify the location of its administrative center and to reconstruct the city’s overall spatial structure. Until recently, attempts to identify the administrative center relied primarily on archaeological evidence. In this context, recent studies employing textual sources to delineate the territorial boundaries of Jungwongyeong are particularly significant. When these textual interpretations are synthesized with archaeological findings, the spatial extent of Jungwongyeong is shown to correspond largely with the present administrative boundaries of Chungju City. Current scholarship suggests that the administrative center was initially located in the Tappyeong-ri area of Jungangtap-myeon. Following the Silla–Tang War, however, the center appears to have been relocated to what is now downtown Chungju. This transition is supported by recent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at sites such as the Chungju Sago(National History Archives) Site and the Allim District excavation site. Evidence from the Ruam-ri and Ha-guam-ri tumulus clusters, the Tappyeong-ri site, and newly identified remains in central Chungju indicates that Silla’s political and military presence in the Jungwon region was firmly established by the mid-sixth century. By the late seventh century, a planned urban structure—centered on the area of the present-day Chungju Eupseong(walled town)—had clearly emerged as the administrative core, reflecting the relocation of the governing center from Tappyeong-ri to downtown Chungju. Finally, the identification of Gukwonseong, constructed in 673 CE during the reign of King Munmu, with the present-day Daerimsanseong is well supported. This interpretation is further supported by the broader international geopolitical context of the period, Silla’s heightened defensive posture following unification, and the material characteristics of Unified Silla–period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Daerimsanseong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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