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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권 청관고전문학회 1999 고전문학과 교육 Vol.1 No.-
판소리사설의 형성 및 변모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으리라 추측된다. 본고는 흥보박사설을 대상으로 하여 그 중 중요한 한 경로를 더듬어 본 것이다. 그 결과 흥보박사설은 「성조가」 전승의 영향 하에서 형성되었고, 한 동안 장면 극대화의 과정을 겪다가 19세기 말 내지 20세기 초엽에는 급속히 축약 새편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는 아마 판소리사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을 것이다. 판소리사에서 19세기는 양반 향유층의 등장에 따른 변모의 시기로 여겨져 왔다. 일곱 바탕의 판소리의 실전도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은 판소리 향유사의 실상과도 어느 정도 부합할 뿐 아니라, 판소리사설을 역사적 관점에서 읽을 수 있게 했고 또한 판소리 작품에 대해서도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다.
손태도 청관고전문학회 2000 고전문학과 교육 Vol.2 No.-
잡가는 정가에 비해 천시되는 노래들인데 오히려 그러한 노래들을 실은 책들이 집가집이란 것을 내세우며 십여 종 이상 10판 가까이씩 20년 이상 발간된 것은 시가사에 있어 특이한 시대였다 할 수 있다. 이른바 ‘잡가 시대’인 것이다. 1910~20년대는 잡가라고 천시되던 노래들이 시대의 변모에 따라 부상되어 그 시대의 노래 문화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잡가들은 경기 잡가, 선소리 산타령, 경상남도 민요, 서도좌창, 판소리 단가의 일부, 일반 가사의 일부 등으로 모두 일반 서민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들이었다. 이러한 노래들이 가곡 등의 정가 문화 시대에 잡가로 천시되다가 근대 서민 문화가 시민 문화로 발전하며 그 시대 노래 문화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렇게 천시되던 일반 서민 문화가 1910~20년대에 문화의 전면에 나오게 된 것은 보다 광범위한 고찰이 요구되지만, 우선 광무대 등의 대중 공연장의 일반 공연, 상업적 목적의 구활자본 잡가집들의 대량 발간, 유성기 음반의 보급 등 근대 대중 문화 수단의 발달 등의 영향이 컸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1910~20년대에 잡가로 간주된 이들 노래들은 오늘날 더 이상 잡가로 간주되지 않는다. 경기 잡가, 선소리 산타령, 경서남도 민요, 서도 좌창, 판소리 단가, 일반 가사들로 남아 있을 뿐이다. 가곡 등에 의한 정가 문화가 사라졌기에 이들은 더 이상 잡가로 간주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1910~20년의 잡가 연구는 정가에 상대되는 명칭으로서 잡가에 대한 시각에 입각하여 이 당시에 잡가로 간주된 이들 개별 노래들에 대한 개별 연구들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1910~20년대의 잡가를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