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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중부지역 청동단검문화의 변천과 교류

          정현승 중부고고학회 2021 고고학 Vol.20 No.2

          North Korea and the central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are important places in the creation and transition of bronzeware culture on the peninsula. Thus, this study investigates the bronze dagger culture of the regions based on the combinations and transition of bronzeware from the appearance of small bronzeware preceeding weaponry bronzeware. The first phase saw only small pieces of bronzeware prior to the creation of the bronze dagger culture. It is mainly divided into the areas of central Gwanseo ~ Haeseo in the west and those of northern Gwanbuk, Yeongdong, and Yeongseo in the east. It is estimated that bronzeware was introduced along the East Coast from the Primorye region in the east. In the west, bronzeware must have been introduced through exchanges with Liaoxi and Liaotung. The second phase witnessed the appearance of bronze weaponry including early Mandolin-shaped bronze daggers, Mandolin-shaped bronze spears, and bronze arrowheads. Bronze weapons of various types and shapes were found in the southern Gwanseo and Haeseo areas, including early lute-shaped bronze daggers, lute-shaped bronze spears, and bronze arrowheads; however, the amount of bronze weapons was limit in the central region with only bronze daggers and arrowheads. Bronzeware was introduced through exchanges with Liaoxi and Liaotung. There was a clear phenomenon of localizing imported bronzeware, such as the reprocessing of the handle end of a knife and the body of a sword. The third phase had typical and atypical Mandolin-shaped bronze daggers and was characterized by the appearance and spread of fan-shaped bronze axes that were used as tools. Atypical Mandolinshaped bronze daggers were distributed mainly in the central and southern Gwanseo and Haeseo areas, which had clear differences in the combination of bronzeware from southern Gwanbuk, whose main items were lute-shaped bronze spears and fan-shaped bronze axes. Like the second phase, localized bronzeware was made through close exchanges with Liaoxi and Liaotung. The fourth phase witnessed the emergence of slender bronze daggers typified in the Korean Peninsula along with localized slender bronze daggers by area. The amount of bronzeware plummeted in Yeongseo and Yeongdong, whereas they hugely increased in Gyeonggi thanks to exchanges among Gwanseo, Gwanbuk, Hoseo, and Honam. At this stage, all types of bronzeware had clearer differences in form and combinations from the northeastern areas of China. Finally, the bronze dagger culture ended in North Korea~central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after the Four Commanderies of Han were set up in 108 B.C. The center of the bronze dagger culture made a shift to Yeongnam, and some bronzeware of Yeongnam was found in Gyeonggi and southern Gwanbuk areas. 북한과 중부지역은 한반도 청동기문화의 성립과 변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공간이므로, 이 일대의 청동기 조합 변천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이 지역의 청동단검문화를 두고, 무기류 청동기가 등장하기 이전 즉 소형청동기가 출현하는 시기부터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았다. 1단계는 청동단검문화가 성립되기 이전의 소형청동기만 확인되는 시기로서, 크게 서쪽의 관서지역 중부~해서지역까지와 동쪽의 관북지역 북부와 영동·영서지역으로 대분된다. 동쪽의 청동기는 연해주에서 동해안을 따라, 서쪽은 요서-요동과의 교류를 통하여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2단계는 초기 비파형동검을 비롯한 비파형동모와 동촉 등 청동제 무기류가 등장한다. 관서지역 남부와 해서지역에서는 초기비파형동검과 비파형동모, 동촉 등 다종 다양한 청동 무기류가 확인되는 것에 반해 중부지역에서는 수량도 적고 기종 또한 동검과 동촉만이 확인된다. 청동기들은 요서-요동지역과의 교류를 통하여 유입되었으며, 슴베와 검신의 재가공 등 재지화 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3단계는 전형비파형동검과 변형비파형동검을 표제로 하며, 공구류인 선형동부의 등장과 확산이 특징적이다. 변형비파형동검은 관서지역 중부와 남부, 해서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며, 비파형동모과 선형동부가 중심인 관북지역 남부와는 청동기 조합상의 차이가 명확하다. 2단계와 동일하게 요동-요서지역과 밀접한 교류 속에서 재지적인 청동기가 제작된다. 4단계는 각 지역별로 지역화 된 세형동검의 등장과 함께 한반도에서 전형화 된 세형동검이 등장한다. 영서·영동지역의 청동기는 감소하며 관서-관북-호서·호남지역 간의 교류로 인하여 경기지역에 청동기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앞 단계에 비하여 각종 청동기의 형식과 조합에서 중국 동북지역 과의 차이가 명확해진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108년 한사군의 설치를 기점으로 북한~한반도 중부지역에서 청동단검문화가 철기문화로 변화한다. 청동단검문화의 중심이 영남지역으로 변화함에 따라 경기지역과 관북 남부지역에 영남의 청동기가 일부 확인되는 점이 특징적이다.

        • 원삼국~백제 한성기 북한강유역 철기문화의 양상

          최영민 중부고고학회 2017 중부고고학회 학술대회논문집 Vol.2017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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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삼국시대 한반도 중부지역 철기문화에 대한 연구는 19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李南珪 1993). 이 시기에는 낙랑군의 억압정책에 의해 서북한지역이나 영남지역에 비해 철기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하였으며, 2000년대 중반까지 중부지역의 철기문화는 다른 지역에 비해 빈약한 모습이었다(이남규 2002; 2005). 하지만 2000년대 중반 가평 대성리유적(京畿文化財硏究院 2009)에서 280여점의 철기와 함께 철재 등 제철관련 유물도 출토되었다. 또한 철제유물에 대한 금속학적 분석결과(大澤正 己 2009; 최영민 2015) 주조철기를 산화정련(내림탈탄)하고, 괴련철을 정련단야하여 만들어진 괴련강 소재를 이용해 단조철기를 제작하는 등 높은 수준의 제철기술을 갖고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중부지역 철기문화에 인식이 전환되었다. 이후 오산 수청동(京畿文化財硏究院 2012)·김포 운양동(한강문화재연구원 2013)유적 등 분묘유적이 발굴 조사되면서 다량의 철제무기들도 출토되었다. 그리고 최근 춘천 우두동유적(한강문화재연구원 2017)에서 200여점의 철기와 단야로·철재 등 정련단야 관련 유물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조사 성과에 따라 원삼국시대 중부지역의 철기문화는 철기의 종류와 수량, 제철기술의 수준 등에서 한반도 다른 지역과 대등한 것으로 밝혀졌다. 화성 기안리유적(畿甸文化財硏究院 2007)이나 평택 가곡동유적(三江文化財硏究院 2015)의 예로 보아 제련기술은 오히려 다른 지역 보다 앞선 시기에 받아들였다. 따라서 원삼국시대 중부지역의 철기문화나 제철기술은 결코 낙후되지 않았으며, 낙랑과의 교류 속에서 자체적인 철기문화를 영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 KCI등재

          한반도 북부지방 토기문화를 통해 본 중부지방 원삼국문화의 계통

          유은식(Yoo, Eun-shik) 중부고고학회 2014 고고학 Vol.13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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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중부지방 원삼국문화의 성립배경과 계통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재검토하고자 작성되었다. 국내 학계에서 서북한지역의 명사리형토기와 타날문토기 또는 세죽리-연화보유형의 토기문화가 중부지방으로 확산되어 원삼국문화가 성립되었다는 견해가 다수 연구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서북한지역의 토기문화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반도 북부지방을 서북한지역, 압록강 중하류지역, 동북한지역으로 구분하고, 소지역별로 청동기후기~기원 전후까지의 토기문화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았다. 특히 서북한지역 유적에서 기존의 이해와는 달리 점토대토기와 외반구연 무문토기가 공반하거나 화분 형토기와 무문토기가 함께 출토되는 양상이 확인되어 이 지역 토기문화가 단선적으로 변천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중부지방에서 화분형토기가 출토된 대성리 B지구 등의 유적군과 중도식무문토기와 낙랑(계)토기가 공반된 유적군을 비교검토하여 중도식무문토기의 서북한지역 기원설의 문제점을 재차 지적하였다. 최근 발굴보고된 함주 신하리유적에서 단결-끄로우노브까 토기와 서북한지역의 활석혼입계토기가 공반되는 양상을 통해 함흥 일대에서 양 지역의 토기문화가 혼합되어, 동해안 해안가와 추가령구조대를 따라 영동지역 및 영서지역으로 확산되어 소위‘중도유형문화’가 성립한 것으로 추론하였다. 또한 중도식 주거지의 형태, 쪽구들의 계통, 분묘 부재문제 등을 통해서 중부지방 원삼국문화의 기층문화는 동북한지역의 문화와 좀 더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보았다. This study was prepared to reexamine the existing opinion on the foundation background and the genealogy of the Proto Three Kingdoms culture in the central region. In the academic world, the opinion that the Myongsary type pottery in the west of North Korean region and the paddled pattern or the Sejukri-Yeonhwabo type pottery culture spreaded into the central region to establish the Proto Three Kingdoms culture is receiving the support from the majority of researchers, but close review had not be made on the pottery culture in the west of North Korearne gion. Therefore, in this study, the northern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was divided into west of North Korean region, mid-downstream region of Amnokgang, and east of North Korean region, and the change process of the pottery culture from the latter part of Bronze Age to the period of origin was examined for each smll aregions. On the southern region sites in west of North Korea, unlike the existing studies, the clay stripe pottery and the outward-lim pottery were associated and the flowerpot type pottery and the local plain pottery were confirmed to be excavated together, showing that the pottery culture in this region did not change in unilinear. Also, site group of Daeseong-ri B district excavated with the flowerpot type pottery in the central region and the site group associated with the Jungdo type pottery and the Lelang type pottery were reviewed comparatively to point out again the problem of the theory of the origin of the Jungdo type pottery in the west of North Korean region. As an alternative, through the aspect of the Duanjie-Grounovka pottery in the east of North Korean region in the Sinha-ri site of Hamju recently reported of excavation, and the talc-tempered pottery in the west of North Korean region associated, it was assumed that the pottery culture of both regions in Hamheung were mixed to be flowed into the Yeongdong region and the Yeongseo region through the Chugaryeong valley to establish the so-called ‘Jungdo type culture’. Also, through the types of the Jungdo type dwelling site, genealogy of the underfloor heating system, and the problems in the absence of graves, the basic culture of the Proto Three Kingdoms period in the central region was seen to have closer relation with the archaeological culture of the east of North Korean region.

        • KCI등재

          중부지방 백제 한성기 축조·신라 재사용 석실분과 고구려·신라 연속조영 고분군

          최병현(Choi, Byunghyun) 중부고고학회 2015 고고학 Vol.14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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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배국가가 여러 차례 교체된 삼국시대 중부지방에서는 삼국의 고분문화가 차례로 전개되었다. 삼국은 처음에는 각각 특색있는 고분문화를 발전시켜 나갔으나, 후기에는 모두 한 석실에 추가장을 할 수 있는, 동질성이 강한 횡혈식의 석실봉토분을 축조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중부지방에서 조사된 횡혈식석실분 중에는 백제 한성기에 축조되어, 신라가 한강 하류역에 진출한 뒤까지 매장행위가 이루어진 고분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6세기 중기 신라가 중부지방에 진출할 무렵의 특수 상황에서 백제 한성기의 석실분을 열어 재사용한 것으로, 한시적이고 예외적인 사례들 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 중 가락동 3호분이 백제 한성기에 축조된 것으로서, 서울 석촌동・가락동 백제고분군 소속의 횡혈식석실분으로 재해석되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는 백제 한성기 수도의 중심고분군에서 석실봉토분이 기단식의 석실적석총과 함께 축조되고 있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중부지방에는 1~2기의 고구려 횡혈식석실분과 그보다 많은 수의 신라 횡혈식석실분 또는 횡구 식석곽분들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고분군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중부지방이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을 때 시작된 고분 조영이 신라의 영토가 된 뒤에도 계속되어 형성된 것으로, 지역의 토착 세력들이 두 국가의 지배기에 걸쳐 연속 조영한 고분군들이라 판단된다. 이 고구려・신라 연속조영 고분군들은 고분 구성상 몇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지는데, 그것은 지배국가 교체기 지방 토착사회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중부지방의 고분문화에는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The central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fell under the domination of various states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As a result, the burial cultures of the Three Kingdoms came to established consecutively in this region. At first, the burial cultures of the Three Kingdoms were characteristically different from one another but in the later period, the use of stone chamber tombs with earthen mounds and corridor entrances, which allowed additional internments into a single burial chamber, came to be commonly adopted by all Three Kingdoms. Amongst the stone chamber tombs with corridor entrances identified thus far in the central region of Korea are examples which were first constructed during the Hanseong Baekje period and also evidence use during the period following Silla expansion into the lower reaches of the Han River. These Hanseong Baekje tombs, which had originally been sealed off, had come to be opened and reused again in the sixth century amidst the extraordinary circumstances of the time, which witnessed Silla expansion into the central region in the mid-sixth century. Such examples of reuse are considered to be temporary and exceptional. One example is Garak-dong Tomb 3, which was constructed during the Hanseong Baekje period - the reuse of this tomb located within the Seokcheon-dong and Garak-dong Baekje burial ground into a stone chamber tomb with earthen mound and corridor entrance is particularly significant. This is because it shows that stone chamber tombs with earthen mounds may have been used alongside stone-mound tombs with stone chambers and stair-shaped stylobates in the central burial ground of the Baekje capital of the Hanseong period. Also located within central Korea are a number of small burial grounds which consist of one or two Goguryeo stone chamber tombs with corridor entrances alongside a greater number of Silla stone chamber tombs with corridor or horizontal entrances. It is believed that these burial grounds were first established at the time when the central region was under Goguryeo control and continued to be used even after this region became Silla territory. These burial grounds were used by the indigenous communities of the region that experienced both Goguryeo and Silla rule. Such burial grounds can be divided into a number of categories, according to the different compositions of the Goguryeo and Silla tombs, which can provide insights into the strategies of the indigenous groups at this time of transition in the hegemony of the region. Due to such circumstances, a diversity in burial culture can be witnessed in the central region of Korea which cannot be observed elsewhere.

        • KCI등재

          中部地域 環濠遺蹟에 대한 一檢討

          李尙燁(Sangyoup Lee) 중부고고학회 2006 고고학 Vol.5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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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호는 최근까지 대부분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확인되었으나, 조사의 증가에 따라 중부지역에서도 다수 확인되었다. 따라서 중부지역에서 환호 중 안성 반제리유적의 환호를 중심으로 그 기능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환호는 전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시기적으로는 신석기시대 이후부터 출현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주거지와 동반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이러한 환호의 기능에 대해 대부분 방어ㆍ경계ㆍ의례를 위해 조성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중부지역에서 확인된 환호는 안성 반제리유적ㆍ부천 고강동 적석유구ㆍ화성 동탄 동학산유적ㆍ오산 가장동유적ㆍ부여 송국리유적ㆍ청원 대율리유적ㆍ강릉 방동리유적 등이며, 입지를 통해 산정형과 구릉형, 형태를 통해 테뫼형 환호와 포곡형 환호로 구분할 수 있다. 안성 반제리유적에서 확인된 환호는 입지상 산정형, 형태상 태뫼형에 해당된다. 환호의 내부에는 환호가 처음 사용되었던 시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지 않으며, 정상부에 비교적 큰 규모의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한편 환호는 기능이 상실됨에 따라 폐기되었으며, 이후 환호 내부 또는 환호를 파괴하고 초기철기시대의 주거지가 조성되었다. 안성 반제리유적 환호의 사용시기는 환호의 퇴적토에서 출토된 유물 원형정토대토기와 두형토기 등을 통해 B.C. 5세기에 처음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폐기 시기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한편 환호 폐기 후 조성된 주거지 출토유물 중 구연의 단면이 원형에서 방형으로 변화되는 토기를 통해 반제리유적은 B.C. 2세기 이전에 폐기된 듯하다. 환호의 기능은 초축시 내부에 생활과 관련된 공간인 주거지가 확인되지 않아 환호의 제기능 중 儀禮 즉, 祭儀의 기능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Ditches were discovered around the yeongnam area until a recent date but discovered around the middle area by increased research. So we will inspect the function of ditches of the Ban je-ri ruins among ditches of the middle area. Ditches are distributed all over the world. It appeared after the New Stone Age and most of it usually be accompanied with habitation site. We understand that the function of ditches is for defense, precaution and ceremony. Ditches which were discovered around the middle area are the Ban je-ri ruins in the Anseong city, the Jeokseok synonymous phrase in the Gokang-dong. Bucheon city, the Donghak mountain ruins in the Dongtan. Hwaseong city, Gajang-dong ruins in the Osan city. Songguk-ri ruins in the Buyeo-gun, Bangdong-ri ruins in the Gangneung city, And that is classified a mountaintop type and hill type by location and a headband type and pile up block shape. Ditches were discovered in the Ban je-ri. Anseong city is a mountaintop type by location and a headband type by shape. The habitation site where was used at first stage wasn’t discovered in the inside of ditches and there is relatively big rock in the top. On the other hand ditches were disused by losing function. Then the habitation of the first Iron Age was formed after destroying the ditches or inside of ditches. We presumed the used time of the ditches of Ban je-ri. Anseong city is B.C. 5th century through bowl with round clay stripe and mounted dish from a sedimentary soil of the ditches. Disused time is unknown but we presumed the disused time is before B.C. 2nd century through dish section was changed to square shape from round shape among excavated ruins on the habitation which was formed afterdisusing ditches. We presumed that function or ditches is ceremony because the habitation where is a space in relation to life wasn’t discovered when it was under construction.

        • 중부고고학회 2014년 정기학술대회 토론문 : 국가성립 전야의 중부지역_송만영

          송만영 중부고고학회 2014 중부고고학회 학술대회논문집 Vol.201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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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삼국~한성백제기 낙랑계 토기 및 철기에 대하여-북한강유역을 중심으로-

          권도희 중부고고학회 2017 중부고고학회 학술대회논문집 Vol.2017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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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형성기인 원삼국시대는 새로운 물질문화가 급속도로 유입되던 시기로 漢에 의해 세워진 樂浪郡이 보유한 선진문물의 영향력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 일제강점기에 긴급조사된 토성 및 몇권으로 정리된 분묘자료와 해방 후 북한학계에 의해 간략하게 정리보고된 자료들로는 그 세밀한 면모를 알기 어려웠다. 고고학계에서 낙랑의 물질문화에 대해 주목하게 된 계기는 1980년대 발굴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분묘, 토기, 철기, 장신구 등이 진·변한지역에서 나타나면서 이들의 유래와 유입경로에 대해 언급하면서 부터이다. 중부지역에서는 2000년대 초반에 주구를 돌린 굴립주건물지와 공방지, 단야로 등의 유구에서 니질태토에 녹로흔이 많이 가미된 토기와 낙랑기와의 제도술이 그대로 반영된 송풍관 등이 화성 기안리유적과, 단경호와 화분형토기가 세트로 부장된 가평 달전리유적 등이 조사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북한강, 한탄강, 임 진강 주변유적의 조사예가 증가하면서 낙랑과 관련한 유물들도 꾸준하게 증가되고 있다. 중부지역의 발굴자료를 바탕으로 낙랑문물과 그 영향에 대한 연구는 크게 토기와 금속기로 나누어 진행되어 왔다. 토기에 대해서는 개별기종별 제작방법 검토와 비교작업을 시작으로 점차 유적의 조사예가 증가되면서 지역별 변화양상과 유적의 형성배경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금속기에 대해서는 특정기종의 유무와 형태적 변화양상을 통해 양지역간 교섭관계를 유추하였으며 최근 철기제작시설과 관련한 유구·유물들이 확인되면서 연구에 활기를 띄고 있다. 이글에서는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연구들을 바탕으로 지역별 변화양상과 특이점을 파악한 후 북한강유역의 취락유적이 밀집한 춘천지역에서 나타나는 낙랑문물의 영향과 변화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중부고고학회 2014년 정기학술대회 토론문 : 국가성립 전야의 중부지역_심재연

          심재연 중부고고학회 2014 중부고고학회 학술대회논문집 Vol.2014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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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중부지역 고구려계 구들의 형식과 변화양상

          박천택(Park, cheon-taek) 중부고고학회 2018 고고학 Vol.17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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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부지역의 고구려계 구들은 평면형태에 따라서 ‘ㅡ’자형ㆍ‘ㄱ’자형ㆍ‘ㄷ’자형의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며, 고래 곬의 수에 따라 5개의 세부 형식이 확인된다. 중부지역에 고구려계 구들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단계는 고구려 1기로 5세기 후엽에서 6세기 초엽에 해당하며 ⅠㆍⅡ유형이 확인된다. 고구려 2기는 6세기 초엽에서 6세기 중엽으로 ⅠㆍⅡ유형이 모두 확인되며, Ⅱ유형에 비해 Ⅰ유형의 축조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는 보루가 갖는 특수성과 다른 유형에 비해 쉬운 축조 방식 때문으로 보인다. 신라 1기는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령하는 진흥왕 12년(551)부터 문무왕 8년(668)까지이며, 판석조식의 Ⅰ유형 구들과 더불어 기반토식 구들이 확인된다. 신라 1기에는 Ⅱ유형의 구들이 확인되지 않지만, 백제 지역에서 Ⅱ유형의 구들이 확인된다. 이는 고구려가 중부지방을 점령했을 당시 백제의 구들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신라 2기에는 Ⅰ유형의 구들과 함께 ⅡㆍⅢ유형의 구들이 모두 확인된다. 이 시기의 Ⅱ유형은 평면 형태 및 아궁이부가 고래부의 말단에 설치되는 등 기본적인 요소는 동일하지만 고래부의 장단비 및 아궁이부가 돌출되는 등의 변화상이 확인된다. Ⅲ유형은 현재까지 고구려기에 중부지역에서 확인되지 않으나 환인 오녀산성의 Ⅲ유형과 비슷한 Ⅲ유형이 화성 봉담과 경기도 광주에서 확인되어 주목된다. 신라 2기에 세 가지 유형의 고구려계 구들이 모두 확인되고 구들시설의 설치가 증가하는 것은 고구려 멸망 이후 중부지역으로 유민이 유입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중부지역 신라 주거지에서 보이는 ‘ㅡ’자형ㆍ‘ㄱ’자형ㆍ‘ㄷ’자형의 구들은 고구려계 구들에서 영향을 받아 축조되었음을 확인하였다. The hypocaust of Goguryeo in the middle area is divided into three types according to the flat surface shape:‘ㅡ’shaped, ‘ㄱ’shaped and ‘ㄷ’shaped, and five detailed forms are identified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smoke passage of the goraebu The first appearance of the hypocaust of Goguryeo in the middle area was the initial stage of Goguryeo, which was from the late 5th century to the early 6th century, and at the time, type I and type Ⅱ were confirmed. The second stage of Goguryeo was from the beginning of the 6th century to the mid-6th century, and at the time, both type I and type Ⅱ were confirmed, and compared to the type Ⅱ, the ratio of construction with the type I was relatively high. This seems to be due to the easy construction method compared to other types, along with the specificity of the fort. The initial stage of Silla was from the 12th year of King Jinheung(551) to the 8th year of King Munmu(6689), which occupied the Han River basin, and the hypocaust using the method to dig the raw soil as well as the hypocaust of type I using the method to use stone were confirmed. In the initial stage of Silla, the hypocaust of type Ⅱ was not identified, but was confirmed in Baekje area. It is believed that it influenced Baekje’s hypocaust when Goguryeo occupied the middle area. In the second stage of Silla, all of the type I, type Ⅱ and type Ⅲ were identified. The type Ⅱin the period has the same basic elements as before, such as the flat surface shape and the installation of furnace at the end of the goraebu, but changes in the aspect ratio of the goraebu and the protrusion of the furnace were identified. The type Ⅲ has not been identified in the middle area of Goguryeo period until now, but the type Ⅲ similar to that of Hwanin Onyo mountain fortress was found in Bongdam-eup, Hwaseong-si and in Gwangju, Gyeonggi Province, which being watched with keen interest. The reason why three types of the hypocaust of Goguryeo were confirmed in the second stage of Silla, and the installation of the hypocaust facilities was increased is presumed that refugees came to the middle area after the fall of Goguryeo. It was confirmed that the hypocaust of ‘ㅡ’shaped, ‘ㄱ’shaped and ‘ㄷ’shaped in the residential area of the middle area of the Silla period was constructed under the influence of the hypocaust of Goguryeo.

        • 원삼국~백제 한성기 북한강유역의 취락편년

          박중국 중부고고학회 2017 중부고고학회 학술대회논문집 Vol.2017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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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삼국~백제 한성기의 중부지역에서 배타적으로 확인되는 呂(凸)자형 주거로 구성된 취락의 편년연구는 박순발(1989, 2009)의 선구적인 토기편년과 함께 송만영(1999)이 제시한 주거지 평면형태의 변천안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북한강유역을 대상으로 한 편년은 김무중(2006)이 선구적으로 검토한 바 있고, 최근에는 경질 무문토기의 형식변천을 토대로 재구성한 성과(김무중 2014)를 제시하였다. 경질무문토기의 형식학적 변천은 이미 많은 연구자(김일규 2006, 진수정 2009, 이준호 2003·2009, 이승재 2009)가 시도한 바 있지만, 대체로 설득력 있는 성과를 제시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이성주 2010). 경질무문토기의 형식학적 변화에서 핵심이 되는 속성의 설정이나 변화의 방향성이나 연구자마다 달라 취락편년에 어떠한 관점이 유용한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최근 김준규(2013)는 주거지의 취사·난방시설 편년을 토대로 경질무문토기의 편년을 시도하였다. 지금까지 경질무문토기의 시간성을 민감하게 반영한다고 제시된 여러 속성을 동일한 관점에서 재검토하여, ‘구연길이와 외반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진적으로 증가’한다는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지역별로 제한적으로 적용되거나 사실과 다르다고 하는 상대적인 기준을 변별하였다. 이는 현 시점에서 경질무문토기의 편년을 둘러싼 가장 진전된 성과로 볼 만하다. 박경신(2011, 2012, 2015, 2016a, 2016b, 2016c)은 주거형태와 공반유물의 변천을 가장 종합적이면서 망라적으로 정리한 취락편년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였고, 북한강유역을 대상으로 한 취락편년도 아울러 검토한 바 있다. 그의 편년방법은 교차편년을 토대로 한 개별유물의 변천안을 제시함과 동시에 주거지의 장축방향을 토대로 한 동시간대의 주거군 설정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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