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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島嶼 僻地學校의 地域社會 實態調査硏究 : 全羅南道內 島嶼 僻地 單級學校를 中心으로

            姜宗煥 조선대학교 교육연구소 1979 교과교육연구 Vol.2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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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연적 기저와 주민의 생활개황 단급학교가 소재하고 있는 도서는 거의 낙도(76개교)로서 자연의 재해 중 특히 풍해가 많은 곳이 77.1%이며 한해가 많은 곳도 46.7%나 된다. 또한 교통, 통신수단이 빈약하여 주민과 학동들의 생활권과 경혐영역을 제한하고 있다. 표 Ⅱ-1에 의하면 아동들의 거주민지에서 중학교 소재지까지의 거리가 육로 5.9km, 해로 혹은 수로 8.3km로 되어 있는 것은 아동들이 중학교에 진학할 경우 통학상의 문제점을 예상케 한다. 한편 주민들의 의식과 생활개황을 보면 「촌락공동체의 해체과정」을 엿볼 수 있으며 양가감정에서 오는 가치 갈등현상이 현저하고 특히 경제문화면에 있어서의 상대적 낙후성을 드러내고 있다. 2. 인구적 기저 표집대상지역의 인구총수는 18,724명이며 세대수는 2,831세대이다. 따라서 1개 세대당 인구는 6.6명이다. 1977년 경제기획원의 발표에 다르면 1975년 현재 전국평균 세대당 인구수는 5.13명이며, 전남은 5.43명이다. 조사연도에 차이가 있기는 하나 표집대상지역의 세대당 인구가 전남이나 전국의 세대당 인구수보다 많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원인은 도서·벽지 지역에는 전통적인 확대가족이 상당히 잔존해 있다는 점과 이 지역의 생산양식이 「세대당 다인구」를 필요로 하기 때문으로 풀이 된다. 73년도부터 77년도가지의 5개년간 학생인구의 추세를 보면 대체로 감소되는 경향이다. 감소의 원인은 주로 전입인구보다 전출인구가 많은데에 있는 것 같다. 전출의 동기나 원인은 취업(구직) 취학, 결혼, 병역복무 등인데 주로 지역간의 생활수준의 격차가 가져오는 이촌현상으로 봄이 옳을 것이다. 여하간 이러한 학생인구의 감소현상이 계속된다면 장차 단급학교의 통폐합문제가 발생될 것으로 여겨진다. 학력별 인구를 보면 고졸이상의 학력의 소득자 비율이 2.2%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학생들의 가정학습에 결원요인의 하나로 될 것이며 특히 무학이 34.2%나 점하고 있는 사실은 성인교육의 필요를 절감케 한다. 3. 경제적 기저 이 지역주민의 생업을 보면 겸업이 많은데 농경지 보유실태는 다음과 같다. 호당 평균 경지 면적이 45.7a로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통계년보(1978년)에 의해 전국 및 전남의 호당 평균 경지면적과 비교해 보면 전국의 경우 답이 55.2a, 전이 40.6a로서 계95.8a이며 전남의 경우 답이 50.5a, 전이 33.9a로서 계84.4a이다. 이로 미루어 동 지역주미의 영농의 규모가 영세함을 알 수 있으며 더욱이 이 지역의 전은 개간지가 많으며 답도 수리시설이 빈약한 천수답이 많은 점에 비추어 그 저생산성을 규지할 수 있다. 한편 주민들의 연평균호당수입을 보면 도서지역 85만원, 벽지지역 73만원으로 평균 79만원이다. 상기한 연보에 따라 전국농가 연평균 소득 1,156,254원과 비교해 보면 이 지역주민들의 경제생활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제생활의 실태에 비추어 기본적인 생활의 욕구가 충족이 안될 뿐 아니라 여자의 교육, 특히 중등교육이상의 학비조달은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 믿어진다. 이는 교육정책에 앞서, 보다 적극적인 사회·경제정책이 동지역에 집중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필요를 말해 주는 것이다. 4. 사회문화적 기저 첫째로 혼인경향을 보면 20세 이하의 비율이 여자에 있어서 19.6%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조혼의 유습으로 볼 수도 있으나 생활의 빈곤, 성도덕의 변화 등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통혼권에 있어서 면내혼인이 46%로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면외의 군, 도, 도외혼을 합하면 43%로서 통혼권은 주민의 일상생활권을 넘어서는 양상도 보인다. 둘째로 종교분포를 보면 유·불교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 이는 전통사회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지만 주민들의 종교의식은 다양하며 원시적 샤머니즘도 혼재하고 있다. 특히 낙도주민들은 자연적 조건의 지배를 크게 받고 있으므로 자연형상에 대한 외경심이 강하며 운명적 생활권을 갖는 경우가 많다. 셋째로 문화시설 보유상황을 보면 정부의 도서 벽지 진흥을 위한 시책과 새마을 운동에 의하여 복지시설이나 공공시설이 정비되어 가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근대사회의 주요매체의 하나인 신문의 보급실태를 보면 총2,831가구 중 263가구(9.2%)만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한편 보건위생 시설은 전반적으로 미비상태다. 병원은 96개학구중 단 1개소만 있는 실정이다. 통신현황은 우편이 매일 배달되는 곳은 단 5개 지역이며 65개 지역은 우편배달이 3일이상 소요되는 곳이다. 요컨대 사회문화적 기저에 있어서도 빈곤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5. 교육의 기저 1) 학년별 학생수 72년도부터 77년도에 이르는 6개년간의 학생수는 매년 감소되고 있다. 그리하여 학급당 평균학생수는 31명으로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단급학교의 통폐합문제가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2) 가정문화시설 및 학습여건 전반적으로 가정문화시설의 빈곤상을 드러내고 있는데 특히 대중매체의 하나인 TV의 보유율이 0.8%로서 전무한 상태이며, 전화율도 38.8%에 머물고 있다. 전화되지 않고서는 교육시설의 근대화나 주민생활의 과학화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 지역의 전화문제는 우선적으로 해결해아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가정의 학습환경도 황량한 상태이다. 교과학습용 참고서가 없는 학생이 80%를 넘고 있으며 자기책상이 있다는 학생이 17.9%에 불과하다. 그리고 부모가 거의 아동들의 학습을 돕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부모의 학력이 낮은데도 있지만 오히려 생업상 자녀의 가정학습을 돌볼 겨를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아동들의 교통수단 및 도시견학에 대한 경험 낙도나 벽지의 아동들은 생활권이 좁아 현대적인 교통수단에 대한 경험이나 도시견학의 기회가 흔치 않으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기차를 타보지 못한 아동이 63.8%에 달하고 있으며 도시견학을 하지 못한 수도 47%에 이르고 있음은 그들이 문명의 이기나 외부세계에 접할 기회가 너무나 적음을 새삼 말해 주는 것이다. 다만 70년대에 들어와 행정기구나 민간단체에 의하여 벌어지고 있는 동지역 학교와의 자매결연 운동 및 도시견학초청운동 등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4) 학교의 도서 보유현황 단급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아동용 및 교사용 참고서의 양은 학급당 평균 31권으로 되어 있다. 이수는 아동 1인당 1권인 셈이다. 최근에 「도서 벽지학교에 책보내기 운동」이 진행되고 있음은 바람직한 일이나 양보다 질이 문제이며 의도적인 교육행정적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5) 교원현황 단급학교 교원은 통상 주임교사 1명과 보조교사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임교사의 충신교를 양대별하면 사범계가 73%, 비사범계 27%로 되어있다. 그 주요업무는 수업, 사무처리, 황경정리,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지진아지도, 특기 지도, 자기연수, 무선 전화업무, 기타, 등인데 도시지역의 교원의 업무와 비교해 보면 이들 단급학교의 교원의 업무가 2~3종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분교장 근무를 지망한 동기를 보면 특히 「도서벽지의 아동교육과 지역개발에 헌신하기 위해」라든 교원이 17.7%이다. 작금의 세대에 비추어 상록수교사가 그토록 있음은 퍽 고무적인 사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반면에 승진을 위해서 혹은 보다 많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 현근무지를 지망했다는 교사의 비율이 49%에 이르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사자인 교원은 물론 관계 행정당무자나 학부모 그리고 널리 지역사회 인사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다. 6) 지역주민의 교육관 및 교사관 일반적으로 지역주민들은 교육과 교사에 대한 기대는 크면서도 학교운영이나 자녀의 학습을 크게 돕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원인은 주민들의 교육에 대한 태도가 소극적인데도 있을 것이나 그보다는 그들의 지적인 수준이 낮고 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빈곤함게 그 주인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교사관에 있어서도 양면성이 발견된다. 즉 교원을 아동교육과 지역개발에 헌신하는 존재로 보는 긍정적인 면과 일시적으로 머물러 있다 떠나는 존재로 보는 부정적인 면이 그것이다. 그리고 주민들이 교사에 바라는 가장 절실한 기대를 세가지만 들면 (가) 사랑이 있는 교사 (나) 아동교육에 충실한 교사 (다) 주민의 생활수준의 향상에 도움이 되는 교사 등이다. 이와 같은 주민들의 소망은 지역사회학교의 이념을 실천해 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 Johann Friedrich Herbart의 敎育學的 生涯와 時代的 背景

            崔熔燮 조선대학교 교육연구소 1986 교과교육연구 Vol.9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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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65年間에 걸친 Herbart의 生涯(1776∼1841)는 硏究와 著述 그리고 大學의 講壇生活로 始終한 典型的인 學者的 生涯이었다. 1802年 25歲의 젊은 나이로 괴팅겐大學에서 부터 이루어진 講壇生活은, 同大學에서 7年間(1802∼1808)의 草創期的 生活에 이어 쾨니스베르크大學에서의 25年間(1809∼1833)의 華麗한 學究的 業績을 쌓고, 晩年에 다시 괴팅大學으로 돌아와 8年間(1834∼1841)의 餘生을 講壇生活으로 마치었다. 2. 그의 私的生活은 比較的 順調로웠고 平坦하였지만, 그의 生存 當時의 歐洲 특히 獨逸은 政治的으로 混亂과 激動期的 時代이었다. 프랑스革命과 그 餘波는 理想的인 激動과 함께 戰爭의 소용돌이에 말려서 命脈만을 이어 오던 神聖 로마 帝國이 나폴레온에 의해서 解體되고(1806)以後 프러씨아를 主軸으로 하는 小獨逸主義的 統一運動의 激浪속에서 近代國家로서의 獨逸國家의 모습이 들추어 지게 되는 무렵이 곧 Herbart의 一生과 軌를 같이 한다. 이러한 政治的 發展은 必然的으로 獨逸의 國民精神을 背景으로 하여 이룩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民族主義的 國民敎育의 實現을 위한 敎育改革運動이 當時의 獨逸에서 强力히 提起되었던 때 이기도 한다. 3. 18世紀末葉에서 19世紀初葉에 이르기까지 政治와 經濟的인 面에서는 後進國 이었던 獨逸이었지만, 文藝 및 哲學을 中心으로 한 學界는 獨逸 歷史上 가장 燦爛한 金字塔을 이룩한 時代가 또한 그의 時代이었다. 괴테, 쉴레르, 하이네 등의 뛰어난 文人들이 나와 獨逸 浪漫主義 文學의 絶頂期를 이룩하였는가 하면, 칸트, 리히테, 헤겔 등에 의한 獨逸 觀念哲學의 全盛期가 또한 그의 時代이었다. 敎育界에서는 홈볼트, 헤르데르, 프뢰벨 등이 獨逸 國內에서 活躍하였고, 스위스의 페스탈로치가 敎育思想과 實踐面에 獨逸人들에게 커다란 影響을 끼치고 있었다. Herbart도 이러한 藝術 및 學界의 巨匠들 그리고 敎育家들과 同時代에 呼吸을 함께 하면서 이른바 新人主義 文化的 環境에서 成長하면서 그의 學問을 이룩하였다. 4. 敎育學史에 있어서의 그의 不朽의 貢績은 科學的 敎育學(Wissenschaftlicher Pa¨dagogik)을 創建한 일이다. 그로 하여금 科學的 敎育學의 創建者라는 일컬음을 받도록 한 것은, 1806年에 刊行한 「敎育의 目的으로 부터 演繹된 一般敎育學」이라는 著述에서 倫理學과 心理學에 基礎한 敎育學의 學問的 體系를 定立하였기 때문이다. 5. 예나大學에서 피히테의 首弟子이었던 Herbart가 피히테哲學에 대한 懷疑로 彷徨하던 중 스위스 슈타이겔家의 家庭敎師로 赴任(1797)하여 세 兒童에 대한 敎育體驗에서 부터 Herbart의 敎育學的 思索은 始作되었다. 三年間의 家庭敎師生活을 淸算하고 歸途에 부르크도르프의 레스탈로치를 訪問하여 그의 人格과 敎育精神 및 敎育實踐에 接하게 된 것(1799)이, 敎育學者로서의 그의 生涯를 이룩하는 決定的瞬間이 되었다. 부르크도르프에서 페스탈로치로 부터 큰 感銘을 받은 Herbart는 "獨逸人을 위한 페스탈로치事業의 敍述"을 그의 生涯的 課題로서 決心하고 돌아 왔다. 6. 스위스에서 돌아 온 Herbart는 브레멘의 親友 슈믿트家에서 묵으면서 學位 및 敎授資格取得의 準備를 하였는데, 이 期間(1800∼1802) 中에 페스탈로치의 敎育에 대한 本格的인 硏究를 행하였고, 後日에 이를 土台로 한 敎育學 定立의 基礎를 닦았다. 이 무렵에 그가 페스탈로치 敎育實踐에 대해서 硏究, 發表한 論著는 다음과 같다. 「페스탈로치 直觀의 ABC의 이념」(1802) 「페스탈로치의 最近의 著作 "게프르루트는 어떻게 그의 子女를 가르쳤는가"에 대해서"(1802) 「페스탈로치의 敎授方法 評價上의 立場에 대해서」(1804) 「敎育의 中心任務로서의 世界의 美的表現」(1804) 이러한 論著를 가운데서 「世界의 美的表現」은 「直觀의 ABC의 理念」의 第二版 附錄으로서 出刊된 것이지만, 이는 Herbart 敎育學의 씨앗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7. Herbart 敎育學이 出刊(1806)이 되기 以前에도 칸트, 페스탈로치 및 코메뉴스 등의 敎育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敎育學은 敎育思想 또는 敎育實踐 등에 관한 部分的인 論著일따름이지 學問的 體系를 갖추지 못하였다. 이에 대해서 Herbart는 칸트의 批判哲學的인 學問論에 立脚한 敎育學의 體系를 定立하고, 敎育學을 大學의 講座로서의 자리에 까지 굳혔다는 데서 그를 科學的 敎育學의 創建者로서의 여김을 받게 한 것이다. 칸트 以後, 學問이 嚴密한 科學으로써 成立하기 위해서는, 批判哲學的인 立場에서의 體系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當時 學界 一般에 걸친 共通的인 見解이었다. 곧 칸트에 있어서의 學問이란 다만 어떠한 事實에 대한 反省的 檢討로서 만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고, 最高의 原理下에서 행하여진 知的 反省의 統一 또는 批判的 體系로서의 表現이어야 한다. 이러한 學問論에 立脚하여, Herbart는 最高의 原理로서 "道德性의 槪念"과 普遍性을 지니기위한 數學的 原理를 適用한 그의 表象心理學을 定立하여, 이들을 基礎로 한 科學的 敎育學을 創建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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