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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해방 후 지방에서의 법학교육 태동에 관한 연구 : 조선대학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영록(Lee, Young-lok) 조선대학교 법학연구원 2021 法學論叢 Vol.28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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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목적은 조선대학을 중심으로 해방 후 지방에서의 태동기 법학교육의 실제를 드러내고, 그 특징 및 역할과 의의를 규명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우리 법학교육사가 시기적으로는 해방 이전의 근대에, 지역적으로는 서울 중심의 시각에 치우져 있는 점을 교정해 보고자 했다. 조선대학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점은 해방 후 지방에서도 일제강점기 이래 이어져 온 법학교육에 대한 수요와 선망이 매우 크게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수요에 부응하고 나선 것이 지역의 법조실무가들이었다. 이 점은 비슷한 시기 법학교육을 시작한 영남의 동아대학의 경우에도 나타나지만, 특히 조선대학의 경우는 극적이었다. 실무가들이 주도한 법학교육은 교과과정이나 수업내용에도 반영되었다.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의 법문학부의 영향이 전반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실천적 실용성을 가미한 교과과정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법학의 실천성에 밀착하려는 이런 초기 학풍은 전쟁으로 인한 교육 기반의 붕괴, 무엇보다도 겸임일 수밖에 없는 법률실무가 교수들의 불가피한 이탈로 의미 있는 학문적 숙성으로 이어지기 전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 외에도 지방에서의 법학교육은 해방 후 갈 곳을 잃은 젊은 법학 엘리트들에게 연구와 교육을 계속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로써 그들이 향후 우리 법학계의 대표적인 법학자들로 자라는 데도 일조할 수 있었다. 나아가 사회 곳곳에서 법학적 지식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한 수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함으로써,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역대학으로서 주어진 시대적 소임을 담당할 수 있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uncover the reality of legal education in the beginning period after the national liberation, centered on Chosun University, and to illuminate its characteristics, roles, and significance. I tried to correct the tendency in historical researches on legal education in Korea which had been tilted to pre-liberation period in time, and Seoul area in region. What I found was that in the provincial areas there was a very large demand and desire for legal education which had continued since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t was the local law practitioners who responded to such demand. It led to the characteristics of the relative practicality in the curriculum. And local law colleges provided the opportunity for research and education to young legal scholars, who could not have escaped stalling their careers after the national liberation, but would become prominent law scholars later. Besides, numerous graduates from law colleges in province contributed to the rebuilding of the nation with their legal knowledge in various fields of society.

      • KCI등재후보

        일반논문: 어문학 : 유진오의 이중언어문학에 투영된 조선 표상 -일본어 작품 <황률(かち栗)>, <기차 안(汽車の中)>, <할아버지의 고철(祖父の鐵屑)>을 중심으로- (兪鎭午の二重言語文學に投影された朝鮮表象) (-日本語作品の<かち屑>を中心として-)

        김욱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4 인문학연구 Vol.0 No.47

        본 연구는 일제의 식민지 통치 하에 있었던 한반도에서 한국어 및 일본어로 문학 활동을 했던 한국인 작가 유진오에게 이중어 글쓰기와 이중언어문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아보고, 유진오의 일본어 작품 <황률(かち栗)>, <기차 안(汽車の中)>, <할아버지의 고철(祖父の鐵屑)>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하여 그의 일본어 소설 텍스트가 그 당시 ``조선``에 대한 어떠한 표상을 발신하고 있으며 과연 친일문학이라고 하는 정의가 타당한지 규명해보았다· 먼저 유진오가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이중어 글쓰기를 내재화했는지를 밝히고, 그의 일본어 문학이 당시의 시대상과 작가 개인의 기록을 토대로 미루어보아 그가 조선 표상에 대한 끝임 없는 재고 발신을 요구하고 조선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었던 이유를 규명해보았다· 작품 분석에 있어서는 유진오의 일본어 작품 중 한글 원작이 있으면서 개작과정을 거친 <황률>을 먼저 살펴보았다· 이 작품은 원작보다 ``조선``에 대한 부정적묘사를 줄이고 긍정적 묘사를 더했으며 이를 통해 유진오가 일본인을 수신 주체로 상정하여 자신의 일본어 문학에 대한 방향성을 탐색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유진오의 일본어 창작의 과도기에 놓인 <기차 안>은 조선의 동아시아 역할에 대한 낭만성과 실질적으로 조선에 입혀진 부정적 표상 사이에 대한 괴리를 좁히기 위해 화가지망생인 ``조선인 청년``의 입을 빌려 유진오가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발신하는 소설이었다· 특히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존재하는 문제점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며 서로 동등한 위치에 두고 차별을 지양하자는 취지의 글로 마무리한 점은 작가의 당대 조선표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고철>에서는 조선에 대한 표면적 이해에서 보다 정신적이고 심층적인 영역으로 이행해가는 발전을 보여주었으며, 조선민족의 정신에 대한 고찰은 물론 작품에 나타난 문학적 기교 또한 뛰어났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주로 조선의 절약정신과 예의범절을 근대를 살아가는 조선인을 화자로 하여 제사에 대한 근대적 환기와 할아버지가 모은 고철에 대한 회상으로 나타내었다· 本硏究では, 朝鮮半島が帝國日本に植民地として統治された時期に, 韓國語及び日本語で文學活動を行った韓國人作家の兪鎭午(ユ·ジンオ)において, 二言語書きや二重言語文學がどのような意味を持っていたのかを探り, 兪鎭午の日本語作品<かち栗>, <汽車の中>, <祖父の鐵屑>に對する分析を踏まえることで, 彼の日本語小說のテキストが當時の「朝鮮」とどのような意味の網を構築していて, 果たして親日文學だという定義が正しいかについて究明してみた。 最初に, 兪鎭午が植民地の知識人として, どのように二言語書きを身につけたかを明らかにし, 彼の日本語文學が當時の時代相や作家個人の記錄をもとに推して, 彼が何故朝鮮表象に對する肯定的な再考を作品の中で促したのか, 何故朝鮮への愛著を絶え間なく示したのかを究明した。作品分析においては兪鎭午の日本語作品の內, 韓國語原作が存在しながら多くの部分が改作された, 「かち栗」を先に調べた。この作品は原作より「朝鮮」に對する否定的な描寫を減らし, 肯定的描寫を加えた。これを基づき兪鎭午は日本人を受信主體と想定したことで, 自分の日本語文學に對する方向性を探索したと言える。また, 日本語創作の過渡期においた「汽車の中」は, 朝鮮の東アジアにおける役割に對する浪漫と, 實質的に朝鮮にかけられた否定的表象の間に存在する乖離を埋めようとする小說であった。畵家誌願者の「朝鮮人靑年」の口を借りて兪鎭午が直接的にメッセ-ジを發信する形で, 特に朝鮮人と日本人の間に存在する問題點を取り上げ, お互い同等に位置付けて差別を止揚する趣旨を示したことは, 作家に當代朝鮮表象の問題意識が明らかに見られる。最後に「祖父の鐵屑」では, 朝鮮についての表面的理解のうえ, より精神的かつ深層的な領域に至るまで文學化しようとしたという發展過程を見せており, 朝鮮民族の精神に對する考察は言うまでもなく, 作品に現れた文學的技巧も優れたと評價せざるを得ない。主に朝鮮の節約精神と禮儀作法を, 近代を生きる朝鮮人を語り手のして書き入め, それを祭祀についての近代的喚起と祖父が集めた鐵屑の意味に對する回想を通じて表せた.

      • 민립대학과 대학민주화운동의 효시로서 4.19혁명 시기 조선대학교 역사 연구

        박종렬(Park, Jongryeol) 조선대학교 민주평화연구원 2020 민주평화연구 Vol.3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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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illuminates that Chosun University is the beginning of the university founded by people succeeding to the movement of such a kind of educational institute in the era of the Japanese colonization and its democratization movement is the first one in the Korean university history. I observe the process of establishing Chosun University based on the preceding research and then introduce the historical material of the development after the Korean War and the democratization movement in the university related to the late President Park Cheolwoong depending on Chosun University s History of 50 years. In conclusion, it is emphasized that the history of the university around the period of the 4‧19 Revolution means pure nationalism and democracy. It is expected that the two ideologies are the primary lesson that should be taught to the descendants.

      • KCI등재

        Soviet Union and Korea: 1920s-1930s

        유리바닌 ( Yuri V. Vanin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2014 동북아연구 Vol.29 No.2

        이 논문은 1920~1930년대 소련·조선 관계의 여러 측면에 관해 논의한 글이다. 조선의 식민지 상태로 인한 소련과 조선간 공식적인 외교관계의 부재 및 일본 당국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양국간의 접촉은 교역을 포함한 다양한 수위에서 전개되었다. 조선의 상황은 소련 언론에서 널리 취급되었다. 소련 쪽에서 이들 접근은 주로 조선인민의 반식민지 투쟁에 대한 동조 및 연대, 그리고 빨치산 그룹을 포함한 조선해방운동에 대한 각종 지원으로 나타났다. 본 논문은 한국임시정부, 천도교 그리고 공산주의자 등 조선의 독립투사들과 소련의 관계를 조망하였다. 또한 조선빨치산 그룹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살피고 있다. 즉, 일본의 억압에 의해 그들은 피난처와 지원을 찾아 소련 영토로 퇴각하여 재무장 후 다시 반식민지 투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소련 극동은 조선해방운동의 배후 기지였다. 그러나 스탈린의 억압과 조선인 강제 이주가 소련과 조선인민의 결속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This paper discusses aspects of Soviet-Korean relations in the 1920s.1930s. Despite the absence of official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he USSR and Korea due to colonial status of the latter, as well as the obstacles created by the Japanese authorities, the contacts between two countries developed on various levels, including trade. The situation in Korea was widely discussed in Soviet press. From the Soviet side these contacts were primarily manifested by sympathy and solidarity with the anti-colonial struggle of the Korean people and multi-dimensioned Soviet assistance to the Korean liberation movement. The paper casts light upon the Soviet contacts with Korean freedom fighters lik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 Chondogyo, and the Communists. It also discusses Soviet assistance to Korean guerilla groups-hard pressed by the Japanese, they could retreat to the Soviet territory finding shelter and necessary assistance and then, refreshed and rearmed, return to their anti-colonial struggle. The Soviet Far East was indeed a rear base for Korean liberation movement. But Stalinist repression and deportation of Koreans from the Far East could not but tell negatively on the links between the Soviet and Korean people.

      • KCI등재

        연변조선족자치주 조선족의 “사회적 지지”가중국 사회 적응에 미치는 영향

        이소영 ( So Young Lee ),선봉규 ( Bong Kyu Sun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2015 동북아연구 Vol.30 No.2

        중국조선족은 현재 이주의 도시화와 글로벌화를 경험하면서 낯선 사회에서 새로운 문화에의 적응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조선족 집거지가 집중되어 있는 연변지역은 조선족의 유출과 한족의 유입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면서 새로운 사회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등 전통적으로 일궈온 생활양식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연구는 중국조선족의 사회적 지지와 중국 사회 적응의 양상을 살펴보고, 이 두 변수 간의 영향관계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 연변조선족자치주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250부를 회수하였으며, 그 중 218부를 통계분석에 활용하였다. 통계분석은 빈도분석과 분산분석, 상관관계 및 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이 연구의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연변조선족은 가족 및 지인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비공식 사회적 지지가 공식 사회적 지지보다 지역사회 적응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연변조선족은 일상생활 영역에서 지역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지역공동체의 참여 및 활동을 통한 사회 적응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연변조선족은 사회적 지지가 높을수록 지역사회 적응이 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연변조선족의 지역사회 적응에 있어 교육수준과 중국어수준이 공식 · 비공식 사회적 지지에 영향을 받으며, 그 중 비공식 사회적 지지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This study analyzes the effect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social support and local community adaptation of Korean-Chinese. Therefore we conducted a survey targeting ethnic Koreans at Yanbian Korean Autonomous Prefecture, and collected 250 copies from which 218 were used for statistical analysis. Results of research are as follows. First, unofficial social support based on trust between relatives and acquaintances among ethnic Koreans helps more to adapt into Chinese society rather than official community support. Second, ethnic Koreans adapt well to the community in everyday life, however social adaptation through local community participation and activities are not significant. Third, if ethnic Koreans adapt faster in terms of social support level, they also adapt in terms of social community support as well. Forth, both official social support and unofficial social support are influenced by education level and Chinese fluency, but especially unofficial social support is affected the most.

      • KCI등재

        특집2: 한국사상과 선산철학 : 『소학』을 통해 본 조선시대 여성상

        이영란 ( Young Ran Lee )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6 인문학연구 Vol.0 No.51

        조선시대 여성은 우리에게 예속적인 삶을 살았던 여인으로 회자된다. 인간은 누구나 어디 시대에서나 살아가는 목적을 갖는다. 인간이 가지는 목적 자체보다는 사회적 성격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특히 조선시대의 여성은 가부장제적 사회 속에서 유교적 덕목에 기준하여 살아가야하는 삶으로 정의해 버린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간은 살고 조선시대 여성도 그러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은 제도적 교육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비형식적으로 가정에서 교육을 받은 여성은 스스로 자각 의식을 가지며 자신을 표출하였다. 결국 여자가 제도적 교육을 받는 것만이 여성이 의식화되고 사상을 갖는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조선 초에 등장하는 여러 문학가를 보더라도 여성 자신들의 세계가 분명히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가정에서의 여성교육은 주로 여성교훈서를 교육되었다. 여성 교훈서의 기본 바탕은 그 근본을 『소학』에 두었다. 여성이 『소학』을 어느 정도 읽었는가에 대한 기록은 당시 문집을 통해 여성 독서목록의 예만 보아도 『소학』을 기본적으로 읽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소학』은 7~8세 아이들이 읽었던 책이다. 남자뿐만아니라 여자도 즉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를 알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책이다. 『소학』을 읽는다는 것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갖추어야 할 덕망을 교육하는 것이 주목적이기는 하지만, 이는 여성에게 글을 깨우치는 시작이기도하기 때문에 여성이 자각적 의식을 갖게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소학』은 어려서 여성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하는 중요한 서적이라 할 수 있다. 집안에서의 권한을 여성에게 주어 집안의 규율을 정립하여 수신제가치국이라는 유학적 기본 원리를 여성에게 어려서부터 교육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유교적 가부장제적 사회 안에서 정숙한 성품과 몸가짐을 닦으려고 하였고 또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자녀교육 그리고 남편과 신의를 갖고 지내며 근검절약하여 집안을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나아가 정치적 참여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여성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환경에 맞추어 가면서도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놓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준비된 여성이었던 것이다. Women in the Joseon Period were considered to live controlled lives. People have a purpose of living anytime and anywhere. That purpose is usually defined by social nature rather than the purpose people have. In particular, women in the Joseon period were defined as beings who had to live life based on Confucian virtue under a patriarchal system. However, all people live for their own purposes and so do women. Women in the Joseon period did not receive formal education. However, women who were informally educated at home expressed themselves with self-awareness. Finally, it is hard to assert that women who receive institutional education are awakened and have established thought. To see the few literary persons who appeared in the early Joseon period, it is confirmed that women had their own world developed. Home education for women was made with the use of education textbooks for women. The education textbooks for women were based on『Sohak』. It was recorded in the reading list for women that women basically read 『Sohak』. 『Sohak』 was designed for children from the age of 7 to 8 to understand basic manners as females as well as males. The important goal of reading 『Sohak』 was to teach basic virtues to women in the Joseon period, but as it was designed to teach women how to read and write, it was good for self-awakening. Therefore, 『Sohak』 is an important writing for girls to find their own identity. Authority at home was given to girls and women to establish household regulations. Women in the Joseon period tried to have virtuous nature and manners in the patriarchal system of a Confucian society, were engaged in the education of their children, were faithful to their husbands, diligent and thrifty, and took care of their families. Furthermore, they accomplished what they imagined and intended through political participation. If women in the Joseon period were given any chance, they were well prepared to catch it while meeting the needs of society.

      • KCI등재

        대학생 독서 토론을 위한 논제의 적절성에 대한 검토 : 조선대 사례를 중심으로

        오현진 ( Hyeon Jin Oh )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15 인문학연구 Vol.0 No.50

        이 연구는 대학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사고와 표현> 강좌에서 ‘독서 토론’이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사고와 표현>에서 활용하고 있는 ‘독서 토론’이 지니는 특성과 이 과정에서 방향키 역할을 담당하는 ‘토론 논제의 요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대학생이 경험해야될 독서 토론이란 무엇이며 어떤 특성을 지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원활한 독서 토론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 조건이자 필수 요건인 ‘토론 논제’가 어떤특성을 지니는지 정리해 보았다. 이를 위해 조선대에서 <사고와 표현> 과목을 실제 담당하고 있는 교수자들이 ‘토론 논제’의 요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조선대 <사고와 표현> 교재의 독서 토론 논제가 어떤 면에서 적절한지 판단해 보았다. 대학생 독서 토론은 ‘독서’를 통해 읽기 자료를 통해 제시된 문제 상황이나 의사소통 맥락을 파악하고,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에 걸맞은 정보를 수집, 분석, 종합 하는 것이다. 그리고 ‘토론’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다듬고 정교화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본고에서는 대학생 독서 토론을 위한 요건으로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첫째, 시의적절하면서도 학생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중요하다고 느껴, 스스로 독서 토론에 대한 필요성과 흥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관련자들의 입장 차이나 의견 대립 지점이 명확하여 쟁점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학생들이 독서 토론 과정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셋째, 독서 토론 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고정 관념이나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을 벗어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정보 수집과 재구성 능력을 길러줄 수 있도록, 다양하고 공신력 있는 자료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을 연습할 수 있는 논제여야 한다. 다섯째, 대학생으로서 지적 동기와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하며, 독서 토론 활동 후에도 학생들의 지적 만족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교양 필수 과목에서 진행되는 활동이라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여, 과제 수행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어려워 많은 시간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게해야 한다. This study aims to seek plans to carry out the ``reading discussion`` portion of the <Thoughts and Expressions> class, which targets first-year university students, more effectively. We examined what reading discussions a university student should experience and reviewed the characteristics. Also, we organized the characteristics of a ``discussion topic``, which is the precondition and prerequisite for a smooth reading discussion. Based on the findings, we analyzed the strengths and weaknesses of the reading discussion topics suggested by Chosun University``s textbook for <Thoughts and Expressions> class. During a university reading discussion, one has to understand the conflict situation or communication context of a reading material through ``reading`` and collect, analyze and piece together the appropriate information that supports one``s opinion. By interacting with other people``s different opinions during the ``discussion`` process, it is possible not only to elaborate one``s opinions and arguments but eventually experience reaching a rational solution to a common problem. In this article, we would like to suggest the following six requirements for a university reading discussion. First, a reading discussion should be both opportune and relevant to the lives of students which will motivate a voluntary sense of necessity and interest. Second, the different stances and conflicting opinions of related parties should be clear and easy to understand so that the students can easily follow the discussion process. Third, a reading discussion should be able to provide the opportunity to break the stereotypes and other fixed ideas the students had at the beginning. Fourth, the topics should be able to help the students learn the ability to collect and reorganize data and practice searching and collecting information with public confidence. Fifth, a reading discussion should stimulate one``s intellectual motivation and curiosity as a university student and should also be able to provide the students with intellectual satisfaction after discussion. Sixth, taking into consideration the fact that the discussion is part of a mandatory cultural subject, the assignment process should not be so difficult or complicated that it demands a lot of time and effort. This article aimed to study the characteristics of ``reading discussion`` used in the <Thoughts and Expressions> class and review the ``requirements for discussion topics``. This attempt is meaningful in that it examined the direction of learning in <Thoughts and Expressions> subject and the current situation of its context and methods, and also that it provided a contemplation on future plans.

      • KCI등재

        연변조선족자치주 조선족의 “사회적 지지”가중국 사회 적응에 미치는 영향

        이소영 ( So Young Lee ) , 선봉규 ( Bong Kyu Sun ) 조선대학교 동북아문제연구소 2015 동북아연구 Vol.30 No.2

        This study analyzes the effect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social support and local community adaptation of Korean-Chinese. Therefore we conducted a survey targeting ethnic Koreans at Yanbian Korean Autonomous Prefecture, and collected 250 copies from which 218 were used for statistical analysis. Results of research are as follows. First, unofficial social support based on trust between relatives and acquaintances among ethnic Koreans helps more to adapt into Chinese society rather than official community support. Second, ethnic Koreans adapt well to the community in everyday life, however social adaptation through local community participation and activities are not significant. Third, if ethnic Koreans adapt faster in terms of social support level, they also adapt in terms of social community support as well. Forth, both official social support and unofficial social support are influenced by education level and Chinese fluency, but especially unofficial social support is affected the most. 중국조선족은 현재 이주의 도시화와 글로벌화를 경험하면서 낯선 사회에서 새로운 문화에의 적응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조선족 집거지가 집중되어 있는 연변지역은 조선족의 유출과 한족의 유입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면서 새로운 사회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등 전통적으로 일궈온 생활양식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연구는 중국조선족의 사회적 지지와 중국 사회 적응의 양상을 살펴보고, 이 두 변수 간의 영향관계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 연변조선족자치주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250부를 회수하였으며, 그 중 218부를 통계분석에 활용하였다. 통계분석은 빈도분석과 분산분석, 상관관계 및 회귀분석을 실시하였다. 이 연구의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연변조선족은 가족 및 지인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비공식 사회적 지지가 공식 사회적 지지보다 지역사회 적응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연변조선족은 일상생활 영역에서 지역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지역공동체의 참여 및 활동을 통한 사회 적응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연변조선족은 사회적 지지가 높을수록 지역사회 적응이 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연변조선족의 지역사회 적응에 있어 교육수준과 중국어수준이 공식 · 비공식 사회적 지지에 영향을 받으며, 그 중 비공식 사회적 지지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 KCI등재

        영화 저것이 항구의 등불이다(1961)에 그려진 재일조선인*

        신소정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21 인문학연구 Vol.0 No.61

        This paper focuses on the boundaries of the Zainichi Koreans living in Japan depicted in the movie That is the Port light released in February 1961, and examines Korea, which was critically portrayed through this. Then, we will examine the message of the movie, which was made by accusing illegal South Korea through Zainichi Koreans living in Japan. This will find the conservatism inherent in Japanese social movies. The movie That is the Port light defines Zainichi Koreans living in Japan as being trapped between the Korean Peninsula and Japan. It also depicts a young Zainichi Korean resident in Japan who is suffering from not being able to fully belong to either of them. At the same time, we will focus on the issue of discrimination against Zainichi Koreans living in Japan and raise the issue of the society that discriminates against them and the cause of their discrimination. However, based on the conclusion reached by the movie, which was repeated through the boundary between Zainichi Koreans living in Japan, what the movie emphasized through the Zainichi Korean people was to accuse South Korea of barbarism and illegality through ethnic unity. It was also to emphasize the damage to the Japanese people. It was to justify discrimination in Japanese society. The purpose of the movie was to show that Japan, which seeks peace by reversing the anti-war ideology that Imai and Mizuki had been talking about, would have to go to war if it were to counter barbaric and illegal Korea. 본 논문은 1961년 2월 개봉한 영화 저것이 항구의 등불이다 (あれが港の燈だ)에 그려진 재일조선인의 경계성에 주목해서 이를 통해 비판적으로 묘사한 한국에 대해 살펴본다. 그리고 재일조선인을 통해 불법적인 한국을 고발해서 구현한 영화의 메시지를 고찰해서 일본 사회파 영화에 해당하는 저것이 항구의 등불이다 에 내재된 보수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 영화는 재일조선인을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낀 존재로 규정해서 어느 쪽으로도 완벽하게 귀속되지 못하고 고뇌하는 재일조선인 청년의 모습을 담아냈다. 더불어 한국과 일본사회의 재일조선인 차별문제에 주목해서 그들을 차별하는 사회와 그 원인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도한다. 즉 경계상의 존재인 재일조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감독인 이마무라 다다시(今村正)와 극작가 미즈키 요코(水木洋子) 콤비의 영화 공식인 국가주의․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반전․평화사상의 추구를 반복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화가 재일조선인을 통해 강조한 것은 한반도 출신자라는 민족적 동일성을 통해 불법적인 한국을 고발해서 일본국민의 피해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일본사회의 재일조선인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영화의 귀결은 결국 이마이와 미즈키가 피력해왔던 반전사상까지도 불법적인 한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할 수밖에 없다는 전쟁 의지의 표명으로 변질되었다. 이렇게 국민의 피해서사, 국가비판, 반전사상이라는 정형화된 틀을 재일조선인을 통해 전복시켜 외교전의 프로파간다 영화로 귀결시킨 영화 저것이 항구의 등불이다 는 사회파라는 장르의 정체성을 벗어나 국가주의에 부합한 보수성을 드러낸 영화였다.

      • KCI등재

        1944년 식민지 조선영화계의 정책적 특수성에 관한 연구: “결전비상조치”에 따른 제도적 변화상을 통해

        함충범 ( Chung Beom Ham ) 조선대학교 동북아연구소(구 통일문제연구소) 2015 동북아연구 Vol.30 No.2

        본 논문은 1944년 일본에서 채택되어 식민지 조선으로 적용된 이후 영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결전비상조치’에 주목하였다. 그리하여 이를 계기로 파생된 영화 제작, 배급, 흥행, 영사 부문에서의 제도적 변화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였다. 1944년 2월 25일 일본 내각에서 결정된 ‘결전비상조치요강’에는 ‘고급향락 정지에 관한 건’이, 여기에는 다시 ‘흥행에 대한 조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1944년 3월에는 일본에서 ‘흥행의 구체적 쇄신 실시 요강’이 결정되었는데, 이후 조선영화계는 대대적인 제도적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우선 1944년 4월 7일 사단법인 조선영화사로 영화 제작.배급 기구의 통합적 개편이 이루어졌다. 5월 8일에는 조선흥행등취체규칙 공포를 통해 극장 단속 및 흥행 규제 강화의 법률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어 7월 1일에는 사단법인 조선영화계발협회로 이동영사 조직이 일원화되었다. 8월 19일에는 기존의 조선흥행연합회가 사단법인 조선흥행협회로 재탄생하였다. 이를 통해 1944년 이후 식민지 조선영화계가 보다 직접적으로 일본과 연동되고 더욱 밀접하게 여타 분야와 연계되며 한층 강도 높게 부문 간 또는 부문 내 일원화가 이루어졌다. ‘The Emergency measure for decisive battle’ was enacted by the Japanese ministry on February 25, 1944. That included ‘The Prohibition of luxurious entertainment’, which included the ‘System for decisive battle of performance’. Subsequently, ‘The System for decisive battle of performance’ introduced in Japan and colonial Joseon in March, 1944. The filmdom of colonial Joseon faced big changes in the system from it. Film production and distribution firms were integrated on April 7, 1944, legal foundation for control of theaters and regulation of performance was instituted on May 8. Tour projector organization was unified on July 1, all by the Joseon Film Corporation on April 7, 1944. Additionally the Joseon performance federation was re-organized as ‘The Joseon performance association’ on August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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