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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윤리의 사회통합적 가능성과 한계

        장복동(Jang Bok-Dong)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2021 공존의 인간학 Vol.- No.5

        이 글은 보편적인 규범체계인 상도(常道)와 사태에 대응하는 변용체계인 권도(權道)의 중도사상으로써 특성을 지닌 유교가 우리 사회의 통합기제로 작용할 가능성과 한계를 묻는 데 목적이 있다. 유교를 떠올리면 보수주의와 권위주의를 연상하며 혈연ㆍ지연ㆍ학연 등 연고주의에 뿌리를 둔 소아적(小我的) 병폐를 지적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동아시아의 사회ㆍ경제적 발전의 동력을 유교의 자아실현과 공동체 정신에서 찾는 유교자본주의, 아시아적 가치가 ‘전통의 현대화’라는 학문적 지향과 명분의 중심 담론으로 등장한다. 유교는 인격 도야와 좋은 성품의 형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도덕의 동기화를 중시하는 덕의 윤리적 특성을 강하게 지닌다. 이 글에서는 먼저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분출하고 있는 공동체 해체와 갈등ㆍ균열을 사회통합 차원에서 해소하는 데 있어서 유교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자기수양과 공동선의 실현으로 구체화되는 유교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배려와 공존의 윤리로써 서(恕)와 다원성의 조화와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을 강조했다. 전통의 재인식은 현실의 요청과 은폐된 해석을 경계하면서 비판과 검증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유교가 지향하는 사회가 위로부터 공동체주의, 가족의 원리에 바탕을 둔 혈연공동체주의, 개체의 순종으로 구성되는 전체적 공동체주의의 모습을 지니고, 다양한 차이들을 억압ㆍ배제한다면, 유교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지극히 온당하다. 우리 사회가 계층ㆍ이념ㆍ지역ㆍ세대를 중심으로 갈등과 반목이 증폭되면서 분열과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공감과 소통의 공동체, 통합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유교가 순기능적 기제로써 역할을 담지하기 위해서는 자기성찰과 더불어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유교는 ‘화해(和諧)와 통합의 공동체’를 세우는 데 사상적 토대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 KCI등재후보

        『조선총독부관보』로 보는 일본계 종교 유입의 전체도

        김태훈(金泰?)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2020 공존의 인간학 Vol.- No.4

        식민지 조선에 들어온 일본계 종교는 모두 어느 정도였을까? 어떤 종파들이 들어왔으며 1945년 해방까지 얼마나 많은 수의 일본인 포교자들이 한반도의 어느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었을까? 이 논문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기초적인 데이터베이스 작업의 보고서이다. 이를 위한 기초 작업으로 『조선총독부관보』에 게재된 일본계 종교 관련 기록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진행하여 홈페이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종교자’(www.jrpkc.org)에서 공개하고 있는데, 이 데이터베이스 정보를 이용하여 일본계 각 종파들의 포교 거점을 정리한다. 구체적으로는 일본불교계, 교파신도계, 일본기독교계의 포교 거점 수와 시기별 설립 추이 그리고 지역별 분포를 확인함으로써 기초적인 전체상을 파악한다. 『관보』에 그 이름이 확인되는 일본계 종교의 포교자 수는 총 3,145명이고, 각 종파별로 확인되는 포교 거점의 총수는 1,453개소이다. 물론 이 수는 실제의 정확한 수를 반영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포교 거점별 분포를 보자면 일본불교계가 955개소로 전체의 66%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어서 교파신도계가 385개소로 26%, 그리고 일본기독교계는 112개소 8%로 가장 적다. 또한 각 종파별로는 포교 거점의 지역별 분포에 있어서 약간의 특성들을 보였는데, 진종본원사파는 전체적으로 고르게 분포하면서도 한반도의 외곽선을 그리는 듯한 특징이 있었고, 진종대곡파는 금강대도의 개종으로 인한 충청·전라도 밀집 양상이 뚜렷했다. 그리고 진언종은 서울과 부산의 집중도가 높으면서 동시에 지역 거점도시 집중적인 특성을 보였다. 이 점은 천리교를 중심으로 한 교파신도계의 분포 양상과도 유사하다. 교파신도계는 천리교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1930년대에 전체 포교 거점의 45%가 신설되는 등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일본기독교계는 불교와 교파신도계에 비해 8%로 가장 적었는데,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일본조합교회의 충청·전라도 집중 양상이었다. How many Japanese religions reached colonial Korea? What sects came in and how many Japanese religious workers were active in the Korean Peninsula until Korea’s liberation in 1945? This report attempts to answer these questions by analyzing the basic database of Japanese religions in colonial Korea. This paper is based on underlying research found in the database of Japanese religious records published in The Gagette of Government-General of Korea. These records have been made public through the “Japanese Religious Workers of Colonial Korea” (www.jrpkc.org). Using this database information, the analysis focuses on the missionary facilities of Japanese religions. By tracing the number, period of establishment, and regional distribution of missionary facilities of Japanese Buddhism, Kyohashinto, and Japanese Christianity, I attempted to provide a general outline of Japanese religions in Korea. The total number of Japanese religious workers whose personal names are known in The Gagette of Government-General of Korea is 3,145, and the total number of missionary facilities in each sect is 1,453 places. Needless to say, these figures do not reflect the actual numbers. Regarding the distribution of missionary facilities, Japanese Buddhism occupied 955 places, accounting for 66% of the total, followed by Kyohashinto with 385 places, accounting for 26% of the total, and Japanese Christian facilities came last with 112 places, accounting for 8% of the total. In addition, there are regional characteristics concerning the distribution of missionary facilities. While Shinshu Honganjiha distributed evenly throughout the entire region, practically drawing the outline of the Korean Peninsula, Shinshu Otaniha’s activity centered in the provinces of Chungcheong and Jeolla, due to the of conversion of Kumgang Daedo. And Shingon Buddhism had a notable presence in Seoul and Busan, and also other larger regional cities. Kyohashinto, specifically Tenrikyo showed a similar distribution pattern to that of Shingon Buddhism. The most influential branch of Kyohashinto, Tenrikyo, established 45% of all of Kyohashinto facilities in the 1930s. Japanese Christianity had the lowest figure with 8%, however the missionary activity of the Congregational Church of Japan in the provinces of Chungcheong and Jeolla is worth mentioning.

      • KCI등재후보

        하유당 이석신의 한시에 구현된 미적 특질

        양훈식(Yang Hoon-shik)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2021 공존의 인간학 Vol.- No.6

        본 논문은 조선 후기에 해남에서 은거한 이석신(李碩臣, 1659~1738)의 한시에 나타난 미적 특질을 규명하고자 『하유당집(何有堂集)』에 수록된 시문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본고에서는 한시에 구현된 미적 특질을 향토적 시어의 포치(布置), 표현 기법과 미적 특질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향토적 시어의 포치에서는 시적 소재의 향토성 반영과 지역 승경의 형상화 측면에서 다루었다. 먼저 시적 소재의 향토성 반영에서는 ‘청신(淸新)’한 미감, 소야(疏野)한 미감 등이 나타났고 군자의 설렘과 담백함이 드러난 충담(沖淡)이 반영되었다. 다음으로 지역 승경의 형상화에서는 어성포, 관두산, 무위사 극락전의 분위기를 유심한 시선으로 포착한 침착(沈着)이 드러났다. 표현 기법과 미적 특질은 다음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첫째, 우의적 기법의 형상화와 한적에서는 선비로서 자신의 삶을 알아줄 달의 출현을 고대한 시, 대설의 경험을 대풍년의 조짐으로 치환하여 자연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형상화한 위로의 시를 통해 한적미가 드러남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영사적 장소의 관조와 전아에서는 충무공의 무용을 칭송한 군자의 풍도(風度)를 담은 작품, 최석의 목민관으로서 청렴과 선정을 형상화한 작품에서 전아(典雅)함이 드러났다. 셋째, 술회적 회포의 감성과 침착에서는 선비의 삶 자체에서 살길을 찾는 침착이 드러난 작품, 선대에 당한 애통한 역사적 사건 등을 회고하며 비개미(悲慨美)를 보여 주었다. 본 논문은 이석신의 한시에 구현된 미적 특질을 조망한 것으로 그의 한시가 17~8세기 호남 한시사에서 해남지역에 거주한 연안이씨(延安李氏)의 시맥이 조선 전기의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 조선 중기 송정(松亭) 이복길(李復吉), 조선 후기 하유당 이석신으로 계승됨을 밝힌 연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This paper is focused on the poems contained in Hayudangjip (『何有堂集』) to ascertain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Lee Seokshin(李碩臣, 1659-1738), who lived a secluded life in Haenam during the late Joseon period. To examine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in his poetry, my attention is divided into two parts: arrangement of vernacular words and expressional and aesthetic techniques. The arrangement of vernacular words was to include the reflection on the locality of poetic materials and the embodiment of regional landscapes. The reflection showed a sense of freshness and simplicity comprehended by a man of virtue whose excitement and disinterestedness simultaneously came from his sincerity. Next, the embodiment revealed the calmness of the poet’s attentive perspective, while capturing the atmosphere of Eoseongpo Harbor, Gwandusan Mountain, and Geuknakjeon in Muwisa Temple. The expressional and aesthetic techniques encompass three parts. First, we can see that the poet used an allegorical technique to reveal the beauty of quietness. He looked forward to the moonrise that would recognize his value as a scholar. The heavy snowfall could have been a natural disaster, but he consoled himself by replacing it with the expectation of an abundant harvest next year. Second, his poetic works demonstrates his scholarly intuition and perspicuity toward historical places and heroes. He exemplified Admiral Yi Sunshin for his bravery, and Choi Seok for his integrity and righteous administration as a governor. Third, he unburdened himself, related his own thoughts, and kept sensibility and calmness. He showed resolute sadness with works that described how to find a way in the life of the scholar and remembered some of the painful historical events of his predecessors. This paper confirms that Lee Seok-shin’s poetry is in the wake of the literary history of Chinese poetry by the Yeonan ‘Lee’ family(延安李氏) in Honam(湖南) area in the 17th and 18th century, whose tradition was inherited from Cheongryen Lee Hu-baek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o Songjeong Lee Bok-gil in the mid-Joseon Dynasty, and to Hayudang Lee Seok-shin in the late Joseon Dynasty.

      • 정인보의 조선 유교와 한국 고대사 인식 -「오천년간 조선의 얼」을 중심으로

        류시현(Ryu, Si-Hyun)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2019 공존의 인간학 Vol.- No.2

        정인보(鄭寅普, 1893~1950)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조선학 연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특히 그가 참여했던 1930년대의 ‘조선학운동’은 일제의 학술 활동에 저항해서 일어난 조선 역사와 문화에 관한 학술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운동의 시작은 조선적인 유학이라고 하는 실학과 정약용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본 논문은 1930년대 조선학운동 당시 양명학자 정인보가 ‘실학’ 연구를 통해 조선 유교와 성리학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선행 연구에서는 이를 1930년대 그의 정약용에 관한 글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본고에서는 1935~1936년 사이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오천년간 조선의 얼」에 소개된 내용에 주목했다. 이 글은 해방 후 『조선사연구』로 다시 간행되었다. 한국 고대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오천년간 조선의 얼」은 한국 고대사에 관한 1930년대 정인보의 역사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동시에 미완의 형태이지만, 한국 통사(通史)에 관한 그의 민족사적 구상을 확인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1930년대 정인보의 ‘조선학운동’의 일환으로 서술된 이 글을 통해 첫째, 조선 유학(성리학)에 관한 인식, 둘째, 정인보의 민족사 구상, 셋째, 한국 고대사의 체계화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조선학운동의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했다. Jeong In-bo(1893~1950) was one of most important persons of Korean Studi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1930s, he was a opinion leader of the Chosun Studies Movement which put the spotlight on Korean culture and history against Japanese scholars academic achievements based on Japanese Orientalism. The origins of Chosun Studies Movement started from the study on one of Korean Confucianism such as Silhak . First of all, this article focused on Jeong In-bo’s Understanding on Korean Confucianism by way of his academic backgrounds as a scholar of the Wang Yang-ming school. Especially, Jeong Inbo’s definitions of Korean Confucianism and Neo-Confucianism examined through his text Koreans Yeul(Spirits) during 5,000 which was serialized by newspaper from 1935 to 1935 and was published after the Korean liberation. Koreans Yeul(Spirits) during 5,000 was a text on Jeong In-bo’s understanding on Korean Ancient History. Even though an unfinished article, this text had designed for Korean total history as part of t he Korean n ational history. This article s crutinized on Jeong In-bo’s understanding on Korean confucianism, the idea on Korean national history, and his framework of Korean ancient history and so on. In conclusion, Jeong In-bo’s works on Silhak and Korean ancient history were closely connected with Chosun Studies Movement in 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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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농경제’에 대한 새로운 이해 – 왕정치(汪曾祺)의 「수계(受戒)」를 중심으로

        뤄강(羅崗)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2021 공존의 인간학 Vol.- No.5

        중국 작가 왕정치(汪曾祺)의 단편소설 「수계(受戒)」에 대한 다시 읽기를 통해, 1980년대에 쓴 이 소설이 이상적인 ‘소농경제’에 대한 찬미를 복잡한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드러냈다. 중국 역사에서 특히 명청시대 이래 형성된 농업에 부업을 더하고, 주노동력에 보조노동력을 더한 ‘소농경제’의 생산 형식에 대응했다. 이런 생산 형식이 서구 농업 현대화의 이론에 부합하지 않는 것 같지만 중국 경제개혁 과정 속에서 비교적 높은 경제적 ‘효율’과 강력한 경쟁력을 드러냈다. 우리는 낙후된 것같이 보이는 이런 ‘소농경제’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 By rereading “Ordained” written by Wang Zeng‐qi, this paper points out that the novel, written in the early 1980s, is a praise of the ideal of “small‐scale peasant economy” in a roundabout way. This praise corresponds to the production mode of “small-scale peasant economy” formed in Chinese history, especially since the Ming and Qing dynasties. Although this mode of production does not seem to conform to the theory of western agricultural modernization, in the process of China’s economic reform, it has shown its higher economic “efficiency” and strong economic competitiveness. We need to give a new explanation to this seemingly backward “small‐scale peasant economy.”

      • 문집 편찬을 통해 본 기록의 역할과 한 인간의 초상(肖像) - 동계(桐溪) 권달수(權達手)의 『동계선생문집』을 중심으로

        한의숭(Han, Eui-soong)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2020 공존의 인간학 Vol.- No.4

        본고는 동계 권달수의 『동계선생문집』을 통해 편린의 기록으로 한 인간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동계는 연산군에게 참화를 당한 후 신원 복권과 문집 편찬이 후대에 이어졌으나, 남은 글이 거의 없는 관계로 동계에 대한 기록은 여기저기 흩어진 유문과 관련된 기록을 모아 간행하는 형태로 정리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집으로 수렴된 글에는 오류의 흔적이 곳곳에 상존한다. 물론 기록의 편린을 통해 한 개인의 삶이 복원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일단 기록의 흔적을 발굴하는 과정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료 또한 개인의 삶의 전모를 온전히 담아 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남아 있지 않는 자료를 가지고 한 개인을 복원한다는 건 어찌 보면 애당초 깨진 조각을 맞춰 가되 듬성듬성 구멍이 난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결과 또한 개인이 온전히 복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편린의 형태로 남아 있는 자료들이 반복적으로 어떤 지점을 보여 준다면 개인의 삶의 핵심적 국면이 어떤 것이었는지 방향을 짐작해 볼 수 있게 된다. 최소한 개인이 당대를 살면서 지향하고자 했던 삶의 방향성은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동계선생문집』에 수록된 글은 동계의 삶의 지향을 명징하게 보여 준다. 『동계선생문집』에 수렴된 동계에 대한 기록과 작품은 16세기 영남 사림이 당대를 바라보던 인식과 실천의 자세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편린의 기록이긴 하지만 동계의 인간적 초상을 일정 부분이나마 간취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계는 길지 않은 생애에 거쳐 유가 학습의 실천을 삶의 핵심 모토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간단없이 걸어간 인물이었음을 편린이 대변해 주고 있다. 이는 문집과 역사서, 각종 필기잡록에 기록된 동계의 형상이 절의로 집약되는 것에서 대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동계선생문집』에 수록된 기록의 편린은 이 점을 줄기차게 붙잡고 기억하기를 바란 흔적에 해당된다. 이것이 동계와 후학을 연계하는 핵심요인이었으며, 문집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계란 인물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This paper investigates the compilation of various unfinished works of Dong-gae Kwon, Dal-Soo, as a way of remembering a person. 『Dong-gae-seon-saeng-mun-jip』 was produced as a collection of unfinished works scattered at various locations and of related documents because his works were not properly preserved after he had been executed by Yeonsangun. Even though his name was reinstated later, the collected works was not exempted from various errors. The reinstatement process through the compilation of broken memories demands time and efforts. For the excavation of records and traces is limited in many respects. Further, these records and traces are not expected to properly reflect the person’s real life experiences. Thus the reinstatement process is, in a sense, a way of acknowledging the impossibility of the project of reinstatement. Notwithstanding, if those records and traces repeatedly demonstrate a certain set of traits, then it is plausible to infer the person’s essential moments and aspects. The broken records enable us to re-imagine his life course, and this is precisely what is found in 『Dong-gae-seon-saeng-mun-jip』 Furthermore, as 『Dong-gae-seon-saeng-mun-jip』 envisages the epistemological and political attitude of 16th century YoungNam scholar, it shows Dong-gae’s personal and political traits where he faithfully practiced confucianism’s lessons by wholeheartedly accepting its core thoughts. The evidence of his incessant pursuit of confucianism is the fact that the various records and documents clearly form a figure of Integrity and Loyalty. It is very clear that 『Dong-gae-seon-saeng-mun-jip』 constantly reminds that his Integrity and Loyalty are to be remembered because his thoughts were the essential elements that linked him with his predecessors and because the meaning of the compilation of his unfinished works lies in this particular commem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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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조선의 사상정화공작(思想淨化工作)과 향약(鄕約) · 자위단(自衛團)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2019 공존의 인간학 Vol.- No.2

        본고는 1930년대에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농촌의 치안유지정책의 한 사례로 함경북도에서의 사상정화공작을 분석ㆍ검토한 것이다. 1930년대부터 40년대 초에 걸쳐 함경북도 남부 3군(명천, 길주, 성진)에서는 좌익적인 농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이들을 탄압하고 농민운동의 기반을 소멸시키기 위해 사상정화공작을 전개하였다. 이를 위해 당초 농촌 원로들이 중심이 되는 향약을 이용해 농민운동에 가담하는 청년을 지도하고 농촌을 안정시키려 했지만, 유교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향약으로는 농민운동을 막을 수 없었다. 경찰 당국은 1936년경부터 향약이 아니라 자위단 조직에 치중하게 되었다. 자위단은 원래 조선과 만주의 국경지대에서 일부 조선인 청년을 가입시켜 경찰지원활동을 하는 조직으로 존재하였으나, 이것을 농민운동이 한창인 지역에서도 조직하여 경찰 지도하에 치안 유지와 농촌 진흥에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자위단은 주민들 가운데 거의 모든 청년 남자를 가입시킨 것으로, 향약과 달리 경찰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 농민운동을 진압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 자위단은 남부 3군뿐 아니라 함경북도의 다른 군에서도 조직되면서 농촌진흥운동과 전쟁 시기의 노동 동원에도 이용되었다. 그러나 남부 3군에서의 농민운동은 1940년대에도 계속되면서 자위단을 역으로 이용하는 움직임도 보였다. 일본 패망과 조선 해방 후 조선 각지에 보안대 등 지역 주민 자위조직이 만들어졌고 조선 북부에서는 이것들이 인민위원회를 뒷받침했다. 함경북도에서는 식민지 지배 말기에 만들어진 자위단이 자주적 주민자위조직으로 이어진 사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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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일수호조규」와 표류민 송환의 변화

        현명철(Hyun Myung-Cheol)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2021 공존의 인간학 Vol.- No.5

        「조일수호조규」 이전과 이후의 표류민 송환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이 본 논문의 과제이다. 이 작업은 표류민 송환의 변화를 연속성에서 살펴보고, 이를 통해 조일수호조규를 기점으로 단절적으로 파악되어 온 한일관계 사상을 재검토하려는 의도였다. 조일수호조규로 기존의 우호적 외교관계가 무너지고 침략적 외교관계가 시작되었다는 가정으로는 표류민 송환의 변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오랜 기간 연속성상에서 정치외교적 변화와 더불어 ‘비용 절감’ 혹은 ‘합리적 송환’이라는 관점도 포함하여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의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첫째, 조선에 표착한 일본 표류민의 송환은 1872년 9월 이후, 관왜(왜관의 외무성 관리)에게 바로 넘겨졌으며, 조일수호조규 이후에는 귀환 시까지 지급하였던 식량이나 도해량미, 의자목(옷감) 지급도 생략되어, 왜관(부산 영사관)에 인계함으로써 송환 절차가 종료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비용 절감, 송환의 합리화 과정으로도 이해된다. 둘째, 일본에 표착한 조선인의 송환은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표류민이 스스로 선박을 수리하고 귀환하는 경우, (나)표민 본선에 타곳에 표류한 표민을 동승시켜서 호송하는 경우, (다)표류민이 선박을 소각하고 비선을 임대하여 귀환하는 경우, (라) 파선된 표류민을 나가사키로 보내어 그곳에서 조선으로 향하는 화륜선(상선)에 의뢰하여 송환하는 경우 등이다. 이 역시 비용 절감을 위한 송환의 합리화 과정으로 이해된다. 셋째, 임소를 대신하여 해관이 표류민을 인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이에는 소통사가 인수하던 과도기가 있었다. The task of this paper is to compare the repatriation of a drift citizen before and after the "Treaty of re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s(1876)". This work is intended to examine the changes in the system of repatriation of drifted people from continuity and to review the ideas of Korea‐Japan relations, which have been understood in a breakthrough from the "Treaty of re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s". It is hard to understand the change in repatriation of stray people under the assumption that the existing friendly diplomatic relationship has collapsed and the invasion of Korea has begun by due to the Korea‐Japan Treaty of establishment friendship(1876). It is necessary to include political and diplomatic changes in continuity over a long period of time, as well as the view of "cutting costs" or "reasonable repatriation." As a result of this study, we were able to draw the following conclusions: First, the repatriation of the Japanese drifting people who landed in Joseon was immediately handed over to Guan Wae (Foreign Affairs official of Waegwan) after September 1872, and the repatriation process was considered completed by this after the Treaty of establishment friendship (1876). This is also understood as a process of reducing costs and streamlining repatriation. Second, it was confirmed that the repatriation of Koreans who landed in Japan was changing in various ways. This is also understood as a process of streamlining repatriation to reduce costs. Third, it was confirmed that the customs was taking over the drift people on behalf of the "Imso(任所)". In the meantime, there was a transition period that "sotongsa(小通事)" was taking over.

      • KCI등재후보

        초등학생의 스트레스와 사회적 지지 지각이 스트레스 대처에 미치는 영향

        최혜란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2022 공존의 인간학 Vol.- No.8

        본 연구는 초등학교 5, 6학년 남녀 학생을 대상으로 스트레스와 사회적 지지 지각이 스트레스 대처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았다. 이는 청소년기의 전환기에 있는 학생들이 스트레스로 인하여 나타나는 일탈행동에 대한 초기 대응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생들이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은 학업이었다. 둘째, 스트레스 하위영역 중 가정환경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능동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사회적 지지 지각 중에서 친구 지지나 교사의 지지보다는 가족의 지지를 더 높게 지각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넷째, 스트레스 상황에서 사회적 지지 지각이 높은 학생들은 능동적으로 스트레스 대처행동을 하였다. 반면에 사회적 지지 지각이 낮은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초등학생들이 스트레스를 주는 사건이나 상황에서 자신의 스트레스 요인을 제거하거나 문제를 최소화하며 능동적으로 스트레스 대처행동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의 계발과 부모교육 그리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이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This study investigated the effects of the stress and social support perception on stress coping behaviors in elementary school boys and girls in grades 5 and 6.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the initial response to the deviant behavior of students in the transition period of adolescence due to stress. The study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it was schoolwork that elementary school students experience the most stress. Second, it was found that among the sub-domains of stress, the home environment disturbs active problem-solving in a stressful situation. Third, among the perceptions of social support, it was found that family support is perceived to be higher than that of friends or teachers. Lastly, students with high social support perception in stressful situations actively coping with stress. On the other hand, students with low social support perception were found to passively cope with stress.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develop various programs so that elementary school students themselves can remove stressors or minimize problems, take active stress coping actions in stressful events or situations, and activate parent education and problem solving counseling programs to help stud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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