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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산 김삼룡박사의 생애와 사상

        양은용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015 馬韓, 百濟文化 Vol.25 No.-

        본고는 문산 김삼룡(文山 金三龍, 1925-2014)의 생애와 사상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그는 원불교 창립기에 교조 소태산대종사(少太山大宗師, 朴重彬, 1891-1943)와 2대 종법사인 정산종사(鼎山宗師, 宋奎, 1900-1962)가 집안에서 제우(際遇)한 인연으로 어린 시절, 원불교 교역자의 길에 들어선다. 그의 생애는 크게 6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성장교육기(成長敎育期)로, 1925년(1세) 출생에서부터 1938년(14세)까지의 재가 유․소년기이다. 제2기는 출가수학기(出家修行期)로, 소태산대종사 문하에 출가하여 주경야독으로 수행과 연구를 시작하고부터 1956년(33세)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원광대학 강사로 임용되도록까지의 청년기이다. 제3기는 창학교수기(創學敎授期)로, 원광대학 강사로 대학의 기틀을 쌓는데 참여하고부터 1972년(48세) 원광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어 교무처장에 취임하도록까지의 장년 1기이다. 제4기는 연구활동기(硏究活動期)로, 원광대학이 종합대학으로 개편되고부터 대학과 교단, 그리고 지역사회를 잇는 활발한 활동과 함께 마한․백제문화연구소를 중심한 익산문화와 미륵신앙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1986년(62세)에 총장에 취임하도록까지의 장년 2기이다. 제5기는 경영지도기(經營指導期)로, 원광대학교 총장에 취임하여 교단과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대내외의 활동을 전개하고부터 2000년(76세) 정산종사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성업을 성공리에 마치도록까지의 장년 3기이다. 제6기는 수양보은기(修養報恩期)로, 정산종사관련 성업의 회향으로부터 원로수도원에 안주하여 교단원로로 수양하며 법문집 등을 펴내는 보은행을 하다가 2014년(90세) 열반에 들도록까지의 만년기이다. 그의 업적은 원불교의 문화사업과 원광대학교의 교육․연구사업, 그리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활동을 통해 드러난다. 원불교신문사의 설립과 <원불교신문>의 창간,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초대소장으로서 익산지역의 백제왕도 구명, 전북애향운동본부 총재로서 인재육성사업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문산의 사상은 원불교사상의 전개를 바탕으로 하여 미륵신앙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이를 정리하면 우선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새 회상관(會上觀)으로, 대종사의 대각으로부터 전개된 구세제인(救世濟人)을 위한 모임의 실체관이다. 둘째, 새 회상관에 새 주세불관(主世佛觀)으로, 소태산대종사를 새로운 주세불로 본다. 셋째, 사생관(死生觀)으로, 모태에서 와서 모태로 돌아간다는 모태회귀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넷째, 국가‧민족관(國家民族觀)으로, 한민족인 세계정신의 지도국, 인류도덕의 부모국으로 거듭잘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문산의 생애와 업적 등은 앞으로 세밀한 보충이 요망된다. 그의 저술을 비롯하여 대담이나 회고 등을 포함하면 그의 사상은 좀더 다양하고 풍성한 관점이 드러날 것이다. The Life and Thoughts of Dr. Munsan Samryong Kim Eunyong Yang Honorary Professor Wonkwang University ABSTRACT The present article aims to observe the life and thoughts of Munsan Samryong Kim (1925-2014). Thanks to the connection of his family with the Great Master Sotaesan (Jungbin Park, 1891-1943), the founder of Won-Buddhism, and the 2nd Master Jeongsan (Gyu Song, 1900-1962), he began his career as a priest of Won-Buddhism from early in his youth. His lifetime might be divided into 6 phases. The 1st phase is the period of his growth and education, ranging from his birth in 1925 (age 1) to his teen ages in 1938 (age 14) when he spent his childhood and adolescence at home. The 2nd phase corresponds to the period of his youth during which he left home, entered Buddhist priesthood as a disciple of the Great Master Sotaesan, working and practicing during the day and studying at night, and was appointed as lecturer of Wonkwang College upon graduation from the department of Buddhism, Dongguk University in 1956 (age 33). The 3rd phase is the first part of his middle age during which he contributed to laying the groundwork for Wonkwang College as its lecturer and took office as dean of the academic affairs when the school was upgraded to university in 1972 (age 48). The 4th phase of his life covers the second part of his middle age during which, since reorganization of college to university, he had been actively engaged in researches of Iksan culture and studies on Maitreya belief with Mahan-Baekje Cultural Research Institute as his base together with other joint activities with the academic circles and local community until he was appointed the president of the university in 1986 (age 62). The 5th phase corresponds to the third part of his middle age, called the period of management consultation during which he performed domestic as well as foreign duties as president of Wonkwang University representing the religious order and the local communities until he successfully retired from chairman of the foundation for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birth of the Master Jeongsan in 2000 (age 76). In the 6th or last phase of his life, to be duly called the period of mind cultivation and repayment of kindness, he retreated to the abbey for seniors spending days publishing the collection of his talks, recollecting the projects related to the Master Jeongsan and cultivating his mind as senior member of the religious order, and at last passed away in 2014 at his age of 90. His achievements could be summed up in the cultural projects of Won-Buddhism, education and research programs of Wonkwang University and activities for development of the local communities. Typical examples of his achievements include establishment of Won-Buddhism Newspaper Company, the first publication of Won-Buddhism Newspaper, research of Iksan area as capital city of Baekje Kingdom in the capacity of the first director of Mahan-Baekje Cultural Research Institute, and initiative in manpower training as president of the Love Jeonbuk Movement. Munsan's thoughts showed a broad range of spectrum, starting from development of Won-Buddhistic ideas as basis to Maitreya belief. His areas of concern and activities may be classified in the following categories: First, a new 'view of hoesang' (會上觀) that represents substance of meetings for 'save the world and govern the people' (救世濟人) developed from enlightening of the Great Master. Second, a new view of main Buddha in addition to the new view of hoesang in which the Great Master Sotaesan shall be regarded as a new main Buddha. Third, a view of living and death from the viewpoint of recurrence of uterus which everything comes from and returns ultimately to. Fourth, a view of nation and state believing that the Korean people shall be reborn as those of the leading country of the world or parent country for human moralism. More refined studies are requested to fill up the vacancy in the ...

      • 21세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원광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육목표 개정과정

        이학승,김요식,송윤강,오재민,양연식,정선관 원광대학교 의과학연구소 2009 圓光醫科學 Vol.24 No.1

        교육목적은 대학의 교육이 지향하는 대전제이다. 그러므로 대학교육 목적과 목표가 어떤가에 따라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이 달라진다. 원광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육목표는, '지덕겸수'로 요약되는 '과학과 도학을 겸비한 전인교육'의 건학정신과 '학술탐구'와 '덕성함양'의 원광대학교 교육목표와 일치하게 현재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현행 교육목표의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었고,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원광대학교 의과대학에서도 사회적 변화 빛 의료인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걸맞은 의학교육의 목적 및 목표의 재설정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개정 작업을 통해 새로운 교육목표를 설정하게 되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기본진료능력을 지닌 의사를 양성한다. 2. 원불교 교리 이념을 반영한 윤리적, 도덕적인 의사를 양성한다. 3. 평생 학습하는 연구하는 의사 혹은 의과학자를 양성한다. 4.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리더십을 갖춘 의사를 양성한다. 5.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봉사정신을 갖춘 의사를 양성한다. Purpose : With the changes to the medical environments and to the medical educational systems, we aimed to evaluate the current mission statement of the School of Medicine, Wonkwang University, and to revise it. Methods : To establish the new goal and mission statement, a Special Committee for the Revision of Medical School Mission and advisory group were organized in 2008. This special committee conducted through five steps of action, which are composed of investigation, education, development, surveillance of various opinions, and announcement. Results : For the development of new goal and mission, the revised, final goal and mission statements decided through the five steps of action. The new mission of Wonkwang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was as follows; 1. Doctor who can diagnose and treat easily 2. Ethical and moral doctor who practice Won Buddhism 3. Doctor or Medical Scholar who studies lifelong study 4. Doctor who has leadership to social responsibility 5. Doctor who goes into service to a local community. Conclusion : The authors expect that the new goal and mission of Wonkwang University School of Medicine would be helpful in giving the guideline on the educational process of medical school and will give the information to reform the medical school system according to the rapidly changing educational enviro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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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불교문화학술회의 40년의 회고와 전망

        양은용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11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Vol.50 No.-

        국제불교문화학술회의(國際佛敎文化學術會議)는 1973년 제1회 대회를 개최한 이래 40년의 역사를 헤아리게 되었다. 일본의 불교대학(佛敎大學)과 한국의 원광대학교(圓光大學校) 사이에 체결된 학술교류협정에 의한 사업의 일환이다. 양 대학이 번갈아 개최하며 2009년까지 21회에 194편의 논고가 발표되었다. 양 대학의 학자가 주축이 되어 한일 양국의 학자들, 그리고 제 3국의 학자들이 모여 성전(盛典)을 이루어왔다. 학술회의는 제1회의 「불교의 현대화 방향」에서 제21회의 「불교와 평화」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사회문제를 불교에 물어왔다. 이 가운데 불교의 본질과 전개, 한·일 양국 간의 문화교류, 불교교육과 불교계 대학의 역할 등 크고 작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현대이후의 사회에 있어서 불교의 존재형태와 역할에 대해 논하고자 할 때는 이 학술회의의 역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양 대학 간에 학술교류협정을 맺고 이 학술회의의 기틀을 연 주인공들, 불교대학의 에타니 류카이(惠谷隆戒)·후지와라 료넨(藤原了然) 전 학장과 츠보이 슌에이(坪井俊映) 대회장, 원광대학교의 박길진 전 총장과 류병덕 대회장 등 양 대학 대표가 모두 고인이 되었다. 삼가 명복을 빌며, 그 결연의 정신과 유업의 계승을 기원하는 바이다. 학술회의는 양 대학 상호간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받았다. 양 대학의 오늘의 발전상의 계기, 그리고 금후의 학술활동 방향을 이 학술회의 40년의 역사에서 찾아도 무리가 없으리라는 말이다.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Buddhist Culture was initiated its first conference in 1973 and continued almost 40 years. It is one of several projects of the academic exchange agreement made between Bukkyo University in Japan and Wonkwang University in Korea. The conferences were held alternately at both universities, and presented 194 articles until the 21st conference in 2009. In those conferences, not only scholars of the both universities, but also many scholars of Japan, Korea and other countries had attended and made flourished conferences. The conferences have been asking to Buddhism on the matters of contemporary society, from “Direction of Modernization of Buddhism” at the first conference to “Buddhism and Peace” at the 21st one. The conferences have been shared consciousness on small and big matters, such as essence and development of Buddhism, Buddhist cultural exchange of the both countries, Buddhist education, role of Buddhist university, and so on. Therefore, on the occasion of discussion for the existence mode and role of Buddhism in modern society, the history of this conference has to be concerned seriously. The protagonists made the academic exchange agreement and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this conference, all of whom were deceased; they are former presidents of Bukkyo University Etani Ryukai and Hujiwara Ryonen, formaer president of Wonkwang University Park Gil-Jin, Prof. Tsuboi Shunei, and Prof. Ryu Byong-Deok. Paying respects to them, I wish continuous transmission of the spirit and legacy of affiliation. The conference has given innumerable influences to the both universities. In other words, we can find out the opportunities of development of the both universities from the 40 years history of this co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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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산 박길진의 국제 활동과 그 의의

        유지원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22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Vol.91 No.-

        Soongsan Park Gil-jin served as the first President of Wonkwang University for over 40 years, contributing greatly to the Internationalization and Globalization of Won Buddhism and Wonkwang University. The background of his International activities was greatly influenced by his father, Park Joong- bin, the founder of Won Buddhism, and was also based on various studies and experiences during the educated periods in Seoul and Tokyo, Japan. Soongsan’s International Activities began in 1956 when he visited 12 countries, including the United States and Europe, leading the development of Won Buddhism and Wonkwang University to a new level. He actively participated in international religious organizations (WFB, WCRP, ACRP) and led the Internationalization and Globalization of Won Buddhism and Wonkwang University by expanding the horizon of international relations. In addition, Soongsan established the Institute of Won Buddhism’s Overseas Propagation, published the English journal Won Budhism,promoted the translation of Won Buddhism Books to play a key role in Won Buddhism’s overseas edification. Meanwhile, Soongsan signed an exchange agreement with famous overseas universities and led the Internationalization of Wonkwang University through various exchange activities such as holding academic conferences, professors & student’s exchanges. Soongsan operated a regular language training program for students with Chinese Culture University of Taiwan. And he played a role in translating the Won Buddhism Books into Chinese translation characters. The Wonkwang University held a long-term and regular International Academic Conference with Japanese Bukkyo University to contribute to the in-depth research of Buddhism and religion and the Globalization of Won Buddhism. Such International Activities of Soongsan are the Manifestation of Soongsan’s Spirit, who self-sacrificed practiced the ideal of “University” and the role of “President”. This was finally able to bloom because there were Four Practices : the Practice of the Founding Spirit of Won Buddhism, the Expression of the Creating Newness from Nothing, the Application of Creative the Great Opening, and the Construction of the Yububmanggu(爲法忘軀) & Yugongmangsa(爲公忘私). 숭산 박길진은 원광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40여 년간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원광대학교뿐만 아니라 원불교의 국제화ㆍ세계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의 이러한 활동의 배경으로는 아버지인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 대종사 박중 빈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이며, 또한 서울과 일본 동경에서의 수학기간의 다 양한 연구와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숭산의 본격적인 국제 활동은 1956년 미국과 유럽 등 12개 국가를 방문하면 서 시작되어 원불교와 원광대학교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먼저 국제적 종교 단체(WFBㆍWCRPㆍACRP)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인적 네트워 크를 구축하면서 국제 관계의 지평을 넓혀나감으로써 원불교와 원광대학교의 국제화와 세계화를 선도해 나갔다. 또한 숭산은 ‘해외포교연구소’를 설립하여 영문 학술잡지 Won-Buddhism을 발행하고 원불교 교서의 번역작업을 추진하여 원불교의 해외교화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한편 숭산은 해외 유명 대학과 교류협약을 체결하고 학술대회 개최ㆍ교수 및 학생 교환 등 다양한 교류 활동을 통해 원광대학교의 국제화를 선도하였다. 대 만의 문화대학(文化大學)과는 정례적인 학생들의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 였으며, 또한 중국어 번체자(繁體字)로의 『원불교교전』 번역에도 일정한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또한 일본 불교대학과는 장기적ㆍ정례적 국제학술대회를 개최 하여 불교학ㆍ종교학의 심층연구 및 원불교학의 세계화에도 공헌하였다. 숭산의 이러한 국제 활동은 ‘대학(大學)’의 이상과 총장(總長)의 역할을 자기 희생적으로 실천한 ‘숭산정신(崇山精神)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바로 ‘원불교 창립정신(創立精神)의 실천’ㆍ‘유무창신(由無創新)의 발현’ㆍ‘개벽(開闢)정 신의 적용’ㆍ‘위법망구(爲法忘軀) 위공망사(爲公忘私)의 체현’ 등 4가지 실천이 있 었기에 마침내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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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산 박길진 박사의 일원사상(一圓思想) 고찰

        허석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20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Vol.85 No.-

        Soongsan Park Gil-jin, the first president of Wonkwang University, is a person who laid the foundation for not only the development of university education, but also in establishing and systematizing the doctrine of Won-Buddhism. He was born as the eldest son of Sot`aesan Park Chung-bin, the Founding Master of Won-Buddhism. Since childhood, he has been an investigator who has lived with metaphysical questions about the principle of the universe and human nature as the top topic of his life. In addition, he was a practitioner who always emphasized that religious enlightenment and practice in life are not dual, and emphasized the harmony of knowledge and conduct. In addition, he was an educator who devoted his passion to teaching his own experiences and academic knowledge to the younger generation. When he was young, Soongsan majored in philosophy at Toyo University in Japan. After studying abroad, he took on an important position in the Won-Buddhist order and played a pivotal role in the development of the University, starting with the Yuil Academy in 1946, and after being elected as the first president of Wonkwang University in 1972. This study examines the background of Soongsan's academic attitude and ideological framework, focusing on the academic course from his childhood to the youth. In addition, I would like to examine the content and meaning of the Il-won thought in his research from the viewpoint of ideological history. Through this, I will discuss the modern significance of his Il-won ideology in terms of the globalization of Won-Buddhism and the development of university education. The data on which Soongsan's Il-won Thought was compiled is the 「Research on Il-won-sang」, which he wrote in 1967. This study examines the Il-won thought of Soongsan, focusing on the content of his thesis. However, in order to expand and deepen the contents of existing research, this study analyzed the contents by collecting the bachelor's degree thesis, 「A Study on Existence: Focusing on Schopenhauer」, which he wrote while studying at Toyo University. In his bachelor's thesis, the concept of metaphysics and reality, the background of the so-called epistemological trend, and its meaning are introduced in detail. These contents are of great help in further developing the existing research on the Il-won thought of Soongsan. 숭산 박길진은 원광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대학의 발전에 공헌했을 뿐만 아니라 원불교사상을 정립하고 체계화하는데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그는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의 장남으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우주의 이치, 인간의 성품 등 형이상학적 의문을 평생의 화두로 삼고 살아온 구도자이자, 종교적 깨달음과 생활 속 실천이 둘이 아님을 늘 강조하며 학문과 인격의 일치를강조한 실천가였다. 또한 일본 동양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받은 근대적교육을 바탕으로 원불교사상의 학문적 정립을 위해 노력하였고, 자신의 배움과 깨달음을 후진들에게 열정을 다해 전한 교육자였다. 뿐만 아니라 불교 교단의 교정원장·수위단원·원불교 개교 반백년기념사업회 회장 등 원불교 교단의 중요역할을 맡아 교단행정을 이끌었고, 1946년 유일학림 학감을 시작으로1952년 원광대학교 학장, 1972년 원광대학교 총장에 선출되어 1986년 72세로열반할 때까지 재직하며 학교발전에 헌신한 교육행정가였다. 본 연구는 숭산의 ‘일원사상(一圓思想)’을 분석하고 그것의 의의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숭산의 ‘일원사상’이란, 숭산이 일생의 화두이자 학술연구의 핵심 주제로 삼았던 일원상,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 또는 형이상학이나 실재(實在)에 관한 교학적·철학적 논의를 종합한 그의 사상을 가리킨다. 이러한 숭산의 일원사상은 소태산이 오랜 구도 끝에 이룬 대각(大覺)으로 천명된 원불교의 종지이다. 언어나 동작으로 표현할 수 없는 궁극적 진리 당체를 일원(一圓)이라 한다면, 그것을 형상화하여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은 것이 일원상(一圓相)이다. 숭산이 이에 대해 천착한 「일원상 연구」(1967)는원불교학의 효시이다. 그가 동양대학에서 졸업논문으로 제출한 「실재의 연구: 쇼펜하우어를 중심으로」(1941)는 숭산의 일원사상을 형성하는 학문적 바탕이되었는데, 특히 형이상학적 실재에 대한 개념, 인식론적 문제의식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이 일원사상으로 집대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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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산 박길진 박사의 일원사상(一圓思想) 고찰

        허석(許錫)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20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Vol.85 No.-

        숭산 박길진은 원광대학교 초대 총장으로 대학의 발전에 공헌했을 뿐만 아니라 원불교사상을 정립하고 체계화하는데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그는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의 장남으로 태어나 유년시절부터 우주의 이치, 인간의 성품 등 형이상학적 의문을 평생의 화두로 삼고 살아온 구도자이자, 종교적 깨달음과 생활 속 실천이 둘이 아님을 늘 강조하며 학문과 인격의 일치를 강조한 실천가였다. 또한 일본 동양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받은 근대적 교육을 바탕으로 원불교사상의 학문적 정립을 위해 노력하였고, 자신의 배움과 깨달음을 후진들에게 열정을 다해 전한 교육자였다. 뿐만 아니라 불교 교단의 교정원장·수위단원·원불교 개교 반백년기념사업회 회장 등 원불교 교단의 중요역할을 맡아 교단행정을 이끌었고, 1946년 유일학림 학감을 시작으로 1952년 원광대학교 학장, 1972년 원광대학교 총장에 선출되어 1986년 72세로 열반할 때까지 재직하며 학교발전에 헌신한 교육행정가였다. 본 연구는 숭산의 ‘일원사상(一圓思想)’을 분석하고 그것의 의의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숭산의 ‘일원사상’이란, 숭산이 일생의 화두이자 학술연구의 핵심 주제로 삼았던 일원상,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 또는 형이상학이나 실재(實在)에 관한 교학적·철학적 논의를 종합한 그의 사상을 가리킨다. 이러한 숭산의 일원사상은 소태산이 오랜 구도 끝에 이룬 대각(大覺)으로 천명된 원불교의 종지이다. 언어나 동작으로 표현할 수 없는 궁극적 진리 당체를 일원(一圓)이라 한다면, 그것을 형상화하여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은 것이 일원상(一圓相)이다. 숭산이 이에 대해 천착한 「일원상 연구」(1967)는 원불교학의 효시이다. 그가 동양대학에서 졸업논문으로 제출한「 실재의 연구: 쇼펜하우어를 중심으로」(1941)는 숭산의 일원사상을 형성하는 학문적 바탕이 되었는데, 특히 형이상학적 실재에 대한 개념, 인식론적 문제의식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이 일원사상으로 집대성되고 있다. Soongsan Park Gil-jin, the first president of Wonkwang University, is a person who laid the foundation for not only the development of university education, but also in establishing and systematizing the doctrine of Won-Buddhism. He was born as the eldest son of Sot`aesan Park Chung-bin, the Founding Master of Won-Buddhism. Since childhood, he has been an investigator who has lived with metaphysical questions about the principle of the universe and human nature as the top topic of his life. In addition, he was a practitioner who always emphasized that religious enlightenment and practice in life are not dual, and emphasized the harmony of knowledge and conduct. In addition, he was an educator who devoted his passion to teaching his own experiences and academic knowledge to the younger generation. When he was young, Soongsan majored in philosophy at Toyo University in Japan. After studying abroad, he took on an important position in the Won-Buddhist order and played a pivotal role in the development of the University, starting with the Yuil Academy in 1946, and after being elected as the first president of Wonkwang University in 1972. This study examines the background of Soongsan"s academic attitude and ideological framework, focusing on the academic course from his childhood to the youth. In addition, I would like to examine the content and meaning of the Il-won thought in his research from the viewpoint of ideological history. Through this, I will discuss the modern significance of his Il-won ideology in terms of the globalization of Won-Buddhism and the development of university education. The data on which Soongsan"s Il-won Thought was compiled is the「 Research on Il-won-sang」, which he wrote in 1967. This study examines the Il-won thought of Soongsan, focusing on the content of his thesis. However, in order to expand and deepen the contents of existing research, this study analyzed the contents by collecting the bachelor"s degree thesis,「 A Study on Existence: Focusing on Schopenhauer」, which he wrote while studying at Toyo University. In his bachelor"s thesis, the concept of metaphysics and reality, the background of the so-called epistemological trend, and its meaning are introduced in detail. These contents are of great help in further developing the existing research on the Il-won thought of Soongsan.

      • KCI등재후보

        국제불교문화학술회의 40년의 회고와 전망

        양은용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11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Vol.50 No.-

        The International Conference of Buddhist Culture was initiated its first conference in 1973 and continued almost 40 years. It is one of several projects of the academic exchange agreement made between Bukkyo University in Japan and Wonkwang University in Korea. The conferences were held alternately at both universities, and presented 194 articles until the 21st conference in 2009. In those conferences, not only scholars of the both universities, but also many scholars of Japan, Korea and other countries had attended and made flourished conferences. The conferences have been asking to Buddhism on the matters of contemporary society, from“ Direction of Modernization of Buddhism”at the first conference to “Buddhism and Peace”at the 21st one. The conferences have been shared consciousness on small and big matters, such as essence and development of Buddhism, Buddhist cultural exchange of the both countries, Buddhist education, role of Buddhist university, and so on. Therefore, on the occasion of discussion for the existence mode and role of Buddhism in modern society, the history of this conference has to be concerned seriously. The protagonists made the academic exchange agreement and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this conference, all of whom were deceased; they are former presidents of Bukkyo University Etani Ryukai and Hujiwara Ryonen,formaer president of Wonkwang University Park Gil-Jin, Prof. Tsuboi Shunei,and Prof. Ryu Byong-Deok. Paying respects to them, I wish continuous transmission of the spirit and legacy of affiliation. The conference has given innumerable influences to the both universities. In other words, we can find out the opportunities of development of the both universities from the 40years history of this conference. 국제불교문화학술회의(國際佛敎文化學術會議)는 1973년 제1회 대회를 개최한 이래 40년의 역사를 헤아리게 되었다. 일본의 불교대학(佛敎大學)과 한국의 원광대학교(圓光大學校) 사이에 체결된 학술교류협정에 의한 사업의 일환이다. 양 대학이 번갈아 개최하며 2009년까지 21회에 194편의 논고가 발표되었다. 양 대학의 학자가 주축이 되어한일 양국의 학자들, 그리고 제 3국의 학자들이 모여 성전(盛典)을 이루어왔다. 학술회의는 제1회의「불교의 현대화 방향」에서 제21회의「불교와평화」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사회문제를 불교에 물어왔다. 이 가운데불교의 본질과 전개, 한·일 양국 간의 문화교류, 불교교육과 불교계대학의 역할 등 크고 작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현대이후의 사회에 있어서 불교의 존재형태와 역할에 대해 논하고자 할 때는 이 학술회의의 역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양 대학 간에 학술교류협정을 맺고 이 학술회의의 기틀을 연 주인공들, 불교대학의 에타니 류카이(惠谷隆戒)·후지와라 료넨(藤原了然)전 학장과 츠보이 에이(坪井俊映) 대회장, 원광대학교의 박길진 전총장과 류병덕 대회장 등 양 대학 대표가 모두 고인이 되었다. 삼가 명복을 빌며, 그 결연의 정신과 유업의 계승을 기원하는 바이다. 학술회의는 양 대학 상호간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받았다. 양 대학의오늘의 발전상의 계기, 그리고 금후의 학술활동 방향을 이 학술회의40년의 역사에서 찾아도 무리가 없으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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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산(禪山) 변중선(邊衆船)의 독립운동과 『한국독립운동약사(韓國獨立運動略史)』 저술

        박민영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018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Vol.77 No.-

        Sunsan(1903-1980) believed in Won Buddhism after liberation in 1945 with a career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China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unsan was involved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in Shanghai in the mid 1920s, participating in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Korea. As a result, he was arrested by Japanese police, sentenced to three years' imprisonment, entered prison, and was released in 1932. Sunsan did not leave merit only in the field of independence movement. After being released from prison in Pyongyang in 1932, he lived in Mudungsan in Gwangju until liberation in 1945, devoting himself to studying medicine and studying traditional Korean studies. In 1945, when he was liberated, he devoted himself to political, social and educational movements. In particular, he taught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at Cheonnam National University based on his experience of independence movement. The book he wrote as a textbook for lecturing, A Brief History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is also significant in that it is the first textbook of independence movement history after liberation 1945. On the other hand, Sunsan was deeply attracted to Won Buddhism. Won Buddhism came from Buddhism, which has long since established a relationship with young age. Sunsan, who participated in the Buddhist reform movement after liberation, actively participated in Gwangju and Chonnam provinces. After the retirement of Chonnam National University, Won Buddhism more and became a professional performer. Sunsan, who entered Won Buddhism, served as the first dean of the College of Oriental Medicine of Wonkwang University and the director of Won Buddhism Donghwa Hospital and treated patients in Iksan. In addition, he was a strong and noble character, and he also focused on Won Buddhism. 선산 변중선(1903-1980)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경력을 가지고 1945년 해방 후 원불교를 믿었다. 선산은 1920년대 중반에 중국 상해 를 무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그 결과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 고생하다가 1932년에 석방되었다. 선산은 독립운동 분야에만 공적을 남긴 것이 아니었다. 1932년 평양의 감옥에서 석방된 뒤 1945년 해방 때까지 광주 무등산에 숨어 살면서 학 문 수양과 조선 전통의 의학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45년 해방이 되 자, 오랜 은둔생활에서 벗어나 정치, 사회, 교육운동에 적극 투신하였다. 특히 해방 후 자신의 독립운동 체험을 바탕으로 전남대학교에서 독립운동사를 강 의하였다. 그가 강의용 교재로 지은 책『 한국독립운동약사』는 해방 후 최초의 독립운동사 강의 교재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다른 한편, 선산은 원불 교에 깊이 심취하였다. 원불교 입교는 젊은 시절부터 오랜 인연을 맺어온 불교 에서 비롯되었다. 해방 후 불교계의 개혁운동에 참여한 선산은 광주, 전남 지 방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전남대 교수 시절에 맺은 인연을 계기로 원불교에 들어갔고, 전남대 정년퇴직 직후에는 원불교에 더욱 심취하여 전문 수행자가 되었다. 원불교에 들어간 선산은 원광대학교 제1대 한의과 대학 학장, 원불교 동화병원 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전북 익산에서 환자들을 치 료하였다. 또한 그는 고결하고도 강직한 성품으로 원불교 포교활동에도 주력 하여 뛰어난 인재 다수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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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광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건륭년간 감로도 두 점

        김정희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021 馬韓, 百濟文化 Vol.37 No.-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두 점의 감로도는 각각 1750년과 1764년에 제작된 작품으로서, 18세기 감 로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1750년에 화승 덕인과 유봉이 조성한 건륭15년명 감로탱화(전라북 도 유형문화재 제185호)는 상단에 7여래를 비롯한 불·보살, 산수를 경계로 중단에 육도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의식장면과 시식단, 하단에 세속의 여러 가지 환난장면과 아귀고가 묘사되어 있어 18세기 감로도의 전형적인 3단 구도를 보여준다. 특히 하단에 표현된 수묵 몰골양식의 무주고혼은 고혼을 불국토로 천도하 기 위한 의식인 수륙재용 불화로서의 감로도의 의미를 잘 보여준다. 16세기부터 표현된 망령을 각 인물마 다 묘사하고 있는 점은 1730년 운흥사 감로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감로도 등을 따르고 있지만 이 감로도 를 마지막으로 망령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점은 18세기 감로도의 도상연구에 기준이 된다. 1764년에 수 화승 치상(치삭)을 비롯해 13명의 화승이 제작한 대곡사명 감로왕도(보물 제1990호)는 상단에 7여래를 비 롯한 불·보살, 그 아래로 의식장면 및 아귀와 고혼을 배치하였다. 이 감로도에서 보는 것처럼 상단 화면의 중심에 7여래가 등장하는 것은 1701년 남장사 감로도에서 정립된 이후 일반화되었지만, 대곡사명 감로왕 도의 상단에는 1589년 일본 야쿠센지 소장 감로도처럼 비명횡사한 고혼들을 천도하기 위해 내영하는 아 미타삼존이 등장하는 등 16세기 감로도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18세기 감로도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 닌다. 또한 하단에 횡으로 길게 펼쳐진 전쟁장면이 화면 전체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모습은 다른 감로도 에서는 볼 수 없다. 여러 폭의 비단을 이어 붙인 거대한 화면에 유려하고 탄력 있는 필치로 다양한 장면을 묘사했을 뿐 아니라 40여 명 이상의 발원자와 13명의 화원이 동참하여 조성했다는 점에서도 18세기 감로 왕도의 수작으로 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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