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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르트회의에서 예정론 안에 죄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과 칼빈의 입장 사이의 관계

        임성민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2005 국내석사

        RANK : 249647

        타락 후 선택설을 타락 전 선택설 보다 선호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유기에 대한 문제를 후자보다 더 잘 해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기를 하나님의 의지에 돌릴지라도 어떤 대상의 고려 없이 어떤 자를 선택하고, 어떤 자를 버린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과 일치하지 않고, 인간의 사고에 있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을 생각할 때, 계시의 궁극적인 것은 타락 전 선택설이 더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선택과 유기에서 공통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지혜이기 때문이다. 왜 어떤 자를 택하시고 어떤 자를 버리시는지 알 수 없다. 오직 그 이유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지혜로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작정의 성격은 오직 그 분의 속성에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분의 절대성, 영원성은 인간의 조건이 하나님의 의지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하고 유기하실 때 그 대상을 고려하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하나님의 속성에 합당하다. 도르트 회의 소집 이유와 항론파들의 주장을 보여주어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여 도르트 신조가 정통교리의 선언임을 천명하고 믿음의 결정을 서명으로 입증하기 위한 도르트회의의 마지막 결론 조항을 소개하는 것으로 논문을 마치려 한다. "이것은 벨기에 교회 안에서 논쟁이 있어 왔던 다섯 조항에 관한 정통교회의 교리를 명료하고 단순하게 솔직하게 선언한 것이요, 얼마동안 마찰을 일으켰던 오류들에 대한 반박이다. 이 교리는 총회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 판단한 것이므로, 개혁교회의 고백과 일치한다. 따라서 대중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모든 진리와 공평과 정절을 거스리는 것일 수밖에 없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의 주장은 이러하니, '예정에 관한 개혁교회의 교리나 이와 연관된 교리들은 그 자체의 성질이나 필연적인 경향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모든 경건과 종교에서 이탈하게 하는 것이요, 육체와 마귀에 의해서 생겨난 아편이요, 사단이 숨어서 기다리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절망과 안녕이라는 창으로 찔러 치명적인 손상을 가하는 요새이요, 하나님을 죄와 불의와 폭력과 위선의 원인자로 만드는 것이요, 스토아사상·마니교·자유주의·터키주의의 개조에 불과한 것이요, 아무것도 택함받은 사람의 구원을 방해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육체적인 안전을 좇아 자기 좋을 대로 살게 한 결과 극도로 악한 온갖 죄를 안심하고 범하게 하는 것이요, 유기된 사람이라면 비록 성도로서의 모든 일을 행한다 해도 자기의 구원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또 이 교리는 하나님을 죄는 조금도 고려하거나 상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의지 판단에 따라서만 세상의 대부분을 영원히 저주하기로 예정하신 분과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서 그들을 창조하신 분으로 만드는 것이요, 같은 방식으로 선택을 믿음과 선행의 근원과 원인으로 그리고 유기를 불신앙과 경건치 못함의 원인으로 만드는 것이요, 신실한 사람들의 많은 죄 없는 자녀들을 어머님의 품에서 뜯어내서 포악하게도 지옥에 빠뜨림으로써 그들의 세례나 그들이 세례 받을 때에 있었던 교회의 기도를 그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개혁교회가 알지도 못하고 또 온 힘을 다해 싫어하는 다른 많은 반대도 있다. 그러므로 도르트 총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로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개혁신앙이 오랫동안 다방면으로 누적된 비방에서 나왔거나, 고대나 근대의 일부 소수 교사들의 사적인 주장을 정직하지 못하게 오용하거나 본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왜곡한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교회의 고백에서 직접 나왔다는 것과, 모든 총회 대표들의 만장일치 승인을 거쳐서 이러한 정통교리의 선언이 나왔다는 사실을 평가해 주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한다. 무엇보다도 총회는 그토록 많은 교회의 고백들을 거짓되게 증거하고, 연약한 사람의 양심을 괴롭히고, 또 참으로 신실한 사람의 모임을 미혹하고 있는 비방자들에게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을 경고한다. 끝으로 총회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있는 모든 형제들에게 이 교리를 대학이나 교회에서 경건하게 그리고 종교적으로 취급할 것과, 이 교리에 대해서 말하거나 저술 할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이 되고, 생활에는 거룩을 이루고, 고통당하는 영혼에게는 위로가 되어지도록 할 것과, 신앙에서 유추된 문장뿐만 아니라 용어까지도 성경을 따를 것과, 오만한 궤변가들을 부추겨서 그럴싸한 궤변으로 개혁교회의 교리를 격렬하게 공격하거나 심지어 욕하는 일이 없기를 권한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진리로 우리를 성화케 하시고, 잘못 생각하는 자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건전한 교리를 비방하는 자들의 입을 막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한 사역자들에게 지혜와 분별의 영을 주시사, 모든 논의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듣는 자들에게는 교훈이 되어지기를 바란다. 아멘.

      • 舊約에 나타난 言約思想에 관한 考察

        김태식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199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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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urpose of this studies is focused on the Covenant of the Old Testaments importance. A large number of church preach the gospel in New Testament. BUt for Old Testamnet, New Testament is no more than a mere ornament. Therefore It is impossible to overestimate the importance of Coventant on Old Testament. We shall consider some Old Testament scholar (Such as Wellhausen, Mendenhall, Kline) and the scope and the method of this thesis compare to Culture, social, language, religion of Greek and Hittite's clan. The first chapter introduces history of Covenant in the Old Testament. The Second chapter, section one refiects concept of Covenant through background and studies the etymology of berit(ㅁㅁ). The Second chapter, section two deals with telationship between a treaty and a Covenant. The Second chapter, section three reflects significanse in Covenant and Theology. The Third chapter studies advance of Covenant through Noah, Abraham, Moses, David and criticize and define a conservative theology's positive about Covenant of liberalism. The Fourth chapter summarizes the results of this thesis. and it leaves the task of the study on some problems of Covenant in other that we may studies thesis of Theology in other views.

      •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의 선교의 기초와 방식에 대해서

        오승훈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9647

        이상에서 본 연구자는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 선교의 기초와 원리 및 방식에 대하여 고찰하여 보았다. 서론에서도 밝혔지만, 본 연구자는 본 연구를 통하여 선교에 있어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본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왜 선교를 하여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전해야 하는지? 어떤 대상들에게 전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우리의 생각이나 이해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하심과 신구약 성경의 통일성에서 드러나는 동일한 은혜가 현채의 우리에게까지 흐르고 있음에 우리는 다만 그 은혜를 받아 누리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엡 1:7)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그 안에서 기업이 되어(엡 1:11)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엡 1:19)하시는 일을 이 시대에 있어서 '선교'라는 수단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방식의 풍부한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볼 때, 현재 선교지의 선교사역의 특성은 선교지 상황과 정서를 고려한 선교지의 필요와 선교지 현실에 적합한 사역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추세는 복음을 전해야할 대상에 대한 이해와 선교지의 현장화 된 전략이라는 이유가 있음을 안다. 하지만 선교사가 이를 위해 파송 받았으나 전파되어야할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의 뜻이 무시되고 인간이 중심이 되어 가는 사역은 경계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또한 지금까지 내용을 근거하여 본다면, 선교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사역의 수단으로 교회를 세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개혁주의 교회에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기억하여야 할 것은 교회의 통일성, 구원의 성취와 그 서정의 뿌리를 예정론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이신칭의론이 종교 사회적 부패들을 제거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신칭의 핵심은 구원의 길로서 믿음의 방식에 있다. 즉 그 방식은 사회계층들을 상대화하였고 각 개인의 가치를 크게 하였으며, 정치 사회적 가치 기준들을 변경시켰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영원한 구원의 핵심이 인간론 중심으로 바뀌어지고 거기에 강조가 있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현대 교회와 선교에 있어서도 복음주의라는 이름 하에 전혀 장로교회적이지 않고, 더욱이 개혁주의 적이지 않는 다양한 선교 이론들의 등장에서도 쉽게 발견되어지는 내용이다. 그러나 예정론에 구원이 기초하면,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존한다는 것 때문에, 전적인 은혜로 인한 감사의 생활을 하게 하고 인간론 중심에서 벗어나 자신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극히 겸손케 한다. 그런 구원론은 성도에게 견인과 강한 인내를 가져다주고, 정치 사회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도 이신칭의론보다 훨씬 더 엄밀하게 비판할 수 있다. 특별히 이방인들에 대한 사랑과 정치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에 대한 강한 신뢰를 요구하고 선교에 있어서도 인간론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고 선교지에서도 한 사람람의 구원이 없더라도 선교에 대한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인내하며 순교까지 할 수 있는 정신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이렇듯 개혁주의에 입각한 신학의 풍성한 내용들은 선교사상의 풍성한 수원지가 되며, 진정한 근거가 되고 있다. 이것은 교회와 선교사에게 선교지에서 삶의 지침과 의미를 부여해 준다. 또한 불신자들에 대한 그들의 자세와 선교적 의미를 성경적으로 파악케 하여 무엇을 전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그리하여 믿지 않는 일반 시민에 대해서도 진정한 인간존중의 기틀이 되며, 가난하고 무시 받는 자들에 대해서도 강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고, 교회와 사회에 대한 비판과 혁명정신의 원동력이 되며, 복음의 순교자와 나그네를 변명하며, 또한 개척교회의 신실과 정성을 제공하며, 개척 된 교회의 내적 성숙을 제공한다. 교회가 흔들리지 않도록 권징의 의미가 된다. 따라서 선교의 대상을 알게 하고 선교의 효과나 결과에 대한 원인은 제공받게 한다. 그리고 선교지와 교회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서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또 한가지는, 개혁주의 신학에 저항의 개념으로서 오직 성경(sola scriptura ad resistendum)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선교지의 다양한 상황들로 인하여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기가 어렵고 힘이 드는 상황이라도 진리와 비(非)진리를 타협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는 영적인 무기로서 흑은 저항의 무기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아주 실천적인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저항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는 것은 보다 큰 저항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운동이다. 진리에 대한 고집 자체가 사회로 하여금 진리를 추구하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 한계를 정확하게 긋는 것도 진리 자체만을 사랑한다는 선포인 것이다. 때로 우리는 이런 일에도 처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진리를 버리고 진리 때문에 친구들도 나를 버리고 가족들도 나를 버리며 가까운 신앙의 동지들도 나를 버려 진리 때문에 홀로 서 있고 하나님만이 그 증인으로 있을 때(solus primo eram, me unum fuisse, Deum ipsum tester) 이럴 때, 우리는 인간의 의지로 홀로 서 있어서는 안되고, 루터처럼 성경과 더불어 아직 이성 혹은 양심으로 홀로 서 있어서는 안되며, 오직 성경을 가지고 그 성경과 함께 오직 성경에 의해서 생각하고 말하는 자로서 홀로 서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그런 오직 성경으로 홀로 서 있는 일에 다양한 종교개혁자들도 참여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독특한 고백 안에서 저항하는 자로서, 그 안에서 오직 성경으로 생각하며 말하는 자로서 홀로 서 있어야 한다. 여기에 바로 정통개혁주의 신학으로 무장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 이제 이와 같은 논의의 끝으로 우리의 사역 현장에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가 무엇을 행하며,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에 우리의 눈과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유일한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께 눈과 마음을 돌리며 그 분의 뜻하심을 따라서 무엇을 행하며, 그 분 앞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에 우리의 전 생애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걸음을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 Thomas Cartwright의 교회정치에 관한 연구

        최성호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2005 국내석사

        RANK : 249647

        지금까지 토마스 카트라이트의 교회정치원리를 중심으로 한 칼빈의 개혁신학 속에 나타난 장로교정치원리와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원리에 대해 살펴보았고 한국장로교회의 실정과 그에 따른 평가를 내려 보았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토마스 카트라이트가 기초를 놓았던 장로교회정치원리가 그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칼빈의 종교개혁사상으로부터 아니, 고대교회로부터 계속 이어져 왔던 교회정치원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장로교회정치의 원리가 되어지고 있는 것은 모든 신앙과 삶에 있어서 원리요, 규범으로서의 "오직 성경"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직 주님만이 왕이시고, 모든 것에 앞서서 그리고 모든 것 위에 그의 말을 들어야 되며 우리보다 높은 상전에게 복종하되 그분 밖에서 복종해서는 안 된다"는 칼빈의 저항정신이 여기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 원리는 또한 토마스 카트라이트로 하여금 영국 땅에 장로교 정치의 기초를 놓게 했으며, 또 다른 많은 개혁자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신론에 앞서 개혁의 방편과 무기로서 성경에 대한 고백으로 칼빈주의적 장로교회로서의 처음이요 마지막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그 정치와 예배모범을 고백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들은 성경에 근거한 교회정치 원리는 회중교회도 감독교회도 아닌 장로교회정치임을 분명히 말해준다 하겠다. 이와 함께, 장로교회정치의 귀중한 고백의 유산으로서 완전한 교회로서의 장로회인 노회의 개념과 "당회", "노회", "대회", "총회"의 치리회에 있어서 "의장의 개념과, 파회 개념"의 의미가 결코 단지 지엽적이거나 불필요한 논쟁이 결코 아님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 시대에 있어서 교회는 성경의 원리를 떠나 시대의 환경에 발맞추어 재빠른 적응을 해 나아감에 따라 순교의 피를 통해서 이루어놓은 종교개혁의 유산들을 값없이 버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 우리는 진정 개혁주의 신학(교회정치)이 무엇인가를 되물어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는 개혁된 신학이다. 또한 개혁된 신학이란 무엇을 개혁해야 할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개혁된 것이 무엇이냐를 중요하게 여기는 신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로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난 받고 순교한 한 농부의 순교적 고집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자 하는 고집, 그리스도만을 왕으로서 그리고 교회의 머리로서 고백하고자 하는 고집,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진리를 버리고 진리 때문에 친구들도 나를 버리고 가족들도 나를 버리며 가까운 신앙의 동지들도 나를 버려 진리 때문에 홀로 서 있고 하나님만이 그 증인으로 있을 때(solus primo eram, me unum fuisse, Deum ipsum testor), 인간의 의지로 홀로 서 있어서는 안 되고, 루터처럼 성경과 더불어 아직 이성 혹은 양심으로 홀로 서 있어서는 안 되며, 오직 성경을 가지고 그 성경과 함께 오직 성경에 의해서 생각하고 말하고자 하는 고집으로 홀로 서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독특한 고백 안에서 저항하는 자로서 그 안에서 오직 성경으로 생각하며 말하는 자로서 홀로 서 있어야 한다. 여기에 바로 정통개혁주의 신학으로 무장해야할 당위성이 있다 하겠다. 그러기에 우리는 활동과 조직에 있어서 헌법에 보증되지 않고, 그 헌법이 지향하고 있는 단순하고 바른 교회정신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만한 틀이나 정신들은 우리 가운데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더 하나님의 진리 자체가 좋으면 좋을수록 무조건 수용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고, 자신이나 주변의 원인 때문에 진리에 대해서 못 본체 해서는 안 된다. 참된 진리를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의 헌법에 기초하여야 하고 언제든지 진리는 동조자가 없고 공인이 되지 않아도 그 자체가 빛으로 남아 있도록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장로교회란 이름을 붙이고 있고 계속 붙이길 원한다면 토마스 카트라이트의 교회정치원리를 바탕으로 한 스코틀란드 종교개혁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동시에 영국에서 일시적으로 그 스코틀란드 종교개혁에 따라 개혁해보고자 하는 영국 시민전쟁의 열매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남겼다면 그 장로교회의 종교개혁은 원고백서의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 Thomas Cartwright(1535-1603)의 『기독교 논총(교리강론)』에서 바라본 삼위일체론 연구

        김호연 安養大學校 神學大學院 2004 국내석사

        RANK : 249647

        우리는 지금까지 Thomas Cartwright가 가지고 있는 신학 가운데 신론을 다루고 그 안에서 특별히 삼위일체를 다루면서 그와 공동선상에 있는 어거스틴을 비롯하여 칼빈과 또한 그의 제자였던 베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다. 삼위일체라는 하나의 큰 주제를 가지고 비교하는 가운데, 넓게는 같은 신학 노선 안에서의 신학적 입장을 보았고 좁게는 어거스틴부터 시작된 삼위일체론에서 칼빈과 베자에 이르러서 카트라이트에게 까지 삼위일체론에 대한 신학적 입장 가운데 각자의 독특성이 있었다고 논자는 생각한다. 결국 베자와의 동시대 사람으로서 카트라이트는 어거스틴과 칼빈, 그리고 베자의 신학적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배경에서 좀더 깊이 있게 들어가서 그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독특성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Cartwright의 신론을 평가하기에 앞서, 왜 모든 신학적 주제들에 대해서 다루기 전에 성경이 외적원리로서 다루어지지 않는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미 제네바 후기 신학의 경우에도 칼빈의 경우와 달리 성경이 신학 전체의 어떤 외적 원리로서 다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이 교회론에 의존하여 참된 교회의 표지들 중 하나로 다루어졌다. 역시 Cartwright의 신학의 경우에도 칼빈이나 제네바의 칼빈 이후 신학과 독립적으로 율법의 세 가지 기능과 관계해서 이해했던 틀이 하나님의 말씀 전체의 기능으로 적용되는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따라서 사토 바울의 로마서에 근거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다루기 전에 어떤 외적 원리로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다루다가 성경으로 넘어가는 그런 칼빈의 방식도 아니고, 제네바의 칼빈 이후 신학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참된 교회의 표지로서 논의하는 방식도 아니다. 토마스 카트라이트의 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의 기본적 이해에 있어서 적정과 절도의 원리가 신학적인 내용 가운데 스며들어 있으며, 하나님의 특별계시로서의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공동사역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정통성이 인정된다. 또한 성경 해석적인 면에서도 그는 우선 설교자를 성경 해석자로 본다는 것에 주목해 볼 만하다. 특히 그가 해석한 출3:14절에 대한 여호와라는 이름에 대한 해석에서 그는 현재 혹은 미래형으로 번역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의 원리는 전부 칼빈의 유산이기도 하다. 사실 고대 문자들의 경우(특별히 애굽의 상형문자들의 경우), 시제에 대해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특별히 고대문자들의 문법적 요소들을 현대에 와서 해석할 때, 시제적 해석보다 더 양상적 해석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영원한 현재로서보다는 무시간적으로(과거를 제외한 현재 혹은 미래) 혹은 양상적으로 해석한(a continuance) Thomas Cartwright의 문법적 요소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진보적이다. 여하튼 여호와라는 이름의 배경이 되는 출3:14절에 대한 해석은 어떤 특별한 점이 있다면 개혁주의 전통에 잘 근거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앞에서도 밝힌바와 같이 칼빈의 이런 신학적 유산들이 순수하게 Thomas Cartwright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가 바른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또한 Thomas Cartwright가 삼위일체의 칭호 자체로부터 던진 물음들 가운데 이런 대답을 통해서 위격들 사이의 관계와 속성들에 대해서도 어떤 암시를 던져 주는 정의를 하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Thomas Cartwright의 독특성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러나 그에게서 처음 분명히 된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거룩히 하시는 일을 성령이 하시더라도, 직접적으로 성부와 성자로부터 하신다는 사실이다. 즉 구원의 서정에 대한 삼위일체의 구조에 의한 정확한 이해를 처음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Thomas Cartwright의 신학의 정통성 가운데 있는 그의 독특성과 신학적인 탁월함이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영국을 개혁주의로 이끌어 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논자는 이러한 토마스 카트라이트를 소개함으로 그가 진정으로 영국 퓨리탄의 기수였던 그의 정신을 본받고 청렴하고 결백한 그의 삶 가운데 전해졌었던 개혁주의의 정신을 오늘날 우리도 이어가므로 현대 우리의 교회 가운데 바른 신앙 교육의 길을 모색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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