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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Study on Ethnicity in the Baltics after EU Membership

              안성호(Ahn, Sung-Ho) 아시아·중동부유럽학회 2004 동유럽발칸학 Vol.6 No.2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90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14개 공화국중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 발틱 3국은 다른 여타의 독립국가보다도 정치․경제적으로나, 사회ㆍ문화적으로 매우 빠른 발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UN은 물론 NATO와 EU 가입국가가 되어 이젠 동유럽보다는 중동구유럽이나 서유럽국가로 당당하게 서고 있다. 본 논문은 1999년부터 2004년 전후 발틱 3국이 EU에 가입하기위한 방안과 전략을 분석하면서 EU가입조건에 충족한 구체적인 내용들 중하나인 발틱 3국 내부에 존재하는 소수민족문제에 대한 민주적이고 평화적 해결 과제에 대한 실천여부를 중점적으로 분석하였다. 특히 과거의 복잡한 역사는 차지하고라도 구소련의 지배하에서 부속공화국으로 50여 년 간 존재해오면서 이들 국가내에는 러시안인들이 상당수 자리잡고 있었다. 비록 러시아인의 분포가 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라트비아 3국 에서 각각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90년 독립이전에는 소수의 러시아인들이 주도적으로 3국의 정치․경제․민족문제를 좌지우지하였다. 그러나 90년 독립이후 2004년 EU가입을 전후로해서는 사실상 발틱 3국에서 러시아인들은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였고 이 과정에서 3국에서 에스토니아인-러시아인, 라트비아인-러시아인, 리투아니아인-러시아인들과의 관계는 민족갈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표출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행히 3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서구선진국가 수준에는 미흡하지만 빠른 속도로 내부적 갈등과 균열을 치유해가는 적응력을 보였다. 이러한 결과로 2004년 EU에 3국은 가입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년 EU가입이후에도 여전히 러시아인에 대한 소수민족정책에 있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갈등적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3국이 NATO에 가입하면서 러시아와는 사실상 외교ㆍ안보적 측면서 대립적 관계로 전환되었고 러시아는 발틱 3국에 있는 러시아인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발틱 3국에서는 러시 아인들에 대한 정치․ 사회․ 교육 등의 측면에서 여전히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문제 등 우려할만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라트비아에서는 러시아어 사용을 공식적으로 금지하면서 노골적인 차별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장차 러시아인 들의 집단적인 저항이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발틱 3국은 EU가입조건으로 민주주의제도화나 소수민족에 대한 평화적 해결 등 다각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발틱 3국의 보다 선진된 민주적 시민의식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새 민주적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다당제도의 도입, 정부의 이념과 종교적 관여에 대한 배제, 유럽공동체로 향한 개방과 평화적 협력, 시장경제도입, 인권 보호를 위한 민주적 사법처리, 민주적 지방자치의 실천, 시민과 민족의 자유권보장 등 을 그대로 실천한다면 발틱 3국에서의 민족문제는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EU국가들이 발틱 3국의 내부적 문제 중하나인 민족문제에 대한 슬기로운 해결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들 3국에서의 민족문제에 대하여 과거의 문제를 미래로 연결시키지 않으려는 발틱 3국과 러시아의 의지가 작용한다면 상호 협력적 관계개선을 통하여 보다 평화적으로 민족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인식하였다. The main theme of this paper is to discuss EU integration and ethnicity in the Baltics stonia,Lithuania,Latvia) after EU Membership. I am going to discuss and prospect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Baltics and Russian ethnics in the Baltics from 1990s. Western Europe cannot consider that the Baltics separated from the other part of Europe anymore with joining NATO & EU. It will play an important role in various cultural exchanges as well as in the political, diplomatic and economic relationships with the Baltics. However, particularly since World War II, the Baltics has been viewed as one region because of its generally accepted connotation of Soviet domination. Briefly speaking, in Considering these differences and similarities between the Baltics and Russia, the Baltics may find some important points which can help advance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Baltics and Russia can share lessons of democratization and cooperate with each other for the Baltics's ethnicity, world peace, NATO membership for Central -East-Europe, and UN affairs. Economically the Baltics and Central-East Europe are going to members of EU in 2004. The Baltics and Central-East Europe share many common interests areas. Cooperation in the EU, building a new economic relationship in the post-USSR era, and cooperation with the Baltics three countries are other important matters of mutual concern. Membership of EU will continue to produce positive effect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Baltics and Russia. Ethnicity Problems of the Baltics should be solved through this peaceful democratic process with Russia. In this sense, The Baltics can cooperate with Russia for democratization, marketization,and peaceful solving ethnicity conflicts in the Baltics as well as Russia. The constitutions of newly formed Central-east Europe combine national, civil and international principles. Based upon the spiritual heritage of their ancestors constitutions are an expression of, and concern for, fundamental rights and freedom of citizens. Facing joining in EU, and a New World order, the Baltics has to get international support from various areas in the world to enhance her international standing. The Baltics can cooperate with EU for democratization and marketization in Russia as well as relationship of western Europe. EU has supported the Baltic's globalization and the Baltic's policy about it in Russia. Furthermore, regarding the Baltics as present and future partner in the international society, the Baltics should make short and long term strategies from personal to cultural interchange as well as strengthen the trust in the political and diplomatic relationship with Russia. All of these things would be good for the Baltics's national strength and human rights of Russian ethnic in the new millennium.

            • 유럽연합의 공동경쟁정책

              이강용(Lee Kang-Yong) 아시아·중동부유럽학회 2010 동유럽발칸학 Vol.12 No.1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논문은 유럽연합의 공동경쟁정책의 내용이 무엇이며 실제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유럽공동경쟁 정책은 앞으로 이루어 질 것으로 예상되는 한․중․일 간의 경제공동체가 경쟁정책을 어떻게 집행해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자유방임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독점금지법은 불필요한데 그것은 기업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상호간에 치열한 경쟁을 해나가는 장기적 역동적 과정으로써 특정 기업의 독점이 유지될 수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방임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독점적 위치에 있는 기업이 가격인상을 시도하는 경우 다른 기업들에게 시장점유율을 높여 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적 파괴의 과정은 독점을 깨트리는 과정에서부터 시작 된다. 그러므로 정부가 나서서 시장 독점을 깨트리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EC조약은 그것이 국가경제발전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기업에 대한 국가보조금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또 유럽연합 내에서 기업이 다른 기업과 합병하려고 할 때 합병된 기업의 연간 매출액이 특정 금액을 넘어서면 해당 기업은 집행위원회에 사전 통보하여야 하며 집행위원회는 이를 반드시 심사하여야 한다. 특정 금액 이하의 합병인 경우에는 회원국의 공정거래 당국이 이를 심사한다. 이러한 규정은 모든 기업 간 합병에 적용되는데 합병기업의 등록 주소나 본사나 생산시설이 세계 어디에 있든 유럽집행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된다. 이는 유럽 외부 지역에 있는 기업 간 합병이라고 하더라도 그 기업들이 유럽시장 내에서 활동하는 경우 유럽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application of Competition Law in the European Union. European competition policy is one of the success stories of the European integration process. This is not to say that the policy always works effectively; that it is always transparent and legitimate. Nevertheless, European competition policy is perhaps the most supranational of all EU policies and has become something of a flagship for the EU. For that reason alone it is important for students of European integration and EU policies to engage with this policy arena. But there are other reasons too. Competition among firms is central to the effective functioning of market economies. Competition policy therefore constitutes a crucial instrument of regulation for governments keen to ensure that a competitive environment persists. This is particularly important since firms may wish to dominate or fix markets, undermining competition in the process. However, competition policy may serve a variety of ends, and even where the stated policy goal is the maintenance or encouragement of competition, there are a number of different ways such a general ambition may be translated into a workable policy and subsequently enforced. The belief that economic competition is a good thing is something of an act of faith in countries where the economy operates on the basis of free market principles. Competition has been defined as the ‘struggle or contention for superiority which means a striving for the custom and business of people in the market place’. Theoretically speaking, in the language of neo-classical economics, this function is explained by the theory of perfect competition, where many small firms compete in the supply of a single product and where no one firm can affect price or conditions of sale. The theory demonstrates how consumer welfare is maximized. At the same time, monopoly, where there is only one supplier, is shown to restrict the supply of goods and services, and to charge higher prices. Thus, while competition ‘magically and surreptitiously orders society's resources in the optimal way’.

            • 좌우 정권교체에 나타난 중부유럽의 정치문화 갈등

              유진일(Yoo, Jin-il) 아시아·중동부유럽학회 2004 동유럽발칸학 Vol.6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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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에서는 중부유럽 국가들이 1989년 이후 추구해온 새로운 정치 질서와 경제 질서라는 두개의 큰 축 중에서 신정치 질서의 모색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적 갈등 양상과 특징을 정권 교체를 통해 살펴보고 좌우 정권 교체과정에서 나타난 중부유럽 각국의 정치 문화 갈등의 정도를 비교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중부유럽 국가들은 체제 전환 이후 민주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좌 우파 간의 잦은 정권 교체 현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폴란드와 헝가리는 체제 전환 후 현재까지 매 의회 선거 때마다 좌파와 우파 간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이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변화지향형”의 “Z”형 그래프를 얻게 된다. 반면에 체코의 정권 교체 양상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안정지향형”의 S자형 그래프를 얻게 되는데 이는 체코가 경제적 안정을 바탕으로 정치적 문화 갈등을 폴란드나 헝가리에 비해 비교적 적게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부유럽 각국이 겪고 있는 정치 문화 갈등의 크기 정도를 본 논문에서는 연구 과정에서 본 연구자가 추출해낸 소위 “좌우 정권 교체 변동률”이라는 공식을 통해 각국의 이념적 문화 갈등의 크기를 산출 비교해 보았다. ‘좌우 정권 교체 변동률’ 산출 공식에 중부유럽 각국의 선거 결과 데이터를 대 입해보면 폴란드, 헝가리, 체코의 ‘좌우 정권 교체 변동률’은 각각 54.72%,60.85%, 13.58% 이다. 이 결과를 통해서도 중부유럽 세 국가들 중 폴란드와 헝가리는 정치문화 갈등 정도가 높은 반면 체코는 갈등 정도가 비교적 낮음을 알 수 있다 The present paper aims at watching the aspects and characteristics of political conflicts shown in the process of seeking a new political order, one of two great axes the Middle European countries have pursued since 1989, and at comparing the degrees of politico-cultural conflicts among those countries. This attempt seem to be significant in that the countries in Middle Europe shows the frequent change of political power between left and right in the shift to the democracy since the transition of political system. Especially, Poland and Hungary have shown a ceaseless left-right alternation since system transition, which proves that Middle Europeans are still experiencing ideological cultural conflicts. Poland, Hungary and Czech in Middle Europe, which belonged to the East block in the past cold war period, were incorporated in the European Union(EU) as of May 1, 2004-16 years after the system transition. These countries have meanwhile been struggling to consolidate the democratic multi party system abandoning one party one. As a result, the election system including blocking clauses is being arranged, and the party is being stabilized. In the course of cementing the democratic multi party system, the Middle Eastern countries, however, are showing the different facets of political conflicts, deriving from the differences in historical background, nationality, current political situation, etc. Indeed these conflictual aspects are measured in various ways, but they are measured in this essay through the “graph of regime change aspects” and the “fluctuation rate of left-right regime change” obtained in my process of research. As a consequence, it is shown that while Czech is experiencing relatively less politico-cultural conflicts, Poland and Hungary are showing the high frequency and degree of left-right regime change, thus indicating the severe politico-cultural conflicts compared to Czech. The most important reason we have discussed politico-cultural conflicts in three Middle European countries is because North Korea, gradually pursuing a open door policy, will also undergo the path similar to those of them. Classifying the change possibilities of North Korea into several categories, North Korea is very likely to be incorporated into the party politics of South Korea, as shown in ex-East Germany, or to be occupied by the left-wing regime influenced by its current regime, if the reunification takes the form of absorption, because North Korea will lay more importance on market economy leaving the transition to democratic multi party system undone. In two cases, the left-right political conflicts, however, are not expected to be serious. On the other hand, the third possibility is that if the democratic multi party system takes the place of one party system, North Korea will secure party politics, showing the “stability-oriented” regime change and the low fluctuation rate of left-right regime change as in Czech. Yet it is also likely to suffer from political or ideological conflicts, showing the “change-oriented” regime change and the high “fluctuation rate of left-right regime change” as in Poland or Hungary. The variables affecting the two possible cases may be varied, but it is am important key how safe North Korea moves to the market economy, because both democracy and market economy are as good as two wings for system change.

            • 루마니아어의 신체관련 어휘에 대한 어원론적 고찰

              이문수(Lee, Mun Suh) 아시아·중동부유럽학회 2005 동유럽발칸학 Vol.7 No.2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루마니아의 언어학자 치학(A. de Cihac)은 그의 어원사전(I. 1870,II. 1879)에서 조사대상어휘 총 5,765개 중에서 라틴어원의 어휘가20%, 슬라브어원의 어휘가 40%, 터키어원이 20%이며 나머지 20%는 그리스어원이나 헝가리어원 또는 알바니아어원 등이 차지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한편 루마니아의 언어학자 마크레아(D. Macrea)는 그의 최근 저서(1982)에서 1930년대에 출판된 칸드레아의 어원사전과 1950년대에 출판된 루마니아어원사전 상의 통계수치를 비교함으로써 치학의 어원사전의 통계수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마크레아에 의하여 제시된 통계자료들을 비교하여 분석해보면 루마니아어가 언어계보적인 관점에서 라틴어로부터 유래된 로망스어군에 속해 있는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어에 존재하고 있는 라틴어원의 비율이 여전히 낮은 편이라는 점이다. 루마니아의 언어학자 그라우르(A. Graur)는 그의 저서(1967)의 서론에서 모든 현상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언어에서도 일시적인 것들과 지속적인 것들 사이나 또는 표면적인 것들과 필수적인 것들 사이에 차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언어의 특성을 관찰하고자 할 경우에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어휘보다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어휘를 대상으로 하여 연구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본고에서는 일리에스쿠 (M. Iliescu)의 루마니아어의 기본어휘 및 부쿠레슈티대학교 부설 언어 연구소 팀의 살라(M. Sala) 등에 의한 로망스어의 대표어휘 중 루마니아어의 대표어휘를 살펴보고 그 중에서도 인간의 신체와 관련된 어휘중에서 주요 부위에 해당하는 50개 어휘를 선별하여 그 어원 및 사용빈도나 다의성 그리고 파생력 등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루마니아어의 신체관련 어휘의 약 85%가 라틴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신체관련 어휘의 85% 정도가 루마니아어의 기본어휘 범위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신체관련 어휘가 그 언어의 정통성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Cihahc’s 「Etymological Dictioary of Romanian Language」published in 1870’s estimated that of the surveyed 5,765 Romanian vocabulary about 20% was of Latin origin, 40% of Slavonic origin, 20% of Turkish origin and the remaining 20% of Neogreek, Hungarian and Albanian origin. A Romanian scholar, D. Macrea(1982) asserted that almost 40% of Romanian vocabulary was made up of French elements, i. e. of Romance factors showing that Cihac’s statistics were superficial and far from the fact. But as the ratio of the Latin origin of Romanian vocabulary concerned, it does not change things very much, because the number of Latin words estimated by Macrea does not exceed 30% of the Romanian vocabulary. Romanian linguist A. Graur(1967) asserted published book that in languages, as in all phenomena, distinction must be made between ephemeral and lasting elements and between superficial and essential facts. According to Graur, in the Romanian language there are some words which were not used about ten or twenty years ago and one can't be sure that these words would still be in use in ten or twenty years from now on. Conversely, there are many words which are preserved for hundreds or thousands of years. This means that from the viewpoint of stability, a certain hierarchy may be established among the vocabulary. In order to characterize a language, one must rely much more on its stable elements than on the ephemeral words. M. Iliescu pointed out 3,209 words as the basic Romanian vocabulary using word frequency on the field of administration, press, science and literature etc. Marius Sala, coordinator of the Institute of linguistics at the Bucharest University, published 「Vocabularul reprezentativ al Limbii Române」in 1988, in which Sala and her colleague showed 2,581 representative Romanian words. They classified these words into several categories with three criteria, namely the criterion of frequency, the criterion of polysemy and the criterion of derivation. Romanian scholar S. Puşcariu recognized the significance of body part expressions like cap ‘head’, faţă ‘face’ etc. in any language and confirmed after making inquiries into the etymology of the 100 physical words of the Romanian language as well as French and Italian languages that all of these three languages have approximately 90% words of Latin origin. This article aims to study the basic and representative vocabulary of the Romanian language, especially to study the etymology of the selected 50 physical words. 37 Of the 50 words belong to the so called representative vocabulary and 43 words belong to Iliescu’s 3,209 basic vocabulary, which means that 86% of 50 physical words are the basic vocabulary in the Romanian language. Meanwhile as a result of the etymological research on the 50 physical words, 44 are of Latin and Romance origin, 2 of Slavonic origin(obraz, gât), 2 of unknown(ceafă, burtă), 1 of Substratum(buză) and 1 borrowed from Hungarian(labă), which means that 88% of the 50 physical words are of Latin or Romance origin. Hence, more than 85% of the 50 physical words of the Romanian language show Latin or Romance origin and about the same ratio of the 50 physical words belongs to the basic vocabulary of the Romanian language. These statistics should show the true character of the Romanian vocaburary.

            • Stock Market Movement Surrounding Global Economic Crisis

              박진우(Park, Jin-Woo) 아시아·중동부유럽학회 2011 동유럽발칸학 Vol.13 No.2

              '스콜라' 이용 시 소속기관이 구독 중이 아닌 경우, 오후 4시부터 익일 오전 7시까지 원문보기가 가능합니다.

              본 연구는 2004년 7월 15일부터 2010년 7월 31일까지의 일별 주가지수 자료를 이용하여 동유럽 국가들을 포함한 16개 국가의 주식시장이 글로벌 경제위기와 이후 회복기간 동안 어떤 행태를 보여주었는지를 분석하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국가들이 글로벌 경제위기동안 심각한 타격을 입었는지? 위기 이후 주가 수익률 패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어떤 국가들이 위기에서 빠르게 회복하였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회복이 이루어졌는지? 등의 이슈가 분석되고 있다 분석결과, 첫째, 글로벌 경제위기가 평균 주가수익률 하락, 주가변동성 상승, 주가 왜도 및 첨도 상승을 초래한 것으로 밝혀졌다. 둘째,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 주식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지만, 특히 러시아, 헝가리, 체코 등의 동유럽 주식시장에 미친 영향이 더욱 심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셋째, 경제위기로부터의 회복 정도는 국가별로 큰 차이를 보여 영국, 한국, 폴란드가 비교적 빠른 회복을 보인 반면에 불가리아, 이탈리아, 중국 등은 회복이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This paper investigates the impact of global economic crisis and its recovery for the stock markets of sixteen countries. Specifically, this paper analyzes stock markets of eight developed countries (i.e., the U.S., the U.K., Germany, France, Italy, Spain, Japan, and Australia) and eight emerging countries (i.e., China, India, Korea, Russia, Poland, Czech, Hungary, and Bulgaria) using their daily rate of returns on the market indices for the period from July 15, 2004 to July 31, 2010. To examine the impact of global economic crisis and its recovery the period of study is divided into two parts: crisis period from September 15, 2008 to July 31, 2010 and normal period from July 15, 2004 to June 30, 2007. The main results are summarized as follow. First, there were significant changes in the stock return patterns after the crisis by observing decrease in mean return, increase in volatility, increase in skewness, and increase in kurtosis. Second, this paper finds that although the global economic crisis triggered by collapse of Lehman Brothers the crisis continued to affect stock markets of both emerging and developed countries for 6 months. In the country level Bulgaria records the lowest 6 month return, followed by Russia, Hungary, and Czech, indicating that the global economic crisis affected severely Eastern and Central European countries. Third, in the investigation of the market recovery from the crisis, this study finds that the degree of recovery varies significantly across sixteen countries in the sample. In the country level, India, the U.K., Korea, and Poland are countries that made a quicker recovery from the crisis whereas Bulgaria, Italy, and China exhibit slow recovery.

            •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중 · 동유럽의 원자력정책

              김성진(Kim, Sung-Jin) 아시아·중동부유럽학회 2012 동유럽발칸학 Vol.14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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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 각국의 원자력 정책은 원전 영구 폐쇄를 포함한 급진적 정책과 현상 유지라는 점진적 정책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안전 조치 강화로 원전 건설 및 운용비용도 상승하고 있다. 중·동유럽 원전 보유국들은 서유럽보다 원자력 의존도가 높고 신재생에너지 투자가 미흡하다는 점에서 현상유지나 원전확대를 정책으로 추진해왔다. 그러나 불가리아의 경우 EU가입 조건으로 노후 원전 4기를 폐쇄했고 후쿠시마 사고로 신규 원전건설마 저 포기해야 했다. 외적 환경에 의해 강요된 급진적 정책 수용이다. 불가리아의 사례는 다른 중·동유럽 원전 보유국의 정책도 외부환경의 개입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선험적 지표이다. The meltdown at Fukushima Dai-ichi Nuclear Power Plant in Japan had caused the world of nuclear power fall apart. One year after the disaster, world's attitudes about nuclear energy have become polarized between a radical change and a policy of status quo or a gradual change. A radical change of nuclear energy policy was made by Germany, Belgium and Italy. They vowed to quit nuclear energy. Instead, they are going to focus better and work toward developing renewable energy. Most of countries are maintaining of status quo policies with safety enhancement at nuclear power plants. It shows that these countries believe the benefits outweigh the risks. Six countries is operating nuclear reactors in the East-Central European region. They are Romania, Bulgaria, Slovakia, Slovenia, Hungary and the Czech Republic. They have no choice but to take a gradual development or a status quo. Bulgaria was in a position of status of quo and gradual development with the attempt of building new nuclear power plant in Belene. But she failed to do because of the Fukushima accident. Bulgaria with the other East-Central nuclear countries is expected to be under pressure of radical change in nuclear energy policy. South Korea will continue its atomic energy buildup despite the nuclear disaster unfolding in Japan. The subtle change of Nuclear energy policy in East-Central European countries will be a point of reference to establishing future Korean Nuclear Energy Policy.

            • 구동유럽발칸지역의 서유럽형 왕권복귀움직임 연구

              안성호(Ahn, Sung-Ho) 아시아·중동부유럽학회 2008 동유럽발칸학 Vol.10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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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 이후 동구 발칸 국가들이 저마다 민주주의국가 시장자본주의체제로 전환하면서 체제변화에 따른 과거역사와 연관된 민족문제와 왕권회복움직임도 불가리아,루마니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알바니아 등에서 전개되었다. 앞으로도 민주주의와 민주화, 시민사회, 입헌군주국 관심증대, 인권, 경제민주주의, 시장경제 등은 동구권국가에 있어 상호 보완적이 고 공통된 가치로서 체제변동에 있어 중심적인 이념과 방향잡이가 될 것이다. 그중에서 학문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많은 관심의 대상은 아니지만 탈공산주의의 과도기를 경험한 여러 동구발칸 국가들이 공산당에 의해 강제폐지된 왕정에 대한 향수도 살아나고 있다. 다만 본 논문에서 동구발칸지역의 체제변동과 왕권회복움직임의 모든 것을 다 언급하기는 기술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본 논문은 탈공산주의 이후 동구권 각 국가의 구왕정복귀 움직임과 그 가능성 등을 서유럽국가의 입헌군주정을 중심으로 보았다. 이는 체제변화과정에서 입헌군주국으로서의 가능성에만 집착하기보다는 오히려 왕정복귀움직임을 통해서 다원적인 정치세력화와 구왕정세력의 역사적 변화를 동시적으로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왕권복귀움직임은 몇 가지 측면에서 과제가 남아있다고 본다.첫째, 정당의 과잉난립이다. 민주세력조차도 여러 정파로 나뉘어 경쟁을 했다. 이는 민주세력의 힘의 낭비를 초래했다. 앞으로 민주세력의 연립정부구성과정에서 민주세력의 정치적 능력을 시험해야할 것이다. 둘째, 구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경우는 상황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구공산세력의 과격한 정치적 집단행동, 민족분규 등이 심각했다. 이 또한 반공‧민주화 변혁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정적 측면이어서 타 국가에 영향을 확대시키지 않는 방향에서 그 해결방법이 평화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왕정복귀움직임이 각국에 처한 상황에서 볼 때 경제문제나 다른 정치적 이슈보다 그렇게 중요하거나 시급한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왕정문제가 아닌 공정한 선거 복수정당제 시민사회의 활성화 등의 문제가 더욱 중요한 것으로 보여진다. 넷째, 왕권복귀움직임은 정치력이 매우 미약하며 하나의 정치적 이슈로서 만족하는 상태이다. 그러나 민주화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여러 집단으로 수렴되어 조직화되고 이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양성과 다원화를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구발칸지역 일부국가에서의 왕권복귀운동이나 과거정치세력의 부활은 일단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는 참여적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In this paper, I first investigate the relationship between monarchy restoration and political pluralism and democracy, and then suggest how to establish western constitutional monarchy and democratic institunalization through multi political party system in Eastern European & Balkan Area. Among Eastern European & Balkan, Bulgaria, Romania, Serbia, Montenegro, and Albania have close relations with restoration monarchy that Royal family have involved for a long time until democratization and political change to western european style In Eastern European & Balkan states, many countries are involved with monarchy before communist regime with end of the World War II. As like the western european constitutional monarchy, democratization in Eastern European & Balkan states are closely connected with plural political systems, With multi party system and civil society activity which expresses itself in the polyarchy of political system, some of royal families in Eastern European & Balkan states protest restoration of monarchy whether they success their political visions and plans or not. Some of comparative social scientist have studied with scholarly controversies about restoration of monarchy as like western european constitutional monarchy in Eastern European & Balkan area, In this paper, as primary factors of various models of restoration of monarchy are presented two essential elements. First, political pluralism will be established in Eastern European & Balkan states through restoration of monarchy. Second, monarchy restoration is not political issue in recent election show that monarchy restoration as like western constitutional monarchy is not easy to build in Eastern European & Balkan states. Actually many countries of Eastern European & Balkan Area are not interested in improving their monarchy restoration while minimizing ethnicity conflicts and disputes. But when some of countries form political party and political participation to extand constitutional monarchy in this area, stable democratic political system will positively recognize merits of traditional politics and developing political freedom of Eastern Europe & Balkan area as developed political pluralism.

            • 게르쩬과 폴란드 문제

              전지용(Jeon, Ji Yong) 아시아·중동부유럽학회 2005 동유럽발칸학 Vol.7 N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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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르쩬에게 있어서 서유럽은 이미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있는 세계이었다. 그는 서유럽의 문화에서 보이는 문제들이 기독교의 영향 때문에 제기되었고 그것은 슬라브적 정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서유럽 세계에서 나타나는 모든 악이 기독교의 이원론 때문에 야기되었다고 그는 보았다. 게르쩬은 기독교가 끼친 흔적을 폴란드인 미쯔비쯔에게서 발견했고 그것을 메시아니즘이라고 개탄했다. 게르쩬은 그러한 문제들이 ‘자유인’을 계발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는 절대적인 도덕성이 모든 것의 기준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게르쩬은 기사계급의 문화와 소매상인의 문화를 엄격하게 구분했다.뚜르게네프와의 논쟁 때에도, 게르쩬은 부르죠아지는 그들 자신의 문화를 갖고 있지 못하고 고상한 문화에 기분 나쁜 습기를 뿌리는 계급이라고 매도했었다. 그러므로 부르죠아지의 문화는 반드시 거부되어야했다. 나아가, 게르쩬은 서구 세계의 지배계급이 제국주의적 야심 때문에 타락하여 분해되고 있다고 보았고, 따라서 서구 세계는 오래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폴란드 문제에 대한 게르쩬의 인식에는, 그러므로, 이중적인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폴란드의 역사 때문에 야기된 서유럽적인 측면에는 질색했다. 게르쩬에게 그것은 치유되어야 할 측면이었다. 그러나 그는, 폴란드의 분할이 절대주의 시대의 유산이었기에, 폴란드의 역사에 동정을 표했다. 따라서 게르쩬은 폴란드인들과 함께 폴란드의 독립을 위한 선전 활동을 했다. 이것이 러시아의 많은 민족주의자들로부 터 그에 대한 거친 공격을 일으켰다. 러시아 내의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거칠게 자신을 공격하고 있었음에도, 그는 폴란드의 독립을 위한 선전활동을 계속하면서 폴란드인들과의 유대를 지속했다. 분명, 그것이 정의이기 때문이었지만 동시에 게르쩬이 러시아 혁명을 위한 동맹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폴란드에 파견되는 러시아의 진압군 장교들을 설득하고자 게르쩬은 ‘이웃의 목에 밧줄을 졸라매면서 자신의 조국에서 자유의 시대를 시작시킬 수 없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게르쩬은 폴란드인들 스스로의 동의하에 그들이 슬라브적 세계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가 말하는 ‘슬라브 연방’은 미래의 사회주의적 러시아가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될 사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슬라브 연방은 당시의 서유럽 세계가 안고 있던 각종 문제들을 극복한 유토피아적 사회를 의미한다. 봉기 당시의 <폴란드 중앙집행위원회>의 위원들과 게르쩬 사이의 담화나 편지가 그들 사이에서 이 부분이 어느 정도 양해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폴란드인들이 스스로 슬라브적 세계에 동참함으로써 역사의 새로운 흐름에 따를 것이라고 믿었다. Western Europe, for Herzen, is the world of the fatal disease. He thoughts that the problems of the western culture arose from the effect of Catholicism, and it was alien to the Slavonic genius. Particularly, he thoughts that all evil of the western world was caused by the dualism of Catholicism. He can see the effect of Catholicism in A. Mickiewicz and Herzen deplored as the messianism of Poles. Herzen believed that those problems can be solved by the cultivation for 'the man of liberty'. So, he said that absolute morality must share the fate of everything. Herzen divided into the culture of the knight and the culture of the shopkeeper. He distasted the culture of shopkeeper. While disputing between Herzen and Turgenev, Herzen said that bourgeois had not his own culture and they were the class who cast damp over a noble culture. In addition to it, Herzen was convinced that the western world can't sustain any longer because the ruling class of the West was corrupted and dissolved by imperial ambition. So, Herzen's view for the problem of Poland cannot help being had two faces. Herzen can't endure the western aspects of Poland that was caused by her history. For him, surely, it was the object to be dealt. But he has compassion for her history, because her partition was the heritage of the age of Absolutism. So, Herzen pleaded with Poles for her independence of Poland. This excited the hard attack to him from many nationalists Although he was attacked from many nationalists in Russia, he kept on with his pleading. It seems so because it was not only a rightful cause but also it need to ally with someone for russian revolution. At the uprising of Poland, Herzen would persuaded the offices of Russian detachment to join with him. It is as next; "Drawing a belt he neck of neighbors, one can't make start the liberty age of his nation." Herzen dreamed of Poles' join into Slavonic World with Poles' consent. Surely, it means Slavonic federation which the future socialist Russia will play an important role. Further, these Slavonic federation means the utopian society which has overcome every problem in the contemporary Western Europe. He believed that Poles can go together with the stream of the new history through the join into Slavonic World.

            • 외세 침략과 관련한 폴란드 성(城) 건축 양식 변화 연구

              김종석(Kim, Jong-Suck) 아시아·중동부유럽학회 2003 동유럽발칸학 Vol.5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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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이란 외적의 침입이나 자연적인 재해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시설을 말한다. 건축술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기에는 산이나 강 등 자연적인 지형, 지물들을 이용하여 방어하였지만, 이후 사람들은 차츰 발달된 도구와 건축술을 이용하면서 자연에만 의지하지 않고, 흙을 파서 호를 만들거나 흙을 모아 쌓는 등 인위적인 시설을 첨가하여 목재와 흙, 돌, 벽돌 등을 이용한 성곽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다. 폴란드에서 언제부터 축성이 이루어졌는지는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기원전 4-5세기 경 폴란드 서북부 지방에 축성된 선사 유적지인 비스쿠핀 (Biskupin) 성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 최초이다. 하지만 실제적인 요새의 형태를 갖춘 폴란드인에 의하여 건설된 생들은 12세기경부터 축성되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12세기부터 시작된 폴란드의 성 건축은 시기적으로는 분할 공국 시대, 사회적으로는 봉건제로 인하여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중세 초장기의 폴란드 성은 주로 목재, 흙, 그리고 돌등으로 지어진 단순한 형태였지만 13세기와 14세기를 통하여 로마네스크와 고덕 양식이 성 건축에 도입되면서 본성, 아래성, 성탑, 부속 탑, 성문, 성벽 등 다양하고 복잡한 평연구조를 가진 성들이 나타났다. 폴란드의 성들은 평연 구성에 있어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삼각형이나 사다리꼴, 별 모양 형태 등 부정형 평연 구조를 가진 성들과, 평지에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형태의 평연 구조를 가진 성 등의 특정이 있다 축성 장소로는 가파른 언덕이나 접근하기 어려운 암반 위가 대부분이었고, 늪지대나 습지대 등 천연적인 방어 조건을 이용하였고, 인위적으로 성 주위에 호를 파서 적의 침입을 용이치 않게 한 특정도 있다 폴란드 성이 서유럽 성들과 다른 특징은, 폴란드는 서유럽과는 달리 르네상스이후 종교 전쟁에 휩싸이지 않고 전통적인 로마 가톨릭교를 수호한 영향 때문에, 성내에 대성당이나 예배당 등의 건물이 반드시 존재했고 수도원 또한 폴란드 성 건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 권위적이고 상정적인 서유럽의 성이나 궁전과는 달리 비교적 단순하고 간소하게 실질 본위의 중세 전통이 아주 강하게 잔존하고 있는 특정이 있다. 전쟁술의 발달과 화공 무기의 출현으로 인하여 폴란드의 성들은 요새적 기능을 상실하기 시작하였지만, 폴란드의 군주나 귀족들은 성벽에 새롭게 능보를 설치하여 화공 무기 공격에 대비하였는데, 이 능보의 설치는 근세 폴란드 성 건축에 혁명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17세기부터 시작된 스웨덴의 대침공, 그리고 18세기부터 지속된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국토는 유린되고 국력은 쇠퇴하여 폴란드 전체는 암흑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폴란드 성주 및 귀족들은 서유럽으로 이민 혹은 망명하였고, 침략자들은 폴란드 성을 파괴하거나 복원에 무관심함으로써 폴란드 성들의 폐허화는 점차 가속화되었다 1차 세계대전 종진과 함께 독립한 폴란드는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개혁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곧 2차 세계대전으로 국토 전체가 6년간 전쟁터로 변함으로써 대부분의 성들은 파괴되었다. 체제 전환 이후 폴란드 성들에 대한 복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일부는 완전히 복구되었지만 대부분의 성들은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있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changes in the construction of castles in Poland in relationship to the aggression of outside forces The construction of castles began during the 12th Century in Poland when it was a small kingdom with a feudal social system. These first castles , built in the early stages of the Middle Ages , were mostly made of wood. soil and stone and were constructed in a simple style. Eventually, Romanesque and Gothic architecture were introduced in the 13th and 14th Centuries. Soon diverse and complex castles featuring main structures , lower structures. attached towers. castle gates and ramparts began springing up‘ The most strategic places for fortification were steep hills or rock bases which were difficult to approach. Marshes and swamp land were also used. taking advantage of natural defenses One characteristic of castles in Poland was that they always had a big church and a chapel, since Poland had never been involved in any wars and had been influenced by the Roman Catholic Church. Different from western-European castles and palaces which were authoritative and symbolic. castles in Poland were comparatively simple and plain which established a Polish tradition in the Middle Ages Castles in Poland eventually lost the need for a fortress because of their developed fighting skills and the advent of chemical weapons. As a substitute. the monarchy and nobility equipped a rampart with crossbeams to serve as protection from chemical warfare. These crossbeams revolutionized the construction of castles in Poland into modern times The power of Poland declined after the invasion of Sweden in the 17th Century and the wars with Russia. Austria and Germany in the 18th Century. This led to the Dark Ages throughout Poland. At that time. the lords of the castles emigrated or were exiled to Western Europe. Invaders destroyed existing castles or were indifferent to their restoration which accelerated their ruin in Poland. When World War I ended , Poland became independent and began to reform its politics. economics and culture. Before long. World War II turned Poland into a battlefield for six years and German soldiers destroyed the remaining castles. At present. only a handful of castles have been partially restored. but for most, this proved impossible.

            • 민주화 10년, 발칸유럽의 문화갈등연구

              김정환(Kim, Jeong-Hwan) 아시아·중동부유럽학회 2004 동유럽발칸학 Vol.6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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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칸의 민족주의는 종교적 근본주의와 배타적 인종주의 그리고 분리와 독립, 자치권의 확대, 영토 분쟁으로 얼룩진 정치문제가 동시에 복합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문제라 그 심각성이 국제적으로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나타난 발칸유럽의 민족주의가 서유럽제국과 오스만터키제국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을 전제로 발전한 반면, 20세기 후반 다시 표출된 민족주의는 국내와 인접국의 다수민족과 소수민족 사이의 갈등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냉전시대 폐막과 더불어 극적인 유혈사태를 동반한 민족적 분리주의의 부상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 고, 지난 90년대 초부터 6차례(보이보디나 자치분쟁, 크로아티아 내전, 보스니아 내전, 알바니아 내전, 코소보 분쟁, 마케도니아 자치분쟁) 이상의 크고 작은 분쟁과 내전이 발칸유럽에서 발생하였다. 사회주의 유고지역 외 발칸유럽 국가 중에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향후 소수민족분쟁의 소지가 큰 국가로 인식되고 있으며, 알바니아는 향후 사회주의 유고지역의 알바니아인 디아스포라(Diaspora)와 무슬림의 동향을 좌지우지할 잠재적 변수이자 막후 세력으로 지목되고 있다.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지역에 거주하는 150여만 명의 헝가리인은 루마니아內 제1의 소수민족 집단을 구성하고 있으며, 불가리아에는 역사적 산물로 80여만 명에 이르는 터키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언제라도 제2의 코소보와 같은 민족간 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발칸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족갈등은 1)기존 다민족국가의 분열과 해체 속에서 새롭게 형성된 소수민족 또는 단위민족에 의한 민족자결과 분리 독립의 문제, 2)다수민족 국가들 내 기존 개별 민족들 간의 지역 경계․ 귀속 변경문제에 따른 민족갈등, 3)새로운 정치 주체의 형성 속에서 수반되는 다수민족 간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민족갈등, 4)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놓인 국가 간의 이민 또는 분쟁지역에서 유입되는 난민 등에 의한 新소 수민족갈등 등의 형태로 그 이유와 원인이 지역에 따라 복합적․동시다발적으로 얽혀 있는 양상이다. 발칸유럽 內의 이러한 소수민족 분쟁과 그 문화적 갈등을 억제․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1)민족주의의 극단적 현상을 용납하지 않는 성숙된 분위기의 조성과 능력 있는 중재자의 역할, 2)협상과 타협을 기초로 한 평화 협정과 조약의 체결, 3)다수․소수 민족간 또는 소수ㆍ소수 민족간 제휴와 연립 그리고 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 4)분쟁해 결과 평화유지를 위한 유럽 통합경찰의 설립, 5)분쟁당사국과 주변국의 분쟁해소 노력과 조건부 난민 처리, 6)유럽연합의 정책공조 필요성, 7)크고 작은 규모의 다양한 평화공동체 구상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민족간 분쟁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각 민족들은 민족적 자결권,이데올로기, 계층, 민족국가에 대한 국민의 충성 등을 검토하여 상황과 선호도에 따라 ‘억압(또는 억제)’, ‘민족간 동일성에 따른 재구성’, ‘권력 분배’,‘국가 건설’의 네 가지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억압’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에 따른 다른 쪽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면, 민족주의의 구조주의적 모델에 따라 민족동일성을 재구성하거나 다민족 국가에서의 민족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권력분배’ 또는 ‘제휴 민주주의’ 그리고 국제 중재자에 의한 새로운 ‘국가건설’은 긍정적 의미의 해결을 도모하는 한 측면이라 할 수 있겠다. With the beginning of 1990, the new democracies barometer is a multinational survey of post-communist countries of Eastern and Balkan Europe. The break-up of three ethnically complex federal republics (Soviet Union, Czechoslovakia Yugoslavia) in the early 1990s resulted in 14 new independent European countries. Especially, socialist Yugoslavia in Balkan Europe divided into five Slavic countries such as Slovenia, Croatia, Bosnia and Hercegovina, Macedonia, Serbia and Montenegro. These new states are based on specific nationalities, but it would be inappropriate to label them nation states because each has its very own minority problems. Yugoslavia was created as a country after World War I to unite several southern Slavic groups, previously in separate countries. This area is ethnically very complex, with six principle nationalities as Serb, Croat, Muslim, Slovene, Albanian, Macedonian (if includes Montenegrin, seven principle nationalities). The most numerous, Serbs, constituted 36% of the 1981 population (States's Year-book, 1981 census). Serbs, Croats, Slovenes and Macedonians have become the national bases of four new states. Each major ethnic group has a core area in which it forms nearly the entire population, but most groups are also scattered as significant minorities over a wide area and indeed constitute localized majorities in some areas of other republics. Muslim (a designation of a religious community as a nationality), Serbs and Croats are the three main groups in Bosnia and Hercegovina. Albanians provided the basis for the establishment of an autonomous region in southern Serbia known as Kosovo, which thus far has not become an independent state. The Montenegrins, fewer in number and separated from Serbs only by history, have joined them in the federal country called Serbia and Montenegro (former-New Yugoslavia), which in quotation marks here identifies the rump state left after the four other republics seceded. The proportion of Serbs rose from 36% in the former Yugoslavia to 62.3% in the Serbia and Montenegro. Ethnic problems and minorities have reached explosive levels in post-socialist countries of Balkan Europe, particularly the socialist Yugoslavia. No single group formed a majority within it, although Serbian influence tended to predominate. Four of the country's republics have so far declared independence (Slovenia, Croatia, Bosnia and Hercegovina, Macedonia). Croatia's declaration in June 1991 sparked an uprising by the republic's minority Serbs, who constitute about 12.2% of Croatia's population. Serbian insurgents have since seized about one-third of the territory of Croatia and about two-thirds of Bosnia and Herzegovina, with help from the Republic of Serbia and the serb-dominated federal army. Bosnia and Herzegovina has an extraordinarily complicated history, marked by periods of indigenous principalities, Hungarian rule, Turkish conquest, and administration and annexation by Austria-Hungary. Most of the inhabitants are southern slavs and speak serbo-croatian, but they are divided by religion. Bosnia and Herzegovina made strenuous efforts to preserve ethnic balance in its government, with representation of Muslims, Serbs and Croats. It gradually loosened its ties with socialist Yugoslavia and ultimately declared its sovereignty, which wasnot accepted by Serb areas in the state. Finally, civil war resulted with activities in disgrace like ethnic cleansing or genocide. The problem of minorities in Serbia and Montenegro is exceedingly complex. The most problematic of all is the issue of Serbian-Albanian relations and of status of Kosovo Albanians. Since the establishing of the multi-party political system in the Federal Republic of Yugoslavia, Kosovo Albanians choose an option of self-isolation regarding political and public life, and built their own independent political field and a parallel government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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