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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 애민(愛民)의 사상적 기반과 의미

        임원빈(Won-bin Lim)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22 이순신연구논총 Vol.- No.36

        이 글은 이순신의 애민(愛民) 이른바 백성 사랑을 살펴보고, 사상적 측면에서 그 기반과 의미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Ⅱ.에서는 이순신의 애민을 양생(養生), 상사(喪死), 보민(保民)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양생(養生)은 ‘산 사람을 잘 양육하는 것’이요, 상사(喪死)는 ‘죽은 사람의 장례를 잘 치르는 것’이며, 보민(保民)은‘침략자 일본군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다. Ⅲ.에서는『대학(大學)』의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 그리고 맹자의 왕도론(王道論)을 중심으로 이순신 애민의 사상적 기반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아울러 이순신 애민의 원동력과 이와 관련된 리더십의 문제도 간략히 다루었다. 이순신의 애민(愛民)은『대학』의 삼강령(三綱領) 중 두 번째 강령(綱領)인‘백성을 새롭게 한다’는‘친민(親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백성들이‘밝은 심성[明德]’을 깨우쳐 내어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교화(敎化)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양생, 상사, 보민과 같은 경제적, 물질적 조건과 안전을 확보해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순신의 애민은『대학』의 팔조목인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가운데 치국(治國)과 가장 관련이 있다. 비록 이순신 스스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아니지만 임금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다스려야 하는 목민관(牧民官)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그의 왕도론(王道論)에서 임금은 백성들의 양생(養生), 상사(喪死) 등의 경제적, 물질적 조건을 마련해주는 토대 위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자매가 서로 사랑하며, 노인들을 공경하는 도덕적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볼 때 이순신의 애민은 왕도의 완성은 아니지만 왕도의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왕도 구현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이순신의 애민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 부인 사랑, 자식 사랑, 조카 사랑 등의 가족 사랑[齊家]에서 누적된 사랑의 힘이었다. 이순신이 한산도(閑山島)와 고금도(古今島)에 진영을 설치했을 때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또한 임진왜란, 정유재란 기간에 있었던 수십 회의해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승리하였다. 그것은 이순신의 진심 어린 백성 사랑에 백성들이 화답하여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순신에게서 애민(愛民)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이순신의 애민은 지극히 선한 사회를 꿈꾸었던 유학의 나라 조선의 목민관으로서의 당연한 책무였다. 둘째, 이순신의 애민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이어지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한 요소로써 성인군자(聖人君子)를 지향했던 이순신의 내적 수양의 한 과정이었다. 셋째, 이순신의 애민은‘어진 자에게는 대적할 자가 없다’는 <인자무적(仁者無敵)>의 리더십 방법이었다. This paper is to look further into Admiral Yi sun-sin’s Ae-min(愛民), which is love toward the people, and to identify the meaning and basis in an ideological aspect. In order to do this, in ChapterⅡ, it splits Ae-min(愛民) into three aspects; Yang-saeng(養生), Sang-sa(喪死), and Bo-min(保民). Yang-saeng(養生) is to nurture the lived ones, Sang-sa(喪死) is to have a funeral for the dead ones, and Bo-min(保民) is to protect the people from Japanese invader. The Chapter Ⅲ. deals with the ideological basis and meaning of Yi’s Ae-min(愛民) based on Sam-kang-ryung(三綱領), Pal-jo-mok(八條目) in Dae-hak(大學), and Wang-do-ron(王道論) promoted by Mencius. Also it deals with the driving force of Ae-min(愛民) and the leadership related to the notion. Admiral Yi’s Ae-min(愛民) is very relevant to Chin-min(親民), the second doctrine in Da-hak(大學)’s Sam-kang-ryung(三綱領), which means to reform the people. This is because it is important to ensure financial, material condition and personal safety to help the people realize their ‘bright minds’ and to reform them into a batter beings. Also, Ae-min(愛民) is very relevant to Chi-gook(治國), one of the Pal-jo-mok(八條目) in Da-hak(大學) ; Gyuk-mul(格物), Chi-ji(致知), Seong-eui(誠意), Jeong-sim(正心), Soo-shin(修身), Je-ga(齊家), Chi-gook(治國), Pyeong-cheon-ha(平天下). This is because, even though Admiral Yi himself is not the emperor who actually rules the country, but he is Mok-min- kwan(牧民官) who is responsible for ruling the people on behalf of the emperor. Mencius emphasizes in his Wang-do-ron(王道論) that the emperor should ensure financial and material conditions such as Yang-saeng(養生), and Sang-sa(喪死) in order to make an ethical society in which son and daughters devote themselves to their parents, brothers and sisters love each other, and people respect the elders. Regarding this, Admiral Yi’s Ae-min(愛民) is not the completion of notion of Wang-do(王道), but a critical element in realizing it by providing the beginning of Wang-do(王道) What was the driving force behind Admiral Yi’s Ae-min(愛民) then? It was the cumulative power of affection originated from love for his family[齊家] including his mother, wife, children and nephew. A crowd of people gathered when Admiral Yi pitched camps in the Han-san Island[閑山島] and Go-geum Island[古今島]. Throughout various naval battle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he was victorious with no mark ot defeat. That was because his people put tremendous efforts in return for his wholeheated love. Therefore, Admiral Yi’s Ae-min(愛民) can be summarized like following; First, Admiral Yi’s Ae-min(愛民) was a due responsibility as a government official of Joseon, the country underpinned by Confucian principles, who aspired to create a highly virtuous community. Second, Admiral Yi’s Ae-min(愛民) was a part of Su-gi-chi-in(修己治人), the idea about a process from Gyuk-mul(格物), Chi-ji(致知), Seong-eui(誠意), Jeong-sim (正心), Soo-shin(修身), Je-ga(齊家), Chi-gook(治國), to Pyeong-cheon-ha(平天下) and step within his mental training to become a Sung-in-goon-ja(聖人君子: a saint and a man of virtue). Last but not least, Admiral Yi’s Ae-min(愛民) was a leadership method that adopted the idea of In-ja-mu-jeok(仁者無敵) meaning ‘A benevolent one does not have a foe’.

      • 북한의 ‘이순신 소설’ 연구

        최영호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6 이순신연구논총 Vol.- No.6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 문학의 역사적 인물 재조명에 관한 여러 가지 논의에서 ‘이순신’만큼 자주 거론된 인물은 드물다. 이순신의 실제적 삶과 그가 남긴 역사적 업적들을 어떻게 파악하든, 또 각자의 이해 수준에서 재규정된 이순신에 대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 입장을 취하든, 이 문제가 환기시키는 인간 존재와 역사적 현실에 대한 실천적 요구는 그보다 앞선 1907년 전(傳)의 형태로 집필된 신채호의 《리슌신젼》 발간 이래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과제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에 관한 ‘온전한’ 이해와 평가는 이순신 개인의 삶 자체나 이순신이 살았던 시대를 바라보는 역사적 시각의 다양성만큼이나 다면적이다. 이러한 다면성은 각종 자료나 구체적인 삶 이면의 것들이 새롭게 발굴되고 기존의 것들이 재해석되면서 제기 되는 문제적 성격이 갖는 불가피함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보다 생산적인 토론을 거쳐 지양되거나 의미 있는 수준으로까지 드높여져야 할 필요성 또한 절실하다. 그도 그럴 것이 1907년부터 제기된 이순신에 관한 ‘온전한’ 이해와 평가, 다양한 논의들이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종결되거나 소멸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시대의 시작과 함께 발족한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1999년)의 학술활동과 그간에 개최한 의미 있는 국제 · 국내 학술세미나, 그리고 자라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아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갖가지 문학 행사는 이순신에 관한 문학적 논의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하는 생산적인 계기였다. 그런 한편, 이순신에 관한 문학적 논의를 한층 더 고조시킨 것으로는 김훈의《칼의 노래》와 김탁환의 《불멸》의 인기를 빼놓을 수 없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이 두 작품이 던진 범국민적 감동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 여파를 방송계가 무시할 수 없었는지, 두 작품을 하나로 결합시킨 대본 <불멸의 이순신>은 급기야 KBS-TV 드라마(2005. 8. 25일 종영)로 제작 · 방영되기까지 하였다. 2004년 8월 중순부터 2005년 8월 25일까지 100부작으로 방영된 TV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우리가 직면한 21세기를 “낡은 정치 청산, 분열된 국론 통일, 새로운 한국 건설”이란 과제를 안은 역사적 전환기이자 “무한경쟁시대, 제2의 경제 전쟁시대”의 시작으로 인식시켰을 뿐 아니라 이순신을 이런 전환과 위기의 시대를 이겨낼 인물로 주목한다. 특히나 국가 존망의 위기 앞에서 이순신이 가졌던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는 우리 민족의 강한 역동성을 불러내는 촉매제였고, 그의 예리한 상황 판단력, 혁신적인 사고, 공평무사한 마음은 지도자가 갖출 리더십의 핵심임을 재인식시켰다. 사실, <불멸의 이순신>은 먼저 오페라로 제작되었다. 김탁환은 같은 이름의 오페라 대본을 집필했고,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아가포니코프 교수가 곡을 붙였다. 한국인 200명, 러시아인 40명으로 구성된 오페라단은 2003년 11월 러시아 쌍트 뻬체스부르크 발틱함대기념관에서 1주일 간의 해외 공연을 가진 후, 잇달아 2005년 6월 서울 한전아트센터 공연(1주일), 같은 해 12월 KBS 홀 공연(3일간)을 통해 이순신의 존재를 널리 알렸다. 이제, 이러한 열기가 차츰 가라앉는 시점에서 이순신과 관련된 문제의 근거를 좀 더 다채롭게 살필 필요가 있다. 본고는 그 하나로 북한문학에서는 어떻게 이순신을 다루고 있는지를 살핌으로써 이순신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문학적 진전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번에 논의할 문학 작품은 김현구의 장편소설《리순신 장군》인데, 이 작품을 선택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필자 자신의 자료 섭렵 부족 탓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보다 더 주안점을 둔 것은 작품의 발표 시기와 작품 분량이다. 이 작품은 1990년에 발표되었고, 작품 분량도 200자 원고지로 2900매에 달한다. 그런즉, 발표 시기로 보나 작품 분량으로 보나, 우리는 이 작품이 이순신에 관한 북한의 문학적 관심들 가운데서 가장 최근의 것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다만, 본고의 논의는 이 작품의 부분적인 재검토의 시야를 전제하는 것이므로, 이번 논의의 주된 목적을 작품의 내재적 분석에 집중하는 대신, 그 역사적 의의와 가치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제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런 논의는 북한문학 작품을 어떤 시각으로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탓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폭넓은 문제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임의로 선택한 작품을 둘러싼 문학적 논의가 연구자의 주관적 관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 작품의 문학적 특징만을 조명하는 단계에서 동일한 비판적 검토가 가해지지 아니하는 한 다른 부분까지의 총체적 관련을 전제로 하는 해 When reviewing historical figures during the period of late 1990s to early twenty first century, Lee, Sun-shin is the most common person that arise. In whatever manner we understand Lee Sun-shin s actual life and the historical achievements, and whether we take a positive or a negative standards about the re-regulated Lee Sun-shin within each individual s level of understanding, the practical request of human existence and historical reality that this problem arouses is a theme that has been continued since Shin Chae-ho s Ree Sun-shin Gean which was written in the form of Gean(傳) in the former 1907. Lee, Sun-shin‘s sound understanding and appraisal has many sides as we look at the period, the diverse historical view and the personal life itself. But this kind of controversy should be sublated by productive discussion and enhance the value to the meaningful level. Diverse arguments and sound understanding which has been raised since 1907 about Lee, Sun-shin could not be automatically terminated or extinct although we have entered a new millenium era. Finding out how North Korean literature deals with Lee, Sun-shin although we are in a state of tragic division, this research is trying to figure out progressive ways of defining literature regarding Lee, Sun-shin. A novel Admiral Ree, Sun-shin by Kim, Hyun-gu is renowned as the ground of this research. There are two reasons why this novel is selected. One is the period of time that the book was published, and the other is the tremendous length of the book. This novel was published in 1990 as in the length of 2900 pages of 200 letter - manuscript paper. Considering both length and the time of its publishment, this masterpiece is the most recent one to draw our attention. However, this research premise this work s view of reappraisal. While we concentrate on this argument s objective of the literary work s internal analysis, we tried to limit the historical meaning and the values. This argument is directly connected with the problem of how to treat North Korean literary works. But futhermore there are more broad problems. Circling on the argument of voluntarily selected work is not freed from researcher s subjective participation. It is right to reserve analysis and the evaluation of not lighting on the levels of work s cultural characteristics but rather premising to similar and even reaching further to critical examination.

      • 이순신 정신의 본령은 아산이다

        김기승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4 이순신연구논총 Vol.- No.2

        필자는 2년 전인 2002년 4월 28일 이순신연구소 제4회 학술대회에서 역사학 측면에서의 이순신 연구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당시 필자는 이순신에 대한 연구를 구한말 신채호의 연구, 일제 강점 시기 이광수의 연구, 해방 이후의 연구로 나누어 성과를 검토하면서 각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필자는 종전의 이순신에 대한 연구가 한결같이 당시대의 필요에 의해 과장되거나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순신에 관련된 진실과 사실을 면밀하게 고증하는 자세가 아니라 시대적 필요에 의해 존경하거나 숭배할 수 밖에 없는 초월적 존재로 신비화되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즉 구한말 신채호에 의해서는 ‘항일구국의 영웅’으로, 이광수에 의해서는 ‘슬픈 영웅’으로, 해방 후 군사정권에 의해서는 ‘구국의 군사영웅’으로 부각되었다고 했다. 이것은 당시대의 상황에 따른 요구였기 때문에 호소력과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적 측면과 미래 지향적 측면에서 극복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필자는 새로운 연구 방향으로서 기존 연구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체계적 검토, 엄정한 사료 비판, 미래지향적 교훈 탐색이라는 3가지를 지적했다. 그리고 이순신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는 󰡔난중일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 기록정신, 즉 역사의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의 연구는 이순신에 대한 필자의 두 번째 연구이다. 그동안 필자는 기존 연구성과를 검토하는 가운데 이미 선행연구를 통해 축적된 사료비판 작업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첫째 󰡔난중일기󰡕는 크게 2종류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정조 대에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난중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충무공전서󰡕는 빠진 부분이 많고, 조선총독부 편찬본이 현재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는 󰡔난중일기󰡕 원본의 내용을 충실하게 복원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2권의 사료비판을 통한 󰡔난중일기󰡕 복원 작업은 조선총독부 간행본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 종류의 󰡔난중일기󰡕를 비교할 때, 정조 대의 󰡔난중일기󰡕에는 개인의 사적 영역에 속하는 부분이 많이 누락되어 있다. 가장 많이 빠진 부분이 이순신 자신의 인간적 한계 및 가족 관련 기사이며, 타인에 대해 이순신이 악평을 한 부분도 많이 빠져 있다. 말하자면 정조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일기 내용이 공개되는 경우 다른 개인과 가문에 피해가 가는 내용 혹은 후손이 공개하고 싶지 않은 내용은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결과 󰡔이충무공전서󰡕에 비친 이순신은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사적인 일기를 쓰는데도 불구하고 사적 감정이 배제되거나 억제되어 있는 인물로 그려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자기 희생적인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인물로 각인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누락되었던 기사를 보충하여 읽는다면, 우리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전혀다른 또하나의 이순신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필자는 이와 같은 사실에 주목하여 오히려 ‘일기’는 그 본질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은 당시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내면의 세계가 나타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지극히 사적인 내면 세계, 즉 그의 사상과 행동을 가능하게 했던 감성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공개하기를 꺼린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그의 정신의 본령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중일기󰡕에 나타난 이순신의 사적 영역에 관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읽은 결과, 필자는 기존에 알려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인물을 접하게 되었다. 일기 속에 나타난 그는 항상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개탄하고 그리하여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러한 인간이었다. 스트레스에 시달려 항상 병치레를 하는 병약한 애처로운 존재였다. 승리와 전과에 대해 기뻐하기보다는 자신의 가까운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고 그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함께 괴로워하는 그러한 존재였다. 그가 차라리 죽고 싶다고 했을 때, 그것은 전쟁으로 나타난 인간성 파괴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러던 차에 이순신연구소로부터 충무공 정신의 본령은 아산이다라는 주제 발표를 2개월 전에 부탁 받게 되었다. 처음 주제 발표 의뢰를 받았을 때는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아산과 관련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또 과연 아산이 충무공 정신의 본령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도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충

      • 이순신의 리더십 분석을 통한 대학생 리더십 교육프로그램 개발방안

        이웅규(Lee Woong Kyu),이영관(Lee Young Kwan)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4 이순신연구논총 Vol.- No.3

        21세기는 변화의 시대다. 그 변화는 민주적이고 도덕적이며 미래 지향적 모델을 담고 있다. 그것은 21세기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 교육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와 우리 문화에 알맞게 교육정책, 교육프로그램, 학교 운영방식, 구조, 과업, 조직의 구성원 등이 점진적으로 모두 변해야 된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행정가의 의식, 가치관 그리고 행위가 획기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교육프로그램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학은 사회가 급속히 변화함에 따라 교육 수요자의 기대와 요구의 증가, 교육 민주화로 인한 자율성 증대 등으로 보다 효과적이고 도덕적인 학교를 추구하며, 미래에 대한 교육적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막중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대학생을 대상으로 그들의 교육적 신념이나 가치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사무적이며 관행적으로 사회에 내보내는 일에 치중하는 경향이 높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대학 교육프로그램의 질과 내용은 대학생 교육의 성패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대학은 전통적 교육프로그램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고, 이 시대의 변화에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와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본 연구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정신적, 실제적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 온 위대한 충무공 이순신의 가르침이 어떤 리더십의 특성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고찰하여 우리나라 대학생의 리더십 교육프로그램 연구의 새 이론적․실제적 패러다임을 제시함으로서 이순신 연구를 교육프로그램과 연계하는 문제를 새롭게 조명해보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리더십 연구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성공하거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리더십 유형이나 특성에 대한 연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즉 리더십을 단지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가고 지도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그런 사람들이 리더로서의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제시하는 이순신 리더십은 누구나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리더십 발달의 가장 결정적인 시기는 청소년기이다. 특히 대학생이 된 청소년기에 리더십을 발달시키지 못하면 위험행동에 빠지게 되며, 성공적인 성인기로의 진입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청소년 리더십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상황이론, 즉 누구나 리더십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여 본 연구의 대학생 리더십 교육프로그램 개발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리더로서 청소년들의 리더십의 잠재력을 일깨울만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자신의 역량을 보여준 이순신 리더십에 대한 연구를 고찰함으로써 대학생 리더십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이해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서구 중심의 리더연구에서 우리나라의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리더 연구뿐만 아니라 리더십의 특성 이해로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역사체험 및 교육적 차원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마련을 위해서, 또한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의 리더십 체험의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또한 대학교육과 관련하여 학교교육을 통한 지방대학 인력의 적극적 양성과 평생교육지원, 진로지도강화 등의 차원에서 대학생의 학습주기(educational life-cycle)에 맞게 자신들에게 부족한 권력화(empowerment), 경험화 교육과 네트워크 형성교육을 강화하여 경쟁력 있는 인적자원을 만들기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의 목적을 위하여 청소년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선정된 이순신이 갖고 있는 리더십의 특성을 알아보고, 변화하는 시대환경 패러다임에 맞는 리더십 역할 모델을 선정함으로써 대학생 스스로 리더로써 갖추어야 할 능력과 팀워크의 형성능력을 배양시키고자 한다. The study suggests the following developments to activate Educational Leadership Program through General LeeSunShin in Korea. It is necessary to make various efforts to develop for Educational Leadership Programs through General LeeSunShin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plore leadership revealed in General LeeSunShin s life that has exerted a significant influence upon the substance of the spiritual and practical worlds, and to give Korean Educational Program the theoretical and practical paradigms of ideal leadership shown through General LeeSunShin. In 21st century of borderless business era, the circumstances around companies change very rapidly. Therefore, it is required for the leadership, which is responsible to lead participants effort and direction, to be presented to a new direction which is suitable for new paradigm. In order to investigate, the researcher examined this study through Descriptive Content analysis Method. Before discussing this research, the researcher simply illustrated the concept of leadership and various studies of General LeeSunShin s leadership based on theoretical background. Then, the researcher analyzed the leadership revealed in General LeeSunShin s life. This study not only supplies the explanation about the phenomenon of leadership but also makes it possible to recognize the importance of General LeeSunShin s leadership. Furthermore, this study intends to contribute to increase the leadership of youth through effective management of a university undergraduate.

      • 이순신을 폄훼하는 ‘원균 명장론’의 실체

        송우혜(Song Woo Hye)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6 이순신연구논총 Vol.- No.6

        요즘 이순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오히려 자주 듣게 되는 것이 이순신을 억울하게 궁지에 몰아넣었던 원균에 대한 재평가의 결과라는 ‘원균 명장론’이다. 전쟁의 양상과 전공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기에 ‘원균 명장론’은 결과적으로 이순신의 전공과 명성을 희생물로 삼게 된다. 그런데 요즘 유행되는 ‘원균 명장론’에는 시기적인 제한을 두었다는 특징이 있다. 원균이 함경도 육진 시절에 매우 용맹한 장수였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수군 장수로서 원균의 행적과 전공은 이미 상세하게 알려져 있기에 감히 ‘명장’이라고 주장할 수 없자, 원균의 육진 시절로 소급해서 원균이 육진 시절에 명장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단순히 󰡔선조실록󰡕의 원문을 오역한 데서 빚어진 어처구니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이 글에서는 그간 이순신과 원균의 생애에 대해서 사실인 양 자리잡은 몇 가지 오해에 대한 분석과 함께 ‘원균 명장론’의 실체를 󰡔선조실록󰡕 원문을 통해서 고찰해 보기로 한다. The recent controversy that Won Gyun was a great commander has rised from the distortion of history about the period of six regions(六鎭) in Hamkyoung-do(咸鏡道) when Yi Sun Shin and Won Gyun were in their military services. Those who allege that Won Gyun was a great commander insist that During that time, Won Gyun was a famous commander who had been winning speedy promotions, while Yi Sun Shin was merely a petty positioned military officer. But this is not true. Such assertions have no true grounds in history what so ever. Yi Sun Shin was an outstanding military commander who rapidly climbed up the chain of command much faster than Won Gyun. In the 16th year of the King Seon Jo s reign(AD 1583), Yi Sun Shin obtained a brilliant reputation for his bravery during the war that Ni-Tang-Kae s rebellion caused in six regions of Hamkyoung-do. It was in that war that Yi Sun Shin won a great military merit by decapitating Wu-Eul-Ki-Nae, who was one of the highest leaders of the enemy troops. The death of Wu-Eul-Ki-Nae ended that war and the nation freed from the faced severe crucial situation. Hence when King Seon Jo wanted to select some excellent commanders to defend the nation from the attack of the foreign invaders before the outbreak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Yi Sun Shin was recommended by the powerful vassals in parliament while none recommended Won Gyun. Also in 『Seon Jo Sil Lok(宣祖實錄)』, there is a historical document attested clearly by his own ardent supporter that Won Gyun was not an excellent army commander during the period of six regions. In the wartime of Im-jin-woe-ran(壬辰倭亂), Won Gyun was expelled from the navy to the army because he was in serious discord with Yi Sun Shin. Then Kim Eung Nam, the deputy premier, for the sake of Won Gyun made a strong proposal to the king like the following, Won Gyun should be back to the naval forces since he is a man of good capacity as a naval commander not for army. (『Seon Jo Sil Lok』, 1596. 5. 7.) As mentioned above, by such the obvious corroborative facts it is evident that the controversy of Won Gyun being a great commander is a forgery which was fabricated by groundlessly distorting of the truth of history.

      • 이순신의 문학적 형상화 연구 - 이광수의 이순신과 최인욱의 성웅 이순신을 중심으로

        유은정(Yoo Eun jeong)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7 이순신연구논총 Vol.- No.9

        이 글은 이광수의 이순신과 최인욱의 성웅 이순신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 작가의식은 무엇이며, 이순신의 문학적 형상화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첫째, 두 작품 모두 이순신의 주변 인물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정대신들은 모두 당쟁을 일삼는 간신배들로 묘사되고 있다. 둘째, 일본의 침략성을 읽을 수 있으며, 명군의 야만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셋째, 두 작품은 박정희의 ‘이순신 성웅 만들기’ 작업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이점을 살펴보면, 최인욱의 작품의 경우 이광수의 작품보다 일본군에 대한 묘사에서 적군의 횡포를 직접 서술하고 있으며, 이순신의 성웅화 작업에 대해 좀 더 노골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두 작품이 쓰인 시기가 일제시대와 1970년대로 크게 차이를 보이지만, ‘이순신’과 같은 민족의 영웅이 필요하다고 여겨진 시기에 창작된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광수는 교시적 측면에서 이순신을 내세워 민중에게 민족의식의 고취시키려 하였으며, 최인 욱은 박정희가 원하는 성웅의 이미지를 이순신에게 부여하고 있다. This article intended to understand the authors’ consciousness meant to be expressed through Yi, Gwang Su’s ‘Yi, Sun Sin’ and Choe, In Uk’s ‘A Sacred Hero, Yi, Sun Sin’, and examine how Yi, Sun Sin was embodied in the literary works. As summing up the common features of the two works, first, both of them describe Yi, Sun Sin’s neighboring people negatively. All of the ministers at the Royal court were described as treacherous beings that were given to party squabbles. Second, Japan’s aggressive nature can be read from them, and the brutality of Myeong’s troops was concretely described in them. Third, both of them gave a help to the work of Bak, Jeong Hui ‘making Yi, Sun Sin a sacred hero’. However, considering the difference between them, Choe, In Uk’s work presents the enemy’s violence more directly in describing the Japanese troops than Yi, Gwang Su’s work, and says the work of making Yi, Sun Sin a sacred hero more bluntly. Moreover, the times when the two works were written are greatly different as Japanese Colonization and the 1970’s, but both works have a common point that they were created when some kind of a hero for the nation like ‘Yi, Sun-sin’ was needed. Yi, Gwang Su tried to raise the populace’s national consciousness by presenting Yi, Sun Sin in the instructing aspect while Choe, In Uk gave the image of a sacred hero to Yi, Sun Sin as Bak, Jeong Hui wished to.

      • 이순신의 서체와 성격분석 -난중일기를 중심으로-

        김용신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9 이순신연구논총 Vol.- No.12

        본 연구는 난중일기의 원본을 기준으로 그의 서체를 서학사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그 서체가 주는 의미를 이순신성격과 연결하여 설명하려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본 설명을 위해서 먼저 16세기 말 조선의 서풍을 개괄적으로 요약하였으며, 둘째로는 이에 근거하여 이순신의 난중일기 서체를 분석하고 그 필체가 주는 느낌에 따라 그의 성격까지를 추측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난중일기의 내용을 근거로 그의 서체에서 나타난 성격적 특징을 보다 구체 적으로 입증하였다. 동양서학사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중원의 고법과 이에 대한 혁신적 서풍의 갈등이었다고할 수 있다. 이를 완원의 “남북서파론”에 근거한다면 북파와 남파의 갈등이었다고도 할 수있다. 16세기 말 중국에서는 그 이전 원나라 조맹부 등에 의해 강조되었던 중원의 고법에 대한 반동으로 새로운 서풍이 동기창 등에 의해 주창되었던 시기이다. 이시기는 조선에서도 명나라와 친교하면서 중원의 고법에 근거한 북파의 서풍이 시들어지고 다시 남파류의 서풍이 만연하던 시기였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조선의 서가는 한호였다. 따라서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다분히 동 시대 한호의 서풍과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할 수 있다. 그러나 한호의 서풍보다는 북파적 서풍이 보다 많이 엿보이는데 이는 그의 엄격하고 예리한 성격을 반영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뿐만 아니라 문자 배열에 있어서는 고지 식하고 답답한 면까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이순신이 전문적인 서가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면 그의 성격이 무인으로서 호방하다기보다는 선비와 같은 세심하고 보수적인 이유에 근거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순신의 서체에 따른 성격적 추측은 그의 난중일기 내용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필자는 난중일기 내용 중 여러 부분을 인용하여 그의 성격적 특징을 보수적이며 곧음, 날카롭고 예민함, 감성적이며 세심함이라는 3가지 측면으로 요약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그의 서체에서 나타난 성격적 특징을 잘 입증하는 것이기에 매우 흥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체분석을 통하여 성격의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순신의 경우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일기가 있었기에 그나마 가능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본 This study aims to illustrate the relations between Lee Soon-Shin s calligraphic style and his personality through the analysis of his diary, Nanjungilgi. In order to fulfil the purpose, I first examined the calligraphic style which was popular in Chosun dynasty in the end of 16 century. Second, I conjectured Lee Soon-Shin s personality through the analysis of his calligraphic style. And, I finally tried to prove my conjecture by analysing the contents of his diary. The historical trend of Oriental calligraphy can be summarized as an conflict between the old theory developed in the Northern China and the movement to create a new theory. This can be characterized as an conflict between Northern School and Southern School according to Wanwon s Calligraphic theory. In the end of the 16th century, a new calligraphic style as a reaction against Northern School is began to be emphasized by Dong Ki-Chang in Myung Dynasty. In this era, the Southern School began to be popular in Chosun. The leading calligrapher of Chosun in this era was Han Ho. Accordingly, the calligraphic style of Lee Soon-Shin s Nanjungilgi is similar to Han Ho s style. However, we can find the elements of the Northern School in Nanjungilgi more than in Han Ho s style. This reflects his personality based on sternness and sharpness. Moreover, he arranges very closely the letters; therefore, we can feel somewhat suffocating in his writings. This may be resulted from the fact that he is not a professional calligrapher. However, this may also reflect his personality which is conservative and careful, not like the unrestrained mind. This kind of conjecture about Lee Soon-Shin s personality is proved through the contents of his diary. By analysing the contents of the diary, I could summarize his personality as the three main characters; conservativeness and sternness, sharpness and acuteness, and sensitiveness and carefulness. This is very interesting because his calligraphic style reflects these characters. It can evoke some problems to summarize the personality as the three characters only through the calligraphic style. However, I could do it through the contents of his diary reflecting his personality well. I hope that this study will be useful to understand Lee Soon-Shin in the various aspects.

      • 이순신 인지도 조사를 통한 리더십 교육모델 검토-아산·천안지역 초·중·고 교장을 대상으로

        김기태(Kim, Ki Tae),유은정(Yoo, Eun Jeong)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7 이순신연구논총 Vol.- No.8

        이 연구는 아산·천안 지역의 초·중·고등학교 교장들을 대상으로 위인에 대한 인지도와 이순신 리더십 교육에 대한 의견을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 실시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총 166부의 설문지를 배포해 회수된 136부 중에서 신뢰도가 떨어지는 25부를 제외한 111부를 최종 분석하였다. 분석결과 111명의 아산·천안 지역의 초·중·고등학교 교장들 중 67명이 우리나라 대표위인으로 세종대왕을 꼽았으며 32명은 이순신 이라고 응답했다. 이순신 장군이 아산·천안 교장들이 선택한 존경하는 위인 1순위는 아니었지만, 이순신 정신 교육과 리더십교육에 대한 필요성은 높게 나타났다. 이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이순신 장군 리더십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순신 리더십 교육에서 위기의 나라를 구한 이순신의 전략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는 만큼 전략적 측면에서의 리더십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겠다. 교과서에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없는 만큼 청소년을 위한 특강이나 교과 외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이순신의 리더십 교육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순신 장군을 교육모델로 삼아 그 분의 정신을 함양하고 전략과 전술로써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국가적 위기를 이겨내야 할 것이다. This study surveyed the principals of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s located in the region of Cheonan and Asan to find the degree of their awareness about historically great figures and identify their opinions about the Yi Sun Sin Leadership Education. Total 166 surveys were distributed, and 136 surveys among them were collected. Discarding the 25 surveys that had low confidence level in their answers, total 111 survey answers were finally analyzed. As a result of analysis, among 111 principals of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s located in the region of Cheonan and Asan, 67 people selected King Sejong the Great as the representative hero of Korea, and 32 people selected Yi Sun Sin. Even though Admiral Yi Sun Sin was not the number one national hero selected by the principals in Cheonan and Asan, it was shown that it is desperately necessary to educate the students with the spirit and the leadership style of Yi Sun Sin. Therefore, the teenagers must be educated with the leadership of Admiral Yi Sun Sin. In the Yi Sun Sin Leadership Education, as the strategy of Yi Sun Shin which saved the nation in crisis rates the highest, leadership education must be strengthened in the strategic aspect. Since it is impossible for a textbook to contain much information, a special lecture or extracurricular program for teenagers must be devised to actively make them learn about the leadership of Yi Sun Shin. By taking Admiral Yi Sun Shin as a model for education, his spirit must be fostered for the students, and we need to overcome the current national crisis that we face with tactics and strategies.

      • 역사학 측면에서의 이순신 연구 방향

        김기승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4 이순신연구논총 Vol.- No.2

        이순신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인식은 이순신이 사망한 직후부터 형성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인간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구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이순신을 국가와 민족의 영웅으로 숭배하고, 그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기본적 명제는 어느 시대에나 동일했다. 그러나 그의 모습과 정신은 시대 상황이나 연구자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일신을 희생하여 왕조를 구한 충신’으로, 구한말에는 ‘민족적 위기를 극복한 전쟁 영웅’으로, 일제시대에는 ‘자기희생적인 성스러운 인격자’로, 해방 이후에는 ‘국난 극복의 성웅’이며 ‘민족의 태양’으로 갈수록 신격화되면서, 그 구체적 내용에서는 차이가 나타났다.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진행된 이순신의 성웅화 작업이 갖고 있는 의미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이순신에 대한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먼저 성웅 이순신상이 형성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개관한다. 그리고 그것과 해방 이후 역사학계에서 이룩한 연구성과를 대비하여 성웅화 작업의 역사적 의미를 탐구한다. 이순신상 정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 신채호의 「이순신전」과 이광수의 역사소설 「이순신」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역사학계의 대표적 연구성과로는 김영숙의 「충무공 이순신 연구」를 선택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결론 부분에서는 이상의 3가지 자료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앞으로의 연구방향에 대한 몇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 일제강점기 이순신 유적과 유물의 관리 : 1930년대와 1940년대를 중심으로

        김주식(Kim, Joo-Sik)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21 이순신연구논총 Vol.- No.35

        일제강점기 동안 이순신의 유물과 유적의 관리를 1930년대의 보존활동과 1940년대의 파괴활동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1930년대에는 이순신 묘소의 위토(位土) 경매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어 이순신 유적과 유물의 보존운동이 전국적인 사회운동으로 확대되었다. 1940년대에는 경찰과 조선총독부의 합작으로 유적과 유물의 파괴활동이 전개되었다. 이처럼 정반대되는 활동이 연이어 발생한 이유는 내, 외부에서 동시에 찾을 수 있다. 내적인 원인은 보존활동 주도자들의 소극적인 태도였다. 그 때문에 이 운동은 단기간의 일회성 운동으로 끝났으며, 보존운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운동으로 확산되거나 발전하지 못하였다. 외적인 원인은 조선총독부의 일관된 문화재정책이었다. 동화정책과 식민지 지배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보존활동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반시국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배척하였다. 이순신의 유적과 유물은 ‘반시국적인’ 것에 해당하여 고적으로 지정되지 않았고, 보조비를 지원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동안 이순신의 유적과 유물은 관리가 부실하다가 1930년대 전반기의 보존활동으로 잠시 관리가 잘 되었지만, 후반기부터는 관리가 다시 부실해져 방치되었다. 1940년에는 아예 파괴되어 흔적까지 사라진 유적과 유물이 있었다. I want to look into the management of Yi Sun-sin s remains and relic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s two periods; one is conservation period in the 1930s, the other is destruction period in the 1940s. In the 1930s, the wito(位土) auction incident of Yi Sun-sin s graveyard was reported in the newspaper, and the movement to preserve Yi Sun-sin’s remains and relics expanded to a nationwide social movement. But in the 1940s, a joint work of the police and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in Korea led to the destruction of remains and relics. The reasons for such opposite activities can be foun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 internal reason was the passive attitude of the leaders of conservation activities. For this reason, conservation movement ended with a short-term one-time movement, and did not spread or develop into other movements. The external reason was the consistent cultural suppressive policy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in Korea. Conservation activities could be carried out only when they were helpful for assimilation policy and colonial rule, and those that were not helpful were considered anti-national and rejected. The Yi Sun-sin’s remains and relics were not taken care of by Japanese as they were ‘anti-national’ and that did not give subsidi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Yi Sun-sin s remains and relics were poorly managed, only in the first half of the 1930s, preservation activities for them were developed for a while, but from the second half, they were neglected. In the 1940s, the remains and relics were completely destroyed and disappeared without tr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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