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학위유형
        • 주제분류
        • 수여기관
        • 발행연도
          펼치기
        • 작성언어
        • 지도교수
          펼치기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신학생 인성교육에 관한 교회법적 고찰

        최광호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4 국내석사

        RANK : 249647

        1992년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에서 강조되고 있듯이, 오늘날 ‘신학생 인성 교육’은 여러 교육 분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의 시대 상황을 들여다보면, 사회가 외형적으로 급격히 발전함에도, 인간의 정신적 삶은 오히려 더 각박해지고, 불평등과 소외현상이 깊어져가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은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환경 등으로, 인성이 올바르게 성숙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제를 지망하는 신학생들에게, 올바른 인성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요청은 여러 설문조사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08년에 대구대교구가 실시한 신앙생활 실태 설문결과를 보면, 본당 운영을 위해 필요한 교육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가장 높은 비율인 69.5%의 신자들이 ‘인성 교육과 대인 관계 기술’이라 응답한 바가 있다. 그리고 ‘갓등 2020 프로젝트 자료집’에서 교구 사제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살펴보면, 신학생 인성 교육의 필요도에 대한 질문에, 가장 높은 비율인 75.36%의 사제들이 매우 필요하다고 응답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논자는 ‘오늘날 신학생 인성 교육의 목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고, 신학생 인성 교육을 위해 어떠한 내용을 가르쳐야 하며, 이를 어떠한 방법으로 교육 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논자로 하여금, 오늘날 요청되는 신학생 인성 교육의 목표·내용·방법에 대하여 교회법적 연구를 하도록 이끌었다. 논자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본 논문을 통하여, 신학생 인성 교육에 대한 1983년 현행 교회법전의 법원(Fontes)들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들을 비롯한 현대의 교회문헌들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현재 수원 가톨릭 대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성 교육을 조명해보고, 오늘날 교회와 사회가 요구하는 인성을 갖춘 ‘영혼의 참된 목자’를 길러내기 위한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제1장에서는, 신학생 인성 교육의 개념에 대하여 고찰해 봄으로써, 교회법에서 언급하고 있는 ‘신학생 인성 교육’이라는 용어를 명확히 규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formatio’는 피교육자들이 특정한 자격에 합당한 능력을 갖추어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이고, ‘humana’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공동체 안에서 성숙되어가는 인간,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된 용어이다. 특별히 ‘humana’는 교회법적인 개념 이해에서 몇 가지 특징들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humana’는 각 개인마다 다르기에 그 차이가 인정되긴 하지만, 성직자로 양성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humana’의 성숙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humana’의 성숙은 영성 · 지성 교육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하고, ‘humana’는 끊임없이 완성되어가는 실재이기에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이러한 ‘formatio humana’의 개념 이해를 바탕으로 ‘신학생 인성 교육’에 대한 교회법적 개념을 살펴보았다. 이는 현행 교회법을 중심으로 목표·내용·방법으로 구분하여 간략히 살펴보았다. 우선 신학생 인성 교육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닮은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신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교육 내용으로는, ‘기본적인 인간적 품성 교육’, ‘올바른 인간관계 형성 능력 교육’, ‘독신 생활에 대한 교육’ 등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인성 교육 내용을 신학생들에게 올바로 교육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올바른 규율이 적용된 공동생활을 통한 교육’, ‘영성· 지성 교육과 함께 이뤄지는 교육’ 등이 있다. 이상의 ‘신학생 인성 교육에 관한 개념이해’는, 이어질 법원과 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가 된다. 제2장에서는 신학생 인성 교육과 관련한 현행 교회법 조항들의 법원 이해가 시도되었다. 즉 오늘날 신학생 인성 교육에 관한 교회법 조항들의 근본이 되는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들과, 현대의 가르침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며 수용되었는지 연구하였다. 간접적인 법원 연구는 성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비록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미 성경과 교부문헌에서부터 신학생 인성 교육의 방향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특별히 서간과 교부들의 문헌을 통해, 초기 교회의 성직자들은 신자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올바른 인성을 갖추어야 함이 명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학생 교육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라테란 공의회와 트렌토 공의회 때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트렌토 공의회 제23차 회기 때에 신학교 교령이 반포되고, 본격적으로 신학교가 설립되기 시작하며 신학교 교육의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 시기의 교육은 성직자의 직무 수행에 주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즉 사제 직무 수행에 문제가 되지 않는 인성을 갖춘 사제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주된 목표였던 것이다. 이처럼 사제의 직무 수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신학생 인성 교육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사제직 본질에 바탕을 두게 된다. 즉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신학생들의 교육을 바라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제 양성 교령』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 교령은, 합당한 직무 수행을 위한 교육의 차원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로 교육하는 것’이 신학생 교육임을 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사제 양성 교령』은 신학생 인성 교육이 영성 교육 과정 안에서 이뤄져야 함을 가르치며, 인성 교육을 영성 교육의 하나로서 언급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제3장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발표된 교회 문헌들을 통해, 현대 사회에 가까워질수록 신학생들의 인성 교육이 더욱 강조되어가고, 결국 독립적인 분야로서 명시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신학생 인성 교육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문헌들을 살펴보며, 신학생 인성 교육의 목표와 내용, 그리고 방법이 어떻게 제시되어 가는지 연구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먼저 신학생 인성 교육은 『독신 생활 양성 지침』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약 20년 후에 발표된『현대의 사제 양성』에서는, 인성 교육이 가장 중요한 교육으로서 명시되기에 이른다. 한국 가톨릭교회 역시 이러한 『현대의 사제 양성』의 가르침에 따라, 『한국 사제 양성 지침』을 통해 인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독립적인 교육 분야로서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인성 교육을 독립적으로 부각시키며, 교회는 인성 교육의 목표를 더욱 심화시켜 나갔다. 인성 교육의 목표는, 영성적인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사람들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제가 되는 것’까지도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성 교육의 내용과 방법 역시, 영성적인 차원의 교육과 더불어 인간관계 형성 능력에 관련한 교육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4장은 앞선 연구들의 결과를 근거로, 신학생 인성 교육에 대한 실천적 제언을 하였다. 특별히 수원 가톨릭 대학교의 인성 교육 현실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도출한 후, 법원과 교회의 가르침에서 발견한 법 정신을 바탕으로 실천적인 제언을 하였다. 우선 현재 수원 가톨릭 대학교의 신학생 인성 교육 목표가 독립적인 형태로 명시되어야 함을 밝혔다. 그리고 인성 교육 내용은 재정리 및 보완의 필요가 있었기에, 앞선 연구를 근거로 일곱 가지 교육 내용을 제시하였다. 또한 인성 교육 방법은 5가지 분야, 즉 공동체 생활을 통한 교육, 성교육, 영성 교육과 함께 이뤄지는 교육, 지성 교육과 함께 이뤄지는 교육, 세상과의 접촉을 통한 교육으로 구분하여 제언을 하였다. 논문을 마치며, 신학생 인성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인성 교육 지도자와 신학생 각자의 적극적인 노력과, 양자간의 ‘상호 신뢰 및 협력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과 관계 형성이 올바로 이뤄질 때, 다른 교육 방법들이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인성 교육의 내용들이 신학생들의 삶에서 체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신학생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완전함을 닮아, 세상 모든 이들과 올바른 사랑의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는 ‘영혼의 참된 목자’로서 성숙되어 나갈 것이다.

      • 한국 가톨릭교회 “교구장 대리제도”에 관한 교회법적 고찰 : 대리구제도를 중심으로

        이형민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RANK : 249647

        오늘날 빠르게 변화하는 사목환경 안에서 가톨릭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 울여 왔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안에서 한국 가톨릭교회 역시 각 교구를 중심으로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급격한 경제 발전과 함께 성장한 한국 가톨릭교회는 1984년 한국 천주교 회 창립 200주년을 기점으로 1990년대까지 양적, 질적인 성장을 거듭하였 다. 그러나 그 이후 한국교회는 선교 의식의 약화, 교회의 대형화로 인한 공동체 의식 약화, 사목자와 신자들 사이의 직접적 접촉기회의 어려움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현대 교회가 직면하게 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교회 내 몇몇 대형교구들은(서울, 대구, 수원, 부산) 교회법 제476-481조에서 언급 하고 있는 ‘교구장 대리’에 관한 내용을 토대로 각 교구의 환경과 실정에 맞추어 제도로 적용시킨 ‘교구장 대리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 다. 그러나 각 교구의 실정에 맞추어 제도로 정착된 대리구제도는 기대했던 장밋빛 미래와 달리 사목환경에 적용되어 시행의 과정을 거치면서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되었고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사제들 안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져만 갔다. 이처럼 ‘대리구제도가 꼭 필요한가?’ 하는 목소리는 논자에게 대리구제도 의 필요성에 대한 재인식과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반증으로 들려왔 다. 이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여 ‘대리구제도는 어떠한 목적에서 설정되었으 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연구의 과정은 대리구제도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 이해를 시작으로 현행 교회법전 제476-481조에서 언급하고 있는 ‘교구장 대리’에 관한 내용이 한국 교회 안에서 어떻게 제도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는지, 그리고 제도가 시행되면서 발생하게 되는 문제점들과 이에 대한 해결책 및 대안은 무엇 인지 연구함으로써 대리구제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필요성에 대한 재인 식, 그리고 더 나은 교회의 모습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함을 목적으로 하 고 있다. 제1장은 ‘대리구제도’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 이해를 시도하였다. 먼저, 대 리구제도 시행 주체인 ‘교구장 대리’에 관한 개념 이해를 통해 교구장 대 리는 주교들의 품위를 유지시켜 주기 위한 방안으로 시작되었고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목 환경 안에서 교구장 주교 혼자 담당할 수 없는 여러 분야를 대리함으로써 사목의 효율성을 높이고 더 나아가 하느님 나라 백 성의 영적 선익을 위해서 마련되었음을 살펴보았다. 두 번째로 ‘대리구’는 교구장 대리가 교구장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일정한 지역을 의미하고 있음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대리구제도’는 ‘교구장 대리’와 그가 위임받은 지역인 ‘대리 구’ 그리고 ‘대리구제도 시행 교령’의 시스템을 갖추어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교회의 제도임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그 형태로 교구의 전체적인 부분을 대리구로 이관한 ‘지역적 대리구제도’와 교구의 사목적인 부분만을 대리구로 이관한 ‘사목 적 대리구제도’로 구분할 수 있음도 살펴보았다. 제2장은 대리구제도 시행 주체이며 교구장 주교의 대리직권자인 ‘교구장 대리’에 관한 교회법적 이해를 위해 교회법 제476-481조를 중심으로 살펴 보았다. 이를 통해 교구장 대리는 ‘교구의 올바른 통치’를 위해 선임되며 자신의 권한으로 일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교구장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 안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자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따라서 교구장 대리는 자신의 권한을 사용함에 있어 자신의 생각, 판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구장 주교의 정신과 일치하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야하며 교구장 주교 와의 친교를 통해 일치를 이루어 나가야 함을 살펴볼 수 있었다. 제3장은 교회법에서 언급하고 있는 교구장 대리에 관한 내용들을 토대로 각 지역 교회의 사목 환경에 맞추어 제도로써의 모습으로 적용시킨 ‘교구 장 대리구제도’의 모습에 대해 바라보았다. 이에 관한 세부적인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현재 한국 교회 안에서 대리 구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4개의 대형교구(서울, 대구, 수원, 부산)의 시행교 령을 비교․분석함으로써 깊이 있는 이해를 시도하였다. 먼저, 한국 교회 안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대리구제도의 시행을 시도하였 던 서울대교구는 교구장 주교로부터 위임받은 지역인 ‘대리구’ 안에서 교 구장 주교를 대신하여 권한을 행사하는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비록 대리구제도 시행 교령 안에서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는 언급하 고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부분들은 제도를 시행해 나감으로써 수정․보완 해 내갈 것임을 천명하였다. 서울대교구에 이어 대리구제도를 시행하였던 대구대교구는 서울대교구의 제도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교구 상황과 환경에 맞춘 제도의 모습을 갖춰 나갔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대구대교구는 대리구제도 두 가지 유형 중 ‘지역적 대리구제도’의 대표적인 모델로 ‘작은 교구’의 모습을 지향하는 유형의 특성상 대리구에 교구의 모든 부분을 이관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대구대교구에 이어 수원교구는 서울대교구와 대구대교구의 대리구제도의 진척상황을 바라보며 준비한 만큼 교구의 환경에 맞춘 세부적인 내용들이 교령 안에 잘 정리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수원교구의 대리구제도는 대리구에 교구의 모든 부분을 이관하는 ‘지역 적 대리구제도’와는 달리 교구의 사목적인 부분만 대리구에 이관하는 ‘사 목적 대리구제도’의 대표적인 모델로 교령 안에 그 모습이 잘 드러나 있 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산교구의 대리구제도는 앞선 세 교구와는 달리 교구의 전 지역이 아니라 지역의 일부분(울산지역)만을 분리시켜 지역담당 교구장 대리에게 위임하는 형태를 갖추었으며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리구제 도의 모습은 대부분 수원교구의 모습과 유사하였다. 제4장은 지역 교회 안에서 제도로 정착된 대리구제도가 현실에 적용되면 서 발생하게 되는 문제점을 살펴보기 위해 대리구제도의 두 가지 유형 ‘지역적 대리구제도’와 ‘사목적 대리구제도’의 대표적 모델인 ‘대구대교구’ 와 ‘수원교구’의 대리구제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객관적인 문제점 도출을 위해 대리구제도의 문제점에 관한 본당 사목구 사제들과 교구청, 대리구청 소속 사제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분석 하였고 이를 통해 두 가지 유형의 대리구제도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문제 들이 대부분 일치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의 문제들은 한국 가톨릭교회 대리구제도의 문제점이라고 판단되었다. 따라서 이의 해결을 위해 논자는 도출된 문제점들에 대한 보완의 필요성 을 언급하였고 더 나아가 앞으로 대리구제도를 시행하고자 하는 교구들이 과거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더 진일보할 수 있도록 새로운 대리구제도 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총 4장에 걸쳐 진행된 대리구제도에 관한 연구를 통해 대리구제 도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와 쇄신의 과정을 거쳐 야 하는 제도임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교구장 대리 뿐만 아니라 제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교회 구성원들의 노력과 희 생이 필요함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교회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교회 공동체가 대리구제 도를 통해 교회 본연의 목적으로 더 잘 이끌어지기를 바라며 부족한 논자 의 연구물이 이러한 노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

      • 교회공동체의 새 복음화를 위한 문화선교에 대한 고찰

        김민휘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RANK : 249631

        2012년 10월 11일에서 2013년 11월 24일까지 교회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을 기념하며 ‘신앙의 해’(Year of Faith)를 보내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소집하면서 그 주제를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The New Evangelization for the Transmission of theChristian Faith)로 선정하였다. 이 회의는 2012년 10월 7일부터 28일까지 로마에서 열렸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목 방향은 최근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2010년 9월 21일 설립)를 신설한 것에서 보여주듯이 계속해서 ‘새로운 복음화’에 맞추어져 있다. 이것은 무신론, 종교 냉소주의, 탈그리스도교, 세속주의, 상대주의 등 현재 서구 교회가 겪고 있는 신앙의 근원적인 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시아 교회, 구체적으로는 한국 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보편 교회의 문제와 지역 교회의 문제가 별개의 것이 될 수 없고 복음화의 문제가 남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더 이상 단일한 문화 체계 안에서 우리의 것만을 고집하거나 배타적, 폐쇄적인 국수주의적 문화를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즉, 세상에 더욱 개방되고 열린 다문화적 생활방식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라는 삶의 터전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에게도 현실의 위기이다. 문화는 시대의 언어이며,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오늘날 세상을 ‘복음화한다’는 것은 교회가 인간 삶의 총체적인 장(場)인 문화를 복음의 빛으로 조명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문화에는 사람의 ‘혼(魂)’이 담겨 있으며, 사람들은 문화를 통해 서로 교감을 나누고 이해하며 상호 소통한다. 그리스도인에게 문화는 복음 을 전하는 ‘매개체(媒介體)’이다. 논자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오늘날 선교의 맥락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 아래,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새로운 문화에대해 알고 가톨릭 신앙정신으로 바라보는 문화선교에 주목하였다. 복음정신에 입각하여, 이 시대의 새로운 문화들에 대해 교회가 문화를 매개체로 하여 선교와 사목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사료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선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을 위해 본 연구는 총4장의 내용으로 구성하였다. 제1장에서는 문화의 개념과 근거, 문화와 복음의 상호 관계성을 고찰하였다. 문화는 인간이 삶을 영위하면서 산출되는 모든 것의 총제이며, 문화는 신앙이 실천되는 장소이며 영성이 꽃피우는 우리 삶의 자리이기에 그 연관성은 매우 깊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또한 복음은 문화를 통하지 않고서는 전해질 수 없고, 문화는 복음의 빛으로 변혁되어야 하기에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실천되는 구체적인 자리인 문화는 복음화의 영역에 속해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음은 문화라는 옷을 입고 나타나며, 이미 문화화되어 선포된 복음은 그것을 다시 받아들이는 사람들안에서, 그리고 그들에 의해 문화화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 2장에서는 복음으로 문화를 복음화하기 전 단계로 선교의 개념과 새로운 복음화 모델로서 복음에 의한 문화화, 복음을 통한 문화화, 복음에 대한 문화화라는 세 가지 문화의 복음화에 모델에 대해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복음의 원천인 성경을 통해 선교의 근거와 선교의 모범이자 최초의 선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방인의 사도로서 문화선교의 모델인 바오로 사도의 선교활동을 살펴봄으로서 문화선교의 전체적인 의미와 근거를 제시하였다. 더 나아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 교령」과 교황 바오로 6세의 「현대의 복음 선교」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회의 선교 사명」이라는 문헌을 통해 교회 교도권의 선교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제시하였다. 제 3장에서는 한국교회의 문화선교의 실태와 현황에 대해 먼저 직접적 측면에서 교회의 인식부족과 인프라 부족의 문제 등을 살펴보고, 간접적 측면으로 2011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자료와 2011년 수원교구 통계자료를 통해 드러난 각종 지표들을 비교․분석하여 문화선교적인 현실과 그 문제점을 파악하고자 한다. 특히 세속화 현상, 교회의 중산층화와 소외 계층의 발생, 지배와 소유의 문화, 집단적 이기주의, 성직자의 권위주의 등은 드러난 한국교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제 4장에서는 문화선교의 실천적 측면에서 현재 실시되고 있는 교회의 외적인 차원으로 먼저 교회문화 운동에 주목하였다. 평신도들이 주축이 되어 1968년 한국 평협이 결성되었고, 이후 ‘내 탓이오 운동’, ‘똑바로 운동’ 등을 주도하면서 세상에 교회문화를 알리는데 앞장 서왔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이후 지금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바보의 나눔 운동’과 책 읽는 교회를 세상에 알린 ‘신심서적 읽기 운동은 각각 사랑과 나눔의 정신과 능동적인 도서선교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단순히 종교적 공간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당 공간을 문화적으로 활용한 교회 내 여러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더불어, 교회 장례문화를 통해 성당을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연대적 전례공간으로 만들어 교회가 새로운 추모문화를 만들어가는 시대적 요청을 받고 있음도 주목해야 한다. 한편 평생 교육의 개념이 확산되면서 교회 내 사도직 활동과 영성생활 등을 위한 평생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가톨릭센터의 사례는 성당 공간의 활용이라는 측면과 더불어 신자 재교육과 가톨릭문화 함양에 큰 기여를 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실시되고 있는 성지 순례의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성지가 가지고 있는 거룩한 장소라는 개념이외에도 문화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성지를 발굴 개발하려는 성지 확장의 추세를 살펴볼수 있었다. 성지는 거룩한 영역으로서 신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문화적 관점에서 문화유산의 의미로 인식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보화시대인 오늘날 문화선교에 있어서 미디어교육의 중요성을 제시하였다. 교회는 신앙과 삶에 총체적 도전을 가하는 미디어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만 한다. 그러나 연구조사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상당수의 신학생들과 사제들은 대학교 내 미디 어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매우 높은 요구를 나타내었다. 때문에 미디어 교육과정이 신학교 양성과정 안에서 도입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연구와 미디어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교회 내적 차원에서는 문화선교적 관점으로 양성해야함을 선교 의식 함양을 위한 사제 양성, 쇄신, 개방된 마음과 폭넓은 협력정신의 차원으로 제시하였다. 문화란 삶의 뜻을 추구한 것이요, 그 삶의 뜻을 주는 것은 복음이다. 그러하기에 문화의 실체는 복음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복음이 선포되고 가르치는 내용은 세기를 통하여 계속되는 그리스도인들의 생생한 경험으로 더욱 풍요해지는 것이므로 만민선교를 위한 사람들의 회심과 복음화를 위해서 언제나 새로운 것이다. 시대의 징표로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서 문화와 복음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하느님 나라 건설에 있어서 인류의 모든 문화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하겠다. 복음과 복음 선교가 어떠한 문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문화와 융합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예속되지 않으면서, 그 속에 침투 작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문화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하는 문화 선교적 자세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며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가톨릭 신앙의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 세상의 문화를 바라보는 사랑의 대화를 통해 문화선교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만 할 것이다.

      • 파리 외방전교회 주교들의 문서를 통한 대한인식과 선교정책 연구

        이성현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6 국내석사

        RANK : 249631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가장 뼈아픈 시기를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은 1910년부터 35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일제강점기’를 꼽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 35년이란 시간동안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인적, 물적으로 많은 수탈을 당하고 식민국가라는 이유로 억압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있어 일제강점기는 그 자체로 ‘아픔’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역사를 더욱 아파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동족의 배신(背信)이다. 일진회를 비롯한 친일단체들이 우리나라를 일본에 넘겼고,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에 충성을 맹세한 한국인들은 같은 민족인 다른 한국인들을 억압하고 몸소 수탈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현대에 와서는 이처럼 일본의 정책에 협조하고 조력했던 사람들을 ‘친일파’라고 부르고 있으며, 2009년에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대사전』을 편찬하여 친일인명에 대한 명확한 규정집과 인명집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 대상에는 가톨릭계 인물들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노기남 대주교를 비롯한 10명의 가톨릭계 인사들이 친일인물로 등재되었다. 노기남 대주교는 한국인으로서 첫 교구장이었으나, 일제말기 ‘경성교구총동원연맹’의 수장으로서 일본의 요구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친일인명대사전에 등재된 것이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일본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또 그들의 정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들의 정책을 순순히 따라주었기 때문에, 민족을 배신하였다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노기남 대주교는 일본의 정책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탄을 받는 것은 노기남 대주교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서울대목구와 대구대목구를 이끌어 왔던 두 인물, 뮈텔 대주교와 드망즈 주교에게도 손가락은 향하였다. 이들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합병했을 무렵에 조선 가톨릭교회를 이끌었고, 가톨릭교회를 이끄는 주교의 입장에서 조선 가톨릭 신자들을 지도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에는 독립운동을 반대하고 항일 무장투쟁을 반대하였으며, 일본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주교들이었고,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에 친일인명에 등재되지는 않았으나, 사회의 불합리한 모습에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노기남 대주교보다 더 큰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며, 사목자로서 그들의 행동이 어떤 부분에서 지탄을 받아야 했는지 분명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정말 지탄 받을 행동을 한 것인가? 그들이 취했던 행동들은 정말 잘못된 것이었나?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북경 교구에서 분리시켜 조선 대목구로 설정한 이래 약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조선 대목구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주교들에게 맡겨졌었는데, 그 가운데 3명은 순교 성인으로서 가톨릭교회 안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데, 왜 이들은 교회의 부끄러움으로 남아있어야 하는가? 그들이 선대(先代) 주교들과 달리 행동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며 그들이 취한 정책들을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그들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 입장에서 올바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올바로 살펴보기 위하여 논자는 선대 주교들, 특히 구체적인 선교 정책들을 남겨놓은 흔적을 찾아 ‘사목지도서’를 편찬한 주교들을 중심으로 선대 주교들의 선교정책과 뮈텔, 드망즈 주교의 선교정책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제4대 조선대목구장이며, 103위 순교성인 중 한 분인 베르뇌 주교는 우리나라에서 첫 시노드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이 시노드를 개최한 이유는 신자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시노드의 결과물인 「장주교윤시제우서」나 「사목서한」은 각각 신자들의 행동규범과 성직자들의 행동규범을 담고 있지만, 그 목적 자체는 신자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사목서한」은 그 동안 조선대목구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성직자들의 공통된 규범을 마련함으로써 사목자마다 가진 선교지의 문화, 풍습에 대한 이견들을 통일시키고, 신자들에게 올바른 모범을 보여주며, 그들의 영혼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 지침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조선 제7대 대목구장인 블랑주교는 병인박해가 일어난 이후 피난한 선교사들과 함께 조선 2차 시노드를 함께하였고, 3차 시노드를 개최하여 『조선교회관례집』을 편찬하였다. 이 관례집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발판이 되었다. 왜냐하면 베르뇌 주교와는 달리 블랑 주교가 이 관례집을 편찬할 때의 시기는 모진 박해의 시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해가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블랑주교에게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그 동안 박해시기라는 이유로 신자들에게 용인되었던 잘못된 관습들을 바로 잡고, 박해 시기 동안 발생한 배교자들을 다시 교회에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종교의 자유가 주어질 조짐에 따라 선교사들의 행동 양식도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이 관례집을 편찬하게 된 것이다. 결국 블랑 주교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신자들의 영혼 구원이었다. 이미 살펴보았던 베르뇌 주교도, 블랑 주교도 선교지에서 목숨 바쳐 사목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신자들의 영혼 구원’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자면 ‘현지인 성직자 양성’ 이었다. 각각 주교들은 1855년에 배론에 성 요셉 신학교를, 1885년에는 부엉골에 예수성심신학교를 세워 성직자 양성을 위해 노력하는 시발점을 마련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렇다면 뮈텔 대주교와 드망즈 주교는 어떠했는가? 그들이 질타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그들이 질타 받은 부분은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항일무장투쟁도, 3․1 만세운동에 대한 참가도, 그리고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심지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한국인들의 비난을 받는 이유다. 그들은 정치적인 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거부하는 ‘정치무관심주의’를 내세웠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일본 정부가 요청하는 사항들이 종교적인 측면을 건드리지 않는 한 최대한 협조하였고, 정부와의 관계가 긴밀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뮈텔 대주교와 드망즈 주교가 일본 정부에게 우호적이었던가? 드망즈 주교는 한일합방 이후에 주교가 되었고, 그 이후의 기록물만 남아 있기 때문에 한일 합방 이전에 조선 정부에 대한 인식과 자세를 살펴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뮈텔 주교에게서 나타난 모습은 분명 조선 정부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뮈텔 주교는 고종황제를 알현하고, 도움이 필요할 땐 기꺼이 도움이 되어주겠다고 약속까지 하였다. 다만 마찰과 갈등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는 늘 신자나 선교사들이 갈등의 중심에 있을 때, 곧 ‘교안’이라 불리는 사건에 대해서만 적극적이고 강력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강력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일제강점기 속에서 일본 정부에게 가톨릭교회가 불이익을 당할 상황에서는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결국 뮈텔 주교의 기본 자세는 한일 합방 이전이든, 이후이든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가지 질문을 통하여 뮈텔 주교가 일본에 우호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던 상황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를 일본에 넘겨 합병조약을 체결하도록 부추긴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뮈텔 주교에게 이 합병이 불법이라고, 일본이 합법적 정부가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이 관점에 뮈텔과 드망즈 주교가 펼쳤던 정책들을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그들이 펼쳤던 선교정책은 선대 주교들의 선교정책과 다르지 않다. 기본은 늘 신자들의 영혼 구원이었고, 현지인 성직자의 양성이었다. 현지인 성직자 양성을 위하여 예수 성심 신학교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했으며,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유지하고자 애를 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신자들의 영신 사정을 살피기 위하여 사목방문을 게을리 하지 않은 모습도 볼 수 있었고, 조선 땅에 특이하게 뿌리 내린 ‘회장제도’를 더욱 체계화 하여 조선의 실정에 맞게 사용하고 발전시키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뮈텔과 드망즈 주교의 문서를 통해서 선대 주교들은 하지 않았던 정책들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속에서 조선인들의 문맹률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고, 또 그것이 한국인들에게 결코 좋은 영향은 주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어려움 속에서도 교육 사업을 끊임없이 진행하였고, 조선의 미래와 조선 가톨릭교회의 미래를 고려하여 청년들을 육성하였으며, 복지 사업을 실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이 일본의 수탈에 넘어가지 않도록 일본 정부에서 실시하는 새로운 법들을 해석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도 선교사들로 하여금 마련해주도록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비록 이 모든 것은 ‘선교’라는 측면에 부합하는 것들이었으나, 실제적으로 조선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모습이야 말로 뮈텔과 드망즈 주교가 시대의 요청에 발맞춰 나아가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이런 노력은 조선에 머무는 가톨릭신자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조선에서 가톨릭교회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비록 그들의 보여준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소극적인 움직임이었고, 비겁하게도 보일 수 있지만, 역사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들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사목을 하는 조선인들의 심중을 더 헤아리고 민족의 아픔에 함께 하였다면 그들에 대한 입장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취한 자세 덕분에 지금의 가톨릭교회의 모습이 있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를 통하여 현재를 바라보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이미 한 세기 전에 살았고, 그 시대를 이끌었던 주교들은 자신들의 상황 안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 것이고 입장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그 일들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올바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일제강점기 속에서 이루어진 일들을 ‘반일감정’이라는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우리는 과거의 올바른 사실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과거의 사실을 올바로 규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왜곡된 과거의 사실과 편견을 통해 현재를 바라본다면 그 바라보는 현재 역시 왜곡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이 일제강점기 한국교회사 연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본 논문이 부족한 점이 많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 논문을 작성하면서 아쉬운 점도 많았다는 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본 논문에 앞서 주교들의 ‘사목지도서’가 연구된 논문이 없었다는 것, 심지어 ‘서울대목구 사목지도서’는 번역조차 되어있지 않다는 것은 아직 한국교회 안에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올바른 연구조차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올바른 역사가 간과될 때에 우리의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간과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후로 우리의 올바른 역사를 바라보고 현재를 조명하는 많은 ‘한국교회사’ 논문들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 “주체적인 노인像” 실현의 場으로서 노인대학 활성화 방안 연구

        이나라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13 국내석사

        RANK : 249631

        성경에서 노인은 하느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이들이며 젊은이들로 부터 존경을 받는 존재라고 가르치고 있다.174) 이스라엘의 성조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도 그들은 모두 백발이 성성한 노인 이었다. 이처럼 하느님은 인간이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쇠하였다고 해 서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은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두둔하 여 공동체 안에서 큰일을 행한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의 시선은 노 인을 달리 바라보고 있다. 1998년 10월 교황청 평신도평의회에서 천 명한 다음의 말은 노인들에 대한 현 사회와 교회의 시선을 대변해 주고 있다. “노년에 대한 광범위한 부정적 관념을 바로잡는 것이 문 화와 교육이 할 일이며, 이는 모든 세대의 과제이기도 하 다.”175) 누구나 예외 없이 노인이 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노년에 맞 이하는 이러한 순리를 거스르려는 동향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 다. 노화에 대한 사회의 거부감은 갈수록 커져만 가고 심지어는 노 인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사회 전체적으로 그들을 부정적인 존재 로까지 인식한다. 과거 사회와 가정의 웃어른으로서 존경의 대상이 었던 노인의 지위는 주변인, 돌봄의 대상으로 실추되었다. 더불어가속화된 고령화의 물결이 이미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비롯한 여러 현상들은 ‘사회 문제’ 로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보편 교회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노인문제를 민감하게 숙 고하여, 노인에 대한 사목교서와 기본 지침서176)를 발표하였다. 이와 함께 한국교회도 노인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고자 교구별로 다양한 연구와 사목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일찍이 한국교회는 노인에게 복지적인 성격이 강한 사목 방향을 고수해왔다. 이러한 사목방향은 노인을 주변인이자 돌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노인 대학의 등장으로 복지적인 접근에서 탈피하여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접근으로 옮아가려는 움직임이 서울 대교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와 함께 노인대학은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노인대학을 ‘교회에 마련된 경로당’으로 간주 하면서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점차 심화되어 갔다. 이에 대 한 주된 원인으로 노인대학의 운영 방침을 꼽을 수 있다. 체계적인 프로그램의 기획보다는 임기응변식의 수업방식과 치밀하게 구성된 제도적인 뒷받침보다는 ‘주먹구구’식의 복지 중심적인 지원이 산발 적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본고는 노인의 인식의 전환을 위한 장으로서 노인대학 을 재조명하여 설문·유형분석을 토대로 노인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 는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구체적으로 노인의 전인적 성숙과 신앙생 활을 심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다. 나아가 본고는 외형상 노인인식 에 대한 전환과 실행과제를 다루고 있지만, “유기적이고 은사적이며 통합·협력적”177)인 교회 공동체의 특징에도 주목하여 노인인식의 전 환을 위한 공동체의 지지와 협력도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함을 논 의하고자 하였다. 노인대학의 활성화를 통하여 노인의 인식을 전환할 수 있다는 전 망아래 본 연구는 총 3장의 내용으로 구성하였다. 제 1장에서는 노인사목을 둘러싼 외부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 였다. 우선 한국 교회 안에서 노인사목의 입지를 파악하였다. 다음 으로 노인 사목의 내부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자 노인사목의 활성화 를 저해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교회 공동체가 가진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주목하였다. 교회 공동체의 노인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 바 노인은 ‘약자, 수혜자’로 대변되고 있었다. 이러한 부정적 인 인식을 긍정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보편교회와 사회에서 제시하 고 있는 현시대에 부흥하는 노인상(像)을 5가지로 도출하였다. 이어서 도출한 5가지의 노인상이 조화롭게 자리매김하여 실현될 장 소로서 현재 증가 추세에 있는 노인대학에 주목하였다. 서울 대교구 를 중심으로 시작된 노인 대학은 각 교구마다 산발적으로 포진되어 있으며 교구별 특성과 여건에 맞추어 프로그램 운영에 차이가 있었 다. 또한 노인대학은 노인사목 분야에서 비교적 큰 입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논자는 노인 인식의 전환을 위한 실천 장소로서 노인 대학을 주목하였다. 제 2장에서는 앞서 도출한 5가지의 노인상이 노인대학과 화합하 여 노인 인식의 전환을 위한 단초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는지를 진 단하고자 하였다. 이에 수원교구를 선정하여 노인대학을 유형별로 분석하였다. 수원교구는 2011년을 기준으로 198개의 본당이 설립 되 었으며 그 가운데 58개의 본당에서 노인대학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33개의 본당으로부터 자료를 수집하여 3가지로 유형을 나누 어 분석하였다. 분석된 유형은 첫째 ‘신앙 중심 유형’ , 둘째 ‘동아리 (취미)활동 중심 유형’ , 셋째 ‘전(全)인적 발전 유형’이다. 유형마다 각기 다른 특성이 있었으며, 본당의 재원 형편에 따라서 노인에게 최대한의 유익을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노인대학의 현상적 인 모습일 뿐, 노인 인식의 전환을 위한 요소를 진단하기에는 다소 부족하였다. 이에 설문 조사를 실시하여 노인대학에서 노인들이 얻 는 유익과 발전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한편, 설문조사를 통하여 노인들이 얻은 구체적인 유익으로는 째 ‘전인적인 성숙’ , 둘째 ‘신앙생활의 심화’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 면, 노인 대학의 프로그램에서 노인은 전인적인 성숙을 통한 만족감 을 얻고 있었다. 이 만족감은 노인대학 밖의 다른 단체에서 얻는 만 족감과 동일 하지만, 신체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은 활동과 자신의 입지가 축소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얻는 ‘전인적 성숙’의 만족감이 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으로 ‘신앙생활의 심화’이다. 노인은 노인대학의 신앙교육 프로그램을 학습하면서 신앙의 중요성을 인식 하고 이를 심화하여, 마침내 생활화 할 수 있는 계기로서 노인대학 이 주는 신앙적인 유익을 꼽았다. 이처럼 노인이 노인대학에서 얻는 여러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지만 보완해야할 사항도 발견되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노인에 게 신앙이 주는 유익이 중요한 사안임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실제 노인대학의 성경·신앙 교육의 강의방식은 한계로 지적된다. 이 밖에 도 노인대학의 성비 불균형과 재원의 부족으로 기인한 미흡한 프로 그램의 편성도 보완해야할 사안이다. 제 3장에서는 노인대학에서 발견되는 긍정과 부정의 요소를 조화 롭게 재정비하고 노인대학에서부터 노인의 인식을 새롭게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몇 가지 실천적인 모델을 언급하였다. 이 모델들은 3가지 전제조건을 토대로 한다. 이를 본당의 재원 형편과 본당의 연대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구분하였다. 첫째 모델은 사목자의 노인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 사목자가 직접 노인대학 강사로서 봉사하는 것이다. 이 모델은 사목자가 노인과 정 기적이고 지속적인 만남을 맺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로써 사목자는 노인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변화되어가는 노인의 진면목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사료된다. 나아가 사목자의 노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라 전망한다. 둘째 모델은, 지역사회와 연대하는 노인대학이다. 현재 교회는 지 역사회에 다양한 참여를 통하여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에 노인대학 내 비신자 노인을 위한 교 육반의 개설을 제안하였다. 이는 노인대학이 주는 여러 유익을 지역 사회 노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이다. 이로써 지역사회 노인들의 노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꾀하고자 하였다. 지 역사회와 연대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본당 구성원의 관심, 홍 보, 선교를 제시하였다. 셋째 모델은, 노인대학과 다른 단체·세대와의 연대를 목적으로 하 는 모델이다. 왜냐하면 교회 공동체는 단체와 단체, 세대와 세대가 상생하는 유기적인 지체이기 때문이다. 이에 노인대학의 기본 틀을 기반으로 하여 다른 세대와 단체가 강사로 봉사하는 모델을 소개하 였다. 이 모델의 특징은 다른 세대와 단체로 구성된 봉사자가 강사 로 봉사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노인 상호간 친교를 도모하고 유 대관계를 맺어 봉사자들에게는 노인들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전환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것이라 전망한다. 분명 노인대학이 노인사목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노인대학을 중심으로 노인이 또래 교우들과 친교를 나누고 신앙 안에서 위로와 평화를 얻어 안정되고 즐거운 노후를 맞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노인대학은 분명 노인사목의 중요한 분야이며 포기할 수 없는 교회 의 사목분야이다. 무엇보다 교회 공동체부터 노인에 대한 인식의 전 환이 선행될 때, 노인은 보다 주체적이며 능동적으로 ‘노년의 은사’ 를 삶으로 실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노인도 교회의 한 지체 로서 교회 공동체와 함께 신앙 여정의 동반자이며 주체적인 존재임 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 노인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인식이 근본적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고의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도심지역의 일부 대형 본당만을 설문의 대상으로 선정하여 논의의 범위를 한정지었다. 이는 지역적 특성과 중·소형 본당의 현 실태를 면밀히 파악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게 하였다. 둘째, 인식의 전환을 위한 모델연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노인의 연령 별 접근과 심리·정신적 발달과 특징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대상자들이 노인대학의 전형적인 특성을 일부 반영하고 있어 연구방법상의 한계가 있음에 도 이 결과가 전혀 의미 없지 만은 않으며, 노인대학의 발전을 위한 기초자료로서 제공될 수 있다고 본다.

      • 수원교구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위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의 활용 가능성 연구 : 폴 리쾨르의 성서 텍스트 해석 이론을 중심으로

        박상일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249631

        문예 부흥 이후, 근대의 교리교육은 이성적 합리주의의 영향 아래 정식화(定式化)된 교의와 규범, 교리의 형식으로 대상자에게 제시되었다. 이 때문에 '위로부터 내려오는'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계시의 성격에 따라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강압적인 교리교육이 이루어졌다. 이에 20세기부터 교리교육의 부흥운동 안에서 시대 징표적인 반성으로 교리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쇄신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교리교육은 내용에 있어, "구원의 역사를 살아있는 실재처럼" 전해야 한다고 결의하였다. 이는 교리교육 안에서 성서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고, 교리교육 방법론적 측면에서 "생활의 궁극 의미를 다루며, 복음의 빛으로 삶 전체를 비추어 삶에 영감을 주고, 삶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계시와 이것이 전달되는 매개로서의 성서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를 자극하였다. 이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수원교구 청소년 교리교육에 대한 쇄신의 노력으로 제시된 성서 중심 교리교육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수원교구 시노두스 이후의 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교리교육 대상자들의 부정적 평가가 밝혀준 바와 같이, 교리교육 신학은 근본적으로 하느님 계시의 체험을 유발시키는 새로운 교리교육 방법론으로 시대의 징표를 해석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있다. 여기에 교회의 교리교육 문헌들은 거룩한 독서를 통한 하느님의 계시와 개별 인간의 직접적인 만남으로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성서를 매개로 개현되는 계시, 계시와 대면한 독자의 체험을 논리적으로 규명하는 폴리쾨르의 성서 텍스트 해석 이론에 의해 그 가치가 재조명될 수 있다.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거룩한 독서가 현대의 청소년에게 갖는 탁월함을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에서 강조한 바 있다. "여러분을 위한 본인의 소망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한 '성장'입니다. 자연과의 접촉과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하느님과의 만남을 간접적으로 도와 줄 수 있지만, 하느님과 만나는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인 방법은 기도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여러분 자신보다 여러분을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에게,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의 양심을 열어 제치십시오. 그분과 대화를 하십시오! 성서를 읽고 묵상함으로써,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깨치십시오. 이것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 그분과 만나는 수단이요 방법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개인의 주관과 감성이 우선시 되고 있는 현대의 청소년에게, 하느님 계시의 매개이자 직접적인 체험의 장이 되는 성서의 탁월함을 드러내준다. 거룩한 독서는 개별 주체의 능동적인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얻는 신비체험이 이성에 의한 이해라기보다는 감성적인 느낌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기도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다양한 형태로 다가가는 부르심 안에서 고유한 신앙으로 응답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포스트 모더니즘적 사상을 지닌 청소년에게 적절한 교리교육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실제의 청소년 교리교육 현장에서 거룩한 독서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제시될 수 있겠는가?"라는 실천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의 연구가 지금까지의 교리교육 방법에 대한 연구들의 한계를 답습하지 않기 위하여, 먼저 교리교육이 근본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성령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즉 앞선 연구들은 교리교육의 현장에서 교육자를 위한 기술(skill, technic)에 대한 새로움을 전해주는 것으로 일관되어 왔다. 이에 따라 또 다른 새로움에 대한 유능함을 가진 교사를 양성하는 과제를 남겨, 교리교육이 대상자가 아닌 교육자를 중심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역설적 상황이 초래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교리교육 신학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숙고함으로써, 이제 교리교육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리교육을 완성시키는 성령의 이끄심에 대한 연구로 집중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본고에서 전개한 폴 리쾨르의 성서 해석학을 중심으로 교리교육 안에서의 성령의 작용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폴 리쾨르의 성서 해석학은 교리교육 문헌이 신비체험의 과정으로 제시한 귀납과 연역의 방법으로 거룩한 독서의 수행을 설명해 준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성서 텍스트 세계의 의도에 따라 주체의 자아가 투영되고, 이를 자기화 함으로써 새로운 자기 이해인 신앙으로 나아가게 된다. 여기에서 자아가 투영되는 힘은 주체의 단절과 비판에 의한 개방으로 제시되지만, 투영시키는 텍스트 세계의 의도가 갖는 힘에 대한 설명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성서의 언어가 표지로 작용하여 텍스트의 세계를 지시하고, 독자는 이를 따라감으로써 텍스트의 세계인 계시와 대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주체에게 작용하는 성령의 이끄심은 성서의 언어를 통하여 주체의 실존에 대한 부르심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바, 실존에 대한 부르심과 성령의 이끄심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리쾨르의 거리두기에 의해 성서 텍스트는 저자, 상황으로부터 의미적 자율성을 갖으며, 이러한 차원에서 거룩한 독서를 수행하는 주체는 성서의 저자,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성서 자체의 의미로 현재의 자아에 대한 성령의 이끄심을 감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교회의 전통 안에서 낭만주의 해석학에 의해 전개된 양식 비평, 편집 비평, 사회학적 비평 등의 성서 연구 방법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생산적인 기능을 초월하는 기능이 리쾨르의 거리두기 개념에 의해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위의 비평 방법들을 초월하여 성령의 이끄심을 감지하게 하는 이러한 기능에 대한 연구가 과제로 남는다.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 존엄성에 대한 윤리신학적 고찰

        백경한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21 국내석사

        RANK : 249631

        본 논문에서는 이 시대가 맞이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급격한 발전 상황 속에서 가톨릭교회의 역할을 숙고한다. 특별히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들이 가져오는 윤리적인 문제들에 집중하며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는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을 살펴본다. 논자는 교회의 인간 이해와 이에 대한 가르침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4차 산업혁명을 진정 인간을 위한 발전으로 이끌 것으로 전망한다. 초연결성과 융합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은 물리학, 디지털, 생물학 기술을 연결하고 융합하여 인간에게 새로운 활동 영역을 제공할 수 있다. 발전하는 기술들은 경제, 정치, 사회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 전반에 걸친 삶의 양식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변화의 모습에는 긍정적인 측면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부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의 발전으로 산업시스템, 인공지능, 유전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다양한 기술들의 발전이 편리함과 효율은 중시하지만, 많은 윤리적인 문제를 내포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 올바른 발전의 과정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 기술의 발전은 편리함과 효율에만 집중되어, 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부분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은 분명 경제 발전과 인간 삶의 질을 높여주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경제 발전에만 치중한 나머지 발전 앞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여, 오히려 사회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게 되었다. 기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만, 현대 인간 중심주의는 인간을 잘못 이해하여 인간보다 기술을 중시하여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모순된 형태를 보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은 결핍과 한계를 가진 존재로, 이 결핍과 한계를 필히 극복해야 하는 존재로 이해된다. 그래서 다양한 기술들은 인간의 결핍과 한계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문제는 이러한 방향의 기술 발전이 오히려 인간을 사회 안에서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시키며 인간이 가진 존엄성을 훼손한다. 논자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위기를 가톨릭교회의 인간 이해를 통해 극복하고자하였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인간 이해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잘못된 인간 이해를 바로 잡고, 현대 기술이 모든 인간을 위한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을 교회의 가르침으로 살펴봤을 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방향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인간을 위한 참된 발전이 아니다. 교회 가르침은 인간과 관련된 사회 문제들에 대해 모든 인간의 존엄성 수호를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교회의 가르침은 급격한 발전을 이루며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제동을 걸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교회는 발전에 있어 제동의 역할뿐만 아니라 올바른 방향성을 확립시켜줄 노력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교회는 올바른 발전을 만드는 다양한 가치들을 사회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과학과 기술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변화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새로운 사회 참여 방식을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더 이상 제도의 수정이나 새로운 제도 창출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안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며 그들에게 올바른 도덕의식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논자는 본 연구를 통해 인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길잡이로서 중요한 자리에 위치할 수 있음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교회의 가르침이, 급격하게 발전하는 사회에 올바른 인간 이해를 제시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을 모든 이들을 위한 변화로 이끌 수 있다.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교회는 점차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 한국교회의 가톨릭 교육에 관한 교회법적 고찰 : 『교회법』 제794조를 중심으로

        박상진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21 국내석사

        RANK : 249631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교육’의 목표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현시대에서 대두되는 문제로서 물질 만능사회, 이성주의적 사고체계, 그에 따른 사회적 불균형과 사회안정망의 해체 등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 교육분야 또한 현시대의 사조를 흡수했지만, 이에 반해 현대인들은 오늘날의 문제로 야기된 교육의 한계점을 인식 못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존재한다.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 실현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는 신성과 인성을 지닌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영적인 공동체이며 동시에 가시적인 사회를 이룬다. 그러기에 교회는 시대적 징표를 읽기 위해 세상의 흐름에 주목하는 동시에 그 흐름에 휩싸일 수 있는 위험성도 존재한다. 세상의 변화에 치우쳐 내면의 종교성보다 외적이며 물질적인 부분을 중시하고, 공동의 가치, 신앙의 가치보다 개인의 가치가 중요시되는 현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교회 안에서 행하는 교육은 일반 사회의 교육과 어떠한 차이를 가지는가? 사회에서 말하는 교육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인간의 잠재 능력을 일깨워 주기 위해, 그리고 훌륭한 자질, 원만한 인격을 갖도록 이끌어 주기 위한 목적들을 지닌다면, 가톨릭 교육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해 복음적 가르침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인격의 성숙을 추구하며, 최종적으로 영혼의 구원이라는 신비를 깨닫고 살도록 가르치는 목적을 지닌다. 참조: 『교회법』, 제217조. 즉 사회 교육과 달리 가톨릭 교육은 복음적 가치와 기준을 통해 인격을 성숙시키고 나아가 최종 목표인 영혼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논자는 교회만이 지닌 독특한 교육의 목적이 신앙인들 삶 안에서조차 깊숙이 자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이러한 지향은 오늘날 잘 실현되고 있는가?’ ‘잘 실현되고 있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가톨릭 교육이 주는 특별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들을 던지게 되었다. 논자는 가톨릭 교육에 대한 여러 가지 접근들 중 교회법전에서 제시하고 있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교회법전은 가톨릭 교육의 차원에서 가정교육에 대한 중요성부터 출발하여 모든 신자들이 지녀야 할 교육의 의무와 권리, 나아가 교회와 사회에서 제공되어야 할 교육의 사명까지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톨릭 교육이 구체적으로 교회 내에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교회법의 가톨릭 교육은 오늘날 교회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가르침과 현실의 괴리를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지 고민하고자 한다. 특별히 논자는 한국교회 안에서도 가톨릭 교육이 실현될 수 있는 여러 장소들 중 본당 사목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미래의 사목자를 꿈꾸는 논자의 상황과 더불어 『교회법』 제794조에서 제시하는 영혼의 목자들에 주목하기 위함이다. 본당 사목구 주임의 교육에 대한 막중한 책임과 더불어 교육의 다양함과 유연함을 펼칠 수 있는 본당 사목구를 살펴봄으로써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가톨릭 교육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본고는 현행 교회법전 안에서 나타난 가톨릭 교육을 탐구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의의를 지니고자 한다. 첫째, 가톨릭 교육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 가톨릭 교육을 오늘날 현시대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톨릭 교육이 현시대로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야기될 더욱 급격한 변화에 우리 교회는 어떠한 자세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가톨릭의 구성원인 그리스도인으로 한정한다. 현행 교회법전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세례로 그리스도께 합체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성되고, 또한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하느님이 교회에게 이 세상에서 성취하도록 맡긴 사명을 각자의 고유한 조건에 따라 실행하도록 소명받은 자들이다.” 『교회법』, 제204조.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그리스도께 합일되어가며 성숙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시대 상황 안에서 가톨릭 교육의 목표 또한 동일선상으로 점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논자의 관점은 ‘세상 속의 교회’ 안에서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톨릭 교육의 본질과 현대의 쇄신을 불러일으키고자 함이라 할 수 있겠다. 연구 과정으로, 제1장에서 가톨릭 교육의 개념과 기본 원리, 구성원 등 일반적인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구체적으로 가톨릭 교육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제2장에서는 교회법 연구 방법론의 핵심을 구성하는 법원(fontes) 분석을 통해 『교회법』 제794조를 살펴볼 것이다. 이는 법의 제정 이유를 밝힘으로써 법정신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제3장에서는 현행법전 이후 교회 가르침들을 탐구해봄으로써 가톨릭 교육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제4장에서는 한국 교회의 가르침을 살펴봄으로써 현시점에서 가톨릭 교육의 의의가 잘 실현되고 있는지 성찰해볼 것이다. 나아가 오늘날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전환기를 맞을 교회와 교회의 교육에 대한 실천적인 제언으로써 가톨릭 교육의 가치를 드러내고, 오늘날 교회와 본당 사목구 주임을 향한 시대의 요청에 대한 전망을 이어보고자 한다.

      • 말씀 나눔의 공동체에 관한 사목신학적 고찰 : 가톨릭의 "소공동체"와 개신교의 "셀 그룹" 비교분석

        윤장호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2009 국내석사

        RANK : 249631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쇄신 정신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에 입각하여 현대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획기적인 쇄신을 위해 ‘복음화’와 ‘친교의 공동체’를 구현 하고자 한국 교회에서는 소공동체라는 공동체관을 도입하였다. 그 동안 소공동체는 주교회의에 위원회가 생길 정도로 활성화되며 진보되어 왔다. 하지만 현재 소공동체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심단체처럼 신자들이 손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점을 발견하게 된다. 소공동체 활성화 방안으로 “복음 나누기 7단계”가 제시되었지만, 성경의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 나이가 많은 어르신 등 여러 집단이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또한 친교만이 강조되는 소공동체에서는 "말씀 나눔"의 시간이 신변잡기식의 대화로 인식되며, 교회 안에 존재하는 친목 도모의 도구로 평가 절하되는 한계도 발생하였다. 소공동체가 신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은 아마도 토착화가 덜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논자는 소공동체가 진정한 “복음화의 도구”이자 “친교의 공동체”로 바로 설 수 있는 방향을 찾고자 하였다. 소공동체의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 논자는 동시대에 공동체 쇄신의 일환으로 개신교에서 제시된 ‘셀 그룹’을 살펴보았다. ‘셀 그룹’은 '4Ws'를 통해 말씀을 나누고,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말씀을 실천할 방향을 제시 해주며, 말씀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이는 신앙전파를 급속도록 성장하게 하고, 대형화된 교회 구성원들의 소외 현상을 줄여 주었으며, 구성원들 간에 서로의 아픔과 슬픔, 기쁨과 행복을 나눔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따라서 논자는 ‘소공동체’보다 앞서 한국에 도입되어 “복음화와 친교의 공동체”를 형성하여 정착되고 있는 개신교의 ‘셀 그룹’과 가톨릭의 ‘소공동체’를 비교분석하여 ‘소공동체’가 비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소공동체’와 ‘셀 그룹’을 비교분석한 결과 근본 신학과 기본 원리는 매우 흡사했다. 두 소그룹 공동체는 공동체 원리에 부합하고 있어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함께 복음을 나누고, 이웃을 섬기며, 전례와 결합하고, 친교를 이루고 있었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학적 원리를 바탕으로한 ‘구원관의 차이’와 ‘이웃 섬김의 차이’에서 도출되는데, 이는 연구 범위가 방대하여 한계성이 따르므로 논자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장점을 바탕으로 소공동체가 나아갈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교회는 교회의 구성원들을 하느님의 모상이자, 교회 자체라고 정의 한다. 각각의 구성원들이 교회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구성원들의 모임인 소공동체 역시 교회이다. 그러므로 방안 제시는 소공동체를 교회로 바라보며 교회가 지니고 있는 공동체 4대 원리를 토대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말씀” 방안은 단계적인 말씀 나눔과 성경공부의 필요성, 그리고 속지주의에서 벗어나 속인주의가 되어야 하는 것에 있다. '단계적인 말씀 나눔'은 처음부터 ‘복음나누기 7단계’를 적용하는 것과 비교하여 신자들의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 특히 기초적인 “향심기도”는 말씀에 맛을 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말씀에 맛을 들이게 되면 스스로 복음에서 하루의 양식을 찾고, 체험을 통해 얻은 하느님의 은총을 나눌 수 있다. 또한 '성경공부'를 함으로써 기초적인 성경 지식을 습득하게 되어 삶과는 무관한 역사 속의 예수가 아니라 현재의 예수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울러 ‘속인주의’는 복음 나눔을 하는데 있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구성원들 간의 만남을 통해 신앙의 나눔을 자유롭게 한다. 둘째, “전례” 방안은 소공동체가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영적인 나눔’을 지향하는 공간이기에 전례적인 요소를 더 도입할 필요가 있다. 비교분석 결과 가톨릭의 소공동체는 시작기도와 마침기도 그리고 자신을 위한 기도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개신교의 셀 그룹은 각 시간마다 찬양과 중보기도 그리고 나눔 시간에는 간증이라는 전례 요소를 도입하고 있었다. 가톨릭의 소공동체가 개신교의 셀 그룹에 비해 전례 신심 행위가 부족하므로 소공동체에 화살기도와 구성원 간의 공통적인 기도지향, 성가 부르기 등을 삽입하여 좀 더 전례적인 요소를 가미해 풍요로운 시간이 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소공동체가 신앙의 핵심인 미사와 결합하여 모든 소공동체원들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섬김” 방안은 말씀의 생활화를 위해 교구와 본당에 기획팀이 구성 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기획팀 구성은 각각의 소공동체의 특색을 인정하면서 보편교회와 일치하기 위한 방법이며, 말씀을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장려한다. 이렇게 구성된 기획팀은 모든 신앙인들에게 각자의 삶 안에서 신앙을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친교” 방안은 위에서 제시한 3가지 방안을 통해 자연히 발생된다. ‘말씀’, ‘전례’, ‘섬김’이라는 방안들은 “친교”를 통해 더욱 극대화되어 나타나게 된다. 현대인들은 ‘영적 친교의 공동체’를 원하고 있다. 급속도로 변화하며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신앙인들은 19세기 교회가 그러했듯 하느님 안에서 가치관을 확립하길 요청하고 있다. 서울 대 교구에서 공동체 쇄신을 위해 제시한 ‘소공동체’는 이 땅에 하느님이 섭리하심을 드러내었다. 소공동체를 통하여 개신교의 ‘셀 그룹’이 보여준 것처럼 말씀 나눔과 이웃을 섬기는 노력으로 자연스럽게 이 땅에 “복음화와 친교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소공동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 사목자는 각 교회의 공동체가 지닌 특징과 상황을 파악하여, 활성화되고 있지 못한 부분에 대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최소치의 원리와 최대치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소공동체가 하나의 교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신앙인들은 말씀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영적인 노력과 이웃 섬김 그리고 전례와의 일치를 이루려는 적극적인 참여에 대한 노력을 함으로써 하느님과의 친교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본 논문의 한계점을 언급한다면, “말씀 나눔의 공동체에 관한 사목 신학적 고찰”이기에 소공동체의 문제점을 “말씀 나눔”으로부터 도출하여 영성과 전례, 교회론적인 시각으로 다루고자 하였지만 심도 있게 고찰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보다는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기존에 제시되어 있는 방안들을 취합하였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논자가 취합한 방안들은 소공동체 활성화 방안들 중 좋은 방안들의 취합이기에 긍정적 효과를 초래하리라 예상된다.

      • 儒家의 君子之道와 가톨릭 司祭 靈性 比較

        김진범 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 1996 국내석사

        RANK : 249631

        儒敎의 君子之道와 가톨릭 司祭 靈性의 比較 本 논문은 儒家의 이상적이며 현실적인 인간상인 君子와 가톨릭의 司祭를 比較宗敎學的인 觀點에서 비교하여 현대의 이상적 인간상의 思想的 根據를 마련해 보고자 시도해 보았다. 이 시도의 목적은 미래의 가톨릭 司祭로서, 그리고 東洋人의 한 사람으로서 현대의 바람직한 人間像을 구현하고 재정립하는데 있고, 도한 東洋的 司祭像에 一助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본고는 먼저 君子와 司祭의 신원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이들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본 후, 그들이 자신의 신원을 완성해 가는 수양 방법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그 수양의 완성인 安人과 司牧 활동을 비교 고찰해 보았다. 먼저 군자와 사제의의 신원을 고찰해 보았고, 이들의 정체성의 공통된 완성인 성인을 비교하였다. 첫째,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서로 같다. 유교나 가톨릭이나 성인은 자신의 하느님 또는 하늘로부터 받은 기질을 최대한으로 성장시키고 완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둘째, 孔子의 仁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완성은 같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이는 인이 사랑과 대치되는 개념이 아닌 비슷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제나 군자가 인과 사랑을 완성 시키는 것은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에서 같다고 보았다. 셋째, 사제는 성인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구자는 유교에서 가장 중신되는 인물인 孔子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孔子는 사실 겸손하여 자신을 성인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공자를 그 제자들이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사실이기에 현대의 군자는 공자를 사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사제가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과 군자가 공자를 사표로 삼는 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를 닮는 다는 것은 그야말로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공자를 사표로 삼는 다는 것은 공자를 본받을 뿐 자기 나름의 성인을 만들어 간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유교나 가톨릭이나 성인은 만 백성을 하느님 또는 하늘이 내려준 그대로를 성장시키고 仁과 사랑의 완성을 통해서 大同社會와 하느님 나라 건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임은 같다. 즉 군자와 사제의 궁극 목표는 바로 이것이고 여기에서 그 신원이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군자와 사제의 수양에 중심이 되는 德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수양과정을 고찰하였다. 먼저 智仁勇 三達德과 信望愛 向主三德을 비교해 보았다. 먼저 ‘知’와 ‘信’을 비교해 보았는데, 한마디로 信德이 知보다는 넓은 개념이라고 불 수 있다. 즉 信德은 知를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다. 다라서 알고 行하는 것을 뛰어넘어 온전한 信賴를 요구하는 德이 信德이라고 볼 수 있다. 君子의 ‘知’가 天命을 알고 人間을 알아 迷惑됨이 없는 것을 뜻한다면, 司祭가 갖는 信德은 사제의 온 삶안에서 하느님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인 동시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으로써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함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다음으로 ‘勇’과 ‘望’을 비교해 보면, 이것은 望이 勇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거의 비슷하지만 望德이 보다 종교적이라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勇의 특징을 두가지로 보아 부끄러움이 없음과 强하게 끝까지 항구함이라 볼 수 있다면, 망덕 역시 ‘하느님을 바람’이라는 것에서 양심의 가책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뜻하며 過望과 切望없이 항구함이라는 것에서 强한 것이며 끝까지 항구한 것이다. 이와 같이 勇과 望은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君子의 勇이 인간적 사회에서의 성공을 의미한다면, 司祭의 望德은 인간적 사회적 성공보다는 내세에 대한 바람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희망이라는 데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군자와 사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인 仁과 사랑을 비교해 보았다. 仁과 사랑은 거의 비슷한 개념이라고 위에서 보았다. 仁이 知와 勇응 포괄하는 개념이라면, 사랑 역시 믿음과 희망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볼 수 있고, 君子의 仁이 克己復禮와 忠恕라는 행동에서 體得된다면 사제의 사랑 역시 자신의 직무수행 속에서 體得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君子의 仁이 자기 사랑과 타인에 대한 사랑, 더 나아가서는 인류전체에 대한 사랑을 포괄하고 있다면, 司祭의 愛德 역시 인간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君子의 仁이 司祭의 愛德보다 자기 사랑에 대한 비중을 좀 더 크게 갖는다면 사제의 애덕은 자기 사랑보다 자기포기에 더 큰 비중을 두며 한걸음 더 나아가 하느님 사랑이라는 더 큰 개념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형제자매들인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대명제가 있는 것이다. 즉 유교의 인이 윤리적인 사랑을 나타낸다면 사제의 사랑은 더 크게 종교성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類似點과 相異點에도 불구하고, 君子의 智仁勇 三達德의 修己와 司祭의 信望愛 向主三德의 修德이 갖는 가장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것이 행하지 않고는 體得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양 방법 중 두 번째로 君子三戒와 福音三德을 비교해 보았다. 먼저 戒之在色과 貞潔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君子에게 있어서 色을 경계한다는 말은 女色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즉 獨身을 권고하는 말은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그러나 司祭에게 있어서 貞潔의 德은 獨身으로 대표되는 德이며 獨身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제의 독신생활이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상태, 또는 금욕 생활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 가지 자연적 경향, 즉 생식 기능, 부부애, 자연적인 父性을 하늘나라의 사랑을 위하여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군자의 戒之在色이 갖는 인간적 본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제가 선택하는 독신은 바로 사제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것은 군자가 求色보다는 道에 전력을 다하듯,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갈림 없는 마음의 온전한 투신이 내재된 정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 戒之在鬪와 順命에 대해 비교해 보았다. 君子에게 있어서 戒之在鬪는 忠, 恭敬, 禮, 孝悌의 德들을 包括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한마디로 윗사람 공경과 아랫사람 공경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司祭의 順命 역시 윗사람인 主敎와 동료 사제들, 신자들과의 화합을 내포한다. 이러한 화합의 근저에는 겸손의 덕이 밑받침되어 있고, 君子가 偏黨하지 아니하고 화합하듯이, 사제 역시 하느님의 뜻을 쫓으려는 온전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 안에서 화합한다. 이러한 司祭의 順命이 君子의 戒之在鬪와 다른 점은, 司祭의 順命은 양떼에게 언제나 자신을 내어 줄 준비가 된 순명이라는 점이다. 즉 군자의 鬪를 경계함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언제나 平等關係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제의 순명은 군자의 戒之在鬪에 비교해 兼愛의 마음을 더 갖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 戒之在得과 淸貧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君子의 得을 경계함이나 사제의 淸貧은 모두 물질에 있어서의 超脫을 포괄한다. 또한 물질에서의 초탈 뿐 아니라 자기중심주의에서의 초탈 역시 같은 맥락을 갖는다. 즉 君子는 安貧樂道함으로써 富貴를 草芥와 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며, 사제 청빈 역시 하느님께 모든 것을 從屬시키기 위해 자기에게 자유로워지고 초탈해야 한다는 것이다. 君子에게 있어서 戒之在得은 바로 德을 本으로 삼고 財貨를 末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君子의 戒之在得은 의로운 부귀에 대해서 인정하는 편이다. 즉 君子의 得은 義로운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司祭의 淸貧은 의로운 재화까지도 포기하는 靈性을 추구하게 만든다. 이는 사제 자신이 가난하게 됨으로써 가난한 이들을 쉽게 우선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司牧的 측면에서의 청빈을 의미한다. 君子의 戒之在得과 司祭의 淸貧의 차이점은 의로운 재화를 인정하는가, 아니면 그것가지도 포기하는 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君子三畏와 하느님 말씀의 연구에 대해 살펴보았다. 君子三畏는 畏天命으로 集約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君子의 畏天命을 중심으로 司祭의 하느님 말씀의 硏究와 比較해 보았다. 君子에게 있어서 인간에게 내재된, 득 天이 稟賦한 德을 밝히는 것이 畏天命의 길이다. 따라서 君子가 해야 할 일 중에 제일 첫 번째의 것이 天命을 아는 일일 것이다. 이와 같이 사제가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한다는 것 역시 사제에게 있어서 첫 번째 任務인 것이다. 또한 君子의 畏天命의 길이 天命을 아는 것에 있다면, 그것은 바로 依於仁으로 그 방법을 삼는 다는 것이다. 사제 역시 하나님 말씀의 연구에 있어서 말씀 선포의 열의와 함께 실생활에서의 사랑의 영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君子의 畏天命과 사제의 하느님 말씀 연구는 그 방법이 동일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만 儒家의 畏天命의 실현 방법이 孔子가 이야기하듯 下學而上達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면, 사제의 하느님 말씀 연구는 이미 계시되어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익히고 실생활의 삶으로 이어진다는 면에서 다르다는 것이다. 즉 儒家의 방법이 上向的 性格을 가지고 있다면, 司祭 靈性에 있어서 하느님 말씀 연구는 下向的인 性格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에서 다르다. 이것은 바로 啓示宗敎인 가톨릭과 上帝崇拜 보다는 人事를 중시 여기는 儒敎의 큰 차이점을 克明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다. 다음은 君子의 安人과 司祭의 司牧이라는 면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수양을 세상에 펴 나가는지 살펴보았다. 첫째로 君子의 德治나 司祭의 司牧에 있어서 똑같이 중용한 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군자는 契矩之道로써 백성들에게 솔선수범하여 백성이 본받게 만드는 정치를 해야 하며, 사제는 자신이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목자적 권한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봉사적 권한으로 받아들여 목자적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군자의 덕치가 백성들의 修身을 돕는 정치라면 사제의 사목은 신자들의 聖化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구자의 덕치나 사제의 사목은 본질적으로 거의 같은 맥락에서 고찰된다 하겠다. 왜냐하면 군자의 덕치가 仁愛를 실행하는 것이고 사제의 사목이 사랑을 실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君子의 正人心과 司祭의 靈性指導 역시 거의 같은 맥락에서 통찰 되었다. 먼저 군자가 正心을 통해 正人心에로 나아가는 爲己之學을 指向하고 있다면, 사제 역시 자신이 먼저 진실의 상태와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에 있지 않으면 영성지도를 할 수 없다는 논리는 서로 상충한다. 또한 군자의 정인심이나 사제의 영성지도는 모든 사람이 본래 하느님 또는 하늘로부터 받은 마음의 손상된 부분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말하는 것에서 같다. 이처럼 군자나 사제의지향점이 모두 같음을 볼 수 있다 하겠다. 그런데 다른 점은 군자의 정인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선하게 하는 인간적 관계에 주안점을 둔다면, 사제의 영성지도는 인간관계 보다는 하느님과 피지도자의 관계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이다. 즉 사제가 피지도자와 인간적 관계를 돈독히 하기 보다는 그 일차적 관심사가 하느님과 피지도자의 관계에 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인간적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군자의 정인심은 군자가 주체가 되어 범인들의 마음을 바르게 하지만, 사제는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협력자에 불과하고 객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성지도의 주체는 하느님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인심과 영성지도의 주체가 다르다는 면에서 큰 차이점이 있다고 하겠다. 셋째로 儒家의 大同社會나 가톨릭의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과 모든 인간 또는 天人이 合一된 社會이며 하느님과 一致된 사회이다. 여기서 고찰하고 비교해 본 것은 이러한 이상 사회에 도달하는 과정 중 君子와 司祭의 役割이다. 먼저 군자가 대동사회의 건설을 위해 大公을 실행하고 만민을 사랑한다면, 사제는 구원이신 예수를 선포하고 하느님의 샘솟는 사랑(Amor fountains)을 전하는 것이다. 또한 군자가 대 사회적으로 경제적인 면에서의 人間愛를 실현해 모두의 平等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사제 역시 경제 정의의 증진을 통해 구조적 모순에 대한 총체적 변형을 이루고자 한다. 즉 모두 세계의 평화와 복지사회의 구현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면에서 군자와 사제의 이상사회 건설은 같은 맥락을 띠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군자의 대동사회 건설은 이 지상의 이상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반면, 사제의 하느님 나라 구현은 천상의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것이지만 궁극적인 지향점은 천상의 하느님 나라에 있다는 것이 크게 다른 측면이다. 즉 이상사회 건설의 시점이 차이가 있는 것이다. 군자는 그 시점을 현시대를 지향하는 것이고 사제의 하느님 나라 구현은 그 시점이 세상의 완성인 종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사제는 세상의 완성인 하느님 나라의 도래로써만 이상적인 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것은 군자와 사제의 종교적인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아주 큰 차이점인 것이다. 지금까지 東洋의 理想的 人間像인 君子之道와 가톨릭의 理想的 人間像인 司祭의 靈性에 대해 비교해 본 결과 君子之道나 司祭靈性은 큰 차이점이 없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바라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結論的으로 儒家와 가톨릭의 제일 큰 차이점은 儒家는 下學以上達해 깨달아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고 그리스도교는 啓示 宗敎로써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照明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君子之道와 司祭 靈性이 참인가성 회복에 갖는 意義는 사람이 자신의 본성인 착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 인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窮極的인 目標는 하느님 또는 天과 인간이 合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야만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회복할 수 있고 大同社會 또는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