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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東赫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76 君子語文學 Vol.3 No.-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효종은 시전을 좋아하였다. 또 효종은 “심경”을 매우 좋아하여 현종은 승하하시던 날에 부왕을 생각하느라고 이 “심경”을 취하였다가 전한다. 현종 십삼년 심이월에 호조판서 김수흥이 상소하기를 효종이 십년간 왕립에 있는 동안 장차 큰 일을 하려고 조정에 있는 여러 신하들이 왕의 마음을 당할 자가 없어서 이에 지성과 융숭한 예우로써 유신 송시열과 송릉길을 초치하여 북벌계획을 세웠음을 그리워하였고 공주의 유학 김덕린이 상소하여 이르기를 우리 효종은 총명과 예지로써 불운한 형편을 좋은 운세로 전환하고자 침과상담의 뜻을 품고 널리 덕을 같이 할 신하들을 구해서 항상 청에 보복할 책을 강구한지 십년이었고 청을 토복하고자 하는 뜻이 마치 일성처럼 빛났다고 하였고 영조 원년 정월에는 노론이 거두민진원이 왕께 이르기를 신이 듣건 데 송시열이 매양 말하기를 효종은 너무나도 공부를 열심히 하여 주나라 문왕후일인자라고 하였다.
오탁번 세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76 君子語文學 Vol.3 No.-
이 글은 박목월과 조지훈의 초기시가 지닌 의미를 개인의 획득과 함몰이 라는 각도에서 살피는게 목적이다. 이 두 시인은 세칭 청록파의 일원이고 따라서 초기시들은 서로 유사한 점도 있지만, 그와 못지않게 개인성의 응축과 확대의 과정에서 서로 대립되는 경로를 걸어간 시인이다. 목월은 시가 개인화 소시민화 되어 나간 길은 주제의 왜소를 극복하고 시작 방법의 발견과 정립이라는데 귀결하지만, 지훈은 처음부터 개인적인 경험을 함몰시키고 보다 공간적인 것을 향한 크고 넓은 방법을 찾아 마침내는 시의 효과라는 입장에서 볼 때 하강적인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하여 <청록집>에 수록된 그들의 시를 중심으로 그것들이 시의 경로에 어떤 관련을 지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목월, 개인의 획득 목월은 가장 실험적이고도 견실한 시정신을 유지한 시인이다. 이 말은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시세계를 탐구하면서도 그것을 단순히 실험의 차원에서 머무르게 하지 않고, 자기 시정신의 한 혈맥으로 수용시키기에 부족하지 않는 깊이로까지 심화, 완성시켰다는 뜻이다. 1939년 <문장>지에서 추천을 받아 등단한 당시의 작품을 보면 그의 시세계는 몇 갈래의 징후를 보일 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추천작품 전반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은 시상의 간략화와 그에 의거한 반복된 표현, 그리고 개인화의 경향으로 잡아볼 수 있다.